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과 축구 국대에게 없는 것

1. 근황

 

요새 야간근무 모드. 민주시민들이 쌔가 빠지게 촛불을 들고 있는 현상황에서 매우 미안한 일이긴 하나 유로 2008의 유혹이 넘 심하여...

 

 

2. 왜 국대경기는 재미없나?

 

유로 2008을 보는 이유. 그거 뭔가 큰 매리트가 따로 있어서가 아니다. 온리 원! 재밌기 때문이다. 국적은 "대~한민국"을 가지고 있더라도 한국축구보다 유럽축구를 선호하는 것, 월드컵보다 한 수 더 쳐서 유로경기를 바라보는 것, 그건 걍 재밌기 때문이다.

 

지난 토욜, 2010 남아공 월드컵 지역예선이 있었다. 한국과 요르단의 경기. 복기를 해봐도 정말 재미 없는 경기다. 왜 재미가 없었을까?

 

한국팀의 경기가 재미없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미드필드가 운용되지 않는다. 가끔은 한국 축구에는 미드필드라는 것이 없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 김남일이 혼자서 그나마 경기조율을 했지만 축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조원희나 오범석의 개인능력은 어딜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이 혼자만의 원맨쇼로 끝나버리는 것은 이만저만한 문제가 아니다. 박지성에게 모든 걸 내맡긴듯한 경기운영은 눈쌀을 찌푸릴 정도. 설기현이나 이영표의 무기력한 플레이는 윙플레이의 긴박감을 느끼게 하기엔 현저히 역부족. 수비는 뭐 더 이상 말 안할란다.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선수들이 자신의 역할이 뭔지를 모른다는 거. 왜 자신이 그 포지션에 서 있는지, 그리고 그 포지션에서 뭘 해야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 이게 국대경기를 보면서 맥이 풀어지는 결정적 이유다. 팀웍이 중요한 경기에서 팀플레이를 해야할 선수들이 팀 내에서 자신이 해야할 임무가 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능히 펼치지 못하는 덕분에 경기는 재미 없어진다.

 

 

3. 유로 2008이 재밌는 이유

 

이번 유로 2008의 본선조별리그에서 C조는 말 그대로 "죽음의 조"다. 동구의 강호 루마니아, 98년 월드컵과 유로 2000의 패자 프랑스, 06 독일 월드컵의 주역 이탈리아, 영원한 우승후보 토탈사커의 원류 네델란드. 이름만 들어도 축구팬들은 몸이 부르르 떨림을 느낄 거다.

 

오늘 새벽까지 3개조 6개 경기가 끝났고, 낼 새벽이 되어야 D조까지 1차전을 마칠테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경기만을 복기할 때도 유로 경기는 재밌다. 재밌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각 포지션에 위치한 선수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면서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것. 선수들의 개인기나 절묘한 슛이나 명 골키퍼들의 수퍼 세이브도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이지만, 축구경기를 보는 재미 중의 하나는 선수들 개개인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주고 있느냐를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루마니아와 프랑스의 경기. 0대0 무승부에다가 세계챔피언 프랑스의 답답한 경기운영이 재미를 반감시켰지만, 그 가운데서도 흥미를 유발했던 것은 루마니아의 경기운영능력. 동구의 강자에다가 유로 예선전에서도 탁월한 승부를 펼쳤던 루마니아의 경기운영은 매우 경제적이었다. 마치 유로 2004 결승전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그리스가 펼쳤던 것처럼.

 

유로 2004 결승에서 그리스는 90분 경기 내내 단 한 번의 유효슈팅을 날렸을 뿐이다. 그런데 그 슛이 골이 되었고 그대로 결승점이 되었다. 축구를 골맛만으로 본다면 재미없을 경기였겠지만 그 경기는 그리스라는 팀으로 묶인 11명의 선수들이 마치 한 몸에 붙은 손발처럼 움직였고, 그 자체만으로 "예술"이었다. 지난 새벽의 루마니아는 거의 그 수준의 경기능력을 보여줬다.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 물론 아직 조별리그 1차전을 치루는 중이라 본 실력을 확인하는 것은 조금 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기만을 염두에 두더라도 6월 한 달 야간근무모드를 달리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은 여전하다.

 

 

4. 이명박과 국대의 공통점

 

뭐 따져보면 여러가지가 있을 터. 그러나 뭣보다도 눈에 확 띠는 공통점은 이명박 정부의 각료 및 청와대 보좌진들이 한국축구 국가대표만큼이나 제 위치에서 해야할 일이 뭔지를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총리와 각 부 장관은 물론,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야할 보좌진들까지도 지들이 어떤 책임을 지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거다.

 

총리는 관료들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고, 2인자로서의 역할조차 해내지 못하고 있다. 농림부장관이라는 자는 지가 농산물 유통업체 사장인줄로 착각을 하고 있고, 보건복지부장관이라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 소들의 만수무강에 관심을 더 가지고 있다. 환경부장관이라는 자는 지가 국토개발부장관인줄로 착각하고 있고, 행정안전부장관이라는 자는 지가 지켜야할 안전이 누구의 안전인지도 모르고 있다. 경찰청장이라는 자 역시 지가 경찰청장인지 계엄사령관인지 정신을 못차리고 있고, 법무부 장관은 쪽팔림도 없이 허구한 날 "법대로"를 외치고 있으며, 노동부 장관이라는 자는 경총 대변인 역할을 하고 앉았다.

 

축구선수들로 따지면 필드에서 쌔가 빠지게 뛰어다닐 선수들에 비유할 수 있는데, 이 선수들이 전부 제 멋대로 헛발질만 하고 다닌다. 팀웍이고 나발이고 없고, 지 포지션이 뭔지도 모르고 설쳐대니 경기는 완전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다. 멀쩡히 골이 그물을 지나 네트를 흔들고 있는데, 골키퍼라는 자가 관중들 탓이나 하고 있는 짝이다.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휘본부 역할을 해야할 청와대 역시 개판이다. 감독의 위치에서 경기 전반을 디자인해야할 책임이 있는 2mB는 지금 자기가 뭘 해야할지 모르고 있다. 감독이 이모양이면 수석코치나 다른 코치들이 뭔가 궁리를 해서 경기를 풀어갈 생각을 해야하는데 코치들은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경기에 관심이 없고 다른 경기사정 알아보느라 정신을 못차린다. 팀 닥터도 없고 맛사지사도 없다.

 

구단주이자 관중인 국민들은 결국 경기장에 난입한다. 심판은 이미 종적을 감췄고 필드에서 뛰어야 할 선수들은 죄다 옷을 벗겠다고 난리다. 이러니 경기가 재밌을 리가 있나?

 

 

5. 그 다음에는

 

허정무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도 관심사다. 몇 차례의 경기를 보고 나온 결론은 뻔하다. 네 자리에서 네 할 바를 다해라. 이게 관건이다. 지금 상황에서 새로운 얼굴을 고민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까지는 가용할 수 있는 최상의 멤버가 아닐까 한다. 이 멤버들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이 남았다.

 

이명박도 마찬가지. 정권 자체를 내놓을 생각이 없다면, 지금까지의 좌충우돌을 극복하고 뭔가 제대로 쇄신을 해야 한다. 포지션 파악조차 할 줄 몰랐던 사람들이 옷벗겠다고 하니 새로 국가대표를 뽑을 일이 남았다. 국정은 개인플레이가 아니라 팀플레이다. 이명박이 이걸 깨닫는 순간 2mB에서 2MB로 업그레이도 될 거다.

 

그런데 어째 믿음이 전혀 가지 않으니 이게 왠 일이란 말이뇽?? ^^;;; 축구는 가능성이 보이는데 2mB는 가능성이 보이질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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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0 18:29 2008/06/1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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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밌는 비유네요. : )
    축구 좋아하시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야구를 좀더 좋아한다능... ^ ^

    추.
    총선 끝나면 한번 뵙기로 했잖아요.
    그런데 야간근무 모드라시니...ㅡ.ㅡ;
    조만간 기회가 오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