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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다는 것...

어제 펠로우 몇명이 모여 컨퍼런스 룸에서 훌륭한 빔프로젝터와 DVD player, sound system을 이용해 영화 감상을 했다. 제목은 Judge at Nuremberg Trial... 굉장히 유명한 영화다. 아카데미 상도 받았고 어쩌구...  점심시간에 수다를 떨다가 이 영화에 대해서 말을 꺼낸 것은 나였지만, 막상 영화를 보자는 Kavi의 제안에는 떨떠름 했었다. 미국 영화가 다 그렇지 뭐...

그러나 생각과 달리 영화는 많은 것을 고민하게 했다. 일반론을 알고 있는 것과는 별도로 구체적인 상황과 생생한 실례들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영화에 감동하고 공명하는 것은 그것을 수용하는 시청자의 개인적 경험과 관계 있는 터... 재연되고 있는 상황이 우리의 근대사, 그리고 지금까지의 현대사랑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기에 무려 3시간 짜리 영화를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다.

 

영화의 핵심, 그리고 본래 이 재판의 핵심 논쟁거리는 시스템의 일부로 복무했던 개인들에게 과연 얼마나 책임이 있나 하는 것이다. 수백만명의 유대인 학살을 승인하고 지시한 관료들 (이 영화에서는 법관들)은 결코 성격파탄자나 괴물같은 일탈자들이 아니라 선량하고 이성적인, 그리고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는 지식인들이었으며 그들의 업무를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이행했다. 변론의 핵심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거라는 것이다. 이들이 유죄라면 전체 독일인,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방조한 러시아, 영국, 미국.. 누구도 결코 이러한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리고 그들은 주장했다. 그것이 얼마나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올 줄을 몰랐다. 수백만명이 죽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

 

우리사회 문제에 대한 고차원적 담론은 관두고...

 

불과 3-4년 전만해도 너무나 명확하던 상황, 도대체 말이 되느냐... 이들은 당근(!) 범죄자들이다 단언했을텐데... 지금은 모든게 그렇게 분명한건 아니라는 걸 절실히 깨닫고 있다. 물론 그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성적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달라진 것은... 과거에는 가진것 없이 온전히 비판자의 입장에 서 있었던 반면, 이제는 작은 부분이나마 사회 시스템의 일부, 지식이라는 무기, 대학이라는 사회적 권위를 가진 주체로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불의를 생산하는데 충분히(?) 기여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점이다.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대학에 자리를 얻은 후... 기득권 계층(? 진짜 기득권 계층이 본다면 코웃음치겠는걸)으로서 사회의 부조리에 얼마나 쉽게 가담할 수 있는지 새삼새삼... 뼈저리게 깨달았다. 항상 눈을 부릅뜨고, 깨어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하하호호 웃는 사이에 "관행"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부조리에 가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과연 내가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깨어있었던가에 대해서는 장담을 못 하겠다. 사람이 어떻게 24시간 긴장을 늦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치관료들도, 친일지식인들도.. 부역을 통해 영달을 추구하려는 야심이 특별했거나 본래 파렴치한들만 있었던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상당수가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했고(그 임무가 무엇이건 관계없이!!!), 특별히 튀지 않게 남들이 하는 대로 관행을 쫓았을 것이다....... 

"그럼 너 같으면 어떻게 했겠냐?" .. 레지스탕스가 되었거나 최소한 그 자리를 사임했겠지 ...

"정말?" 당근이지...

"정말?" 그러지 않았을까?

"정말?"  "..."

 

눈 크게 뜨고 사방을 경계할지어다. 진보에 복무는 못할망정, 나도 모르는 사이 사회를 갉아먹는 일에 버젓이 동참하는 수가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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