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背敎)를 원하는 걸까?

새로운 조선의 별로 떠오른 '대장'님과 관련해 민주노동당이 영 어정쩡한 논평하나를 대변인 명의로 낸 바가 있다. 이게 경향신문에서 사설로 비판되었고, 여기에 민주노동당 부설연구소의 어떤 인사가 반박을 하더니 울산연합은 경향신문 절독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리고 이제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이 또 한마디 했고, 급기야 민주노동당 당대표 이정희가 이에 반박하고 있다. '대장'이 인물이긴 인물인가보다. 등장하자마자 목하 남한 인사들의 급 관심을 받고 있으니.

 

3대 세습 정권이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내걸고 있는 민망함에 대해선 더 할 이야기가 없고, 좀 달리 생각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을 개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어떤 비판들이 어쩌면 맥락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과연 민주노동당이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할 수 있을까? 이건 어쩌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은데, 따라서 북한 3대세습에 대해 내내 그들의 문제라고 뻗대고 있는 민주노동당을 비판할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민주노동당이 새삼 자세를 바꾸리라는 전망은 종내 불가능하리라는 것이 행인의 전망.

 

기본적으로 현재 민주노동당 주류 세력들이 동부연합을 필두로 한 김주의자들이고, 이들이 본사에서 지령받아 당내 인사들 견적까지 뽑아 보고하는 것으로 봤던 사건을 돌이켜보거나 기타 과거 어떤 사건 당시 진상조사를 하러 갔던 C씨의 증언, "정말 아침마다 인사하던데..." 사건이나 충성서약서 사건을 검토해보면 왜 이런 전망이 나오는지는 당연한 일.

 

애초 행인이 누차 지적했던 것처럼, 이들의 정신적 지향이라는 것은 일종의 과학적 사회변혁운동이 아니라 다분히 종교적 취향이다. "주체의 태양을 우러러" 반미자주통일의 한 길을 달려가는 이분들의 발언을 보면 누구라도 이건 정치집단이 아니라 종교집단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바로 나오는데, 종교에 심취한 교인에게 네가 신봉하는 교주를 비판하라고 하면 그건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된다.

 

이대근이 요약한 박경순의 논리는 딱 그 수준을 볼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이대근이 요약한 박경순의 논지를 따라 평을 해보면,

 

첫째, 3대 세습이 불편하다고 그걸 그릇된 것으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다른 이들에게는 불편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 당연하다. 교주가 3대 세습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당이 깨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 내부의 교인들은 거의 대부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물론 비판자들도 있겠지만, 그건 이단이 된다.

 

둘째, 3대 세습은 북한 내정이다. 따라서 내정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

 

---> 이것도 그럴싸한데, 종교집단이 세습을 하던 말던 그거 밖에서 이야기해봐야 안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즐길 것이다. 외부의 비판은 신이 주신 환난으로 전화되고 조만간 순교자가 된다.

 

셋째, 3대 세습이 김정일 아들이기 때문인지 후계자로서 자질을 인정받았기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옳다, 그르다 토론하는 것이 옳은가?

 

----> 사실 자질을 인정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자질이라는 것은 성령의 강림으로 판단되는 것이지 인간의 인지능력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을 믿지 않는 인간들이 이에 대해 옳다 그르다 토론할 수는 아예 없는 거다.

 

 

넷째, 3대 세습 정권과는 대화도 하지 말라는 말이냐?

 

----> 전형적인 수법인데, 누가 대화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 종교에 대해, 더 정확히는 종교지도자들의 파행에 대해 뭐라고 하면 이들은 단번에 이런 식으로 우물에 독약을 쳐버린다. 종교기 때문에 가능하다.

 

다섯째,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으면 다 종북집단이냐, 중국, 러시아, 미국도 3대 세습 비판하지 않았으니 이들도 종북세력이냐?

 

---> 중국, 러시아, 미국이 3대 세습 비판하면 그 땐 뭐라고 할까? 역시 앞의 네 가지 주장으로 도돌이표 찍으면 된다. 이 부분은 어차피 들고 나올 필요도 없는 논리다.

 

여섯째, 후계자론은 검증받은 이론이다.

 

----> 당연히 검증받은 이론이다. 수령님이 조국을 건설하고 그 후계자로 위원장님을 세울 때, 그리고 이후 후계구도 정립하는 과정과 수령님 사후 유훈통치과정, 그리고 지금까지 검증되고 있는 거니까. 문제는 그 후계자와 이 후계자는 다른 사람이라는 점인데 그건 외부에서 비판하는 세력이 지적하는 문제일 뿐이지 교인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에서 검증받았으면 되지 뭐.

 

일곱째, 3대 세습비판은 오리엔탈리즘이다.

 

---> 에드워드 사이드가 고생이 참 많다. 어차피 세계 5대종교는 다 (서구적 관점의) 동양에서 나온건데 뭐.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주사교...

 

당대표 이정희가 올린 글에서는 매우 인상적인 구절이 보인다.

 

"국가보안법 법정 안의 논리가 일부 변형되어 진보언론 안에도 스며들어 온 것이 아타깝다."

 

무척 안타까운 것은 따로 있는데,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때문에 수령님, 장군님, 대장님으로 이어내려오는 세습의 전통을 공공연하게 찬양할 수 없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새롭게 지구만방을 비추실 태양으로 떠오른 대장님을 드높이 찬양해야 하는데, "국가보안법 법정 안의 논리"가 이렇게 창궐하니 어찌 교인으로서의 도리를 다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국가보안법 철폐하여 종교자유 보장하라~!!!

 

민주노동당에 북한 3대 세습을 비판하라고 "강요"할 필요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들에게 3대 세습을 비판하라고 하는 건 예배당 교인들에게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라고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도 있겠다. 순교 이후에 기다리는 것은 천국. 천국을 목표로 사는 사람들에게 순교의 기회를 주는 그런 거?

 

이대근의 분석은 시의적절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아무래도 허공에 주먹질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이정희의 입장발표로 사건은 이걸로 쫑난 듯. 그들은 끝내 이정희의 표현대로 "일관성"을 지킬 것이다. 그분의 오른편에 앉아 찬양할 그날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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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8 17:46 2010/10/0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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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ou_topia
    • At 2010/10/08 21:46

    행인님의 [배교(背敎)를 원하는 걸까?] 에 관련된 글. 이북3대 세습. 물론 말이 안 된다. 말이 안 되니까 말을 절제할 수도 있고, 말도 안 된다고 언성을 높일 수가 있겠다. 그런데 보편적인 시민사회이념을 받들어 언성을 높이면 어찌하겠다는 것인가? 이북선교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물론, 언성을 높이는 사람에게 하늘천 했으니까 따지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하늘천하고 그만 두어도 할 말이 없다. 단지 실천적으로 연대하는(!) 국제시민사회이념을 운운...

    • Tracked from 자유로운 템포
    • At 2010/10/09 01:25

    행인님의 [배교(背敎)를 원하는 걸까?] 에 관련된 글. 암튼 돌아가는 모양새로 짐작컨대, 범민족해방파가 이런 정치적 잠재력을 못살리거나 심지어 썩히고 있을 뿐 아니라 살릴 만한 의지조차 있는지 회의적인 상황이라면, 그나마 소위 좌파 진영에선 그 기본 각에 비추어 이런 잠재력을 살찌우고 구체화해갈 역량이 상대적으로 무척 크잖겠나,, 뭐 그렇게 믿어 보려는 쪽인데요 저는.ㅋ;; 위대하신 수령체제의 보위 논리 아래 끼니 걱정으로 퉁겨져나온 탈북 이주민...

    • Tracked from @jiminha
    • At 2010/10/09 10:55

    배교를 원하는 걸까 (https://blog.jinbo.net/hi/1323) 내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랑 정확히 일치하는 포스팅 (마리신님의 블로그를 통해서)

  1. 늘 그렇듯, 쓰기의 진지함과 읽기의 즐거움 어느 하나 놓치질 않으시네요.ㅋㅋ

    트윗에서도 날린 얘기지만, 범민족해방파 중에서도 반동적인 무한일성교파에 대해선 계속 제발등 찍게 해 실천적 맹목과 밑바닥을 알아서 드러내게 하는 한편, 통일의제의 알맹이(=20세기 근대 한반도/동아시아 정치경제의 지정학적 모순 타파)를 아쉬운 대로 붙잡고 있는 비주류 정파들에 대해선 좌파적 시각의 동아시아 대안 평화체제 구상과 연계해 내적인 갱신을 유도하는 중장기적 분열책동이 본격화해야잖겠나 해요.ㅎ

    '통일에서 탈분단으로'란 테제가 제창된 지야 사실 꽤 됐습니다만, 통일의제의 합리적 핵심(내지 맥락적 유효성)에 대한 좌파적 재전유 작업이랄까, 이런 것 역시 그저 통일관련 의제는 한국산 노동자 계급운동의 정치적 "장애물"쯤으로만 여기고 마는 데 그쳤던 것 같아서요. 일테면 한국에 자리잡은 탈북 이주민(특히 여성)들의 경제, 문화적 궁핍화가 만만찮다던데, 좌파적인 노동자운동 계통이라면 이같은 정황을 동아시아 냉전 자본주의하에서 구조화, 만성화된 국가폭력의 일환으로 파악하면서, 이와 단절하는 동아시아 규모의 대안적 사회체제 구상을 모색, 의제화할 수 있겠다 싶거든요. 뭐, 그간 쪼개져 있던 계급분석과 지정학적 분석을 새로이 접붙여얀단 얘길 수도 있겠고.. 이리 되면 사실 고 김대중씨 계통의 자유시장주의적인 통일 내지 체제 내화 구상과 정치적으로 얼마든지 다른 실천의 각이 세워질 수도 있는 걸 텐데 말이져.. 범엔엘파는 지금 이 대목에서 사실상 맛이 간 상태랄 수 있겠지만, 좌파 역시 이 대목에서 개입해 들어갈 무기와 레파토리가 (그 잠재력에 비해) 크게 부실한 게 사실 아닌가 해요.

    암튼 돌아가는 모양새로 짐작컨대, 범민족해방파가 이런 정치적 잠재력을 못살리거나 심지어 썩히고 있을 뿐 아니라 살릴 만한 의지조차 있는지 회의적인 상황이라면, 그나마 소위 좌파 진영에선 그 기본 각에 비추어 이런 잠재력을 살찌우고 구체화해갈 역량이 상대적으로 무척 크잖겠나,, 뭐 그렇게 믿어 보려는 쪽인데요 저는.ㅋ;; 위대하신 수령체제의 보위 논리 아래 끼니 걱정으로 퉁겨져나온 탈북 이주민들이나, 위대하신 삼성이씨 문중이 이끄는 고용 없는 성장 체제의 보위 논리 아래 자꾸 쫄아드는 밥상 걱정으로 속 터지는 남한 주민들이나 배제된 자들이긴 매일반으로 접근할 시각이 필요하겠다는 거죠. 경향신문 네컷만화 장도리를 연재하는 권순찬 선생 보면 이런 통찰을 아주 날카롭게 보여주고 계시던데요..ㅋ

    좌파정치의 기본에 비추어 봐도, 계급 형성의 논리와 방법을 이처럼 "배제된 자"들의 연대-조직화가 좀더 원활해지게끔 새롭게 정렬하지 않을 경우 전망다운 전망을 세우긴 어려워 보이구요.

    • 통일뿐만이 아니라 사회 제 문제에 대한 각종 의제들의 핵심에 대해 "좌파적 재전유"라는 것은 과거의 숙제이기도 하려니와 앞으로의 주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십분 동의합니다. 특히 "동아시아 규모의 대안적 사회체제 구상"이라는 부분은 장단기 의제화가 반드시 필요하고, 특히나 이 대목에서 문제되는 "배제된 자"들, 또는 다른 말로 프롤레타리아들의 미래에 대해 좌파적 의제설정이 매우 시급한 실정이죠. 최근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도 이런 주제구요.

      솔직히 북한의 3대 세습이라는 것은, 그것 자체에 대한 비판이 단지 주체교도들에 대한 메아리없는 성토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요원해보입니다. 동의하는 것처럼, 그 비판 끝에 적절한 대안적 의제의 설정, 예컨대 "통일에서 탈분단으로"라는 테제처럼 어딘가에서 발현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섣불리 입에 담기 어려운 이상한 그 언술에서와 같이, 심중에 뿌옇게나마 그 방향이라는 것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얽히고 설킨 현상들의 난맥을 뚫고 바로 이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무엇을 대놓고 드러내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돌아보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응하는 세계화 혹은 세계주의라는 것은 그것이 더 큰 자유와 평등을 위한 대안임에도 불구하고 국경 안쪽에서 자유와 평등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에 의해 배척되고 경계되고 있죠. 이들이 오히려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지만, 이들에 대하여 좌파적 의제라는 것은 아직 제 자리를 명확히 설정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구요.

      당분간은 개인적으로 관망의 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물론 그건 전적으로 제 능력이 저질(ㅠㅠ)이기때문이기도 하지만요. ㅋ

    • 행인// 흠.. 그럴라나요.^^;; 소위 범엔엘계에서 내적 쇄신의 반향이 생기길 바랬던 거야 "기왕이면"이었던 거지, 요원하다면 별 수 없죠 뭐.ㅎ 지금 남한 통일운동 진영이 에두를 수 없는 질문은, '익숙한 처방'들론 아랫돌로 윗돌 괴는 식의 지리멸렬함밖엔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체제적 공포"가 더더욱 완연해질 거라는 작금의 세계경제 상황과 이와 맞물려 꽤나 피곤하게 펼쳐질 지정학적 알력의 이중주 속에서 "우리민족끼리"라는 기존 각으로 비빌 구석이 얼마나 되겠냔 거니까요. 제가 보기엔 아마, 설사 있다고 해봐야 북한에 대해 체제옹호적 정당화밖엔 못하는 '원격화된 시민사회'로서 자리잡는 게 고작 아니겠나..; 향후 새로이 생성될 반체제운동(들?)의 개별 주체한테 갈급하고 또 중요한 건 분명 그런 따위 비전이 아닐 테니까요. 행인님의 능력이 얼마나 저질인지 드러나는 계기인 건 더더욱 아니잖겠습니까..ㅋ 이게 뭐 혼자서 발버둥친다고 나아질 일이여야져. 그 발버둥조차 달랑 혼자선 어림 없는 일이거니와..

      여하간 (김정은의 부상이 아버지의 경우와 같다기보단, 김경희 등이 부각되는 걸로 보건대 일종의 집단지도체제 같아 보이기도 하단 점에서) "포스트-김정일 체제"를 둘러싼 가치판단이 감정적 드잡이에 그치지 않으려면, 북조선 체제에 '특히나 완연'하다는 저 "몰골"의 전후맥락을 친-반북을 막론한 자의적 접근으로 조각내지 않고서 오롯이 이해하게 해줄, 정세적으로 타당하면서도 시공간적으론 장기-동아시아사적인 시각을 가진 역사-사회과학적 이론화 작업이 어여 이뤄져야 할 텐데요. 행인님께서 말씀하신 바, "심중에 뿌옇게나마 그 방향이라는 것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얽히고 설킨 현상들의 난맥을 뚫고 바로 이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무엇을 대놓고 드러내기가 어려운 부분"은 아마도 이런 작업들 속에서 토론, 논쟁을 거쳐야 웬만큼 또렷해지잖겠나 싶네요. "새로운 짜임새를 갖춘" 반체제운동 주체들의 생성, 조직화도 분명 이 과정 속에서 탄력을 받게 될 듯싶구여.

      당면한 투쟁 현안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에 필요한 "상호교육"의 틀과 판을 다시 짜는 일 또한 향후 본격화하고 전선을 확장해야 할 (계급)투쟁의 중요한 일부 같어요 그래서 저는.ㅎ 저처럼 목마른 쪽에서 어떤 식으로든 직접 우물을 파보든가, 아니면 이런 틀거리 구상과 관련해 싹수 좀 있어 뵈는 "학인 내지 연구자"들을 붙잡고서 요구를 하든가 말이죠. 기왕이면 둘 중 하나가 아니라, 양자가 "환상의 짝궁"을 이루면서 성과를 내는 게 젤 좋긴 하겠지만서도..ㅎ

      그리 되면 적어도 북조선에 곧잘 들러붙는 몬도가네풍의 소위 "전근대적"이고 "왕조국가"적인 특이성들이란, 20세기 동아시아 반공 자본주의의 식민주의적 지정학 속에서 줄곧 지속-변주돼온 "근대적 야만과 폭력"에 대한 화학적 반응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잖을나라요. 물론, 북조선 국가의 "주권적 이성"에 따르자면야, 핵(무기)개발을 포함해 이같은 화학반응은 어디까지나 근대자본주의 지정학의 식민주의적 폭력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의 산물일 테지만요. 20세기 근대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지정학에 대한 이런 "비판적 이해"가 일단 전제돼야, 동아시아 지역 주민 대다수에게 극도로 폭력적이었거나 방어적인 "주권보위" 논리에 갇힐 수밖에 없었던 통치합리성에 맞서, 그와는 삶의 방식이나 사회조직 원리상 정치적으로 판이한 합리성의 논리와 실천의 각은 어떤 것이며, 이에 기초한 대안적인 동아시아 사회체제 구상은 어떤 집단적 주체들(혹은 인터내셔널한 문화감각ㅎ)의 형성-도래를 통해 현실화될 수 있을지에 관해 일단 그 실마리라도 잡히지 않겠냔 얘깁니다만.

      자유민주주의(적 제국주의) 요새 미국의 경제-군사적 제재로 임계치에 육박한 "조국보위" 압력 탓에 "인민민주주의"의 수혜는커녕 이미 퉁겨져 나왔거나 한껏 짓눌려 있는 대다수 북조선 (이/탈)주민들, 억지춘향으로 "충군애국"하다 몰살당한 걸로도 모자라 1945년 이후론 주일미군의 패악에 또다시 시달려야 했던 오키나와 주민들, "내성인"이란 이유로, 1945년 이전까진 "조센진", 이후엔 "자이니치"네 "전라도"네 "빨갱이"네 같은 이유로 경제적, 문화적 차별과 모멸을 견뎌야 했던 대만과 일본, 한국산 주민들, 1960년대 중반 미국의 개입과 지원으로 벌어진 자생적인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경험했고 지금은 일본, 한국 등지에서 이주노동자로도 살곤 하는 인도네시아 주민들까지.. 뭐 근까, 1945년 이후 미국식 반공 자본주의 체제로의 재편 속에서 근대자본주의 특유의 식민주의적 주변화 압박 내지 폭력에 '여전히' 시달렸던 동아시아 주민들의 근대화 경험들을 하나로 꿰고 이어 봄으로써, 20세기 동아시아 정치경제와 지정학의 역사적 궤적을 다시 써야 하겠달까요.


      네오풀// 혹시, "동북아시아 근대성 세미나"의 뒷심으로 나온 글인가요?ㅎ 어쨌거나 네오풀님 지인께서 쓰셨다는 글이, 뭐 읽어보구 나서 할 소린지 몰겠습니다만, 앞서 끄적여 놓은 "다시 쓰기" 작업을 고무하는 튼튼한 지렛대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을 따름입니다그려.

    • 들사람/"1945년 이후 미국식 반공 자본주의 체제로의 재편 속에서 근대자본주의 특유의 식민주의적 주변화 압박 내지 폭력에 '여전히' 시달렸던 동아시아 주민들의 근대화 경험들을 하나로 꿰고 이어 봄으로써, 20세기 동아시아 정치경제와 지정학의 역사적 궤적을 다시 써야" 얼른 써 주세요! 목마르네요.

    • 어라라... 이건 뭐... 마치 제 머릿속을 한 번 휘젓고 다니신 후 제 생각을 정리해놓으신 것 같아서... 섬찟하구만요... 후덜덜덜...

      이의없이 동의합니다. 조금 더 나가자면, 궁둥이가 무척 가벼운 행인으로서는 이러한 떡밥을 누군가 던져준다면 바로 덥썩 물고 파다닥 해보고 싶다는 거죠. ㅎㅎ

      내내 고민의 깊이를 더하도록 하겠습니다. 역량이 저질이라는 것은 제 현재 상태를 가장 적나라하게 고백하는 것이기에 더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겠고, 다만 그것이 자랑거리가 아니기에 분발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스스로도 느낍니다만 게으름이 천지 웬수라...

    • ou_topia// 어이구. 기왕이면 저도, 누가 좀 쌈박하게 써줘서 타는 목마름을 한껏 풀었음 좋겠습니다마는..ㅎ;;

      행인// 헐, 그리 말씀하시니 정말 무섭네요.; 하지만 제가 무슨 인간스캐너도 아니고..ㅎ 아마 제 생각은 어디까지나, 비슷한 고민을 해온 이들이라면 '이심전심'으로 이미 형성돼 있는 어떤 "공통된 것"에 훨씬 더 가깝지 않을까 해요. 행인님하고 저하고 온라인 말곤 일면식 없지만, 이렇듯 겹치는 구석이 있다는 게 명백한 방증 아닐지(이리 봄 주체화 과정이란 존재론적으로 늘 관개체적이라고 할까요ㅎ). 소위 자유주의적 주체(혹은 "개인의 자율성") 관념으로야 이런 공통됨의 형성은 놀라운 일이겠지만, 아마도 그건 관념의 감옥 효과 탓일 테져.ㅎ

      아닌 게 아니라, 언제부턴가(아마도 김대중 정부의 등장을 전후한 시기 이후 특히) 정치적 좌우파를 막론하고 접하는, 반체제적 각을 잃었거나 소진해버린 진부한 진영논리로부터 정말로 탈피하고 싶다면, 20세기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정치경제를 다시 쓰는 일은 어느 정도든 이에 관한 문제의식이 생긴 이들끼리 머릴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일지 모르겠어요. 행여 저도 그럴람 어여 끝내기로 한 일감을 끝내버려얄 텐데,, 제 게으름의 저력에 저 스스로 놀라워하는 중이라ㅠ;;;;;;;

  2. 행인님과 들사람님의 인식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이, 저런 진흙탕 싸움에 안 휩쓸리고 자기 입장 지켜가면서 새로운 전망에 대한 필요성을 감각하고 계신 먼젓분들이 없지 않다는 거ㅠ 조만간 비슷한 논지로 제 지인이 글 하나 올릴터인데 이에 대한 짤막한 논평 좀 부탁드려도 될런지요. 대담한 만큼 구멍도 많아 보이지만 그래도 꽤 흥미로운 글이었는데 만약에 첨언 하신다면 행인님과 들사람님은 어떤 부분을 눈여겨 보실지가 궁금해서요.

    • 꼭 한 번 보고 싶군요. 논평까지는... ㅠㅠ

    • 위의 사안에 대해 저와 제 주변의 친구들이 어느정도 공유하고 있는 인식 정도는 보여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왠지 사실관계 부분에 있어 잘 모르면서 막 치고나갔다 싶은 부분이 없지 않아서 저는 조금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행인님처럼 실제 정당활동을 경험하셨던 분들이나 들사람님처럼 비슷한 관점을 공유하시는 분들께서 이런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지가 정말 궁금하거든요. 뭐 논평이라고 쓰긴 했지만 거창한 것을 여쭙는 것은 절대 아니고 그냥 댓글로 어떤 것 같다 의견 정도만 말씀해주시면ㅠ

      http://blog.naver.com/paxwonik/40115903902

    • 20대 갓 넘은 사상가가 사상의 힘으로 "진보의 종언"을 진단하는 "performative contradiction"에 흐뭇하네요... 밥하기도 싫고 맛있게 외식이나 해야겠다.

    • 네오푸울// 그 지인이 박가분님이었군여. 트윗에서 겨울철쭉님이 추천하셨길래 읽으면서 이 글이구나 했더랬슴다.ㅎ

      겨울철쭉님은 소개하면서 "생각해볼만한 예리한" 분석이란 촌평을 하셨지만, 제가 봐도 그 촌평은 맞겠다 싶고요. 생각해볼 만하다기보단 생각을 자극하는 글이지 싶군요. 읽으면서 내심 놀랐어요. 무척 반가운 문제제기라 그런가, 읽는 동안 설레이는 맘까지 일었습니다. 엔엘은 물론이고 자타칭 피디라 불리는 이들의 실천적, 이론적 답보(내지 "퇴행")을 '한 쌍'으로 다루는 이런 문제제기는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제가 보기에 2010년 현재, 좌파정치의 진전과 대중화를 보다 더 앞당기기 위해 던져야 할 질문은 크게 두 가지 같어요. 1) 향후 상황/정세에 개입하는 데 정치적으로 적합한 계급주체 형성의 "장(내지 역사적 시공간)"을 어떻게 다시 설정해야 하며, 2) 이러한 좌파적 주체화에 불가결한 실천의 기본 각과 짜임새는 어떻게 새로워져야 할까.

      박가분님은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주체사상의 바깥에서 규범적으로(다른 한편으론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만, 가학적으로ㅋ) 까고 마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내부"로부터 이끌어냈죠. 제게는 이런 내재적 비판이 일종의 반전처럼 아주 참신하고 돋보였던 것 같아요. 마치, 도무지 가망이라곤 없어 뵈던 번데기의 껍데기를 가르고서 무척 쌈박한 자태를 드러내는 배추흰나비의 "붉은 날갯짓"을 보는 것 같았달까요.ㅋㅋ 물론 바로 그렇기 때메, "조만간 새로이 도래할 민중"의 태양이 뜨는 대로 금새 걷힐 안개가 될지 몰라 내심 전전긍긍하고 있을 엔엘계통 운동들한테는 더없이 유효하고 강력한 한 방 아닐까 싶고. 사실 엔엘계의 패악만 걷히면, 바꿔 말해 정세적 맥락관 사실상 무관한 정전화된 "실천매뉴얼"만 널리 퍼지면 좌파정치가 자동적으로 활성화될 것 같은 착각을 부르는 소위 급진좌파 계통의 안이한 자기규정과 실천관에 대해서도 값진 한 방이겠다 싶었어요. 맞는 쪽에서 얼마나 값져할진 모르겠지만.ㅎ;

      관련해서 덧붙이면, 겨울철쭉님은 북조선의 수령론과 피디 계통의 전위론이 통념과 달리 조직화에 대한 발상법을 많은 부분 공유한다면서, 적어도 근래 엔엘파에선 자신들의 입장을 주체사상 본연의 힘이 아닌 수령론에 기대 정당화하고 있음을 지적하더군요. 철쭉님이야 뒷부분에 무게를 실었지만, 앞부분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지금 소위 좌파 진영에서 그 "분석적 올바름"을 발휘하는 것과 별개로 던져야 할 질문은 엔엘계나 자유주의 계통에서 번갈아 곧잘 활용하는 대중적 국민주의완 다르게 "대중적 생활감각"을 적극적으로 사고할 조직화의 각은 과연 어떤 것이겠냐일 테니까요. 이러자면 "좌파적 포퓰리즘" 같은 발상을 곧이곧대로 따르진 않아도 적극적으로 접붙여볼 필요가 있잖나도 싶고..

      사실관계 면에선, 저 또한 토달 주제가 못 됩니다만, 그렇다고 막 나갔다고 할 만한 구석이 도드라져 뵈는 것 같지도 않네요. 설사 있다손 쳐도 전체 논지를 허물 정도까진 아닐 것 같고요.

      다만 글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건, "진보"를 표방해온 여러 실천과 노선의 종언이 어째서 더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됐는지 거듭 밝히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그 단어에 작은 따옴표를 쳐가며 무언가를 건져올리려 했던 것 같던데, 그 무언가가 뭐며 종언 테제와 어떻게 긴장하길래 그러나 하는 거였어요.ㅎ

      뭐 이거, 박가분님 글에다가 달았어야 할 얘기를 여기다 남긴 셈이 됐네요(회원가입을 해야 덧글 달기가 된다던데, 귀차니즘 때문에 그냥;.. 뒀다가 옮길까 햇더니, 해당 블로그에서 덧글 제한 창이 계속 뜨는군여). 여하튼 맑스 아저씨가 했다는 말 마냥, 제 갈 길을 함 계속 가보셨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누가 뭐라든요.ㅎ


      뱀발:
      개인적으로 전, 농업/먹거리 의제를 실마리 삼아 북조선산 주민들과 한국산 주민들이 "자주적"으로 교류하면서 그것이 가져올 정치적, 문화적 연쇄반응 효과를 노려볼 만한 관련 구석들이 마치 광맥처럼 그간의 "분단현실" 도처에 잠재해 있다고 판단하는 쪽인데요.. 이런 상황을 소위 "대북지원" 같이 (엔엘계의 통일운동 진영이 선호하는) 국가통치술의 일환으로나 (김대중계에서 선호하는) 식민주의적 개방화의 맥락에서만 취급되도록 방치할 게 아니라, 광의의 "노동자" 운동 계열에서 소위 적-녹-흑의 문제설정을 융합한 대안적 의제들로 변환해 내면서 관련 상황에 개입하는 실천의 각이 충분히 가능하고 또 무척 필요해질 거라고 보거든요. 그러다 보면 국민국가적인 포섭과 배제의 변증법에 시달리는 이런저런 "경계인/디아스포라"들이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자 이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도 커지면서, 새로운 계급주체 형성이 이뤄지는 정치의 장 자체가 국지적 실천 속에서 이미 동아시아적인 규모로 만들어지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 같구요.

      이런 주체 형성의 정치에 탄력이 붙고 그 저변이 두터워지면서 시나브로 "사회의 좌경화"가 이뤄지다 보면, 뭐 누가 알겠어요? "머지 않은" 시기,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라틴 아메리카처럼 "좌파 도미노" 현상과 유사하거나 그보다 더 의미심장한 "동아시아" 규모의 거대한 변환이 몸으로 느낄 만한 행복한 현실로 다가올지.

      물론, 의도적으로, 지나치게 아름답게 윤색 좀 하자면 이렇단 얘기지만ㅎ 세계경제를 주관하는 사도들부터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체제의 회춘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 지 오래라는 분석도 나오는 마당에, 충분히 패를 걸어볼 만한 대안적 전망이 아닐까 싶네요. 폴라니가 말했던 거대한 변환이야, 자본주의 시장 본연의 폭정에 대한 사회의 자기방어 움직임이 파시즘의 득세(=국가간 전쟁으)로 귀착됐단 점에서 비극였을지 몰라도, 앞으로 이뤄질 변환은 아무래도 그와 확연히 달라야 할 테고요. 안 그러면, 저 같은 사람들 대다수는 주저앉는 세계경제의 회춘용 숙주 꼴을 못 벗어난 채 동반파멸할 공산이 농후하다고도 하니 뭐..; 실속 없는 전쟁 따위로 총알받이 하다 인생 쫑 내긴 정말 죽기보다 싫으니까요. 가늘고 길게 살고프달까.ㅎ

    • 들사람/ 그대로 긁어가고 싶은 댓글이네요ㅎㅎ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지만 일단 시험기간이라 자숙하고 나중에 들사람님 블로그 가서 마저 이야기하거나 하겠습니다. ;) 한가지 사실관계에 있어 제가 자신이 없어하면서 너무 막 나간거 아닌가 불안해 했던 것은 행여 엔엘파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주체사상 본연의 힘을 강조하는 조직과 집단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어서요. 항김 '주체사상'파 유격대가 비밀리에 조직되어 개마고원 등지에서 작전이라도 수행하고 있으면 어쩌나 싶어서ㅋㅋ

    • 네오푸울// 뭐 그리 되면 외려, 박가분님의 주장에 힘이 더 실리게 되는 거 아닐까요.ㅋㅋ 박가분님 주장도 결국 실재하든 잠재하든 거기에 어떻게 ("좌파적"으로) 개입하고 연대해 동아시아 냉전 자본주의 체제의 일반화된 모순을 극복(내지 지양)할 거냔 얘길 테니. 실은 저도 자숙해야 하는데, 일단 여기까지ㅠ;;

      뭐 익히 아시겠지만, 엔엘계 중에서 그래도 엔엘계의 합리적 핵심을 계승한 이로 민경우씨 같은 분이 있다자나요. 딱히 끌리고 그런 건 아니지만서도, 걔중에선 제일 말이 되는 얘길 하시더라구요.

  3. 들사람 / 그렇지는 않습니다 ;) 아 근데 정말 들사람님이 다음의 말로 정리하신 '문제' 설정에 감탄했어요. 동북아 근대성 세미나니 일본근대사상사 세미나니 뭐니 하면서 어줍잖게 먼 훗날 제가 대면하고 싶어 하는 문제를 정확하게 꿰뚫어버리셔서. 저 역시 행인님이 느끼셨던 섬찟함을 똑같이 느꼈네요ㅎ

    "자유민주주의(적 제국주의) 요새 미국의 경제-군사적 제재로 임계치에 육박한 "조국보위" 압력 탓에 "인민민주주의"의 수혜는커녕 이미 퉁겨져 나왔거나 한껏 짓눌려 있는 대다수 북조선 (이/탈)주민들, 억지춘향으로 "충군애국"하다 몰살당한 걸로도 모자라 1945년 이후론 주일미군의 패악에 또다시 시달려야 했던 오키나와 주민들, "내성인"이란 이유로, 1945년 이전까진 "조센진", 이후엔 "자이니치"네 "전라도"네 "빨갱이"네 같은 이유로 경제적, 문화적 차별과 모멸을 견뎌야 했던 대만과 일본, 한국산 주민들, 1960년대 중반 미국의 개입과 지원으로 벌어진 자생적인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경험했고 지금은 일본, 한국 등지에서 이주노동자로도 살곤 하는 인도네시아 주민들까지.. 뭐 근까, 1945년 이후 미국식 반공 자본주의 체제로의 재편 속에서 근대자본주의 특유의 식민주의적 주변화 압박 내지 폭력에 '여전히' 시달렸던 동아시아 주민들의 근대화 경험들을 하나로 꿰고 이어 봄으로써, 20세기 동아시아 정치경제와 지정학의 역사적 궤적을 다시 써야 하겠달까요."

    도대체가 이 작업을 하려면 뭐부터 공부해야하고 어디가서 공부해야 하는건지... 정말 미치겠습니다ㅎㅎ 저는 이제 겨우 들사람님께서 제기하신 '문제'의 윤곽을 흐리멍덩하게 파악하고 앞으로 그런걸 더듬고 싶다 이런 의욕만 가지고 있을 뿐인데ㅠ

  4. 요 몇달 간 틈틈히 일본근대사상사 보면서 타케우치 요시미가 1960-70년대 맞닥뜨렸던 사상적 과제를 음미하면서 정말이지 좀 이상한 형태로 한국에서만 유행타기 시작한 것 같은 이른바 '동(북)아시아' 담론을 겹쳐 생각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소위 '동북아시아' 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한국 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참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죠. 어쨋든 타케우치 요시미가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의 근대초극론 따위를 다루며 구출하려 했던 '아시아주의'라는 것의 소생이 21세기에 만약에 가능하다면, 위에서 들사람님께서 언급하신 경제적/문화적 차별과 모멸을 견뎌야 했던 동아시아의 민중을, 기업 진출이나 시장 개척을 위한, 자본 팽창의 필요성에 따른 이데올로기적 사전 정지작업으로의 '동아시아'가 아닌, 그 방향이 180도 돌려진 인간 해방을 위한 협력과 연대의 터전으로의 '동아시아' 라는 지평을 어떻게 구상해야 할 것인지! 그야말로 가슴설레는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

    • 한국에서 동북아허브국가니 물류국가니 하는 식의 "동북아 담론"이 좀 유별난 건, 1945년 이전까지 일본령 조선 치하에서 근대화의 단맛을 노렸던 민족 부르주아지 주류의 합동피난처였다가, 60년대 이후부턴 미국주도형 근대화의 쇼윈도우로 화려하게 변모한 대한민국 국가의 황망한 내력과 맞물려 있지 싶어요. 근대자본주의적 식민주의의 실험장이었던 일본령 조선치하 주민 대다수의 치욕스런 경험이 대한민국이란 주권국가의 탄생 과정과 겉돈 데다 분단-내전 와중에 "정치적 세탁"까지 겪다 보니, 대체로 (아)제국주의적 심성이 번성하고 사회화되기 좋은 숭악한 곳이 돼버렸달까요.ㅎ;

      반면 일본의 경우엔 다케우치 같은 소수파가 있긴 했지만, 동아시아/대동아라는 화두는 "억압-거세된 과거"로서 냉전기 동안 금기 혹은 우파적 반동으로밖엔 제출되기 힘든 맥락이 있었던 것 같고요. 중국도 얘길 듣자니 그리 간단친 않던데, 과거 등소평이 강조했던 바 "나대지 않고서도 짱 먹는" 노선이 선호된 것도 있고, 다케우치 같은 발상이 탄력을 받기에는 기본적으로 미국-대만-한국-일본과 적대하고 다른 한편으론 소련과 불화하면서 "중국식 사회주의"를 추구했던 내력 탓에 "동아시아"라는 문제설정 자체가 낯설 수밖에 없는 모양이더라구요. 근까, 동아시아를 함께 이야기할 만한 대상이 죄다 친미 위성형 주권국가였다는 거죠. 중국 쪽 사람들로선 동(북)아시아라는 표상 자체에 반공주의적 냉전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는 셈이랄까요.ㅎ 베트남하고 국경분쟁을 치렀던 경험도 어찌 봐야 할지, "아직으로선" 분명치 않은 것도 있죠.

      이런 난맥을 풀거나 걷어내는 지적 작업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정치적으로 어떤 설레임을 불러일으킬 만한 구석이 분명 있는 거 같어요.ㅎ 저 또한 그런 설레임이 여러 형태의 의미 있는 결실로 이어졌음 좋겠는데, 집단적으로 진행하지 않고선 결실을 맺기가 무척 어려운 일일 터라..ㅎ; 얼마 전에 백원담 선생이 인터아시아 문화연구 과정인가를, 일본과 대만의 좌파 지식들과 함께 성공회대에 설치한다고 그러긴 하더라구요. 얼마나 진척이 됐는진 모르겠지만서도.

  5. 일본의 시대구분

    선사시대
    구석기 시대
    조몬 시대
    야요이 시대

    고대
    야마토 시대
    – 고훈 시대
    – 아스카 시대
    나라 시대
    헤이안 시대

    중세
    가마쿠라 시대 - 막부
    무로마치 시대 - 막부
    센고쿠 시대

    근세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에도 시대 - 막부

    근대
    일본 제국

    메이지 시대
    다이쇼 시대
    쇼와 시대

    현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냉전 하의 일본
    헤이세이 시대

    modern history

    Pre-Modern
    Main articles: Ancient philosophy and Medieval philosophy
    In a historical context, Pre-Modern is the period in Western civilization that came after Ancient history 4000 to 600 BC, and Classical antiquity 600 BC to 500 AD, and before Modernity.[contradiction] It is usually recognized[weasel words] to have begun in the mid-15th century, marked by the invention of the printing press and the introduction of movable type in Europe. Pre-Modern ideas are thought[weasel words] to have begun in the Dark Ages around 500 AD.
    In the Pre-Modern era, a person's sense of self and purpose was often expressed via a faith in some form of deity, be that in a single god or in many gods.[citation needed] Religious officials, who often held positions of power, were the spiritual intermediaries to the common person. It was only through these intermediaries that the general masses had access to the divine. Tradition was seen as sacred and unchanging & the social order was strictly enforced.[citation needed]
    See also: Ancient history and Medieval history

    Modern
    In contrast to the pre-modern era, Western civilization made a gradual transition from premodernity to modernity when scientific methods were developed which led many to believe that the use of science would lead to all knowledge, thus throwing back the shroud of myth under which pre-modern peoples lived. New information about the world was discovered via empirical observation.[citation needed]
    The term "modern" was coined shortly before 1585 to describe the beginning of a new era.[2] The European Renaissance (about 1420–1630) is an important transition period beginning between the Late Middle Ages and Early Modern Times, which started in Italy.
    The term "Early Modern" was introduced in the English language in the 1930s.[5] to distinguish the time between what we call Middle Ages and time of the late Enlightenment (1800) (when the meaning of the term Modern Ages was developing its contemporary form).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these terms stem from European History. In usage in other parts of the world, such as in Asia, and in Muslim countries, the terms are applied in a very different way, but often in the context with their contact with European culture in the Age of Discoveries.[6]

    Postmodern and contemporary
    "Postmodernism", coined 1949, on the other hand, would describe rather a movement in art than a period of history, and is usually applied to arts, but not to any events of the very recent history.[7] This changed, when postmodernity was coined to describe the major changes in the 1950s and 1960s in economy, society, culture, and philosophy. Sometimes distinct from the modern periods themselves, the terms "modernity" and "modernism" refer to a new way of thinking, distinct from medieval thinking. "Contemporary" is applied to more recent events because it means "belonging to the same period" and "current".

  6. 그래서 묻겠는데 전근대적이라함은 어느 시기이며, 북한은 지금 어느 시기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답 안해주셔도 무방합니다.

  7. 시대구분을 창조하시겠다면 혹시 들뢰즈를 좋아하시는지 묻고 싶네요.

  8. 프랑스의 선사시대
    갈리아
    로마 갈리아 (50 BC~486)
    프랑크족
    메로빙거 왕조(481년~751년)

    중세의 프랑스
    카롤링거 왕가(751년~987년)
    카페 왕가(987년~1328년)
    발루아 (직계) (1328년~1498년)

    근대 초기의 프랑스
    발루아-오를레앙 (1498년~1515년)
    발루아-앙굴렘 (1515년~1589년)
    부르봉 왕가 (1589년~1792년)
    프랑스 혁명 (1789년)

    19세기의 프랑스
    제1공화국 (1792년~1804년)
    국민 공회 (1792년~1795년)
    총재정부 (1795년~1799년)
    통령정부 (1799년~1804년)
    제1제국 (1804년~1814년)
    왕정복고 (1814년~1830년)
    7월 혁명 (1830년)
    7월 왕정 (1830년~1848년)
    2월 혁명 (1848년)
    제2공화국 (1848년~1852년)
    제2제국 (1852년~1870년)
    제3공화국 (1870년~1940년)
    파리 코뮌 (1871년)

    20세기의 프랑스
    비시 정부 (1940년~1944년)
    임시정부 (1944년~1946년)
    제4공화국 (1946년~1958년)
    프랑스 공화국 (1958년~현재)

    수도 파리
    48°51.4′N 2°21.05′E
    공용어 프랑스어
    정부 형태
    국왕
    입헌군주제
    루이 18세 (1815~1824)
    샤를 10세 (1824~1830)

    국교 가톨릭교

    정부수립
    • 성립1815년
    • 7월 혁명 1830년 7월

    들사람님, 그래서 왕조국가는 무엇입니까. 입헌군주제를 말씀하시는지, 왕이 있고, 정부가 있어야 비유를 해도 왕조국가가 되는겁니다. 북한이 입헌군주제인가요. 북한의 정치형태는 일당제 주체사회주의공화국이라고 위키가 그러는데요.

    • (이거 또, 치치씨가 흘린 떡밥에 낚인 게 아닌가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겠으나ㅠ;; 행여 아니면 한 귀로 흘려주시고) 앞서 제가 북조선이 "왕조국가" 따위로 불려도 된다고 했던가요? 그렇게들 멋대로 규정하더란 뜻으로 따옴표를 쳤던 건데. 되려 그런 규정으로 북조선을 "전근대적인 낙후"의 상징처럼 다루면서 북조선이 엄연히 민주공화제를 추구하는 근대민족국가임을 부정하는 식으로는, 북조선이라는 국가 형태는 물론이고 북조선이 속해 있는 역사적 시공간이라 할 근대세계가 여지껏 굴러먹어온 방식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는 취지로 말이져.

      외려 더 문제인 건, 군주정적 통치 형태가 자본주의적 근대성과 양립불가능하다고 보는 통념 혹은 상식이 아닌가 싶네요.

    • "그리 되면 적어도 북조선에 곧잘 들러붙는 몬도가네풍의 소위 "전근대적"이고 "왕조국가"적인 특이성들이란, 20세기 동아시아 반공 자본주의의 식민주의적 지정학 속에서 줄곧 지속-변주돼온 "근대적 야만과 폭력"에 대한 화학적 반응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잖을나라요."

      북조선, 몬도가네, "전근대적", "왕조국가" 이런 것들은

      20세기 동아시아 반공 자본주의의 식민주의적 지정학 속에서 줄곧 지속-변주돼온 "근대적 야만과 폭력"에 대한 화학적 반응이다

      이 문장이 이해가 잘 안되는데 다시 한 번 설명해주실래요.

    • "외려 더 문제인 건, 군주정적 통치 형태가 자본주의적 근대성과 양립불가능하다고 보는 통념 혹은 상식이 아닌가 싶네요."

      들사람님은 자꾸 일본식 시대구분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려고 해요. 이건 유럽중심주의나 마찬가지에요. 유럽식 시대구분이 있고, 일본식 시대구분이 있고, 한국 역사학자들이 시대를 구분하는게 있을거에요. 하지만 modern 하다는 것은 현대성이에요. 맑스가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에서 뭐라고 말했는지 볼까요. 이 문건의 제목은 헤겔 법철학의 비판이지만 사실은 당시 독일의 상태와 반동적인 역사 법학파를 비판한 거에요.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아요. 여기서 몇 구절을 발췌해볼께요. 맑스가 이 글에서 독일민족이 획득해야할 현대성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이리하여 천상의 비판은 지상의 비판으로, 종교의 비판은 법의 비판으로, 신학의 비판은 정치의 비판으로 전환된다."

      "정말이지, 독일의 역사는 역사상 어느 민족도 시범을 보인 적이 없고, 모방하지도 않을 하나의 움직임에 대해 우쭐해 하고 있다."

      "우리는 자유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 저쪽, 튜튼 족의 원시림 속에서 찾는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의 역사가 단지 원시림 속에서 발견된다면, 그것은 무엇에 의해 멧돼지의 자유의 역사와 구별될 것인가"

      "왜냐하면 독일의 현 상태는 구체제 ancien regime의 솔직한 완성이며 구체제는 현대 국가의 숨겨진 결점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형식으로 이 문제는 독일인들을 몰두시키기 시작했는가? 보호 관세, 무역 금지제, 국민 경제의 형식으로이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문제가 정치 경제 혹은 부에 대한 사회의 지배라고 되어 있는 반면에, 독일에서는 국민 경제 혹은 국민에 대한 사적 소유의 지배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그 최후의 결과로까지 나아간 독점을 지양하는 것이 문제이다; 독일에서는 독점을 최후의 결과로까지 몰고가는 것이 문제이다."

      맑스는 독일이 아직 획득하지 못한 현대성에 대해 얘기하죠. 프랑스는 부르주아지들이 지배하는 공화정인데, 독인은 프로이센 국왕때문에 자본주의가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하나의 독자적 세계로 구성된 정치적 현대의 결점으로서의 독일"의 특유한 한계에 대해 말하죠.

      그런데 북한은 이런 국왕때문에 봉건적인 요소가 남아있고 자본주의의 침입을 막는 나라가 아니라 일당제 사회주의 때문에 현대성이 발전하지 못하고 자본주의의 침입을 막는 나라거든요. 다른 논리를 적용하고 계신거죠.

    • 님은 또 북한의 봉건성과 영도자와 일당제와 종교적 무오류와 무비판을 말씀하실거에요. 하지만 그렇다면 그런 비판은 북한 말고 다른 사회주의, 이를테면 다른 사회주의 조직이 신봉하는 레닌주의, 트로츠키주의, 스탈린주의 등등에 대해서도 앞으로 지속적으로 똑같이 비판작업을 수행하셔야돼요. 그래야 공정해요.

  9. 라틴 아메리카의 대안사회운동과 탈식민성(decoloniality) 연구

    http://www.greenbee.co.kr/blog/690

    들사람님 글을 읽으면 뭔가 개념이 마구 뒤섞여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건 단지 나혼자만의 착각일까.

    • 그런 느낌이 죄다 착각이라 단언할 자신은 저도 없는데요ㅋ 다만 제가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근대성의 의미는, 님이 긁어오신 것처럼 현존하는 근대세계에서 (소위 선진 국가군에선) 이미 도달했거나 (소위 후진 국가군에선) 앞으로 도달해야 할 궁극의 문턱처럼 특권화돼 있는 연대기적 단위 개념으로서의 근대(성)과는 분명 크게 다르죠.

      제가 말하는 개념으로서의 근대성은 기본적으로, "장기 16세기"에 걸쳐 근대자본주의가 유럽 지역과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대륙의 일부지역을 아우르며 하나의 사회체제로 제도화하는 가운데 탄생, 발전했다는 지구화된 식민주의 지배양식을 뜻합니다. 근대화란 이런 독특한 지배양식이 그밖의 여러 지역권에 새로이 자리잡거나 재편성되는 사회변동 과정을 망라하는 걸 테구요. 이 시각에서 보면 예컨대 노예노동으로 굴러간 "최초의 근대식 공장"인 남북 아메리카대륙 식민지의 플랜테이션, 이런 식민주의적 착취로 발생한 잉여로 발전, 번성했던 근대(국민)국가들 모두 어느 다른 한 쪽 없이는 성립불가능한 근대성의 제도적 성분들인 셈인데요. 여기서는 전자(=특정 권역의 식민지화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억압성을 근대성의 부재나 결핍으로서 “전근대적인 것”으로 뭉뚱그리고, 후자에 대해선 그나마도 제한적 의미를 가져야 할“긍정적 요소”들만이 근대성의 전부인 양 쪼개서 보는 통상의 개념화 방식 내지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특유의 '자뻑화법'을 따르지 않죠.

      전 이처럼 (가령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던 탓에 일본보다 근대화가 한 70년쯤 뒤처지고 말았다는 식으로) 시계열상의 선후관계에 있는 양 설명돼왔거나 양립불가능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역사적 사건들을 실은 단일하고 독특한 사회적 과정의 일부로 묶어내는 “관계론적 시각”이 근대자본주의 세계의 역사와 정치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효하다고 보는지라 나름대론 제가 쓴 모든 글에서 이런 시각을 유지해왔다고 믿는데, 만약 뭔가 뒤죽박죽인 느낌이 드셨다면 이런 식의 개념화가 님에게 익숙한 개념화 방식과 충돌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말씀드렸다시피, 제 스스로의 믿음만큼 제 서술이 신통치 않아서일 수도 물론 있겠지만요. 어쨌거나 이렇게 하는 데는, 적어도 통상적 개념화 방식을 다소 위악적으로라도 상대화 내지 문제화하려는 의도가 있죠.

      이는 결국 정치적으로 좌파적이라는 논의에서마저 "근대적인 것"이라 하면 (계몽의 빛으로 소위“중세적 암흑”을 깨고서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해방의 계기를 가져올 터이므로?) 일단 따르고 볼 무엇인 양 간주하거나, '좋은 삶'을 모색하는 데 불가결한 해방적 가치들이 설령 근대자본주의 체제가 내적으로 빚어내는 모순 속에서 파생됐다 해도 마치 근대성을 겪지 않으면 발현불가능한 미덕인 양 부당 전제하는 역사서술 방식이나 개념화와는 분명한 선을 긋겠단 얘기이기도 하죠. 근대자본주의 세계가 형성, 팽창하는 와중에, 특히나 19세기 중엽 이후 동아시아 권역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태들, 역사적 변동 과정들을 서술하는 데 좀더 적합한 개념화 작업을 해가자는 얘길 수도 있겠고요.

      링크 건 글은, 제가 이제껏 한 얘기가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갖는지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경험 맥락에서 이야기한 거라고 보심 되겠네요. 전 이런저런 역사적 사건/현안들을 이와 일맥상통하는 시각과 문제의식에 입각해 동아시아적인 맥락에서 다시 보려/쓰려 하고 있는 거고요.

    • "제가 말하는 개념으로서의 근대성은 기본적으로, "장기 16세기"에 걸쳐 근대자본주의가 유럽 지역과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대륙의 일부지역을 아우르며 하나의 사회체제로 제도화하는 가운데 탄생, 발전했다는 지구화된 식민주의 지배양식을 뜻합니다. "

      님이 말씀하신 근대자본주의는 현대자본주의로 바꿔야할 것 같고, 세계체제론은 월러스틴의 이론인데 세계체제는 아무나 보는거 아녜요. 마르크 블로크나 페르낭 브로델 보면 엄청나게 긴 시간을 보잖아요. 그런건 정말 대가들이나 하는거에요. 아무나 못해요. 그런데 월러스틴은 요즘 쓰는 글보면 대가라는 느낌이 안들어요. 그 사람 세계체제론을 제가 신뢰할 수가 없어요. 어쨌든 그렇고, 지구화된 식민주의 지배양식이라고했는데 지금은 탈식민주의죠. 물론 여전히 식민주의는 남아있어요. 한국사람들이 일본과 미국에 대해 컴플렉스 있죠. 그런데 그런 식민성이 현대성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다시 설명해주실래요.

    • "이는 결국 정치적으로 좌파적이라는 논의에서마저 "근대적인 것"이라 하면 (계몽의 빛으로 소위“중세적 암흑”을 깨고서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해방의 계기를 가져올 터이므로?) 일단 따르고 볼 무엇인 양 간주하거나, '좋은 삶'을 모색하는 데 불가결한 해방적 가치들이 설령 근대자본주의 체제가 내적으로 빚어내는 모순 속에서 파생됐다 해도 마치 근대성을 겪지 않으면 발현불가능한 미덕인 양 부당 전제하는 역사서술 방식이나 개념화와는 분명한 선을 긋겠단 얘기이기도 하죠."

      현대성, modernity는 총체성으로 이해해야겠죠. 하지만 님이 말씀하신 부분은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이에요. 역사도 방향이 있는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은 방향으로 간다는 믿음. 여기서 계몽이란 당시 지식인들이 현실을 돌파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을 뿐이지 현재도 유효한 것은 아녜요. 그 사람들은 자신의 시대의 문제와 대결했고, 이를테면 마녀사냥, 종교재판, 언론의 자유 등등, 우리는 우리의 문제와 싸워야돼요. 그렇게 때문에 현대성이라는 것이 반드시 계몽을 뜻하진 않아요. 지금은 신중심이 아니라 화폐중심이잖아요. 그렇죠. 저도 지금 돈없으면 못사는데 계몽한다고 이게 될까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서로의 욕망을 인정하고 보호해주는 것과 그것을 토대로 한 연대성의 구축이에요.

    • 봉건사회에서는 종교(기독교, 유교, 힌두교, 이슬람)이 정해준 위계적 질서와 계율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질서에 맞추어 조화롭게 살아야돼요. 지금은 상호투쟁의 시대에요. 화폐의 양에 따라 자신의 지위가 결정이 돼요. BMW 타고 다니는 사람과 버스 타고 다니는 사람은 격이 달라요. 돈 때문에 눈이 벌개요. 이거 계몽 가지고 절대 안돼요.

    • "이 시각에서 보면 예컨대 노예노동으로 굴러간 "최초의 근대식 공장"인 남북 아메리카대륙 식민지의 플랜테이션, 이런 식민주의적 착취로 발생한 잉여로 발전, 번성했던 근대(국민)국가들 모두 어느 다른 한 쪽 없이는 성립불가능한 근대성의 제도적 성분들인 셈인데요."

      저는 정말이지 들사람님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남북 아메리카대륙 식민지의 플랜테이션을 "최초의 근대식 공장"이라고 하시는지. 노예노동이 어떻게 최초의 현대식 공장일 수 있어요.

      가와카미 히데미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던 1917년경에 썼던 <빈곤론>을 보면, 일본에서는 modern을 근대라고 자기들 식으로 번역하는데 현대에 들어와서 도구가 발전해서 기계가 된 것이 경제상의 일대 사건이라고 해요. 기계의 발명으로 생산력이 천 배 만 배 커졌다는거죠. 그러면서 증기기관을 발명한 와트 얘기를 해요. 런던에 와트 동상이 서 있다고. 국가적 영웅이라는거죠. 그리고 기계의 발명에 따라 분업화, 전문화가 이루어지죠. 스미스가 핀 만드는 공정에 대해 얘기하잖아요. 이게 현대성이에요. 어째서 노예노동으로 유지되는 플랜테이션이 최초의 현대식 공장일 수 있어요. 그건 손노동이잖아요.

    • 아니 대체 뭘갖고 공부하세요. 참 나..

    • 아이고... 들사람님 댓글 좀 찬찬히 읽어보려 그랬더니 별 희안한 시비를 거는 사람이; 붙박이 별님이 뭘 잘 모르고 헛소리 하는거야 그냥 그럴수도 있는거지만 뭘 갖고 공부하냐는 시비는 이 무슨 되먹지 못한 오만한 자세인가요? 설령 님이 뭔가 더 잘 안다 싶으면 근거대고 제대로 논파하면 될 일이지 별 상관도 없는 쌍팔년도 저작 인용하면서 우기면 받아들여집니까? 뭐 20세기 들어와서 역사가들은 공부 안한줄 아나; 포메란츠나 시드니 민츠 이런거 보면 위에서 들사람님이 어떤 맥락에서 말씀하시는건지 알 수 있어요. 생트집 좀 잡지 마세요.

    • 님 말도 맞아요. 공부 많이 하신 분들 있어요. 그런 분들 글 읽으면 그런게 느껴져요. 그리고 전 공부 많이 안했어요. 포메란츠나 시드니 민츠 누군지 몰라요. 그런데 제 생각엔 쉬운것부터 이해하고 어려운걸 이해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단순한 걸 이해하고 나서 복잡한 걸 이해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건 제 직관이에요. 들사람님은 쉬운걸 공부하지 않고 어려운것부터 공부하신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려운건 쉬운걸 설명해주지 않고 어려운 얘기부터 하거든요.

    • 그리고 네오풀님은 제가 뭘 잘 모르고 헛소리하는건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셨지만, 오히려 들사람님을 도와주는 길은 근거를 대면서 제 주장이 헛소리임을 밝히는거겠죠. 그리고 들사람님이 어떤 맥락에서 저런 말씀을 하시는지 저한테 가르쳐주시는거겠죠.

    • 직관이고 뭐고 다 좋다 이거에요. 그냥 솔직하게 내가 잘 모르겠고 이해가 안가니까 좀 쉽게 설명 좀 해달라고 부탁하면 될 것을 왜 그런 식으로 댓글을 남기시나요? 나의 훌륭한 직관에 따르면 너는 틀렸다, 이런 뉘앙스는 좀 아니지 않나요? 그리고 설령 예를 갖추고 부탁했다고 해서 상대편에서 들어주지 않을 수도 있는 법. 그러면 또 그런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텐데. 제가 굳이 이렇게 뭐라 말씀 드릴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님 댓글 보고 있으면 살짝 짜증이 나서 한마디 하고싶어 집니다. 그래서 댓글을 단거지 들사람님을 돕고 안돕고는 제 관심사가 아닙니다. 무슨 큰일이라고 제가 '돕기'까지 하겠습니까ㅎ

    • 아.. 짜증이 나셔서 오셨군요. 짜증이 나는 이유가 그냥 내가 보기에 들사람은 틀린것같다고 우겼다. 계속 댓글 달았는데, 이상하다고. 경계인과 디아스포라와 배제된 자들은 좀 다른 얘기인데 같이 쓰는 것도 이상하고, 김대중 정부의 통일론은 연방제인데 식민지화라고 하고, modern과 일본 근대에 대한 구분이 다르다는 것도 얘기했고, 여러가지 얘기했는데 그냥 내 직관때문이라.. 제가 말씀드린 몇가지 사실에 근거해서 그런 것 같다는 추측을 한 것 뿐인데, 제가 뭐 관상쟁이도 아니고 아무튼 제 화법이 불쾌감을 유발하니까 그렇게 알겠습니다.

    • 그리고 님의 화법이 어떤 느낌을 줄지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세요. 님의 화법은 사람들에 따라서 쾌감을 유발할 수도 있고, 짜증을 유발할 수도 있겠죠.

    • 네오풀님은 한가지 잊고있는게 있어요. 사람은 논쟁을 하는 대상이 있고, 대화를 나누는 대상이 있고, 무시하는 대상이 있어요. 대상에 따라 소통의 수준이 달라요. 저는 들사람님과 논쟁을 하는거에요. 그래서 논쟁적으로 얘기하는거에요. 왜냐면 입장이 다르니까. 네오풀님은 저를 무시하는거에요. 논쟁이나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에 대한 감정만 얘기하고 있어요. 물론 저도 들사람님에 대한 거북한 감정을 얘기했지만 제가 단 댓글들 보면 그것만은 아니라는걸 아실 수 있을거에요. 그냥 님은 저한테 짜증이 나서 온거에요. 짜증. 그럴때 제가 해줄 수 있는건 님의 소원을 들어드리던가 말던가에요.

    • 님이 말하는건 이런거잖아요. 근거대고 제대로 논파해라. 상관도 없는 쌍팔년도 저작 인용하면서 우기지 마라. 20세기 역사가들 공부 좀 해라. 네가 포메란츠나 시드니 민츠 공부하면 들사람님이 어떤 맥락에서 저런 얘길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거다. 들사람님을 이해하도록 노력해라. 생트집 잡지마라. 네가 잘 모르고 이해가 안가면 쉽게 설명해달라고 부탁해라. 예의를 갖추고 부탁해도 상대방이 들어주지 않으면 가만있어라. 네 댓글 보면 짜증나서 한마디하고 싶다. 그래서 댓글을 단거지 들사람님을 돕고 안돕고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무슨 큰일이라고 내가 돕기까지 하겠니.

      이걸 제가 받아들이던가 말던가 해야하잖아요.

    • 네 뭐 잘 알겠습니다 OTL

  10. 들사람님, 대체 뭘로 공부하세요? 대답안해주셔도 돼요.

    • 다른 건 다 생략하고, "..어쨌든 그렇고, 지구화된 식민주의 지배양식이라고했는데 지금은 탈식민주의죠."

      푸하, 헤겔 우습게 보지 말라며 발끈 하시던 분이 이런 반헤겔적 진술을 하시다니, 좀 씁쓸하지만 재밌네요 아주. 다시 한 번 더 웃겠습니다. 하하ㅎㅎ하ㅎㅏ하하하~ 논리의 모순을 넘어 세상을 움직이는 모순의 논리를 보자는 게 헤겔의 화두였을 텐데. 듣보잡인 제가 대가에 대해 이렇게 떠들어도 될 일인지 문득 망극해질려구 합니다마는.ㅎ 근데 아마도 제 얘기의 반박 논거로 끌어오신 구절 중에 이런 게 있네요.

      "왜냐하면 독일의 현 상태는 구체제 ancien regime의 솔직한 완성이며 구체제는 현대 국가의 숨겨진 결점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이 여즉 제가 한 얘기에 대한 반박이 되는 거유? 그렇긴커녕 근데세계하에서 제도화된 억압성 내지 관련 기제를 죄다 "전근대의 잔존물"로 취급하는 건 잘못이라는 제 논지를 떠받쳐 주는 진술 같은데.ㅎ 북조선을 위시한 (반)주변부 국가 형태의 억압기제는 물론이고, 근대국가의 권력양식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통찰을 주는 구절이겠구요. 그래서 그런가, 대체 왜 저걸 인용했는지 몰겠어요. 혹시 또 오독질하실까 미리 단도리 치는데, 정말 몰겠단 얘기 아닙니다.


      근대와 현대를 가르자고 하는 경우가 있죠. 때론 필요하기도 하고. 일테면 데카르트-갈릴레오-뉴턴의 지반 위에서 성립했다는 근대과학과, 이에 맞서(혹은 이와는 달리) 아인슈타인-양자역학-복잡계이론의 지반 위에서 형성된 현대과학이 내용상 동일한 과학으로 묶이기 어려운 것처럼 말예여. 그런데도 제가 그런 구분을 별로 탐탁치 않아 하는 건, 대개 이런 구분법에서 자연과학 계통의 현대성 혹은 지적 성취가 마치 근대성으로부터 모종의 계기적 단계를 거쳐 발전한 양 서술하려는 욕망이 어른거려서예요. 이게 비단 자연과학 분야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거니와. 이런 서술이 노리는 게 그럼 뭐겠냐. 그게 뭘지 함 "이해해" 보세요.ㅎ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어이없어할 시간에 말이져.

      그리고, 월러스틴이나, 블로흐, 브로델이 대가면 대가였지 그런 거 아무나 못한단 식이면(제가 알기론 자신들의 입론이 널리 공유되길 바랐음 바랐지, 그런 애긴 들은 적도 없거니와), 님도 헤겔에 대해 함부로 떠들면 안 되겠네요.. 헌데 헤겔이 말한 인류야말로 어떻네 저떻네 해가며, 누구보다 헤겔철학의 진정한 보편성에 대해 떠든 게 누구였더라? 그거 아무나 못하는 소리 같더만. 기억하시죠? 쯧쯧. 월러스틴은 자신의 논의를 "론"이라고 하지 말아달라고 그러죠. 론이 아니라 "분석" 내지 "시각"으로, 부르주아적인 이론들관 다른 이론화를 요청하는 쪽에 더 가깝단 취지로 말이져. 그 말을 반기고 나름대로 그렇게 해보자는 게, 님의 인허가가 필요한 일은 아니잖아요? 근데 꼭 그래야 하는 투인 것이 영 거슬리네요. 하여간, 님은 확실히 좀 짱인 듯해여.ㅎㅎ

      글고 그밖의 다른 지적들에 대해 가르쳐달라느니 해명해보라느니 하셨는데, 싫은데 어쩌죠?ㅎ 관련 주제로 주위 둘러보면 참고할 책들 널렸으니까 그걸로 공부해 보셈. 물론 나 여깄다고 막 손짓하고 그러진 않을 거예요, 숲 속서 나물캐듯 찾아다녀야지.

      가만 보면 님은 서로 배우자고 말론 떠들면서, 굉장히 가르치려는 태도인 거 아세요? 이건 뭐 무슨 국민의 명령도 아니고.. 치치의 명령인가요?ㅋㅋ 누구한테나 권할 거면 모를까, 그러지 마세요. 그쪽이 "블라블라..나만의 착각인가" 운운했던 데서 제가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인정했던 것처럼, 네오푸울님과 저 같은 이가 님의 글 보며 느끼는 (때론 왕)짜증이 정말 네오푸울님이나 저만의 느낌일지 진중하게 고민하셔야 할 거예요. 그러면서 무슨 놈의 "대화"를 시도합니까 그래, 가뜩이나 어따가 답글 달아야 할지, 곧잘 질문인지 암호 같은 독백인지도 분간하기 힘들게 하면서 말예여. 게다가 본인은 굉장히 조리도 있고 촘촘한 독해를 하는 줄 아는 모양인데, 자기점검도 이 참에 좀 촘.촘.히 해 보시고. 제발, 플리즈.

      그래도 통할 구석이 많아 보여 이래까지 얘기하는 거니까 행여 고깝게 여기진 마시고. 솔직히 그래도 짜증이 부글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제가 보기엔, 저한테 주제넘는 충고까지 뜬금없이 막 던졌던 분이 뭐 이 정도 제언 갖고 고깝게 여기진 않을 것도 같습니다만..ㅎ 하여간 통할 구석들을 여기서 "대화"의 소재가 되게 할지 말진 님한테 달렸지 싶네요.

    • "다른 건 다 생략하고, "..어쨌든 그렇고, 지구화된 식민주의 지배양식이라고했는데 지금은 탈식민주의죠." 푸하, 헤겔 우습게 보지 말라며 발끈 하시던 분이 이런 반헤겔적 진술을 하시다니, 좀 씁쓸하지만 재밌네요 아주. 다시 한 번 더 웃겠습니다. 하하ㅎㅎ하ㅎㅏ하하하~ 논리의 모순을 넘어 세상을 움직이는 모순의 논리를 보자는 게 헤겔의 화두였을 텐데. "

      극단의 시대: 20세기의 역사/에릭 홉스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까지의 몇십 년은 이러한 사회로서는 파국의 시대였다."

      "제국의 시대와 그 이전에 세워진 거대한 식민지제국이 뒤흔들렸고 부서져 먼지가 되었다."

      "정확히 어떻게 그리고 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자본주의가, 자기 자신의 사람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에게 충격을 줄 정도로, 1947-73년의 전례없고 어쩌면 파격적인 황금시대로 급진전했는가 하는 것은 아마도 20세기를 다루는 역사가들이 직면한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자신있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은 황금시대가 낳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변동 - 기록된 역사에서 가장 크고 가장 급속하고 가장 근본적인 - 의 엄청난 규모와 충격이다."

      "왜냐하면 황금시대가, 대체로 국경들을 넘어서('초국가적으로') 기능하고 따라서 갈수록 국가 이데올로기의 경계들도 넘어서 기능하는, 단일하고 갈수록 통합되고 보편적인 세계경제를 역사상 처음으로 창출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모든 체제들과 체계들의 기존 제도개념이 손상되었다."

      "실체가 불확실한 '시민사회'나 '공동체'에 대한 기묘한 요구는 길을 잃고 표류한 세대들의 목소리였다."

      "아마도 이러한 승리의 가장 극적인 실제적 결과는 시간과 거리를 사실상 소멸시킨 운송과 통신의 혁명일 것이다."

      "우선, 그 (단기 20세기 말의) 세계는 더 이상 유럽 중심적이 아니었다. 그 세계는, 세계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권력과 부와 지성과 '서구문명'의 명백한 중심이었던 유럽의 쇠퇴와 몰락을 가져왔다."

      "초국가적인 단일한 '유럽 공동체'를 창출하려 하고 그것에 부합하는 유럽 정체성 의식 - 역사적 민족과 국가에 대한 오랜 충성을 대체하는 - 을 만들려는 노력 자체가 이러한 하락의 정도를 보여주었다."

      "미국이 부상하고 승리한 시대"

      282페이지부터는 제국들의 종식을 다루고 있어요. 열강들이 무너지면서 식민지들이 독립을 쟁취하죠.

      탈식민지화(脫植民地化)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유럽 식민지들이 줄지어 독립한 현상이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독립을 시작으로 20년에 걸쳐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 및 보호령 대부분이 독립하여 주권국이자 국제 연합의 회원국이 되었다. 이로인하여 국제사회의 구성국 수는 50여 개 국가에서 160여 개 국가로 크게 늘었다. 새로 독립한 국가들은 흔히 제3세계라 불린다.

    • "그리 되면 적어도 북조선에 곧잘 들러붙는 몬도가네풍의 소위 "전근대적"이고 "왕조국가"적인 특이성들이란, 20세기 동아시아 반공 자본주의의 식민주의적 지정학 속에서 줄곧 지속-변주돼온 "근대적 야만과 폭력"에 대한 화학적 반응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잖을나라요."

      "북조선을 위시한 (반)주변부 국가 형태의 억압기제는 물론이고, 근대국가의 권력양식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통찰을 주는 구절이겠구요. 그래서 그런가, 대체 왜 저걸 인용했는지 몰겠어요."

      먼저번엔 북조선이 전근대적, 왕조국가라고 했다가, 이번엔 반주변부 국가인데 근대국가의 권력양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통찰을 준다니 뭡니까.

    • "일테면 데카르트-갈릴레오-뉴턴의 지반 위에서 성립했다는 근대과학과, 이에 맞서(혹은 이와는 달리) 아인슈타인-양자역학-복잡계이론의 지반 위에서 형성된 현대과학이 내용상 동일한 과학으로 묶이기 어려운 것처럼 말예여."

      물리학 [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물리학사입니다.

      과학혁명을 경계로 과거의 철학적 생각과 고전역학이 나뉜다. 코페르니쿠스는 사모스의 아리스타쿠스가 처음으로 생각한 지동설 모델을 부활시켰다. 이것은요하네스 케플러가 17세기 초반 밝혀낸 태양이 그 궤도의 두 초점중 하나를 차지하는 타원궤도를 돈다는 행성의 운동모델을 따랐다. 또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물리이론들을 확인하는 데 실험을 사용하는 과학적 방법론의 핵심사상을 시도했다. 1687년, 뉴턴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그 안에는 두개의 광범위하고 성공적인 물리법칙 즉 고전역학을 이끈 뉴턴의 운동법칙과 중력의 기초를 설명하는 만유인력의 법칙이 수록되어잇다. 전기와 자기의 성질은 19세기 초반에, 마이클 프라이데이와 게오르크 옴에 의해 연구되었다. 이 연구는 맥스웰에 의해 밝혀져서 맥스웰 방정식으로 알려진 전기와 자기라는 서로 다른 현상을 하나의 전자기 법칙으로 묶는 맥스웰 방정식의 탄생에 기여했다. 20세기 초반은 물리학에 있어서 혁명과 같은 시기였다. 오랫동안 통용되어왔던 뉴턴의 법칙들이 모든 경우에서 맞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1900년대 초반, 플랑크,아인슈타인, 보어와 다른 연구자들은 불연속적인 에너지 준위에 의해서 발생되는 몇 개의 이상한 실험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서 양자 이론을 제안했다. 작은 규모에서의 운동법칙에 적용되는 양자역학 뿐만 아니라, 1915년에는 아인슈타인에 의해서는 뉴턴의 고전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이 가정하고 있던 시공의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일반상대성이론이 발견되었다. 1925년에,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는 이전의 양자 가설을 설명하는 양자 역학을 수식으로 만들었다. 1929년에 에드윈 허블에 의해 관측된 은하의 후퇴속도와 그것의 거리가 관계있다는 관측은 우주가 확장되고 있다고 이해하도록 만들었고 그것은 가모프에 의해 제안된 빅뱅이론을 낳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더 많은 발전이 있었으며 그들은 레이더의 실전적 적용과 발전 그리고 원자폭탄의 이용을 낳았다. 1930년대, 로렌스에 의한 입자가속기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었으나, 전후의 물리학은 역사학자들이 '거대과학'이라 부르는 거대한 기계, 예산, 실험실이 그들의 이론을 증명하는 데 필요한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물리학의 주된 후원자는 기초학문에 대한 연구가 산업과 국방 응용에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은 정부가 되었다. 현재,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서로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둘을 통합하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중이다.

      물리학은 근대과학과 현대과학으로 나뉘지 않는것 같네요.

    • 비번을 잘못 넣었는지 덧글이 수정이 안되어 여기 적습니다. 과학사와 인간의 역사는 다른 영역이며 다른 논리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중세, 근대, 혹은 모던, 포스트모던 이렇게 분류된다고 해서 물리학이나 음악이나 건축이나 문학도 다 똑같이 적용되는건 아니죠. 과학은 엄격한 겁니다.

    • "그리고, 월러스틴이나, 블로흐, 브로델이 대가면 대가였지 그런 거 "아무나 못한단 식이면(제가 알기론 자신들의 입론이 널리 공유되길 바랐음 바랐지, 그런 애긴 들은 적도 없거니와), 님도 헤겔에 대해 함부로 떠들면 안 되겠네요.. 헌데 헤겔이 말한 인류야말로 어떻네 저떻네 해가며, 누구보다 헤겔철학의 진정한 보편성에 대해 떠든 게 누구였더라? 그거 아무나 못하는 소리 같더만. 기억하시죠? 쯧쯧. 월러스틴은 자신의 논의를 "론"이라고 하지 말아달라고 그러죠. 론이 아니라 "분석" 내지 "시각"으로, 부르주아적인 이론들관 다른 이론화를 요청하는 쪽에 더 가깝단 취지로 말이져. 그 말을 반기고 나름대로 그렇게 해보자는 게, 님의 인허가가 필요한 일은 아니잖아요? 근데 꼭 그래야 하는 투인 것이 영 거슬리네요. 하여간, 님은 확실히 좀 짱인 듯해여.ㅎㅎ""

      제가 묻고싶은건 월러스틴같은 대가에게서 분석틀과 사회를 보는 시각을 배우신 분이 왜 이모양이냐는거죠.

    • 하아, 짜증난다 진짜.; 나르시스의 꿈, 계속 꾸세요 그럼.ㅎ

    • 줄행랑만이 자기애를 보존하는 길.

    • "먼저번엔 북조선이 전근대적, 왕조국가라고 했다가, 이번엔 반주변부 국가인데 근대국가의 권력양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통찰을 준다니 뭡니까."

      내가 아니라고 거듭 주장만 한 게 아니라 논증을 했건만, 그래도 이해가 안 되요? "소위"라고까지 해가며 따옴표를 왜 쳤는지 얘기하면서 밝혔자나요? 전근대적인 거라고 보려는 양상들이 실은 매우 근대적인 현상임을 말하려는 거였다고.. 나참.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 내가 북조선을 전근대적이라고 하잖았냐고 대꾸하는 거면, 아무리 봐도 이런 난맥은 내 사정이 아니라 그쪽 사정 탓인 게 확실한 거죠?ㅋ 근까 제 얘긴, 이 따위 독해력으로 무슨 논쟁을 하고, 자기애를 하라 마라 하냐는 거예요. 원,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ㅋㅋ

      전 이 따위 난독증을 버젓이 자랑하면서도 공부 운운하는 님하고 함께 공부할 생각이 없어요, 아시겠어요? 논거도 어디서 긁어오가지구선 왜 논거인진 알아서 파악하란 식이잖나..;; 어처구니 분실신고 해야겠네요.ㅎ

  11. "내가 아니라고 거듭 주장만 한 게 아니라 논증을 했건만, 그래도 이해가 안 되요? "소위"라고까지 해가며 따옴표를 왜 쳤는지 얘기하면서 밝혔자나요? 전근대적인 거라고 보려는 양상들이 실은 매우 근대적인 현상임을 말하려는 거였다고.."

    전근대적인 거라고 보려는 양상들이 실은 매우 근대적인 현상임을 말하려는 거였다고...

    누가 좀 해석 좀..

  12. 나는 무식해서 주장만 보이고 논증은 안보이니 찾아서 가르쳐주시던가 다른 분이 찾아서 가르쳐주시던가.

  13. "전 이 따위 난독증을 버젓이 자랑하면서도 공부 운운하는 님하고 함께 공부할 생각이 없어요, 아시겠어요? 논거도 어디서 긁어오가지구선 왜 논거인진 알아서 파악하란 식이잖나..;; 어처구니 분실신고 해야겠네요.ㅎ"

    내가 긁어온건 논거가 아니라 당신의 주장을 반박하는 자료라고 하는 거에요.

    • 아, 그렇구나. 특정 주장을 부당하다고 하는 데 인용된 반박 자료는 논거라고 하면 안 되는 거였구나. 엄격함이 뭔지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네요. 근데 긁어온 게 엄밀히 말해 "자료"이긴 한건가요? 넘 자의적이다..ㅋ 정작 엄격해야 할 데선 헐렁하고, 헐렁해도 무방할 데선 쓸데없이 엄격하려 들고.

    • 자료 = 소재 = material

      주장이 부당하다는게 아니라 틀리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가져온 자료

    • "과학사와 인간의 역사는 다른 영역이며 다른 논리입니다."

      흠, 무척 고색창연한 입장이시군요. 뭐 이런 "엄격함"의 잣대에 따르자면, <자연과학을 모르는 역사가는 왜 근대를 말할 수 없는가> 같은 책은 가당치도 않은 책이겠군여. 제 까마리로는 꽤 중요하고 눈여겨볼할 만한 내용이더마는.

      제가 이러거나 말거나, 님도 누가 뭐라든 님의 길을 가세요 그럼. 설령 절더러 자기애에 빠져있다고 주장하는 님의 입장이야말로 자기애적 집착이든 아니든 간에. 그런 시행착오 속에서 돌파구가 생기겠져 뭐.

    • 자료가 영어로 머티어리얼인 걸 굳이 알아야 하나요?ㅋ 그게 적절한 대꾸인지도 정말 모르겠지만, "반증"의 재미가 아무리 쏠쏠하다 한들 무턱대고 즐기다간 늪으로 바뀌는 거 순식간일 텐데요.ㅎ

    • 자기애라고 주장하시든, 집착이라고 주장하시든, 그거야 님의 자유지만 엄연히 이론도 입장이 있고 모든 입장이 다 옳은건 아니죠. 님은 주로 어느 분에게 배우셨는지 모르지만 절 가르쳐주신 분은 저렇게 가르쳐주셨습니다.

    • "근데 긁어온 게 엄밀히 말해 "자료"이긴 한건가요? 넘 자의적이다.."

      자의적이라고 하시길래, 자료를 영어로 어떻게 정의하는지 찾아봤습니다.

    • 자의적이지 않은 자료의 정의

      자료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자료(資料, data, 데이터, 문화어: 데타)는 수, 영상, 단어 등의 형태로 된 의미 단위이다. 보통 연구나 조사 등의 바탕이 되는 재료를 말하며, 자료를 의미있게 정리하면 정보가 된다.
      목차 [숨기기]
      1 구분
      1.1 질적 자료
      1.2 양적 자료
      2 같이 보기
      구분 [편집]

      자료는 질적 자료와 양적 자료로 구분된다.
      질적 자료 [편집]
      질적 자료(qualitative data, 정성적 자료)는 수치로 측정이 불가능한 자료이다. 분류 자료(categorical data, 범주형 자료)라고도 한다.
      예: 전화번호, 등번호, 성별, 혈액형, 계급, 순위, 등급, 종교 분류 등.
      양적 자료 [편집]
      양적 자료(quanitive data, 정량적 자료)는 수치로 측정이 가능한 자료이다.
      예: 온도, 지능지수, 절대온도, 가격, 주가지수, 실업률, 매출액, 기업내 과장의 수 등.

    • 내 생각을 말하면 자의적이라고 하고, 자료를 긁어오거나 책을 인용하면 저게 논증, 논거, 반박이냐고 하고. 어쩌란 말인가요.

    • 명사
      1.[U , C] 직물, 천
      a piece of material
      직물 한 조각
      ‘What material is this dress made of?' ‘Cotton.'
      “이 원피스는 재료가 무슨 천인가요?” “면이에요.”
      2.[C , U] (물건의) 재료 raw material
      building materials
      건축 자재
      3.[C , U] [주로 복수로] (특정 활동에 필요한) 자료
      teaching materials
      교수 자료
      The company produces its own training material.
      본 회사에서는 자체 교육 자료를 만든다.
      The teacher saw her as good university material
      그 선생님은 그녀를 훌륭한 대학생감으로 보았다.
      4.[U] (책 등의) 소재
      She's collecting material for her latest novel.
      그녀는 최신 소설에 쓸 소재를 수집하고 있다.
      5.[U] (공연) 내용
      The band played all new material at the gig.
      그 밴드는 그 연주회에서 모두 새로운 내용을 연주했다.

    • 님과 대화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대화의 수준이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는군요. 무슨 필연의 법칙이 있나..

    • 가르쳐드리죠. material은 구어체에서 자료라는 뜻으로 쓰이고, data는 주로 정보, 과학에서 통계를 낼때 쓰이는데 님이 자료의 정의를 원하셔서 위키에서 찾아봤어요. 제가 사용한건 사전적 의미고, 님에게는 자료의 과학적 정의를 보여주는게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는데 데이터가 머티리얼 아니라고 또 놀리니까 사전적 의미도 갖고 온거에요.

    • 어라, 자료가 머티어리얼이 아니라 데이타네요? 엄밀하게 말해, 이건 뭔가요?ㅋㅋ

      제가 보건대 결국 요점은, 님이 펼치는 언술의 타당성 여부가 님의 생각이냐 인용문헌이냐에 있지 않다는 거겠죠. 님 스스로 잘못 던진 질문에 스스로 놀아나는 셈이랄까. 그럼 요점이 뭘지는 님 스스로 되새김해 보셔야죠. 그렇게 님이 수습해야 할 상황을 가지고 날더러 어쩌라는 거냐시면,, 제 답은 이거예요.

      절더러 어쩌란 건지.ㅎ

    • 댓글 순서가 뒤바꼈네요. 제가 님더러 뭐 어쩌라고 했어요. 요점이 뭔지는 제가 어떻게 알아요. 이게 뭐냐, 모르겠다, 아닌거 같다, 계속 이 소리 해서 이렇게 된건데 내가 어떻게 알아요. 지나온 대화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이렇게 어수선하게 만든 장본인이 누군데 저한테 요점이 뭐냐고 물어보세요.

    • 거참, 순수하신 건지 둔탁하신 건지. 그런 반문을 왜 던졌는지는 행간에 있는데.

      와, 저하고 그쪽하고 모처럼 의견이 일치했네요!! 님이랑 저랑 말 섞으면 자꾸 수준이 저열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거.ㅎㅎ 그러니 그만 하죠. 저는 사라진 어처구니를 찾으러 갈 테니. 그럼 가보세요. 수준상향화되는 분들하고 퍽이나 말 잘 잘 섞으시고. ㅎ

    • "전 이 따위 난독증을 버젓이 자랑하면서도 공부 운운하는 님하고 함께 공부할 생각이 없어요, 아시겠어요? 논거도 어디서 긁어오가지구선 왜 논거인진 알아서 파악하란 식이잖나..;; 어처구니 분실신고 해야겠네요.ㅎ"

      "근데 긁어온 게 엄밀히 말해 "자료"이긴 한건가요? 넘 자의적이다.."

      "자료가 영어로 머티어리얼인 걸 굳이 알아야 하나요?ㅋ"

      "어라, 자료가 머티어리얼이 아니라 데이타네요? 엄밀하게 말해, 이건 뭔가요?ㅋㅋ"

      이런 식으로 대화하니까 대화가 이렇게 흐르죠. 자의적이다, 근거를 대라, 머티리얼이 아니라 데이터다, 머티리얼이란 뜻도 있는데.

    • 행인님이랑 대화하세요.

    • 어유, 이거뭐 또 이렇게 쓸데없이 대화상대까지 적시해주시네. 참 가슴 짠한 오지랖임다그려.ㅎ 제가 누구랑 대화하든, 그쪽 코가 열 자일 텐데.

    • "그럼 가보세요. 수준상향화되는 분들하고 퍽이나 말 잘 잘 섞으시고. ㅎ"

      누가 할 소리

    • 치치-붙박이별: "...반박이냐고 하고. 어쩌란 말인가요."

      들사람: "그렇게 님이 수습해야 할 상황을 가지고 날더러 어쩌라는 거냐시면,, 제 답은 이거예요. 절더러 어쩌란 건지.ㅎ"

      치치-붙박이별: "제가 님더러 뭐 어쩌라 했어요... 지나온 대화 다시 읽어보세요. 이렇게 어수선하게 만든 장본인이 누군데.."


      그래서 다시 읽어봤다. "어쩌란 말인가요." 하길래 ".. 날더러 어쩌라는 거시면.."이라고, 즉 "어쩌란 말인가요"에 대한 간접인용을 했다(딴 사람도 아니고 자기 얘기니, 문맥상 그리 보는 게 맞다). 하여 본인이 어째야 할 걸 나한테 떠넘기는 폼새라 "절더러 어쩌란 건지."라고 반문하니, 자기가 나한테 뭐 어쩌라고 했었냐며 되려 적반하장이다. 이 치치란 언니의 독해력을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이유다.

      사실 이 대목만이 아니라 줄곧 이 모양이었더랬다. 내가 북조선을 전근대적 왕조국가라고 규정하지 않았냐고 몰아가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 북조선 같은 주변부 국가들한테서 두드러지는 부정적인 특수성/억압성들이 곧잘 전근대적이니 봉건적이라고 치부되지만 그런 게 다 실은 엄연히 "근대적인 현상"으로,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특유한 지정학적 국제관계의 함수로 파악해야 한단 내 논지를 낯설어할 순 있다. 허나 그렇다고 내가 북조선을 전근대적 왕조국가라고 했잖냐고 해도 되는 건가? 이건 논쟁을 벌이기 이전에 기본 논지 파악과 독해력 문제 아니냔 말이다.

      이처럼 뭘 말해도 그 말을 제대로 접수했는지 신뢰할 수가 없는데, 이런 식으로 말 계속 섞어봐야 피차가 개고생인 거고. 근데 한 술 더 떠, 나하고 말 섞을수록 얘기가 어수선하다고 되려 힐난질이다. 대체, 뭔가 이건. 정말 말이면 다인 줄 아나. 최대한 점잖게 대꾸를 할라고 참을 인자를 맘에 새기고 또 새겨도 이건 뭐, 원별.;;

      말 난 김에 덧붙이자면 루저 얘길 긁어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디씨갤러들의 열폭/집단가해를 소위 루저녀가 유발한 면도 분명 있음을 환기한 걸 갖고서, 내가 그들과 같은 루저로서 화를 냈던 증거랍시고 이 얘길 끌어오는 참으로 방만하고 어수선한 독해력 발휘해주신다. 이러구선 줄창 니 죄를 니가 알렸다 하고만 있으니, 그게 대체 뭔 소리냔 수준 이상은 기대하기 힘들 수밖에. 이런 게 내 탓인가? 과연?

      정말 궁금하다. 노파심에서 말하는데, 궁금증, 호기심, 의구심을 죽이란 게 아니다. 그건 키울수록 좋은 거겠지. 다만, 이 따위로 상대방 논지가 잘 읽히지 않거나 멋대로 기억할 거면, 말은 왜 섞냐는 거다. "듣기"부터가 안 되는 마당에, (솔직히 별 조리도 없고 논지가 산만한) 말하기/쓰기 욕심 앞세워 뭐 어쩌자는 건데? 적어도 잘 읽힐 때까진 글을 쓰지 말아야는 거 아닌가? 이러면 또 내가 자기더러 글 쓰지 말랬다고 떠들어댈까봐 걱정스럽다. 거듭 말하건대, 난 남의 글이 잘 읽힐 때까지라고 했다.ㅋ

      이렇듯 자기가 감당할 몫에 대해선 이상무인 줄 착각하는 나르시시스트가 돼선, 대화 수준이 저열해지네 뭐네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쯤 되면, 똥뀐 언니가 되려 괴로워하는 쪽에다 니 후각은 왜 그 모양이냐고 승질인 거 아닌가.



      치치/붙박이별씨, 그러니까, 뭔 토픽이 됐든 앞으론 웬만하면 안 엮였음 좋겠어요. 이게 "조건부"란 건 밝혔으니 또 엉뚱한 반응 없길 바라고. 님도 무슨 큐티하니 마냥 닉넴 수시로 변신시켜 가는 통에 제가 원찮게 님한테 낚이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신경 좀 써주삼. 그래야 피차 피곤해질 거 없을 테니. 닉넴이야 님맘대로 자유분방하게 쓰시더라도, 본인이 치치인 건 미리 밝히시란 거져. 그래야 제가 일절 대꾸 안 하고 패쓰할 테니까요.ㅋ

  14. 헬레니즘 시기의 철학 학파들의 형성과정과 그 사상

    일반적으로 어떤 사안에 관하여 그것들이 파악될 수 있다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모두 '독단론자'이고, 그것들에 관해서 파악될 수 없는 것으로서 판단을 유보하는 사람들은 모두 '회의론자'라고 불렸다.

    아리스토텍레스는 학생들에게 끝없이 과제를 부여해서 연구하게 하고, 그것을 발표하게 한 다음, 비판하도록 시키기도 했다.

    기원전 3세기 중반에서 1세기 중반에 걸쳐 활동했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교설들을 요약된 형태로 받아들이는데 관심을 가졌다.

    기원전 1세기경의 회의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독단론자'들과 '진리는 발견될 수 없다'는 후기-아카데미아 학파와 구별하기 위하여 '회의주의자'라는 말을 선택했다. 그들은 판단중지를 하면서도 같은 논제에 대해서 '찬'과 '반'으로 논증하는 방법을 아카데미아 학파로부터 배웠다. 한편 그들은 아카데미아 학파와 자신들의 차이를 제시하려고 무진 애를 썼던 것으로 보인다. 회의주의자들도 '평정심'을 철학의 목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와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철학적 논변

    1) 참으로 받아들여지는 A의 주장은 B와 상충한다.
    2) A와 B 중에 결정할 어떤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
    3) 그러나 A를 취하는 논변이나, B를 취하는 논변이 마찬가지로 강할 수도 있고 또 약할 수도 있다.
    4) 그러므로 A와 B에 관해서 '판단 중지'해야만 한다.
    5) 결과적으로 A가 참인지, 아니면 B가 참인지에 대해서 골치 않을 필요가 없다.

    바로 5)라는 결과 때문에 '평정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기저기에서 많은 역설적 논변 내지는 논리적 오류들을 가지는 논변을 구해 모았다. 그들은 전략적으로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상대적 관점, 문화 상대성, 관찰자의 상태, 관찰의 조건 등을 이용하는 방법을 선호했다.

    스토아철학자였던 에픽테토스는 어떤 것에도 흔들림 없이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상대방의 판단을 내놓게 함으로써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비판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남겨준다.

    들사람은 내가 사실 이 대목만이 아니라 줄곧 이 모양이었더랬다고 주장한다. 내가 북조선을 전근대적 왕조국가라고 규정하지 않았냐고 몰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 적 없는데. 북조선 같은 주변부 국가들한테서 두드러지는 부정적인 특수성/억압성들이 곧잘 전근대적이니 봉건적이라고 치부되지만 그런 게 다 실은 엄연히 "근대적인 현상"으로,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특유한 지정학적 국제관계의 함수로 파악해야 한단 자신의 논지를 내가 낯설어할 순 있다고 주장한다. 허나 그렇다고 자신이 북조선을 전근대적 왕조국가라고 했잖냐고 해도 되는 거냐고 따진다. 이건 논쟁을 벌이기 이전에 기본 논지 파악과 독해력 문제라는 것이다. 결국은 이 논쟁이 파탄에 이른 것은 내 문제라는 것이다.

    들사람은 어떤 카테고리에 속하는 사람일까.

    • 결국 회의주의까지 등장하네... 들사람님이 어떤 카테고리에 속해있느냐보다는 붙박이 별님이 어떤 카테고리에 속해있는지가 중요한데,

      그 험난한 회의주의(아에네시데모스-아그리파)의 논변형식들조차 논변형식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선험적인 조건들은 지키고 있다. 예컨대

      1) 참으로 받아들여지는 A의 주장은 B와 상충한다.

      라는 논변형식은

      1) (나는) 참으로 받아들여지는 A의 주장은 B와 상충한다(고 주장한다).

      를 의미한다.

      또한

      4) 그러므로 A와 B에 관해서 '판단중지'해야만 한다.

      라는 논변형식은

      4) 그러므로 (나는) A와 B에 관해서는 '판단중지'해야만 한다(는 판단을 내린다).

      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6) 세상에 진리는 없다.

      라고 주장하는 '완전한 회의주의'는 사실

      6) (나는) 세상에 진리는 없다(는 진리를 주장한다).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모순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붙박이별 님은 바로 선험적인 화용론을 무시하는 완전한 회의주의자다.

    • 붙박이 별님은 나에게 응답하고 싶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하길 바란다. 내가 실제로 이 글을 썼다는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할 수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붙박이 별님의 시신경이 교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지 않은가? 반드시 망설여서 평정심을 유지하길 바란다.

      '헬레니즘님이 나에게 글을 썼다.'라는 A와 '나의 시신경이 교란을 일으키고 있다.'라는 B를 동등한 정도로 비교해주길 바란다.

    • 헬레님즘님은 무엇때문에 나타나셨는데요. 무엇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시는데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싶어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이나 알아보세요.

    • 지금 나에게 대답한 '붙박이 별'과 내가 처음에 말을 건 '붙박이 별'은 동일인인가? 지금 나에게 대답한 '붙박이 별'은 '헬레님즘'에게 말을 거는데 이것이 나(헬레니즘)를 뜻하는 오타인가 아니면 제3의 자인가? 알 수 없다! 나는 '판단중지'를 하겠다! 나는 지금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붙박이 별'에게 대답할 수 없다!

      이로써 나는 나의 마음을 알아보는 긴 여정에 들어가 평정심을 얻게 될 것이다.

    • 여기 폴리스 가면 이 말이 옳은 것 같고, 저기 폴리스 가면 저 말이 옳은 것 같고 이것도 맞는 말같고 저것도 맞는 말같고 폴리스마다 법이나 도덕이나 문화도 다 다르고 진리는 하나가 아니고 여러개인것 같고 중얼중얼..

    • 아! 플라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어떻게 가르쳤는지 빼먹었네요. 동물이나 식물의 다양한 종들을 구별하고 정의하는걸 가르치고, 칠판이나 해부학적 차트, 도표 등의 도구들을 사용하여 강의했어요.

      에픽테토스는 자신의 철학을 뭐라고 정의하냐면,

      철학에서 제일의 그리고 가장 필요한 주제는 철학적 원리들을 적용하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한다. 두번째는 논증들에 대한 것이다. 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하는가. 세번째는 이것이 왜 논증인가를 확증하고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다. 논증이 무엇인가, 논리적 결론이 무엇인가, 모순이 무엇인가, 참이란 무엇인가, 거짓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 아마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20년을 플라톤 밑에서 배운 끝에 개별자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보편자는 홀로 고독하게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개별자 안에 잠재력으로 존재하고, 실천적인 인간이 된 것 같네요.

  15. 이 블로그는 행인님의 블로그이고, 들사람은 행인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다. 대화란 논쟁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어느 정도 입장이 같은 사람들끼리, 혹은 어느 정도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우정에 기반해서 의견을 교환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면 행인님은 북한에 대해 어떤 식으로 말했을까.

    배교를 원하는걸까

    새로운 조선의 별로 떠오른 '대장'님

    3대 세습 정권이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내걸고 있는 민망함에 대해선 더 할 이야기가 없고

    종교에 심취한 교인에게 네가 신봉하는 교주를 비판하라고 하면 그건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된다.

    당연하다. 교주가 3대 세습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당이 깨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

    외부의 비판은 신이 주신 환난으로 전화되고 조만간 순교자가 된다.

    그 자질이라는 것은 성령의 강림으로 판단되는 것이지 인간의 인지능력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을 믿지 않는 인간들이 이에 대해 옳다 그르다 토론할 수는 아예 없는 거다.

    그러나 자기 종교에 대해, 더 정확히는 종교지도자들의 파행에 대해 뭐라고 하면 이들은 단번에 이런 식으로 우물에 독약을 쳐버린다. 종교기 때문에 가능하다.

    Tag // 3대세습, 경향신문, 국가보안법, 김창현, 내정간섭, 대장님, 민주노동당, 박경순, 배교, 북한, 세습, 수령님, 순교, 오리엔탈리즘, 이대근, 이정희, 장군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종교, 천국
    by 행인

    여기서 행인님이 말하는 종교란 인간의 나약함, 사악함, 숭고함 등을 인식하는 기능을 하는 종교가 아니라 이성이 마비되어 비판기능을 상실한 종교를 의미한다. 북한의 봉건적 부정성을 가리키는 말.

    여기에 대해 들사람은 어떻게 반박했을까.

  16. "늘 그렇듯, 쓰기의 진지함과 읽기의 즐거움 어느 하나 놓치질 않으시네요.ㅋㅋ"

    진지하면서도 읽는 즐거움도 선사하는 글이라고 칭찬.

    "범민족해방파 중에서도 반동적인 무한일성교파에 대해선 계속 제발등 찍게 해 실천적 맹목과 밑바닥을 알아서 드러내게 하는 한편, 통일의제의 알맹이(=20세기 근대 한반도/동아시아 정치경제의 지정학적 모순 타파)를 아쉬운 대로 붙잡고 있는 비주류 정파들에 대해선 좌파적 시각의 동아시아 대안 평화체제 구상과 연계해 내적인 갱신을 유도하는 중장기적 분열책동이 본격화해야잖겠나 해요.ㅎ "

    행인님이 광신도들이라고 말한 주사파들이 계속 제발등 찍게 해서 밑바닥을 드러내게 하고, 한편으로는 비주류정파들의 내적인 갱신을 유도하는 분열책동을 본격화해야한다고 주장.

    "통일의제의 합리적 핵심(내지 맥락적 유효성)에 대한 좌파적 재전유 작업이랄까, 이런 것 역시 그저 통일관련 의제는 한국산 노동자 계급운동의 정치적 "장애물"쯤으로만 여기고 마는 데 그쳤던 것 같아서요. 일테면 한국에 자리잡은 탈북 이주민(특히 여성)들의 경제, 문화적 궁핍화가 만만찮다던데, 좌파적인 노동자운동 계통이라면 이같은 정황을 동아시아 냉전 자본주의하에서 구조화, 만성화된 국가폭력의 일환으로 파악하면서, 이와 단절하는 동아시아 규모의 대안적 사회체제 구상을 모색, 의제화할 수 있겠다 싶거든요. 뭐, 그간 쪼개져 있던 계급분석과 지정학적 분석을 새로이 접붙여얀단 얘길 수도 있겠고.. 이리 되면 사실 고 김대중씨 계통의 자유시장주의적인 통일 내지 체제 내화 구상과 정치적으로 얼마든지 다른 실천의 각이 세워질 수도 있는 걸 텐데 말이져.. 범엔엘파는 지금 이 대목에서 사실상 맛이 간 상태랄 수 있겠지만, 좌파 역시 이 대목에서 개입해 들어갈 무기와 레파토리가 (그 잠재력에 비해) 크게 부실한 게 사실 아닌가 해요."

    김대중계열의 통일은 자유시장적이고, 엔엘은 맛이 갔고, 좌파 역시 부실하다고 논평

    "범민족해방파가 이런 정치적 잠재력을 못살리거나 심지어 썩히고 있을 뿐 아니라 살릴 만한 의지조차 있는지 회의적인 상황이라면, 그나마 소위 좌파 진영에선 그 기본 각에 비추어 이런 잠재력을 살찌우고 구체화해갈 역량이 상대적으로 무척 크잖겠나,, 뭐 그렇게 믿어 보려는 쪽인데요 저는.ㅋ;; "

    엔엘은 잠재력을 못살리거나 썩히고 있거나 의지가 있는지 회의적, 그에 비해 좌파들은 역량이 있다고 판단.

    "위대하신 수령체제의 보위 논리 아래 끼니 걱정으로 퉁겨져나온 탈북 이주민들이나, 위대하신 삼성이씨 문중이 이끄는 고용 없는 성장 체제의 보위 논리 아래 자꾸 쫄아드는 밥상 걱정으로 속 터지는 남한 주민들이나 배제된 자들이긴 매일반으로 접근할 시각이 필요하겠다는 거죠. 경향신문 네컷만화 장도리를 연재하는 권순찬 선생 보면 이런 통찰을 아주 날카롭게 보여주고 계시던데요..ㅋ "

    북한의 주석을 행인님은 교주라고 부르고 들사람은 위대하신 수령이라 부른다.

    이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행인님은 또 뭐라 했는지 알아봐야 들사람이 또 뭐라했는지 알 수 있다.

    "통일뿐만이 아니라 사회 제 문제에 대한 각종 의제들의 핵심에 대해 "좌파적 재전유"라는 것은 과거의 숙제이기도 하려니와 앞으로의 주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십분 동의합니다. 특히 "동아시아 규모의 대안적 사회체제 구상"이라는 부분은 장단기 의제화가 반드시 필요하고, 특히나 이 대목에서 문제되는 "배제된 자"들, 또는 다른 말로 프롤레타리아들의 미래에 대해 좌파적 의제설정이 매우 시급한 실정이죠. 최근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도 이런 주제구요."

    맥락에 비추어볼때 "좌파적 재전유"란 교주를 신봉하는 신도들에겐 불가능하고 그 역할은 좌파들에게 있음. 남북한 공히 배제된 자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트들인데 그들의 미래에 대해 좌파적 의제설정이 필요함.

    그렇다면 남한이라는 부르주아 국가, 북조선이라는 주체사회주의 공화국에 통합된 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지배의 주체인가.

    "솔직히 북한의 3대 세습이라는 것은, 그것 자체에 대한 비판이 단지 주체교도들에 대한 메아리없는 성토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요원해보입니다. 동의하는 것처럼, 그 비판 끝에 적절한 대안적 의제의 설정, 예컨대 "통일에서 탈분단으로"라는 테제처럼 어딘가에서 발현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섣불리 입에 담기 어려운 이상한 그 언술에서와 같이, 심중에 뿌옇게나마 그 방향이라는 것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얽히고 설킨 현상들의 난맥을 뚫고 바로 이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무엇을 대놓고 드러내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대안적 의제의 설정, 예컨데 통일에서 탈분단으로라는 테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탈분단은 무엇을 의미하느가. 어딘가에서 발현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어딘가에서. 섣불리 입에 담기 어려운 이상한 그 언술. 심중에 뿌옇게나마 그 방향이라는 것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얽히고 설킨 현상의 난맥을 뚫고 바로 이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무엇을 대놓고 드러내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게 뭐지.. 신비화작업인가

    "돌아보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응하는 세계화 혹은 세계주의라는 것은 그것이 더 큰 자유와 평등을 위한 대안임에도 불구하고 국경 안쪽에서 자유와 평등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에 의해 배척되고 경계되고 있죠. 이들이 오히려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지만, 이들에 대하여 좌파적 의제라는 것은 아직 제 자리를 명확히 설정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구요."

    행인님이 할 수 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자신의 무능력을 실토하는 것

  17. 여기에 대고 들사람은 또 뭐라했는가.

    "흠.. 그럴라나요.^^;; 소위 범엔엘계에서 내적 쇄신의 반향이 생기길 바랬던 거야 "기왕이면"이었던 거지, 요원하다면 별 수 없죠 뭐.ㅎ "

    엔엘의 내적 쇄신이야 기왕에 바랬던거였지 요원하다면 뭐 할 수 없는거고 ^0^

    "지금 남한 통일운동 진영이 에두를 수 없는 질문은, '익숙한 처방'들론 아랫돌로 윗돌 괴는 식의 지리멸렬함밖엔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체제적 공포"가 더더욱 완연해질 거라는 작금의 세계경제 상황과 이와 맞물려 꽤나 피곤하게 펼쳐질 지정학적 알력의 이중주 속에서 "우리민족끼리"라는 기존 각으로 비빌 구석이 얼마나 되겠냔 거니까요. "

    김대중계열과 엔엘을 포괄한 남한 통일운동진영이 하는 방식은 아랫돌로 윗돌 괴는 지리멸렬한 익숙한 처방밖에는 기대할 수 없다. 우리민족끼리라는 기존 각으로 비빌 구석이 얼마나 되겠냐. 좌파적 대안의제가 필요하다.

    "제가 보기엔 아마, 설사 있다고 해봐야 북한에 대해 체제옹호적 정당화밖엔 못하는 '원격화된 시민사회'로서 자리잡는 게 고작 아니겠나..; 향후 새로이 생성될 반체제운동(들?)의 개별 주체한테 갈급하고 또 중요한 건 분명 그런 따위 비전이 아닐 테니까요. 행인님의 능력이 얼마나 저질인지 드러나는 계기인 건 더더욱 아니잖겠습니까..ㅋ 이게 뭐 혼자서 발버둥친다고 나아질 일이여야져. 그 발버둥조차 달랑 혼자선 어림 없는 일이거니와.."

    그들의 통일방식이야 결국 북한의 체제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작업이고, '원격화된 시민사회'로 자리잡는것. 이게 뭐지. 이들을 배제한 반체체운동이 향후 새롭게 생성될 것이라고 주장. 행인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함. 다독다독..

    "여하간 (김정은의 부상이 아버지의 경우와 같다기보단, 김경희 등이 부각되는 걸로 보건대 일종의 집단지도체제 같아 보이기도 하단 점에서) "포스트-김정일 체제"를 둘러싼 가치판단이 감정적 드잡이에 그치지 않으려면, 북조선 체제에 '특히나 완연'하다는 저 "몰골"의 전후맥락을 친-반북을 막론한 자의적 접근으로 조각내지 않고서 오롯이 이해하게 해줄, 정세적으로 타당하면서도 시공간적으론 장기-동아시아사적인 시각을 가진 역사-사회과학적 이론화 작업이 어여 이뤄져야 할 텐데요. "

    정세적으로 타당하면서도, 이때 정세란 국제관계를 가리킴, 장기-동아시아사적인 시각을 가진 역사-사회과학적 이론화 작업이 어여 이루어져야 함. 넌 뭐하냐. 그래서 네 시각이 틀렸다고 하면 네 입장만 고수하고.

    "행인님께서 말씀하신 바, "심중에 뿌옇게나마 그 방향이라는 것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얽히고 설킨 현상들의 난맥을 뚫고 바로 이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무엇을 대놓고 드러내기가 어려운 부분"은 아마도 이런 작업들 속에서 토론, 논쟁을 거쳐야 웬만큼 또렷해지잖겠나 싶네요. "

    그래서 나도 좀 도와주려고 왔다.

    ""새로운 짜임새를 갖춘" 반체제운동 주체들의 생성, 조직화도 분명 이 과정 속에서 탄력을 받게 될 듯싶구여."

    새로운 짜임새란 어떤 것인가. 생성, 조직화의 주체는 누구이며 대상은 누구인가. 무엇을 매개로 생성하고 조직화할 것인가.


  18. "당면한 투쟁 현안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에 필요한 "상호교육"의 틀과 판을 다시 짜는 일 또한 향후 본격화하고 전선을 확장해야 할 (계급)투쟁의 중요한 일부 같어요 그래서 저는.ㅎ 저처럼 목마른 쪽에서 어떤 식으로든 직접 우물을 파보든가, 아니면 이런 틀거리 구상과 관련해 싹수 좀 있어 뵈는 "학인 내지 연구자"들을 붙잡고서 요구를 하든가 말이죠. 기왕이면 둘 중 하나가 아니라, 양자가 "환상의 짝궁"을 이루면서 성과를 내는 게 젤 좋긴 하겠지만서도..ㅎ"

    상호교육이란 누구와 누구 사이의 상호교육이지.

    "그리 되면 적어도 북조선에 곧잘 들러붙는 몬도가네풍의 소위 "전근대적"이고 "왕조국가"적인 특이성들이란, 20세기 동아시아 반공 자본주의의 식민주의적 지정학 속에서 줄곧 지속-변주돼온 "근대적 야만과 폭력"에 대한 화학적 반응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잖을나라요. "

    북조선의 전근대적이고 왕조국가적인 특이성은 20세기 동아시아 반공 자본주의의 식민주의적 지정학 속에서 줄곧 지속-변주돼온 근대적 야만과 폭력에 대한 화학적 반응이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론, 북조선 국가의 "주권적 이성"에 따르자면야, 핵(무기)개발을 포함해 이같은 화학반응은 어디까지나 근대자본주의 지정학의 식민주의적 폭력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의 산물일 테지만요. "

    행인님의 종교적 광신에 맞서, 들사람은 북조선 국가의 주권적 이성을 말한다. 그 이성은 핵무기 개발을 포함한 화학적 반응을 보이는데 이것은 근대 자본주의 지정학의 식민주의적 폭력에 대한 합리적 대응의 산물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냉전체제 붕괴 이전부터인가, 아니면 이후인가. 남한에 대한 대외원조가 끊어지고 북한에 대한 지원이 끊어진 것은 언제부터인가.

    "20세기 근대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지정학에 대한 이런 "비판적 이해"가 일단 전제돼야, 동아시아 지역 주민 대다수에게 극도로 폭력적이었거나 방어적인 "주권보위" 논리에 갇힐 수밖에 없었던 통치합리성에 맞서, 그와는 삶의 방식이나 사회조직 원리상 정치적으로 판이한 합리성의 논리와 실천의 각은 어떤 것이며, 이에 기초한 대안적인 동아시아 사회체제 구상은 어떤 집단적 주체들(혹은 인터내셔널한 문화감각ㅎ)의 형성-도래를 통해 현실화될 수 있을지에 관해 일단 그 실마리라도 잡히지 않겠냔 얘깁니다만."

    계속 20세기 근대 동아시아 자본주의 지정학을 말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대안적인 동아시아 사회체제 구상을 말하면서도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들사람에게는 무리고 역시 지식인이 이 작업을 해야만하는가. 아니면 월옹이 해줄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건가.

    "자유민주주의(적 제국주의) 요새 미국의 경제-군사적 제재로 임계치에 육박한 "조국보위" 압력 탓에 "인민민주주의"의 수혜는커녕 이미 퉁겨져 나왔거나 한껏 짓눌려 있는 대다수 북조선 (이/탈)주민들, 억지춘향으로 "충군애국"하다 몰살당한 걸로도 모자라 1945년 이후론 주일미군의 패악에 또다시 시달려야 했던 오키나와 주민들, "내성인"이란 이유로, 1945년 이전까진 "조센진", 이후엔 "자이니치"네 "전라도"네 "빨갱이"네 같은 이유로 경제적, 문화적 차별과 모멸을 견뎌야 했던 대만과 일본, 한국산 주민들, 1960년대 중반 미국의 개입과 지원으로 벌어진 자생적인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경험했고 지금은 일본, 한국 등지에서 이주노동자로도 살곤 하는 인도네시아 주민들까지.. 뭐 근까, 1945년 이후 미국식 반공 자본주의 체제로의 재편 속에서 근대자본주의 특유의 식민주의적 주변화 압박 내지 폭력에 '여전히' 시달렸던 동아시아 주민들의 근대화 경험들을 하나로 꿰고 이어 봄으로써, 20세기 동아시아 정치경제와 지정학의 역사적 궤적을 다시 써야 하겠달까요."

    아는걸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건 좋아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전쟁이 벌어져서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우리는 향후 무엇을 해야하며 이 시점에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는 차근차근 말하지 않는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살육을 멈추고 독립국가를 건설한다고 해도 그들은 앞으로 50년이 걸리든 100년이 걸리든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서로를 증오하고 있는데.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장갑차, 박격포 같은 말이다.


    네오풀// 혹시, "동북아시아 근대성 세미나"의 뒷심으로 나온 글인가요?ㅎ 어쨌거나 네오풀님 지인께서 쓰셨다는 글이, 뭐 읽어보구 나서 할 소린지 몰겠습니다만, 앞서 끄적여 놓은 "다시 쓰기" 작업을 고무하는 튼튼한 지렛대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을 따름입니다그려.

  19. 들사람은 이제 또 네오풀님이 소개한 박가분님의 글에 대해 논평을 한다.

    "겨울철쭉님은 소개하면서 "생각해볼만한 예리한" 분석이란 촌평을 하셨지만, 제가 봐도 그 촌평은 맞겠다 싶고요. 생각해볼 만하다기보단 생각을 자극하는 글이지 싶군요. 읽으면서 내심 놀랐어요. 무척 반가운 문제제기라 그런가, 읽는 동안 설레이는 맘까지 일었습니다. 엔엘은 물론이고 자타칭 피디라 불리는 이들의 실천적, 이론적 답보(내지 "퇴행")을 '한 쌍'으로 다루는 이런 문제제기는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아까는 김대중계열과 엔엘의 무능함을 뼈에 사무치게 토로하더니, 이제와서 엔엘은 물론이고 자타칭 피디라 불리는 이들도 한쌍으로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해야한다고 한다.

    "제가 보기에 2010년 현재, 좌파정치의 진전과 대중화를 보다 더 앞당기기 위해 던져야 할 질문은 크게 두 가지 같어요."

    " 1) 향후 상황/정세에 개입하는 데 정치적으로 적합한 계급주체 형성의 "장(내지 역사적 시공간)"을 어떻게 다시 설정해야 하며, 2) 이러한 좌파적 주체화에 불가결한 실천의 기본 각과 짜임새는 어떻게 새로워져야 할까."

    어떻게만 말하지 결코 구체적인 상은 머리에 없는것 같다.

    "박가분님은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주체사상의 바깥에서 규범적으로(다른 한편으론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만, 가학적으로ㅋ) 까고 마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내부"로부터 이끌어냈죠. 제게는 이런 내재적 비판이 일종의 반전처럼 아주 참신하고 돋보였던 것 같아요."

    그런 들사람에게 구원의 손길이 왔다. 바깥에서만 비판했는데 내재적 비판이 반전으로 느껴진 것이다. 하나도 안 반전인데. 내재적 비판은 송두율이 옛날부터 했잖아 임마. 그래서 얼마나 욕먹었냐.

    ""마치, 도무지 가망이라곤 없어 뵈던 번데기의 껍데기를 가르고서 무척 쌈박한 자태를 드러내는 배추흰나비의 "붉은 날갯짓"을 보는 것 같았달까요.ㅋㅋ 물론 바로 그렇기 때메, "조만간 새로이 도래할 민중"의 태양이 뜨는 대로 금새 걷힐 안개가 될지 몰라 내심 전전긍긍하고 있을 엔엘계통 운동들한테는 더없이 유효하고 강력한 한 방 아닐까 싶고."

    이거면 엔엘에게 한방 먹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엔엘은 내재적 비판 알고있을걸.

    "사실 엔엘계의 패악만 걷히면, 바꿔 말해 정세적 맥락관 사실상 무관한 정전화된 "실천매뉴얼"만 널리 퍼지면 좌파정치가 자동적으로 활성화될 것 같은 착각을 부르는 소위 급진좌파 계통의 안이한 자기규정과 실천관에 대해서도 값진 한 방이겠다 싶었어요. 맞는 쪽에서 얼마나 값져할진 모르겠지만.ㅎ;"

    엔엘의 패악은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가 알지만 다른 좌파는 안 사악하니. 조직 내부의 성폭력은 뭐란 말이냐.

    "관련해서 덧붙이면, 겨울철쭉님은 북조선의 수령론과 피디 계통의 전위론이 통념과 달리 조직화에 대한 발상법을 많은 부분 공유한다면서, 적어도 근래 엔엘파에선 자신들의 입장을 주체사상 본연의 힘이 아닌 수령론에 기대 정당화하고 있음을 지적하더군요. 철쭉님이야 뒷부분에 무게를 실었지만, 앞부분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지금 소위 좌파 진영에서 그 "분석적 올바름"을 발휘하는 것과 별개로 던져야 할 질문은 엔엘계나 자유주의 계통에서 번갈아 곧잘 활용하는 대중적 국민주의완 다르게 "대중적 생활감각"을 적극적으로 사고할 조직화의 각은 과연 어떤 것이겠냐일 테니까요. 이러자면 "좌파적 포퓰리즘" 같은 발상을 곧이곧대로 따르진 않아도 적극적으로 접붙여볼 필요가 있잖나도 싶고.."

    러시아혁명의 볼셰비키들도 집단지도체제고, 북한도 어디까지나 집단지도체제로 봐야한다. 일당독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히틀러도 혼자서 독재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