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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05년 8월 2일... ② - 풍파속에서 외로운 나.

“ 이런 사람 봤었어 ? ” / “ 아니? 처음이야. ”

 

이 수원구치소에서 아마도 이런 인간을 처음 본 것인지 직원들의 반응이 이러한 듯하였습니다.. 물론 저와 같은 장소에 있던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이었지요.



물론 그(재소자)들에게는 그 ‘법규’에 따라야 만이 그 알 수 없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무사히 출소할 것이고 쓸 때 없이 날 다툼이 나지 않을 것이니까요. 그리고 직원(교도관)의 입장에서는 그 높으신 분이 정한 규칙을 어기면서 배려(?)를 할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긴 합니다.

 

그런데 제 기준이지만 소지품을 영치하면서 그에 대한 확인을 지문날인만으로 해야 한다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고, 전 그러한 지시에 불복하며 서명으로 확인을 할 것을 요구하였지요.

 

그러나 그 분들은 역시나 자기들이 정한 걸 - 영치금관리규정 등 -  찾으면서 저에게 무인(앞서 말했듯이 ‘지문날인’을 무인(拇印)이라고 하지요.)을 찍으라고 윽박지르며 말하였고, 같이 입소한 분들도 ‘쓸 때 없이 싸우지 마라’ 등의 냉소적인 반응이었지요.

 

전 그러한 분위기에서 절대 주저하고 싶지 않았어요. 바로 국가의 개인에 대한 부당한 명령에 불복종을 하는 의미로서 병역거부를 선언하면서, 또 다른 부당한 명령인 ‘지문날인’을 거부를 하기로 결심하였고, 이미 경찰조사와 검찰조사에서 그 걸 실천을 하였는데 저의 결심이 이 행형시설에서 주저한다는 것이 제 자존심으로라도 포기를 할 수가 없었거든요.

 

또한 제가 하는 모든 행동이나 생각 등에 대하여 누군가 간섭을 하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도 있어서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기도 하였고요.
 
그런데 솔직하게 저 ‘주민등록증’은 가지고 있고, 신분증으로서 잘 쓰고 있어 여러분은 이런 불복종에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로선 이 지문날인제도에 대하여 예전부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지 내 지문이 누군가에게 넘겨지는 것이 싫어하긴 하였지만, 이런 반대하는 운동에 대하여 알지 못하여서 어쩔 수 없이 국가에게 팔아 넘겼죠.

 

그래서 지금이라도 이런 신념이라도 지켜보겠다고 발버둥을 쳤고, 결국 무인란에 서명 두 번으로 갈음을 하는 것에 성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치면서 왜 두 번이나 서명날인을 하는 것인지 묻고 싶어지네요.

 

하여튼 이 번잡한 상황에서 벗어났는데, 어떤 직원이 절 부르더니 다른 장소에서 대화를 하더라고요. 그리더니 이런 저에 대한 행동에 대하여 병역거부와 관련하여(한반도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등) 딴죽을 걸더라고요.

 

물론 전 평화주의에 기반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의 원칙으로서 굳세게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을 하였어요. 그럼에도 언제나 이 병역거부에 대하여 이런 논쟁을 하는 걸 보았고, 결국 당연하게 강조하고 싶었으나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다양한 양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믿기에 뭐 그렇지만 이 논쟁에 휘말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리더니 그 직원이 이런 말을 하였는데 ‘신상에 불이익이 있을 것이다.’ 라고 기억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전 이런 걸 듣으니까 어차피 이 사회에서 불편한 삶을 살아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어서 처음엔 별다른 느낌이 없이 당연히 무시하였지요.

 

그런데 그 이후의 해프닝이 계속 벌어지게 되었고,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저에게 심한 고통을 당하게 되었지요. 물론 다음 글에서 확인을 하면 될 것이고요.

 

그 후, 건강진단을 해야 하는데도 여건상 서면으로 대신하는 건강 체크를 하고, - 여기서 전 독방에 가려고 진단서가 있다는 식으로 발버둥을 쳤으나 역시 물증이 없다는 까닭으로 무산되었죠. 그 때 가지고 있을 껄... - 잠깐의 찬물 샤워(목욕을 하도록 되어 있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잠깐으로 대신하지요.)을 하더니 그 갈색 상?하의를 대충 사이즈 맞춰서 주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늘 입었던 옷과 해어지고, 그 칙칙한 관복과의 대면을 한 뒤 입혔고,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서 닭볶음탕과 그 유명한 ‘콩밥’(실제로는 정부미와 보리를 섞은 것이지만.)을 맛있게 먹었지요. 그리면서 무슨 사유인지 모르지만 신상과 관련한 서류를 작성하였고 날인란에 역시 서명으로 하였죠.

 

그리면서 앞서 저에게 딴죽을 하였던 그 직원이 저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국가인권위 진정’이나 ‘정보공개청구’(전자서신을 받기 위해서는 재소자 본인이 따로 신청을 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성폭력을 당할 우려가 있는 ‘신입식’ 자제 등을 중심으로 도움이 되려는지 모르는 교육을 하였지요. 그리면서 국가인권위 진정과 관련하여 예시를 저를 대상으로 하는데 저로선 참 주목을 당하는 것이 몸내 싫더라고요.

 

그 후 이 어지러운 시간은 끝나고, 어디론가 가더니 어느 사동(나중에 알았지만 ‘신입’ - 처음 들어온 이들을 가리킴 - 사동이더라고요. ‘사동’은 재소자들이 사는 시설을 일컬음.) 그 분들이 정하신 방대로 들어갔는데 3.92평에 9명이서 TV보다가 자는데... 그 때가 여름인지 땀을 잘 내는 저로선 정말 자기가 불편하더라고요.

더욱이 널찍하게 자던 습관을 가진 상태에서, 그 건장한 남성들끼리 틈이 거의 없이 앞에 누워야 하니까(소위 ‘칼잠’을 자야 할 정도이니) 아~ 끔찍했어요. 그래서 생체난로를 피하려 일행이 누울 때 발바닥에 있는 쪽으로 옳기면서 까지 어떻게든 시원하게 자기 위한 별짓을 다하기까지도 하였죠.

 

그러다 다음 날이 되면서 잠시간의 인원점검이나 배식 준비등으로 어수선한 것 이외에는 유치장에 있던 듯하게 편히 있었고 그러다 몇몇 분들이 다른 방으로 가게 되었지요.


그 후 또 하루가 지나가면서 어떤 직원이 남은 이들 모두에게 이동할 준비를 하라고 말하였고, 시간은 지나가니 모두 철문에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분과 다르게 층수도 다르고 방도 다른 곳으로 배정받아서 어쩔 수 없이 해어지게 되었지요.

 

그리면서 전 그 배정받은 곳으로 가게 되었는데 바로 가동 2층 1사 10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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