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주 일찍 썼어야 했거늘,.
시간이 이리 빨리 지나가버렸다.
그저께 배너라도 만들어서 뿌려야하지 않을까 해서 만들다 말고. 이리저리 회의에 다니다보니.
그마저도 펼쳐 놓은채로 행사가 그냥 시작되게 되었네..

내일 참세상 주최로 국제포럼 : 변혁의 세계화와 대안미디어가 열린다.

Znet 이며 IMC ,텔레수르, 리벨리온, 인미디어 등의 해외 미디어 운동 단체의 활동가들이 많이 참여하는 포럼이니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장소:  국가인권위 배움터
일시 : 3/31- 4/1

내일 이나 모레 아쉽게도 참여못하는 사람들은
추후 발제문들을
포럼 블로그에 올릴테니 참고하시압!

일정 및 프로그램 (클릭)

해외참가단체 소개 (원문클릭)


□ 마이클 앨버트, Znet 편집장 (www.zmag.org)

Znet 은 영어를 기반으로 한 가장 대표적인 진보언론이다. 미국내외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매주 30만명의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또한 Zmagazine 이라는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다. 마이클 앨버트 씨는 Znet의 공동 설립자이자 현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 번역 출판된 『ParEcon: Life after Capitalism (파레콘: 자본주의 이후, 인류의 삶)』의 저자이며, 참여경제학 (Participatory Economics; ParEcon) 개념을 발전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 IndyMedia Center(www.indymedia.org, IMC)

1999 년 시애틀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 반대투쟁 과정에서 형성된 독립미디어운동진영이 제작한 홈페이지에서부터 출발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반대 및 전쟁반대 국제 공동 행동의 발전과 맞물려서 현재 60여 개국 130개 이상으로 확산된 IMC는, 컨텐츠의 제작과 배급과 공유를 초점에 맞춘 미디어 운동 국제 네트워크의 연대틀을 형성해 가고 있다.

 




□ 카를로스 마르티네스, Rebelion 편집장
(www.rebelion.org)


□ 오이완, Inmedia 공동편집자 (www.inmediahk.net, 홍콩)

□ teleSUR
(www.telesurtv.net, 중남미 위성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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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31 02:06 2006/03/31 02:06

미디어 문화 행동에서 제작한 뮤직 비디오가 나왔다.
지난 홍콩 투쟁의 모습을 꽃다지 노래 " 반격"을 입혀서 만들었는데.
한눈에 그때 그 투쟁의 즐거움, 치열함을 보여준다.
나도 편집 배워야지! 하고 싶은것만 많아가지고..


<미디어문화행동 홈페이지 가기 >



다시 시위 모습을 보니까 생각이난건데..

프랑스 시위보도를 보면 왜 그들이 싸우는지가 나오는데, 우리가 시위하면 경제적 손실이어쩌고 시민의 발이 어쩌고 집단이기주의가 어쩌고  엄정대처가 어쩌고 한다.
참내.. 비정규직법안 통과된게 CPE보다 더 무섭고, FTA가 그것보다 더 끔찍한걸
못느끼고 있다니... 이상하다. 한참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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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30 00:56 2006/03/30 00:56

석방소식

from 너에게독백 2006/03/29 20:25
박래군, 조백기 활동가 석방 소식을 봤어요.
요즘은 왜이리 소식이 더딘지. 블로그 없으면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겠어요,.
블로그에 들어왔다 미류가 올린 소식 보고 알았어요.

축하하러 가고 싶지만 ^^ 
9시에 딱 회의가!  (뭐 사실 난 잘 모르는 사이?이기도 하고.)

아무튼 좋은 소식이라서 제 블로그에도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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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9 20:25 2006/03/29 20:25
한국 사회포럼에서 진보넷이 발제하기로한 "웹2.0 ? 정보운동 2.0! " 발제문의 일부분입니다.
이전에 썼던 글들을 줄이고 덧붙이고해서 정리한글입니다, 괴상한 단어들이 많이 쓰였는데, 고치기 귀찮아서 내버려 두었습니다. -_-.;; 길어서 누가 읽을런지. 게다가 2004년도에 쓴글의 재탕이라 상당히 괴롭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를동안 대체 뭘한건지.

이것보다 관련글들을 읽는게 도움이 되실듯.
관련글 목록:
웹2.0? 정보운동2.0!_지음
사이버 세상의 주민, 블로그 _ 지음
정보운동2.0을 향하여_지음
블로그들의 네트워크, 블로그스피어_지음
블로그실험제안 동기서_달군
(블로그)아트와 진보(블로그)_달군
삶의 미학으로서 운동_너부리
2.0_지각생
Jinbo Blogosphere 체험기_re


섬 벗어나기 – 블로그


블로그 문화의 등장은 하나의 분기점이다. 블로그는 네트를 떠돌던 개인들을 각자의 맥락안에서 실체화하는것을 돕는다. 블로그 등장 이전에 홈페이지를 갖기 위해서는 (기존 프로그래밍 언어보다는 훨씬 쉽지만) 기술적 지식을 갖고 제작에 노력을 투자해야 했지만, 블로그는 쉽게 누구나 자기 홈페이지를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기능적으로도 기존의 정적인 웹페이지에 비해 개방적이고 연결성이 강화되어,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고 외부와 링크를 갖지 못해 네트안에 고립된 섬들로 존재하기 일수 였던 개인들이 다른 개인들과 쉽게 링크될 수 있게 되었다.이제 블로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을정도로 대중화 되었으며, 하나의 문화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는 웹안에서 사회운동이 고립된 섬이 되있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처음에 가졌던 희망들은 어디로갔나? 반성과 함께 우리는 다시 한번 질문해야한다. 어떻게 다시 대중 속으로 침투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담론들이 힘을 얻고, 효과를 발휘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대안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고 그것이 어떻게 제 사회에 파열음을 내게 할 것인가. 물론 이에 대해서는 깊은 논의와 다양한 방향의 실천, 실험들이 요구될 것이다.

블로그으로 산개

기존의 인터넷 문화는 게시판-포럼 중심 문화였다. 일정의 공동체를 형성한 집단이 한 곳에 모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우리 인터넷 문화의 중심이고 힘이었다. 물론 운동사회 역시 다르지 않다. 오히려 CUG(closed user group) 형태의 게시판, 커뮤니티가 주요한 소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국가권력의 감시와 통제하 상황에서 조직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데서 오는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소통 구조는 현재적으로 유효한 맥락이 분명히 존재하나, 단지 그것으로만 국한되었기 때문에 그룹외부와의 소통의 고리들을 잃거나 얻지 못하고 고립되었다. 운동 사회는 안으로만 말린 하나의 섬이 되어 버린 것이다. 또한 일반적인 공개 게시판-포럼이라고 할지라도, 그 게시판 하나의 노드에 접근하는 링크들은 일정정도로 국한되게 되어있다. 그리고 참여에 있어서도 몇몇 적극적이고 논의를 주도하는 이용자 외에는 단지 관망하며 참여하지 않고 스스로를 타자화 하거나 보헤미안으로 머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블로그는 개개인들이 하나의 노드가 되어 랜덤하게 대중들과 만나는 기회를 갖고, 대화형 소통을 하게 하는 것을 가능케했다. 운동사회의 담론과 대중과의 접점이 넓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단순히 수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이해가 쉽게 간다. 단체 홈페이지 2-3개가 대중과 소통하고 전이시킬수 있는 접면보다 개개인 블로거 100명의 접면이 훨씬 넓다. 뭉쳐저 있는 한 점에서 한 방향으로 나오는 목소리가 아니라 산개한 점들이 각각의 색깔과 방향성을 담보하면서 상호적으로 소통하는 것. 그 기제로서 우리는 블로그를 제안한다. (저항자)개인들을 섬 안에서 구출하고 자기만의 방을 내어주는 작업, 그것이 진보 블로그라는 프로젝트의 발단이다.

현실 사회의 소통에 있어서 어떤 권력이 한곳에 집중, 독점된 상태에서 대중들은 '수용'의 역할 밖에 할 수 없었던 반면,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정보 혹은 주장을 공적인 공간에 비교적 쉽게 풀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대중들이 독점적 지위에 있던 기존 주류 매체들을 텍스트화해서 분석과 비판을 통해 감시 견제 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블로그는 어떤 그룹에게만 공개된 커뮤니티라던가, 어떤 주제에 국한된 게시판 등과 조금 달리,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오로지 개인적인 맥락하에서 정보, 입장을 계열화하는 매체라는 점에서 좀더 참여적이고 적극적인 의미의 주체로서의 개인들을 인터넷 공간에서 만나게 해준다. 이는 기존 운동사회의 경직성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개인들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실제로, 블로그에서 만나는 개개인들은 단체로 만나는 그들과 전혀 다르며, 굉장히 다양하다.


개인들은 그 자체로 노드이기도 하고 노드이지 못하기도 하다. 노드란 매듭 혹은 얽힘, 혹은 생성되는 곳, 마주치는 점, 접속점 혹은 분기점을 의미한다. 생성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개개의 개인(블로거)들은 노드이지만, 다른 노드와 교차하고 만나게 하는 링크를 가지지 못한다면 노드가 아니다. 네트워크는 노드들과 그것들을 가로지르는 링크들로 구성된다.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어떤 노드들도 서로 링크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가능성만으로 그치거나 그것을 자발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힘든 일이다.


블로그의 트랙백이라는 기능은 이것을 상대적으로 아주 용이하게 한다. 각각의 글(포스트)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여 다른 글로 링크를 맺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포스트 스스로가 마주침을 위해 찾아간다. 정보와 담론들이 수평적으로 서로 링크를 주고받으며 얽힌다.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넓히는 수준이 아니라 각각의 생각들과 활동들이 충돌하고 만나고 계기들을 만들게 된다. 트랙백은 표준적 기술지원이기 때문에 진보 블로그에서 네이버로 네이버에서 엠파스로..블로그의 허브들이 어디이건 간에 어떤 사회적 집단에 속한 개인이건 간에 다른 집단의 개인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


블로그는 논쟁보다는 공감으로서의 정치를 용이하게한다. 블로그는 분산적인 성격을 갖기때문에 한 주제에 대한 집중적인 논쟁보다는 공감하고 전이시키는 것에 더 가깝다. 분산적일 뿐아니라 한 개인의 사적이고 경험적인 일상의 기록이 주가 되기때문에 그것들은 감정이입이 쉽고, 또 다른 개인에게 연상작용 혹은 전염을 시킨다. 트랙백으로 이어지는 글들을 보면 논쟁적인 것도 많지만, 비슷한 이야기들이 주되고, 그런 연쇄작용이 오히려 생산적으로 보일때가 더많다. 배타적으로 경쟁해서 도태시키기(설득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보다는 공감을 이끌어내고, 전염시켜버린다.



광장과 연대체로서의 블로그를 고민하자


대중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비교적 수평적으로 내지르는 것이 분산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비문이라서 고쳤음. 그래도 뜻을 알수 없는 이상한 문장이군) 전복적 힘을 획득하려면 그 목소리들은 다양한 지점에서 교차하고 모였다 분산했다를 반복해야 한다. 이는 커뮤니티적 소통 방식에 가까울 것이다. 즉 블로그의 분산적 성격이 개개인의 '발화'를 가능케 한다면 , 그것이 일정한 정치적 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혹은 사회적 의미성을 가지는 사건 혹은 힘들이 되기 위해서는 커뮤니티적 소통 역시 필요하다.


때문에 블로그-개인화는 다시 광장-커뮤니티를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이 떠들고 오가고 만나고 충돌하거나 때론 싸우고 하는 시끌시끌한 광장. 말들과 생각들, 그리고 행동들이 교차하는 곳.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의 에너지가 되어 힘이 되어 그 영역을 온-오프로 확장해 나가는 곳. 블로거가 각각의 노드라면, 진보 블로그는 그 집합체, 허브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진보 블로그는 하나의 정치적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단일하지는 않지만 정치적 입장이 상대적으로 비슷한 집단의 커뮤니티. 어떤 가입형 블로그도, 어떤 블로그 이용자 모임 혹은 허브사이트들도 '정치적 입장'에 의해 구성되어 있지 않다. 이런 점은 진보 블로그만의 독특한 강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이 때문에 또 다시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일 수도 있을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실험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문제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광장에는 중심이나 주인이 없다. 운영에 있어서 블로거와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활동가 사이에 위계나 기술 독점현상이 있어서는 안된다. 때문에 블로거 각자가 운영에 언제든지 개입하고 그것에 대한 공동의 논의를 통한 수렴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 자체가 일종의 실험이 될 것이며, 기존의 공간들과 다른 질서를 갖는 공간을 마련함으로서 비 동질적인 부분들을 확장해 나갈 것이다. 우리가 인터넷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통제에 맞서 반대 전선을 긋고 싸워왔다면 동시에 이제는 인터넷 공간의 가능성을 발현시키기 위한 실험들을 시작해야 한다. 다른 방식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검증해내고 확장해 내야 한다.

진보블로그의 메인페이지가 일정정도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역으로는 외부와의 단절된 커뮤니티가 머무를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때문에 진보블로그 메인은 진보넷에 개설된 블로그들만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외부로 열려진 어떤 블로그 서비스를 쓰던 간에 ‘정치적 경향’을 매개로한 메타 블로그가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준비하고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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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4 03:19 2006/03/24 03:19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
10번ㅤㅉㅒㅤ 작품

MOUSE without tail

온라인 상영이 시작되었습니다.

22일 부터 26일까지

놓치지 마세요.확실히 후회합니다.
줄거리는 모르고 보는게 확실히 임팩트가 강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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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3 20:07 2006/03/23 20:07
관련글 :
평택미군기지확장 및 강제토지수용 즉각 중단하라!
아름다운 무법천지
[펌]석방을 위해 힘을 모아주십시오!
대추리 투쟁 어떻게 함께할까
이땅을 빼앗기는 것은 곧 죽음
관련참세상 기사 모음

블로거들이 쓴 탄원서 들
탄원서를 씁시다_알엠님
탄원서_나루님

인권운동사랑방에 박래군, 조백기 두 활동가의 석방을 위한 긴급 행동 페이지가 만들어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가 할 수있는 일들과 여러 성명서가 올라와있네요.
지음이 블로그에 올린것 처럼, 탄원서를 써서 보내는것도 좋은 방법일것 같아요. 블로그에도 써서 널리 알리고 말이죠.

우리가 두 활동가의 석방을 위해 할 수 있는 행동 목록
(원문은 지음블로그인권운동사랑방참고)

0. 탄원서쓰기
수요일까지 탄원서를 써서 보냅시다.
특별한 포맷은 없고, 글 마지막에 이름과 직위, 주소를 적고 서명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단체의 경우는 단체명, 대표자명, 주소를 쓰고 직인을 찍으면 되구요.
23일 목요일까지 myoungrrang골뱅이한메일쩜넷(김덕진) 이나 alterite골뱅이진보쩜넷(손상렬)으로 보내면 됩니다. FAX 는 02)775-6267로 보내면 됩니다.
탄원서 예시보기


1. 항의메일쓰기 / 블로그에 관련글 쓰기 / 성명서나 관련글 퍼나르기
재판부와 청와대에 편지 보내기
혹은 청와대 홈페이지등에 항의 글올리기
혹은 친구들에게 연대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내기

2.기자회견에 참여하기
내일(22일) 오전 9시 광범위한 사회단체들이 주최하는 기자회견이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이 많이 참석하셔서 정부의 반인권적 행위를 강하게 규탄합시다.

3. 항의농성에 참여하기
아직 자세한 것은 모르겠는데 일단 인권운동사랑방의 글에는 아래와 같이 되어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면 업데이트 할께요.
기자회견이 끝나고 곧바로 광화문 열린공원으로 이동해 농성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정부의 반인권적인 행태에 대한 강한 항의를 포함해 평택미군기지확장 저지 운동이 평화적 생존권을 지키는 인권행동임을 시민들에게 알리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세요.

4. 구속된 활동가들에게 편지쓰기
두 활동가들에게 격려와 지지의 편지를 보내주시고 그 내용을 인권활동가 박래군 조백기 석방을 위한 긴급행동의 홈페이지(hrnet.or.kr/sukbang, 준비중) 남겨주세요.

5. 석방기금모으기
국민은행 293201-04-044773 예금주: 변연식(구속활동가 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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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1 21:25 2006/03/21 21:25
*이 영상 번역해줄 분을 구했다는 군요. 신경써주신 분들 감사해요.

프랑스에서 최초고용계약법(CPE)이라는 황당한 법안 때문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데요.
참세상 인터네셔널 미디어에 프랑스 시위 영상(아래 영상)이 올라와 있는데 , 불어를 할줄아는 사람이 없어서  자막을 못입혀서 올렸나봐요. 불어 지원해주실 수 있는 분 연락주세요.
메일 (newscham@jinbo.net)이나 덧글로 남겨주세요 :)

영상이 있는 참세상 기사 원문 보기




아 그리고 속보가 올라왔는데, 새만금에서 해상시위하던 어민 두분이 연행되었다고 하네요.
평택이고 새만금이고.. 정말이지. 한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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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1 16:57 2006/03/21 16:57
지음이 쓴 성명서. 나는 읽고 동의하는 일만 했지만. 너무 멋진 성명서다~

인권을 석방하고, 국가를 구속하라!
평화와 인권을 위한 평택 투쟁은 정당하다. 박래군, 조백기를 석방하라.


경찰이 박래군, 조백기를 강제 연행하며 밝힌 그들의 ‘죄’는 ‘특수공무집행방해’와 ‘국유재산관리법 위반죄’다. 그렇다. 그들은 이 땅의 평화를 위협하고,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 ‘특수’한 ‘공무’원들이 폭력을 ‘집행’하는 것을 맨몸으로 ‘방해’했다. 또한 그들은 황새울 들녘이 버려진 땅을 피와 땀을 흩뿌려가며 옥토로 만들고, 또 그 땅을 일구며 평생을 일궈온 대추리와 도두리 사람들의 삶터인 줄로만 알았지, 그 동안 아무것도 도와 준 적이 없는 국가나 침략을 일삼는 미군의 재산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영장실질심사에서 담당 검사는 "지난 6일과 15일 등의 과정에서 법원의 법집행마저 무력화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들을 구속하지 않으면 무법천지가 될 것"이라며 구속영장 청구 사유를 밝혔다. 그렇다. 지난 6일과 15일, 그들의 아름다운 저항으로 무자비한 폭력을 앞세운 법집행이 무력화되었다. 그리하여 황새울 들녘은 법 없이도 살 선량한 주민들과 법을 넘어선 인권을 지키는 활동가들의 아름다운 ‘무법천지’가 되었다.

확실히 무언가 뒤바뀌었다. 누가 죄를 짓고 있는가?  누가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누구의 땅을 누가 빼앗으려 하고 있는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며 국가인가? 누가 누구를 구속하고 있는가?

그들은 말했다. “국가는 국가라야 국가로 인정받는다”고. “국가의 목적은 인권이며 국가가 그 목적을 등지고 국민을 억압한다면, 그 국가는 뒤집어야 한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원리이자 원칙”이라고. 그들이 있었기에 아직 대추리와 도두리 사람들은 자신의 삶터에서 살고 있다. 그들이 있었기에 이 땅에 아직 평화와 인권이 숨을 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있었기에 국가는 그나마 아직 국가로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그들이 “풀려날 경우, 향후 공권력과 더 큰 충돌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예상은 틀렸다. 정반대가 진실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외롭게 싸워왔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부당한 구속 소식에 수많은 박래군과 조백기가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평화와 인권의 이름으로 공권력과 더 크게 충돌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황새울을 갈아엎어 버려진 땅을 옥토로 바꿔버린 힘으로 스스로 국가이기를 포기한 이 국가를 갈아엎어 버릴지도 모른다.

평택 투쟁은 정당하다. 박래군, 조백기를 석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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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1 14:00 2006/03/21 14:00
대추리 투쟁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
평택―전쟁기지냐 ‘제2의 부안’이냐












농사지면 평화온다

17일 대추리에서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


민중언론참세상 -황새울에 들불을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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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1 01:44 2006/03/21 01:44
17일날 대추리 도서관에서 읽은 녹색평론의 글을 퍼왔다.
인용된 주민의 목소리가 마음을 스르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오래된 글이긴하지만 이제라도 모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기를 바래서 퍼왔다.
조금 길더라도 야구응원할 시간의 50분의1만 투자하면 읽을수 있는 분량의 글이니 모두들 꼭 보시기를.

그리고 대책위 홈페이지에 가면 좀더 많은 목소리들을 들을수 있다. 팽성주민증언이라는 게시판에 주민들의 증언이 모여있다.

- 아래는 글의 일부 -

“이 땅이 전엔 다 바다였어. 근데, 일제 때부터 주민덜이 쩨끔씩 막어서 논을 맹긴 거지. 그때 애기 업구 바다 막다가 애를 떠내려보낸 사람두 있어. 자식새끼를 잃어가맨서 맹긴 땅이니께, 증말루 땅이 목숨 아녀? 포크렌 같은 거나 있었나? 연장두 읎어서, 맨손으루 삽질, 가래질, 끙게질까지…끙게두 소가 아니라 사람이 끌었어. 그리키 힘들게 논을 맹길었어두, 농사가 될 턱이 있나? 논바닥이 원체 짜니께, 몇해 동안은 베두 안 자라더라구. 빗물 받어서 가둬 놨다 빼구, 가둬 놨다 빼구 해서, 염분을 쩨끔씩 없애 가맨서 십년 넘게 고생했지. 그래서 쩨끔씩 소출을 보기 시작해니께, 그동안 뒷짐지구 있던 정부늠덜이 뒤늦게 나타나서 ‘이건 정부 땅이니께, 돈 내구 사라’구 하더라구. 미치구 환장허겄대. 허지만 우쩌겄어. 그리키 맹긴 땅을, 정부한테 10년두 넘게 분할 상환이라는 걸 해서 등기꺼정 냈지. 20년 정도 빽이 안될껴. 고생, 고생, 말두 말어. 이 땅은 우덜이 그리키 피눈물로 옥토루 맹긴 겨. 그런데, 일제 때는 일본늠덜이 비행장을 맹긴다구 해서 강제루 쫓겨났지. 해방되니께, 미군덜이 그 일본군 기지를 뺏어서 지덜이 쓰다가 6·25가 터지니께, 기지를 엄청 크게 넓히더라구. 그때 또 쫓겨났지. 대추리는 아예 통째루 뺏겼어. 그러니께, 지금 대추리는 신대추리구 진짜 구대추리는 저기 미군기지 안에 있어. 보상은 무슨 보상? 땡전 한푼 읎었어. 딸랑 텐트 하나에, 양쌀 두어말, 그런 것두 받은 집 있구, 못 받은 집 있구 그랬지. 이쪽으루 쫓겨나서두 바다는 계속 막구, 소금기 계속 빼내구, 그리키 맹긴 옥토여. 지금은 을마나 좋아. 다른 땅버덤 소출두 훨씬 많구. 가물길 하나, 홍수 피해가 있나? 자식새끼두 길러 보믄, 어렸을 땐 맨날 똥오줌 뒤치다꺼리하구, 병원 데리구 댕기구 고생만 하잖어? 그러다 조금씩 커가맨서 재롱두 피구, 시집 장가 보낼 때쯤은, 효도두 하구 그러는 거 아녀? 땅두 자식이나 매한가지여. 자식으루 치믄 이제 겨우 효도할 만큼 큰 거지. 근데, 정부늠덜이 이 땅을 또 강제루 뺏는대는 거 아녀? 미군덜한테 꽁짜루 준다구? 옛날에 뺏긴 땅두 억울하고 분해서 미치겄는데, 어디 분통 터져 살겄어? 보상? 택두 읎는 소리! 죽으믄 죽었지, 이번엔 한평두 안 뺏겨! 이 땅은 우리 목숨이여!”


 《녹색평론》제81호 2005년 3-4월호    
  
평택―전쟁기지냐 ‘제2의 부안’이냐(원문링크)

   김용한

    

  미군기지를 평택에 총집결시킨다?

  윤광웅 국방장관이 2004년 9월과 2005년 2월 두차례에 걸쳐 평택 시민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미군기지로 필요한 평택 땅을 뺏는 데 협조해 달라”는 내용의 이 편지 앞머리는 “미군기지 이전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삶의 터전을 옮기셔야 하는 이주민들의 아픔과 그동안 기지 주변 주민들께서 감수했던 소음 등의 불편에 대해서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로 시작된다.

  정부와 국회는 용산기지와 미2사단을 비롯한 주한미군기지 대부분을 받는 대가로, 평택에 공장이나 대학을 지을 수 있게 해주고, 이런저런 특혜를 준다며, ‘평택지원특별법’이라는 법도 만들었다.

  그러나 국방장관의 ‘위로편지’나 ‘평택특별법’은 전혀 위로나 희망이 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년 남짓 평택 시민들은 국방부, 청와대 등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싸우는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도 역대 정부와 똑같고, 현 17대 국회의원들도 대부분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미국의 하수인”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확인해왔기 때문이다.

  이미 4년 전부터 용산기지나 미2사단의 평택 이전에 관한 언론 보도를 접한 평택 시민들이 불안한 마음에 대책위를 꾸려 국방부나 청와대에 사실 확인을 요청할 때마다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는 답변만 되돌아왔다. 그러다 한미 두 나라 정부가 미군기지를 평택에 집결시키기로 합의한 사실이 발표된 뒤에는, 대책위의 국방장관 면담 요청을 “평택 여론은 이미 다 수렴했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물론 까닭이 있긴 하다. 평택시장과 국회의원, 시도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관변단체’들이 만든 ‘미군기지이전대책협의회’의 의견을 들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협의회의 지도부는 늘 이렇게 말해왔다. “용산 사령부는 고급 장교부대지, 미군 범죄를 자주 일으키는 부대가 아니다.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한미 두 나라 정부가 합의한 국책 사업이다. 그래서 용산기지는 찬성한다. 다만, 동두천, 의정부 미2사단은 미군 범죄 때문에 이미지도 나쁘고, 한반도 안보에도 안 좋아 반대한다. 2사단이 내려온다면 용산기지까지 같이 반대하겠다.” 하지만, 이들은 실제로 2사단을 포함한 모든 미군기지가 다 평택으로 이전된다는 데도 결코 반대하지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이 이 점을 너무 확실히 알고 있었다. 정부 안에도 평택이 ‘제2의 부안’이 되는 게 아니냐며 우려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거의 모든 정보기관들은 “제2의 부안은 어림도 없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법에 따라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미군기지 편입 예상 지역의 토지 매입은커녕, 공청회나 토지조사, 지장물 조사 같은 것도 주민들의 극렬한 반발로 전혀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2월 16일부터 국방부와 한국감정원, 토지공사, 주택공사 직원들이 진행하려는 ‘지장물 조사’를 온몸으로 저지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는 주민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니! 하다못해 시장 바닥에 가서 물건을 살래두, 주인한테 ‘이거 팔 거냐? 얼마냐?’ 물어보구 사는 거 아닌감? 근데, 주인한테는 물어보지두 않구,  즤덜끼리 합의하구,  즤덜끼리 법 맹길구, 지랄덜 다 해놓구 나서, 주인한테는 꼴찌루 종이쪼가리 한장 딸랑 보내 갖구, 겨우 한다는 소리가 ‘돈은 줄 테니께 늬덜은 어딜 가서 살든 죽든 알아서들 해라!’ 이러구 자빠졌으니, 이게 정부여? 순 날강도늠덜이지! 법? 법 좋아하네! 아, 우리 땅 팔구 사는 법을, 우리 말은 하나두 안 들어보구, 국회의원늠덜 즤덜끼리 맹긴 게, 그게 법이여? 동네에 조사할 게 있으믄, 이장한테 말씀드리구 떳떳이 들어올 일이지, 도둑늠덜처럼 들루 산으루 뺑뺑 돌아서 숨바꼭질하듯이 몰래 겨들어 오는 게 그게 할 짓이여? 지덜두 주민덜 내쫓는 게 잘못이래는 건 다 아니께 그 모냥이겄지?”


  “보상도 필요없다. 이대로만 살게 해달라”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와 도두리를 비롯해, 미군기지 확장 때문에 토지와 집을 비롯한 삶의 터전을 빼앗길지도 모르는 주민들의 반대투쟁을 보며, “혹시 보상을 더 받아내려고 저러는 거 아냐?” 하는 삐딱한 눈으로 보는 이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물론 많은 보상을 노리고 투쟁하는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보상도 필요없다. 이대로만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물론 이장, 새마을 지도자, 부녀회장 등 ‘공적인 주민대표’들이 반대운동의 중심에 서자 몇 마을에서 일부 반대파가 “우리가 보상도 못 받으면 책임질 거냐?”며 따지는 일이 벌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마을에서 “좋다. 미군기지 편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인감증명을 첨부해서 따로 반대조직을 만들어서 싸우자”고 선언하고, 실제 그렇게 추진하자, 두세명을 뺀 주민 전체가 인감증명을 첨부해서 반대운동에 동참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군기지 반대운동의 중심인 대추리에서는 “우리 동네에서두 그런 식으루 반대파를 색출해서 왕따시키자”는 일부 주민의 분노가 있었는데, 김지태 이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몇십년을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할 분들을 그렇게 왕따시키면, 어떻게 같이 살겠어요? 짜증나실지 모르지만, 그분들이 스스로 깨닫고 함께 할 때까지 꾸준히 대화하고 설득하는 것으로 하고 넘어갑시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맞장구를 쳤다. “이장 말이 백번 맞어! 그냥 넘어가자구!”

  2004년 9월 1일은 평택 미군기지 반대투쟁에서 아주 중요한 날이다. 그날은 국방부가 평택대학교에서 ‘평택지원특별법 공청회’라는 것을 편법으로 열려던 날이다. 그날 팽성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평택대 강당으로 몰려가 강력하게 항의한 끝에 공청회를 무산시켜 버렸다. 주민들은 기물을 파괴하거나 폭력을 쓰지 않았다. 관중석에 앉거나 일어서서,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집단으로 “땅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루 공청회냐? 공청회 당장 때려치워라!” 하며 소리를 지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도 평택경찰서장이 연단에 올라가서 주민들을 가리키며 “저기 연행해! 저기두!” 하며 직접 소리질러 지시하였고, 임신부를 포함한 주민 9명이 평택경찰서로 연행됐다. 네시간 남짓 만에 결국 공청회가 무산된 것을 확인한 주민들은 경찰서로 몰려가, “연행 주민 석방하라”며 즉석 시위를 벌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누군가 양초를 잔뜩 사왔고, 경찰서 정문 앞이 촛불바다를 이루었다. 연행 주민들은 그날 밤 모두 풀려났지만, 이렇게 시작된 ‘촛불행사’는 이튿날부터 팽성읍 본정리 농협 앞으로 장소를 옮겨 지금까지 6개월 넘게 매일 저녁 이어지고 있다. 가을걷이가 바쁠 때도, 추석 날도, 크리스마스 날도, 설날도 쉬지 않았다. 주민들이 이렇게 밝힌 ‘촛불’은 지난해 말부터 평택의 시민단체들을 통해 매주 금요일 저녁 안중읍으로, 매주 월요일 저녁 평택역 광장으로 넓어져가고 있다.


  “이 땅은 우리 목숨이여”

  주민들은 “땅은 우리 목숨”이라고 주장한다. 이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런 표현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땅이 곧 목숨”임을 알 수 있다. 주민들의 말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자.

  “이 땅이 전엔 다 바다였어. 근데, 일제 때부터 주민덜이 쩨끔씩 막어서 논을 맹긴 거지. 그때 애기 업구 바다 막다가 애를 떠내려보낸 사람두 있어. 자식새끼를 잃어가맨서 맹긴 땅이니께, 증말루 땅이 목숨 아녀? 포크렌 같은 거나 있었나? 연장두 읎어서, 맨손으루 삽질, 가래질, 끙게질까지…끙게두 소가 아니라 사람이 끌었어. 그리키 힘들게 논을 맹길었어두, 농사가 될 턱이 있나? 논바닥이 원체 짜니께, 몇해 동안은 베두 안 자라더라구. 빗물 받어서 가둬 놨다 빼구, 가둬 놨다 빼구 해서, 염분을 쩨끔씩 없애 가맨서 십년 넘게 고생했지. 그래서 쩨끔씩 소출을 보기 시작해니께, 그동안 뒷짐지구 있던 정부늠덜이 뒤늦게 나타나서 ‘이건 정부 땅이니께, 돈 내구 사라’구 하더라구. 미치구 환장허겄대. 허지만 우쩌겄어. 그리키 맹긴 땅을, 정부한테 10년두 넘게 분할 상환이라는 걸 해서 등기꺼정 냈지. 20년 정도 빽이 안될껴. 고생, 고생, 말두 말어. 이 땅은 우덜이 그리키 피눈물로 옥토루 맹긴 겨. 그런데, 일제 때는 일본늠덜이 비행장을 맹긴다구 해서 강제루 쫓겨났지. 해방되니께, 미군덜이 그 일본군 기지를 뺏어서 지덜이 쓰다가 6·25가 터지니께, 기지를 엄청 크게 넓히더라구. 그때 또 쫓겨났지. 대추리는 아예 통째루 뺏겼어. 그러니께, 지금 대추리는 신대추리구 진짜 구대추리는 저기 미군기지 안에 있어. 보상은 무슨 보상? 땡전 한푼 읎었어. 딸랑 텐트 하나에, 양쌀 두어말, 그런 것두 받은 집 있구, 못 받은 집 있구 그랬지. 이쪽으루 쫓겨나서두 바다는 계속 막구, 소금기 계속 빼내구, 그리키 맹긴 옥토여. 지금은 을마나 좋아. 다른 땅버덤 소출두 훨씬 많구. 가물길 하나, 홍수 피해가 있나? 자식새끼두 길러 보믄, 어렸을 땐 맨날 똥오줌 뒤치다꺼리하구, 병원 데리구 댕기구 고생만 하잖어? 그러다 조금씩 커가맨서 재롱두 피구, 시집 장가 보낼 때쯤은, 효도두 하구 그러는 거 아녀? 땅두 자식이나 매한가지여. 자식으루 치믄 이제 겨우 효도할 만큼 큰 거지. 근데, 정부늠덜이 이 땅을 또 강제루 뺏는대는 거 아녀? 미군덜한테 꽁짜루 준다구? 옛날에 뺏긴 땅두 억울하고 분해서 미치겄는데, 어디 분통 터져 살겄어? 보상? 택두 읎는 소리! 죽으믄 죽었지, 이번엔 한평두 안 뺏겨! 이 땅은 우리 목숨이여!”

  연대가 시작되다

  평택 팽성 주민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강력하게 투쟁한 것은 아니다. 4년쯤 전, 다른 지역의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은 뒤, 평택의 시민운동단체들이 ‘미군기지 확장반대 평택대책위원회’라는 연대기구를 만들었을 때, 상임대표를 맡은 필자가 연대가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미군기지 편입 ‘추정지’ 마을 이장님들을 자주 찾아다녔다. 그런데 연대가 쉽지 않았다. 이장님들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농촌에 젊은 사람이 있나? 쌀두 수입한대지? 농사짓기두 점점 힘들지. 이번에 미군기지 넓힌다구 할 때, 값만 적당히 쳐 주믄 그냥 팔아버려야지, 뭐. 싸우긴 무슨 힘 있나? 정부하구 미국하구 같이 추진하는 일인데?”

  하지만, 2003년 4월 27일 ‘대추리 주민의 날’ 행사에서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폐교된 지 오래된 대추초등학교 분교 운동장에서 열린 주민잔치에서 김지태 이장은 이렇게 인사했다. “우리 마을이 미군기지에 수용된다는 소식 때문에 잠이 안 옵니다. 이번이 마지막 주민잔치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좀 과하다 싶게 차렸습니다. 어르신들 많이 드십시오.” 김 이장은 억지로 울음을 참았다. 주민들도 그랬다. 그 행사에 축사를 부탁받은 필자는 “최대한 도와드리고 싶다. 힘내시라!”고 격려했지만 김 이장의 연설에 격려와 감동을 받은 것은 오히려 필자였다.

  그날 이후 대추리 주민들은 예전의 주민들이 아니었다. 이틀 뒤인 29일 저녁 6시 평택 시내에서 열린 ‘미군기지 확장반대 촛불시위’에 주민들이 대거 참석한 것이다. 이 집회는 그동안 ‘소수 운동권들만의 집회’였다. 일부 경찰과 공무원들의 방해와 분열 공작도 있었지만, 꼭 그래서라기보다는 당사자인 주민들이 “국가안보나 그놈의 빨갱이 소리가 무서워서”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은 팽성 주민들이 대거 참석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아주 훌륭한 ‘연대집회’가 되었다. 이 첫 연대집회에서 김지태 이장은 아주 훌륭한 비유를 들어가며, 지나가는 시민들은 물론 비를 맞으며 촛불을 밝히고 있는 ‘운동권’들을 사로잡았다.

  “30년생 소나무도 옮겨 심으면 뿌리내리고 살기 힘든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추리 주민들은 몇백년 살아온 터전을 일제 때두 빼앗겼구, 1952년에두 미군기지 확장 때문에 빼앗긴 적이 있습니다. 이제 50년, 간신히 뿌리 내리고 살 만해지니까, 우리 주민들한테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또 나가랍니다. 미군기지를 또 넓힌답니다. 아니, 우리 주민들이, 지들이 이리 가라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가고, 그런 노옙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못 나갑니다. 주민들이 좋아하실지 어떨지 모르지만, 이 자리를 만들어주신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어린 대학생들한테까지 손을 벌려서라도, 강력한 연대투쟁을 벌여서 미군기지 확장을 반드시 막아냅시다!”

  이 날을 기점으로 평택의 시민운동 진영과 팽성의 주민들이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 뒤로 대추리 주민들이 팽성읍 전체를 돌아다니며 주민대표들을 설득한 끝에, 이장협의회, 새마을 지도자협의회, 부녀회장협의회 같은 조직들이 대거 참여하는 ‘미군기지 확장반대 팽성대책위’라는 조직을 꾸리는 데 성공했다.

  ‘팽성대책위’는 ‘평택대책위’와 연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2005년 2월 22일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약칭 평택범대위) 결성까지 이끌어냈다. 여기에는 민중연대, 통일연대, 참여연대, 환경련, 녹색연합, 평화여성회 등 114개 단체가 참여하였다. ‘평택대책위’와 ‘팽성대책위’만 외롭게 싸우던 시절은 가고, ‘매향리범대위’나 ‘여중생범대위’만큼 큰 전국 연대투쟁의 시절이 온 것이다. 이 ‘평택범대위’는 3월 5일 평택 대추리에서 ‘제1차 범국민대회’를 연 뒤, 밤에는 평택역 광장에서 대규모 촛불행사를 가질 것이다.


  “평택은 지금도 미군기지 천지”

  평택에는 이미 대규모 미군기지 두개가 있으며, 사격장과 CPX 훈련장, 탄약고, 통신소 따위도 딸려 있다. 군속까지 포함해 미군 1만명 정도가 주둔하고 있기도 하다. 평택에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일제가 만든 일본군기지를 미군이 접수한 때부터다. 1952년에는 그 미군기지를 확장도 하고, 그보다 두배나 넓은 미군기지를 평택 북쪽 끝 송탄에 새로 만들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로도 15차례나 확장을 했다. 그 바람에 지금은 미군기지가 평택 땅의 거의 5%인 459만평이나 된다.

  1960년대 후반에는 쥐꼬리만한 보상이 있었지만, 처음에는 보상도 없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저항 한번 해보지 못했다. 미군기지 담장 밑이나 미군 비행장 활주로 양쪽 끝, 남의 땅에 천막을 치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도 2백회 정도씩 뜨고 내리는 비행기 소음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하루 5천톤씩 무단 방류하는 오폐수 냄새를 맡아야 했다. 미군 범죄에 피해를 당해도 찍소리 못했고, 짧게는 몇년, 길게는 몇십년을 고생한 끝에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그런 평택에서 미군기지 반대‘투쟁’이 시작된 것은 1990년의 일이다. 그때도 일부 시민들이 ‘용산미군기지 평택이전 결사반대 시민모임’을 만들어, 반대운동을 펼쳤고, 1년 뒤에는 현지 주민들이 ‘미군기지수용 고덕서탄주민대책위’를 만들어 따로 ‘투쟁’을 했다. 중앙정부와 평택군청, 평택경찰서 등의 일부 공무원들이 벌인 온갖 협박과 방해공작을 뚫고 이 두 조직이 ‘연대’를 이루었고, 마침내 ‘용산기지 평택이전 유보’라는 정부 발표를 끌어내며 승리를 거두는 듯했다.

  그러나 8년 가까이 지난 2001년 원주, 하남 등지의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옮기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LPP(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협정’이 만들어졌다. 평택의 시민운동단체들은 ‘미군기지 확장반대 평택대책위’를 만들고 다시 투쟁을 시작했고, 이 투쟁이 오늘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미군기지 반대운동 과정에서 미군기지 확장 예정지의 논 605평을 시민들이 한평씩 나누어 사서 공동으로 등기를 마친 뒤 ‘평화의 논’이라는 이름까지 붙여놓았고, 이것이 외국의 평화운동가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져 ‘평화 기행’의 필수 코스가 되기도 했다.

  한미 두 나라 정부는 2007년, 늦어도 2008년 말까지 평택에 349만평의 미군기지를 확장하겠다고 한다. 계획이 성공하면 평택 땅의 10% 정도가 미군기지로 될 것이다. 하지만 “평택은 지금도 미군기지 천지다. 더이상은 한평도 안된다”는 주민들과 시민운동단체의 강력한 연대투쟁 때문에 정부는 이 계획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주한미군기지 평택 이전 끝나면 한반도와 동북아 전쟁 불보듯”

  평택 사람들의 투쟁을 “지역이기주의 아니냐?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미군기지가 없어지는 건 우리 민족 전체를 위해 그래도 좋은 거 아니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는 것은 다음 세가지 차원에서 범죄행위라고 생각한다.

  첫째, 권력과 재력과 학력과 좋은 직장과 언론까지 다 가진 서울 사람들의 지역이기주의는 탓하지 않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농민들의 지역이기주의만 매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약자에 대한 강자의 범죄행위이다.

  둘째, 서울에서 미군기지가 사라지면, ‘중앙 언론’이라 불리는 ‘사실상의 서울 언론’들이 주한미군 문제를 외면할 것이고, 그러면 국민도 덩달아 외면할 것이고, 결국 현행 법에서만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 속에서도 미군의 영구 주둔이 굳어져버릴 것이기 때문에, 미군의 영구 주둔을 부추기는 범죄행위이다.

  셋째, 주한미군의 평택 총집결은 한반도와 동북아 전쟁 발발 가능성을 한층 고조시키는 범죄 행위이다.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집결시킨 뒤 미국이 하려는 일이, 북한을 선제공격하여 한반도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한미군의 활동 반경을 한반도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동북아 지역을 신속하게 넘나들며, 중국과 대만의 분쟁에 개입하는 등 동북아 전쟁 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군이 서울에 영구 주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군을 현 위치에 둔 상태에서보다는 북한의 장사정포 사정거리 밖인 평택으로 빼돌린 뒤에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은 너무 뻔한 것이다. 미국이 한반도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남과 북은 통일을 못하겠으면 최소한 ‘수교’라도 해야 할 것이다. ‘전쟁의, 전쟁에 의한, 전쟁을 위한 나라’ 미국이 북침을 통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아주 높은 상태에서, 남북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것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군인들이 일으키는 게 아니라,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원수들이 일으키는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도 그렇다. 게다가 미국이 일으키는 거의 모든 전쟁은 미국의 국익에조차 손해가 나는 전쟁이다. 미국이 이라크 침략 때문에 잃은 미국인의 생명에 대한 값은 제쳐두고 순수하게 들어간 돈만 따져봐도 그렇다. 미국이 지금까지 이라크 침략에 쏟아부은 돈이 1천억달러이다. 이 침략이 언제 끝날지 몰라 구체적인 예측을 할 수는 없지만, 올해 8백억달러의 예산이 잡혀 있다. 물론 이 돈은 모두 일반 국민의 세금이다. 하지만, 이라크 침략에서 이익을 얻는 것은 일반 국민이 아니다. 무기 판매와 전리품 챙기기, 전후복구사업 같은 것으로 떼돈을 버는 헬리버튼과 벡텔 같은 회사들이다. 체니 현 부통령이 회장으로 있던 헬리버튼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하기도 전에 전후복구사업권을 수의계약으로 따낸 회사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그랬다. 그때 미국 기업가들은 적국 독일의 히틀러한테 전쟁 자금을 지원한 것이다. 그때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부시 현 대통령의 할아버지 부시다.

  이런 사실은 미 해군제독 출신 스메들리 버틀러의 양심선언에도 아주 잘 나타나 있다. 그는, 해군 생활의 대부분이 ‘대기업과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의 고위 폭력단원’ 생활이었다고 고백했다. 멕시코 침공은 ‘미국 석유 회사의 이익’, 하이티와 쿠바 침공은 ‘내셔널 시티은행의 이익’, 니카라과 침공은 ‘국제 금융회사인 브라운 브라더스의 이익’, 도미니카 침공은 ‘미국 설탕회사의 이익’, 온두라스 침공은 ‘미국의 과일회사의 이익’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말도 남겼다. “그 기간 동안 나는 거물급 사기꾼이었다. 나는 명예와 훈장, 칭찬을 받았다. 알 카포네가 우리한테 무언가 배운 것 같은데, 그는 기껏해야 3개 도시를 누볐을 뿐이지만, 우리 해군은 3개 대륙을 누볐다.” 국익이 아니라, 모두 정치인들과 그들에게 뒷돈을 댄 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에 동원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무기회사들과 그들의 정치자금을 받아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 민족 전체가 미국이 평택에서 일으키려는 한반도와 동북아 전쟁의 희생양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은 평택에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평화유랑단의 단원들과 아예 대추리로 이사를 온 문정현 신부와 함께,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www.antigizi.or.kr)와 함께, 제2의 부안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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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0 13:29 2006/03/20 1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