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프랑스, 공공부문 파업으로 '검은 목요일'

프랑스, 공공부문 파업으로 '검은 목요일'

노조 측 22일 추가파업 논의 예정

 

예고되었던 프랑스 공공부분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17일 8시부터 시작되었다. 현지 언론에서 '검은 목요일'이라고 부르며, 파업 시작 전부터 긴장을 감추지 않았다. 18일 목요일 오전 출근시간 대부분의 교통은 마비되었다.

 

이번 파업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5월 취임한 후 첫 총파업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프랑스 병"의 '약'으로 삼고 있는 대통령과, 이것을 노동자들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노동계사이의 한판 힘겨루기 인 셈이다.

 



9월 말 사르코지 대통령은 공공부문의 특별연금제도를 개혁하고, 공무원 수를 대대적으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맞서 프랑스국영철도(SNCF), 파리철도공사(RATP)를 비롯한 전기, 가스 등 공공 부문의 노동자들이 17일 총파업을 선언했다.

 

파리철도공사(RATP)에서는 약 10퍼센트의 철도노선이 운행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운행차량 수는 약간 우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속철도(TGV)를 이용하는 승객은 많이 줄어 역사는 한산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버스도 약 15퍼센트만 운행을 했다. 출근시간 대에도 대부분의 학교가 휴무에 들어가는 등 큰 혼란은 없었던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이번 파업에는 철도, 가스, 전기 부분의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에 참가한 철도 노동자들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연금제도뿐만 아니라,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 철도산업은 현재 구조조정 중에 있으며, 300여개의 역이 폐쇄될 예정이다. 철도 노동자들은 300여개의 철도역사가 문을 닫을 경우 고용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 계획을 철회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맥 우라타 ITF노조 운송분과 간부는 “전 세계에 걸쳐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노동자들이 쟁취한 양질의 삶의 조건들을 빼앗기고 있다”며 사르코지 대통령의 개혁에 대해 비난하고, “정부와 관리자들은 반드시 노동조합과 앉아서 이 사안에 대한 사회적 대화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철도 관련 기업들과 정부는 아직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 별다를 답변을 하고 있지 않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정부의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높다라며, 개혁을 강행할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애초 24시간으로 예정되었던 총파업은 하루를 넘겨 일부에서는 19일 오전에도 계속 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조합 지도부는 22일 모임을 갖고 추가파업일정에 대해 논의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GM-UAW 협상, '타협'인가 '패배'인가

M-UAW 협상, '타협'인가 '패배'인가

노동조합이 구조조정 비용 떠안아

변정필 기자 bipana@jinbo.net / 2007년10월11일 17시13분

전미자동차노조(UAW)는 9월 26일 GM사측과 노사협상의 결과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발표했다.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GM 전국 73개 공장을 세우고 7만 3천 명이 이틀간 파업에 들어간 결과였다.

 



합의안에 따르면, GM사측은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한 해외진출 및 감원조치를 중단하거나 줄이게 된다. 대신 사측에게 부담이 되고 있는 퇴직자의료보험펀드(VEBA)를 조성, 그 운영의 책임을 노동조합이 지게 되며, 새로 고용되는 노동자들에게는 이중임금체계를 적용하게 된다. 복지와 임금전략대신 고용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GM노동자들은 10월 초부터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해왔으며, 10일(현지시간) 투표를 마감했다.

 

일부 GM현장 활동가들은 이번 합의안에 우려를 표하고, '부결 캠페인(Vote No)'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잠정합의안이 부결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블룸버그 통신은 현재 60여개 지부 가운데 적어도 29개 지부가 협약안을 승인했으며, 5개 지부가 거부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전미자동차노조와 GM의 협상결과는 미국 자동차산업 노동자뿐만 아니라, 2008년 협상을 앞두고 있는 캐나다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관련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00년대 초부터 앞 다투어 감원계획은 비롯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해왔다.

 

이런 배경에서 전미자동차의 고용과 임금, 복지를 맞바꾸기 한 전략은 '타협'이 아니라 또 한 번의'패배'라는 평가들이 제기되고 있다.

 

샘 긴딘 캐나다 요크대학 교수는 이번 합의안에 대해 "한 쪽만의 계급 전쟁"이라는 표현으로 사측의 일방적인 공세에 대응을 조직하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고용, 유지될 수 있나?

 

샘 긴딘 교수는 매번 "고용 안정"이라는 단어가 협상결과 나오기는 했으나 1970년대 이후 계속 고용이 감소해 왔다는 점을 들어 사측의 약속에 신빙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1970년대 미국 전체에서 고용된 GM 노동자 수는 약 45만 이었다. 그러나 이 수는 80년대 35만 수준으로 줄었다가, 1994년 24만 6천으로 하락했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7만 3천명이 고용되어 있다.

 

그러나 더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번에 합의된 이중임금체계이다.

 

전미자동차 노조는 신규로 채용되는 '비 핵심'일자리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차등적인 임금시스템을 적용하는 데 대해 합의했다.

 

현재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의 평균임금 수준인 시급 27달러 수준이지만, 신규로 채용되는 '비 핵심' 일자리 노동자들은 절반 수준인 14달러에서 14.6달러의 임금을 적용받는다. 또, 기존 노동자들에 대해 보장되었던 의료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등 노동자

 

'비 핵심' 일자리에는 기계하위부품 조립, 기계가공, 재료취급, 시설관리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직종의 노동자들은 전미자동차노동조합의 조합원에 속해잇다. 10월 4일자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는 비 핵심 직종으로 분류되는 일자리는 현재의 1/4에서 1/3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전미자동차노동조합은 이번 합의를 통해 현재 고용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들어오는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크게 악화시켰다는 비난은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샘 긴딘 교수는 이번 합의로 노동조합이 더욱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이번 협상결과가 조립 공장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부품산업 노동자들에게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전에는 GM이 저임금 부품 공장을 외주화하고, 이것을 조립 노동자들에 대한 위협으로 사용했다. 이제는 더 나아가 부품 산업에서 임금을 낮추지 않는다면 외주화를 철회할 것이라고 위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이중임금체계에 대한 합의를 비판했다.

 

또, 기존 정규직의 GM노동자들은 이중임금체계 하에 고용된 저임금 노동자로 급격히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GM노동자의 63.5%가 5년 안에 퇴직하기 때문이다.

 

의료보험, 힘들면 노조에 넘겨라?

 

이번 합의안에서 또 하나 주목받고 있는 것이 퇴직자의료보험펀드(VEBA)이다.

 

전미자동차노조와 GM은 독립적인 퇴직자의료보험펀드(VEBA)를 조성하고, 노조측에서 2010년부터 이 펀드를 운영하는 데 합의했다. 이를 위해 GM은 350억 달러의 주식 및 기타 자산을 노조가 관리하는 퇴직자의료보험펀드에 투입할 예정이다.

 

국가의료보험 시스템이 없는 미국에서 노동조합은 '민간 복지 시스템'을 만들어왔다. 한 때 이런 사적 복지 시스템은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에게 힘의 상징이 되기도 했지만, 이것이 위기에 처했다고 샘 긴딘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의료보험 비용의 상승이 자동차 업계의 경쟁에서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GM은 현재 직원 수 8만 명의 5배가 넘는 퇴직자 가족의 의료보험을 부담하고 있으며, 이것을 해결하지 않는 한 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포드도 건강보험 부담을 덜기 위해 내년 1월부터 5만 7천명에 달하는 퇴직자들에 대한 보험 혜택을 중단할 계획이며, 크라이슬러도 1만 4천명에 대한 유사한 조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퇴직자의료보험펀드를 만들어 노조가 운영하게 될 때 나올 문제점에 대해서도 제기되고 있다. 펀드가 기대수익에 미치지 못하거나, 의료비가 급격히 상승할 경우 모든 부담이 고스란히 전, 현직 노동자들에게로 전가된다는 것이다.

 

전미자동차 노조는 이미 엔진 제조사인 디트로이트 엔진과 중장비 업체인 카터필러 등과의 합의를 통해 퇴직자가족의료비펀드를 운영하고 있으나, 현재 자금이 고갈된 상태라고 부결 운동을 펼친 현장 노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GM의 퇴직자의료보험펀드도 이들의 전철을 따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부결운동을 펼치고 있는 GM의 현장 노동자 그렉 쇼트웰은 "위험 부담을 은퇴한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로 전가하는 것"이며 "GM은 노동자들에 대한 의료보험 책임에서 해방되었다"고 이번 합의를 비판했다.

 

미국 내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기업의 비율은 2000년 69%에서 현재 60%로 하락했다. 미국의 기업들이 점점 더 노동자들에 대한 의료보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점에서 기업들은 이번 노사합의안으로 기업들의 부담으로 작용해오던 미국 건강보험 체계의 근간을 뒤흔들 일대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합의 직후 9월 29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번 합의로 대통령 선거에서도 건강보험체계 개혁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하며 합의의 의미를 주목하기도 했다.

 

아울러 월 스트리트 저널은 만약 포드와 크라이슬러가 유사한 합의에 도달한다면 "하나의 펀드로 운영될 경우, 미국에서 40위권의 연금펀드가 될 것"이라며 펀든 관련 업계에서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퇴직자의료비펀드를 보전하기 위해 현직 노동자들은 향후 4년간 생계비조정(COLA)에 따른 임금인상분도 포기했다.

 

대신 이들에게는 3천 달러의 '합의 보너스'가 주어진다.

 

이번 GM-전미자동차노조의 협상 과정에서 GM의 노동자들은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전국규모의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이번 파업이 협상을 위한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볼멘 목소리는 이번 합의가 과연 '고용'이나마 지켜낼 수 있는 방어막이 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도 자동차 산업 현장 노동자들의 불만은 조직적 대응과 반발로 이어지지 못했다. 심지어 한 노동운동가는 전미자동차노조 22지부의 한 조합원이 자신에게 이번 파업이 무엇을 위한 파업이냐고 묻기까지 했다며, 미국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의 현실을 말하기도 했다.

 

전미자동차노조가 주장하듯 '고용안정'이 이번 합의로 지켜질 수 있을지, 아니면 저항할 힘을 잃은 미국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공세에 다시 한 번 패배한 것일 뿐인지는 앞으로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는 GM에 이어 미국 내 업계 3위인 크라이슬러와의 노사협상에서 10일(현지시각) 잠정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는 전미자동차노조가 포괄하고 있는 캐나다의 자동차 업계와의 노사협의가 예정되어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전세계 1% 미만 부자가 전세계 부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전세계 1% 미만 부자가 전세계 부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 보스턴컨설팅그룹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전 세계 부는 100조달러로 1년 전보다 7.5% 증가, 5년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또 100만 달러 이상을 보유한 부자 가구는 14% 늘어난 960만가구로, 전세계 가구의 0.7%에 불과하지만 전체 부의 3분의 1인 33조2000억달러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자산을 500만달러 이상 보유한 부유층은 전세계 0.1%에 불과하지만 작년 전세계 부의 17.5%를 확보하고 있다. 부자들이 부를 더욱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저축 증대와 함께 주식, 채권 등 투자자산의 성장 덕분으로 분석됐다. 보스턴컨설팅은 “글로벌 주식 시장은 연간 20% 상승했으며 북미 부자들의 경우 주식 보유 비중이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진숙 지도위원, “비정규직과의 연대 없이 우리 운동 전진 없다”

김진숙 지도위원, “비정규직과의 연대 없이 우리 운동 전진 없다”
글쓴이: 들푸리 번호 : 51조회수 : 402007.07.20 10:22

 

* 어제 7월 19일(목) 김진숙 선배의 "노동자의 삶, 그리고 우리 시대의 논리"라는 주제로 강연회가 있었습니다. 100여명의 지역 동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20분의 강연과 30분의 질의 응답이 있었어요. 우리 삼성SDI 동지들도 함께 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다른 일정이 있으셨다고 하니, 다음 기회를 기다려보죠. ^^; 아래 글은 울산노동뉴스에 올라온 어제의 강연내용입니다.  동지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립니다.

 

 

김진숙 지도위원, "비정규직과의 연대 없이 우리 운동 전진없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기념 강연회 열려

(출처 울산노동뉴스)

 


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 기념 대중강연회가 19일 목요일 근로자복지회관 1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번 강연회는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책 [소금꽃나무]의 저자이자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기도 한 김진숙 씨를 모시고 “노동자의 삶, 그리고 우리 시대의 논리”라는 주제로 열렸다. 100여 명의 청중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눈을 훔치며 2시간여 동안 강연장을 지켰다.

▲87년 20주년 기념 대중강연회

1987, 투쟁이 재미 있던 시절

오후 7시, 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의 천창수 학술위원장은 “김진숙 동지를 안 것이 20년 전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김 동지의 얘기는 듣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며 “노동자가 있는 곳에 늘 함께 있어 온 김 동지의 오늘 강연이 혼이 담긴, 마음을 움직이는 강연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시작한 김 지도위원의 이야기는 78년 남자 와이셔츠 만드는 공장에서 ‘곱배기 철야’를 하던 시절부터 한진중공업에서의 해고와 1987년 노동자대투쟁까지 이어졌다. 김 지도위원은 1981년 한진중공업(당시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해 조선일보에 “조선소 첫 여성 용접사”로 소개되기도 했었다. 그녀는 한진중공업 시절 다니던 야학에서 권해준 [전태일평전]을 읽고 노동자로서의 의식을 갖게 되었고 이후 노조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86년 해고됐다. 대공분실로의 연행 세 번, 부서이동 두 번, 해고, 출근 투쟁, 수배 5년, 두 번의 수감 생활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삶은 고난으로 점철됐다. 김 지도위원은 해고 이후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감격적으로 맞이하게 된다.

“내가 파업을 겪은 것이 노동자대투쟁 때 한진중공업에서였다. 7월 25일 비가 퍼붓는데도 3천명이나 모였었다. ‘늙은 노동자의 노래’가 그 당시에 있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고 노랫말을 생각지도 않고 막 불렀던 노래가 ‘멸공의 횃불’, ‘인천 성냥공장 아가씨’ 같은 노래였지만 그때는 투쟁이 재미있었다. 투쟁의 주체가 대중이었기 때문이다.”


▲ 김진숙 지도위원의 강연을 들으며 환하게 웃는 청중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은 즐겁게 하는 투쟁, 조합원이 스스로 주체가 되는 투쟁을 볼 수 없다고 했다. 플래카드도 똑같고 구호도 똑같고 집회 역시 재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달라진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때는 누가 구속되면 십리 백리라도 달려갔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누구 하나 구속됐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다.”

1987년 이전의 지옥 같은 공장에 대한 회고가 이어졌다. “당시 노동자들은 용접 불똥이 튀어 난 구멍을 테잎으로 기워 입었다. 그래서 1987년에 ‘작업복 한 벌 더 달라’, ‘우리 돈으로 사서 쓰는 장갑을 회사에서 지급해 달라’ 등의 요구가 터져나왔다. 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최대 투쟁성과는 노동조합을 민주화 했다는 것에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 당시 노동자들은 노조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노조 깃발이 아니면, 투쟁의 장이 아니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승리했고 노조도 민주화로 이어졌다”


2007,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미래다


▶ 강연을 하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


그녀는 87년으로부터 2007년 현재로 이야기를 옮겨갔다.

“1987년 대투쟁으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과연 우리가 서있는 지점이 어딘가? 그때 우리가 서 있던 자리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준 것 같다.” “대공장 노동자들은 잔업과 성과금에 영혼을 팔며 산다. 월급이 늘었어도 더 많은 월급을 위해 산다.”

김 지도위원은 울산의 노동자 문화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청소년성매매 비율이 제일 높은 곳이 울산이다.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그 돈으로 퇴폐 문화에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1987년, 연봉이 작았어도 누구랄 것 없이 똑같이 받았을 때는 노동자들끼리 끈끈함이 있었다.”

강연의 화제는 2007년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이어졌다. 신자유주의 시대 비정규직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해가는 것이 바로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정신을 오늘에 계승해가는 것이라 힘주어 말하며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들을 전했다.

“경희의료원노조 식당 아주머니들이 투쟁할 때의 얘기다. 한 아주머니가 98년 울산 현대자동차에서 상경투쟁을 와 서울에서 선동하던 한 사람을 찾아달라고 얘기하더라. 바로 그때 목이 터져라 회기역에서 시민들을 향해 호소하던 그 ‘빨간 조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유인물을 받아들지 않은 경희의료원 노동자들에게 똑같이 구조조정이 닥쳤다. 왜 그때 경희의료원 노동자들이 그 ‘빨간 조끼’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았을까? 해고, 구조조정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남의 일은 없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들의 미래다. 그런데도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눈은 자본하고 똑같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생각으로 싸웠으면 지금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정성이 없는 운동이 누구를 움직일 수 있겠냐. 비정규직을 ‘위해서’ 운동하자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과 함께 연대하지 않으면 우리 운동은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다.”

김 지도위원은 구조조정 당시 한진중공업을 예로 들며 ‘구조조정은 회사가 어려울 때가 아니라 단결되지 않을 때 온다’고 힘주어 말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단결, 그것이 안 될 때 정규직들도 망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진중공업에서 LNG선을 점거하고 선상파업을 벌였다. 조합원 3,000명중 강제명예퇴직 명단에 오른 1,200여 명이 배를 점거했다. 배를 인도하지 않으면 선주에게 지불해야 할 돈이 어마어마했다. 그러느니 임금인상 할 거라고 조합원들은 믿었다. 하지만 자본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2,000여 명의 비정규직들이 농성중인 노동자들을 대신해서 공장은 잘 굴러가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 파업의 패배부터 한진중공업은 어떤 투쟁도 되지 않았다. 이후 정규직들에게 명예퇴직 협박이 들어오고 정리해고가 단행됐다.” “성과금 1,500만 원 받는 노동자들이 연봉 1,500도 안 되는 노동자들과 연대하지 않으면 우리 운동의 미래는 없다.”

한진중공업 얘기는 2003년 김주익, 곽재규 열사로 이어졌다. 김 지도위원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청중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한진중공업에서 어렵게 사측과 합의했을 때 사장이 맺은 합의를 회장이 번복했다. 김주익 지회장이 85호 크레인 위에 올랐다. 태풍 매미가 불어닥쳤다. 거대한 크레인이 휘고 85호 크레인도 휘휘 돌아갔다. 하지만 김주익 지회장은 내려오지 않았다. 김 지회장이 하루는 전화를 했다. 냉면이 먹고 싶다 했다. 밥을 크레인까지 올리던 밧줄로는 국물이 있는 냉면을 올려 보낼 방도가 없었다. 결국 냉면을 크레인에 올리지 못했다. 김주익 지회장은 끼니를 올려주던 밧줄로 목을 매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곽재규 열사도 죽은 채 발견됐다. 곽재규 열사는 자기가 투쟁하지 않아서 김주익 지회장이 죽었다며 죄송하다고 절을 했다.” “내게 1987년과 2007년의 차이는 그런 거다. 1987년에는 다 있었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모두 있었다.”

김 지도위원은 노동운동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말을 이어가며 강연을 마쳤다.

“노조 간부들은 이런 저런 현안들에 대해서는 20년의 노하우가 있어서 어느 정도 협상이 될 거라고 판단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피한다. 싸워야 하는 거니까.” “KTX 승무 노동자들, 400명이 짤렸고 투쟁을 시작했지만 이제 70명 남았다. 70명이 70년을 싸워도 안 끝날 거다. 400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짤렸는데 기차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 원칙을 놓쳐버리니 막을 방법이 없어진 거다. 모두가 블랙홀에 빠진 거다. 20년 전을 기억한다면 이랜드, 홈에버에 연대해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가야 한다.”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희망, 원칙을 지키는 싸움

청중석에서 질문이 이어졌다. 한진중공업 오대일 씨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공감은 하지만 현장에서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김 지도위원은 “비정규직 실태조차 파악 안 되는 현장이 많고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 가입 안 된다. 현장의 활동가들이 비정규직에게 단결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비정규직을 묶어내는 조직 사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한 학생은 “친구들은 ‘노동자’라는 것을 자각하기 힘들다. 소통하기 위한 생각을 얘기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지도위원은 “자신이 노동자가 되리라 생각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고 되물으면서 “노동자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려면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하고 사회 문제에 관해 많이 얘기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배문석 문화국장은 “울산 노동운동 20년을 정리하는 글을 쓰다 보니 거의 모든 투쟁이 졌다, 쓰러졌다, 패배했다 이런 결말을 보였다. 결국 그렇게 쓰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20년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노조운동의 희망은 어디에 있나?”라고 질문했고 이에 대해 김 지도위원은 홈에버에서 공권력 투입 협박에 맞서며 농성중인 노동자들의 예를 들었다. “한 아주머니가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김경욱 홈에버 일반노조위원장은 제 아들뻘 됩니다. 우리 다 같이 엄마의 마음으로 한 번씩 안아줍시다’ 그리고서 4~50대 아줌마 노동자들이 돌아가며 김경옥 위원장을 안았다. 농성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그러면서 서로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아줌마들의 싸움은 원칙적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는 그런 분들에게 있지 않나.”

뒤이어 전교조 박현옥 조합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가르치던 아이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최근에 이 아이가 SK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서 ‘너무 힘들어요’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김 지도위원 이야기를 들으며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아이들 생각이 났다. 강연 도중 문자를 보내고 소식을 물었다.” 박현옥 조합원은 눈물을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아이들 생각을 하고 또 김 지도위원의 강연을 들으면서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학교 현장에서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한다.”

강연을 듣고 나오는 청중들은 입구에 마련된 판매대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책 [소금꽃나무]에도 관심을 보였고 금방 동이 나기도 했다. 한편 강연장 주변 근로복지공단 1층 로비에는 1987년부터 2007년까지 울산 노동자투쟁사가 전시되어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전시물에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부터 현대중공업 128일 투쟁, 골리앗 투쟁, 현대자동차 고용안정 투쟁, 2001년 울산 총력투쟁, 2007년 현재진행형인 투쟁에 이르기까지 울산지역 노동운동 역사가 총망라되어 생생한 화보와 함께 담겨 있다. 또 이랜드 불매운동 선전물과 매주 금요일 저녁 7시에 홈에버 촛불문화제가 북구 홈에버 앞에서 열린다는 선전물도 사람들의 발길을 끌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구겨진 수표, 구겨진 인생, 그러나

명강사로 소문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인 세미나에서 그 강사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죠. 그러다 그 강사는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100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높이 쳐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돈을 갖고 싶지요? 어디 이 돈을 갖고 싶은 사람 손 한 번 들어보십시요."

그러자 세미나에 참석한 그 수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강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 한 사람에게 이 돈을 드릴 생각입니다. 하지만 먼저 나의 손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쳐들었던 100만원짜리 수표를 손으로 이리저리 마구 구겼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이 수표를 가지기를 원하십니까?"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강사의 그 행동에 놀라면서도 역시 거의 모든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좋아요."

그러더니 이번에는 그 100만원 짜리 수표를 땅바닥에 던지더니 구둣발로 밟으며 더럽혔습니다. 그리고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구겨지고 더러워진 그 100만원짜리 수표를 집어들고, 아직도 그 돈을 갖고 싶은지를 물었습니다. 또 다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이때 강사는 힘차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100만원짜리 수표를 마구 구기고 발로 짓밟고 더럽게 했을지라도 그 가치는 전혀 줄어들지 않습니다. 100만원짜리 수표는 항상 100만원짜리 수표의 가치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는 여러 번 바닥에 떨어지고, 밟히며, 더러워지는 일이 있습니다. 실패라는 이름으로, 또는 패배라는 이름으로 겪게 되는 그 아픔들... 그런 아픔을 겪게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평가절하 합니다. 허나 놀라운 사실은 실패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의 가치는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구겨지고 짓밟혀도 여전히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 수표처럼 말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규직-비정규직의 아름다운 연대를 본받자!!

정규직-비정규직의 아름다운 연대를 본받자!!


= 군산지역금속·KM&I 지회 일주일 넘게 파업 … 인천·군산 오가며 연대집회 =


공장에서 쫓겨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일터로 돌려보내기 위해 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주일 넘게 파업을 벌이고, 300Km가 넘는 인천과 군산을 오가며 연대투쟁을 전개해 '아름다운 연대'가 무엇인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진정한 연대를 보여주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군산지역금속지회와 인천 KM&I지회다. 이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공장에서 쫓겨난 KM&I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4월 24일부터 지금까지 일주일 넘게 파업을 벌였다.

3일 군산지역금속지회 8시간 파업으로 대우차 군산공장까지 멈춰서

5월 3일 오전 9시. 대우자동차 군산공장에 자동차부품을 납품하는 군산지역금속지회 소속 주간조 조합원 130명이 전면파업을 벌이자 부품공장은 물론 대우차 군산공장까지 멈춰섰다. 일성테크, 한국펠저, 우신테크놀로지, 영창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회사로 출근하자마자 곧바로 버스 3대에 올라타고 비정규직 노동자 50여명이 집단단식을 벌이고 있는 인천공장으로 향했다.

KM&I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해 10월 군산지역금속지회에 가입했다. 지회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직장폐쇄와 집단해고를 당하고, 용역깡패와 북파공작원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군산지역금속지회의 같은 노동자였고, 금속노조의 같은 조합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군산지역금속지회 조합원들 지금까지 10번 넘게 연대파업

군산지역금속지회 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10번도 넘게 연대파업을 벌였다. 군산지역금속 조영호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파업하면서 조직력이 강화되고 있고, 이탈하는 사람 없이 모두가 인천까지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매달 2만원씩 총 2천만원 모금, 투쟁기금 전달

KM&I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해 10월 직장폐쇄를 당해 지금까지 7개월동안 돈 한푼 없이 투쟁을 전개해야 했다. 군산지역금속지회는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투쟁기금을 내기로 결의했고, 조합원 200명이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매달 2만원씩 10만원을 냈다. 5월 월급까지 포함해 총 2천만원이 모아졌고, 이 돈은 KM&I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중한 투쟁기금으로 쓰여졌다.

군산지역금속 조영호 지회장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파업하고 투쟁하는 실천적 모습을 보여줬다"며 "KM&I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복귀해서 진짜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KM&I 인천공장 정규직 노동자들도 일주일 연대파업

3일 오전 9시 KM&I 인천공장 150여명의 정규직 노동자들도 전면파업을 벌이고 공장을 완전히 멈춰 세웠다. 이들은 지난 4월 24일부터 지금까지 벌써 일주일 넘게 부분파업과 전면파업을 계속하며 회사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복직시키라고 요구했다.

지난 5월 2일에는 전면파업을 벌이고 관광버스 3대를 빌려 군산공장으로 내려갔다. 회사는 용역경비들을 동원해 군산공장을 철통같이 막았다. 조합원들은 금속노조 중앙교섭 합의사항 이행과 비정규직 복직을 요구하며 용역경비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연대파업으로 월급 50만원이 날아갔지만

KM&I 정규직 노동자들은 4일까지 전면파업을 벌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총 42시간 파업을 벌인 것이다. 임금을 보존해줬던 잔업과 특근도 모두 거부했다. 정상적으로 일했으면 160만원 정도 받았을 텐데, 월급날인 4일 월급통장에는 겨우 100만원 정도 들어올 예정이다. 1인당 50만원이 날아간 것이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분노는 커져가고 있고, 단결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박세준 지회장은 "이번 파업투쟁에 대부분의 현장 조합원들이 참가하고 있다"며 "지난 5월 2일 군산공장 진격투쟁 이후 회사와 관리자들의 태도에 대해 조합원들이 분노가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박세준 지회장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이나 임금문제도 아닌데 비정규직 투쟁을 모범적으로 참여해준 조합원들에게 감사한다"며 "이번 투쟁의 성과와 자신감을 가지고 임단협 투쟁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조합원 50명 집단단식 15일만에 마무리

한편, 군산공장에서 쫓겨나 지난 4월 19일부터 인천공장 본사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던 KM&I 비정규직 조합원 50여명은 오늘 단식을 중단하고 몸을 추슬러서 다시 투쟁으로 나설 예정이다. 단식 과정에서 3명은 몸이 아주 나빠졌고, 10여명도 많이 힘들어했지만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강하게 버텨냈다.

단식투쟁을 이끌었던 금속노조 전송철 부위원장은 "조합원들이 단식이라고 하는 최선을 다하는 투쟁으로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충분히 표명했고, 전북과 인천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포함한 투쟁에 나서게 했다"며 "KM&I에서 금속노조 중앙교섭 합의사항을 이행시켜내지 못하면 많은 사업장의 자본가들이 합의사항을 어기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부품을 조립하듯, 노동자의 단결을 조립하자

부품을 조립하듯, 노동자의 단결을 조립하자

우리 노동자들은 자동차를 만듭니다, 자동차는 수 만개의 부품이 조립되어 완성됩니다. 자동차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없다면 거리에는 자동차 한대도 굴러다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노동자들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생산하는 주인공들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항상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 무시당하는 것은 사장들이 지독하게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노동자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엄청난 힘을 모으는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개인으로 있으면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사장들은 공장이 있고, 돈이 많고, 자기의 힘을 크게 모을 수 있는 수많은 연줄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것은 단지 몸뚱이 뿐입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 노동자들이 사장에게 노동력을 팔고 월급을 받아서 먹고 살도록 만듭니다. 우리 노동자들은 월급이 적고 노동조건이 좋지 않으면 회사를 떠날 수 있고 사장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의 사실을 금방 알게 됩니다. “우리 사장이 얼굴과 이름은 다르지만 노동자에게 대우하는 것은 똑같구나!”
  그렇습니다. 어디를 가도 노동자의 삶과 처지는 똑같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노동자들이 합심해서 단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합심과 단결이 우리의 삶과 처지를 더 좋게 더 높게 만들어 주는 가장 유력한 힘입니다.  

부품 조립의 긍지와 정신!
우리 노동자들이 자동차를 조립하고 자동차에 들어가는 모듈을 조립하는 것은 조립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똑같이 노동자들이 단결하기 위해서는 단결하는 방법을 알고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노동자들은 부품을 조립할 때 아무데나 다른 부품을 무조건 갖다가 붙이지 않습니다. 나사를 대충 조이거나 나사를 조여야 할 곳에 못을 박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바로“제대로 조립하지 않으면 자동차에 결함이 생겨서 사고로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에는 중요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산하는 노동자들의 정신과 긍지”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는 우리 노동자들의 긍지와 정신이 없다면 세상은 한 순간도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만들고 세워내는 주인공이며 주춧돌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처지는 주춧돌이 아니라 굴러들어온 돌멩이나 쓰다가 버리는 부품과 기계처럼 취급받고 있습니다. 이런 부당한 현실은 반드시 뒤바꿔져야 합니다.


단결은 곧 조립이다!

자동차 부품을 조립할 때 생각하는 노동자의 긍지와 정신은 곧 노동자의 단결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부품을 생산하고 조립하는데 정신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단결하는데도 단결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단결에 필요한 노동자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나의 문제는 곧 동료들의 문제이며, 동료들의 문제는 곧 나의 문제이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는 “똑같은 노동자이며 노동자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장이나 소장이 아니면 월급이 오르거나 깎이면 똑같이 오르거나 깎입니다. 노동 강도가 세지면 똑같이 세집니다. 고용불안이 오면 똑같이 옵니다. 그래서 우리 노동자들은 하나의 눈으로 똑같이 세상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똑같은 상황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을 가질 때 단결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바라보고 조립하는 것이 바로 단결입니다.

사장들은 왜 단결을 두려워하는가?
사장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우리 노동자들의 단결을 두려워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노동자들이 단결하면 힘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힘은 곧바로 조직으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조직이 바로 노동조합입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모든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뭉치면 노동자들은 이렇게 외치면서 싸웁니다.
“치사해서 못 받겠다! 월급을 인상하라!”
“단체협약 만들어서 노동조건 개선하자!”
“노동조합 단결투쟁 고용불안 해소하자!”
“비정규직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등등.
  사장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우리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장들은 모든 거짓말과 힘을 동원하여 노동자들은 이간질하고 겁을 주어서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분열을 통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사장들이며,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바로 우리 노동자들입니다. 이렇게 사장들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막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기 위해 노동조합하는 동료를 해고하고 선전지를 돌리면 빼앗고 해고된 동료를 온갖 감언이설로 죽일 놈을 만드는 것입니다.

단결만이 살 길이다!
현대모비스 동료여러분, 해고된 동료의 모습을 여러분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따뜻하게 맞아주고 서로 연락하여 대화합시다. 선전지를 받으면 꼭 읽어 봅시다. 그리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읍시다.    
  우리들은 단결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힘이 얼마나 강한가를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모습이 작게 보이지만 우리가 단결하여 일어선다면 우리는 거대한 거인이 될 것입니다. 이때 사장들은 우리 노동자들의 정당한 주장과 외침을 결코 거역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노조로 단결합시다!
당당하게 말하는 줏대가 있습니다!
신의를 지켜내는 절개가 있습니다!
새로운 삶에 대한 긍지가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진숙- 비정규직 강의 자료

왜 우리는 비정규직, 파견법 개악 안 입법저지 투쟁에 나서야 하는가?

엮은이(삶이 보이는 창 기고자): 아래 글은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 진숙 지도위원의 강의를 발췌한 것입니다.
작년에 올라온 글이라서 때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 되서 옮겨봅니다.

지난 10월 26일은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 광주지부장 고 이 용석 열사가 작년 종묘집회에서 분신한지 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날 저녁 건강보험공단 지하 강당에서는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 진숙 지도위원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김 위원은 지난 해 노동자 대회 때 고 김 주익 열사의 추도사를 하도 절절하게 해서 집회장을 눈물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장본인 입니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과 전국 사회보험노조 주최로 열린 이 강연의 주제는 “왜 우리는 노동운동 진보정당 운동의 사활을 걸고 비정규직 파견법 개악 안 입법저지 투쟁에 나서야 하는 가”였습니다.
김 위원의 목청은 힘찼고 사용하는 말은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시원스럽게 넘어가는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의미심장해서 청중을 웃겼다가 울렸다가 마침내는 각성과 결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신들린 강연이었습니다.
특강이 끝난 후 공덕시장에서 순대 국을 먹으면서도 가슴이 울렁이는 것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는 한참 비정규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습니다.
다음은 강연내용을 핵심만 살려서 요약 기록한 것입니다.
최대한 김 위원의 입맛을 살리려 노력했고 소제목은 내용에 따라 분류해 제가 임의로 정한 것입니다.

김 진숙 지도위원은 사회자의 소개말이 끝나자마자 성큼 강단으로 뛰어 올라가 청중을 향해 활짝 웃으며 “고생 많으시죠!”란 말로 인사를 건냈다.
그리고 나서 오랜 벗에게 이야기하듯 친근한 말투로 경상도의 보수성, 국가보안법 철폐이유, 계급성의 필요성, 비정규직 투쟁의 어려움, 연대의 의미 등에 대해 연설했다.
마치 폭포수처럼 격정적이면서도 현장성이 생생하게 담긴 말은 나태한 의식에 일침을 가하기에 충분했다.

- 누나, 이제 박대통령은 누가 해? -

선거가 끝나면 부산에 산다는 게 뒤지게 쪽팔립니다.
한 나라 당이 수도이전 반대하면 저들도 반대를 합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도 한 나라 당이 반대하니까 지들도 반대를 합니다.
저는 이번 총선에서 정동영하고 통 했던 게 6~70대는 투표하지 말라는 거였습니다.
더 나아가 박 정희가 나라를 살렸다고 믿고 군대를 다녀온 50대 이상의 경상도 남자들에겐 투표권 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아니면 자격시험을 보던가.........................!(웃음과 박수)

노 무현이 잠깐 대기발령 받고 있을 때는 부산 사람들하고 선거 얘기가 되더군요.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얘기의 결론은 저에게 이렇게 묻는 것으로 끝나더군요,
“아지 매 전라도 지예?”
그런데 박 근혜 이 여자가 나타나서 다 휘저어버렸는데, 박 근혜가 야당 지도자입니까?
바로 박 정희 딸 아닙니까?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도 아는 사실입니다.
거 부산 사람들 보러 박 근혜가 왜 좋으냐고 했더니 시집을 안가서 좋디야?
시집은 나도 안 갔는데 하니까 넌 못 간 거지 합니다(웃음)
그야말로 말초적인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겁니다.
박 정희 정권이 청렴결백했다는 건 웃기는 개소리입니다.
워낙 틀어막고 해먹으니까 당시에 몰랐던 거 아닙니까?
정수장학회는 장물장학회입니다.
뭔 놈의 장학회가 방송사 지분을 그렇게 많이 갖고 있습니까?
박 근혜는 여기 출근도 하지 않으면서 1.100만원의 월급을 받습니다.
그런데 월급 100만 원도 못 받는 것들이 이걸 찍어준다니까요!
오직 경상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구에서는 더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여든 먹은 영감이 박 근혜가 오니까 그 앞에 너부죽 엎드리며 한다는 말이 “오래 사십시오”(웃음) 이게 말이 됩니까?
제가 1960년 생 입니다.
박 정희가 18년 대통령 해먹으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열아홉 살 될 때까지 글마가 대통령 해먹었습니다.
박 정희가 딱 죽고 나니까 우리 동생이 그러더라구요
“누나 이제 박대통령은 누가 해? 참 내~!(웃음과 박수)

박 정희가 그렇게 해 먹을 수 있었던 근거가 뭐겠습니까?
제가 한진 중공업 땜 쟁이었다는 건 다들 아시죠?
한진 중공업 입사해서 스물한 살 때 첫 휴가를 받아서 혼자 유달산에 놀러갔었습니다.
처음 가는 길이라 여기저기 무어보고 카메라로 동서남북을 찍고 있는데 짜바리(경찰) 둘이 오더니 연행해 갔습니다.
지금이야 인권이 어떻고 미란다원칙이 어쩌구 하지만 그때만 해도 짜바리 하고 눈만 잘못 맞으면 2박3일은 똥 밞은 시절 아니었습니까?
2박3일 동안 생사를 몰라요,
어디 대공 분실에 있는지, 남부경찰서에 있는 건지...............!
파출소에서 배낭을 막 뒤지면서 하는 말이 대공용의자를 잡았다는 겁니다.
저는 그 때 그 말이 뭔지도 모르고 있는데 아무리 뒤져도 난수표가 나오나 무전기가 나오나 뒤지던 끝에 지덜끼리 그러더군요.
자기가 김일성이라도 이런 걸 간첩으로 내려 보내진 않겠다고,
그 날 밤에 집에 갈 수가 없어서 숙직실에서 하루를 보내는데 벽에 표어가 죽 붙어있는 겁니다.
그걸 보고 내가 왜 붙잡혀 왔는지 알겠더군요.
“홀로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보자” 이건 좀 낫습니다.
“사랑하는 내 애인 알고 보니 간첩”(웃음)

지금도 촌에 가면 농협 바람벽에 이런 거 붙어 있습니다.
기억 나십니까?
멸공방첩, 반공방첩 하고 그 밑에 적여 있는 간첩색출요령

1.산에서 낚시가방 메고 내려오는 자
2.농구화에 뻘 흙을 묻혀갔고 다니는 자
3.담배 값을 물어보는 자(웃음)
4.압권입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듣는 자(웃음과 박수)
이게 국가보안법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어디 간첩만 불편합니까?

제가 팔 육년에 대공 분실을 세 번 갔었습니다.
거긴 뭐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팹니다.
옷 다 벗겨서 군복 갈아입히고 고무신 신겨 놓은 뒤에 줘 패기 시작하면서 누구 아냐? 누구 아냐?
하면서 100명의 이름을 갖다 댑니다.
정말 비슷한 이름이라도 나오면 대고 싶었습니다.
워낙 나오는 게 없으니까 그놈들이 상부에 뭐라고 보고했게요?
자생적 공산주의자!(웃음)
그게 국가보안법이고 그걸 움켜쥐고 있는 게 한 나라 당입니다.

진보에도 계급이 있습니다.
조선일보를 볼 순 없으니 한겨레신문을 보는데 이게 잘 나가다가 선거 때만 되면 민주당보 짓을 했다가 열린 우리당보 짓을 했다 합니다.
촛불시위를 할 때도 이거야 말로 평화시위의 모범이라고 했었습니다.
1980년대 집회 한번 하려면 다 전화 도청하고 그 자리에 먼저 경찰들이 가 있어요.
이럴 때 집회 자리를 만들려고 화염병 안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쟤들이 먼저 최루탄으로 도발하니까 화염병 던져서 집회할 자리를 만드는 겁니다.
그 불 끄러 가는 동안 자리 만들어서 노래 부르고 쟤들이 그 불 다 끄고 우루루 또 몰려오면 다시 또 던지고.........그 때 그 시절에도 촛불 들었으면 아름다웠을까요?
아마 전국 양초제조공장 압수수색영장 떨어졌을 겁니다.
아마 촛불에 관한 특별법 만들어 졌을 걸요?(웃음과 박수)

그게 역사입니다.
그렇게 지나온 역사를 간과해서 안 되는 겁니다.
그렇게 촛불이 아름다우면 그럼 부안은 뭡니까?
이백일 넘게 촛불 켜들었던 부안은 뭐냔 말이죠?
그래서 계급성 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게 시대를 가르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진보에도 계급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서 가장 진보적이라 일컬어지는 작가 조 정래가 쓴 “한강”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한강”을 읽다보면 7권에 박태준이 이야기가 반이나 나옵니다.
박태준이야말로 포항제철의 주인이고 이 땅의 진정한 산업역군이라는 얘기가 반 권에 걸쳐 나옵니다.
그 말이 맞나 봅시다.
포철에는 시뻘건 철근만 하루에도 수백만 개가 뽑아져 나오고 그것으로 건물과 다리가 만들어집니다.
시뻘건 철근이 뽑아져 나오다가 하나가 불량이 나서 철근이 솟구치는데 옆에 있는 노동자를 꿰고 지나갔습니다.
철근이 항문으로 들어가서 머리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떨어졌습니다.
그 시신을 놓고 사람들이 위로했는데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아유 그나마 로에 안 빠진게 얼마나 다행이야” 그 옆에 용광로가 있었는데 거기 빠졌으면 가관일 뻔 했지요.
그야말로 꼬치에 튀겨지는 셈이니까, 살아있는 사람들이 시신을 놓고 뭘 고민 했는 줄 아십니까?
두고 간 새끼들을 걱정했게요?
아닙니다.
그 철근을 그대로 관에 넣을지 , 시신에서 철근을 빼고 관에 넣을지, 관 크기에 맞게 철근을 자를지.........그 고민을 했다는 겁니다.
저는 포항제철은 이런 노동자들이 만들었다고 봅니다.

포철에도 노조가 있습니다.
조합원이 모두 열여덟 명입니다.
수만 명이 넘는 사업장에 20년 동안 그 수가 변함이 없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한 명이 정년이 되어 나가면 또 한 명이 채워집니다.
그 포철에 노조를 만들었다가 노조간부가 부모 보는 앞에서 박 태준에게 따귀를 맞았습니다.
그게 박태준이 한 짓입니다.

- 노동자들의 투쟁을 외면하는 언론 -

1991년에 삼화고무에 김 경은 이라는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운동화는 가죽이 두꺼우니까 종종 미싱 바늘이 부러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부러진 미싱 바늘이 김 경은의 눈으로 들어갔습니다.
조장한테 가니까 “뭐 어디 그런 걸로 조퇴시켜 주는 데 봤냐?”
형광등 아래서 조장이 눈을 까뒤집어 보니 안 보이거든요, 그래서 다시 가서 일을 하라고 지시했고 그날 잔업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일하는 중에 그 바늘이 눈 뒤에까지 이어져서 시신경이 다 파괴돼 버렸습니다.
그 때 김 경은의 나이 열여덟이었습니다.
여러분, 프레스 노동자가 왜 지 손가락 지가 잘라먹는지 아십니까?
습관적인 동작 때문에 0.1초만 늦어도 그 안에 손가락이 들어가는걸 알면서도 기계를 밟는 겁니다.
이른바 주방의 명품 퀸센스를 만드는 사업장에서는 한 노동자의 손가락 네 개가 한꺼번에 잘라졌습니다.
그런데 봉합을 한다는 것이 손가락을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다 붙여 놓았습니다.
이런 일이 있어도 “본인 부주의”로 보고가 됩니다.
이런 노동자가 하루에도 수 십 명입니다.
그 노동자가 비정규직이고 노동조합이 없으면 제대로 보상도 못 받습니다.

화물연대 파업할 때 민주노총에서조차 무리한 파업 때문에 노무현 정권이 등을 돌렸다고 스스럼없이 예기했습니다.
3개월 사이에 화물연대 노동자가 여섯 명이나 자살했습니다.
개인사업자가 투쟁에 조직적으로 나서기까지 얼마나 힘든지 조직사업 해본 분들은 압니다.
화물연대 김해지부장 최 복남 동지가 톨게이트에서 유인물을 나눠 주다가 젊은 운전자와 시비가 붙었습니다.
젊은 운전자의 요지는 그거 였습니다.
왜 유인물을 나눠주며 교통을 마비시키고 물류를 중단시켜 사회를 불편하게 하냐는 거였습니다.
그는 배운 대로 한 것입니다.
최 복남 동지는 일단 유인물을 읽고 판단하라고 차에다가 꾸역꾸역 유인물을 넣어주려 했고 젊은 운전자는 최씨의 손이 들어온 상태에서 유리문을 올린 채 달렸습니다.
어떻게 됐겠습니까?
유리문에 몸이 낀 채 길바닥에 쓰러졌고 그 위를 몇 대의 차가 더 지나가 개구리처럼 납작해져서 죽었습니다.
그 젊은 운전자도 노동자였을 것입니다.
그 노동자가 대학을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교육을 10년, 20년 받아도 노동자들이 왜 투쟁하는지, 왜 자식이 셋인 아버지가 크레인에 올라가고 50이 넘은 노동자가 지 몸에 불을 붙이는지 알려주지 않는 학교, 언론이 더 큰 문제입니다.

- 노동자들의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경계해야 -

대한민국은 자본가와 노동자가 10:90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나라입니다.
90은 절대 10이 될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 환상을 믿습니다.
로또를 100번 당첨되고 잔업을 100대가리로 해보십시오,
90이 10이 될 수 있나.
그래봤자 과로사할 뿐입니다.
저는 90이 단결해서 10을 없애고 100을 만드는 것이 평등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자동차에서 지금 일부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어떤 단협 안을 요구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애비가 정규직이고 아들이 비정규직인데 이 아버지가 내가 정년퇴직을 하게 되면 그 자리를 내 아들에게 줘서 정규직으로 해달라, 이걸 노동조합 집행부에다가 요구하고 있다니까요?
현실이 이렇게까지 되고 있는데 90이 10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게 자본주의입니다.
연속극이나 광고를 한번 보세요.
부동산을 광고하는 게 대한민국입니다.
고교등급제 문제가 뭐겠습니까?
10이 지 새끼들까지 10으로 만들려고 발악하는 거 아닙니까?
노동자들이 잔업 많이 해서 지 새끼들 학원 많이 보낸다고 10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봐야 정 몽헌이 종밖에 더 되겠습니까?
노동자들도 이 이율배반을 깨지 못하면 자본의 종으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한진 중공업이 명예퇴직 투쟁을 2년 했습니다.
구조조정 싸움이 어려운 건 명단이 발표되기 전까지 모든 사람들이 자기는 아닐 거라고 믿고 있는 겁니다.
자기만은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자본을 순진하게 보는 겁니까!
50대 이상 아저씨들 600명이 명퇴 대상이 됐습니다.
정년이 얼마 안 남은 이 사람들을 정리해고 시키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바로 젊은 사람들과 분리시키려는 자본의 논리입니다.
어떤 사업장에서 남성 조합원들이 고용보장 받는 대가로 여성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시키는데 동의했습니다.
이런 얘기는 이제 꽤 익숙해 졌습니다.
그 위원장에게 왜 그딴 식으로 했냐고 물었더니 뭐라는지 아십니까?

“아지매들은 어차피 반찬값 벌러 나온 것 아닙니꺼?”

아니 여자들 월급이 반찬값이면 남자들 월급은 안주 값인가요?
이런 자본의 논리가‘(상황이) 어렵다' 는 이유로 노동에도 침투해 있다는 게 신자유주의의 무서움입니다.
600명의 아저씨들이 싸우다가 300명은 더럽고 아니꼽다는 이유로 사표를 쓰고 나가고 2년 만에 이겨서 막걸리를 마시는데 아저씨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더군요.
조합의 사무국장은 2년 만에 처음으로 집에 들어갔습니다.
근데 사장이 합의한 사실을 회장이 번복하자 노동조합의 지회장이 할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밤11시에 새끼가 셋인 애비가 혼자 크레인에 올라가서 129일을 햇빛과 비를 피할 데 없는 그 공간에서 짐승처럼 갇혀 살았습니다.
129일 동안 밥을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 매달아서 올려 보냈는데 바람 때문에 크레인에 도착하면 저절로 비빔밥이 돼 있더랍니다.
작년 여름이 더웠다지만 한진 중공업 노동자들에겐 생애에서 가장 더웠을 겁니다.

하루는 냉면이 먹고 싶다고 크레인에서 전화가 왔답니다.
냉면을 올려 보낼 때마다 번번이 실패했답니다.
수십 미터짜리 크레인까지 국물을 안 흘리고 올려 보낼 수가 없었던거죠.
결국 내려와서 먹으라고 했는데 그 냉면이 사자 밥이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시신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영장을 내린 게 저놈들입니다.
그게 구조조정 싸움입니다.

-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

한진 중공업도 하청노동자가 반이 넘습니다.
어떤 노조에 가니까 노조간부가 차를 하나 샀는데 억대의 차가 있더군요.
은근히 자랑까지 했습니다.
연봉이 6000만원이랍니다.
그 사업장 화장실에 갔더니 더운 여름날 청소용역 아줌마들이 화장실 앞에서 박스를 깔고 쉬고 있었습니다.
월급을 물었더니 11년 동안 하루에 아홉 시간 일해 왔는데 63만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옆에 있는 회사보다는 나은 대우라고 하더군요.
다시 노조 사무실에 와서 그 간부에게 얼마나 일하느냐고 물었더니 하루 여덟 시간씩 9년 됐다고 했습니다.

전라도 익산에 원광 대 병원에서 작년에 청소용역 아줌마들이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부산에서 거기까지 가 봤는데 투쟁하고 있는 장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정규직 노조에 가서 물어보니 거기에는 간호사나 병원직원들이 있는데, ‘우리가 왜 파업을 하느냐’면서 정색을 하며 안 가르쳐 주더군요,
이미 타결이 됐나?
그러면 미리 연락이라도 해주지, 욕이라도 해주고 가려고 아줌마들을 찾았는데 지하2층에 가서야 그들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은 아줌마들이 옷 갈아입고 휴식하는 공간인데 세상에, 그렇게 습기 차고 형편없는 곳을 어디에서도 못 봤습니다.
아줌마들은 월급이 40만원 이었는데 용역재계약시 38만원으로 깎이게 되어 투쟁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월급이 깎이니까 이 아줌마들도 자식이나 노동부에 물어봤겠지요.
그러다가 60평생에 우리나라에 최저임금법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무려 51만8,150원이라는 걸......@@@
임금뿐만 아니라 그런 곳을 휴식공간으로 내준 놈들이 사람처럼 생각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 여기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로비에 올라가서 하든지, 정문 앞에 천막을 치든지, 원장 집 앞으로 가든지 해야 될 거 아니냐고 했더니, 로비에 있다가 내려왔데요.
왜 내려온 거냐고 했더니 정규직 노조 지부장이 내려가 있으라고 했답니다.
‘아줌마들이 여기 이러고 있으면 환자가 떨어져서 협상하기 어려우니까 내려가 있으라’고 했데요
더 골 때리는 건 그 정규직 노조가 작년 자기들 임금 인상 시에는 가열차게 투쟁했던 곳이었습니다.
어용노조가 아니었습니다.
그 때 파업에 앞장섰던 노조 상집간부가 하는 말 ‘40만원 받던 아줌마들이 갑자기 51만원을 주장하면 병원경영은 어떻게 합니까?
아니 지가 무슨 원장입니까?
이 사람은 월급이 200만원이 넘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 사람의 200만원이 많아서 임금인상투쟁 하지 말라는 것 아닙니다.
중요한 건 어떤 놈은 200만원이 작고 어떤 년은 51만원이 많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그런데 있습니다.

청소하는 아줌마들은 임금이 작아도 된다.
식당 아줌마들이 100만 원 받으면 많이 주는 거라는 생각, 이런 치사한 새끼들이 노조 간부라니까요.
그리고 밖에 나와서 시민들에게 비정규직 철폐하자고 유인물을 나눠줍니다.
이런 사람들은 시민은커녕 자기 조합원들도 설득시키지 못합니다.

- 비정규직 개악안 저지투쟁과 연대 -

나는 우리 운동이 진짜로 내려가야 한다고 봅니다.
17~18년 동안 민주노조운동 열심히 해왔긴 했으나 결국 정규직 임금인상을 위해 싸운 것 밖에는 안 됩니다.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다 놔두고........... 비정규직 보호입법이란 게 뭐겠습니까?
근로자 파견법 만들어서 몇 년 해 보니까 현대자동차, 금호타이어 같은 곳에서 불법파견이 문제 되니까 합법파견으로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요?
WTO, FTA로 시끄러운데, 난 아무리 WTO란 말을 들어도 뭔 말인지 모르겠던데, 월드 테러리스트 올가니제이션이라 생각하니까 이해되더군요,
한일FTA가 체결이 되면 자동차 시장이 개방되는데 자동차만 해도 일자리가 2만개가 없어지는 겁니다.
이런 것들을 위해 노무현정부가 개악하려는 겁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연대란 말을 잘 씁니다.
이 연대란 말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것을 재작년 경희의료원 구내식당 아줌마에게서 들었습니다.
경희의료원에서 구조 조정 시에 제일 먼저 식당부터 용역을 주겠다고 하니 20년 넘게 일해 온 아줌마들이 싸움을 시작한 것입니다.
로비를 점거해서 싸우고 있는데 하루는 깍두기(용역깡패)들 수십 명이 왔습니다.
공권력을 투입시키기에는 부담스러우니까 병원 측에서 용역깡패를 부른 것입니다.
이들과 대치해서 싸우는 중에 한 아줌마가 기절했습니다.
근데 웃기는 건 자기네 식당 아줌마가 쓰러졌는데도 병원 응급실에서 거부하더라는 겁니다.
어찌어찌해서 치료받기는 했는데 알고 봤더니 그 아줌마가 쓰러진 이유가 더 가관입니다.
어디 맞아서 기절한 게 아니라 그 용역 깡패들 속에서 자기 아들을 만나서 그랬다는 겁니다.
취직 했다 길래 축하해 주며 오늘 아침까지도 따뜻한 밥을 해먹인 자기 아들이 거기 나와 있는 겁니다.
이미 비정규직인 아들이 비정규직이 안 되려고 하는 어머니의 투쟁을 막기 위해 나와 있는 모습,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이 이렇게도 만납니다.
어쨌든 내가 부산에서 왔다니까 이 아줌마가 사람을 하나 찾아달랍니다.
울산에서 올라온 빨간 조끼를 입은 청년이라는데 그것만 가지고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 왜 찾느냐고 이유를 물었더니 그 청년에게 밥 한 끼 못 사준 게 마음에 걸린다는 겁니다.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 해고될 때 장대비 속에 한 노동자가 회기 역 부근에서 출근길에 유인물을 나눠 주면서 외쳤다는데, ‘경희의료원 노동자 여러분, 현대자동차에 정리해고가 도입되면 전국의 사업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아줌마는 그 유인물을 받지 않았고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4년 후 자기가 그 처지가 되니까 그 생각이 나더라는 것입니다.
그 청년이 오죽 막막했으면 서울까지 와서 고함을 쳤을까?
그 심정이 이해되더랍니다.
그 때 그 청년 유인물 받지 않은 것, 고생한다고 밥 한 끼 못 사준 게 지금까지 미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현대자동차에서 정리 해고되는 것은 남의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노동자에겐 남의일이 없습니다.
비정규직이나 이주노동자가 불쌍해서 그들을 도와주는 게 아니고 그들의 차별을 없애지 않고 끌어올려 하나가 되지 않으면 내가 그 수렁에 내가 빠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김진숙 위원은 강연의 뒷부분에 자신이 노동현장에서 경험한 소외감을 덧붙이면서 “인간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없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 노동조합 운동밖에 없다고 믿었다”고 밝혔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무현 정권, 문민정부 이래 최대 수의 양심수 낳아

"국민통합 원하면 양심수 전면 사면해야“

 

정부가 지난 1월 31일 ‘경제살리기’와 ‘국민 통합’을 위해 김우중, 박용성, 박지원 등 재벌 총수와 정치인들을 3월 1일 대거 사면할 계획이라고 밝힌 가운데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8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국민통합을 원한다면 비리 재벌 정치인들이 아니라 양심수를 먼저 석방하라”고 목소리 높였다.

 

구속노동자후원회, 민가협,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다산인권센터 등 14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난파된 배 위에서 위태롭게 집권 말기를 항해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이 또 다시 기만적인 사면령으로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라며 “거론되고 있는 김우중, 박용성, 최원석과 같은 재벌 총수들은 분식회계 문어발식 확장으로 이 나라 경제를 IMF 경제위기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노무현 정권이 진정 경제살리기와 국민통합을 원한다면 파탄 난 노동자, 서민들의 삶부터 되살려 내야 한다”라며 현재 감옥 안에 있는 900여 명의 양심수를 전원 사면하고 조기 석방 시킬 것을 촉구했다.

 

노무현 정권, 4년 만에 구속 노동자 기록 돌파

 

이들 단체에 따르면 1월 30일 현재, 전국의 교도소, 구치소, 경찰서 등에 구속 수감되어 있는 양심수는 95명이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구속 되어 있는 양심수는 901명에 이른다. 또한 노무현 집권 4년 동안 구속된 노동자의 수는 문민정부 이래 최대였다. 김영삼 정권 때는 632명, 김대중 정권 당시 892명인 것에 비해 노무현 정권은 임기가 마무리되기도 전인 4년 동안 921명의 노동자를 구속시켰다. 특히 2006년에만 271명의 노동자가 구속되었는데 그 중 비정규직 노동자가 200명에 이른다.

 

이들 중 김성환 삼성일반노조위원장은 국제엠네스티에 의해 양심수로 판단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구속된 양심수들은 노무현 정권이 소수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앞세워 대다수 노동자, 서민들의 삶을 파탄내고 정치적, 시민적 자유마저 짓밟는 상황에서 구속되었다”라며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져야 할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날뛰고 있고 민주주의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집회·시위의 자유가 압살 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군사 독재의 망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라고 분노하고 양심수들의 즉각 석방을 요구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현대차 파업손실액 ‘1276억’ vs ‘38억’…과연 진실은?

현대차 파업손실액 ‘1276억’ vs ‘38억’…과연 진실은?

[한겨레] 현대자동차는 성과급 문제로 불거진 최근 노조의 잔업(5일)·특근(3일) 거부로, 1276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9일 밝혔다. 앞서 역시 현대차는 1987년 이후 지난해까지 20년 동안 노조의 각종 파업에 따른 손실액이 10조원을 넘었다고 발표한 바도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파업손실액 발표는, 파업에 대한 여론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파업손실액이 일반 국민들에게는 ‘실질적인 피해액’으로 인식되는 탓이다. 과연 파업도 아닌 잔업 거부로 생긴 손실액 1276억원의 ‘진실’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물론, 현대차 쪽도 ‘실질적인 피해액’이 아닌 ‘생산차질액’이라고 말한다. 1276억원도 잔업과 특근이 평소처럼 이뤄졌을 경우 생산대수인 8284대에 차량 값을 단순히 곱해 나온 수치다.

지금까지 20년 동안 파업 등에 따른 현대차의 생산차질은 노사 갈등이 끝난 뒤 대부분 만회해왔다. 노동자들이 잔업·특근으로 목표 생산대수를 채우는 탓이다. 지난해 6월 파업 때도, 우리투자증권은 “파업으로 생산 차질을 빚지만 종료 후 특근 등으로 보충한다”며 “파업이 사실상 실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천문학적 규모의 손실액 발표에도, 주가는 별 반응이 없다.

또 생산을 만회하지 못하거나 판매시점을 놓쳐 끝내 8284대를 팔지 못한다고 가정하면, 실질적 피해액 추정은 가능하다. 현대차가 발표한 차량 한 대의 영업이익률(3.1%)을 적용하면 8284대를 생산·판매하지 못해 생기는 실질 피해액은 38억원이다. 부품업체들의 피해도 따져볼 수 있지만, 현대차조차 “1주일 가량의 파업으로는 부품업체에 영향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현대차는 왜 ‘생산차질액’을 ‘파업손실액’으로 발표할까. 현대차 홍보실 관계자는 “언론 등에서 피해액을 요구하는데 가장 단시간 안에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생산차질액밖에 없다”며 “실질적인 손실액은 추정도 힘들 뿐만 아니라, 연말이 돼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파업피해액’을 묻자 “지금까지 실질적인 피해액을 계산한 경우는 없다”고 답했다.

지지난해 7월 한 달 가까이 파업을 벌인 아시아나조종사노조 파업 때도 회사 쪽이 발표한 파업손실액도 논란거리였다. 아시아나는 2530억원의 매출손실을 입었다고 발표했으나, 증권사들은 “주로 수익이 낮거나 적자 노선 중심으로 결항돼 매출손실이 아닌 영업손익에는 긍정적 영향도 끼쳤다”고 분석했다. 실제 파업 당시, 아시아나의 주가는 되레 올랐다.

지난 2003년 10월, 서울지법은 한 발전회사가 노조 파업(38일)으로 31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지급하지 않은 임금이 파업 때 대체인력비보다 훨씬 많은 등 파업기간 손해보다 실제 이익이 더 많았다”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강신준 동아대 교수(경제학)는 “생산차질액을 파업손실액으로 발표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며 “기업의 여론몰이용”이라고 잘라 말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도 “데이터가 과장될 수밖에 없고 실질적 피해액은 일을 해결된 뒤 점검이 가능한 사안”이라며 “언론도 생산차질액을 손실액으로 무분별하게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