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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하청노조 4곳 사상 첫 공동파업

사내하청노조 4곳 사상 첫 공동파업

울산, 전주, 아산, 화성 등지에서 25일 4시간 부분파업…"한 시간을 싸워도 같이 싸우자"


  
울산과 전주, 아산과 화성의 대공장 사내하청노동자들이 단결해 25일 일제히 4시간 부분파업에 돌입, 공장이 멈추는 일이 벌어졌다.  

기아차비정규직지회, 현대차비정규직노조, 현대차아산공장사내하청지회, 현대차전주공장비정규직지회, 지엠대우차창원공장비정규직지회,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조합원 3천여명은 이날 공동의 요구사항을 내걸고 부분파업과 선전전을 벌였다.

사내하청노조들은 이날 파업에서 ▲원청사용자 책임 인정 ▲불법파견 정규직화 ▲임단협 투쟁 승리 ▲노조탄압 분쇄의 4대 요구사항을 공동으로 내걸었다.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파업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시간을 싸워도 같이 싸우자"

이번 파업은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전비연)의 사내하청노조대표자들이 요구사항을 모아 공동파업으로 단결된 힘을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전개됐다. 그간 원청 사용자성 인정, 불법파견 정규직화 등 동일한 요구를 제시하며 투쟁을 벌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개별사업장에 국한되어 싸워왔던 사내하청노조들은  힘을 결집하여 공동으로 목소리를 내자며 뜻을 모았다.


▲ 현대차비정규직노조가 이날 4시간 부분파업에 돌입하자, 현대차 관리직 직원들이 공장으로 들어와 조합원들을 끌어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사진=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노조)
오민규 전비연 기획국장은 “지금까지 사내하청노조들이 각자 처절하게 싸워왔지만 요구는 동일했다”며 “이번에는 한 시간을 싸워도 같이 싸우자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며 공동파업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노조는 임금단체협상을 진행하고 있고, 하청업체들에게 집단교섭을 요구하며 지난 7월부터 파업을 전개하고 있는 전주공장 사내하청지회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또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하다 해고된 조합원 10여명의 복직과 임금인상 등을 주장하며 사측에 집단교섭을 요구하고 있으나 사측은 거부하고 있다.

이날 사내하청노조들의 파업으로 인해 현대자동차는 일부 공장의 생산라인이 멈춰 조업에 차질을 빚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의 최우정 조합원은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1공장과 2공장의 생산라인이 정지되어 정규직 노동자도 일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최 조합원은 “파업이 예고되자 사측이 대체인력을 투입하기 위해 조합원들을 끌어내려 했지만, 정규직 대의원 동지들과 함께 연대하여 이를 저지시켰다”고 말했다.

사내하청노조 파업으로 공장을 멈추다


▲ 이날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노조의 파업으로 일부 생산라인의 가동이 중단됐다. (사진-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노조)
전비연에 의하면, 현대차 전주공장 사내하청지회는 이날 파업으로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는 트럭공장을,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버스공장의 생산라인을 세웠으며, 아산공장의 비정규직 조합원들도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조합원이 파업에 돌입해 도장부와 의장부 라인을 세웠다.

경기도 화성의 기아차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은 이날 오전 8시부터 4시간 파업에 돌입해 기아차의 생산라인이 올스톱 됐다. 지엠대우 창원공장 사내하청지회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파업을 벌이는 대신 출근 선전전을 진행했다.

비정규직노조들의 이같은 공동투쟁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사내하청업체들은 지난 23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일괄적으로 시급 308원을 인상한 7월 급여를 지급했다.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노조는 시급 625원 인상과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단체협상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으나, 사내하청업체는 노조와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임금인상을 결정하여 이날 지급했다. 울산공장은 물론 전주공장과 아산공장에도 일괄적으로 시급 308원이 인상된 임금이 지급됐다.

최우정 조합원은 “노조의 요구는 임금 몇 푼을 올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주장하다 해고된 조합원의 복직과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정리해고 1순위가 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고용안정을 요구하고 있다”며 “사측의 방해공작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파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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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받던 비정규직 공장을 뒤흔들다 -기아

천대받던 비정규직 공장을 뒤흔들다 

[현장탐방] 기아차 화성공장…"16년 전 영화 <파업전야> 우리 얘기예요"
  

08:00 사장이 임금 떼먹고 달아나자 전면파업을 벌여 만 하루만에 체불임금이 통장에 들어왔다.
11:00 비정규직 노동자가 파업을 벌여 기계를 멈추고 본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14:00 22개 회사의 대표로 구성된 사측 교섭위원들이 또 빈손으로 나오자 노조 교섭위원들이 성실교섭 하라고 호통을 쳤다.
14:30 식당 조합원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킨 지점장과 관리자가 조합원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를 했다.
20:00 식당 주간조 조합원 80여명이 퇴근 후 식당 앞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하라는 선전전을 벌였다.
23:00 야간조 400명이 파업을 벌여 공장을 멈추고 영화 <파업전야>를 관람했다.
22일 하루 동안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생긴 일들이었다.



    
▲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 400여명이 22일 오전 11시 2시간 파업을 벌이고 화성공장 본관 앞에 모여
   임금인상과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등을 촉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사진=금속노조)  

450명으로 출발한 노동조합이 1년 만에 세 배로 늘어나고, 노조와 합의 없이는 구조조정을 할 수 없도록 22개 업체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비정규직 파업으로 공장이 멈춰 하청 사장들은 물론 기아자동차 회사까지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다. 언제 쫓겨날지 몰라 숨죽여 살아가야 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도리어 악덕 사장을 쫓아내고, 고용과 근로조건을 보장받으면서 공장을 뒤흔들고 있는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을 찾았다.

22일 오전 11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본관 앞. 10시 30분부터 파업을 벌인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주간조 조합원 400여명이 뙤약볕에 땀을 줄줄 흘리며 모였다. 환갑에 가까운 늙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실사용주 원청은 교섭에 나오라"며 목청껏 구호를 외쳤다.

이동우 조직부장이 "체불임금 청산을 요구하며 100여명의 우성기업 조합원들이 21일 전면파업에 들어가자 22일 아침 조합원들의 통장에 체불임금이 모두 들어왔다"고 말하자 조합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조합원들은 투쟁만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쟁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하청회사와 12차례에 걸쳐 교섭을 했지만 하청 사장들은 '다 알고 있지 않냐? 우리가 결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교섭만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바지사장이 비정규직에 대한 구조조정을 조금이라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교섭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우리 임금을 바지사장이 단돈 10원도 올려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원청을 상대로 끝까지 투쟁해 임금과 특별요구안을 반드시 쟁취합시다." 김원주 교섭위원의 목청보다 더 뜨거운 조합원들의 함성이 본관을 우렁차게 메아리쳤다.


600일간 노조사무실로 사용된 두 동의 천막



금속노조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지회장 김영성) 노조사무실로 정규직 노조사무실 건너편에 쳐진 두 동의 천막이다. 천막 입구에 테이프로 붙여놓은 지회 현판이 유일하게 이곳이 노조사무실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다. 천막 안에는 이불과 옷장, 조그마한 냉장고, 밥솥 그리고 컴퓨터 한 대가 놓여있었다. 선풍기 2대가 돌고 있었지만 천막 안은 한낮의 열기로 후끈했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일하는 정규직 조합원은 1만명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1차 하청만 2천여명이고 2∼3차 하청까지 합치면 2,500명 정도다. 그 중에서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에 가입한 조합원은 1,200명을 넘어섰다. 조합원들은 30여개에 이르는 하청업체에서 수출반제품 포장, 주철주조, 조립, 플라스틱, 도장, 피디아이(검수), 식당, 청소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노조설립 1년 만에 조합원 세 배로

지회가 만들어진 것은 작년 6월 4일이었다. 그 전에는 '노동해방을 향한 비정규직 현장투쟁단'(현투단)이라는 이름으로 2002년부터 3년 정도 활동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450여명이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노조설립 1년 만에 조합원이 3배로 늘어난 것이다.

작년 7월부터 20여개 업체를 대상으로 집단교섭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8월 26일 첫 번째 독자파업을 벌여 공장을 세우자 9월 중순 하청업체 대표들이 모두 교섭에 나왔다. 그러나 단체협약 체결의 길은 멀고 험했다.

8월 26일부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파업을 벌였다. 기아자동차는 비정규직 파업을 깨기 위해 구사대는 물론 용역깡패를 동원했고, 연일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으며 조합원들은 용역깡패의 폭력에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파업 과정에서 1천명까지 늘었던 조합원들은 무자비한 폭력 앞에 움츠러들었고, 노조를 탈퇴하기 시작했다.


2005년 10월 말 노조 최대 위기

기아자동차는 10월 말 6개 하청업체에 계약해지 경고장을 보냈고, 10월 31일 주력업체였던 신성물류에 계약해지를 통보하면서 노동조합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조합원은 500명 밑으로 떨어졌다. 노동조합 최대 위기상황이었다.

비정규직지회는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조립공장을 점거해 전면파업을 벌이면서 최종적으로 합의안을 끌어냈고, 11월 4일 마침내 22개 업체와 단체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계약해지된 하청업체 조합원 전원이 고용승계되고 단체협약과 근속 등 근로조건도 모두 승계됐다.

이준영 교선부장은 "끝까지 남아있었던 조합원들은 어떻게 만든 노조인데 여기서 무너지면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들이 있었다."며 "요구안보다도 노조를 지켜야 한다는 심정으로 끝까지 싸웠다."고 말했다.


대안은 다시 현장투쟁이다

노동조합이 무릎 꿇지는 않았지만 상처는 컸다. 조합원들에게 계약해지에 대한 공포가 밀려왔고, 노조를 탈퇴한 조합원들은 패배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회는 다시 현장에서부터 조합원들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회는 작년 4/4분기 노사협의회를 진행하면서 조합원들이 요구하는 정년문제, 노동강도, 노동안전 문제들을 주요한 안건으로 올려 조합원들의 관심을 끌어냈다.

PDI, 조립도장플라스틱, PG 등 공정별로 노사협의회를 공동으로 진행했다. 공동잔업거부 투쟁을 벌이면서 조합원들은 차츰 자신감을 회복해나갔다. 여기에 민주노총 총파업을 어김없이 수행하면서 조합원수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노동자니까 파업투쟁을 언제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식들을 갖게 됐다.

기홍과 기광이라는 업체가 올해 5월 1일부로 계약해지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사측은 조합원들의 고용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때 지회는 조합원들이 전원 참여하는 파업을 통해서 고용과 단체협약을 승계했고, 이 투쟁을 계기로 비조합원들이 다시 금속노조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노조, 13차 교섭도 빈손으로 나온 사측 호통

  

오후 2시. 기아자동차노조 화성지부 회의실에서 열린 금속노조와 하청사장들과의 13차 집단교섭. 사측은 22개 업체를 대표해 이날 4명이 교섭에 나왔고, 지회는 5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사측은 임금, 원청사용자성 인정, 2∼3차 하청노동자 동일적용 등 요구안에 대해서는 또 다시 빈손으로 참가했다. 배우자와 자녀도 독감예방주사를 실시하게 해달라는 소박한 요구에 사측은 조합원에게만 하겠다고 나왔다.

김영성 지회장은 "독감예방접종은 아주 기본적인 요구인데 일시키고 돈만 벌어먹으면 되는 거냐?"고 호통치면서 "자기네가 할 수 있는 것도 안하고 할 수 없는 건 못한다고 하고, 교섭을 해태하는 책임은 사측에 있다."고 경고했다. 지회는 또 교섭위원을 징계한 일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사측은 묵묵부답이거나 차기에 안을 내겠다고 말했고, 교섭은 50분만에 끝났다.


업체 사장을 퇴출시킨 조합원들의 자신감
    


오후 3시 KD공장 옆 식당. 전면파업을 벌여 단 하루만에 퇴직금을 받아낸 이종훈(57) 대의원은 "어제까지 조합원이 98명이었는데 이번 파업으로 22명이 가입했고 이제 비조합원은 딱 6명 뿐"이라고 자랑했다. 21일 파업으로 자동차 반제품을 포장해 해외 현지공장으로 수출하는 KD공장이 멈췄고, 당황한 사측이 돈을 구해와 체불임금을 해결했다.

신성원 부지회장은 "다른 업체 사장이 돈을 냈다고 하는데 누가 1억이 넘는 돈을 대신 냈겠냐?"며 "수익성이 가장 좋은 KD공장이 서자 기아차 원청이 해결하고 모른 척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훈 대의원은 "체불임금이 해결됐는데도 조합원들의 분노는 사그러들지 않았다"며 "업체 사장이 교체되어도 고용과 권리를 하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현장에 복귀했다."고 말했다. 이 때 신임사장 내정자인 현대차 아산의 임굉호 소장이 23일 공식적으로 인사를 하겠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이종훈 대의원은 "노동조합의 힘은 결집력이고 숫자 아니겠냐?"며 "포기하거나 단념하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면서 환경을 바꾸려고 노력하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가슴에는 '임금 특별요구안 쟁취. 06투쟁 승리'와 '근조 더 이상 죽이지 마라'는 2개의 리본이 달려 있었다.


간부들의 큰 희생

비정규직 지회를 단단하게 세우는데 적지 않은 희생이 필요했다. 김수억 조직국장, 이상언 노동안전보건부장, 신성원 부지회장, 박종환 사무장 등 4명이 감옥에 다녀왔다. 김영성 지회장은 수십건의 고소고발이 걸려있고, 수배중이어서 600일 동안 공장 밖을 나가지 못했다. 이번 7월 파업으로 인해 지회장을 포함해 8명의 상집간부들이 고소고발을 당했다. 연대했던 정규직 6명도 같이 고소당했다.

지회 간부들은 잠시도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선전물을 만들고 현수막을 찍어오고, 23일 비정규직 울산집결투쟁에 확대간부들을 조직하고, 교섭속보를 쓰고, 조합원들을 실어나르고…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주간과 야간 조합원들을 모두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집회와 선전전은 아침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계속됐다.


개·돼지 취급받던 식당노동자들의 분노



저녁 7시 30분 노동조합 사무실 옆 식당 앞. 사복으로 갈아입은 주간조 식당 조합원 70여명이 식당 앞에 모였다. 윤준열 조합원은 "사측 놈들 위해 지금까지 일해와 병밖에 남은 게 없다.

약을 열 가지나 먹는 사람도 봤다. 정말 억울하고 분하다. 이제 똘똘 뭉치자."고 말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조합원들 앞에 선 장성례 소위원이 "진짜 떨린다."고 말하자 곳곳에서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뭐가 떨려?" "하고 싶은 말 다해라." "분노 터지는 말 다해." 그러나 장 소위원은 '투쟁'이라는 구호만 외치고 자리로 돌아갔다. 남 앞에서 한번도 연설해보지 않은 순진한 조합원들이 점점 투사로 변해가고 있었다.

뜨거운 국에 두 다리가 익어 뼈가 보이고, 무 커터에 손가락이 잘리고, 바께스를 집어던지며 욕을 하는 관리자들에게 당했던 모욕이 식당노동자들을 단결하게 만들었다. 220명의 노동자 중에서 200명이 노조에 가입했고, 현대푸드와 단체교섭을 하고 있는데 단체행동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21일 조립3부 식당에서 한 관리자가 기계로 깎던 감자 200Kg을 손으로 깎으라고 지시했다. 정정자 소위원은 "너무 힘들어 오늘 출근 못한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노조에 이를 알렸고, 대의원과 지회 간부가 항의한 끝에 22일 지점장과 관리자가 조합원들에게 사과했다.
    



15년 전 영화 <파업전야> "바로 우리 얘기예요."

밤 10시 30분 노동조합 회의실 앞. 2시간 파업을 전개한 야간조 조합원들 300여명이 스크린 앞에 앉았다. 16년 전인 1990년 작은 금속공장을 배경으로 노동조합 결성을 둘러싼 노동자와 회사 간의 충돌을 그린 영화 <파업전야>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간부들은 봉고차로 조합원들을 계속 실어 나르기 시작했고, 11시에는 400여명으로 불어났다. 크지 않은 화면은 계속 흔들렸고, 더빙도 시원치 않아 말과 행동이 엇나가기도 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동우 조직부장은 "PG공장은 기계가 쇳물로 주조를 하고 남은 찌꺼기를 일일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작업으로 떼어내는데 시끄럽고 철가루가 날려 이곳 조합원들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게 많았다."고 말했다.

12시 30분 영화가 끝나자 이곳저곳에서 조합원들이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PG공장 백우 소속의 이길수 소위원(56)은 "영화에서 앞장선 사람만 다치는 거라고 나오는데 지금도 저렇게 얘기하는 조합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에요. 저런 선배들이 있어서 우리도 지회가 생긴 거겠지요. 앞으로 더 열심히 싸워야죠."라고 말했고, 한 조합원은 "오래된 영화인데 우리랑 너무 흡사하다"며 "노동자 입장에서 달라진 게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수현 조합원은 "구사대, 용역깡패, 회유와 협박까지 작년에 우리가 했던 파업하고 너무 비슷하다."고 말했고, 김오남 조합원은 "간신들 하는 짓도 똑같네요. 작년에 우리가 악발로 했으니 안 쫓겨났지 아니면 벌써 쫓겨났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지난 해 10월 파업 당시 기아차 회사가 수백명의 용역깡패를 동원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회사에 대한 분노를 쉼 없이 쏟아냈다.

<파업전야>가 "우리 조합원의 정서에 딱 맞는 영화"라는 김영성 지회장의 얘기가 떠올랐다. 23일 새벽 1시 400여명의 노동자들은 16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어진 <파업전야>의 현실은 온 몸으로 느끼며 싸워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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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낮을수록 암 많이 걸려

소득 낮을수록 암 많이 걸려

소득이 낮을수록 암에 많이 걸리고 사망할 확률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연구센터 이상이 소장에게 의뢰해 지난 98년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를 기준으로 암 발생률과 생존율을 5년동안 추적 연구한 결과, 이같은 결과가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계층을 5계층으로 나눴을때 남성은 소득이 가장 낮은 계층이 위암.폐암.간암.대장암 등 4대암에 걸린 비율이 인구 10만명당 376.6명으로, 소득이 가장 높은 계층의 266.9명에 비해 발생률이 1.4배 높았습니다.

여성도 저소득층에서 1.2배 더 많이 발생했습니다.

1999년 암에 걸린 환자의 5년간 상대생존율도 남성은 고소득층이 42.4%인 반면, 저소득층은 26.9%에 그쳤습니다.

여성도 고소득층이 59.7%, 저소득층이 50%로 차이를 보였습니다.

또 고소득층의 경우 규모가 큰 3차 병원에 입원한 비율이 73%였으나 저소득층은 54.2%, 의료급여수급자는 10.1%에 불과했습니다.

복지부는 이같은 결과를 토대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국가암 조기검진 사업을 확대하고 치료비 지원도 강화하는 등 의료 서비스의 계층간 격차를 줄여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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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노동해방 현장투쟁 선전물(8.22)

♦ 제2-4호 ♦ 06년 8월 22일 ♦ 발행인: 심정수 ♦ 발행처: 노동해방 현장투쟁 선전팀 ♦ http://cafe.daum.net/kiast

자본가의 지불 능력을 걱정하는 것은 우리 노동자가 할 일이 아니다!

현대자본은 기아차와 현대차간 차별화 전략을 구사 하면서 06임단협 투쟁 전선을 교란시키고 있다. 자본가 조남홍은 13일 조선일보에서 “올해 기아차는 예년처럼 현대차 노사의 임금협상 결과를 그대로 따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수익성이 차이가 나는 만큼,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설명이다.

자본이 그토록 떠들어 대는 고유가와 원화강세, 환율 하락으로 인하여 예년보다 회사의 이윤율이 줄었다는 각종 통계수치와 자료를 공개하면서 현대차 노사의 임금협상 결과보다 더 줄 수 없다고 협박하며 조합원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며 조롱하고 있다.

현대자본의 차별화 전략의 핵심은 기아차 정규직 노동자와 노동조합 무력화 작전이다. 현대차 노동조합은 최적의 투쟁 조건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쟁취된 것 없이 너무나 형편없이 졸속적으로 06임투를 마무리하고 말았다. 우리 기아차 노동조합은 현대차 노동조합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절대 안된다.

우리 노동자가 양보하면 생활 전반에서 고통 받는다!

기아차 노동조합은 자본가들이 ‘적자는 절대 안돼’ ‘먼저 이익을 내야만 회사도 직원도 생존할 수 있어’ 라며 죽는 시늉을 할 때 지례 겁을 먹고 스스로 정당한 요구를 철회하고 투쟁 수위를 낮추어서는 절대 안된다.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도 살 것 아닌가?”하는 자본가의 주문에 걸려들면 아무 요구안도 쟁취할 수 없는 종이호랑이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 노동자는 양보할게 없다. 공장과 기계에 대한 어떠한 소유권도, 작업장에 대한 통제권도,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권도, 나라를 운영할 국가권력도 노동자에게는 없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몸뚱아리 하나뿐 인데 무엇을 양보하란 말인가? 만약 자본가들이 그들 자신이 자초한 자본의 위기를 해결할 능력조차 없다면 그런 무능력한 자본가들은 망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문제는 몇몇 개별 자본가들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가가 주인인 자본주의 사회 체제 전체의 문제다. 만약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이 떠드는 양보와 화해 정신에 물들면, 무능력한 자본가들을 쓸어내야할 역사적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며 영원히 임금노예노동 제도 아래서 고용불안과 날로 강화되는 노동강도, 임금삭감, 복지후퇴등에 허덕이며 생활 전반에서 고통 받게 된다.

고용불안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도록 자본주의 체제를 뛰어 넘어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가 넘실대는 노동해방 세상 건설을 위해 앞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06임단투를 기필코 승리하자!

현대자본의 차별화 전략을 분쇄하는 유일한 길!

임금인상과 단협 요구안은 무엇으로 쟁취 되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자본가의 이윤이 아니라 정규직, 비정규직 가리지 않는 노동자의 단결력과 투쟁력에 달려 있다는 너무나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는 일이다.

기아차 노동조합은 노무현 자본가정부와 보수언론을 상대로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와 작은 차이와 이해관계를 떠나 동해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과 정신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의 노동자로 뭉쳐서 단결과 연대로 아래로부터 현장공동투쟁을 실천할 때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사실을 몸으로 직접 경험하면서 06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의 위상을 분명하게 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단결과 연대로 아래로부터 현장공동투쟁을 실천할 때!

이것은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다. 그것은 그토록 노무현 자본가 정부와 보수언론이 말하는 “대공장노조의 집단이기주의”운운하며 기아차 정규직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을 무력화 시키는 확실한 방법이다. 또한 현대자본의 차별화 전략을 분쇄하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남의 일로 구경만 하면 노동형제들이 다 죽는다!


자본가의 정리해고 공격에 맞서자!

8월11일 상하이자본이 쌍용차 조합원 554명을 정리해고 하겠다는 신고서를 노동부에 접수했다. 고용보장 확약서의 이행이 정리해고로 나타났다. 이제야 쌍용차 노조는 부랴부랴 총파업을 선포하고 옥쇄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자본에 기생하는 노동조합 운동이 끝내는 노동자들의 숨통을 끊어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쌍용차 노조에서도 찾을 수 있다. 관료주의에 물들어 자본가와 함께 비리를 저지르고 현장 노동자의 뒷구멍에서 배신을 때리는 행위는 쌍용차 단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계에 먹칠을 하는 폭거다.

2001년 대우차에서 1725명의 정리해고가 시행될 때 실질적으로 연대하지 못했던 노동계가 ‘나는 아니겠지’ 하는 안일한 대응으로 또 하나의 대규모 살인테러를 용인하고 말았다. 물론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대우차 정리해고 때와는 다르게 절대다수의 조합원들이 움직이고 있으며, 산별투표 후 실질적인 산별정신을 현장에서 어떻게 녹여내는가에 따라 싸움의 승패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혼자 살겠다고 투쟁의 대열에서 흩어질 때 쌍용차 노조의 투쟁은 끝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명심해야 한다.

포항은 지금도 전쟁 중 - 누가 공공의 적인가!

하중근 열사를 살인해 버린 정권과 폭력경찰 그리고 포스코 자본은 하중근 열사의 죽음을 자신들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 저절로 죽었다는 해괴한 궤변을 늘어놓고 있으며, 국과수라는 곳에서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넘어져서 죽었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펴고 있다. 죽은자는 말이 없기에 이 시국만 벗어나면 여론이 잠잠해 질 테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노동자의 죽음은 국민들의 기억에서 멀어진다는 생각으로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

포항에서는 경찰이 모든 것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가족을 걱정해서 투쟁의 현장으로 달려온 임신부를 끔찍한 집단폭행으로 유산시키고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하면서 제2의 폭력을 진행하고 있고, 포항투쟁을 지켜보던 포항시민에게도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면서 문제제기하는 시민들에게 ‘시민을 가장한 가짜 시민들이 문제제기 하는 것이다’라며 다시 또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이렇듯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포항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할 포스코 정규직 노동자들은 건설노동자들과 연대를 할 수 없는 미조직 상태에서 남의 일 보듯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노사관계 로드맵은 조직되어있는 정규직 노동자들만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 지금 당장은 남의 일인 것처럼, 국회와 정부가 정규직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만을 공격하는 듯이 보이겠지만 남한의 노동자들을 전체적으로 하향평준화 시키려는 것이 적들의 노림수이다. 그러므로 포스코의 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전판은 없다.

비정규직지회 투쟁은 남의 투쟁이 아니다!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의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05년에 나타났던 사측의 노노분열 작전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사측은 비정규직지회 파업현장에 조합원인 조,반장을 동원시켜 대체인력으로 투입하여 파업파괴자로써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이를 제대로 대응해야 할 기아차 노동조합은 남의 일인 듯이 먼 산을 쳐다보고 있다.

앞서 쌍용차와 포스코의 예처럼 그리고 기아차 부도사태의 예처럼 노동조합이 안일한 대응을 일삼는 다면 전체 노동계에 먹칠을 하는 행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전체 노동진영의 물을 흐리면 기아노동자의 설 자리도 없어진다는 것은 진리이다. 기아차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조직이 아니라 ‘기아차 근로자 협의회’가 되길 바란다면 모를까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이 땅의 민중과 노동자들을 배신하지 않으려면 당면한 투쟁을 비껴가지 않고 함께 해야 한다. 그것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있는 이유이다.


노동자가 연봉 5천만원 받으면 날강도인가?

이번 현대자동차의 임투가 끝난후 언론과 네티즌들의 글을 보면 온통 비난 일색이다. ‘배부른 투쟁... 19년째 파업... 대공장 이기주의... 앞으론 현대차 구입하지 않고 수입차 사겠다... 노동귀족...’ 아마도 기아자동차 임단투에 대해서는 부도났던 기업이라고 더욱 심할 것이고 그것이 우리의 투쟁을 위축시키는데 적잖게 작용하리라 본다.

대공장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의사, 변호사는 연봉 몇 억씩 가져가도 아무런 말이 없는데 왜 노동자만 연봉 5천이상 받는다고 비난을 하는가? ‘감히 공돌이들이’ 5천씩이나 가져가는게 배아픈가? 우리가 의사, 변호사보다 땀을 덜 흘려서? 우리가 가방끈이 짧아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2천만원도 안되는 연봉을 받는다고 대공장 정규직들도 그만큼만 받는게 해결책인가? 오히려 하청업체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할 수 있는 방법(오직 산별정신에 입각한 연대 투쟁뿐이다)을 찾는것이 제대로 된 해결책 아닌가? 대공장 노동자들이 받아야할 진정한 비난은 연봉을 많이 받는게 아니라 바로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게을리 하고 있는것, 바로 그것이다.

노동자들이야말로 그들이 일한 댓가를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 정당한 댓가를 주기는커녕 고임금, 저임금으로 우리 내부를 갈라내고 노동자들끼리의 단결을 방해해서 이익을 얻는 자들은 오직 자본가들 뿐이다. 위축되지 말자! 진정으로 파국을 원하는 것은 바로 제시안도 없이 배째라고 나오는 자본가들이다. 그들의 말도 안되는 거짓 선동에 흔들림없이 당당하게 우리의 투쟁을 전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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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동조합의 역사는 [노가다]라는 이름을 버리고 [건설노동자]로 우뚝 서기위한 투쟁의 역사입니다.

건설노동조합의 역사는 [노가다]라는 이름을 버리고 [건설노동자]로 우뚝 서기위한 투쟁의 역사입니다.

건설노동자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바보로 만드려는자에게 주먹을 내밀어야...

건설노동자는 사회적으로 '노가다''막일꾼''노동일' 등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명칭은 해방 후 60년 동안 이 땅의 산업역군으로 전국을 떠돌며 산업설비, 도로, 항만 등 기간산업을 일으키고 열사의 나라 중동에 가서 외화를 벌어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멸시와 천대의 이름으로 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건설노동자'라는 떳떳한 이름과 일할 맛나는 현장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 땅의 가진 자들은 못 배우고 순박하기만 한 건설노동자들을 우롱하여 일당쟁이로 전락시켰으며 일제 때부터 내려온 인력통제를 위한 '오야지'제도는 온존했습니다.

결국 현장은 피폐해지고 '이판사판 공사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판은 이세상이오 저판은 저세상 곧 이승과 저승을 오고가는 인생살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건설노동자의 희망 노동조합이 있습니다.

하루 2명꼴로 죽어가는 현장, 평균연령이 48세가 되는 노동자, 죽도록 일을 해도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노동자, 다단계를 통해 이중 삼중 착취되어도 잠잠한 노동자, 임금이 체불되어도 돈 안주는 놈이 큰소리치는 현실, 자식에게 내 직업이 무엇이라 말 못하는 세상 등 이러한 현실을 깨부수고 인간답게 살고자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건설자본과 그들의 돈으로 사주를 받는 기득권 세력은 용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원에게 불이익을 줍니다. 노동조합 간부에게 현장 출입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노동조합을 더러운 X 본 것처럼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가진 돈과 권력으로 철저히 파괴하려 합니다.

이러한 판국에서도 건설노조는 자랑차게 커왔습니다. 지난 6년 동안 전국 건설현장에 단체협약을 통해 노조깃발을 1,000개 넘게 꼽았습니다. 옳은 것을 옳다고 했기에 가능했습니다.

건설노조의 역사는 지속될 것입니다.

결과는 건설자본 뿐이 아닌 검경 언론, 정치인 할 것 없이 총체적으로 덤비고 있습니다. 그들의 법으로 노동조합을 깨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노가다'가 무슨 노조냐는 비아냥이 들리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현장 교섭을 통해 노동조합 전임 활동가들의 임금을 약속 받았다고 '금품 갈취'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건설현장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가는 파렴치한들과 같이 취급하고 있습니다.

결국 국가 권력을 이용하여 건설현장을 바꾸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건설노조 간부들 수십 명을 구속하였고 지금도 하이에나가 썩은 먹이를 노리듯 으르렁 거리고 있습니다.

건설노조는 반드시 이겨나갈 것입니다.

지난 18년의 건설노동조합의 역사가 그렇듯이 건설노동자들이 의리와 깡다구를 바탕으로 '뭉치면 못할 것이 없다'는 신념으로 건설현장을 확 바꿔낼 것입니다.
이는 건설노동자들의 역사적 장정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건설현장 200만 건설노동자들의 한풀이 한판이 필요합니다. 건설노동조합과 함께합시다.

이제 그 무거웠던 짐'노가다'를 벗고 '건설노동자'가 되는 길 항상 노동조합이 함께 하겠습니다.

현장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피눈물나는 역경이 따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길에 먼저 한 노동조합 간부들과 조합원들이 함께 할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다고 하여도 노동조합을 처음 만들었던 그 뿌듯함을 잃지 않겠습니다. 만일 자리가 비게 된다면 그 자리를 현장의 '건설노동자'들이 채워 주십시오.

이제는 이 땅, 이 현장의 주인이 연장을 쥐고 하루의 땀을 중요하게 간직하는 건설노동자 임을 선언합시다. 지난 세월 작으나마 건설노조가 해왔습니다. 도전도 만만치 않지만 역사가 발전하듯이 건설노동자의 단결 흐름은 거스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부 되먹지 못한 역사를 거스르는 자들, '건설노동자'들이 인간이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놈들은 그들이 갖은 모든 것을 동원하여 '노가다'로 머물게 하려하고 있습니다. 안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단결을 가로막는 행위와 차별에 저항하며 전진하여야 합니다.

건설노동조합은 처절한 몸짓으로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한을 묶어 일하는 노동자가 대접받고 힘든 일을 하는자가 존경받는 세상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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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이야기'스캔들은 대한민국 도박공화국에서 빙산의 일각

'바다이야기'스캔들은 대한민국 도박공화국에서 빙산의 일각

안 빈 (편집위원)

우리사회를 떠들석하게 하고 있는 '바다이야기' 등 성인용 오락기 심의 과정과 상품권 발행업체 지정 등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에 대해 검찰이 전면적인 수사에 착수할 모양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성인오락기 심의를 맡는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과 예심위원들이 성인오락기 제조업체나 성인오락실 등에 친인척 관계거나 동업자였거나 후일 바다이야기 개발업체 취업자였으며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 조카 노지원씨 연루설까지 나올 정도니, 늘 그래왔듯이 권력을 지닌 못된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통째로 맡겨놓은 셈이 됐다.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검찰은 기존 오락기 개발·판매 업체들이 거둬들인 부당이득을 1천억원대로, '바다이야기' 제조·판매사가 거둔 순익을 900억원대로 보고 있다. 또 관계자들은 상품권과 관련하여 업체당 50억~ 100억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한다. 경품용 상품권 지정 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은 총 19개로 지난해 8월부터 발행을 시작했다.

사실, 대한민국을 휩쓰는 도박 광풍에서 ‘바다이야기’ 스캔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지난 한 해 경마, 경륜, 경정, 로또, 강원랜드카지노에 몰린 15조원은 공무원들의 75%를 1년 동안 먹여 살릴 인건비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문제는 서민들이다. 부자들이 심심풀이로 하는 도박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서민들에게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위험부담이 너무 큰 게임이기 때문이다. 절도죄의 35%가 도박과 관련이 있다는 통계는 합법적인 도박일지라도 서민들에게는 범죄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사회가 ‘도박공화국’으로 급성장한 데는 지방자치제 실시 및 소위 문민정권의 태동과 관련이 깊다. 1991년부터 실시된 지방자치제가 문민정권을 만나 지자체의 권한이 대폭 강화되는 쪽으로 정책이 수립되자, 각 지자체는 너도나도 세수(稅收)확대를 명분으로 ‘도박산업’에 치중하게 되고 결국 전국이 도박장화의 길을 걷게 된다.

김영삼 정권 당시인 1993년경부터 도입된 ‘개인마주제’는 경마를 대중화로 과열 양상을 빚게 만들었다. 또 오늘날 카지노 도박중독으로 계속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주)강원랜드는 1998년도에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대중 정권에 들어와선 정부와 지자체의 의욕(?)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도박이 더욱 번창하게 된다. 1999년에 경륜이, 2000년에 경정이, 2002년에는 로또가 문을 열고 국민들에게 도박중독을 더욱 부추긴다. 이때 강원랜드카지노도 급증세를 보이는데 2001년에 코스닥시장 등록을 마친 후 2002년에 방문객 200만명을 돌파한 후 2004년에는 무려 500만명이라는 신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현 참여정부가 '바다이야기'로 바톤을 이어 받았다고 보면 된다.

군사정권의 몰락과 동시에 권력에 진입한 문민정권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는 지자체와 함께 전국을 합법적인 도박공화국으로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변명할 방법은 달리 없어 보인다. 국민들은 합리적인 개혁정권과 민생을 챙기는 지자체를 기대했지만 그들은 이 땅을 도박천국으로 만들며 딴 생각에 몰두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모두들 천민 카지노자본주의에 열심인 기기괴괴(奇奇怪怪)한 나라가 돼버린 것이다.

도박이란 본디 삥(수수료) 뜯는 사람만이 확실하게 이기는 게임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업자들과 동업관계에서 이 짓거리를 즐기고 있는데, 애먼 국민들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곳에 우르르 몰려 다니니 가슴이 답답하다.

3년 전쯤인가 한겨울이었다. 필자가 사는 지역 경마장 인근 길거리에서 한 사람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경마장에서 많이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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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걱' 학원 월수강료가 600만원>

<'허걱' 학원 월수강료가 600만원>

 
강남 어학학원 1개반당 고교생 5명 SAT 교습

(서울=연합뉴스) 전준상 기자 = 서울 강남지역의 한 어학 학원이 월수강료로 600만원을 받으며 영업을 하다 교육당국에 적발됐다.

서울시 교육청은 최근 강남과 송파, 목동, 중계동 지역을 중심으로 학원 244곳에 대해 특별 단속을 실시한 결과 매월 1인당 600만원의 고액 수강료를 받은 강남지역 P어학학원 등 모두 183곳을 적발했다고 17일 밝혔다.

P어학학원은 1인당 월수강료 기준액이 45만620원인데도 실제로는 무려 600만원을 수강료로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학원의 경우에는 고교생 5명으로 1개반을 구성, SAT(Scholastic Aptitude Test)를 교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SAT는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같은 미국의 표준화된 시험으로 미국 대학에 진학할 때 입학 사정에 반영된다.

시 교육청은 이 학원에 대해 교습 정지처분과 함께 세무당국에 통보하기로 했다.

P어학학원 외에 강남 Y보습학원은 기준액(102만9천128원)을 크게 초과한 156만5천원을 월수강료로 받았고, 강남 S외고반어학학원은 매월 65만원의 수강료를 받다 적발됐다.

강동의 Y어학학원도 월수강료로 57만원을, 중부 B보습 논술학원도 50만원을 받았다.

행정처분 내용을 보면 시정명령 및 기타가 122곳으로 가장 많고 경고 47곳, 정지 12곳, 등록말소 및 폐지 2곳 등이다.

이와 함께 교육당국에 등록하지 않고 교습을 했던 5개 학원은 고발 조치됐고 수강료 허위 게시 등을 한 학원 3곳은 과태료가 부과됐다.

시 교육청 관계자는 "2008학년도부터 새로운 대학입시 제도가 적용됨에 따라 일부 입시 및 보습학원이 고액 과외를 하고 있어 서울 전체지역에서 특별단속을 실시하게 됐다"며 "이번에 고액 수강료를 받다가 단속된 학원 상당수는 소수정예반을 운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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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늘어났는데 ‘내집’은 없다

집 늘어났는데 ‘내집’은 없다


[한겨레] 주택 보급률이 최근 5년간 크게 늘어 100%를 넘어섰으나, 자가점유율은 55%선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수가 가구 수보다 많아졌지만 정작 내집을 갖고 있는 가구는 크게 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국토연구원 윤주현 선임연구위원은 “돈있는 사람이 집을 많이 사고 없는 사람은 집을 못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토연구원은 17일 발간한 ‘국토정책 브리프’에서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주거실태 변화 특성을 조사한 결과, 주택의 대량 공급 및 주택보급률 증가에 비해 자가점유율의 증가는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며 “이제는 대규모, 대량 주택 공급 정책을 바꿔 여러 형태의 맞춤형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1~2005년 빈집을 포함한 주택 재고는 175만가구, 혈연가구는 56만1천가구가 각각 늘어 주택보급률이 96.2%에서 105.9%로 증가했다. 그러나 자기집에 사는 자가점유율은 95년 53.3%에서 지난해 55.6%로 10년간 변화율이 2.3% 포인트에 불과했다. 또 주거 점유형태는 전세가 지난해 22.4%로 5년 전의 28.2%에 비해 크게 줄어든 반면, 월세는 14.8%에서 19%로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저소득 가구의 주거비 부담 완화 방안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전체 1588만7천가구 가운데 무주택가구는 631만가구(39.7%)이며 1주택 보유 가구는 852만8천가구, 두채 이상 다주택 보유 가구는 104만7천가구다. 빈집은 2000년 51만3천가구에서 지난해는 20만가구 늘어 72만8천가구가 됐다.

강미나 책임연구원은 “빈집의 대부분은 아파트(46.1%)와 단독주택(38.3%)인데 아파트는 준공후 미분양 물량과 재건축 대기물량”이라며 “미분양 아파트에 대한 통계는 실제보다 적게 보고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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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포항시민들 다 때려 죽여라”

경찰 “포항시민들 다 때려 죽여라”
9일 노동자대회…시민들 격분 "데모보다 포스코가 문제"



날카롭게 간 방패로 환갑이 가까운 늙은 노동자들을 내리치고, 쓰러진
노동자들을 몽둥이로 가격하고 다시 방패로 찍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 포항 시내에서 또 다시 벌어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경찰의 폭력에 하루 동안만 150명의 노동자들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포항시민들 다 때려 죽여”라고
외쳤고, 노인, 여자 할 것 없이 방패를 휘두르며 마치 적군을 다루듯이 했다.
지붕 위에서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지켜본 경찰의 만행을 시민들은 “제발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려 달라”고 애원했다.

경찰의 소화기에 맞아 지난 1일 목숨을 잃은 포스코 건설노동자 고 하중근
조합원을 추모하고 살인적 폭력의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가 9일 오후 3시 포항 동국대학병원 앞에서 열렸다.

이날 포항은 불타고 있었다. 35도가 넘는 폭염에 불타고 있었고, 인간답게
살고싶다며 절규하던 노동자를 소화기로 때려죽인 경찰의 만행에 대한 분노로
불타고 있었다.

폭염을 포항 거리에서 보내고 있는 건설노동자 3천여명과 여름휴가를 끝내고
돌아온 금속노동자 1천5백명 등 7천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집결한 포항
동국대학병원 앞. 경찰의 소화기에 맞아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하중근 조합원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동국대학병원을 바라보는
노동자들의 얼굴로 태양이 뜨겁게 작열하고 있었다.



▲ 9일 오후 3시 포항 동국대학병원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7천여명이 고
하중근 조합원 폭력살인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
금속노조)



아스팔트 위의 온도계는 50도를 넘고

두꺼운 신문을 깔았지만 아스팔트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채 10분을 앉아있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아스팔트의 온도가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대형
문방구를 찾아 온도계를 사들고 아스팔트 위에 올려놓았더니 35도에서 시작한
온도계는 채 10분 만에 50도를 치솟았다. 온도계를 들여다보던 금속노조
충남지부 김명환 산안부장은 50도에 깜짝 놀라며 “종이박스를 깔았는데도
뜨거워서 엉덩이가 익어버릴 것 같고 더워서 미쳐버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국에서 온 노동자들은 50도의 온도를 피해 그늘로 피해있을 수
없었다.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수건으로 적시며 억울한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한상열 통일연대 상임대표는 “지금 우리는 살아서 이 뙤약볕이
뜨겁다는 걸 느끼지만 하중근 열사는 어떠냐?”며 “사랑하는 동지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는데 의리로라도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다.”고 절규했다.

민주노총 조준호 위원장이 “아직은 상여를 멜 때가 아니고 아직은 울 때가
아니”라며 “민주노총은 오늘부터 이 정권과 악덕 포스코와 사활을 건 투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선언하자 5천여명의 노동자들이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대통령이 사죄하고 사태해결에 나서라”

민주노동당 단병호 국회의원은 “하중근 동지가 싸늘한 시신으로 영안실에
누운 지 열흘이 되어가고 폭력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부검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어떠한 결과도 나오지 않고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즉각 이번 사태에 대한 사죄를 하고 폭력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이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면 부끄러워서 노동운동 못할 것
같다.”며 “반드시 밝혀내서 책임자를 처벌하고 하중근 동지가 편안한
마음으로 우리 곁을 떠날 수 있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포항건설노조 조합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포스코 본사 점거농성을
벌여 58명이 구속됐고 이지경 위원장이 15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고
하중근 노동자의 형님은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해 진상규명이 되어야 한다”며
모든 것을 대책위에 맡겼다. 지감렬 포항건설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소리없이’ 소중한 동지를 빼앗아간 포스코는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고 탄압을 계속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경찰청장과 현장책임자 처벌 ▲노무현 대통령 사죄
▲재발방지대책 수립 ▲건설노조 탄압중단 손배가압류 철회 구속자석방
▲유족들에게 사과 ▲포스코 사태해결 등을 요구했다.

“가자 포스코로 죽은 이의 한을 풀자”


4시 50분. 포스코를 향한 행진이 시작됐다. 형산강로터리를 수천명의 경찰이
틀어막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금속노조 조합원 등 2천여명은 섬안다리로
방향을 틀었다. 섬안다리 앞에는 천 명의 경찰들과 수십대의 경찰버스가
포스코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길을 가로막고 있던 경찰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더니 전남에서 왔다고
대답했고 또 다른 경찰은 경남에서 왔다고 말했다. 전라도에서 경상도까지
전국의 경찰이 포스코를 지켜주고 있었다.

금속노동자들은 “사람 죽인 놈들아, 길을 비켜”라고 말하며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노동자들 머리 위로 곤봉이 날아왔고,
대형소화기를 뿌리며 방패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성난 노동자들은 경찰을
끌어냈고, 경찰의 방패와 곤봉을 빼앗았다. 노동자들과 전투경찰의 대치와
격렬한 싸움은 1시간 넘게 계속됐으나 포스코를 향한 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6시50분 금속노동자들은 건설노동자들이 있는 형산강 로터리 입구로
향했다.

같은 시각 형산강로터리 입구에 도착한 5천여명의 노동자들은 다리 건너
포스코로 향한 길을 막고 있는 경찰과 맞섰다. 경찰은 83개중대 8천여명의
병력을 형산로터리 일대에 배치하고 컨테이너박스 6개를 동원해 진입도로를
봉쇄했다.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맨 몸뚱아리의 노동자들을 경찰이 치고 들어와
수십명이 다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기저기서 노동자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건설노조 간부들 여러 명이 연행됐다. 한 간부를 다쳐서 병원으로
후송하는 중에 경찰이 남부경찰서로 끌고 가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망연자실했고, 여기저기서 쇠파이프를 달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제네들 오면 방패로 친다”

7시30분 1,500명의 금속노동자들이 합류하자 조합원들은 다시 싸우자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집회 장소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경찰들이 방패를
아스팔트에 갈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가까이 갔더니 한 지휘관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제네들 오면 방패로 친다. 상체 윗부분은 방패로
치지 않는다. 하체만 친다.” 1602, 1023, 1027 부대원들은 “악 악” 소리를
연거푸 내며 공격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다.

한 건설노동자가 일어나서 외쳤다. “우리 건설노동자는 현장에서 망치들고
일할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평화적인 집회를 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물대포를 쏘고 방패로 찍고 몽둥이로 내리쳤습니다. 오늘
우리는 망치를 놓고 연장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소식을 전국 방방곡곡에
알려주십시오.” 건설노동자들 앞에 쇠파이프와 대나무, 삽자루가 놓여졌다.
건설노동자들은 경찰에 맞아 돌아가신 하중근 열사의 한을 풀 수 있다면 어떤
희생도 각오하겠다고 다짐했다.

“밑바닥 인생인데 뭐가 두렵겠냐?”

쇠파이프를 든 늙은 노동자에게 두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김 모(55) 조합원은
“어차피 우리 인생이 밑바닥 인생인데 두려울 게 뭐가 있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우리는 140m 위에 올라가 물건 조립하고 기계 설치해요. 우리가
죽어나갈 때 저들은 돈 몇 푼 던져줬어요. 싸우지 않으면 아무도 우릴 인간
대우 해주질 않아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조합원은 “빨리 싸우고 소주나 한 잔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간대접 받지 못하며 살아왔던 이들에게는 아들 뻘도 되지 않는 스무
살 전경이 내리치는 날카로운 방패도, 피 흘리며 쓰러지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포항시민들 다 때려 죽여라”


8시 5분. 집 밖으로 나와 길 양 옆에서 구경하던 200여명의 시민들 중에서
50여명이 도로로 뛰어들어 경찰에게 격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시민들 보는
앞에서 방패를 갈고 있잖아. 여기 기자들 어디 있어? MBC KBS 다 어디갔어?
이거 좀 봐라. 시민을 보고 욕하는 경찰이 어딨어? 다 때려 죽인다니. 어느
새끼야?”

“책임자 나오라고 그래.” “어디 시민 한 번 찍어봐. 찍어봐 임마.” “그
뒤에 숨어있는 책임자 나오라고 해.” 시민들의 항의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런닝셔츠 바람에 샌달을 신은 김 모(40.남구 해도동) 씨는 “경찰들이
소리지르면서 방패를 갈고 있어서 시민 한 명이 뭐라고 하니까 방패로 때려
죽인다고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친구라는 택배회사 직원은 “시민을 다 때려죽인다니, 아무리
데모한다지만 시민을 왜 죽이냐고. 방패 가는 거 보고 오죽했으면 시민들이
나왔겠냐? 시민들 세금갖고 니들은 인간들도 아냐. 책임자 나와서 사과하라
그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방패를 날카롭게 갈아 고무패킹이 없어졌다

강변에 바람 쐬러 나왔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된 강진택 씨(46. 북구
대신동)는 “시민 보고 다 때려 죽여라 안하나. 얼마나 분통터져.”라며
“데모가 문제가 아이라. 포스코가 돈 벌어갖고 같이 먹고 살아야지.”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항의는 시간이 갈수록 더 격해지고 있었다. 도로로 나온 시민들의
숫자는 어느새 200명을 넘어섰고, 곳곳에서 고함이 터져나왔다. 1602,
1623부대원들의 방패는 고무 패킹이 모두 사라져있었다. 사진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경찰은 방패를 옆으로 돌리며 사진을 방해했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항의에 가세했다. 최상길(62. 남구 대도동) 씨는
“장사하다 하도 억울해서 나 혼자 술 마시다 나왔다”며 “공권력은 막는
거지 뒤에서 몽둥이로 치는 게 어딨냐?”고 말했다. 그는 “책임자 나와서 내
매상 책임져.”라고 소리쳤다. 시민들의 항의가 1시간을 넘도록 계속됐다.

노동자들 쇠파이프를 들다

9시 15분. 경찰은 방송차를 통해 말했다. “조끼를 벗어버리고 포항시민인 양
대원들에게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부터
검거하겠습니다.” 방송차 소리에 시민들은 더욱 분노했고 여기저기서 심한
욕설을 내뱉었다.

건설노동자들을 선두로 4천여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경찰 앞으로
걸어나왔다. 조합원들은 시민들에게 위험하니 골목으로 비켜줄 것을 당부하자
한 시민은 “노조원들 잡혀가면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의 상황을 정확히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에 경찰버스와 5m 거리에 있는
가건물 지붕으로 올라갔다. “하중근을 살려내라”며 노동자들이 쇠파이프를
높이 들고 경찰 앞으로 걸어나왔다. 5분도 지나지 않아 경찰은 경찰버스
옆으로 밀려났다. 성난 조합원들은 경찰버스를 부쉈다.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조합원들을 막았다.

핏물로 젖은 형산강 로타리 앞 도로

그러나 그건 작전이었다. 9시 52분. 경찰은 양쪽에서 물대포를 쏘며 버스
앞쪽부터 치고 들어왔다. 버스 앞쪽 노동자들의 대열이 흩어진 것을 틈타
기역자로 조합원들을 몰아친 것이다. 당황한 노동자들이 잠시 저항하다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경찰은 넘어진 조합원들을 방패로 내리찍고 몽둥이로
머리를 가격하며 노동자들을 쫓아갔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렸고, 도로
곳곳이 핏물로 물들었다.

순식간에 50여명 이상이 쓰러져 밟히고 방패에 맞아 길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일부 노동자들은 들 것에 실려나갔다. 끔찍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잔혹한 진압이었다. 지붕에서 내려와 경찰이 달려간 길을 따라 걸었다.
곳곳에서 쓰러져 웅크리고 있는 노동자들이 보였고, 피는 아스팔트 위에
낭자했다. 방송차로 사용됐던 화물차의 유리창은 완전히 박살나있었다.

“이 사람 죽어요. 쓰러졌는데도 또 방패로 찍었어요.”

10시 4분. “피가 계속 흐른다니까. 구급차 빨리 좀 오라고 해.” 한 노동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등산용품 판매점인 ‘K2산장’ 앞에 한 노동자의 목 뒤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민들이 거칠게 항의하며 빨리 구급차를
들여보내라고 하는데도 경찰은 길을 막고 구급차를 보내지 않았다. “이 사람
죽어요. 뒷목을 두 번이나 찍었어요. 쓰러졌는데도 또 방패로 찍었어요.” 한
아주머니가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뭐 이런 나라가 있노. 사람이 죽었는지 눈을 못 뜨고 있는데 또 때렸대이.
빨리 구급차 불러 이놈들아.” 참다못한 시민들이 소대장으로 보이는
경찰간부를 ‘K2산장’ 앞까지 끌고와 둘러싸고 멱살을 흔들었다. 그러자
곧바로 전경들이 달려와 시민들을 밀치고 그를 데려갔다. 쓰러진 노동자는
15분이 지나서야 겨우 구급차에 실려갔다.

“너흰 에미 에비도 없냐?” “없다. ××년아.”

곳곳에서 울음이 터지고 분노가 폭발했다. 고무신을 신고 나온 정원일(56.
남구 대도동) 씨는 “대한민국 민주국가에서 이런 법이 어딨노? 이게 국민의
경찰이야? 이게 깡패새끼들이야?”라고 소리쳤다. 그는 “한 경찰간부놈이
포항시민 다 죽인다고 그랬다니까.”라며 “어디서 온 놈들이길래 그런 소릴
지껄이냐?”고 말했다. 그는 누가 “경찰서장 지나간다”고 소리치자 달려가
“서장 내 좀 보자. 이런 법이 어딨노. 이 놈들아.”라고 말했다.

한 아주머니가 “니들은 애비 애미도 없냐?”고 소리치자 한 전투경찰은
“그래 없다. ××년아.”라고 말해 시민들을 또 다시 격분하게 만들었다.
급기야 시민들은 ‘K2산장’ 건너편 편의점 앞의 쓰레기통과 의자를 막
집어던졌다. 시민들의 항의가 계속되자 경찰은 병력을 뒤로 빼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항의는 자정까지 계속됐다.

전쟁병동을 방불케하는 동국대병원

10시 30분. 경찰에 짓밟힌 노동자들은 동국대병원 앞으로 집결했다.
동국대병원엔 7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안면이 나가고, 귀가 찢어지고 머리가 터진 노동자들이 마치 전쟁병동을
방불케 한다는 것이었다. 포항사랑병원 등 다른 병원에 실려 간 노동자들을
합치면 중상자만 100명을 훨씬 넘을 것 같았다.

금속노조 김창한 위원장도 쓰러져 경찰에 밟혔고, 지나가던 경찰이 방패로
내리쳐 온 몸이 아프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인천 KM&I 박세준 지회장도
10여명에게 집단구타를 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상이 크지 않아 그들은
병원에 가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5만 4천명을 정규직화하겠다고
발표한 다음 날 일용직 건설노동자를 비롯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저지른
잔혹한 폭력만행이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소화기로 건설노동자 하중근
조합원을 때려죽인 정권, 방패로 2명의 농민을 때려죽인 정권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밤 12시가 되어서야 관광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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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하중근 열사 직접 사인, ‘소화기 가격’으로 추정

故하중근 열사 직접 사인, ‘소화기 가격’으로 추정
3일, 열사대책위 부검결과 “뇌 전체를 흔들만한 충격으로”
이꽃맘 기자 iliberty@jinbo.net
열사대책위는 3일, 부검결과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원 기자

"뇌 전체를 흔들 만큼 강력한 힘으로 가격"

3일, 열사대책위가 故하중근 열사의 부검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故하중근 열사의 몸은 머리 세 군데의 상처와 양 쪽 팔에 피멍이 들어 있었으며, 갈비뼈 4, 5번이 부러진 상태였다. 이는 열사대책위와 국과수, 검찰이 공히 확인한 것이다.

열사대책위의 부검결과 故하중근 열사는 뇌의 전체를 흔들 만큼의 면적이 넓은 물체 또는 둥근 물체이면서 상당한 무게가 있는 것에 강력한 힘으로 가격당해 뇌사상태에 빠져 사망에 이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좌측 머리 뒤쪽에 난 6*3cm 크기의 딱지가 생긴 상처이며, 충격으로 인해 상처 부위에는 10cm 정도의 두개골 골절이 생겼고 반대쪽인 우측 머리 앞 쪽에서 뇌출혈이 일어난 상태였다.

열사대책위가 공개한 시신 사진. 상처 두 개 중 '좌측 하방에 위치한 상처'가 직접적 사인으로 생긴 상처이다./ 이정원 기자

열사대책위는 이렇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물체는 당시 현장에서 경찰이 소지하고 있었던 소화기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했다. 이 상처는 담당 주치의 소견에는 없던 것으로 이번 부검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검찰, 열사대책위 공히 “단순히 넘어진 것 아니다”

김혁준 녹색병원 신경외과 과장가 하중근 열사의 상처부위를 직접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을 하고 있다./ 이정원 기자

직접 부검에 참여한 김혁준 녹색병원 신경외과 과장은 “故하중근 씨를 죽게 한 직접적인 상처부위인 좌측 머리 뒤쪽의 상처는 통상적인 전도(넘어지는 것)로 인해 땅에 부딪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상처부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열사대책위가 공개한 부검사진을 보면 상처는 목 바로 위쪽에 위치한다. 통상 넘어졌을 때 뒷머리 중앙이나 위쪽에 상처가 나는데 故하중근 열사의 상처 부위는 그 보다 훨씬 아래 위치한다.

열사대책위가 밝힌 직접적 사인은 부검에 참여했던 국과수와 검찰도 인정한 것으로 서중석 국과수 법의학 부장도 이에 대해 “상처의 위치가 단순히 넘어져서 생긴 부위로 보기 어렵다”고 밝힌 상황이다.

이어 김혁준 과장은 이 상처에 대해 “하중근 씨는 두피열창이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두피열창을 발생시키지 않는 적당한 면적을 가지고 둥근 모양이며, 충돌부위에 두개골 골절을 일으키고, 전체 뇌를 뒤흔들어 반대 측에 뇌좌상을 일으킬 수 있는 무게를 가진 둔기, 즉 소화기에 준하는 것에 맞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 상처로 인해 초기에는 상처부위에 뇌출혈이 있었으나 충격으로 인해 반대 쪽 머리 앞 쪽에서 뇌출혈이 일어나 8시간 후에는 반대 쪽 머리 앞 쪽의 뇌출혈이 더욱 심각해져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머리에는 방패로 찍힌 상처가, 집단폭행 흔적 까지...

또한 직접적 사인 뿐 아니라 지난 7월 16일 당시 경찰의 막무가내식 집단 폭행을 추정하게 하는 상처가 故하중근 열사의 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故하중근 열사의 우측 머리 뒤쪽 상방에는 5cm 길이의 일직선 모양의 열창이 관찰되었는데 이는 방패로 찍힌 것으로 추정되며, 양 팔의 피멍과 갈비뼈 골절은 발길질, 주먹질 등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우측 후두부 상방, 5cm, 일직선 모양의 두피 열상'은 방패로 찍힌 상처이다./ 이정원 기자

이에 대해 김혁준 과장은 “평화집회 도중 갑작스러운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일방적인 다양한 외력(발길질, 주먹질, 진압봉, 방패, 소화기, 밀려서 넘어짐 등)이 작용하였음을 하중근 씨의 시신이 증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진압’이란 이름의 경찰들의 막무가내식 집단폭행과 살인무기화된 방패, 그리고 화재 진화용 소화기가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변해 또 한 명의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국과수와 열사대책위 부검 참여자들이 함께 확인하며 그린 상처 부위, 총 5군데이다./ 이정원 기자

살인무기가 되버린 경찰의 진압 장비

박석운 열사대책위 집행위원장은 “경찰의 장비규정을 보면 ‘경찰장비는 통상의 용법에 따라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사용하라’고 되어 있다”며 “그러나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을 해산시키면서 방패를 수평으로 들고 집회 참석자들의 안면부와 머리를 가격하는데 사용했으며, 집회장에 불이 나지 않았음에도 소화기를 분사하면서 돌진해 이와 같은 참사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월 16일 집회에서는 故하중근 열사 뿐 아니라 15명의 집회 참가자들이 부상을 당했다. 이들은 대부분 안면과 머리에 상처를 입었으며 지금도 입원을 하거나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한편, 열사대책위는 故하중근 열사 부상 당시 상황을 직접 목격한 사람을 찾았으며, 목격자의 증언과 부검 결과 등을 종합해 3차 진상조사 결과를 밝힐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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