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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7/27
    양육 수당(?) 10만원???
    깡통

조국의 소식에 목말라하는 친구에게...

 

친구에게...


네가 여기 소식 많이 궁금해 하는 것 같아 몇자 적는다. 여기에선 촛불 시위를 바라보는 시각들이 다양하다


미국산 소고기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못믿겠다는 사람들의 시각 차이가 큰 상태다. 너도 대충은 알겠지만 우리 교단은 대체적으로 안전하다는 입장이다. 촛불 집회는 반미 감정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난 처음 촛불 집회가 시작된 때 쯤 집회는 참석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상황만 지켜봤다. 그 때쯤 교회와 집이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조만 간 작은 처남이 결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장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아내가 하는 일도 없으면서 정신은 없었고 교회와 집을 5월 17일 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마음은 시청에 가 있어도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지난 6월 10일엔 혼자라도 시청에 가려 했더니 아내가 같이 가자고 해서 하경이과 다녀왔다. 아마 이 글 읽는 사람들 중엔 3살 아이와 시청에 같이 갔다는 소리에 너도 부모 맞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요즘 여기 분위기가 그렇다. 하경이가 더 어렸을 때 대추리까지 다녀온 걸 알면 날 빨갱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 하... 하...


6월 10일 처음으로 시청에 나갔는데 그 전날인가? 시청역에 전철이 서지 않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 서울역에서 내려 시청까지 걸어갔다. 당시 광화문쪽에 이른 바 명박산성이라 불리우는 콘테이너 박스가 설치되었는데 난 그 사실을 그날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쩝...


막내 처남이 결혼을 그 주간에 했기 때문에 장인 어른이 집에 와 계신 상황이라 장인껜 말도 못하고 조용히 다녀왔다.


처음엔 사람이 그정도 많이 모일지 몰랐다. 광명 쪽에서도 사람들이 모여 간다고 했지만 우리는 따로 갔다. 서울역에서 시청으로 가면서 불탄 숭례문을 처음 봤다. 숭례문 맞은 쪽에서 건널목을 건너자니 무전기를 들고 있는 정보과 형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우리를 뻔히 본다. 하경이를 유모차에 태워 시청으로 가고 있었으니 쳐다 보는 것 같다. 사실 무전기는 보지 못했지만 그 사람의 귀에서 뭔가를 봤다.


건널목을 넘자니 철도 민영화 반대하는 쪽에서 촛불을 나눠주기에 받아 들고 시청으로 갔다. 중간에 술에 취하신 어르신이 미친놈들이라는 소리를 연신 해댄다. 시청 앞쪽에 가니 명동쪽으로 나가는 길을 이른 바 닭장차들이 열을 맟췄고 그 뒤로 온갖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우리는 덕수궁 정문 쪽에 있었는데 한 교회 깃발이 보이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봤다. 오른쪽에는 대학생들이 앉아 있었고 간혹 우리와 같이 유모차를 끌고 왔다 갔다하는 부부들을 볼 수 있었다. 광화문쪽으로 더 들어가려 하니 사람들이 말린다. 저쪽은 지금 사람들이 너무 많아 유모차를 끌고는 들어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다. 명박산성이 앞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꼼짝 못하고 있었던 거다.


난 덕수궁 정문 조금 앞쪽에서 사방을 봤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뒤 쪽만 봤는데 행진 전에 광화문쪽을 보니 그쪽서부터 숭례문 근처까지 사람들로 가득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실 좀 난감했는데 여기서 어쩌구 저기서 어쩌구 처음에는 그 무질서함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촛불 시위에 관심이 있어 여기 저기 찾아봤던 내용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결국 우왕 좌왕 하는 것 같은 이 흐름이 촛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처음 시청에 도착해서 닭장차 배치도를 유심히 살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이기심이었다. 만약 사람들이 경찰하고 충돌한다면 어디로 빠져야 하나 그것을 생각하느라 경찰과 몸을 섞기보다는 아내와 하경이를 안전하게 뒤로 빼야겠다는 생각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날 다행히도 경찰과 마찰은 없었다. 간혹 사람들은 그냥 촛불 집회가 사고 없이 끝난 것을 아쉬워 하기도 한다.


촛불 집회에 대해 우리 교단과 같은 보수적 교단들에서 강성발언을 하고 있어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사람들 사이에 깊다. 한번은 촛불 집회에 참가해 자유 발언대에 나가 기도나 하고 올까? 라는 생각도 했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목사의 한 사람이라 그런지 기독교가 비판 받는 것은 참겠지만 비난이나 조롱 받는 것에는 짜증이 났다고 해야 하나?


얼마 전엔 어떤 기독교 단체에서 촛불 집회 반대 성명서를 내려는데 이름을 넣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내 이름은 빼달라고 했다. 전화를 한 분이 묻는다 그럼 혹시 촛불 시위를 찬성하시는 거예요? 네... 아마 한마디로 내 이름은 이제 빨갱이 중 하나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조만간 그 성명서가 나왔을 때 기독교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심해질 것에 있다.


행진이 시작되자 사람들로 제대로 걸을 수 없어 조금 걷다가 풍물패가 노는 걸 지켜보다 집에 계신 장인 생각에 시청 역으로 내려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경이가 자꾸 더 놀다 가자고 난리다. 하경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촛불이 그렇게 많으니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하경이를 간신히 달래서 1호선을 타려고 가는데 목사님하고 누가 부른다 누군가 보니 광명에 사는 엄마 한 분을 만났다. 두 아이를 양손에 붙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와 잠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그날 이 후 난 지금까지 시위를 하러 나가지 않았다. 침묵이라고 해야 하나? 무관심이라고 해야 하나? 난 촛불 집회에 대한 양쪽의 이야기를 듣는다. 간혹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심하게 촛불 집회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만난다.


하나님께서 소가 먹고 살도록 만든 풀을 먹지 않고 다른 것을 먹으니 소가 아픈 것이라는 말을 아끼고 싶지 않다. 많은 분들이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촛불 시위는 노사모 작품이라느니 좌파 작품이라느니 여러 말들을 한다. 내가 이런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짜증을 내겠지만 난 노무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난 심상정이 좋고 강기갑이 좋다. 그리고 문국현이 좋다. 처음 강기갑이 촛불 집회에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분이 좋았다. 지난 번 기독교 촛불 기도회엔 참석할까 말까 고민하다 참석하지 않았다. 그날 찍은 사진들을 보니 개인적으로 아는 얼굴도 있어 반가웠다.


지금 여긴 촛불 집회를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기독교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고 있다. 난 그 다양한 시각 중 기독교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촛불 시위 현장에 간 사람들과 가지 않은 사람들 그들 안에도 다양한 생각들이 뒤 범벅이 된 것이 조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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