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구라4. 계승해야 할 정신들

앞전에는 3.1운동으로 건리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에 대해 봤다. 그 구절은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를 뒤에 넣고 있다. 지난 번 제출되었던 대통령 개헌안에서 이 구절은 "불의에 항거한 4ㆍ19혁명, 부마민주항쟁과 5ㆍ18민주화운동, 6ㆍ10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바뀌어 있었다.

부마항쟁, 5.18 광주항쟁, 6.10 항쟁의 정신을 계승한다. "~항쟁의 민주이념"이라고 하니 일단 4.19와 더불어 부마, 광주 항쟁의 이념이 들어 가고, 87년 6월 항쟁 역시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쉬운 건 87년 6월 항쟁이 들어가려면 7.8.9 노동자 대투쟁도 포함되어야 할 것인데 그게 빠져 있다는 점이다. 87년 6월 항쟁의 의의는 바로 제10차 개헌의 전범이 될 현행 헌법의 모태가 되었다는 점에 있는데, 그렇게 보자면 6월 항쟁만으로 정리할 것이 아니라 뒤이은 7.8.9 노동자 대투쟁까지를 포함시켜야 한다. 이 문제는 다른 측면에서 논의하기로 하고.

"~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념'을 계승한다는 건 추상적 의미에서 그 정신을 이어 받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단지 '정신'만을 이어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신이 정신으로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사회적 의미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헌법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 유사한 범주를 더 확장하자면 여기엔 종교의 자유도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이들 자유는 머리 속에 들어 있는 한 헌법이 굳이 보장하고 자시고 할 의미가 없다. 외화되지 않은 채 머리 속에서만 머물고 있는 한, 남의 머리 속에 무슨 양심과 사상과 종교적 신념이 들어 있는지 어떻게 알 것이며 그 상태에서 내면의 가치관을 근거로 사회적 평가를 하거나 이익/불이익을 줄 여지가 발생하지 않는다.

고로, 헌법이 누군가의 내면에 있는 특정한 지향이나 가치관을 보호한다는 것은 그것이 말이나 행동으로 외화되었을 때조차 이를 보호하겠다는 것을 천명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양심과 사상,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양심과 사상, 종교관에 따라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이를 보장하고 보호하겠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저 '이념' 역시 마찬가지다. 3.1운동이건, 4.19건, 부마항쟁이건, 6월 항쟁이건, 여기 더해 7.8.9 노동자 대투쟁이건 간에, 이들 사건들이 함의하는 정신, 이념을 계승한다는 건 그냥 그런 이념이 참 훌륭하니 마음 속에 담아두자는 정도에서 머물 수가 없게 된다. 즉 이러한 이념에 의하여 어떤 행동이 있을 때에도 그 행동을 일정하게 헌법적으로 보장, 보호하겠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묘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5.18 광주항쟁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했을 때, 이 이념을 계승한 헌법은 민중의 무장봉기를 보장/보호하는가? 예를 들어, 전두환이 같은 개썅또라이가 나타나 민주정부를 전복하고 총질을 하기 시작하면, 인민은 이에 맞서 무장을 하고 헌정질서 파괴범과 전쟁을 벌일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선 이전에도 한 번 다룬 적이 있다.

5.18 정신은 어디까지인가?

다시 상세하게 이야기할 건 아닌데, 이게 지난 개헌 논란의 와중에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이 지나갔다는 게 아직도 희안하다. 진짜 그냥 '이념'만 계승하는 걸로 종친다는 걸 개헌권자들이 다 합의를 했더란 말인가? 청와대 발 대통령 개헌안이 나왔을 때도 그렇고, 국회에서 어줍짢은 개헌안 들고 전국순회를 할 때도 그렇고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이 전혀 나오지 않은 것이 도통 신기할 따름이다.

7.8.9 투쟁이 들어간다면 또한 똑같은 류의 문제제기가 가능할 것이다. 만일 자본가가, 혹은 어떤 계급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를 노골적으로 자행하면서 부의 독점을 획책할 때 노동자들이 인민봉기에 준하는 혁명적 파업투쟁을 벌이는 것을 헌법은 보장하는가?

이 문제는 통상 헌법학에서 다수설로 형성된 저항권 개념과 괴리를 발생시킨다. 다수설이 올바른 이론이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인데, 만일 이러한 내용이 헌법에 규정되고 그 해석상 '이념'은 단지 머리 속에 들어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저항권을 설명하는 현재의 다수설은 완전히 그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곁가지로, 3.1운동, 4.19 혁명 이외에 부마도 들어가고 광주도 들어가고 6월에 7.8.9까지 들어가면, 그 이후에 또 어떤 정신들을 포함해야 한다고 논란이 벌어지게 될 것인가? 그것도 좀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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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30 15:47 2021/07/3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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