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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12
    2020 사순절 14.(사도행전 16장 6절~10절)
    깡통

2020 사순절 14.(사도행전 16장 6절~10절)

3월 12일 2020년 사순절 14.
  
IVP에서 나온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본문의 흐름을 따라가며 생각나는 것을 적었습니다.
간단간결그냥 생각나는 대로성경은 아가페 쉬운성경’ 사용.
  
사도행전 16장 6절 ~ 10
  
6. 그들이 아시아 지방에서 복음 전하는 것을 성령께서 막으셨기 때문에 바울과 그 일행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두루 다녔습니다.
  
7. 그들은 무시아 지방 가까이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려 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8.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서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9. 바울은 밤에 어떤 마케도니아 사람이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라고 애원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본 뒤에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고 확신하고는 즉시 마케도니아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바울 일행은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기 때문에 계속해서 서쪽방향으로 가다가 바울이 환상을 본 뒤 마케도니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에게 해를 넘을 준비를 시작합니다.
  
누가가 기록한 아시아는 오늘 날 터키의 서쪽 부분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어떤 방식으로 바울 일행이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았는지 모릅니다그저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성령께서 이끌어 가는 데로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바울 일행은 바울이 환상을 본 뒤에게 해를 넘고자 준비를 시작합니다.
  
바울 일행이 처음에 가고자 했던 길을 우리는 모릅니다단지우리가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은처음 바울이 바나바에게 했던 말을 떠 올려볼 때 어쩌면 바울 일행은 에게 해를 넘기보다는 바나바와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하지 않았을까상상은 해 볼 수는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36절 며칠 뒤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한 바 있는 여러 도시로 다시 가서 신자들을 방문하고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봅시다.”
  
바울이 믿을 수 있는 동역자아들과 같았던 디모데를 만난 곳도 사람들이 바울에게 돌을 던진 뒤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끌어냈던 루스드라였습니다.(사도행전 14장 19, 16장 1)
  
하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바울 일행은 예상하지 못했던 마케도니아로 가고자 준비를 시작했습니다누가는 그들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IVP에서 출판한 행동하는 기도’(세인 크레이본과 조너선 윌슨하트그로브가 쓰고 이지혜가 옮김)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마무리합니다.
  
가끔 뒤로 물러서서 멀리 내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노력으로 세워지지 않는 나라일 뿐 아니라
우리 눈길로 가서 닿을 수도 없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다만하나님이 하시는 거대한 사업의
지극히 작은 부분을 평생토록 감당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 어느 것 하나 완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손길이 미칠 수 없는 저 너머에 있습니다.
  
어떤 선언문도 말해야 할 내용을 모두 밝히지 못하고
어떤 기도문도 우리의 소원을 모두 담지 못합니다.
  
어떤 고백문도 온전한 전체를 싣지 못하고
어떤 방문도 돌봐야 할 사람을 모두 돌보지 못합니다.
  
어떤 계획도 교회의 선교를 완수 못하고
어떤 목표도 모든 것에 닿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어느 날 싹틀 씨를 우리는 심습니다.
그것들이 가져다줄 미래의 약속을 생각하며,
우리는 뿌려진 씨들 위에 물을 줍니다.
  
그 위에 벽돌이 쌓이고 기둥이 세워질
내일의 건물에 기초를 놓고,
우리 힘으로는 해낼 수 없는 효과를 내다보며
반죽에 누룩을 섞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지 않습니다.
다만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할 때
거기서 해방감을 느낄 따름입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기꺼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합니다.
  
턱없이 모자라지만이것이 시작이요
하나님 은총이 세상에 임하게 하는 걸음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끝내 결과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건축가와 목수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건축가가 아니라 목수들입니다.
메시아가 아니라 사제들일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닌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자들입니다.
  
오스카 로메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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