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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22
    변명
    깡통

변명

지난 2010년 12월 ‘민들레’ 읽기 남성모임을 한다고 여기 저기 소문을 냈다. 모임에 관한 이야기도 ‘민들레’ 72호에 소개되기도 했다. 덕분에 주변에서 ‘민들레’에 실린 글을 읽고서는 ‘모임’은 잘 하고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2010년 12월 22일(수) ‘반편견 입양교육 강사 평가회’를 다녀온 뒤 ‘모임’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평가회는 ‘반편견 입양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강사들이 2011년엔 입양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 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나 역시 지난 2010년 몇 개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반편견 입양교육’을 했기에 참석했다.


평가회에서 파워포인트(p. p. t) 자료를 다듬어 보자는 이야기를 하던 중 스티브 잡스(Steve Paul Jobs) 이야기가 나왔다. 한 강사가 어느 동영상에 스티브 잡스가 강의 중 자신이 입양된 사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한 내용이 있는데 그것을 사용하면 좋겠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스티브 잡스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했다.


잠시 쉬는 동안 한국입양홍보회 ‘한연희’ 회장님이 하경이 동생에 대해 물었다. 그래서 동생은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부부에게는 하경이라는 딸이 있는데 하경이가 세상에 나온 지 45일 되던 날 우리는 가족으로 만났다. 자라가는 하경이를 보면서 하경이에게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들 때문에 하경이 동생에 대한 생각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평가회가 끝난 뒤 집에 돌아와 전 날 집에 도착한 ‘민들레’ 72호를 읽다가 스티브 잡스가 강연한 내용이 실린 것을 보고 놀랐다. 글을 읽고, 유튜브에 있던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면서 ‘민들레’ 읽기 모임과 하경이 동생에 대해 생각을 했다.


처음 민들레 읽기를 시작하려 할 때 아내가 하경이를 돌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산어린이학교’ 생활교사인 아내는 화요일 저녁 하경이와 함께 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민들레 읽기 모임을 하는 동안 하경이는 친구 집으로 마실을 가야 했고, 내가 주선한 또 다른 모임에도 하경이는 마실을 가던지 아빠와 함께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내와 나는 6살인 하경이가 일주일에 두 번씩 저녁 늦은 시간까지 마실을 가야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스티브 잡스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서 아닌 것이면 결정을 바꾼다는 말을 생각했다. 하경이 동생에 대한 가족회의를 했다. 나와 아내와 하경이가 가족회의를 수차례하고서 또 다른 한명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로 경정했다. 한 아이가 우리 가족이 되었을 때 ‘민들레’ 읽기 남성모임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민들레’ 읽기 모임은 정리하는 것으로 결론 냈다.


하경이는 45일 될 때 입양했지만 동생은 3살 정도의 아이를 생각 중이다. 1월과 2월 온 가족이 연장아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했다. 3월부터 하경이 동생을 입양하는 것을 알아볼 생각이다. 하경이 동생이 집에 오게 되면 1년에서 2년 정도 마음 고생할 생각을 하고 있다. 하경이는 이런 말을 했다. “동생이 생기면 동생만 좋아할 거야?” 하경이는 동생을 품고 싶은 마음과 동생이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


하경이 마음에 두 마음이 있는 것처럼 나도 입양한 아이가 잘 생활 할 것이라는 마음과 아이와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운 마음이 있다. 가끔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 아이가 우리 가정에 들어오는 순간 하경이가 아파할 것이다. 아내와 나도 아플 것이고, 입양될 아이도 아플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픔의 끝자락엔 가족이라는 이름이 남을 것이다. 그래서 두렵지만 설렌다.


하경이 동생을 입양하기로 한 다음부터 하경이가 다니고 있는 ‘궁더쿵’ 어린이집 엄마와 아빠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 하경이 동생 입양할 거야!” 하경이 동생이 ‘궁더쿵’에서 다른 아이들을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그 때 마다 입양된 아이의 돌발적인 행동에 다른 부모들이 당황하지 않고 하경이 동생으로서 그리고 깡통(이광흠)과 징검다리(이진희)의 딸로 봐주기를 바라며 말을 꺼내고 있다.


가족이라는 평범한 단어가 어떤 이들에게는 이해하기 힘겨운 것일 수도 있다. 가끔 하경이가 자신은 엄마와 아빠가 둘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하경이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하기도 한다. 누군가와 가족이 된다는 것이 반드시 피를 통해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린 하경이는 알고 있다.


가끔 “엄마가 뱃속에서 날 낳았지”라고 말한다. ‘궁더쿵’에서 생일잔치를 하는 날 생일을 맞은 아이의 부모가 태몽이야기를 편지로 써 주면 교사들이 그것을 읽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 준다. 가끔 그런 날엔 아내의 뱃속에서 자신이 나왔다는 말을 한다. 다른 아이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다. 하경이가 다른 입양 아동들처럼 자신을 받아들이며 자라갔으면 좋겠다.


물보다 피가 진하다는 말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피보다 진한 것은 정이 아닐까? 하경이가 잘 자라주면 좋겠다. 그리고 하경이 동생도 잘 자랐으면 좋겠다. 아내도 나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모두 잘 살았으면 좋겠다. 서로 달라도, 그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변명이 길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야기는 매 주 화요일에 하던 ‘민들레’ 읽기 남성 모임은 저 멀리 사라졌다는 죄송한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변죽만 올리다 사라진 ‘민들레’ 읽기 남성 모임을 누군가 시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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