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투표에 대한 간단문답

행인[2009년 7월 22일의 기록] 에 관련된 글.

 

도대체 왜 국회사무처가 한나라당 대변인을 자처하는지 아리송하다만, 어쨌거나 한나라당과 국회사무처가 이번 미디어법 개정과 관련해 절차상 하자가 없는 표결이었다고 주장하는데, 이건 좀 짚어야겠다. 트랙백을 건 앞의 글에서, 내용상의 문제점은 완전히 배제한 채 오직 절차적 문제만 거론했는데, 이와 관련해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좀 더 쉽게 설명해보자.

 

1. 전광판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꺼져 투표가 제대로 종결되지 않았기에 다시 재투표 했다.

 

- "알 수 없는 이유"라는 말 같잖은 이유를 대는 국회사무처는 일단 대가리 박고 반성부터 해야 한다. "알 수 없는 이유"가 어딨나? 전광판이 나간 이유는 이윤성이 투표 종료를 선언했고, 집계도 이미 끝났고, 해서 다음 표결을 위해 리셋하기 위해 그런 것일 뿐이다. 이거 조작하는 일이 국회사무처가 하는 일이다. 그런데 지들이 그렇게 해놓고서 "알 수 없는 이유"를 운운하는 거, 이거 완전 사기다.

 

2. 의결정족수가 되지 않았으므로 표결을 다시 하는 것은 괜찮다.

 

- 차라리 이윤성의 닭짓을 탓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다. 국회 부의장씩이나 된 자가 국회법 절차규정에 대한 이해도 없이 의사봉을 휘둘러대다보니 이런 사태가 터졌으니까.


어쨌건 여기에 대해 설명하자면, 우선 이 주장을 하는 한나라당 등은 국회법 상 의사정족수와 의결정족수를 교묘하게 섞어놓고 있다. 국회법상 의사정족수는 재적 의원의 5분의 1, 즉 현행 299명 의원일 때 60명만 성원이 되면 회의를 개시할 수 있게 되어 있다.(법 제73조 제1항) 현직 의원이 294명이므로 이번 국회는 59명이 참석하면 회의가 개시된다.


따라서 이윤성이 회의를 개시하고 안건을 상정한 데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그런데 의결정족수는 재적 의원의 과반수 이상이 참석해야 한다. 즉 현직 의원 294명 중 147명이 표결에 참여를 해야 정상적인 표결이 시작될 수 있는 거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이윤성은 성원이 된 것으로 판단하고 표결을 개시했다. 그리고 표결이 이루어졌고, 이윤성은 투표완료까지 선언했다. 전광판엔 표결참여자의 수와 찬반의 수가 집계되어 표시되었다. 그랬더니 투표자가 145명으로 표시되었다. 결국 재적의원 과반수 투표가 되지 않았다. 이걸 부결로 본다는 것이 야당의 입장이고,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했으니 투표불성립이라는 것이 한나라당의 입장이다.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채 벌어진 투표의 상황은 둘 중 하나의 원인으로 인해 벌어졌다고 봐야 한다. 첫째는 이윤성이 쪽수 확인도 제대로 못한 채 표결을 진행하는 닭짓을 한 것일 수 있고, 둘째는 표결이 개시될 때는 정족수가 채워져 있었으나 표결이 시작된 후 일부 의원들이 투표권 행사를 하지 않은 경우다.


첫째든 둘째든 그 원인이 어쨌든 간에, 문제는 표결을 진행한 이윤성이 투표 종료를 선언하였다는 거다. 여기서 만일 표결 자체에 하자가 있어서, 즉 투표불성립이 되면 안건을 위한 회의일정을 다시 잡고 재상정을 거쳐 재투표를 해야 한다. 국회사무처가 밝힌 과거의 모든 사례가 다 이렇게 진행되었다. 따라서 당일 투표불성립된 안건을 표결직후 다시 재상정도 없이 재투표한다는 것은 국회법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불어 이번 건은 투표불성립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국회부의장 이윤성은 의결정족수가 성원이 되었다고 판단하여 표결을 한 것이고, 그 결과 일부 의원이 기권이 아니라 투표행위 자체를 포기함으로써 정족수 미달로 되었기 때문에 이 법안은 부결된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재투표의 여지 자체가 사라진다.

 

3. 과거에도 재투표한 선례가 있다.

 

- 이미 이야기했지만, 불가측의 상황으로 인하여 부득이 재투표를 한 선례를 들여다보면 (1) 의사일정을 다시 잡고, (2) 재상정 하여, (3) 재투표를 했다. 따라서 투표가 불성립된 당일 선행 투표에 이어 곧바로 재투표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4. 야당이 물리력을 행사함으로써 제대로 투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 제대로 투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표결을 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96년 노동법 날치기 하듯이 새벽에 관광버스로 의원들 실어 날라 지들끼리 투표를 하던가.


안건상정절차도 지키지 않은 것은 야당의 물리력 행사와도 관련이 없다. 본회의 상정 1일 전까지는 법안심사보고서가 의장에게 제출되어야 하고 의원회람이 이루어져야 했는데, 이번 법개정에서는 이런 절차도 지켜지지 않았다.(법 제93조의2 제1항)

5. 어차피 찬성할 의원들의 투표를 대리한 것이 뭐가 문젠가?

 

- 그럴 거면 의원들이 재택근무를 해도 된다. 집에서 화상회의로 참여하면 국회 본회의 진행할 수 있게 국회법을 바꾸던가. 해외출장 중에도 핸드폰 로밍해서 휴대폰 의사참여 얼마든지 가능하게 국회법 개정하던가. 중환자실에 입원해서도 손가락만 움직여서 전자투표 할 수 있게 해주던가. 차라리 한 놈에게 다 알아서 투표하라고 하고 나머지 놈들은 걍 어디 가서 막걸리나 쳐마시고 있던가.

 

 

절차상의 하자라는 것은 사실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다 알고 있다시피 그놈의 법안이 가지고 있는 내용들이다. 그 문제투성이의 법안을 밀어부칠려고 하다보니 절차상 하자가 발생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거다.

 

민주당이 헌법소원을 수행할 당사자 적격을 유지하기 위한 일부 의원들을 제외하곤 전원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던데, 뭐 실제 그렇게 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으나, 어쨌든 갈 데까지 가야할 상황이다. 자선당이나 친박당을 제외한 다른 야당들은 여기 동참할지 모르겠다만, 지금 판국에서는 원내에서 의원질 해봐야 남는 거 없다는 것이 산술계산의 결론이다.

 

그런데, 다 튀어나간다 한들, 그 다음 대안은 뭘까? 적어도 국회해산 정도는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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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4 13:24 2009/07/2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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