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들에게, 더불어 좋은 분들에게

"브이"는 이렇게 비꼰다.

 

하지만 누가 그들을 선택했습니까?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이 이 사람들을 뽑았습니다.

당신이 그들에게 당신을 대신해 판단할 권한을 준 것입니다.

(중략)

당신은 그저 "안 돼"라는 말만 하면 됐습니다.

당신에게 기개란 없습니다.

당신은 자존심도 없습니다.         [브이 포 벤데타 중]

 

물론 "브이"의 비아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의 말마따나, "똑같은 치명적인 실수들을 수백 년 동안 되풀이한다는 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중을 향한 이 치욕스러운 비난이 그대로 적실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 나경원의 말처럼 대중은 뭐가 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대중은 잘 알고 있다. 어떤 놈이 나쁜 놈인지, 어떤 분이 착한 분인지.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지난 1년 간 자신이 한 일을 돌이켜보며 누가 착한 애인지 나쁜 애인지를 훤히 꿰뚫고 있는 산타를 조마조마해가며 기다린다. 물론 얘네들의 머리가 굵으면 이야기꾼이 만들어내고 코카콜라가 옷을 입힌 산타클로스가 애들 가슴에 헛바람을 불어넣기 위한 일종의 만담이며 장삿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만.

 

산타클로스도 아닌 대중들은 정밀한 분석의 틀거리를 통해 뉴스의 화면에서 돌출되는 인물들의 됨됨이를 파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 자신의 잣대를 이용해 나쁜 놈과 좋은 분을 구별한다. 그 각각의 잣대는 기준이 천차만별이어서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분이 다른 사람에게는 나쁜 놈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빠와 까가 여기서 갈린다. 한 걸음 더 나가 빠와 까를 능가하는 심취의 경지에 다다르면 일종의 종교가 되기도 하고 오덕질의 향연이 벌어지기도 한다. 마라도나교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브이"의 언설은 어차피 수백 년이 넘도록 치명적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감히 "안 돼"라는 말을 하도록 요구한다. 이상의 표현일 수는 있을지언정 인간의 속성을 깨라는 무리한 주문. 하나, 아주 간소하게 그의 발언에 힘을 싣자면, 그래, 적어도 "당신"은 누가 나쁜 놈인지 착한 분인지 정도는 삘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일 것임을 인정해 주는 것. 비록 조갑제가 판단하는 선악의 기준은 오직 빨갛게 칠할 여지가 있는지의 여부로 가늠될 것이나, 대~한민국 4천 8백만 인구가 전원 조갑제 스타일의 개념 방출형 인간은 아닐 터이니 비로소 어떤 가능성은 도출된다.

 

적어도 대중은, "쌍龍"과 "龍산"에서 벌어진 혹은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내막을 훤히 꿰뚫고 있지는 못할지라도 도대체 어떤 놈이 나쁜 놈이고 어떤 분이 좋은 분인지, 아니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어떤 놈이 지독한 놈인지 어떤 분이 불쌍한 분인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후일, 그 어떤 놈에게 대중이 "안 돼"라고 말할 여지는 충분히 남게 된다. 적어도 "쌍龍"과 "龍산"의 사태를 유발하면서 낯짝의 색깔 한 번 변하지 않고 희희낙락하면서 "龍龍 죽겠지~"하고 있는 저 철면피들의 싸대기를 한 번쯤은 팰 수 있는 상황이 그렇게 도래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처절한 생존권의 요청을 즉각적이고 잔혹한 폭력으로 진압하면서 "龍龍 죽겠지!"하고 있는 자들의 입장에서도, 대중들의 자그마한 각성은 장래 자신들의 목에 올가미를 걸고 발판을 걷어차게 될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 터. 이러한 위험징후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은 도리어 그 올가미를 대중에게 걸어주고 대중의 발끝에 언제든 걷어 찰 수 있는 발판을 놓아 주는 것. 바로 입장을 전환함으로써 장래의 위기상황은 안전모드로 복구된다. 그 방법을 저들은 미디어법 날치기로 마련했다.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이탈리아 대중의 감정은 그저 "우리에게도 총리라는 놈이 있다" 정도. 그놈이 24시간 365일 선정적 방송을 내보내는 미디어의 제왕이건, 틈만 나면 섹스스캔들을 일으켜 상당수 국민의 관음증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정치를 대신하건 그건 관계 없다. 베를루스코니에게 "안 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아직 그의 방송으로 덮어버리기에 충분하니까.

 

이명박은 언감생심 그 수준을 바랄 수도 없는 위치. 하지만, 조중동은 언제든 제2, 제3의 이명박을 탄생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얻게 된다. 공자님의 정신이 아직은 살아있는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섹스스캔들이야 단죄받아야 할 치욕이 될 지언정, 조중동이 뿌려대는 섹쉬한 눈요기는 블로그와 까페에 요염한 사진들을 풍성히 올려주는 훌륭한 소재가 될 뿐이다. 4천 8백만 국민 중 이에 대해 "안 돼"라고 할 수 있는 숫자는 앞으로 더욱 줄여버릴 수 있다. 하물며 조중동인데.

 

이렇게 해서,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진 집단 이종격투기 사건은 외신의 토픽에 오르내리는 정도로 쪽팔림을 달게 받음으로써 종결되고, 언론재벌과 재벌언론의 항구적인 흥행을 위해 복무함으로써 면죄부를 얻는다. 종국에는 누가 나쁜 놈인지, 누가 좋은 분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지경으로 대중들을 몰아가고 급기야 그들의 입에서 "안 돼"라는 말이 영원히 봉인되도록 만들 수 있으리라.

 

자, 여기까지가 니들 생각이고.

 

부활의 의지를 담아 미이라를 만들고 피라미드를 세워봐야 어차피 그것은 죽음의 상징일 뿐이다. 만고불변의 육신을 염원한들, 아무리 오래 잡아도 수 천 년 후에는 뿌리도 알 수 없는 어떤 이방인에 의해 박물관에 전시될 운명이다. 불멸의 영생은 도래하지 않는다.

 

도처에서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너희들의 목에 올가미를 걸면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발판을 놓아주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가? 파란 기와들이 벌겋게 닳아오르려 하는 그 뜨거움이 슬슬 느껴지지 않는가? 아니라고?

 

아직은 아닐지도 모른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덤을 팠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누구의 봉분이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나쁜 놈들의 후회가 될지 아니면 좋은 분들의 체념이 될지.

 

여기까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7/23 13:28 2009/07/23 13:28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1205
  1. 안돼라고 말하고 있는 1人

  2.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