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갔었던 인권활동가 대회에서 흔히 보는 안내그림(픽토그램)에 문제를 생각해보고 다시 그려보는 프로그램중에 화장실 픽토그램에 관한 부분에서 남성도 앉아서 소변을 볼수 있다/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었습니다.
 

인권활동가대회때 뵌 무화과님이 앉아서 오줌을 싸자 라는 글을 쓰셨길래. 과거에 보았던 글을 소개합니다. 그러니까 글과 글을 잇는 트랙백 정도가 될까요?? :)
기불이님의 2004년 황당뉴스 베스트 10을 읽다가... 라는 글인데요.독일에서는 남성이 선채로 소변을 보면 "꾸짖는" 좌변기가 발명되었다는 이야기가 소개되어있는 글입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PICIS(삐끼스)라는 단체 사무실에서도 꽤 옛날부터 남성/여성을 막론하고 앉아서 일을 본다는 원칙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기억이 납니다.

또 네오님이 베네수엘라에서 기거 하신 마르셀로의 사무실의 규칙중에도 누구나 앉아서 일보기 라는게 있었죠.


아 그리고 그날 화장실 구분을 표현하는 픽토그램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어떤 상징으로 설명할 것인가도 골치가 아팠지만. 그 여성과 남성이라는 구분역시 애매 모호 하다는 점이었죠.  나체 픽토그램 안이 나왔을때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 처럼 생물학적(혹은 성기 모양으로) 구분으로 남자 화장실 여자화장실을 구분할수 있는가 하는 문제말이죠.. 그런 와중에 예전에 읽은 글이 하나 생각나서 소개합니다.

남녀 구별없는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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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7 02:10 2006/01/17 02:10

제주도 어드벤쳐

from 너에게독백 2006/01/16 03:08

 첫날부터 날씨는 좋지 않았다. 도착하자 마자 들은 소식은 한라산 쪽으로 가는 도로들이 눈때문에 모두 통제 되었다는 이야기.그래도 우리는 꾸물꾸물 구름낀 하늘밑으로 빌린 승함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일단은 도착 첫날이니 무난하게 성산 일출봉에 가기로했다. 성산 보다는 그길가는 해안 도로가 멋졌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좋을 길이었다.




▲ 성산 일출봉에 올라가는 길에 꾸무정한 하늘

겨울 해라 날이 금새 저물었다. 날이 흐린탓도 있을거다. 일찌감치 숙소로 가기로 했다. 한숨자다 일어나서 저녁꺼리 장을 보고 다시 길을 갔다. 시내를 벗어나서 북쪽으로 북쪽으로 갔는데. 주위에는 집같은것은 거의 보이지 않는 꼬불꼬불한 길이다. 그런데 좁은 2차선 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지더니 점점 희끗희끗 눈 길이 되더니 얼음길로 이어져 있었다. 날은 깜깜하고 가로등도 없고 후륜 승합차는 조심조심 비틀비틀 길을 더듬어 갔다. 가다보니 얼음 덮인 언덕배기가 나타나고 .. 차는 힘을 잃었다!

"어! 어! 어어!" 끝내 차는 언덕을 넘지 못했고, 모두 내려서 차를 밀어봤지만 바퀴는 공회전을 하다못해 줄줄줄 미끄러져 내린다. 숙소는 언덕만 넘으면 바로 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숙소 맞은편에서 가게를 하고 있는 검은승용차를 탄 아저씨가 나타나 자신이 다른 길을 안내할테니 따라오라고 하신다. 차을 겨우 돌려서 아저씨를 따라가는데 아저씨도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속도를 늦추지 않고 빙판을 올라 가셨다. 우리도 따라가는데.. 헉. 여기는 난이도가 더 높은 언덕이 있다. 확! 밟아서 힘을 받아서 올라가 보려고 하는 찰나.. "어어~어어~" 하는 사이 차는 180도 회전을 해서 가던 방향의반대 -즉 올라온 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다.언덕과 언덕 사이에 빙판길에 갇혀 버린셈이었다. 다들 별로 놀라지는 않고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웃어댔다.

게다가 우리를 안내해 주겠다던 아저씨는 사라져버려서 우리는 여우에 홀렸나 싶었다. 어쩔수 없이 갔던길을 되돌아 가는데 전방 좌측으로 시커먼 물체가 출현했다.  '헉 저게 뭐야!' 음. 제주도 소였다. 쌔까만 소. 별걸 다보는군. 결국 우리는 주변 공터에 차를 세우고 숙소로 걸어갔다.. 노곤해진 몸을 풀고 저녁을 해먹고는 동양화를 가볍게 들여다 보다가 모두들 일찍 잠이 들었다.

둘째날..
계획상으로는 한라산 등산을 해야 하는 날이었지만. 한라산은 통제 되었다니까.. 다른 대안을 찾다가 배낚시로 합의를 보고 차귀도로 출발했다.


▲ 우리가 탔던 작은 배


낚시보다는 배타는게 더 재미있었는데 날이 전날 보나는 좀 풀려서 배를 타고도 춥지 않고 시원했다. 허긴 뭐 내복을 위 아래로 입고 솜바지까지 입었으니 추울리가 없었다.

낚시는 상상했던것 보다 조촐했는데, 그냥 추낚시였다. 선장아저씨 입담에 재미있게 미끼 끼우는법, 낚시하는 법을 배웠는데 나는 잘 안되더라. 잘하는 사람은 내가 놀래미 한마리 겨우 잡을 동안 대여섯 마리씩 잡았는데.. 나는 소위 챔질이라는걸 잘 못해서 인지 느낌이 와서 줄을 끌어올리면 이미 미끼만 먹고 가기 일 수 였다. 한마리도 못잡으니까 오기가 나서 열심히 하긴 했는데 한마리 낚고 나니 또 허무하고 의외로 별 재미가 없었다.먹으려고 낚아야 재미있지, 놀이로 낚아서 무슨 재미냐 싶은게..

뭐 아무튼 신나기는 신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폼을 잡았는데, 몇몇 튼튼한 장정들이 멀미가 나서는.. 허옇게 질려 버렸다. 그러더니 일찍 뭍으로 올라가자고 선장님을 졸라서 결국 두시간도 못채우고 올라와 버렸다 :) 재미있는건 선장님도 파도가 조금더 센 바다에 나가면 멀미간 나는 체질이라는 거다..


▲ 차귀도에 다녀와서 간 용머리 해안가


둘째날 저녁, 한라산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가기 전날 밤까지 정말 가는건가 싶었는데, (난 운동부족에다가 산을 제대로 타본적이 전혀 없다. 심지어 등산을 싫어하기도 했고) 이 기회  아님 언제 한라산에 올라 보나 싶어서 다음날 새벽에 발딱 일어나서 따라 붙었다. 얼어 붙은 길을 택시를 타고 등산로 입구까지 가서 오뎅과 김밥으로 배를 채웠다. 그런데 전날 먹은 술탓인지, 매운 라면탓인지 속에서 별로 좋지않은 낌새가 느껴졌다. 혹시나해서  김밥은 몇점 먹지 않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하.. 눈이 정말 너무 많았다. 상상도 못했는데. 발보다 상당히 큰 운동화(게다가 천으로된..)를 신고 가서 등산하기에는 상당히 불량한 복장이었기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돈좀 들여서 각반도 사고 아이젠을 사서 준비를 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행이도 산이 오른다기 보다는 평지에 가까워서 자신있게 잘 걸을수 있었다. 초반에는 평지에서는 걸음이 빠른편인데다가 뒤에서 오는 일행들에게 혹시나 폐가 되지나 않을까 싶어서 머리에 땀이 차도록 속도를 내서 걸었다. 눈쌓인 나무들. 발자국들. 새들 발자국. 노루 쯤 될것 같은 동물의 발자국..



▲휘장 같이 삼나무 머리카락이 늘어져있었다


 

그런데 머리에 땀이 식으면서 서늘해진다 싶더니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꺼워졌다. 배도 살살 아픈것 같고.. 어제 배타던 사람중 멀미하는 사람들 기분이 이랬을까 싶었다. 점점 배가 아프고 토할것같고 어지러워서 몇번씩 쉬어갔다. 처음에 휘적휘적 앞장서 걸어가던 그 기세는 어디로 가고 왔던길을 내려가고 싶을 뿐이었다. 사진에 있는 삼나무 숲은 내 핸드폰으로는 제대로 담을 수 없었지만.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는 그런 풍경이었다. 근데 천천히 둘러 보거나 사진을 찍기도 귀찮을만큼 아파지고 있었다. 정말 어디를 둘러봐도 눈뿐인데. 결국에는 눈위에서 일을 봐야 하는건가? 이런 절망 속에서 어질어질 할 뿐이었다. 위 아래 사진도 결국 내려오는 길에 찍은것이다.


   
▲  빽빽하게 삼나무가 들어선 숲

 

그러다가 조금만 더 가면 화장실이 나올테니 거기 한번 가면 낫지 않겠냐는 말을 듣고 참고 또 참고 걸었다. 화장실이 보이기 약 오분전에는 절정으로 아팠는데 더 이상 아프다고 일행을 지체 시킬 수도 없었다. 백록담까지 가려면 진달래 밭이라는 대피소있는 지점까지 12까지 도착해야 올라 갈수 있다고 했었기 때문에..

배아플때 식은땀이 나면서 몸에 소름이 돋고 온몸의 피는 마르는 듯한 기분 다들 한번쯤은 겪어 봤을 것이다. 꼭 그랬다. 어금니를 앙 물고 두손을 꼭쥐면서 침묵 속에서 낮아지는 체온을 견디면서 걸었다. 나중에는 손에 땀이 흥건하고 손을 너무 꼭 쥐어서 손바닥에는 손톱자국이 퍼렇게났다.귀는 욍욍거리고.아아.. 가상도 하지. 관자놀이가 팔딱팔딱.

그렇게 인고의 오르막을 그렇게 오르고 나니.
화장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꼼짝 못하고 눈밭에서 일치르나 했건만..
눈속에 파뭍힌! 결국 몸을 옴짝달싹도 할수 없을 만큼의 작은 간이 화장실에 다녀오니 아픔은 싹가셨다. 하하하. 참 민망하더라.

가뿐한 마음으로 또 온 만큼 한참을 올라섰는데, 슬슬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있다. 우리도 제법 일찍 출발했는데 벌써 정상에 다녀왔을리는 없고...
"백록담까지 다녀오시는건가요?" 했더니 "못가요 못가" 하신다. 이제 10분만 더 올라가면 못올라가게 통제 되어있다는 사람들이 몇명더 지나갔다. 눈때문에 등산로가 묻혀서 어제 길을 낸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내놓은 탓이란다. 우리는 잘못된 길을 오르고 있었던 거다. 이제는 어쩌나...

그 순간 우리팀의 산행 령도자 홍모씨는 "아냐. 아직 몰라." 하더니 "앗 고수인것 같아!" 하면서 어떤 털보 아저씨를 발견해 냈다. (그는 실패연대의 대표주자로 알려져있는 인물이었지만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번뜩이는 그의 눈빛. 우리는 그를 따라 정체불명의 털보 아저씨를 따라갔다. 그는 한라산 국립공원 직원이었던 것이다!!
길을 새로 만들겠다는 아저씨들을 따라 나서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중 우리는 거의 앞쪽에 있었는데. 우리팀의 복장이 가장 열악했다. 우린 거의 평상복 차림인 반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프로훼셔날한 차림이었다.

암튼 관계자들이 지도를 펼치고 나침반도 나오고.. 쑥떡쑥떡하더니 길을 내기 시작했다. 길은 아주 천천히 열렸다. 한발짝 가고 기다리고 한발짝 가고 기다리고. 앞사람 발자국에 맞춰서 한 이십명 이상의 사람이 한 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구불구불.. 이 길이 아닌 걔벼 하면서 틀었다가 올라갔다. 오히려 나같은 초짜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천천히 올라가니까 힘도 별로 들지 않고, 눈속에서 길을 낸다니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서서히 운동화로 눈이 들어와서 양말이 젖어가고 있다는건 좀 불안했지만 시종일관 즐거웠다.

 

▲ 길을 만들어서 올라가고 있는 모습

원래는 길이 아니었는데. 한사람이 가고 두사람이가고 열사람이 가니 길이 되고 있었다. 드라마 다모의 장두령의 대사를 추억하면서 우리는 올라갔다. 언덕 배기를 하나 올라서서 뒤를 돌아다보니 절경이다. 먼저 올라선 사람이 '와아'하고 탄성을 지르니 뒤따르던 사람들이 차례로 뒤를 돌아보고 탄성을 지른다. 사진으로 제대로 담지는 못했지만 장관이었다. 눈발이 흐부끼고 산아래 광경이 쫘악 눈에 들어오는데 어디 딴 세상에 온게 아닐까 싶었다.


 

 

▲ 잘 나오진 않았지만 뒤돌아봤을때 찍은 사진


 

그 언덕을 넘어 조금 더 오르니 나무가지들로 시야가 가려진다. 앞을 가린 나무를 헤치고 나서니 나타나는 설원. 흩날리던 눈가루는 이제 그치고 구름에 가렸던 해가 나타나 앞에 탁트인 눈쌓인 평지는 눈을 따갑게 할정도 였다. 얼굴로 따뜻한 햇볕이 반사되어 와서 따끈따끈해지는게 기분이 좋았다. 여기가 바로 "진달래 밭"이었던 것이다. 캬아.. 하늘에서는 까마귀떼가 휘휘돌고. 대피소는 눈에 쌓여 지붕밖에 안보인다. 화장실이었던것 같은 것은 지붕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고 피뢰침 같은 것만 남아있다.



 

▲ 오병이 찍은 눈덮인 진달래밭 대피소와 평원
(오바해서 남극이라고 해도 믿지 않을까?)

건물높이 만큼, 나무 한그루 높이 만큼 쌓인 눈위에서 도착한 사람들은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먹거리를 꺼내 배를 채우고 있었다. 도시락을 단체로 싸온것 같은 사람들. 보온병에 든 커피를 나누어 먹는 사람들... 그리고...

컵라면을 먹는 사람들!!!!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가져왔는지 컵라면을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대피소까지만 가면 따뜻한 컵라면을 한그릇 먹을수 있겠지 그 맛이 얼마나 좋을까 전날밤부터 기대했었다. 그러나...이제 눈을 퍼내려고 삽질을 시작한 대피소는 지붕밖에 보이지 않았고, 보온병따위 수중에 있을리 없었다. 아...어찌나 부럽던지. 우리는 궁상맞게 신문지위에 주섬주섬 소주두병을 올려두고 햄덩어리와 산아래서 사들고온 꽁꽁언 김밥을 먹을수 밖에 없었다. 난 그 김밥은 도무지 먹을 마음이 들지 않았고 술 역시 못먹겠더라. 곱은 손으로 귤이나 까먹으면서 컵라면 먹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밖에..

사실 컵라면 국물이라도 어떻게 얻어먹어볼까 하고 뚫어져라 처다보면서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이라는 대사도 연습해보고 했는데. 내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그들은 이미 다 먹어 버렸다. 아아.. 그렇게 침만 꼴깍 꼴깍 삼키다가 우리는 내려와야만 했다. 백록담까지는 또 길을 내야하는데 오늘은 무리라는 것이다. 관계자는 "오늘은 이것으로 만족하셔야 합니다" 하고 우리를 달랬다.

내려 오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힘이 들었는데. 미끌어지지 않으려고 아이젠을 눈위에 팍팍 박으면서 내려오니 무릎 관절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동화를 신어서 발목을 받혀주지 못하니 복숭아뼈있는 부분이 너무나 아팠다. 그래도 오르는 길에서 배아파서 제대로 보지 못한 삼나무 숲에서 사진도 찍고, 쌓인 눈위로 몸을 던져서 누워보고, 누구는 비니루 봉지를 하나 구해서 경사로를 봅슬레이를 해서 내려가고...


그렇게 그렇게 한라산행을 마쳤다. 내려와서도 컵라면을 파는곳이 없어서 되게 아쉬웠지만. 그 산에 포기하지 않고 다녀온 내가 대견하기도 하고 만족스러웠다. 한라산은 별로 어려운 산이 아니라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겐 대단한 일이었다! 내가 언제 다시 이렇게 눈길을 헤치고 산을 타겠는가!

산에서 내려와서는 차에타고 바로 골아떨어졌다가 어딘가에서 내려 밥을 허겁지겁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들 피곤에 쩔어서 일찍 잠이들고, 다음날 숙소를 떠났다. 그리고 다행히도? 비행기가 연착이 되어서 약 한시간 정도 공항근처 용두암 쪽으로 가서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자전거 여행이라는것에 어려서 부터 로망이 있어서 여행지에만 가면 자전거를 빌려서탄다. 언젠가는 제주도 자전거 하이킹을 해야지 하고 있다가 제주도에 간거라서 사실 자전거를 굉장히 타고 싶었는데, 이렇게라고 한차례 타니까 소원을 그럭저럭 이룬셈이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니 허벅지 근육이 무지 당기고 엉덩이가 아파서 우리는 끝까지 체력훈련 엠티구나 싶었지만, 대만족이었다. 바람을 차고들어가니 귓가에는 상쾌한 마찰음이 들리고 등에서는 땀이 나고 얼굴은 싸아하고. 날씨도 많이 풀려서 봄날씨. 중간에 바닷가에서 음료수와 초코바/양갱같은 것을 우걱우걱 먹고 즐거워 하는 얼굴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고..

암튼 그렇게 동계체력훈련겸 제주도에 다녀왔다.



* 요즘 글을 조금쓰다가 말고 시간날때 이어서 쓰고 하다보니까 글이 주체 못하고 길어진다. 누가 이걸 읽으려나 모르겠다. 16일 새벽 3시경에 쓰기 시작한 글이 18일 0시 15분에 끝이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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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6 03:08 2006/01/16 03:08
시간이 없는 관계로 급히 메모. retrievr라는 서비스는 플래쉬기반의 그림판에 찾고 싶은 분위기의 그림을 그리면 flickr에서 비슷한 그림을 검색해 준다. 오호!! 잠깐해보니까 그림과 완전일치 라기 보다는 색깔배치/배합에 맞는 정도로 검색해주는듯하다. 아무튼 재미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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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4 12:46 2006/01/04 12:46
보통 웹서핑을 하거나 RSS를 구독해서 볼때 느낌이 오는 글인데, 시간이 없거나 길고 무거워서 웹에서 읽기 힘들때 주로 북마크를 하게된다. 사이트의 경우는 주로 브라우저에다 북마크를 하지만, 특정한 글이나 문서를 기억하고 싶을때는 del.icio.us를 이용했었다. 그렇지만 "나중에"라는 말이 붙고 나서 다시 찾아 보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냥지나치기 아까워서 쓸데없이 링크만 해둘뿐. 그러다 엇그제부터 자료를 찾을 일이 있어서 종일 서핑을 하다 출력을 해서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와 잉크가 조금 아깝긴하지만 그냥 북마크로 자료를 모으고 다시보겠다는 다짐보다는 출력이 훨씬 즉각적이고 실천적인 효과를 불러왔다. 웹문서를 읽을때 의례껏하게되는 건너뛰면서 읽기(skip)를 자제하고 진지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읽다보니까 생각하는 시간도 늘어나고, 나름대로 정리도 잘된다. 이동하면서 읽을 수도 있고 바로 메모를 해가면서 생각을 가지쳐나가는 것도 용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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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4 03:53 2006/01/04 03:53

산만한제국

from 너에게독백 2005/12/30 20:07
민중언론 참세상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라는 코너에서는 올 한 해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독립영화 온라인 상영"을 해왔습니다.

올해 마지막 상영작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반대 독립영화 프로젝트'라는 주제하에 묶어본 7곱개의 작품인데요. 지금 막 그중 한 영화를 봤는데 아주 기가막힙니다. 그래서 바로 포스팅중.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라니 엄청 무겁고 지루할것만 같아 하면서 돌아선다면 실수입니다. 저는 보면서 끊임없이 웃고 말았답니다.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이 세계의 모순을 그리고 우리들의 무기력한 모습을 잘 보여줄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감탄할 수 밖에 없었죠. 나에게 글재주가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좀더 멋지게 설명할수 있었을텐데.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일단 보세요. 제목은 "산만한제국" 입니다.

올해가 가기전에 꼭 보아야할 영화에 적어도 이 영화를 포함시키세요.
그게 싫다면 내년에는 꼭 보아야할 영화에 포함시키세요. :)

진짜 광고 같이 되었는데. 정말 재미있어서 하는 말이니까 믿어보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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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30 20:07 2005/12/30 20:07

신발 밑창

from 너에게독백 2005/12/30 02:01
지금 왼쪽 목, 어깨, 허리, 다리 근육이 찌르르한게 쑤시고 당긴다. 왜냐면, 너무 왼쪽 신발 밑창에 대해서 집요하게 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러 그런건 아니었다. 왼쪽 밑창에 신경쓰기 시작한 것은 이틀전부터다. 그러니까 화요일날 백화점에서 탈의실에 들어갔는데 바지를 입어보려고 부츠를 벗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일단 이 부츠로 말할것 같으면 이르면 시월 초쯤에 아르바이트비를 받은 기념으로 산 내 평생 처음신는 부츠였다. '부츠'는 나름대로 대학생이 되면 꼭 신어보려고 마음먹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로망이었다.무릎까지 오는 따듯하고 세련된 부츠. 비록 지금의 것은 '부츠'쪽 보다는 '장화'랑 더 친분이 있을것 같은 모양새에 싸구려티가 물씬 풍겨서 아빠가 엄마한테 애 신발 좀 사신기라고 잔소리 할 정도이지만.. 그때 상상했던 것 보다 더 나에게 어울리고 마음에 드는 물건이다. 아무튼 다시 탈의실로 돌아가서.. 그때 부츠를 손으로 당겨서 벗었는데, 왼쪽 신발을 당기는 순간 미묘하게 이상한 느낌이 났다. '어라 ? 혹시 밑창이 떨어지려고 하나?' 하고 불길한 마음에 황급히 살펴보는데...아무리 고무 밑창이라지만 산지 두달도 채 안된거 같은데 째진것 같은 구멍!?이 나있었다. 그때부터다. '왜 구멍이 났을까? 왼쪽에만.' '걸음걸이가 이상한가?' '발뒤꿈치쪽에 가까운것을 보면..내가 발 뒤축으로 힘을 많이 주나?' '더 달아서 못신게 되면 어쩌지?' '아직 본전도 못뽑았는데.' '역시 싸구려는 살게 못된다고 엄마가 득의양양해 할텐데..' 의식적으로 왼발에 힘이 들어가서 어떻게든 뒤축이 덜 마모되도록 신경을 쓰게 되는것이다. 아 그랬더니 다리가 부자연스러운게 좀 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지하철 환승로나 길에서는 걸을때 뒷사람한테 구멍난게 보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까지 들어서 밑창이 안보이도록 걸어보려고 신경을 쓰게되고. 걷는 리듬은 점점 엇박자를 타기시작했다. 게다가 발바닥이 좀 밀리고 배기는 느낌이 들어서 '앗. 드디어 밑창이 떨어진거야?' 하고 밑창을 보면 별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인지. 그렇게 혼자 비웃고 자연스레 걸어보려고 해도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내 다리가 내 생각 때문에 내 다리 같지 않게 되니까..나중에 집에 오는 길에는 길은 깜깜한데 왼쪽다리에 뭔가 찰싹 감겨 붙어있는 느낌까지 들어서 선뜩하기도하고 웃기기도 하더라. 병은 마음에서부터 ..여기서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굉장히 시시한 일인데, 걸을때마다 생각하게 되니까 괴상한 인간이 된것 같기도하고 제삼자적으로 나를 보면 웃기기도 하고 기괴하다. 실제로 발에 뭐가 달려 있다는 기분이 들었을때는 무섭기도 하면서 재미있기까지 했다. 실제로 달려있는 뭔가의 형태같은것도 상상되고.. 무서운 이야기를 들은날 자기전에 눈꼭감고 무서운 생각을 끊임없이 부풀려가면서 잠못드는데 실제로는 점점 덜무서워지고 급기야는 즐기고 있는 자신을 볼때처럼 말이다. 아무튼 내일은 떨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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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30 02:01 2005/12/30 02:01

블로그에 글쓰기

from 너에게독백 2005/12/29 02:40
블로그에 글쓰기이든,종이에 글쓰기이든,벽에 글쓰기이든, 최소한 남 읽으라고 쓰는 글이라면 어떤식으로든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다. '잘'쓰고 싶고 '많이'읽고 '공감'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런데 그런 욕망이 속되보이고 겸연적을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 반작용으로 남들 눈을 신경쓴다는것이 진솔하지 못함으로 둔갑해서 엇나가면 감정의 배설내지 자폐성 글을 내지르고 만다. 그리고 몇분만 지나면 그것을 후회하기도 하면서. 내가 쓴 상당수의 글이 그런식이었고.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상당수의 글이 그런 것 같다. 사실 나는 그런-다른사람에게는 아마 쓸모없을-글을 쓸때 기분이 나아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그런글이 "나쁜" 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읽는 사람에게는 어떤 가치도 없겠지만.그래서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런 글이 많아지면 곤란하다 싶어진다. 그렇다고 나도 다를바 없으니. 뭐 그렇다는 이야기... 로 또오 끝나면 곤란하고.(나쁜버릇) 아우튼 웹에 "공개"된 글은 모두 읽으라고 쓴글이라고 생각한다. 힘들다,슬프다, 화난다, 신경질난다 이런 말도 그 순간에 읽는 사람 생각해서 조금만 더 설명해주면 더 좋을텐데 말이다. 화나고 슬픈데 그럴 겨를이 없는걸지도 모르지만. 그정도로 화나는 일이면 조금더 공감가게 써서 다른사람이랑 같이 씹던가, 슬픈일이면 ..음 이건 봐주자. 간단하게 써도 위로를 받을 수는 있으니까. 아무튼 감정적이고 사소한 것들도 너무 개인적인것이라면 애초에 공개글로 쓰기는 어렵다. 공개해도 좋을 만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조금 더 읽는 사람을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블로그에 이미 공개한 글을 쉽게 지우는 사람은 신뢰할수 없다. 나도 몇번 그런적이 있는데, 감정과잉 상태에서 일단 지른 다음에 감정이 수습되면 글을 내리고..이거 사실 버릇되는거 같다. 버릇되면 노출증이되고. 단지 개인 공간으로만 생각하는 블로그는 별 재미없다. 뭐 생판 모르는 사람 감정상태야 피가되고 살이되는 이야기도 아닌데, 공감도 안되게 쓰면 읽지도 않고 그냥 뒤돌아 서게된다.이건 좀 쓸쓸하기까지 한 느낌이다. 솔직히 혼자 글쓰고 정리하고 싶었으면 다이어리하나 만들거나 비공개 블로그를 쓰면 된다.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것은 다른사람의 반응을 기대하는것이고 상호적인 소통을 원하는 것이지 않나? 그렇다면 자신이 먼저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반응을 하면된다. 진보블로그가 1500개정도 되는데, 공개된 글을 꾸준히 쓰는 블로그는 몇안된다. 소위 펌글의 비율은 작다고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통계를 내볼까?) 다른 블로그 보다는 아무래도 진보넷 블로그를 주로 돌아다니다 보니 과장되게 느껴지는것인지 모르겠는데. 진보 블로그에는 유독 방문자를 투명인간으로 만드는 블로거가 많은것 같다. 왜 그럴까? 이런 막연한 느낌말고 좀더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나는 진보블로그에 공개된 글은 펌글 빼고는 거의 모두 들어가 보는데(다 읽지는 않지만)쓰는 사람만 쓰고 많은 사람들은 외로워 하고 있다는 기묘한 느낌이 들어서 글을 써봤다. 사실 이런 느낌은 1년째 느끼는데, 작년 블로그를 처음 만들고 느꼈던 그 활기를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 사실 나 스스로가 재미없는 글만 쓰고 다른 사람들과 상호교통따위는 전혀 하지 않으니까. 더 그렇게 느껴지는걸까??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하면 꼭 더 중요한 일이 생각난다. 그건 스스로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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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9 02:40 2005/12/29 02:40
홍콩에서 구속되어있는 WTO반대 투쟁단 석방과 홍콩경찰의 인권유린 진상규명을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에 동참해 주십시오.

아래는 투쟁단중 여성분이 구치소 안에서 찍은 영상입니다. 링크를 클릭하시면 보실수 있습니다. 


구치소안 동영상 inside a detention house of anti-WTO protesters

서명운동동참하기 >>
아래는 서명운동동참을 요청하는 글입니다.

지난 12월 13일-18일, 홍콩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제6차 각료회의가 열리는 동안 전 세계의 시민사회단체 및 사회운동단체들은 선진제국의 일방적인 자유무역이 우리 삶을 파괴하는 현실을 알리고, 대안적인 세계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홍콩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홍콩정부와 주류 미디어는 WTO 각료회의가 열리기 전부터 한국 투쟁단을 폭도로 매도하였고, 집회장소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제한하여 홍콩 시민과 투쟁단을 분리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중 투쟁단은 삼보일배와 촛불시위를 비롯한 평화적인 시위를 통해 홍콩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와 성원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WTO 각료회의가 폐막을 앞두고 있는 12월 17일, 세계 각국에서 참여한 WTO반대 민중 투쟁단들은 빈곤과 불평등, 전쟁과 폭력을 확산하는 WTO 각료회의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 이후 각료회의가 열리는 컨벤션센터를 향해 행진을 진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홍콩경찰은 최루탄, 전기 곤봉, 고무총탄 등을 동원하면서 투쟁단의 집회와 행진을 폭력적으로 해산하려 했습니다. 컨벤션센터 앞에서 밤늦게까지 계속 집회가 이루어지다가, 홍콩경찰은 18일 새벽 3시경부터 컨벤션센터 앞 집회 참가자들을 연행하기 시작해 아침 10시 경 까지 한국 민중 투쟁단을 비롯한 집회 참가자들을 전원 강제 연행하였습니다.

연행 및 조사 과정에서 홍콩경찰은 무자비한 인권침해를 자행하였습니다. 연행과정에서 경찰은 집회 참여자들이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는데도 강제적으로 케이블 타이(cable tie)로 양 손목을 묶었으며, 여성들의 알몸수색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심지어 가방 및 지갑 수색에 응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서는 구타를 가하였고, 이러한 반인권적 행위에 저항하는 한국인의 뺨까지 때리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또한 연행된 집회 참여자들을 추위에 방치한 채로 식사도 제공하지 않았으며, 화장실을 이용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케이블 타이를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전 세계 민중의 삶과 권리를 되찾기 위한 정당한 저항과 외침, 합리적인 토론과 대화를 위한 행동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탄압하는 홍콩정부와 경찰에 심각한 우려와 분노를 표하며, 아래와 같이 요구합니다!

1. 기소되고 구금된 민중투쟁단을 즉각 전원 석방하고,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
2. 시위 진압과 연행, 조사 과정에서 벌어진 경찰의 인권유린의 진상을 규명하여 책임자를 처벌하고, 국제시민사회에 공식 사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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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1 15:48 2005/12/21 15:48
자세한 속보는 http://gomediaction.net 게시판이나 채팅창을 활용하세요.
긴급 생방송으로 현지 소식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조금 있다가 여성 농민분이 구치소에서 찍은 영상을 보내준다고 하네요.

아래는 미디어문화행동에 올라온 소식입니다. 총 11명이라고 하고. 잠시후에 보석여부에 대한 청문회가 있을예정이라고 하네요.

황대석(37), 이현진(미상), 양경규(46), 림대혁(33), 강승규(37), 한동웅(46), 이영훈(35), 남궁석(45),김상준(38),윤일권(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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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9 20:55 2005/12/19 20:55
하이에나새끼님이 퍼오신 글을 다시 퍼왔습니다.  민주노총 김진숙지도위원이 추도사를 읽으시던 김주익열사 추모제가 기억납니다. 다들 울었었지요. 역시나 구구절절히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쓰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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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씨.가관도 길어지면 민폐라 한마디 하오.

 

근혜씨네 패밀리가 생산해 낸 불가사의가 한둘이 아니오만 그 중 대표적인 게,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을 그 당시에는 너무나 진지하게 엄수했다는 건데,그건 아마도 나쁜 일도 집단적으로 오래 하다보면 직업이 되기도 하는 그런 이치일거요.

거짓말이나 사기치는 일 같은 걸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거울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될거요.

근혜씨 아버지 시절.우리는 이 땅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아침마다 큰소리로 태어나야 했던 일이나,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듣는 자를 눈 부릅뜨고 색출하러 다녔던 일이나,토요일마다 모의간첩이 되어 배회하던 선생을 생포해서 경찰서에 갖다 바쳤던 일이나,그 일로 표창장을 받았던 일이나..로보트나 컴퓨터 게임이 없던 시절에도 우린 참 기발하게 놀았소.

그 중에서도 위문편지라는 게 있었는데, 걸핏하면 위로를 해야 할 만큼 그 무수한 국군장병 아저씨들을 내가 군대로 보낸 것도 아닌데,그럼에도 어린 내가 추운 날이거나 더운 날이거나 낮이거나 밤이거나 불철주야 나라를 지켜주시는 그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오늘도 또한 내일도 사시사철 불구하고 용맹하게 북한괴뢰도당으로 부터 나라를 잘 지켜 주십사는 고무와 오늘밤도 우리 국민들은 아저씨들 덕분에 발 뻗고 잔다는 사생활의 보고를 수시로 해야 했는데,숱하게 썼던 위문편지 중에,근혜씨 엄마 돌아가시고 슬픔에 빠진 영식,영애분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숙제로 내 준 위문편지를 쓴 건 압권일 듯 하오.

그 이후 두 번째 편지요.

평생을 일만 했던 우리 엄마가 입원도 못하고 돌아가셨을 때는 근혜씨로부터 어떤 위로도 받은 적이 없긴 하오만.

 

박근혜씨.진지하게 묻겠소.

50년도 진즉에 넘어 선 나이를 살면서 선거 때 말고,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러 본 적이 있으시오?

내가 아는 전교조 선생들은 걸핏하면 우는 못나빠진 사람들이오.

단 지 불편한 게 아니라 영혼을 파괴하는 가난 탓에 엄마는 집을 나가고 술만 먹으면 매질을 하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해 가출을 일삼는 아이에게 휴대폰을 쥐어주며 배고프면 전화하거라 무력한 당부를 해놓고는 돌아서서는 찔찔 짜는 사람들이오.

너무나 어린 나이에 세상으로 부터 받았던 상처 탓에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를 집에 데려다가 씻기고 재워놓고는 그 아이의 성마른 이마 위에 눈물을 떨구는 그런 사람들이오.

스승의 날.그 아이가 제 손으로 꼬깃 꼬깃 접어 책상 위에 놓고 간 종이학 천 마리를 품고는 기어이 닭똥같은 눈물을 쏟는 대책없이 여려빠진 사람들이오.

공장에 실습을 나갔다가 손가락이 잘려 돌아 온 아이를 보며 자신의 멀쩡한 손가락이 죄스러워 혼자 술을 마시며 훌쩍거리는 때때로 쓸쓸하기도 한 사람들이오.

이 넓은 세상에 아이에게 남았던 한 점 혈육 할머니마저 돌아가신 빈소에서 문상객 노릇에 상주 노릇에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할머니의 유골을 흩뿌리는 법까지 가르쳐야 하는 그런 전천후의 선생들이오.

 

박근혜씨.다시 진지하게 묻겠소.

지금까지 살면서 나와바리를 지키거나 더 확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누군가를 위해 단 하루라도 바쳐본 적이 있으시오?

여태껏 살면서,앞으로 살아가면서도 제 발로는 서울구경 한 번 못해 볼 장애아이들을 데리고 제 돈들여 홍성에서 서울 나들이를 하는 선생들이 있는 조직이 전교조요.

제빵사가 되는 게 꿈이라는 아이를 위해 일요일 제 시간 흔쾌히 바쳐 제빵 박람회가 열리는 서울까지 물어 물어 기꺼이 발품을 파는 선생들이 만들어가는 조직이 전교조요.

자 기 집처럼 편안해야 아이들이 마음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겠다 싶어 제 집에 있는 커텐 뜯고 액자 떼어다 상담실을 꾸미고,난로 하나를 상담실에 놓기 위해 교장실 행정실을 겨울이 다 가도록 드나들며 수십장의 똑같은 공문을 보내다가 결국은 제 돈으로 난로를 들여놓는 선생들이 조합원인 조직이 전교조요.

왜 그런 걸 자기 돈으로 하냐고 묻고 싶소?

근혜씨가 장내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날 세워 투쟁하게 될 예산삭감 대상의 대부분은 그런 힘없는 예산들이기 때문이오.

그래서 근혜씨는 밖에 있으나 안에 있으나 참 근심이오.

 

어 떻게 하면 산만한 아이가 학교에 재미를 붙일까 제 돈,제 시간들여 마술을 배우기도 하고,컴퓨터 게임이 놀이의 전부인 줄 아는 아이들에게 우리 놀이와 우리 노래를 가르치기 위해 이런 저런 단체들을 찾아다니고,퇴근 후에는 이런 저런 교과 모임을 일주일에도 두어 차례,쉴 틈 없는 각종 연수에 방학이 짧은 게 전교조 선생들이오.

그래서 전교조는 안 무너져요.

그렇게 사는 게 전부인 줄 아는 선생들을 근혜씨 작은 아버지가 1500명이 넘게 학교에서 ㅤㅉㅗㅈ아냈어도 전교조는 안 무너졌잖소?

그렇게 사는 게 선생의 삶인 줄 아는 선생들의 머리채를 잡아 패대기를 쳐가며 닭장차 차떼기로 실어 나르고 징역을 살게 했어도 전교조는 안 무너졌잖소?

근혜씨가 이사장으로 있었던 영남대를 비롯하여 비리의 종합셋트 같은 사학에서 눈 밝은 선생들을 그렇게 짤라 냈는데도 전교조 무너집디까?

그런 선생들에게 빨갱이에 좌경에 용공에 칠갑을해서 17년 째 "계란이 왔어요.계란이 왔습니다~" 만큼이나 똑같이 외쳐도 전교조 무너집디까?

그런 선생들이 아이들에겐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꼽히고,그런 조직에 조합원이 줄지 않는다면 방법을 바꿀 때도 되지 않았소?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하기야 근혜씨가 참교육을 어찌 알겠소?

빌어먹게 길기도 하던 국민교육헌장을 아침마다 외어서 한 자가 틀릴 때마다 한대 씩 맞아야 했던 기억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육성회비 가져오기 전에는 학교에 오지말라는 선생의 명령에 등 떠밀려 학교를 나서면서 운동장이 얼마나 아득하게 넓은지 눈물로 흔들리던 운동장 구석에 막막히 서 본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엄마를 찾아 큰 고무신에 작은 발이 자꾸 미끄러지던 논둑길을 걸어 본 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가 왜 논둑길을 비칠거리며 저렇게 한참을 걸어오는지 알면서도 모포기만 헤집던 엄마의 보푸레기처럼 살껍질이 일어난 새까만 목덜미에 흙을 집어 던지며 울어본 날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소풍 날.너 때문에 소풍도 못가는 거..우리 같이 죽을래? 눈만 꿈뻑거리던 애꿎은 소를 쥐어박아 본 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외양간이 텅 비어 있던 날.소가 매어있던 기둥을 쓸고 또 쓸며 미안하다.진짜루 미안하다.소야..울며 불며 소한테 편지를 써본 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여름내내 복숭아 밭에서 봉다리 씌우고 절 앞에서 아이스케키 팔아 모은 돈으로 겨울에 엄마 털신을 사들고 신작로를 한 달음에 내달려보지 않은 자가 참교육이 뭔지 어찌 짐작이나 하겠소?

 

근혜씨랑 내가 유일하게 공통점이 있다면 우린 둘 다 참스승을 만날 수가 없었다는거요.

학교마저 병영을 삼았던 근혜씨 아버지 덕에 공주님 앞에선 선생들마저 설설 기었을테고,내가 만난 선생들은 다 근혜씨 아버지 같은 사람들 뿐이었으니까.

그 때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권력 앞에 굴종하지 않는 전교조 선생님들을 존경하오.

근혜씨 아버지 시절과는 반대의 삶을 사시는,강한 자 앞에서는 더욱 강하고 약한 자와는 함께 할 줄 알며 나눌 줄 아시는 그 분들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하오.

... 129일을 크레인 위에 매달려 있던 노동자가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매는 세상에서도..농민이 전경의 방패에 맞아 죽는 세상에서도..그래도 내가 희망을 말하게 되는 건,아이들에게 길가에 핀 민들레를 허리굽혀 내려다보는 법을 가르치는 그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오.

 

우리 아이 지키기 운동을 하신다 했소?

우리 아이들..부디 진심으로 지켜주시오.

생 존권 때문에 목을 매거나..제 몸에 불을 붙이거나..농약을 마시거나..투신을 하거나..맞아 죽거나..그런 기가 막힌 이유들로 어린 아이들이 더 이상은 상주가 되는 일이 없게끔..그 올망 졸망한 상주들과 맞절을 해야 하는 일이 더 이상은 없게끔..

부모가 일하러 나간 빈 집에서 불타 죽는 아이들이 없게끔..

혼자 살던 빈 집에서 굶주린 개에게 물려 죽는 아이가 더 이상은 없게끔..

그 아홉 살 아이의 친구가 영인아.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편지를 쓰는 일이 없게끔..

먹고 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엄마 대신 맡아 키우던 보모의 남편에게 맞아 죽는 아이가 더 이상은 없게끔..

대물림 되는 가난 때문에 실습나간 공장에서 죽어나가는 아이가 없게끔..

알바라는 이름으로 어른들의 먹잇감으로 성적노리개로 너무나 일찍 체념을 배우는 아이들이 없게끔..

 

그리하여 지금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그 자리가 아니오.

아무도 없는 비닐 하우스에 개와 함께 어린 제자에게 수시로 라면을 사들고 찾아가야 했던 건 그 가난한 선생이 아니라 당신이었소.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가 걱정이 되어 아이의 집에 갔다가 개에게 물어 뜯겨 죽은 아이를 보고 충격과 자책감에 입원을 해야 했던 건 그 착한 선생이 아니라 당신이었소.

혼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밤에 일해야 했던 엄마 대신 세 살짜리 하나를 맡아 키워야 했던 건 자기 새끼들 키우기도 버거워 피폐해졌던 그 포악한 보모의 가족이 아니라 바로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치는 당신들의 한나라당 이었소.

근혜씨가 지닌 힘과 돈과 권력을 제대로만 쓴다면 그토록 목청 높여 외치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은 저절로 지켜질거요.

 

내심으로야 이왕 나간 김에 물대포도 맞아보고 방패에도 찍혀보면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늘그막에나마 철이 좀 들려나 싶기도 하지만 무현씨가 연정을 품은 이에게 그럴리는 만무할테니 이제 그만 집에 가시오.

한겨울에도 치마입고 빨각다리로 궁궐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공주님한테야 장외에서의 장장 한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지루하오?

대권이 걸린 일이라 사나흘만에 접기 뻘쭘하면 그건 어떻겠소?

눈만 내놓은 채 천원짜리 장갑하나를 팔기 위해 혹은 배추 한 포기를 팔기 위해 또는 신발 한 켤레를 팔기 위해 간절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어 보는 건..

근혜씨도 이 나라에서 60번 가까운 겨울을 지내면서 적어도 살을 에이는 추위가 어떤지는 겪어봐야 하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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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9 17:46 2005/12/19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