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지 않는 청춘의 기록, "마술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행인님의 [일기, 080819] 에 관련된 글.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레디앙, 2008(13000원)
1. 글쓰기
목수정은 글을 참 예쁘게 쓴다. 그것도 재주다. 흥분한 듯 급하게 이어지는 나레이션에서조차 목수정은 단어 하나, 문장 한 구절을 곱게 정선해서 조립한다.
글을 참 예쁘게 쓰는 사람 하나를 더 알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 김진숙 지도위원의 글은 사실 참 예쁘게 쓴 글이다. 그 역시 글 하나를 내놓을 때 단어 하나, 문장 한 구절을 갈고 닦아 꺼내 놓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글이 주는 감흥은 전혀 다르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글을 읽을 때마다 호흡이 가빠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참아야 한다. 그토록 고운 말들이 어쩌면 그렇게 아프게 가슴을 후벼팔 수 있을까? 그래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글이 나왔다고 하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함께, 될 수 있는 한 읽지 않았으면 하는 도피의식이 동시에 발생한다.(물론 그렇지 않은 글도 있다.)
반대로 목수정의 글은 톡톡 튄다. 청량음료의 탄산개스가 입 속에서 튀듯, 잔잔하던 바다 위로 갑자기 날치떼가 솟구쳐 오르듯 그렇게 머리 속을 헤집고 다닌다. 가슴 깊은 곳을 예리한 면도칼로 사정없이 긋고 지나가는 일은 없는 대신, 이 페이지 다음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런 흥미를 유발할 능력을 가진 것만으로도 목수정은 글을 참 잘 쓴다는 평을 받을만 하다.
2. 자유
사실,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목수정은 나이 서른에 월경(越境)을 감행한다. 뭐 그까이게 대수냐고 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실제 자신의 모든 것을 과감히 떨친 채 보따리 하나 달랑 싸서 낯설고 물설은 땅에 들어가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사람은 가진 걸 다 놓을 수 있는 사람일 거다. 그렇게 놓을 수 있는 사람, 그렇게 많지 않다. 당장 잃을 거라고는 개뿔도 없는 행인조차도 이거 해야 하는데, 저거 못했는데 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에 대해 겁을 낸다. 행인같은 사람이 많을까 목수정 같은 사람이 많을까.
경험칙상 새로운 것을 찾아 훌쩍 자신의 근거지를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그닥 많지 않다. 더구나 그 떠남이 자기 자유의지에 전적으로 좌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이해관계가 엉켜서 왈가왈부할 사람들이 나래비로 늘어서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목수정이 영혼의 동반자를 만나 함께 사는 것에 대해, 그이의 모국인 프랑스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목수정의 모국인 한국에서는 상당한 곤란이 존재한다. 대~한민국이 어이없고 근거없는 순혈주의가 판치는 나라임을 감안하면 더욱 실감이 날 거다.
프랑스에서 아이를 낳자 한국과는 전혀 다른 산후조리를 경험하면서 "미역국을 한 사발씩 먹어야 젖이 나온다고 배워온 한국여자의 본능"이 발동하고(p 149), "엄마의 본능인지, 한국여자의 본능인지, 새끼를 품고 누울 따뜻한 구들장이 사정없이 그리웠"던(p 151) 그녀이지만, 한국에서는 취기를 핑계로 "거침없는 발언을 내뱉으며 화냥년으로 취급"하는 마초 꼰대들이 널려 있다(p 205). 어머니조차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음에랴(p 128).
이런 상황들을 극복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자유를 향한 투쟁인 동시에 관습과 굴레에 의해 끊임없이 도발당하는 것이다. 그거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면서 자유를 쟁취하고 월경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물론 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은 시도를 하기도 전에 좌절당하고, 또 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무모한 도전의 댓가를 혹독하게 치루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책 한 권 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정도로 뿌듯하게 자유를 만끽하게 된 사람들은 아마 한 줌도 되지 않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도전을 포기할 필요는 없겠지.
3. 팔불출
예로부터 이 땅에는 "마누라와 자식자랑"을 시도 때도 없이 하는 인간을 일컬어 팔불출이라고 했다. 성평등의 입장에서 볼 때 "남편과 자식자랑"을 시도 때도 없이 하는 인간 역시 팔불출이라 할 수 있겠다.
목수정은 책에서 내내 동반자와 자식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거기엔 은근한 자부심도 있다.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찬 이 책에서 자신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동반자와 자식에 대한 자랑이 드러나지 않을 수는 없을 거다.
그런데 목수정이 가지는 은근짜한 자랑은 한국 사회에서 횡행하는 "엄마친구아들"류의 그것이 아니다. 책 전반을 훑다보면 목수정이 가지고 있는 자유에의 의지는 그의 반려자에 의해 더욱 독려되고 확장된다. 우수한 파트너는 자기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거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 쉬야를 하면서 "나무야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라"라는 덕담을 할 수 있는 감수성(p 228)은 그 조건을 조성해주지 않는 한 유지발전될 수 없다. 생각해 보라. 어릴 적 나무 밑에 쉬야를 하면서 "나무야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라"라는 말을 한 적도 없거니와, 되려 할머니로부터 "아 이녀석아, 오줌은 잿간에 싸야지~!"하고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었던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아이가 이렇게 풍부한 상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부모의 덕이다. 이건 완전 가정교육 잘 했다는 자랑질을 하고 있는 거다. 예컨대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가 옷을 갈아입으면서 "창피해..."라고 하자 아이 아빠는 분노에 몸을 떤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억압과 모든 인종적, 문화적 편견에서 아이가 자유롭게 자라도록 하고 싶"은 두 사람은 아이의 입에서 "창피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취한다.(p 225)
물론 이러한 행위가 보통의 "한국사람"들에겐 낯선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자유로운 영혼을 키워낼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일이다. 이게 낯선 보통의 "한국사람"들은 그동안 자유주의라는 것을 경험해보지도 못했고 개인주의라는 것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좌고 우고 없이 다 똑같다.
4. 영원히 철들지 않을
목수정과의 개인적 인연때문에 알고 있기도 하거니와 책을 보면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이 친구가 너무나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거다. 우리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만, 편견과 권위주의와 마초이즘 같은 똘추 전용 마인드를 소유한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이건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도저히 철딱서니가 들어 찰 여지가 없는 사람으로 보일 거다. 바로 이 차이가 중요하다.
흔한 기준으로 '철 들었다'고 하는 "성장"의 형식에 목수정이 맞춰 살았다면 아마 이 책은 출판되지 않았을 거다. 그 자유로운 영혼의 도전과 좌절, 성공의 스토리들은 소개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목수정이 철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은 나올 수 있었다. 그게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철들고 싶은데 철들지 말라고 강요하진 않는다. 어차피 행인 역시 지금 입때껏 항상 지 꼴리는 대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어지간하면 그 자세 변치 않을 거다. 그렇다고 해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너 철 좀 들어라 하고 강요할 일은 없다.
서로 자유롭게 살다보니 목수정과 행인이 티격태격한 것 역시 그럴 수 있었겠다 싶다. 서로 지 잘난 맛에 사는 것들끼리 모여 앉아 있는데 오손도손 아기자기하게 서로서로 보듬어 안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하면 그게 오히려 호러스토리 아닐까?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목수정은 짐 싼다. 짐싼다는 이야기를 아예 책의 에필로그에 써놨다. 그리고 또 언제 다시 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뭐 안 봐도 그만이긴 하다. 자꾸 본다고 해서 서로 살림보태줄 사이도 아니고...
그러나 목수정이 다시 나타날 때, 또 얼마나 더 심오한 자유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날지 궁금하긴 하다. 흙건축도 하고 영화배우도 되고 싶고, 의상디자이너도 되고 싶고, 생태의학을 공부하고 싶고, 정신분석을 연구해 보고싶은(p 312) 목수정. 하고 싶은 거 많아서 밥도 많이 먹을 거 같다. 다 해보길 바란다. 중국의 간자체를 정리한 학자는 나이 50에 그 일 하기 위해 언어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단다. 뉘라고 못할 소냐.
5. 레디앙
트랙백을 건 글에 이 책의 저자가 직접 왕림해설랑은 "불법체류자로 쫓기고 있는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와 한국의 중산층 여성 인텔리가 만나서 정신적 교감을 가지는 실화가 책으로 출판될 확률은? 혹은 한국 '농촌총각'과 결혼한 동남아시아 여성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될 확률은?"이라는 행인의 의문에 대해 "그런 이야기는 이미 적잖이 존재하고" "언젠간 비슷한 책들이 엮여져 나"올 거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놓고 갔다.
이광호 선배에겐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레디앙의 오지랖을 생각해 볼 때, 목수정의 이런 전망이 실현될 가능성은 당분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목수정이 표현한 것처럼 "언젠간" 이루어질 거라고 희망하는 수밖엔 없다.
레디앙은 이 책을 기획하고 출판함으로써 소정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뭐 까이꺼 레디앙이 아니라 다른 출판사에서 한 번 행인이 가진 의문을 해소해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글쎄올시다... "언젠간"이라는 기약 없는 먼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목수정의 사례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의 글이 가지는 자유에 대한 의지, 한국사회에 대한 예리한 비판, 성평등에 대한 사소한듯 하면서도 사실은 근본적인 문제들, 육아의 고통, 사랑의 의제화라는 새로운 제안, 예술의 지평 확장, 국제적인 연대와 생활의 정치 등 그 소재와 주제 모두는 매우 훌륭한데다가 이 주제들을 글로 보여주는 저자의 능력 또한 매우 높이 평가할만 하다.
고학력 문화산업 종사자가 어느날 비행기를 탄다. 그리고 문화예술의 고향이라 자칭하는 프랑스에 자리를 잡는다. 거기서 어느날 훌륭한 예술가이면서 더불어 사회적 지위조차 가지고 있는 현지인을 운명처럼 만난다. 대학 재학 중에는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았지만, 나이를 먹고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와서는 가장 급진적 운동경향을 보이던 정당에 들어가 문화정책을 연구하고 주장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낳았고, 이제 다시 프랑스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려 한다.
이런 주제, 이런 소재, 소설같지 않나? 지금까지는 해피앤딩이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 당장이라도 짐 싸서 프랑스로 가고싶어지게 만들 정도다.
행인에게 이 책 자체가 정치적인 이유는 여기 있다. 한국어도 잘 모르고, 고등교육도 받지 못했고, 예술하고는 아예 거리가 멀며, 글 쓰는 솜씨도 전혀 없고, 오직 한국에서 살면서 돈을 벌어 형편 어려운 모국의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한국남자와 결혼한 동남아의 여성이 자신의 입으로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는 나레이션을 펼칠 가능성은 몇 %?
고로 레디앙 이광호 선배가 돈 많이 벌어 맛이 가기 전에는 행인이 제기한 주제와 관련해 책을 기획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뭐 "언젠간"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6. 환송
어쨌든 책은 나왔고 목수정은 프랑스로 간다. 책에 대한 개인적 느낌은 이쯤 해두자. 이 책은 한 영혼이 "마술이 존재하는 세상"을 꿈꾸면서(p 109) 스스로 마술같은 인생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마술, 시장과 자유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결코 나타날 수 없는 마술은 오늘도 점차 이 땅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그 마술을 꿈꾸는 저자는 다시 마술의 세계를 향해 짐을 싼다. 뭐 좀 있으면 행인도 짐 쌀 거라서 별로 부럽진 않다.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가 프랑스 남자하고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이미 행인과 행인의 짝꿍이 보여주고 있다. ㅎㅎㅎ
목수정의 자유로움이 더 넓은 날개로 펼쳐지기를. 잘 가시라.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레디앙 필그레이님의 소개글을 읽고 바로 읽었던 책. 제목이 책의 내용을 대강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2007년, <레디앙>(www.redian.org)에 연재했던 '프랑스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를 모태로 출간되었다. 글쓴이는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가 만난 프랑스 예술가와 사랑을 나누고, 결혼 없이 아이를 낳는다.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비혼으로, 프랑스에서는 시민연대계약(P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