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 2023/01/12 22:31

2023/01/12 박완서,재클린 로즈미,미야베 미유키

엄마의 말뚝, 박완서

81쪽.어머니가 세운 신여성이란 것의 기준이 되었던 너무 뒤떨어진 외양과 터무니없이 높은 이상과의 갈등, 점잖은 근거와 속된 허영과의 모순, 영원한 문밖 의식, 그건 아직도 나의 의식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의식은 아직도 말뚝을 가지고 있었다. 제아무리 멀리 벗어난 것 같아도 말뚝이 풀어준 새끼줄 길이일 것이다. 

88쪽.그렇건만도 어쩌다가 바깥 재미에 빠져 집 생각을한 번도 안 하는 수가 있고 그럴 때마다 섬뜩한 느낌과 함께 제정신이 들었다. 나는 그 섬뜩함 자체를 사랑했다. 그 섬뜩함은 일순 무의미한 진구덩의 퇴적에 불과한 나의 일상, 내가 주인인 나의 살림의 해묵은 먼지를 깜짝 놀라도록 아름답고 생기 있게 비춰주기 때문이다. 그 요술 같은 조명 효과 때문에 나는 마치 첫 무대에 서는 배우처럼 가슴 울렁거리며 새롭고도 서툴게 나의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가 있었다. 비록 일순의 착각에 불과한 것이더라도 권태가 행복처럼, 먼지가 금가루처럼 빛나는 게 어찌 즐겁지 않으랴. 뜻밖의 삶의 축복이었다.  

숭배와 혐오, 재클린 로즈

26쪽.어머니가 아이의 죽음 배후에 자리한 정치적, 사회적 병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겪은 불행이 불의의 결과임을 세상을 향해 폭로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거칠게 말해, 어머니는 캐묻지 않고 말을 너무 많이 하지도 않을 때에만 고통을 겪을 자격을 지니며 동시에 진심어린 공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29쪽.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앤절라 맥로비가 "신자유주의적 모성의 강화"라고 묘사한 현상을 현재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완벽한 직업과 완벽한 남성과 완벽한 결혼 생활을 누리는, 잘 차려입은 중산층의 주로 백인 어머니들. 이들이 경험하는 충만한 만족감 덕분에, 가난하거나 흑인이거나 혹은 단지 인생의 여러 복잡한 상황 때문에 그 상에 부합하지 못하는 여성들은 인생에서 완전히 실패했다고 느끼게 된다. 

30쪽.지금까지 내가 만난 어머니들은(나 자신을 포함해) 하나같이 사회가 기대하고 지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며, 흔히 어머니가 구현할 것이라 기대하는 상투적 특징과 상충되는 모습을 보였다.

아기를 부르는 그림, 미야베 미유키

94쪽. 그런 행운을 부러워하고 그 덕을 나눠 받고 싶은 바람에는 당사자도 의식하지 못하는 일말의 시샘이 섞여 있게 마련이다. 그 시샘은 가랑비 한 번에도 싹을 틔워 버리는 미움의 씨앗이다...이봐, 기타이치. 사람 마음은 밭 같은 거다. 밭에는 씨앗이 수없이 떨어져 있지, 그중에는 네가 뿌린 적이 없는 씨앗도 있어. 그러니 부지런히 잡초를 없애는 게 중요해.

130쪽. 거짓말이란 건 말이다,기타이치. 십중팔구는 '이랬으면 좋겠는데'라는 바람이 언어로 드러난 것일 뿐이야...그러므로 거짓말하는 자를 경멸해서는 안돼. 우리는 부처님이 아니니까 누구라도 거짓말쟁이가 될 수 있다. 내일은 내 얘기일 수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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