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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평택대행진 관련 재판 후기 그리고 아침의 대화

오늘 아침 피고인으로 출석할 9명을 비롯하여 여옥, 69Hz, 가람, 재성, 오리, Rei, 저 등 20명 남짓의 사람들이 수원지법 108호 법정에 갔습니다.

 

물론 지난 7월 245리 대행진 끝 무렵의 경찰서 진출(?)에 대하여 건조물침입/특수공무집행방해/집시법위반으로 공판이 열려서도 있지만, 참 편안하게 지내다 느닷없는 기소로 수원구치소에 유배(?)당한 용석 씨를 보는 까닭이 가장 큽니다.

 

더욱이 지난 공판에서 '선임계 미제출'로 인한 업무 미숙으로 4주를 기약을 하였기에 이번 공판을 기다리게 되었는데, 앞선 심리(결심)공판이 많아서 그 순서가 밀려서 예상된 11시 반을 지나 거의 12시쯤에 피고인의 자리 배치와 기결복 입은 용석씨의 등장으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용석 씨가 방청석에 있던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였는데 교도관들이 별 다른 제재 없어서 한동안 못 봤던 얼굴들 재대로 보았을 꺼라고 저는 짐작이 갑니다.

 

먼저 검찰의 심문에서는 맨 먼저 용석 씨에게 질의를 하였는데(여기서 주범으로 갈 듯 싶었죠.) '철문이 닫혔고 바리게이트를 쳤음에도 인파에 밀려 경찰서 안에 들어갔다.'는 다친 모 의경의 진술에 '무방비이었다'고 답했고, 경찰서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물론이고 핸드마이크로 사회를 보았다고 하였지만 잠깐 하였다는 수준인 듯한 답변이 하였지요. (그 나머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덕진 / 래군 씨의 진술과 그 나머지의 진술에서 공통적으로 우린 대행진 중 상인연합회 측에서의 폭력에 경찰의 경비가 없었으면서 평택역 앞 집회 후 돌아갈 때 전경이 막는 것으로 주민들이 대추리로 들어가지 못하였다는 것에 대한 항의의 차원에서 평택경찰서 정문 앞에 집회를 하기로 결정을 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일부 참가자의 경찰서 내 진입이 있었음에도 덕진 씨 등이 그 분들에게 설득한 후 다시 정문 앞으로 보냈다고 말하면서 경찰 측에서 '해산 경고방송'을 하였다는 걸 잘 모른다고 말하지만(그 쪽에선 3번 방송하였다고 하군요.) 자진해산을 하였음에도 연행해가고 더욱이 11명(1명은 불출석)만이 기소한 건 관련 전과가 있는 것 밖에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요.

 

특히 이 검사가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는 이가 있었냐?' 라는 질문에 그 누구도 답하지 않자 말도 안 된다는 억측으로 몰고 가는 것 같아서 제 눈으로는 이러다 쎄게 나갈 것 보였습니다.

 

그래서 모두 진술으로 재판이 열렸고, 판사측에서 남은 한 사람의 진술과 증인심문을 하기로 하면서 다음 기일을 2월 23일 오전 11시 반으로 정했습니다.

 

* 덧말 :  오늘 저의 만기일이 되어 그나마 사슬이 푸었는데 용석 씨는 또 한달(정확히 30일)을 기다려야 하는 참 근처에 살고 있음에도 안쓰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오늘 일어나더니 어머니가 뭐라고 하더군요.

뭐~ 물 잠글고 씻은 흔적 닦아라는 것을 가본이고

돈 벌 궁리나 하라고 말하면서 어디서 이상한 걸 듣었는지

'교회'나 가지마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 그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대꾸하더니

소위 사이비 종교처럼 몸과 맘 그리고 돈 날린다는

답만 들었을 뿐이었지요.

 

사실 제가 지금 하는 걸 어머니는 모르거든요.

물론 무엇을 하고 있는 것 자체도 모르는데 말이지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지 난감하네요.

 

그리면서 이 한마디에 절 치더군요.

'니 아버지가 봄에 집 팔꺼다.'라고...

지금 여기에도 재개발 광풍이 불어서 좀 집값이 뛰었거든요.

 

더욱이 이 인간은 뭐 강원도에서

농사지며 산다면서 어머니에게 돈  달라고 하였고

정 없으니까 거기서 빼낼려고 하는 듯 보이는데...

 

아~ 지금은 거의 남남이 되었고 어자피 독립을 하여하 함에도

그 인간에 대한 싫은 감정은 어쩌할 도리가 없네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나가야 하는데 뭐

어디로 갈 곳이 있냐고요.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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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년 당내 동시선거에 대한 소감.

오늘 집에 나서서 민노당 수원 사무실에 가서 투표를 하는데...

경선으로 치뤄진 도당은 별로 찍을 건 없는데

(참고로 전 빈 종이로 답했지요. 다시 말해 기권!)

오로지 찬반으로 선택을 하는 이 수원지역위에선

일반/여성/장애인 명부를 합쳐 아마 50여개를 일일이 찍여야

했었지요.

 

이런 걸 보면 누군가 '그러면 분회별로 선거구를 두면

투표수를 줄이게 되지 않겠냐고' 물어 보시겠지만 저도 이 문제에 대하여

제기를 해봤는데 아직도 깜깜 무소식이고 이 어리숙한

당무로 이번에도 일일이 찍어야 했었습니다.

 

그 후 모 부위원장의 그 짜증나는 반말로 절 부르더니

밥 먹었냐고 물어본 다음

(그때 뭐라고 대꾸하고 싶었으나 참았지요.

뭐~ '연합'의 소굴에서 살아남은 방법은 '인내' 뿐인데요. 뭐.)

전 남은 일이 하려고 다산에 돌아 왔습니다.

 

앞서 이번 선거에 제가 출마를 하였다고 아실 것이고 그 쪽에서

이미 짜여진 각본 위에 왠 잡티가 보이는 것 처럼

8명이 정원인데 저의 등록으로 9명이 되었다는 것도 아실 것이고요.

 

그래서 지금 투표 중이라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에

당락을 말할 수는 없으나 별로 할 것이 없는 당직선거에 대하여

넞두리를 말할께요.

 

먼저 저의 경우 도당 대의원에 자진출마를 한 후

제대로 운동을 하려면 최소한 연설회나 유세를 하거나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 등을 받아서 홍보를 하는 것이

정석이건만...

 

여긴 단선으로 나온다고 연설회는 물론이고 유세는 할 기회가 없었고

개인정보 보호-이 것에 대해선 저도 인정은 하지만-를 핑계로 

그 어떠한 자료를 받지 못하니까 경력이나 조직/인맥 그리고

뛰어난 능력이 없는 위치에 있지 못한 저에겐 사실

다른 후보에 비하여 그 출발선이 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선관위 차원에서는 홍보물 발송을 대행해 주어야

함에도 어찌 종이 공보물 이외엔 아무런 지원이 없으니

아~ 뭘 선거운동을 할 것이 없었어요.

 

해봤자 선거게시판에 실리는 제 글 뿐이었는데

문제는 이 지역에선 도당 집행부 선거가 동시에 하는데

역시 동부연합 대 반(反)동부연합 구도의 경선으로 나가니까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래도 다행인지 모르나 이후에

저와 같은 명부에 있던 어느 분이 갑자기 사퇴하게 되어서

단선으로 찬반이 되었기 망정인지

'조직투표'(전 비주류)와 '소수자'(병역거부자) 그리고

'연령주의'가 판치는 제가 있는 수원에서

또 다시 '낙선'이라는 정신적 린치를 당하게 되겠지요.

 

그래도 찬반이라 의외의 변수가 없는한 당선은 하겠는데

참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앞서 수원에서 조직낙선을 당한 당원이 있고

선거 내용이 다른 이와는 완전 차별화를 하여서

( 감표를 각오하고 '투쟁'(?) 하여서... )

저로서는 당선하면 '규약' 전면개정을 이용해 민주화운동을

할 것이고 낙선하면 그 짜증나는 민노당에 한동안 신경 안 쓰면 되니

누군가 당원 몇 년하다 보면 듣도의 경지에 이른다고

하는데 제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당선하면 좋겠죠.

 

* 덧말 : 전 지난 인권활동가대회에 참가를 했었는데

그 중 수다마당에서 왠 '대선'에 대한 장을 열게 한

사람의 안면을 기억한다면 그게 접니다.

 

그래서 이 글을 보다 아시면 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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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좀 큰 일을 저지렸습니다.

앞서 말한 것이지만

저 '스스로의 결의'(!)로 민주노동당 경기도당 대의원에

출마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후보서류를 작성하는데

문제는 덧붙여서 등록하려고 18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미리 추천하는 글을 게시함에도 어찌 답해주신

분이 없어서 정말 어제가 마감이라서 쪽수 채우려고

여기저기 연락하면서 알수없는 긴장감까지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다행히 제가 연락한 모든 당원 동지들이

추천에 흔쾌이 응하여서 떠돌이 추천인을 포함하여

어쨌든 자리는 채워져서 마감 한 시간전에 접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제가 출마한 명부에서 정원은 8명인데

저 까지 포함해서 9명이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투표를 5명에게 하였기에 아시다시피

선거 자체게 '조직'이 필요함에도 저에게 빈약 아니

전무한 상황에선 그 낙선자가 제가 될 공산이 커서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상대후보도 대부분 경력발이 짱짱하니까요.

 

물론 여기서 구걸(?)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지만

결론은 제 스스로가 재미있게 선거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한동안 '회고록' 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응원해 주시길...

 

---

 

출마의 변

 

지금 이 글을 보시고 있는 수원시위원회 당원 동지께.


저는 감히 이런 표현으로서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지금 잘 버티고 있으십니까?


물론 '버티고 있다'라는 표현이 좀 상스러운 표현이다라는 건 알지만 제가 감히 이러한 표현을 쓰는 건, 한국의 노무현 정권과 미국과 EU 등의 거대 국가권력 그리고 초국적 자본들이 민중들에게서 얻어냈던 수많은 권리를 이따금 빼앗으려고 하는 이 신자유주의로 인하여 해고의 두려움과 가계의 빈곤악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더불어 제가 병역거부로 김천교도소에 있을 때 지난 531지방선거의 본전마저 잃은 성과에도 당기구 전체에선 차마 조잡한 대책이라도 내놓여야 하면서 실천을 해야 하지만 뚜렷한 기미는 보이지 않는 점과 정치적 입장차는 있을 수 있음에도 거대담론과 당내 거대 세력의 일방적 운영방식으로 인한 소외감의 표현으로서 질문한 것입니다.


저는 지난 9월 29일, 429일간의 징역살이를 마치고 자유를 얻게 되면서 우리 민주노동당이 어떻게 되었는지 하도 궁금해서 주변 당원들에게 인사해면서 질문을 하더니 역시나 '그들만의 세상'에만 살고 있다라는 답이 들렸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수감한 동안 민주노동당이 어떻게든 잘 되기를 빌며 지켜보기로 마음먹던 전 이번선거에서 정말 '탈당'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쓰며 당내 민주화를 위해 분신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세 달을 다산인권센터에서 자원활동가로서 돌아오면서 안으로는 '인권영화제'와 '경기도청에 대한 활동보조인의 실질운영 요구를 위하는 투쟁'에 어느 정도 동참하면서 외부로는 최근 세차례 있었던 민중총궐기에 가석방중이라는 불리한 상황에도 그 투쟁의 현장에 함께 있으면서 지금도 하나둘 탈당의 갈라짐이 있지만, 저와 비슷한 당원들을 봐서라도 그동안 지불하였던 '보험금'이라도 재대로 행사한다는 다짐을 안고서 잔류는 물론이고 이번 당직선거에 자발적으로 출마를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제 스스로 공약을 내놓을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아서 예전 출마의 변 보다는 적지만 그 동안 생각한 것으로서 대신하겠습니다.


먼저 이 진보정당이라 자부하는 민주노동당에서는 국가주의(민족주의)나 군사주의에서 더욱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보고, 이제야 장애인 당원에 대한 당직공직 할당이 공식화가 되었지만 성소수자/이주노동자/청소년/다민족인(가족)/병역거부자 등의 사회소수자에 대한 당내의 배려가 더욱 더 공식적으로 인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역에서는 같은 직선투표로 선출하는 대의원에 대하여 운영위원회의 일부권한을 대의원대회으로 이관하고 대의원대회의 계최 횟수도 늘려서 당원참여의 폭을 확대할 수 있게 하고 회계감사의 경우 지역위 운영에 대한 감찰과 당기위의 권한까지 확대하는 감찰위원회 신설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중앙당에서 일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각종 당규를 지역위 실정에 맞게 자체 제정을 하면서, 실무적으로 필요함에도 아직까지 전무한 규칙들을 제정할 것을 요구할 것이며 만약 운영위원회에서 뚜렷한 추진 없이 미진한 경우 규약 전면개정을 통해서라도 도입할 것입니다.


특히 문제가 많았던 '각급 위원장'의 밀실선출에 대한 시정과 회계 및 회의록공개 그리고 대상자가 아니지만 당 회의에 참여하고자 하는 평당원에 대한 발언권 부여, 일방적인 담론이 아닌 다양성이 보장하는 교육이나 각종 캠페인의 참여 등을 우선으로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이 구호로서 정리를 하겠습니다. " 또 다른 민주노동당은 가능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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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것저것 꾸미면서...

어제 그때그때마다 수감기록을 써야 하건만

청소를 비롯해 이것저것 하다보니 어제 대충 쓴 글로서

마무리를 지었는데...

 

오늘 시내 모대학에서 이 타자질을 하고 있는데

이달이 만기라 돈 벌어야 해서 일자리 있나 알아보면서

제 집 좀 꾸미면서 특히 앞에 목표처럼

십여년 냉전중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전세라도 어떻게든 벌어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저의 예상으로 3년 정도 걸릴 것 같고

임금의 반(최소 50만원)을 적립식펀드이라도 부어서

집값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이런 것이 우선이다면 다산과의 작별은 피할 수 없듯이라서

좀 그렇네요.

 

그럼에도 제 자신도 절박하기에 해야만 하는데

이 나에 대한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것이 정말 싫다.

 

그리고 잡담이지만 전 지금 언론이나 사이트에 보면

짜증이 막 나면서 직접 간부들이나 그 쪽 사람들을 보면

더 짜증이 막 나오는 민노당 당원인데...

 

이번해 당직선거도 있어서

저도 우파들이 득실거리는 이 수원에서 한번(여러번 해야 하지만...)

'평등'의 딴죽을 걸고자 대의원에 출마할려고 합니다.

 

물론 중앙위원이나 중앙당대의원으로 출마를 하고 싶으나

아직 경륜이 모자른 것이라 하향지원으로 경기도당 대의원으로

나서기로 마음먹었고 이미 출마서류를 다운 받아 어느정도 작성은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쪽에선 후보 추천 문제도 있어서

지금이라도 대응을 해야 하는데 참 반응이 없어서 좀 답답하네요.

 

다욱이 저의 경우에도 18명이상의 후보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과연 그러한 인원이 있을련지...

더구더나 낙선도 우려될 수가 있기도 하고요.

 

솔직히 저로선 하나에 집중을 하고 싶지만

쪽수가 없어서 가끔 외도만 하면 되기에 출마를 하려고 해요.

 

그럼 여러 걱정을 안고서 내일 북한인권에 관련한

내부 세미나가 있어 사무실에 가고 꼭 수감기록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엔 재소자에 대한 걸로 외전 써볼라고 하는데...

 

* 덧말

 

: 최근 중앙당 당게에서 '상근자 노조'에 대한 막글이

올라오는데 전 한나라나 열우도 있는 노조에 대하여 왜 딴죽을

내는지 이해가 안가면서 당연히 대찬성입니다.

 

물론 '행인'님의 전진에 박수를 주고 싶은데 그 날 갈 수가

있으련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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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방기간이 한 달 남짓 남았건만...

오늘 사무실에 도착하니 옆자리에 편지 뭉치가 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봉투를 보니 '~우체국 사서함 ○호-○○○○'...
이른바 징역편지 즉 행형시설에서 수감 당한 재소자에서 보내는 편지이지요.

 

그런데 제 추측이지만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매년 출감하는 '감옥인권' 시리즈를
보고 여기로 보내는 것 같은데, 아직도 옛 주소로 되어 있어서
소인에 찍힌 날짜가 거의 두 달 되는 것이었어요.

 

그럼에도 이러한 '민원'에 어떻게든 답해보려고 다른 분이
하나씩 뜯어보았는데 대부분이 참 제가 있는 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이라는
명칭과 혼동이 되어선지 무슨 진정서 같은 내용이더군요.

 

그러던 중 그 다른 이가 저에게 한 편지를 보는데
글을 읽으니 보내는 이가 과거에 삼청교육대에 끌고 가버려
상당한 장애를 입혀 지금도 고통스럽게 지냈는데
다행히 이와 관련한 보상위원회에서 보상금이 나왔는데
본인으로선 그동안 의료비용으로 들은 금액과는 텃 없이 모자란 것이더군요.

 

그래서 국가에게 실질적인 보상을 요구하며 행정소송을 하였다고 하였는데
1심에서 각하(기각도 아닌...) 결정이 나와 항소중이다고 하면서
장황스럽지만 이 소송에 좀 도와달라는 듯한 글이었고,
제가 그 편지에 있는 사건번호를 통해 조회하니 지금도 계류중인 것 같았어요.

 

그럼에도 우리들은 이 요청에 쉽게 받을 수는 없는 듯하고
결국 삼청교육대과 관련하는 활동가에게 전달하자는 결론을 하였은데...
이 알 수 없는 씁쓸함이라...

 

그러선지 '사람' 이달호를 보니
광주교도소에 있는 어느 분이 박래군 씨 이름으로 보낸 편지를 실렸는데
감정적인 판단으로 내린 징벌이나 부당한 처우 등에 대하여
구제를 해야 하건만 그저 본인에게 도움이 안 되는 형식적인 반응뿐이며,
'재소자'(법정용어는 '수용자/收容者'이지만 이 용어가 시혜적인 어감이 있어서
저로선 싫어함)에게는 엄연한 시민임에도 소측에선
이를 동등하게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 이런 구절에는 나도 대단히 동감!
특히 내가 있는 교도소가 대상이 만 20~25세이다보니 공식석상에도
교도관이 반말로 대하니까... -

 

또한 행형시설 내 최대의 악법인 '집필사전허가제'로 인한
원하지 않던 낙인찍힌 것(문제수), 언제나 골치아픈 의료권까지
종합적으로 지금이야 권리구제가 확대되어 인권침해의 정도가
약해졌다고 반문하여도 교정이 아닌 관리에 치중하는 당국의 현실에
'아직 멀었다'다는 답뿐인 듯 느껐습니다.

 

참 제가 지난주 앞선 글의 주인공인 용석씨와
영등포교도소에 있는 김성환 위원장과 병역거부자인 영진 씨까지
아주 행형시설을 왔다 갔다 왔습니다.

 

그 중 이후에 구속당하는 노동자 등의 양심수를 위해
이따금 단식투쟁을 하며 교도소측과 지속적인 사보타주를 하는 김 위원장을
보며 제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었음에도 현실에서 여러
어러움이 느낀다는 것에 미안함이 들었고 이 삼성에 치졸한 법정 탄압으로
억울하게 약 2년간 징역살이에 있다는 것에 화가 났었지요.

 

그럼에도 '바쁜데 왜 왔어?'라는 첫 물음에도 반가움이 들었고
현 시국에서 소외 된 듯하다고 보았건만 매달 면회 횟수가 채워지면서
지율 스님도 찾아 왔다고 말을 하였지요.

 

그리고 제가 있는 단체 사람들이나 문정현 신분님, 김지태 이장님의
안부를 여쭙기도 하였지요. 참 직접 안부를 묻지 못하고 한 사람 걸쳐서
안부를 전해야 하는 그 심정... 저도 그러 했기에 만날 수 있다면
전해드리 겠다고 답했지요.

 

또한 영진 씨의 경우 어머니와 전쟁없는세상에 있는 모 님과 함께
마이크를 통해 대화를 나눴는데, 저로선 그 시간동안
모자간의 '깨소금' 냄새가 진하게 나니 눈부터 시작해서 허리 통증
그리고 공황장애까지 있다는 병을 다 당했던 영진 씨가 모습이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 아무리 외부용이더라도 이런건 쉽지가 않는데... -
안심이 들고 모자 사이에 나는 이 '깨소금' 냄새에 왠지 부럽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첫 대면이라 시간상 다른 분과 대화하다 몇 마디 나눈 정도이지만
하여튼 두 번의 좌절 끝에 성사가 되어서 좋았는데...
지금 출역을 하며 적응을 하고 있는데 앞서 공황장애 때문에
소측에서 수시로 작업취소를 시도하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서
가뜩이나 스트레스 받다 내면의 선을 넘어 버렸던 이에게
아니 또다시 간섭을 하는 저 행정을 보며 악 화가 났고 어떻게든 버티라고
전하였지요.

 

물론 시간이 끝났다는 방송이 나오면서 마이크가 꺼지는 그
안타까움은 느껐음에도 수시로 손짓을 하는 저 모자의 애잔함이...

 

그리면서 이제 2007년이 되었는데 참 제 자신은
아직 경찰의 부름 없이 무사히 보내고 있지만 참 여러 갇힌 벗들 때문에
원하지 않는 동거는 계속 이어지고 있네요.

 

다시 말해 전 아직도 '갇혀저 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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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육신을 끌며 법정에 가보니...

아마도 재소자의 입장으로는 재판을 하려고
목욕재개나 맨밥 먹기 등으로 잡귀신이 몰아내길 빌고 빌었건만...

 

무슨 이유이든 법정 옆 방에서 기다리다
재판이 연기되었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그 처량함은... 아시는 분은 다 아실 것입니다.

 

참 그 분의 심정으로 자신이나 밖에 모든 이들이 이 날을 기다리며
빨리 선고해서 벌금으로 마무리가 되길 바랬건만,

오늘 오후 재판에서 변호사 선임의 과정이나 모 활동가의 불참 등으로
재판이 4주 연기하게 되어 1월 24일 오전에 속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으로는 최소 한달 동안 그 춥디추운
구치소 꼭대기에 있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우리들이나 피고로 참석한 모든 이들이
그 분의 안면을 그토록 기다렸는데 이후 나오려고 하는데
누군가 하는 말이 참석하려 법정으로 들어가다
아무도 없는 걸 보며 다시 들어갔다고 하네요. 아~참!

 

그래서 저를 포함한 몇몇 이들이 그 분이 구치소에 가려고
호송차로 탈 때 얼굴 보려고 1시간 반을 기다렸는데...

 

이 직원들의 횡포(?)로 사진 못 찍히게 만들고
결국 그 분이 연승줄과 수갑이 채워진 채
이에 가로막힌 철문 사이로 멀리서 보아야 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저 안에선 보이지 않지만
열심히 손을 흔드는 선에서 배웅을 해주었지요.

 

그러다 ㄱ 활동가의 빽(?)으로 이미 면회횟수 다 채웠는데도
한번 더 만날 수 있게 되었고 면회실에 저를 포함해 5명이서
(심지어 7명까지 들어갔다 두분은 얼굴 보다 직원에 의해 쫒겨났죠)
앞서의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그 험난한 과정에서도
우리들 얼굴을 보았다고 말해서 그 추운 날씨에도
결심이 있었다고 느끼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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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몸을 끌며(?)...

지금쯤 내가 만날 분이 구치소에서 법정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겠지.

 

오늘 수감중인 어느 병역거부자가 평택 행진건으로

검찰에서 기소 붙혀 재판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뭐 대단한 짓을 하는 건 아니라서 당연히

벌금으로 끝낼 수 있겠지만 이 분은 이미 징역 18개월 받고

잘 착실하게 지내어서 교도소내에서 좋은 자리까지 갔었는데...

 

언제나 이 '검찰'이란 집단은 활동가에겐 짜증와 분노를 만드는 것처럼,

결국 저 검사는 모 프로그램에서 '복수'하겠다는 의미의 '너 나와'라고 불렸고

그동안의 고통의 작은 산물은 여지없이 깨져서 지금 수원구치소에서 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한 그 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오늘 재판에 있을 수원지법으로 갈 예정입니다.

 

물론 벌금으로 나오면 좋으려만 문제는 기결수이라

잘못하다는  추가로 실형을 당할 수 있어 걱정이 드네요.

뭘 2/4/6월 정도의 작고 주범(?)이 아니니까 큰 형량을 주지 않지만...

 

저로선 절대자를 믿지 않건만

이렇때에는 정말 그 분의 힘을 기대야 하네요.

정말 벌금 떨렁 10만원으로 나오길 바래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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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사라진 내 지갑이여~

오늘 갑자기 수원구치소로 이감온 용석씨 보려

면회를 하고 난 뒤 밥을 먹었지요.

 

그리면서 다 식사 다 마치고 밖으로  나가는데...

뭔거 허전함이 들더니 역시나...

 

나의 삶에 대한 지킴이 중에 하나인

지갑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 입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 보았지만...

앞서 신분증 꺼내려고 한 것 이왼 전혀

내 머리속에 기억이 없다는 것이죠.

 

물론 그런 걸 없다고 삶이 뭐라 달라지나라고 말할 수는 없고,

주민증은 있으니 2차 문제은 없고

통장에 있는 액수는 어느 정도는 가지고는 있으니

절대 빈곤과 난감함은 피했지만...

 

앞서 4년여 전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을 때

웃고 넘어 갔는데 이번엔 길가에 주어서 잘 써먹었던

학생용 교통카드까지 사라지니 참 가슴에서 오는 무거움이란...

 

아~ 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래서 일단 다산에 가서 마저 해야할 걸 처리하면서

위안삼아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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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제 늦은 과제를 마첬다.

그저께 모 영화관 사이트를 보다가 다른 분들이 보자고 하였는데

여려가지 까닭으로 거절한 그 영화가 아직도 상영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오늘까지 상영을 하기로 되어 있고

시간도 오후 2시 40분밖에 없어서 

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사실 제가 대부분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않을 뿐 만이 아니라

TV도 뉴스나 다큐, 애니 등 특정프로를 잠깐 보는 것 이외에는

눈이 안가더라고요.

 

물론 돈이 없어서 영화나 콘서트 안 간다는 것도 있지만

제 마음엔 안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대중)문화엔 좀 문외한하다고 말할 수 있나?

 

그럼에도 제가 왜 그토록 무심하던 '영화'를 보려고 하였는지...

뭐 심지어 어제 좀 늦게 일어나자 마자 밥을 '먹지 않고'(!)

무작정 그 영화관으로 갔을 정도이니까...

 

음... 이 블로그를 잘 보았다면 착 알 수가 있겠는데

바로 '방문자'를 늦게야 봤거든요.

 

심지어 제돈(7000원) 내고 들어 갔으니...

또한 오늘 종영한다고 어제에도 매진이었음에도

제가 도착할 때에는 다행히 표가 있어서 제빠르게 샀지요.

(알아보니 좀 연장되어 있더군요)

 

뭐~ 그 걸 본 느낌은 그냥 관객 입장에는 몇개의 배드신이

15세 관람가 치고는 좀 이해가 안들 듯 싶었으나

(아니면 내가 늙어서 그런가?)

조금씩 솟아오는 웃움거리들이 있었지요.

 

그리고 병역거부자로서 느낌을 말하자면

여호와의 증인들의 생리를 약간 안다면 알 수 있는 실소와

병역법 위반에 의해 재판 당할 때 계상의 최후진술 신과

구속 후 면회 신(특히 호준의 아들이

'삼촌 왜 못 나와'라고 되물어 말을 할 땐 오히려 호준이 '꺼내줄께.'라는

명대사보다 왠지 잊혀짖 않네요)을 보며 눈가에 맻히는 눈물...

 

또한 끝난 뒤에 뭔가 가슴이 무거운 듯 한동안

재대로 가누가가 어러웠다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뭘 얻어맞은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물론 다음에 정리를 하겠지만 저도 재판에서 최후진술 때

미리 적어둔 글을 바라보며 읽은 것이 생각이 나네요.

 

하여튼 뒤늦게 '방문자'를 보니 정말 제돈을 잘 냈다고 평하고 싶네요.

정말 이 별 볼 것도 없는 영화도 부지기수인데...

 

그럼에도 정이 매마른 것인지 왜 이리 눈물이 펑펑 울지 않고

찔끔 나오는지 참 답답함이 드네요.



그저깨 모 사무실에 있는데 정말 오랜만에

'CEO'라고 부르는 형이 나타냈더라고요.

 

그렇더라도 심심해서 오는 건 아니고 어느 단체에서

회의를 하려고 온 듯 싶었는데 문듯

저에게 이런 걸 묻더라고요.

 

물론 최근에 나온 'UN 자유권 권고'나 '개인통보에 대한 권고' 등

병역거부에 관련한 소식을 들먹이면서

이 병역거부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뭔가 액션을 해야하지

않는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제가 뭘 주도하는 성격이 아니고

발언력도 떨어져서 (운동 특성상 뭔가 물고 늘어지는

분위기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별 다른 답을 내놓지 못했지요.

 

전 그 물음 이후에 생각에 잠겨 봤는데...

최근 장애운동진영에서 '사회복지법' 개정을 요구하며

광화문에서 국회까지 72시간 연속 3보1배를 하였는데...

 

혹시 우리 쪽도 이런 걸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좀 겁이 나고 부담이 가긴 하지만

병역거부권 인정을 요구하며 청와대에서 국방부를 지나 국회까지

쉼없이(아마 24시간 이상이 걸릴 듯...) 때로 마빡이를 하며

도보 행진을 하는 것은 어떤지...

 

* 덧글 : 그동안 바쁜나날을 보내다 잠시 쉴 틈이 생겼건만

이번주 토요일에  병역거부로 수감당한 한 분과 면회하기로 되어있고,

끝나면 홍대쪽으로 가서 모 단체의 후원파티를 가야 하면서

그 다음날엔 평택 송년한마당까지... 참 쉴 시간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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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힘이 든다. 그리고 울고 싶다.

방금 전 '다산'에서 발행하는 모 (여러분은 아실 듯) 주간지에 실릴

원고를 탈고한 뒤 이렇게 잡담을 씁니다.

 

먼저 어제까지 심신이 피곤하게 징역살이를 하다 출소한 뒤로

수원인권영화제부터 시작해서 경기도청르 생대로 하는

활동보조인에 대한 실질적 도입 투쟁

 

그리고 최근 평화수감자의 날 준비나 한미FTA 저지 총궐기로

수시로 왔다 가니가 정신도 없었고 쉴 틈이 없네요.

또한 집안일을 해야 함에도 딱 필요한 것 이외에는 전혀

손을 대지 못해서 부모님의 시선이...

 

더구더나 2차 및 3차 총궐기에서는 소위 '불법폭력시위'로 인하여

연행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 인한 가석방의 취소 그리고

남은 116일을 구금당해야 하는 억울함까지 있어서 거리에

있지 못하고 인도에 남아 있거나

전경이 가로 막힌 라인에 가까이 가는 걸 피할려는 저의

내적 갈등에 대한 외적 표현이 미안하기까지 하네요.

 

그래도 거창하게 조국과 민족은 절대 싫어하고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의 '민중'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내 가슴에 손 엊어 옳다는 것라면 행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뜩이나 살림살이가 악화되는데

그 누구도 영향을 피할 수가 없는 (한미)[모든] FTA에 반대하고,

전 세계의 군사주의를 심화하게 하는

이라크와 레바논 그리고 이 딸에서의 전쟁(위기)에 반대하는

것이니까요.

 

물론 제가 앞서 구속을 당해선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 한기를 피할 수 없는 평화수감자에게

따뜻한 손길을 주시는 것도 하나의 실천이고요.

 

특히 요즘에는 이메일처럼 재소자에게 편지를 보낼수 있는

전자서신제도나 화상전화처럼 멀리 있는 재소자에게

면화를 할 수 있는 화상면화제도가 있으니까 시간이 되시면

(물론 여유가 있으련지 모르지만 ) 꼭 해주세요.

 

그렇더라도 나와는 잘 모른다고 무관심하지 마시고,

부담감 갖지 마시고 자기 소개식으로 글이나 말을 걸어 주세요.

 

저도 작년 이맘쯤에 관계가 없던 어느 분이 갑작스럽게

크리스마스 카드가 도착이 되었고 그 이후에도 편지로서 교류까지

이어젔거든요. 더구더나 여러가지 이유로 심신이 피곤하였고

외로웠던 저로선 작은 손길이었지요.

 

그리고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건만 이렇게

바쁘게 지내다보니 보답할 틈이 없네요.

 

참고로 전자서신을 쓸 때 이 반인권적인 주민번호로 통한

본인확인이 거슬리기도 하지만, 주소란이 있어도 반드시 내용 중에 

주소를 정확히 꼭 쓰시면 답장을 할 수 있다는 걸 아시고,

면회도 그 대상자의 후원인이나 소속단체 등에 연락해서

반드시 확약을 받아야 하는 건 아시죠.



다름이 아니라 이 병역거부운동 내부에서 광풍(?)을 불고 있는

'방문자'에 대해서죠.

 

더욱이 가끔 제가 있는 사무실에서 밤샘 작업을 하는 아무개의 글을

보다 문듯 눈물이 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감수성이 둔해진 것인지 왜 눈물이 나지 않고 맹글러리는지...

 

하여튼 그 감상문을 보며 저의 재판과정을 더듬어보니 정말

왜이라 할 말이 많아지고 우울해지는 것인지...

 

그리고 참 내가 허구나 자본주의적 요소가 싫다면서

영화나 드라마 잘 안보는데 또 다른 이에게 표를 얻을 기회를

스스로 놓치는 건 왜 이러는 지...

 

물론 다른 분들이 서로나도 보겠다고 아우성을 치니까

서울에 가기가 쉽지 않는 저로선 스스로 놓쳤지만...

 

참 내가 바보고 정말 보고싶다.

그리고 울고 싶다.

 

지금도 수감을 당하는 양심수나 평화수감자에게

"꺼내줄께"라고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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