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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 후 무엇이 달라졌을까

-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 이후 -


어차피 호들갑 떨 일은 아니라고 하는게 피플타임즈 필진들이 공유하고 있던 관점이었다.
그래도 '한석도 없던 시절'과 '10석이나 들어가 있는 시절'이 하나도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까?

심심치않게 언론에도 나던 시절, 그리고 한나라당과 여론수위 2당을 놓고 자웅을 겨루던 '좋은 시절'도 있었다. 국회의원 임금을 노동자 평균임금만으로 정하고 나머지 세비 일체를 특별당비로 내겠다는 감동적인 정책 실현도 있었고, 보좌관들을 정책기능 뿐 아니라 투쟁의 현장에 파견하는 사령관으로 사용하자는 당내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민주노동당의 모습은 과연 "세상을 바꾸자"며 우렁차게 외치고 총선기간 거리를 누비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가?



<극명한 사례>

울산의 경우를 한번 보자. 울산 동구와 북구는 민주노동당이 95년 이후 구청장을 연속 집권한 곳이다.

게다가 울산 북구의 경우, 조승수 구청장 시절 북구의회 2기부터는 아예 의회 내의 과반수를 점함으로써 북구의회 의장까지 민주노동당이 장악을 했다. 현재 이상범 구청장 체제 하에서도 북구의회는 여전히 민주노동당이 장악한 상태이다. 여기에 2004년에는 최초로 국회의원까지 민주노동당이 먹었다. 울산 동구의 경우에도, 동구 출신의 이영순 씨가 비례대표 후보로 원내에 진출했다. 이래저래, 울산 동구와 북구에서 국회의원 한명씩은 배출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과연 울산은 2004년 전과 2004년 후가 완연히 다른가? 그 답은 간단한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이곳의 비정규직노조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 과거에 비해 달라졌는가만을 비교하면 쉽다.

울산 동구 : 박일수 열사투쟁할 때야 아직 당선 전이니까 뭐라 말할 수 없다 하여도, 최근까지 이어지는 연속적인 현대중공업 산재사망사고, 그리고 업체 폐업이라는 파렴치하고도 비인간적 탄압이 현중사내하청노조에 여젼히 쏟아지고 있다. 현대미포조선 용인기업은 불법파견 판정이 났는데도 사측이 여전히 아무련 조치도 하지 않고 있고 노동부도 수수방관이다.

울산 북구 : 현자비정규직 안기호 위원장이 올해에만 삭발 2차례, 단식 2번째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이번 단식으로 몸에 이상이라도 생겨 병원에 실려가면, 그 즉시 체포영장이 집행되어 구속될 처지이다.

불법파견 집단진정, 2,3차 비정규직 파업투쟁, 정리해고 분쇄투쟁 등 수많은 사안들을 사회적 쟁점으로 만들기 위해 힘이 약한 비정규직노조들이 기를 쓰고 활동을 벌이는데, 민주노동당 중앙당이나 울산시지부, 북구지구당, 동구지구당 등은 그 흔한 '성명서' 쪼가리 한번 낸 적이 없다.

국회의원이 둘씩이나 생긴 울산, 구청장도 연속 집권에 성공한 울산, 심지어 의회까지 장악한 울산 북구, 과연 '낮은 곳의 민중들'에게 무엇이 달라졌을까?


<대중투쟁(운동)과의 결합도>


민주노총과 정례협의를 대중운동과의 결합도의 척도로 사용할 정도의 문외한이 아니라면, 그리고 당의 국회의원들이 집회장에 앉아있는 빈도수를 대중투쟁과의 결합도의 척도로 사용할 정도의 사기꾼이 아니라면,

대중운동과의 결합도는 인적, 물적, 화학적 결합과 융합의 정도를 척도로 삼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과연 보좌관들은 투쟁의 현장에 단 한명이라도 파견되어 있는가? 혹여 투쟁사업장의 문제를 국정감사의 용도로만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애초 보좌관 풀제를 하겠다는 것이야 뭐 당내 역학관계에 의해 자연스레 붕괴될 제안이었고, 그것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민주노동당을 비난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의원은 임금 다줘가며 6명의 보좌관을 쓰지만, 민주노동당은 임금을 반으로 쪼개어 12명의 보좌관을 쓴다고 했으면, 그 많은 인력을 대중운동과 대중투쟁에 나누겠다는 발상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당내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민주노동당의 결정적인 뻘타가 <정책연구원>으로 나머지 인력을 흡수하겠다는 발상이다. 40여명이나 고용하여 정책을 연구하겠다는 발상이 가능했다면, 역으로 40여명의 야전사령관을 고용하여 대중운동과 대중투쟁에 파견하겠다는 발상도 가능했으리라.


<감동의 정치는 '준비'만 되고 있는가?>


총선 직전 장석준 동지의 공격적 제안이 있었다. "과연 감동의 정치는 준비되고 있는가?" 그에 따라 국회의원 임금은 노동자 평균임금 수준으로 제한되는 등의 조치들이 당내에서 관철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감동이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떠한가? '대안'과 '정책' 논의는 무성했지만, 정작 그곳에 '대중'은 빠져있다는 것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나의 솔직한 진단이다.

신자유주의에 고통받고 신음하는 대중들, 그들의 투쟁에서 머리띠를 매고 최전선에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망상이려나? 하다못해 노무현이만 하더라도 88년, 89년에 그런 행동들을 하지 않았느냐 말이다.

노무현의 그런 행동은, 내가 무슨 괴짜짓, 꼴통짓을 하더라도 나의 행동은 고통받고 억압받아온 대중들의 관점에서 보면 전적으로 정당하다는 자기확신 때문에 가능했다. 지역구 구민들의 관점이 아니라, 군사독재에 찌들대로 찌들어 억눌려온 전체 대중들의 관점에서 말이다. 그런 괴짜들, 그런 꼴통들이 되기엔 민주노동당이 너무 체제내화된 것인가?


* 불평과 불만만 늘어놓은 글이 되어버렸군요. 민주노동당을 계급적이고 변혁적인 정당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동지들의 반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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