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2일의 기록

2009년 7월 22일, 하늘에선 해가 달에 가리워지는 우주쇼가 벌어졌고, 땅에선 "법치"의 화신들이 법을 팽개치는 막장쇼가 벌어졌다. 우주쇼는 탄성을 자아냈지만, 막장쇼는 탄식으로 세상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 막장쇼는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에 의해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던 조선일보를 새로운 미디어법에 의한 최대의 수혜자로 재등극시키는, 한 세대를 격해 벌어지는 놀라운 신화를 창조할지도 모른다. 또한 그 막장쇼는 눈물의 고별방송을 끝으로 사라졌던 TBC를 성대히 부활시켜 삼성과 중앙일보에 안겨줄 것을 예고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와중에 쥐뿔도 건질 것 없는 동아일보가 왜 희희낙락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미스테리다.

 

법치를 신앙의 모토로 삼고 살아가던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법치가 현행 법률의 조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헤메고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현행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목조목 따지기 전에, 법률적 분석과는 별도로 이번 미디어 관련법 개정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한나라당의 몇몇 의원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전직 판사 나경원, 전직 검사 안상수, 역시 전직 검사 홍준표. 적어도 이들은 법조계 출신으로서 누구보다 법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최소한 이들은 삽 한 자루 옆에 끼고 오직 "세멘공구리"로 강호를 종횡하다 별을 14개나 달고서 청와대의 주인이 된 전직 CEO가 가진 법의식보다는 조금 더 질적으로 나은 법의식을 가지고 있으리라 여겨져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는 정반대로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법치"에 대한 의지가 기껏해야 청계천을 공구리로 쳐바른 전직 현대건설 사장에게 빌어붙는 수준임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국민은 미디어법이 뭔지도 모른다고 설레발친 나경원, 국회법을 버젓이 어겨놓고도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뻗대는 안상수, 국회의원의 기본적 책무조차 망각한 채 헌법에 따른 법개정이라고 눙을 치는 홍준표. 법치는 개뿔, 차라리 "삽"이 인생의 좌표라고 고백하는 것이 적절할 듯 하다. 이런 사람들이 주축이 된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법치"가 아닌 "삽치"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청와대는 안도하고 조중동은 환호한다.

 

이 와중에 쌍용차에는 공권력이 투입되었고, 한 차례 격전이 치뤄진 후 다시 긴장이 감돌고 있다. 후배 하나는 또 연행되었고, 밤이 지나가고 벌써 새벽이 오고 있다. 제 밥그릇과 직결된 미디어관련법 날치기 처리는 수십분간 공중파 뉴스에서 방송되지만 쌍용차의 아수라장은 화면에 비치지 않는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힘이 든다. 너무나 힘이 든다.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이다. 말도 되지 않는 일을 진지하게 분석하는 것만큼 맥빠지는 일도 없지만, 이런 짓이라도 하지 않고선 견디기가 힘들다.

 

 

아비규환의 와중에 미디어 관련법 3종세트가 통과된 후,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절차상의 문제점을 들고 나왔다. 소위 “날치기”라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여당인 한나라당은 절차상 하자가 전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상호공방의 핵심은 표결과정에서 국회법을 어겼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그렇다면 본회의 표결과정과 국회법을 비교하면서 절차상의 하자가 있는지 살펴보자.

 

국회법은 제93조에서 본회의에서 안건을 심의하기 위해선 안건을 심사한 위원장의 심사보고를 듣고 질의와 토론을 거친 후 표결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진행을 맡은 이윤성 부의장은 장내 소란을 이유로 심사보고 및 경과보고도 생략하고 질의와 토론도 실시하지 않았으며 하다못해 속기까지 배제한 채 안건을 투표에 부쳤고, 표결을 진행했다. 국회법 제93조를 충족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115조 제2항에 규정된 속기에 의한 기록이라는 과정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백보 양보해서 “장내소란”이라는 불가항력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이처럼 간이하게 절차를 진행했다는 점은 이해해주도록 하자. 그러나 이후 벌어진 일들은 이러한 이해마저도 불가능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첫째, 방송법 개정안 처리과정에서 벌어진 희대의 재투표 사건이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번 표결이 국회법 제78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언론에 밝혔다. 또한 제적의원 과반 미달은 아예 투표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므로 첫 투표는 ‘투표 불성립’이고 따라서 재투표는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먼저, 안상수 원내대표가 언급한 국회법 제78조. 본 규정은 원래 의사일정상 논의되기로 했던 안건이 회의 중에 논의되지 못했거나 혹은 그 논의에 관한 회의를 다 마치지 못했을 때 의장이 의사일정을 다시 정하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된 방송법 개정안의 투표는 법 규정에 정해져 있는 “회의를 열지 못하였거나 회의를 마치지 못한 때”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상황이었다. 더불어 아무리 안상수 원내대표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이 규정에 따르면 의사일정을 다시 정할 수 있는 것이지 ‘재투표’를 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투표 불성립’이라는 것은 아예 국회법 규정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한나라당은 국회법 제109조를 근거로 ‘투표 불성립’이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해당 규정은 의결정족수에 관한 규정으로서 일반적인 경우 표결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규정을 한나라당의 방식대로 해석한다면 방송법 표결은 그 자체가 원천무효다.

 

또한 이 규정은 의결의 요건일 뿐이지 투표가 종료되었다고 의장(이번엔 부의장)이 선언하는 행위 자체를 무효라고 할 근거로 보기는 어렵다. 의결정족수의 성원이 미달이었다면 이윤성 부의장은 우선 표결을 미루거나 중단시켰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정안 통과에 급급한 나머지 이윤성 부의장은 의결정족수를 확인하지 않은 채 표결을 진행했다.

 

더구나 이미 이윤성 부의장은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첫 표결에서 투표종료를 선언했고, 이때에 표결은 이루어진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투표 불성립’이 아니라 부결이 된 것이다. 따라서 국회법이 정한 절차를 제대로 지키게 된다면 이윤성 부의장은 해당 안건이 부결되었음을 선언할 일이지 다시 재투표를 실시할 일이 아니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재투표다. 현행 국회법 상 재투표가 가능한 경우는 오직 법 제114조 제3항에 따라 “투표의 수가 명패의 수보다 많을 때”, 쉽게 말해 투표한 의원보다 집계된 표의 수가 많을 때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투표 불성립’일지라도 재투표를 할 수 있는 국회법상의 근거는 없는 셈이 된다.

 

부결된 안건은 국회법 제92조에 의해 같은 내용으로는 회기 중에 다시 발의하거나 제출하지 못한다. 바로 “일사부재의”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른다면, 부결된 안건은 폐기하거나 수정하여 재발의해야 한다. 아니, 진행상의 착오로 인하여 ‘투표 불성립’이 발생하였음을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재상정을 해야 할 일이지 ‘재투표’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두 번째 문제가 되는 것은 ‘대리투표’ 행위이다. 법안이 표결에 부쳐지자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이 다른 의원들의 자리를 돌며 ‘대리투표’를 행한 것이다. 더구나 회의장에 있지 않았던 의원들의 표까지 집계되는 일이 벌어졌다. 국회법 제111조 제1항은 명확한 문장으로 “회의장에 있지 아니한 의원은 표결에 참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160명 이상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참석했기 때문에 대리투표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 ‘대리투표’행위가 본회의장 내에서 확인되었다. 즉, 법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집계된 의원들 중 일부는 본인이 아닌 다른 의원에 의해 자신들의 의사가 대리된 것이다.

 

국회법 제114조의2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법의 해당 규정은 헌법에 의하여 유보된 사항이다. 우리 헌법은 제46조제2항에서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각자가 독립적인 입법 기관이다.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간에 권한쟁의심판이 가능한 이유가 여기 있다. 대의제 구조 아래서 국회의원은 특정 이해당사자의 대리인이 아니라 전 국민의 대표라는 대원칙에서 나오는 당연한 결론이다.

 

따라서 국회의원에게 전속되어 있는 입법권은 온전히 본인의 의사와 행위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 의해 대리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대리행위가 가능하다면, 외유 중인 국회의원이나 와병 중인 국회의원들은 다른 의원들의 대리를 이용하여 원내의 각종 표결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우리 헌법과 국회법의 구조상 절대 발생할 수가 없다.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입법권은 원천적으로 위임이 불가능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홍준표 전 원내대표는 “국회법은 헌법의 하위법일 뿐 헌법에 따라 잘못된 게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국회의원의 대리투표행위는 헌법정신을 위배한 것이 분명하다. 야당은 이번 개정 법률들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지가처분 신청 및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헌법재판소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실제 야당이 할 수 있는 법적 대응은 일단 이정도가 다이다. 정치적 해법에 대해선 논외로 한다.

 

내용상의 문제점은 배제한 채, 오직 절차적인 측면만을 검토했음에도 이번 법 개정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야당이 주장하는 “날치기”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 저지른 행위는 국회법의 제 규정을 어긴 것은 물론 헌법의 정신마저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법치”라는 화두를 온몸으로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정당이다. 그러나 이제 한나라당이 이야기하는 “법치”는 신뢰의 근거를 상실했다. 스스로 판 무덤에서 한나라당이 어떻게 탈출하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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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3 04:28 2009/07/23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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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9/07/24 13:24

    행인의 [2009년 7월 22일의 기록] 에 관련된 글. 도대체 왜 국회사무처가 한나라당 대변인을 자처하는지 아리송하다만, 어쨌거나 한나라당과 국회사무처가 이번 미디어법 개정과 관련해 절차상 하자가 없는 표결이었다고 주장하는데, 이건 좀 짚어야겠다. 트랙백을 건 앞의 글에서, 내용상의 문제점은 완전히 배제한 채 오직 절차적 문제만 거론했는데, 이와 관련해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좀 더 쉽게 설명해보자. 1. 전광판이 알 수 없는 이유로

  1. 해외동포 여러분, 창피해서 어찌 얼굴들고 다니실런지. 창피하다고 두문불출하지 마시고, 나와서 촛불이라도 밝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