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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실용파-재야파 ‘내분’ 본격화되나

열린우리당 실용파-재야파 ‘내분’ 본격화되나

국보법 처리 등 놓고 격한 대립…전대·대선 대비한 주도권 다툼 시각



국가보안법 폐지 등 열린우리당의 개혁입법 처리 논의가 당내 당권경쟁과 맞물리면서, 4·15 총선 직후 불거졌던 노선논쟁이 재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실용주의를 사이에 둔 당 정체성 문제, 지지층 확대 혹은 이탈 가능성 여부에 대한 논쟁이란 점에선 같으나, 정동영 당시 당의장이 정치적 필요성 차원에서 제기했던 지난 4월과 달리, 현 논쟁은 어느덧 대세가 돼 버린 실용주의적 시각에 반대하며 재야파가 불을 지피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지난 26일 재야파 모임인 국민정치연구회 이사장 장영달 의원<사진>은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현재 우리당이 겪고 있는 위기는 정체성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무원칙한 실용주의 노선’을 당 정체성 훼손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국보법 폐지와 관련한 당내 혼란 등 당 지도부의 전략적 오류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28일 당 상임중앙위원회와 전략기획자문회의 연석회의에서 불거진 국보법 ‘분리처리론’도 전면 비판했다. 국보법 폐지를 유보하는 대신 사립학교법, 언론개혁법, 과거사기본법 연내 표결처리를 한나라당에 제안하자는 분리처리론에 대해, 정 의원은 “한나라당과 협상도 안해 본 상태에서 양보할 것부터 생각해선 안 된다”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임채정 기획자문위원장도 “법안 통과가 어렵다 하더라도 미리 포기할 수 없다”며 정공법에 따를 것을 강조했다.
 
재야파가 국보법을 빌미로 강한 목소리를 내는 데는 내년 전당대회를 염두에 둔 포석이란 분석이 중론이다. 국보법 폐지는 여당의 개혁의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이자, 지지층을 묶어 두기 위한 ‘마지노선’이다. 여기서의 후퇴는 총체적 개혁의 후퇴로 비춰져 내년 재보선 후 원내 과반붕괴를 비롯한 걷잡을 수 없는 지지층 이탈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재야파 의원들의 발언은 이런 위기감을 염두에 둔 것으로, 차기 당권 및 대권경쟁을 고려한 복잡한 계산을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보법과 관련해 당 지도부는 여전히 비지지층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이다. 하락일변도인 당 지지율을 감안할 때 올해가 원내 과반의석으로 국보법 폐지를 관철시킬 마지막 해일 수 있다는 점을 당 지도부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단독처리를 강행하지 않는 이유는 여론악화를 감수하고 ‘올인’할 만큼 국보법 폐지가 제1목표가 아닌데다, 당내 스펙트럼 또한 통일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개모 회장인 유재건 의원이 “국회의 파트너가 완강히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보법 처리는 불가능하다”며 “여야가 타협해 공동의 선을 향해 노력해 달라는 국민의 희망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가면 안 된다”고 말하는 등, 당내 반발세력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따라서 폐지방침을 고수하며 개혁지지 세력을 붙들어 두고, 다른 한 편으로는 최대한 여론을 수렴하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반대세력까지 어느 정도 품에 안을 수 있는 ‘양수겸장’을 택하는 쪽이 훨씬 안정적이다. 
 
문제는 ‘후퇴’ 및 ‘연기’를 열린우리당이 나서서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에 개혁을 기대했던 지지자들의 이탈을 각오해야 하고, 폐지를 주장하는 당내 의원들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당장 28일 ‘분리처리론’을 꺼냈던 천정배 원내대표가 거센 반발에 부딪혀 “한나라당이 끝끝내 상정조차 거부한다면 국회법에 규정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강경입장으로 선회한 것만 봐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열린우리당 국보법 폐지 대안 중 하나였던 ‘대체입법안’ 수용의사를 한나라당이 먼저 밝혀 주는 게 우리당 입장으로서도 가장 편하다. 안개모의 한 의원이 “대체입법 카드를 한나라당이 먼저 내놓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나라당 개혁파들도 여당이 대체입법으로 선회하면 도와줄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는 등 대체입법은 양당이 최대한 ‘교감 가능’한 교집합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 국보법과 관련해 ‘분리처리론’까지 등장한 열린우리당 실용주의 노선의 요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양당 어느 쪽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정기국회 막바지 초읽기에 몰리고 있다. 
 
재야파가 우려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즉 지금처럼 비지지층에 연연해 개혁이 지리멸렬 해질수록, 실용주의 노선을 주도해 온 당권파 및 보수파와 대립각을 유지해온 재야파의 당내 입지는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용주의 노선이 당의 ‘개혁이미지 몰락’으로까지 이어지고 이를 용인하는 새로운 지지층이 유입될 경우, 다음 대선을 목표로 당의 전면에 부상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도 힘들다. 
 
국보법과 관련한 재야파의 최근 발언이나, 장영달 의원이 “차기 지도부는 당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인사가 돼야 한다”며 내년 전대 출마의사를 내비친 것도 실용주의 노선에 전면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재야파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근태 복지부장관의 연기금 발언도 이런 정치적 배경 하에 이루어졌다는 시각이다. 재야파 및 당내 개혁그룹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김 장관으로선 ‘우향우’와 ‘동진정책’으로 나타나는 열린우리당의 비지지층 포용정책은 그를 점점 당 주변부로 밀어붙일 것이란 점에서, 그만큼 치명적이다.  
 
이미 열린우리당 각 계파는 내년 당권을 겨냥한 나름의 행보에 돌입했고, 세 불리기에 한창이다. 가열되고 있는 계파 간 경쟁심리를 우려, 지난 28일 당 지도부가 “지금은 당력을 모아야 할 때”라며 전당대회 출마 예상후보들에게 자제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장관의 발언은 ‘정책적 목적’ 때문이라고 하나, 분명 ‘정치적 효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김근태의 ‘존재’가 분명히 드러나면서, 내년 전대를 준비하는 재야파 중심의 당내 이견그룹도 탄력을 받게 됐다.    
 
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김 장관에 대한 편치 않은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낸 것도 김 장관 발언에 대한 노여움 때문만은 아니란 해석이 가능하다. 김 장관의 ‘의중’에 대한 일침으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노심의 향방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총선 직후부터 끊임없이 계속되는 개혁-실용주의 노선 논쟁과, 이와 결부된 각 계파간의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금, 정기국회는 불과 열흘 남짓만을 남겨 두고 있다. 짧은 의사일정이 열린우리당의 복잡한 당내 지형을 통일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인지, 갈등을 증폭시키는 휘발유가 될 것인지도 곧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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