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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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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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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23/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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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21/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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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21/10/04
    불평등, 그리고 갑자기 조지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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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21/02/26
    주구장창 밀리는 독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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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선택의 책들

대중적 인기가 대단한데 뭔가 쌔한 기분이 드는 책들이 있음.

특히 미국의 소위 리버럴 지식인 남성들이 쓰는 '내가 너희에게 세상의 지혜  알려준다' 책들이 그러한데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역시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

궁금함을 못 참는 성격이 문제인 것 같음...

 

# 조너선 하이트 (2014). 바른 마음

 

이 정도면 쟝르를 픽션으로 분류해야 하는 것 아닐까 ㅠㅠ 마이 아이즈 ㅠㅠ
일단 진화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외피를 가장하고 있지만, 구체적 증거는 없이 모두 소설임.
과학적 방법론은 물론이고 정치철학과 사회학 훈련이 전혀 안 되어 있는 데다가 보수/진보에 관한 개념도 미국사회의 협소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음.

그가 주장하는 도덕심리학의 세 가지 원칙: 

1)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 다음이다 - 이게 새로운 발견인가? 

2)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바른 마음은 여섯 가지 미각 수용체를 지닌 수용체를 지닌 혀와 같아서, 피해와 고통, 공평성과 불의, 자유, 충성, 권위, 고귀함과 관련한  가치가 중요하다 (도덕적 다원주의). 근데 특히 진보주의자들은 피해/고통, 공평성/불의에만 반응하고 보수주의자는 육각형 인간으로 고루 발달되어 있다 ㅋㅋ 아니 이 여섯가지면 도덕의 모든 차원이 다 포괄되는 거여? 슈나이더만의 정치철학 좀 읽어보시면 좋겠네. 게다가 이런 구성개념 도출까지의 과정이 그야말로 순수한 소설임... ㅡ.ㅡ  이래도 되는 건가??? 인간이 진화하면서 아마도 그랬을 거래...응? 이게 뭣이람? 

3) 도덕은 사람들을 뭉치게도 하고 눈멀게도 한다. 퍼트남의 사회적 자본과 뒤르켐, '초개체' 나오는데 증거라고 제시한 것들은 역시 그럴 것이라는 상상의 나래 ㅋㅋㅋ  인류를 위해 바퀴를 발명하심 ㅋㅋ 여기에다 종교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결속력에 대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보태지는데.. 눼눼

 

그리하여 그의 정의에 따르면, "도덕적 체계란 가치, 미덕, 규범, 관습, 정체성, 제도, 첨단 기술 등이 진화한 심리 기제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을 말한다. 이 둘은 도덕적 체계로서 함께 작용하여 개인의 이기심을 억제하거나 규제하며, 나아가 협동적인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한다" 아니 도덕에 대한 철학자, 윤리학자들의 무수한 고민이 있었는데 왜 심리학자가 이런 말을 해대는 거임 ㅜ.ㅜ

덧붙여 도덕적 자본이란 "어떤 공동체가 가진 가치, 미덕, 규범, 관습, 정체성, 제도, 첨단 기술, 그리고 이와 맞물린 진화한 심리기제의 정도를 말한다. 이 둘은 도덕적 체계로서 함께 작용하여 개인의 이기심을 억제하거나 규제하며 나아가 협동적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한다." ???? 그래서 교양있는 정치를 하려면 (지금과 같은 미국의 진보/보수 분열, 극한 대립을 극복하려면) 심리학자와 정치학자가 합심해 방법을 찾아야 한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미치겠다.뜬금없는 철인정치 납셨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드디어 유전자 나옴 ㅋㅋㅋㅋㅋ 진보주의 유전자, 보수주의 유전자... 5만년이면 유전자 바뀌고도 남을 시간이라네. 왜 아니겠어 ㅋㅋ
아니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21세기 최고의 책'이라는 상찬을 받고 저자를 구루로 모시는 이유를 당최 이해할 수가 없음... 

다만 바스크 지방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책을 펼쳤으니 마쳐야 한다는 집념으로 끝까지 읽었다고.... Ben도 내가 이 책을 펴들고 있으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다른 책을 마구 추천해줌.... 나도 알아 알아 당신이 무슨 걱정과 의심을 하고 있는 건지 잘 안다고 ㅋㅋㅋㅋㅋ.


# 로딘 던바 (2022년) 프렌즈


아니 이 책을 골랐을 때는 저자의 정체를 몰랐어 ㅋㅋㅋㅋㅋㅋ

 

내가 기대했던 것은 인간 진화의 역사에서 우정을 만들어가고 유지시키는 동력은 무엇이고 한편 무엇을 위해 그것을 희생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었는데...
뜬금없는 던바의 수 무한반복에, 갖가지 심리학 실험들과 뇌 구조에 대한 통계적 분석, 그리고 진화심리학 특유의 선 넘기.... ㅡ.ㅡ

이를테면 뇌 크기는 정신화 능력을 결정하고, 정신화 능력은 친구 수를 결정한다...
웃음은 원숭이의 놀이 얼굴에서 진화했고, 미소는 항복하는 얼굴에서 진화했다....... ???
남녀의 사교 유형 차이는 궁극적으로 재생산 과정의 뚜렷한 생물학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대단히 실망했음. 책을 고르는 감이 쇠퇴한 것인가.....

친밀도의 강도와 숫자가 3배 크기로 반비례하여 늘어난다는 사실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친한친구 5명, 15명, 그야말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최대 150명...  어쩌라구?
전화번호부에 명단 많다고 좋아할 일 아니라는 뜻인가.. 대체 모르겠어...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낸 나의 지구력과 인내심에 cheers..

아니 그리고 중요한 개념인데 고독과 외로움 번역도 틀리게 했어... 고독(solitude)은 외로움(loneliness) 없이 홀로 있는 상태인데, 책에서 이를 구분하지도 않고 모두 '고독'으로 번역해놓음 ㅡ.ㅡ 어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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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많은 책들

독후감이 밀리니까 장르를 모아서 정리하는 해괴한 신공을 선보일 수 있구나 ㅋㅋ

오늘은 그래픽노블과 만화, 일러스트 많은 에세이들을 셋트로 ..

 

# 케이트 비턴 (2024) 오리들

 

삶은 믿을 수 없을만큼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

단순명료하고 보이는게 전부인 세상이라면 연구도 필요없고 철학도 필요없겠지
계급과 젠더, 그리고 생산과 생태를 둘러싼 가치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혼돈과 부유하는 마음을 이토록 잘 그려낼 수 있을까...

오래도록 묵직한 여운과 복잡한 감상을 지워낼 수 없는 책

 


#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2019) 르 데생 le dessin

 

친구를 먼저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이라면, 

이 짧은 흑백의 그래픽노블, 마지막 한 컷이 채색으로 피어오르는 이 단편에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무게와 감정의 진폭을 경험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세월이 흘러도, 기억은 흐려지되 감정은 흐려지지 않고,

오히려 새록새록 부재를 실감하지.


# 닉 드르나소 (2019) 사브리나


어우.... 그림은 이렇게 동글동글하고 채도가 낮아 전혀 자극이 없어 보이는데 스토리가 그냥...
이 대조 때문에 더 크게 내상을 입는 느낌... 

무방비 상태에서 날카로운 광선검에 일격을 당하는 것 같은 ㅜ.ㅜ

 

# 김중혁 (2014) 메이드인 공장

 

이 책은 대체 언제 읽은 건지 기억도 안 남...

어쩌다보니 에버노트 끝자락에 몇 년 동안 방치되었던 느낌적 느낌... 

공장까지 다녀와놓고 좀더 상세하고 꼼꼼하게 이야기를 전해주지 않는 것이 아쉬움. 이렇게 툭툭 가볍게 단상을 털어놓는 것이 트렌드인가 ㅜ.ㅜ
하지만 그 덕분인지지 슬렁슬렁 재밌고 가볍게 읽을 수 있었음. 사실 나는 이런 종류의 유쾌함 좋아함 ㅋ 성석제 작가의 박물지, 여행기 이런 류. 이곳저곳 세상 구경하며 툭툭 던지는 이야기들 말이지.

작가는 나랑 동갑인데 시골 출신이라 어릴 적 환경이 많이 다름 ㅋ 최소한 나는 조산원에서 태어났다구 ㅋㅋ 대장간에서 태어나는 일은 없었지, 하지만 우리 세대라면 '공장 공포증'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지... 공장이냐 공부냐.... 공부못하면 공장 가야하는데 그것이 마치 되돌아올 수 없는 인생의 나락으로 공포화되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희한한 일이었음.


작가 자신의 글 생산 과정을 그린 '글공장' 이야기 너무나 공감하며 읽었음 ㅋㅋ 

" 외부 바이러스와 잡생각을 말끔하게 앂어내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인터넷 서핑, 인터넷 쇼핑, 실시간 검색 순위 보기 등 쓸데없어 보이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데" ㅋㅋㅋ 

이건 마치 성석제 작가가 살림이 창작활동의 제일 큰 적이라고 했던 것과 반대 지점에서 방해꾼..  근데 뭔지 너무 잘 이해하겠잖아

피아노공장에서의 문화적 허영에 대한 지적에도 매우 공감

"허영이라는 말은 문화나 예술과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허영은 필요 이상의 겉치레란 뜻인데, 문화와 예술에는 애당초 필요라는게 없으며 겉치레를 계속하다 보면 겉이 속으로 변하는 순간이 온라고 나는 생각한다. 거실에 있는 피아노를 계속 보다 보면 치고싶어지고, 책장에 꽃혀 있는 전집은 누군가 읽게 마련이다."

 

# 이토 준지 (2018) 토미에

 

몇 년 전에 이토 준지 걸작선을 대폭 세일한다고 해서 사두고 꺼내보지 못하다가 최근에 조금씩 읽고 있음. 이런 류(!) 너무 오랜만에 읽어서 책읽다 육성으로 욕하고 첫날 밤 악몽에 시달림 ㅋㅋㅋㅋ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 이제 완전 적응 되었으나 근본적인 의문을 지을 수 없음. 왜 이걸 보고 있나 ㅋㅋㅋㅋ 오래 전 작가의 전작 '소용돌이'를 보면서 세상에 이렇게 불쾌하고 끈적한 느낌의 만화는 처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여기에 또 손을 댄 것일까.. 이토 준지에게 토미에같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것이냐 뭐냐 ㅋㅋㅋㅋ

그리고 마침 계엄 정국 이후 드러나는 갖은 신비로운 사실들을 자꾸 토미에와 연관짓는 이상한 버릇마저 생겨남 ㅋㅋ 대책없는 자기애와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그리고 고관대작과 군인, 정치엘리트들을 자기파괴에 이를 때까지 사로잡고 휘두르는 그 마력이야 말로 토미에의 힘 아닌가 말여....

나야말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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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 프리드먼, 대니얼 로리슨 (2024) 계급천장


제목이 너무 내용을 유추하게 만들어서 뻔하지 않으려나 걱정하며 시작했는데, 부르디외 센세의 자본/아비투스/궤적/장 개념을 적용하여 엘리트 계급 진입과 이후 성공의 궤적에 이르는 미묘하고 잘 드러나지 않았던 요인들을 세심하게 분석해낸 좋은 학술서이자 대중 교양서였음. 

계급천장이라는 개념은 페미니스트 연구의 '유리 천장' 개념에서 가져왔다고 함. 

부르디외 센세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나 스스로의 계급 궤적에 대해서 반추해보게 만들었고, 한편으로 한국의 엘리트에게 과연 이런 아비투스나 체화된 교양(바람직함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이 존재하기나 하는지 의구심이 작렬.. 

예컨대 이 연구의 인터뷰에 참여한 엘리트들은 바이어스가 있을 수 있는데 "영국의 특권층은 개인적으로는 계급적 우월 의식을 계속 유지하고 있지만 인터뷰 같은 상황에서는 개방적이고 관용적이며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강한 도덕적 필요로 인해 그러한 판단을 표현하는데 제약을 받"기 때문... 이 정도의 교양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ㅡ.ㅡ 
책을 읽었던 몇달 전에도 이런 생각을 했지만 내란의 밤을 거치며 이땅의 엘리트들이 펼치는 반지성/무지성 대환장 잔치를 매일 보고 있자니 더더구나..... 어우....


책의 계기가 되었던 것은 2009년 영국 노동부 '직업에 대한 공정한 접근위원회'의 보고서 "포부의 해방 unleasing aspiration" 일명 "밀번 보고서"와 BBC 인력의 계급 구성 분포 보고였다고 함. 현실은 진단한다고 바로 해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상세한 진단 자체가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함. 


일단 중간직이나 노동계급 출신이 엘리트 계층에  진입하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일단 진입한다고 해도 성공에 이르는 길은 또다른 역경. 책에 포함된 사례연구에는 의사집단이 없는데, 앞 부분 통계에 보면 가장 배타성이 큰 직종으로 분류되고 있는 바 궤적이 궁금함 (부모가 의사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의사될 확률 24배,  비교집단 중 가장 높음). 사례에 나온 건축회사처럼, 측정할 수 없는 아비투스보다는 전문기술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는 진입과 관련한 영향이 크기 때문일까? 가업을 물려받는다? (미시 계급 재생산 micro-class reproduction) 아니면 사교육에 대한 투자? 의대생이나 전공의 선발 과정에서도 몸에 벤 행동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일까??? 상세 분석이 필요해보임


책에서 가장 커다란 가르침이라면, 엘리트들이 실제 능력 이외에 체화된 문화와 양식, 연줄에 의해 성공에 이른다는 발견이 아니라, 이들의 이러한 모습이 '재능'으로 평가되고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사실... (이미 부르디외도 상층부의 취향이 문화적 탁월함, '교양', 사회생활에서 '정당한 것'으로 오인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음)  

게다가 사례연구에 등장하는 문화엘리트의 경우 문화와 상징의 생산자라는 측면에서 대중매체를 통해 '빈곤포르노'를 생산하고 왜곡된 인식체계를 강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 오늘날 인적 자본론은 "사람들이 진공 상태에서 활동하고 직장 생활이 외부의 영향과 단절되어 있으며 커리어 진전이 전적으로 그들이 가진 기술, 능력, 행동에 의해 좌우된다고 암시"

초반부 계량 분석에 다르면, 계급 임금 격차의 세 가지 핵심 동인은 1) 특권층 출신은 더 높고 인정받는 학력 보유, 2) 런던에 거주하거나 직장을 위해 런던으로 이주할 가능성이 높고, 3) 특정 직종과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경향...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임금격차의 47%만을 설명...  다른 중요한 무엇이 있음을 의미...
저자들은 엘리트들의 인생에 드리워진 순풍 following wind 로써 세 가지를 언급함

  • 1) 엄빠 은행 - 그런데 이는 성공의 도덕적 정당성의 핵심을 타격하는 것이기에 대부분의 엘리트들은 이를 불편해함 ㅋ 부로 인한 불안 anxieties of affluence (ㅈㄹ도 풍년이지 ㅋㅋ)
  • 2) 도움의 손길 - 이것도 뇌물 같은 것보다는 동종선호 homophily 에 기반한 친밀한 연대. 허울 좋게 인재매핑 taleent mapping 이나 파트너 재질 partner material 식별 등으로 불림 ㅋㅋㅋㅋ '문화적 유사성은 단순한 호감의 원천이 아니라 '능력'을 평가하는 근본적 기반이 되기도 함' - 과거의 올드보이 네트워크나 한국/일본의 호모 소셜이 여기에 해당하겠지. 근데 이게 룸살롱에서 이루어지는 XY연대라기보다 좀더 미묘한 형태의 계급적 동종선호라는 게 영국과의 차이랄까....
  • 3) 적합성 (fit) - 여기에서 '유리구두'라는 개념 활용. 이는 실제로는 업무와 거의 관련이 없는데도 특정 직업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거나 힘든 것으로 여겨지는 내재적 특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지칭함. 여기에서 상층부에 적합한, 소위 파트너 재질의 핵심은 '세련됨' ㅋㅋㅋ (특히 영국에서는 용인 발음 received pronunciation! 뭔 개소리야 ㅡ.ㅡ) 또한 학습된 비격식성도 중요함 (studied informality) 소위 힙한 것을 말하는데, 근데 이 힙함이 그냥 마구잡이면 안 됨 ㅋㅋㅋ 복장, 스타일, 유머, 자신감 등등 적절한 태도와 여유로움. 특히나 이런 속성은 객관적 기술이나 노하우가 작동하지 않고 객관적 평가가 어려운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 (부르디외는 특정 직업 또는 조직 영역에서 작동하는 강력하고 당연시되며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여지는 규칙이나 규범을 doxa 라고 지칭)

반대로 이야기하면 힘겹게 사회상층에 도착한 비엘리트 계급 출신들은 그야말로 애써 역풍과 싸워가며  거기에 이르느라 소진되거나 싸움을 포기하는 상황 ("마치 낙하산 없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기분"). 

그래서 '자기 제거' 가 나타남. 뭐냐하면 진급 기회를  잡지 않기로 결정하거나 리스크를 회피하며 경력 궤적을 늦추거나 더 낮은 곳으로 가고, 혹은 상층부에 진출한 후에도 게임의 규칙에 따라 행동하기를 거부하는 것. 특히 성별, 인종 같은 요인들이 겹쳐지면 (교차성) 더욱 곤란. 나도 이런 것은 심심찮게 목격한 것 같음. 내가 본 사례들은 대개 젠더와 (학력 아니고) 학벌 열세 상황이었음

그런데 또 계급과 인종/성별 같은 다른 종류의 포용성이 항상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도 아닌 것으로 나타남. 그래서 교차성 관점이 중요한 것으로 보임. 예컨대 사례 중 건축회사는 아비투스가 훨씬 덜 중요한 성공요인이었지만 젠더에는 상당히 배타적인 것으로 나타남.


사람들의 사회이동 경험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1) 계급천장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상당한 기회비용이 존재하고 (특권적 배경을 갖지 못한 사람은  특권층이 겪지 않아도 되는 역풍에 맞서 싸우느라 감정적 에너지 소모하며 이는 불공평하고 이들을 더욱 불리하게 만듦, 2) 이러한 감정적 각인은 계급 천장의 동인이라는 역할을 넘어 그 자체로도 중요하게 인식될 필요가 있음. 사회이동성이 사회적 병폐에 대한 만병통치약처럼 물신화하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줌

저자들의 '능력'에 대한 견해는.. "기술, 자격, 전문성, 노력, 경험등 전통적인 능력의 척도가 영국의 엘리트 직종에서 커리어 진전을 이루는데 중요하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분석 결과는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 현금화'하거나 재능을 '실현'할 수 있는 동일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능력'이 자리의 획득으로 이어지려면 그것을 입증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그 능력이 다수가 '올바른' 업무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성공의 열쇠를 쥔 사람들이 그것을 가치 있다고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특권층 출신이 획득한 자기표현 방식이 재능이나 잠재력의  지표로 오인"되고 있다면서 이를 "객관적인 능력으로 가장된 계급적 퍼포먼스"라고 정의함.  그리고 "계급 태생에 뿌리를 둔 동종 선호가 계급 천창의  핵심 동인"이라고 주장

'순풍'이라는 메타포는 탁월한 선택인 것 같음. 

"타고난 유리한 조건으로 인해 어떤 행동이 가능해지고 어떤 종류의 자원을 이용할 수 있고 자신의 능력'을 얼마나 더 잘 보이게 할 수 있는지 적절하게 보여주는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특권은 에너지 절약장치로 작용하여 적은 노력으로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울러 이 비유는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들의 경험을 시각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개인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거나 결코 정상에 도달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일반적으로 더 오래 걸리고, 빈도가 더 낮으며, 현저히 더 많은 노력이 들거나 심지어 탈진을 경험하기도 한다는 얘기다."

 

심지어 저자들은 사회학자로서는 드물게 ㅋ 문제 해결책을 제안함. 

이는 컨설팅 조직과 함께, 다양성과 포용성을 추구하는(이런 곳이 있다니 ㅜ.ㅜ) 기업들에게 사회이동성 증진에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한 것 1) 출신 계급을 측정하고 모니터하기, 2) 조직 내부에 계급천장 존재하는지 확인, 3) 재능에 대한 대화 시작, 4) 교차성을 진지하게 고려, 5) 사회이동성 데이터 발표, 6) 무급 및 미공고 인턴십 금지 (바로 이 대목에서 장학금도 안 주면서 전일제 학생을 요구하는 모 대학원의 만행이 떠오름), 7) 경영진의 지지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 8)비공식적인 것을 공식화, 9) 지원을 바라는 사람들을 지원, 10) 법적 보호를 위한 로비 활동

맥락이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도 이 중 몇 가지는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조치들인데.. 그렇게 할 리가 없지.... ㅡ.ㅡ

 

#샹탈 자케 (2024) 계급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

 

계급천장 읽고 나서 무언가 기대를 가지고 책을 펼쳤는데...프랑스 철학자들에 대한 나쁜 인상만 가지게 되었음 ㅋㅋㅋ  아니 무슨 이런 거창한 이름을 붙인 거야.. 계급횡단자라니 그럼 하향이동에 대해서도 같이 다루든가, 미천한(?) 계급 출신에서 상향이동한 사람들만 다루었고 집단을 횡단한 다른 사례 (예컨대 트랜스젠더, 이주민)와의 공통점이나 차이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도 않음. 그리고 이 때 계급이라는 것도 노동자/자본가 같은 현대적 계급 특성이라기보다 아비투스로 상징되는 구 시대의 신분적 질서와 취향에 크게 맞닿아 있음.


한국인으로서 두 가지 측면이 크게 거슬리는데,
첫째, 고아한 문화적 자본이나 습속이란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의 지배계급, 졸부들의 행태가 떠올라 전~혀 공감이 안 됨. 예컨대 책 후반부에 "부르주아 문화는 감정을 자제하는 능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사람들 사이의 유쾌한 교류에 장애물이 되는 각종 요인들을 아예 삼가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는 표현에 당최 동의가 되냐고 ㅋㅋㅋ  한국 지배계급은 지구 역사 6천년입네, 동성애가 종북이네 해괴한 소리를 늘어놓는 기독교에 심취해있으면서 또 점쟁이는 잘도 찾아다닌다고.....
둘째, 빠른 사회변화를 통해 계층이동이 '대규모'로 이루어져서 (산업구조가 바뀌고 경제가 발전하고, 지역 개발이 이루어지고.. ㅡ.ㅡ) 한동안은 어지간하면 부모세대보다 자식 세대가 상향이동을 경험한 계급횡단자라고 말할 수 있는데 뭐 이런 세세한 불화와 '수치심'까지 들먹이는지 당최 이해가 안 됨.. 이미 한국의 많은 문학작품, 영화,드라마  같은 대중 문화가 소위 계급횡단자들의 경험, 감정을 더 상세하게 분석하고 그려내지 않았는가 말여...

책의 앞부분에는 단지 이것이 계급횡단을 경험한 뛰어난(?) 개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단서를 찾는 것이라 했었음
"관건은 비-재생산이라는 예외가 재생산의 규칙을 파기하는지 혹은 확증하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동시에 이를 알아내기 위한 탐구의 이면에는 인간 역량의 본성과 자유의 영역 확장이라는 논점이 떠오른다. 왜냐하면 비-재생산은 사회적 전복 혹은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경우에도 기성 질서의 내부에서 새로운 존재가 발명될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해서 마치 사회적 조건과 개인 주체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며 틈새 변혁 전략이라도 제시하는 줄 알았지 ㅋㅋㅋㅋㅋ


그동안 다른 연구자들이 이러한 문제를 다루지 않은게 정치적 오염과 이데올로기 (드문 사회적 유동성의 사례를 개인의 자수성가 논리로 포장)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시작하지만, 결국 이 책은 읽고 나서 생각한 것은 개인의 '기질'과 가족, 혹은 지역사회 미시환경에서 마주친 '우연'의 결과 ㅋㅋㅋ 

아니 사실 어떤 사회법칙도 결정론적이지 않고 주체와 구조의 상호작용 속에서, 그리고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예외라고 부를만한 사례가 나타날 수 있는 것 아닌감?
비판적 실재론의 '인과적 힘' 개념이나 기전을 파악하기 위한 '사례연구'가 이러한 탐구를 뒷받침할 수 있을텐데, 정작 저자는 철학적 접근을 한다면서 (스피노자의 인식론) 딱히 기술(description)을 넘어서고 있지도 않고 문학을 넘어 현실의 사례연구를 하지도 않음.. 

이런 면에서 저자는 계급이 어떻게 비-재생산되는지 탐구함으로써 계급재생산의 이면을 파헤친 부르디외를 보완하겠다고 했지만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저자가  밝혀낸 비-재생산의 원인에는 야심, 하지만 무엇이 야심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번에는 '모델과 모방' (출신계급에 일반적이지 않은 모델이 우연히 존재) 제안. 여기에는 가족모델, 학업모델(선생님! - 공교육의 중요성?) 존재 . 그리고 학업모델의 성공을 가능케 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의 뒷받침 ...  근데 이런 추론 과정은 이미 사회학에서 너무 많이 다룬 것 아닌감??? 

바로 이 대목에서 저자는 '감정'의 중요성 제기. 왜냐하면 "대안적 모델의 존재도, 정치적 제도의 뒷받침과 경제적 후원도, 감정이 추동하는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비-재생산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이게 동의가 안 됨. 이러면서 '사회적 수치심'을 거론함 ㅋ

아니... 나는 사회적 수치심 때문에 공부하고 상향이동한 거 아니라고 ㅋㅋㅋㅋ  

그리고 사회적 동질성에 대한 압력은 미국 흑인 게토와 프랑스 농촌에 존재할지 모르겠지만 딱히 한국사회에는 다른 맥락이라고... 동질성 압력이 아파트 가격 짬짜미할 때나 유행 패션, 취향, 소비문화에나 있지 무슨 계급에.. ㅡ.ㅡ

책 중간쯤에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함 "예외적 개인은 오직 그러한 예외를 허용하는 환경 속의 예외일 뿐이며 아무리 비전형적인 개인의 이력일지라도 이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따라서 개인은 환경의 인력과 척력이 교차하는 환경의 협력과 함께 작도하고 있으며 예외적 개인이라고 할지라도 규격외의 결실을 맺었다고 할수는 없다. 그는 단지 일반적으로 우세한 규칙들과는 다른 규칙들의 조합에서 나온 결실일 뿐이다. 계급 횡단자는 고독한 영웅이라기보다는 가족, 마을, 거주지, 인종 혹은 계급, 성별 또는 젠더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소망을 떠안고 있는 선구자이다."  

왜 계급횡단자한테 고독한 영웅 운운을 언급하고 다른 이들의 집단적 소망을 떠안은 선구자라는 것인감가??? 너무 상층계급 지식인의 시각인디? ㅋㅋ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 이르지 못한 안달복달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그러면서 '기질' 등장함. 비-재생산에는 인과 규정의 새로운 배치 가정이 필요하다며 천재성보다는 훈련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 ㅋ 이게 바로 기질(스피노자 개념으노 인게니움 - 인과 규정들 사이의 물리적이며 정신적인 인과 결정의 복합적이고 독특한 조합이라는 아이디어를 재정립함). 그래서 도야를 강조함 ㅋㅋ  

그럼 대체 계급횡단자의 기질이란 게 무엇이냐.
우선 1) 탈정체화 - 개인적 자아를 해체하고 '사칭'을 통해 사회적 자아를 해체하기도 함 ㅋ 그리고 적응과 도태 사이에서 '이행'이 일어남. 계급횡단자들의 기질은 "무모함과 소심함, 그리고 호전성과 유순함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기질적 특성은 긴장 속에서 살아온 계급횡단자의 역사를 반영하는 산물이자 적응과 도태 사이에서 그가 겪은 영속적 동요를 증언해주고 있다"니.....  아 진짜 계급횡단자로서 환장하겠네 ㅋ
2) 틈새 - "두 세계 사이에 놓인 다리를 끆어버리고 싶어하지만.. 결국에는 언제나 자신의 출신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다." 뭔 헛소리여.. 그러면서 민중 계급의 '거리의 에토스'를 이야기하고 긴장 속에서 '마음의 동요'를 이야기함... 난 아니라고... 스피노자가 수치심의 정의를 확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비난한다고 우리가 상상하는 우리의 어떤 행동에 대한 관념을 수반하는 슬픔'으로 정의했다는데, 이런 것은 일제시대 식민지 지식인들의 어줍잖은 자기 연민을 다룬 근대 문학에서 지겹게 봤던 것들 아닌가... 이렇게까지 생각하다보면 저자가 너무 안온한 1세계에 살아서 이 모든 걸 뒤늦게 깨닫게 된 사람 같은 생각이 든다고.. 이 마당에서 자신과의 화해로 '커밍아웃' 이야기하고 스스로의 출신에 자긍심을 부여하는 것까지 오면 너무 1980년대 한국 노동문학 ㅋㅋ "계급횡단자가 타자를 통해서 그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죄책감을 제어함으로써 이 감정을 동력원으로 바꾸어 자신을 짓누르는 것을 지렛대로 변형시키고 긴장들을 오히려 발돋움판으로 사용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세상에.. 굳이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
 
책의 마무리에 "계급횡단자는 가장 불리한 환경에서조차 인간존재가 얼마나 유동적이며 상당한 정도의 가소성을 보유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라며 세계가 고정불변의 방식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본질주의적 시각을 무너뜨리고, 인간의 자유로운 주체로서 지위를 당연시하는 실존주의의 시각 역시 무너뜨린다고 자평... 응???  이미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ㅡ.ㅡ 저자는 기질 분석을 통해 아비투스 논의를 보완했다고 하지만... 대체 어디에서....


저자는 감정의 역할을 강조하며 "계급횡단자는 감정적 기질의 결실"이라고까지 표현...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는 내 의지가, 내 감정이 부족했던 것이야???
그러면서 마지막에 인종, 젠더, 성정체성 등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면서 "비록 계급획당자는 낙인찍힌 조건과 관련하여 어떤 해방의 형태를 체화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급횡단자가 모든 여성과 동성애자 혹은 흑인이 추구해야 할 미래의 모습인 것은 아니다. 인간의 미래는 더욱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표는 계급의 장벽을 홀로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그 장벽을 허물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갑분.. 아니 그렇다면 이에 합당한 이야기를 했어야지.. ㅜ.ㅜ

 

이런 의구심과 화를 안고도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낸 스스로를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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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중단편들 숙제

독서일기는 너무너무 밀려있고,

생각의 곳간이 바닥났다는 위기의식이 쌓여가고 있던 차에 이제는 밀린 숙제를 할 시간.

꺼내 쓸 재료가 소진되었으니 이제 다시 차곡차곡 모으고 다듬을 시간이로다. 

오늘은 가볍게 픽션들부터...

오랜만에 독후감 쓰려니 이제 알라딘 API 죽었나... ㅡ.ㅡ

 

# James Tiptree Jr. Her Smoke Rose Up Forever

 

이건 대체 몇 년 전에 읽은 거야.. ㅡ.ㅡ

모두 흥미로웠지만 역시 뇌리 속 각인은 The Screwfly Solution..

근데 책 읽고 이걸 독후감이라고 남겨놓다니 ㅋㅋㅋ

"엄마야 나 무서워서 마지막 챕터를 한동안 열어보지 못함.
너무 서늘하고 살벌해서 한동안 후덜덜...
한 종을 말살하려면 저렇게 하면 되는거구나..."

하여간 화자의 긴박함과 공포가 너무 절절해서 지금도 그 '감정'만은 선명하게 기억이 날 정도.

현실에서 젠더폭력이 점증하는 순간마다 나는 이  작품, 그 감정들이 자동으로 떠올랐음.

저자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토록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도 드물 거라 생각함. 

근데 Alice Sheldon의 이력 자체가 정말 신비롭기 그지없음 ㅋ 그래픽 아티스트에서 2차대전 말기 공군 정보장교, 이후 CIA 정보장교, 퇴직하고 대학으로 돌아가 실험심리학 박사학위...  오랫동안 남성 필명으로 감쪽같이 동료 작가들과 팬들을 속이고 활동... 남성과 결혼은 두 번했지만 오픈리 레즈... 글에는 페미니즘의 향기가 물씬....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삶이었음

 

#켄 리우 (2020)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내가 생각하기에 과학 소설이 하는 일, 또는 적어도 내가 이야기 속에서 하고자 하는 일은, 오히려 희망과 공포로 가득한 지금 이순간의 현실에 확대경을 가져다 대는 것"

"내가 보기에 우리 인간이라는 종은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도록 진화했다. 나는 법학 교육을 받고 변호사로 일해온 까닭에 사실과 숫자가 인간을 설득하지 못하는 것을 이제껏 눈앞에서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그것은 오로지 이야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테드 창에게서는 '중국계'라는 것을 그닥 인식하지 못했는데 켄 리우는 이것이 그의 정체성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것 같음. 서유기와 삼국지를 만들어낸 이야기의 나라 후손답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고 말할밖에 ㅋㅋ
사실 이 책에 등장한 싱귤래리티와 의식의 업로드 개념이 그닥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서문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를 통해서 (이는 그야말로 배경이자 소재) 인간답다는 것, 인간의 본질, 뿌리박힌 혹은 뿌리뽑힌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함...
매듭묶기를 통해 3차원 단백질구조를 이야기한 것이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에서 인생의 헛헛함을 크게 느낌...

 

#켄 리우 (2024) 은랑전

 

이건 비교적 최근에 읽은 켄 리우 작품.
점점 소프트 SF에 환상 요소가 커지기는 하지만 (그래서 약간 고개 갸우뚱이기는 한데) 매우 동시대적인 장점은 사라지지 않았음
특히 인상적인 테마는 "비잔티움 엠피시움"
분산형 직접 공여라는 것이 가만 생각해보면 각종 소셜 펀딩과 메커니즘이 같고,
또 빈곤, 재난포르노를 토한 공감의 격발이 단순 영상이나 사진이 아니라 생생한 가상현실이라는 딱 한발자국 정도의 차이...
"암호 화폐가 정부의 손에서 통화공급 통제권을 빼앗으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엠피시움은 전문 자선 단체에게서 세계인의 연민 공급 통제권을 빼앗은 것이 목표였다" 이거 이미 현실이 되버린 것만 같아서 대단히 혼란스러움....

 

# 김보영 (2020) 스텔라 오딧세이 3부작


에헤... 작품 안팎으로 이렇게 애틋해도 되는가!!!! 

처음부터 3부작을 기획하고 쓴 것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너무나 꼭 들어맞고 아름다워서 정말 한달음에 읽어버림.
프로포즈 같은 혼종 문화 극혐인데, 그것이 어떤 용도이든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선물로서의 소설이라니. 심지어 시도 아니고 소설!!!! 와 사치 중에 이런 사치가 있을까 싶음... 개부러움 ㅋㅋㅋ 

 

# 아말 엘모타르, 맥스 글래드스턴 (2021)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전쟁에서 패배한다


지음(知音)이 이런 것이냐 ㅡ.ㅡ
비록 적진에 속해있지만  어느 순간 서로에게 매혹된 요원들의 시공간을 초월한 러브레터.
몹시도 아름다운 문장들, 그야말로 시공간 역사의 현장을 오가는 장대한 스케일, 그리고 창의적인 편지의 인코딩/디코딩이 빼어나기는 한데…. 나랑 스타일이 안 맞아 ㅠㅠ
이 감정의 고조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 ㅋㅋㅋㅋ 왜 갑자기 서로에게 빠져든거야????

이런 기조.. 뭐랄까 SF 안의 서정 장르.  어쩌면 르귄의 [어둠속의왼손]도 그런 계보이고 중도 포기한 제미신의 책이나 나인폭스갬빗도…   안맞아… 나는 건조함이 좋아요.
아 근데 더 생각해보니, 서정 장르가 안 맞는 게 아니라 전근대 신비주의 내지는 낭만주의 문화와 SF 결합된 장르가 싫은 것 같네.  나는 그냥 바우하우스 이전 시대가 싫은가벼 ㅋㅋㅋㅋㅋ

 

# 레이 브래드버리 (2020) 화성연대기

 

처음부터 장편으로 기획된 것은 아니고 단편 모음인데 1940-50년대 쓰인 것임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진보적 시각이 아닐 수없음 ㅠㅠ 아메리칸 인디언 수탈의 역사와 흑인 노예제의 잔재... 그리고 폭력적 정복의 역사를 상당히 서늘하게 그려냄.

근데 문장이 너무 정동 지향 ㅋ 이게 이 작품의 장점이라는데 나랑 안 맞아 ㅠㅠ 

아마도 이 소설이 그리는 미래 사회 2005년이 이미 지나간 과거라는 점과 화성의 물리적 환경, 화성인의 생물학적 속성에 대한 개연성이 너무 부족해서 지금은 아무리 픽션이라 한들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이 크게 작동한 게 아닐까... 

게다가 나는 비극적 결말의 대하 서사시 Red Mars를 먼저 읽어버린 사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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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이지 않은 것 같지만 본격적인 정치이야기

밀린 독서노트 틈틈히 정리해보자.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라지만, 어차피 태산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으니 작은 티끌들을 소중히 줍줍..

 

# 그런 세대는 없다 (신진욱, 2022)

그런 세대는 없다 - 불평등 시대의 세대와 정치 이야기
그런 세대는 없다 - 불평등 시대의 세대와 정치 이야기
신진욱
개마고원, 2022

 

신진욱 선생님의 진정한 빡침이 느껴지는 책 ㅋㅋㅋ 내가 그놈의 88만원 세대 때문에 20년동안 W 욕했지만 메인스트림에서 실명으로 이를 비판한 경우는 보기 드물었던지라, 일단 책에 급호감 ㅋㅋㅋ
이 책의 미덕은 이러한 빡침에도 불구하고 차근차근 세대론의 이론적 기원을 설명하고 (만하임 등장!), 세대 간, 세대 내 불평등을 실증적으로 검토하면서 "세대" 그 자체가 아닌 "세대 담론"을 둘러싼 지형을 세밀하게 분석함.

불평등 그 자체에 대한 분석은 이미 오래 전에 신광영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사회학자가 수행하여 세대 간 불평등보다 세대 내 불평등 문제의 본질을 지적했던 바 그리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세대 담론의 진화는 매우 인상깊게 읽었음. 박근혜 정부의 소위 노동개혁을 거치면서 청년과 불공정 담론이 본격 만나게 되고,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이것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경과를 뚜렷이 보여줌. 사실 나는 조국 사태가 이 정도의 폭발력을 가진 사건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었는디...  물론 그것이 보수언론과 정치이데올로그들에 의해 적극 조장된 담론/프레임이라 해도 일단 이렇게 폭발하고 나면 담론 그 자체가 새로운 힘이 되어버린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존재.

 

"기성세대라는 가상의 악을 만들어 청년들에게 비난의 대상을 만들어주고 청년의 편인 듯 가장하여 인기를 얻으려는 발상은 어쩌면 큰 걸림돌이 없는 일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기성세대른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회집단으로서 실체가 없기에, 비난에 대해 반박하지도, 보복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냐나 만약 당신이 고용주에게, 직장상사에게, 집주인에게 맞선다면 당신은 곧바로 응당한 댓가를 치를 것이다. 그가 노인이든, 중년이든, 당신보다 젊은 청년이든 말이다. 계급은 실체이기 때문이다"

 

제도권 정치든 사회운동이든 고령화가 진전되고, 젊은 리더들이 기성 정당으로 편입하여 정치게임의 '작은 부품으로' 편입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속시원하게 간명하게 진단을 내림

"구조의 본질은 나이가 아니다. 이미 권력자원을 점하고 있는 기성 정치세력들이 현존하는 정치질서의 근간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개혁적 에너지를 흡수하여 체제를 지속하는 체제. 안토니오 그람시가 변형주의 transformism 이라고 불렀던 반 개혁 정치가 본질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MZ 세대 담론은 압도적으로 경제력과 문화자본을 가진 상류층과 중산층 청년들에게 접속하는 청년담론. 그렇다보니 사실 소비자로서 청년 세대를 호명한 1990년대 X세대 신세대 담론과 다르지 않음. MZ 세대 어쩌구 볼 때마다 저거 30년 전에 했던 똑같은 이야기잖여 라고 마뜩찮아했던 X 세대의 직관을 분석으로 잘 보여줌.

근데..... 아무리 이런 분석이 있고, 심지어 이를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책을 내면 뭐하냔 말인가... 쓰나미같은 미디어와 상업자본의 공세에 어떻게 맞설 수가 없잖여 ㅜ.ㅜ

 

#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허시먼, 2016)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 퇴보하는 기업, 조직, 국가에 대한 반응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 퇴보하는 기업, 조직, 국가에 대한 반응
앨버트 O. 허시먼
나무연필, 2016

 

2년 전에 읽은 책에 대해서, 에버노트 쪽메모를 기반으로 독서노트를 정리하는 나란 사람.. 대체.. ㅜ.ㅜ

기억이 나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아... 곽재식의 '칼리스토 법정의 대역전극'에서 마금희 변호사가 로봇판사에게 어뷰징을 걸기 위해 불렀던 노래를 내가 여기서 부르게 될 줄이야...

하여간, 노력을 해보자면...

 

제발 번역서 제목 좀.. "Exit, Voice, and Loyalty: 이토록 간결한 원저 제목을 왜 이따구로....  ㅡ.ㅡ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오래된 고사에도 불구하고, 어떤 공동체에 남아 부단히 뭔가를 바꿔보려했던 사람들의 고민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가.... 하면 그건 아니고 ㅜ.ㅜ

경제학자이자 정치사상가답게 어떤 상황에서 이탈이, 혹은 항의가 조직 혹은 구성원들의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는지, 그 와중에 충성심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탐색한 책이었음.

합리적 주체 (호모 이코노미쿠스)와 완전경쟁 시장에서 수요-공급이 지배하는 경제학의 세계에 이탈 이외에 충섬심이나 항의라는 개념은 존재하기 어려움. 소비자는 이 상품이 맘에 안 들면 다른 상품으로 옮겨가면 되잖여. '회복가능한 일탈'이란 개념이 존재하기 어렵지....  허나 현실은 그보다 구질구질하고
또 독점인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적극적 항의를 통해 변화를 도모하는 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작업이 필요했다고 설명함. 놀랍게도 책의 발간 시점은 베트남전으로 미국이 혼돈에 휩싸여있던 1970년...

저자가 1958년에 출판한 [경제발전전략론]의 기본 명제가 "발전은 주어진 자원과 생산요소들을  최적으로 조합하는 것보다는 여기저기 숨어있거나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자원과 능력을 발전 목표에 맞게 이끌어내 정렬시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는디, 어쩐지 너무 절절하게 공감.. ㅜ.ㅜ

모든 조직이 매 순간 최대한의 능률로, 최대한 활기차게 움직이는게 아니라, 그게 운동조직이든 민간기업이든 공공부문이든... 시간이 되면 어찌 되었든 느슨해지는디.. 허시먼은 "느슨함은 매순간 태어난다'며 "제 아무리 기능을 잘 고안해서 제도적 틀을 갖춘다 해도 기업 등의 조직은 합리성, 효율성, 잉여생산 에너지를 서서히 잃어가는 지속적이고 임의적인 퇴보와 쇠락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퇴보는 언제나 공격을 멈추지 않고 존재하는 힘이라고 생각하는 이 급진적 비관주의는 스스로 고유의 치유책을 마련해낸다" 고 기술함. 기이할 정도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관점이여 ㅋㅋㅋ

 

밀턴 프리드만을 비롯한 경제학자는 이탈이야말로 효율적이고 심지어 유일한 문제 해결방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예컨대 공교육에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비롯된 것임. 부모들에게 쿠폰 나눠주고 경쟁적으로 제공되는 교육서비스를 선택하여 구매하지 못하는 경우, '오로지 성가신 정치적 채널을 통해서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라는 문장이 대표적. 항의에 대한 경멸이 아주 잘 드러남.

그러나 현실에서는, 국가에서 가족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제도들은 성가시더라도 항의를 다루는 것이 일상적이고 때로는 유일한 대처법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밀턴 프리드만 이 냥반, 이 시절에도 까였는데 나중에 무슨 세상 멘토인 것처럼 사람들 떠받드는거 꼴보기 싫어 죽겠음. (심지어 내가 2년 전에 이런 메모를 남겨놨는데, 자칭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께서 밀턴 프리드먼을 끔찍이 떠받드는 걸 실시간으로 보고 있어야 함. 뭔 시련인가!!!)


하지만 정치학 영역에서 이탈은 '변절, 반역'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범죄행위로 낙인찍히기도 함.. 이것도 진짜 꼴불견이자 세상 망조의 지름길. 변화를 위해 싸우는 것도 아니고 일단 우리가 남이가 해서 결속만 외치는 것도 꼴보기 싫기는 마찬가지..

근데 현실에 이 두 가지 극단 정말 분명한데, 경제학과 정치학에서 이를 어느 한쪽만 지켜봤다는 것도 좀 의외이기는 함 (1970년 이 저작 이후는 좀 달라진 것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잖여)

  • 이탈 exit : 경쟁(즉 이탈)이 하락한 성과를 회복시키는 기전으로 작동하려면 예민한 고객과 둔감한 고객이 혼재되어 있어야 함. 썰물처럼 모두 빠져나가거나 아무도 이탈하지 않으면 그냥 망해버리거나 아니면 개선의 기회를 놓치게 됨. 이런 면에서 모두가 초예민하고 정치의식, 참여의식이 드높은 것만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음 (문제가 생길 때마다 마치 가슴속에 시말서 품고 다니는 직장인이라도 되는 양, "내 이럴 줄 알았다" 며 돌아서는 행태가 떠오르지 않냐고... ㅜ.ㅜ)
  • 항의 voice: 물품을 구매하는 기업보다는 자신이 속한 '조직'과 관련해서 더 중요한 역할. 당연히 후자의 숫자가 더 적기 때문이기도 함. 경쟁이 적어서 마땅히 이탈할 곳이 없...ㅜ.ㅜ 이탈이 '이것 아니면 저것'의 확실한 구분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항의  방식은 기본적으로 계속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는 예술 (이 아니라 '기예' 아님??? art?)
  • 이탈과 항의의 결합: 품질 변화에 가장 민감한 소비자들이 신속하게 이탈. 공립학교 교육 질 나빠지면 교육에 관심많은 중산층 이상이 빠져나가는데, 문제는 이들이야말로 가장 활발하게 교육의 질 개선을 위해 항의할 수 있었던 사람들. 사립학교에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으니 이들은 항의 기전을 더욱 열심히 활용 (사립학교에서는 이탈이 강력한 원상회복 기전). 반면 공립학교에 남아 있는 이들은 목소리 내기 어렵거나, 이탈이 발생해도 반응성이 낮다는 문제.  이는 한국의 공립학교, 공공병원이 가진 문제 그대로... 결국 사적 부문을 축소하여 이탈의 가능성을 줄이고 공공부문의 이탈/항의에 대한 반응성을 높여야 하는디.. ㅜ.ㅜ 삶의 질과 관련된 기본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항의 방식이 특히 중요! (그런데 대개 고품질 범주에서 이탈보다 항의가 쉽게 발생하기 때문에 계층 간 간극이 더욱 커짐)
  • 게으른 독점의 문제: 경쟁은 예상과 달리 독점을 억제하기보다 말썽많은 고객을 제거함으로써 부담을 덜어주는 경우가 많음 ㅜ.ㅜ '일종의 '전제적' 독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이 경우, 강한 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게으른 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즉 독점에 대한 야심은 없지만 동시에 독점으로부터 탈출이 가능한 까닦에 더욱 견고하고 억압적 ㅜ.ㅜ (라틴아메리카 독재 국가들이 언어나 문화가 비슷한 이웃 국가로의 망명을 적극  부추겼던 사례) 하지만 다른 곳에서 거래 상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기업/조직이 자신의 욕구화 취향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유혹하고  협박하고 유도하는 소비자들의 힘 존재

 

쉽게 이탈할 수 있으면 항의 방식에 호소하는 일이 줄어들 것 같지만, 항의 방식의 효과는 이탈의 가능성 덕분에 강화됨. 즉 이탈의 위협 덕분에 항의가 작동함.

충성파가 조직을 떠날 시점을 판단할 때, 이탈 시 감내해야 할 도덕적 혹은 물리적 고통보다는 자신들이 떠나면 이 조직이  악화일로에 처할 것이라능 생각 때문에 쉽게 이탈하지 못함...  (ㅜ.ㅜ 한국 운동조직의  또 다른 일면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해서 망할 조직이면 진즉 망해야 ㅡ.ㅡ)
또다른 문제는 조직의 산출 혹은 질이 구성원들이 떠나간 후에도 문제가 되는 경우인데, 즉 완전한 이탈이 불가능한 경우를 나타냄. 이를테면 중산층이 자기 자녀를 사립학교 전학시키는 방식으로 공교육에서 이탈해도, 이 지역 공교육의 질은 공동체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공립학교 문제는 내 알바 아니라고 할 수 없음. "빠져나올 수 없다"는 표현이 쓰임. 이것이 바로 공공재의 외부효과 아니겠나 싶지만, 이것조차 감당하기 싫어서 더 멀리 떠나는 것이 현실이기도....


미국은 전통적으로 이탈의 국가.  유럽 맘에 안 든다 - 미국 신천지로 이민 - 미국 동부가 마음에 안 든다 - 서부로 진출... 이는 기묘한 순응주의와도 연관되며, 떠나가는 이민자라기보다 항상 떠나온 이민자들이라 할 수 있음. 떠나고 나면 이전에 속했던 공동체에 더이상 신경 쓰지 않음. (다만 저자가 이 책을 쓰던 시점의 히피 운동은 이탈의 방식이되 기묘하게 항의와 결합되어 있었음) 어쨌든 싸우지 않고 이탈하는 습성 때문인지 미국 베트남전 관련한 정부의 잘못에 대해 어떤 관료도 항의하며 그만두기보다 개인사, 가족사 등을 언급하며 도망치듯 이탈하는 것에 저자 화냄 ㅡ.ㅡ  '공직자들이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정책에 항의하여 싸우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반대자의 순치'가 존재함. 베트남 정책에 회의적인 관료들에게 '공식적 반대자' 혹은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부여한 것. 회의자들은 이를 통해 스스로 양심의 위로는 받겠지만 그의 입장은 명확하고 예측가능해지며, 이들의 권력은 심각하게 손상되고 입장은 무시당함. 반대자들은 그저 팀의 일원으로서 역할분담에 참여하고 있다는 조건 하에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게 됨. 이를 통해 강력한 무기, 즉 반대의견을 제시하며 사퇴위협하는 행동이 사전에 포기당함... (나도 주류 학회에서 이런 거 여러 번 느꼈음. 너에게 비판자의 역할을 기꺼이 줄테니 이 경계 안에서 마음껏 말하려무나..... ) 이 경우, 기회주의는 공식적 의무감으로 합리화될 수 있음

"좀더 미화하자만 비밀스러운 순교라는 가면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달콤하고 복합적인 동기유발이 주어진 상황에서 비들기파는 자신의 정당화 논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한층 강도높게 지속적으로 기회주의 행동에 빠져들게 된다. 비둘기파는 자신의 이탈이 상황에 미칠 영향력과 파괴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게 된다"

 

요약하자면...

 

조직원의 
강력한
반응 양식
이탈
아니오
항의
자발적 결사체, 경쟁적 정당, (예) 소수 구매자를 대상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
가족, 종족, 국가, 교회, 전체주의 아닌 일당 지배적 정당
아니오
고객과의 관계에서 경쟁적인 기업
전체주의적 단일정당, 범죄조직

 

가능한 조합
조직이 퇴보할 때 구성원 반응
이탈
항의
조직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피드백 방식
이탈
경쟁적 기업 
반대가 허용되지만 그것이 (순치를위해) '제도화'되어 있는 경우
항의
대체제의 경쟁에 직면한 공기업, 게으른 과점체계, 기업-주주 관계, 도시 중심부 등
구성원들의 충성심을 상당히 확보하고 있고 민주적으로 반응하는 조직

 

그니까.. 대체 언제 갈라서야 하냐구 ㅜ.ㅜ  나는 그게 알고 싶은데...

 

이런 종류의 책에서 보기 드문 방식으로 저자는 글을 마침

"이 책이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것이 무엇이든 현재 무시되고 있는 반응 유형의 숨겨진 잠재력을 이끌어내 이탈 혹은 항의 방식을 택하도록 고무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글쓰는 자의 꿈이 적으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쫌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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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혹은 빈곤에 대한 책들 (2)

트랙백 기능 없어진 거냐.. 왜 뭐가 안 되지.. ㅡ.ㅡ

 

# 빈곤 과정 (조문영, 2022)

빈곤 과정 -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
빈곤 과정 -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
조문영
글항아리, 2022

 

몹시 흥미롭게 읽었으나 3부 인류세의 빈곤에서 기후위기 나오고 코로나 이야기... 는 아직 저자의 생각이 정리가 덜 된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음

국내의 빈곤 관련 서적들이 대개 서사 중심의 현실 드러내기, 그들도 사람이었네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좀더 학술적으로 정제되어 상태로서의 빈곤이 아니라 유동하는 과정으로서의 빈곤 문제를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음.  제1장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역사, 2장 '의존의 문제화'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기억이 희미해진 가까운 한국현대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들었고, 노동-자립 / 빈곤-의존의 견고한 이분법이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님을 보여줌

장소와 시기는 다르지만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중국의 빈곤문제를 통해 보편성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게  한 부분도 좋았고, 한국의 글로벌 반빈곤 산업이 청년 봉사자들의 열정덕분에 집합적 퍼포먼스로 부상한 점, 청년들의 자원봉사가  타국의 경제적 빈곤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라기보다 신자유주의 시대 실존의 빈곤을 보듬는 '치유'기제가 되버린 아이러니를 보여준 것도 너무 이해가 되었음


학생들과의 인류학 수업을 통해  소위 '말할 수 있는 프리케리아트'로서의 엘리트 대학 학생들의 현실 빈곤 인식론, 안전 담론을 들여다본 부분도 흥미로웠음. 나도 관심이 있던 문제라....

그런데 네그리/하트, 이진경, 바우만, 들뢰즈, 지젝.... 같은 사람들 -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 ㅋㅋ  이 사람들을 왜 이렇게 많이 인용하는 것인가.  이들이 멀쩡한데 하도 남한사회에서 이상하게 소비되는 것 때문에 내가 편견을 가진 것인가? 근데  인용한 부분도 보면 뭐 특별한 개념의 구축이나 혁신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여전히 미슷헤리

몇 가지 메모

  • 캐나다 메슈 D 상카르티에 '비난 테크놀로지 denunciatory technology' - 대중 자체를 통치의 도구로 삼으면서 국가는 숨어있는 '적' 숨겨진 '비밀'을 캐내도록 시민들을 부추기고 동료 시민을 서로 고발하는 통로를 열어둠 (부정수급 신고센터, 부패공익신고)
  • '열정적 빈민 the passionate poor' 인정의 정치에 물질적 정동적 에너지를 과하리만치 투입하는 이들에 대한 저자의 개념화
  • "복지가 직업화, 제도화, 산업화를 거치며 '성장한' 역사란, 뒤집어보자면 사회복지 체제 구축에 관여해온 종사자들이 가난한 사람들한테 '의존해온' 역사 (67쪽) - 이는 오코너의 지식산업 역사, 대런 맥가비의 빈곤 사파리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된 문제
  •  "노동의지에 따라 다른 형태의 빈민 통치가 작동했다는 점은, 빈곤이 단순히 부wealth에 대응하는 경제적 개념이 아니라 품행의 심사장이었음을 뜻함"'(69쪽)
  • 글로벌 빈곤 레짐의 특징 1) 초국적 (불법) 노동 및 난민 이주가 증가하고 911 이후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가 팽배하면서 (냉전 시기 서구의 근대화 프로젝트를 부분적으로 뒷받침했던) 빈곤과 안보 security의 연계가 뚜렷해짐 2) 잇따른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윤리적' 자본주의가 일시적 위선적 이데올로기를 넘어 기업의 필수적 생존 전략으로 공론화되면서 글로벌 빈곤 레짐에서 자본과 기업의 역할 급증 3) 글로벌 빈곤 레짐은 빈곤 퇴치의 '전문성'을 물신화하는 방식으로 작동 4) 전문성 뿐 아니라 대중성을 권장하면서 전세계 평범한 시민들을 빈곤퇴치 무대에 등장시킴 5) 2000년대 이후 글로벌 빈곤레짐은 단순히 서구와 비서구, 글로벌 북반구와 남반구의 비대칭적 위계를 강하하는 대신 세계화,국제정치의 역동에 따라 더욱 복잡한 지형을 보여줌

 

# 결핍의 경제학 (2014)

결핍의 경제학 - 왜 부족할수록 마음은 더 끌리는가?
결핍의 경제학 - 왜 부족할수록 마음은 더 끌리는가?
센딜 멀레이너선 & 엘다 샤퍼
알에이치코리아(RHK), 2014

 

미국에서 교양 사회과학책 쓰는 진보 리버럴들이 공유하는 무슨 대본이 있는 건가. 정말 이 분위기 미치도록 싫음. 쿨하고, 자기비하의 농담을 여유롭게 즐길 줄 알고, 사람들이 흔히 놓치는 흔한 사실/경향을 예리하게 콕 집어내는 천재성을 갖춘 자뻑 명문대학 남자 교수들....

마감을 앞두고 집중력이 폭발하는 것을 집중 배당금이라 하고, 터널 시야에 사로잡혀 다른 것을 고려하지 못해 생기는 손실을 굳이 터널링 '세금'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니 참으로 경제학 전공자 답다 싶음...
심지어 담배/술 같은 유혹 상품에 지출되는 생활비 비중을 '유혹의 세금'이라고 표현했고, 당연히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이런 상품의 소비 비중이 더 높은 것도 마치 결핍 때문에 이런 유혹에 쉽게 휘둘리는 것처럼...
이런 단어 만들어내고 자기네들끼로 신나서 하이파이브했겠지?
심지어 요점을 계속 반복하면서 책의 분량을 한정없이 늘림...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이야기인가????

사실 책에 나열된 사례들은 저자들의 핵심 개념인 '결핍'이 아니라 'distraction' 혹은 'cognitive burden' 으로 설명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문제들이 대부분이었음. 경제적 빈곤층이 왜 근시안적 결정, 바보같은 행동을 하는지,  시간/마감에 쫓기거나 다른 데 정신팔린 사람들이 왜 엉뚱한 오답을 내놓는지...
이건 채워지지 않은 욕망으로서의 결핍 때문에 그 결핍의 대상에 사로잡힌 게 아니잖아,
고려해야 할 수많은 요소 때문에 그야말로 prefrontal cortext 의 인지적 자원이 고갈되어 버린 거라구.. ㅜ.ㅜ  그게 경제적 결핍일 수도 있고, 관계의 갈등일 수도 있고, 응시하는 성적 시선일 수도 있고.... 그리고 내적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 (proprioception) 부정적 정서와 부적절한 인지적 반응이 만들어진다는 것도 이미 많은 연구가 이야기하지 않았음?

대체 행동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넌센스임..  homo economicus 라는 말도 안 되는 전제에 대한 반발이 겨우 애들 장난 같은 심리학으로의 귀결이라니...????? 인도 시장의 노점상들이 행동만 다르게 했다면 얼마든지 덜 가난해질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이 용기를 우리는 배워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다 인도에서 행동경제학 실험은 왜 그렇게 많이 했다냐?  이런 연구들은 어떻게 IRB 를 통과한 것인감?
연구한다고 개인들한테 막 백만원씩 나눠 주고 그래도 되는 거임??????

이 책의 결론이 뭐냐면... ㅋㅋㅋ 1) 당신의 대역폭을 관리하라 2) 결핍의 심리에 초점을 맞춰라 (동기부여나 교육, 당근, 채찍이 아니라 대역폭 확대에 집중하라는 것 - 어차피 인센티브 줘도 성공 못한다는 말씀) 3) 풍족함은 결핍과 맞닿아 있다

진짜 지랄도 풍년이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지... 빈곤 문제의 해결이 결국 일체유심조로 귀결되는 이 해괴한 현상을 보면서, 정말 빈곤지식산업이 얼마나 세상을 망치는지 실시간으로 감상한 느낌...

게다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이 엄청난 타자화는 뭐람?
'이 문제는 지독할 정도로 오래 방치되었고 그러다보니 이제는 어쩐지 지겹기까지 하다. 바로 이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이토록 형편없이  굴까" 이것이 바로 방안에 있는 코끼리, 누구나 문제임은 인식하지만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난감한 문제이다'

아마도 이런 책을 사서 읽는 사람 중에 빈곤층 '당사자'는 없을 것이고, 독자들은 빈곤층의 이해할 수 없는 바보같은 행동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양식있는 동료시민이라 가정한 것인가? We/Others 가 이렇게 분명한 책도 참 오랜만일세....


이 책에 진심 감화받은 리버럴들은 (빈곤층을 돕는것에 진심인!!!) 빈곤층의 왜곡된 인지체계와 '마음가짐'을 교정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려나???
"결핍의 덫에서 해방되려면 자원을 욕망보다 평균적으로 많이 가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커다란 충격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느슨함을 가지는 것 역시 그만큼 중요하다" ㅋㅋ 우리는 이것을 버퍼링이라고 부르구요... 그래서 소득만큼이나 자산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왔어요. 근데 가난한 이들은 바로 그 가난 때문에 이렇게 자산을 축적할 수가 없잖여... ㅜ.ㅜ

아우.. 매번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가 결국 스스로를 원망하며 끝나는 이런 책들.... 끝까지 읽기는 했다만 진정 책을 고르는 나의 안목이 퇴화한 것인가 자괴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네 ㅜ.ㅜ


사족으로... 1999년 나사의 화성탐사선 실패는 '영국식 측정법'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일상에서 미터법metric이라는 표준 체계를 사용하지 않고 이미 영국에서도 폐기된 imperial measure 를 사용하기 때문에 벌어진 사고였잖아.. 국제적 웃음거리 되었다고... 똑바로 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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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혹은 빈곤에 대한 책들 (1)

그나마 블로그마저 없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에버노트와 블로그를 보조 저장장치 삼아가며 살아간다.

 

작년 올해를 거치며 가난에 대한 책을 몇 권 읽고 세미나도 했었는데, 에버노트 끄적임이라도 여기 옮겨놔야겠음

 

# 가난의 문법 (소준철, 2020)

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푸른숲, 2020

 

학술 커뮤니티나 교양독서 커뮤니티 안에서 엄청나게 상찬을 받았고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윤영자 씨의 생애사가 나에게 그닥 새로울 것이 없어서 다소 놀랍기는 함... 내 주변에 너무 많았고 익숙했던 이야기들...
뭔가 이제 사람들이 어떻게 가난해지는지, 책을 읽어야 겨우 알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인가... ㅡ.ㅡ


마치 어디 머나먼 이국의 낯선 풍습과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관찰을 하듯, 이제 우리 내부의 빈곤도 여간해서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누군가가 "본격적으로" 탐구해야 알 수 있는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 매우 씁쓸함 ㅜ.ㅜ


생애사를 그리고, 하루의 활동을 시간별로 촘촘하게 쫓아가면서 어떻게 밥을 먹는지 누구와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일감을 어떻게 얻고 처리해나가는지.... 아주 꼼꼼한 관찰과 기술을 통해 특정 개인이 아니라 오늘날의 가난에 대한 전반적 그림이 그려질 수 있도록 했음
 
저자는 가난의 어원을 어려울 간 + 어려울 난 / 빈곤은 가난하여 곤한 상태. 즉 가난하여 살기 어려운 상태로 정의하며, 가난은 주로 현상을 묘사할 때, 빈곤은 분석에 동원된다지만 글쎄올시다..... 학술적 사용괴 일상어의 차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노인 빈곤에서의 젠더 차이를 설명하며 남성 노인은 젊은 시절부터 쌓아온 기존의 경력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여성노인의 경우 숙련되 기술이나 장기적 경력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쁜 환경과 조건의 서비스업으로 전환하거나 진입... 한다고 기술하는데, 일견 타당한 진단으로 보이면서 동시에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궁금과 걱정이 한 가득.
과거에 미숙련 중장년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식당보조, 간병/돌봄, 청소 등이었다면 우리 세대는 그래도 어지간해서는 고등학교 졸업했고 과거와 달리 완전 "허드렛일"보다는 제도화된 요양/돌보미 서비스, 마트캐셔, 콜센터 같은 일들을 해왔는데 과연 노년에 어떤 일자리로 이행하게 될지... 

남성들이야말로 오히려 돌봄의 와해, 산재 등의 이유로 중고령에 더욱 취약한 상태에 처하는 경우도 많고 게다가 경비 같은 일은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니 과연 어디로 갈꺼나...

빈곤의 '쓸모'가 단순히 '스스로의 안정감을 확신하고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우만의 주장처럼) 실질적으로 사회가 돌아가게 만드는 '쓸모'가 있다고 생각함 ㅜ.ㅜ

 


# 가난 사파리 (대런 맥가비, 2020)

가난 사파리 - 하층계급은 왜 분노하는가
가난 사파리 - 하층계급은 왜 분노하는가
대런 맥가비
돌베개, 2020

 

여러 모로 힐빌리의 노래와 대조되는데 빈곤층 당사자의 성장 서사라는 점에서는 일견 비슷하지만
현재 글을 쓰는 시점에서 계급의 상향이동이 확정되었느냐 아니냐, 그리고 탈빈곤을 개인의 서사가 아니라 계급정치, 사회운동 맥락에 배태시켰는가 여부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임.
밴스의 사례에서 '정치'가 공백이었다면, 대런의 경우 매우 어린 나이에서부터 빈곤/박탈에서 비롯된 분노는 정치화의 경험 속에 단련되고 혹은 좌절됨.

당사자로서 저자는 빈곤층/지역에 대한 대상화와 타자화, 소위 좌파에 의한 '전유', 빈곤을 자원 삼아 생계를 이어가는 복지 서비스 조직들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대단함. 그  서비스가 빈곤층에게 소중하다는 것은 알지만, 복지 서비스 조직들은 바로 그 빈곤층이 있기 때문에 생존이 가능한 것임. 그리고 이러한 냉혹한 진실을 서비스 수혜자 당사자들도 잘 알고 있음 ㅡ.ㅡ
게다가 선한 의도를 가진 연구자들의 '채굴' 행위에 대한 비판은 매우 신랄함.

"이런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본의 한 형태로 여겨진다. 이들의 삶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은 조직이 자신의 역할을 정당화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채굴할 데이터와 서사를 담고 있는 자본 말이다. 선의를 가진 학생, 학자, 전문가들이 줄줄이 가난 깊숙이 내려와 필요한 걸 뽑아내고는 고립된 자신들의 집단으로 물러가 가난 사파리에서 가져온 인공 유물을 검토하는 것이다"

 

"이곳은 빈곤 산업이다. 이 산업에서는 선량한 사람들도 사회적 박탈로부터 어마어마한 돈을 번다. 이 부문의 모든 사람이 경력을 유지하고 계속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문제가 남아 있어야 이 산업이 성공할 수 있다. 가난을 뿌리 뽑는게 아니라 낙하산으로 와 '업적'을 남겨야 상공할 수 있다. 그리고 자원과 전문지식을 철수해 훌쩍 떠날 때 뚜렷한 업적이 없더라도 간단히 조작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게 이 부문의 전통이다. 이 부문에서 일을 하는 방식은 보고도 못 본체하는 것이다. 실패하거나 일이 잘 안 되더라도 아무도 시인할 수 없다. 모두가 재정지원이 끊기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빠져나올 수 없는 가난,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난하지 않음으로써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는 수단으로서의 가난,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대중들이 '기대하는' 것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 ㅡ.ㅡ

 

"어떤 사람들에게 가난은 헤어나기 힘든 것이다. 그 인력에서 벗어나려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그것을 헤어날 길 없이 우리를 집어삼핀다. 빠져나가려 애쓸수록 우리 목으로 더욱 차오른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난은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먼 산비탈에 사는 괴물이다. 우리가 겪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보기까지는 내 어린 시절이 힘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기 시작하기까지는 내 인생이, 또는 실로 내가 어떤 식으로든 흥미롭다거나 의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 가난 서사를 거듭 반복하도록 유도하기 시작하기까지는 내가 말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대본에서 벗어나면, 수수께끼같이 커튼이 닫히고 수수께끼같이 조명이 희미해지며, 수수께끼같이 마이크가 멎었다."

 

자본주의 '체제'와 '구조', '정치'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엘리트 좌파에 대한 비판, 그러면서 빈곤층 스스로의 자기혁신과 지역사회의 변화 역시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당사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통렬한 비판... 외부자들이 이런 '요구'를 할 수는 없잖여 ㅜ.ㅜ

"정치인들이 진정한 해결책을 갖고 있지 못하고 심지어 이 문제를 정직하게 논의하지도 못하는 이런 절망스런 상황에서, 지금 당장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거짓 희망이나 거짓말로 채우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어떤 희망을 제시할 수 있을까? 제3의 산업혁명이 시작될 때 여기에 없을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보편적 기본소득이 시작되는 걸 보지 못할 사람들에게 말이다. 나는 우리가 정직해지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혁명은 없을 것이다. 우리 평생에는 없을 것이다. 이 체제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나아갈 것이고 우리도 그래야만 할 것이다."

"하층계급이 된다는 건 20년 전에 알았던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가디언' 기사로 가득한 뉴스 피드를 허구한 날 스크롤하고 앉아 있는 걸 의미한다."

 

다소 놀라운 점은 저자가 고등학교 중퇴의 학력이라지만, 빈곤의 건강영향, 스트레스의 생물학, 정체성 정치 같은 소위 중간계급 좌파 혹은 리버럴 필자들이 활용하는 논거와 주장을 시의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 

그러면서 문화정치, 정체성 정치에 경도된 엘리트 학생 운동에 대한 비판은 매우 단호함.... 아마도 1980-90년대 학생운동을 대하는 현장 노동자들의 애증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정함. 왜냐하면 나도 대학 들어가서 부잣집 운동권 선배들이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며 노동의 신새벽 노래 부르고, 낭만적으로 이상화된 민중, 현실과 동떨어진 "내일 당장 혁명".. 이런 거 맨날 읊어 대서 어안이 벙벙하고 황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 맨날 민중 운운 하지만 내가 학비 때문에 아르바이트 해야 해서 농활 못가겠다고 하면 그렇게 짜증을 내더라고 ㅋㅋㅋ 그래봤자 다들 20대 초반이었으니 이제는 다 용서함 ㅋ
 

"특히 대학 캠퍼스에서 발전한 활동가 단체는 정체성 정치를 비판하는 것이 억압과 불평등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본다. 정체성 정치가 사회정의 문제에 접근하는 양식이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은 문화 추진력을 피해자와 소수집단의 서사에 주로 의존한다는 점이다. 정치 안건을 추진하기 위한 트로이의 목마인 셈이다. 이런 형태의 행동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 운동이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소수집단이나 학대 생존자에 대한 공격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논의를 이어가기가 어려운 건 우연이 아니라 고의다."

 

"전반에 걸쳐 교차성을 적용하면 우리의 다문화 사회에서 작동하는 역학관계를 좀더 충실히 보여주는 그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소수집단 내에서 발생하는 교차하는 차별과 편견과 학대가 포함된다. 성소수자 내 인종주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이의 동성애 혐오, 페미니스트 사이의 성전환 논쟁, 이슬람교 공동체 내 여성의 종속성, 레즈비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 그리고 엄마가 아이들을 방치하고 학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금기 또는 공격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교차성을 통해 백인 남성의 특권만이 아니라, 서구 엘리트 대학의 풍족한 학생들이 우리 스스로 우리 경험에 대해 생각하고 논의하는 방식을 통제하려 드는 현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우리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면서 우리가 대화에 끼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모슨이나 비정상을 지지하면, 활동가들은 멸시하는 말이나 독설을 쏟아부어 비판을 묵살하고 더 이상 논의를 하지 못하게 한다. 활동가들은 말 자체가 폭력의 한 형태라고 주장하겠지만, 또한 자신들의 목적을 추구하는데 필요하다고 여기는 일이면 무엇이든 관여할 수 있는 특권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그래서 협박, 괴롭힘, 신체 폭력 행위가 용감하게 '기득권층에게 한 방 먹이는 일'로 여겨진다. 모든 상호작용을 교차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고, 따라서 권력의 역학 관계로 여긴다. 소셜미디어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감정 과잉 상태에 빠진 이 활동가들은 자주 자기 행동이 낳은 인간적 결과가 자신과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전해들은 정보나 소셜미디어의 소문을 근거로 다시 생각해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한 사람의 평판을 망치거나 취업을 방해하려 든다. 결국 이런 문화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반면 이 문화 자체는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특권집단은 자신의 언어와 행동이 어떻게 사회적 배제를 강화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소외가 계속된다고 활동가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이 활동가들은 문화적 출입제한이 있는 자신들의 논의가 하층계급 사람들과 어떻게 교차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노동계급'이라는 말이 '백인 남성'과 동의어가 되면서 계급이라는 주제를 고려하지 않고 제쳐두기가 더 수월해졌다. 최근 극우가 부상하면서 더욱 그렇다. 사회적 배제와 악습을 겪고 있는 많은 하층계급 출신 백인 남성이 특권계급 학생들 대신 비난을 받고 있다. "


"사람들은 미치광이처럼 구는 나를 응원했다. 내가 하는 말이 진실하거나 유익해서가 아니라 박수치는 사람들의 정당성을 입증해왔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 외에 세상 모든 게 바뀌어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어느 순간 나의 생각, 감정, 행동이 내 책임이 아니라는 거짓말을 믿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모두 나를 학대하고 배제하는 체제의 부산물이었다. 또 사회가 내가 처한 상황에 개입하거나 사회를 해체해 재구성해야만 내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 변화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나는 자라면서 내가 느끼는 모든 분노가 정당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단지 내가 하층계급이라는 사실만으로 말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분노 자체는 정확한 순간에 정확한 방식으로 표출해야만 쓸모가 있었다. 올바른 의도를 가지고 알맞게 사용할 때라야 정당했다. 그래도 분노의 유용성은 한시적이다.술, 담배,  약물, 정크푸드와 마찬가지로 정당한 분노의 새로움은 곧 사라지고 충동만이 아남아 우리의 감정을 격화시키고 괴롭히는데, 이 때 대개 문제의 해결책은 우리 코앞에 놓여 있다. 이것은 좌파 사람들한테는 인기가 없겠지만 솔직한 이야기다. 이 경우에 나는 내 이기심을 감추는 연막으로 정당한 분노를 이용했다. 나 개인의 의제를 제기하기 위한 트로이의 목마로 '노동계급'을 이용했다. 게다가 개인적 분노가 어떻게 교묘히 내 생각의 방향을 결정짓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내가 아는게 많고 대단히 도덕적이라 생각하면서 이 모든 일을 했다."

 

사회적 맥락이 매우 다르기는 하지만, 이 책은 어쩌다 가난해졌나 혹은 빈곤의 실상은 무엇인가... 라는 종류의 르포라기보다는 가난에 대한 내부자와 (심지어 우호적인) 외부자들의 인식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는 측면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진 논의는 아니지만) 읽어볼 가치가 있음. 매우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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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랩스 책읽기

예전에 읽었던 책들 메모랑 요즘 읽은 책이랑 순서 뒤죽박죽... 그래도 정리해두는게 안하는 것보다야 낫지..  나를 위한 글인데 순서가 엉망이면 뭐 어떤가

 

# 전국축제자랑 (김혼비, 박태하, 민음사 2021)

 

전국축제자랑 -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
전국축제자랑 -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
김혼비.박태하
민음사, 2021

 

 
재미있게 가볍게 읽었으나.... 좀 묘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
일관되지 않음과 온갖 부조리극, 혼돈의 카오스가 사로 잡은 K-축제란 것이 신기한 박물지처럼 그려졌다만... 나는 사실 이런 축제에 아마 저자들보다 많이 가본 사람 ㅡ.ㅡ
 
일부러 찾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지만, 절기에 맞춰 열리는 축제는 기가 막히게 그 시기가 한창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역 담당 공무원의 명운이 걸려있다!) 어떻게든 최고의 순간은 누리면서도 인파를 피할 것이냐에 초점을 두고 스케줄을 짜본 경험이 허다할뿐 아니라 (특히 산수유축제, 매화축제, 벚꽃 축제가 그러하다!!!) 별 생각 없이 절기를 맞아 찾아갔는데 현장에 가보니 예상치 못했던 지역 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갑분싸 강제로 축제를 즐기고(?) 왔던 적도 많았던지라... 이를테면 강진 갈대밭 축제, 김제 지평선 축제, 보성 차 축제...
 
이 책의 저자들이 경험했던 초현실적 순간이 못지않게 많았음.  최근 기억나는 것은 우연히 찾게 된 김제 지평선 축제. 분명히 축제 개시 전날이라 했는데 난데없는 인파에 놀랐고, 어이없어하던 공군 에어쇼 리허설을 넋놓고 보던 우리들의 얼간이 같은 모습에 놀랐고, 총성없는 전쟁터처럼 진심으로 경쟁을 벌이는 마을 부녀회 먹거리코너의 고퀄에 놀랐고, 안내부스에 가서 어디 가면 지평선 보이냐고 물어봤다가 찐따 된 경험 ㅋㅋㅋ 여기가 지평선이라고 ㅋㅋㅋㅋ 네??
 
새벽 첫 버스 타고 내려가 화개장터에서 화개장터에서 재첩 수제비 먹고 쌍계사 벚꽃길 걸어올라가 차 한잔, 그리고 다시 장터로 돌아와 비빔밥이랑 메기 들어간 참게탕 먹던 기억이 아련하구나...
 
 
# 월간주폭초인전 (dcdc, 알마 2019)
 
월간주폭초인전
월간주폭초인전
dcdc
알마, 2019

 

월간영웅홍양전, 주폭천사괄라전은 예전에 단편집 모음에서 이미 읽었던 것이고,
수정초인알파전까지 묶어서 경기여성히어로 연대 3부작으로 묶임.
 
터지는 현웃과 더불어 건전한(?) 관점, 권선징악(?)까지 모두 챙길 수 있어서 순식간에 읽어치움.
dcdc 님은 왜 본명으로 돌아온 게야 헷갈리게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심너울, 아작 2020)
 
아주 가까운 근미래, 기술은 놀랍게 진보했으나 사회질서는 여전한 K 사회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고도 씁쓸하게 그려냄. 
제목 단편의 내용이 마냥 놀려먹을 수 없는지라 마냥 웃을수만도 없었다구... ㅜ.ㅜ
이제 이입하는 세대의 연령이 달라진 걸 느꼈다니까....
 
그런데 한편으로.. 대학원과 학문세계에 대한 묘사들이 어쩐지 특정 계층에게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 마음이 좀 불편.... 이건 세대 차이일까???
 
어쨌든 드디어 90년대생 작가들의 글을 읽게 되는구나   
 
 
# 왕은 안녕하시다 (성석제, 문학동네 2019)
 
 
왕족 죽고 나서 어떤 복식을 얼마나 오랫 동안 입을 것인가 가지고 끝도 없이 싸워제끼는 양반들 모습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임금 찜쪄먹는 (왕은 진정한 나의 조국 송나라의 총독에 불과하니 우습지!) 사대부들 힘겨루기나, 눈하나 깜짝 안하고 사람 목숨 날려버리는 왕이나 다 꼴보기 싦기는 마찬가지.
복잡한 시대 속에서 하필 '성'씨라는 성을 가진 ㅋㅋ 액자소설 속 주인공이자 아마도 액자소설의 필자인 '파락호' 출신 '어사'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가 느꼈던 감정들에 깊이 공감했는데, 이건 뭐랄까.... 정나미가 떨어지지만 결코 버릴 수는 없고, 그토록 미워했던 상대이지만 애잔함을 떨쳐버릴 수 없는 인간사, 인간관계의 복잡함게 대한 공감 때문이 아닐까 싶음
 
하필 중요한 역사적 장면마다, 인물마다 함께 하는 허풍선이에다 (숙종의 비밀 형님에, 장옥정, 송시열과 때를 같이 하고 김만중의 사씨남정기를 전파했다!!!) 심지어 여러 스승을 (돌아간 아버지까지 한 표) 거치며 절세 무공을 깨우쳐 마침내 이기어검의 경지에 이르고 (현웃 터짐 ㅋㅋ) 무협소설답게 멍텅구리라는 절대 무기도 우연히 얻게 됨. 고대소설이니까, '성'씨가 주인공이니까 가능한 일 ㅋㅋㅋ
 
아 진짜 성석제 작가 웃김...  박태보와의 플라토닉 러브는 갑분 또 무엇이여...  소설 읽다가 여러번 현웃 터지면서도 애잔함과 씁쓸함과 뭐 그런 복잡한 감정들이.....
이래서 성작가를 좋아함
 

 

예전에 읽다가 중간에 어찌 휴지기가 있어서, 처음부터 다시 읽음.

소설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토록 헛헛한 마음으로 끝날 줄은 몰랐네..

Ares 에서 phobos 를 거쳐 처음 화성에 착륙하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모든 것을 만들어내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의 기술적 도전, terraforming 의 흥미로운 실험들이 이어질 줄만 알았다구.. ㅜ.ㅜ  2편 3편이 green & blue mars 아냐.... 테라포밍 어렵지만 착착 진행되고 그 다음으로 이어질 줄 알았지.... 하아.....

 

자원이 있는 곳에 탐욕이 몰려들고, 더할나위 없이 강해진 자본의 전횡과 착취, 극단적 불평등. 그리고 저항과 혁명의 시도들, 실패.... 아니, 실패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SF는 역시 사회실험 쟝르... 

예전에 [쌀과 소금의 시대] 읽을 때 진즉 깨달았지만, 작가 필력이 후덜덜.... 

 

결국 자신의 손으로 힘들게 건설한 모든 것들, 그야말로 모든 것들이 스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봐야하고 동지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the first hundred 들의 심상에 너무나 깊이 감정이입....

Nadia 가 space elevator 추락하는 모습에서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을 느꼈을 때, 마치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거대한 DNA double helix가 춤추는 듯한 모습을 그렸을 때, 내 눈으로 직접 보는 줄 알았다구... 대홍수와 지각변동의 엄청난 파괴력에도 후덜덜....  Frank Chalmers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찔끔.... 

 

후속 시리즈도 읽어야겠는데, 이제는 문고판 사이즈 글씨가 너~무 읽기 힘들어서 (특히 밤에 침대에서 읽으면 글씨가 안 보여... 쓸모 없는 눈 갖다버리고 싶음 ㅜ.ㅜ) 어쩔 수없이 아마존 킨들 버전 다시 사야 함...  소설에서 DNA repair 치료 하는 거 보니까 쏠쏠해보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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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혹은 마음에 대하여

오래(?) 전 급하게 남겨놓은 메모만으로 당시의 고민과 감정을 유추해서 '추리'하며 써내는 독후감의 쟝르는 대체 무엇인가... ㅜ.ㅜ

 

# 리사 배럿. 감정(emotions)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생각연구소 2017)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사 펠드먼 배럿
생각연구소, 2017

 

 

뭔가...  내 세대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여러 학문 분야에서 일정한 지점에 이르러 비슷하게 공통의 문제에 직면하고 새로운/하지만 비슷한 시각을 취하기 시작한 것 같음. 자동적 지식과 타동적 지식의 구분, 우리의 감각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실재'와 그것을 인식하는 우리의 value-laden, idea-laden, 혹은 affection-laden 인식에 대한 공통된, 메타적 자각이랄까???


실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반드시 정확한 반영이 아니고,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취하게 된다는 점.  이것은 너도 옳고 나도 옳다, 각자 나만의 세계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님. 이러한 비판적 실재론 패러다임을 통해서 "구성된 감정이론" 또한 이해할 수 있음.

가장 원초적인 것이라고,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감정조차 개인과 사회적 문화, 관습, 학습에 의해 (그리고 내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뇌의 신경망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구성'된다는 것...

이러한 개념은 몹시 흥미롭고 설득력있는데, 다만 기우라면 우리가 '스스로 감정을 구성하는 설계자'라는 관념이 마치 합리적/이성적 과정을 통해 감정을 연출하고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오해할 것 같음 ㅡ.ㅡ . 그래서 사이비 마음수련이나, 엄연한 고통의 실재가 존재하는데 다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일체유심조 순응의 이데올로기로 악용되지 않을까..... 너무 지나친 걱정이려나???

 

* 구성된 감정이론 theory of constructed emotion

"감정은 내장된 것이 아니라 더 기초적인 부분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에 따라 다르며,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것. 즉 신체 특성, 환경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발달하는 유연한 뇌, 이 환경에 해당하는 문화와 양육조건의 조합을 통해 출현. 감정은 실재하지만 분자나 뉴런이 실재하는 것과 같은 객관적 의미에서 실재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화폐가 실재하는 것과 갆은 의미에서 실재. 감정은 착각은 아니지만 사람들 사이의 합의의 산물"

"감정 개념이 있어야만 관련된 감정을 경험하거나 지각할 수 있음"

즉, 공포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 공포를 경험할 수 없고, 슬픔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슬픔을 지각할 수 없음

구성된 감정이론에 포함된 구성은 사회적 구성 (문화와 개념의 중요성) + 심리적 구성 (감정이 뇌와 신체의 핵심체계에 의하여 구성된다고  간주) + 신경 구성 (경험에 따라 뇌의 배선이 달라진다는 견해 수용)의 세 가지를 포함


* 감정 입자도 emotional granularity

 

내면의 감정 상태를 얼마나 정확히 판독할 수 있는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도록 훈련시켜서 감정입자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함. 이는 자기 객관화와 메타 인식의 세계이며, 묘하게 불교의 마음수련과 닮아있고 실제 저자도 자주 언급함.
신체 반응이나 표정으로 감정을 예측하거나 읽어내는 것은 매우 부정확함. 동일한 감정 범주가 상이한 신체반응을, 반대로 다른 감정이  비슷한 신체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음.

"일관성이 아니라 다양성이 표준"

감정 지문은 신화! 이런 면에서 개인의 표정이나 신체 반응을 통해서 감정상태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위험

 

* 정동실재론 affective realism

 

자주 등장하는 두 가지 개념

  • 내수용 (interoception) - 감정의 핵심 성분이지만 감정 경험에 비하면 훨씬 단순. 신체에너지의 예산 통제 담당
  • 정동 (affect): 하루 종일 경험하는 일반적 느낌. 감정이 아니며 훨씬 단순한 느낌. 1) 쾌감 혹은 불쾌감 - 유인성 valeence, 2) 평온 또는 동요 - 흥분도 arousal
  • 정동은 내수용에 의존. 가만히 있거나 잠들어 있을 때도 끊이지 않는 연속적 흐름. 감정적으로 경험하는 어떤 사태에 대한 반응으로 켜지거나 꺼지는 것이 아닌 의식의 근본적 측면.

정동을 모른 채 정동을 경험할 경우, 정동을 세계에 대한 자신의 경험이 아닌 세계에 관한 정보로 취급할 확률이 높음. 하지만 우리가 세계에 관한 사실로 경험하는 것의 일부는 우리의 느낌에 의해 만들어짐. 화창한 날이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산다는 보고를 더 많이 하지만, 날씨에 대한 질문을 노골적으로 받으면 이런 편향 사라짐.

"우리는 뇌가 느낀 대로 믿는다"


사람들은 합리적 사고를 통해 감정을 극복할 수 없음. 왜냐하면 신체 예산 상태가 모든 사고와 지각의 기초이며 내수용과 정동이 매순간에 개입하기 때문.

이렇게 보면 인간 뇌의 진정 놀라운 점은,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과 통계적 학습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 아닐까 싶음. 이런 면에서 베이지안의 a prior/posterior 확률 추론은 뒤늦은 깨달음 같기도 함. 오히려 머신러닝을 통해 인간 스스로의 뇌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음.

인간의 가장 주목할만한 적응 특성 중 하나는 인간 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배선을 위해 모든 유전물질을 후세에 전달할 필요가 없다는 점 이는 생물학적으로 엄청 많은 비용을 초래할 수 있음. 인간 유전자는 뇌가 주위 사람들의 뇌를 바탕으로, 즉 문화를 통해 발달하는 긋을 가능케 함!!! 인간의 문화는 진화의 효율을 높이는 역할을 하며, 우리는 후손의 뇌를 배선(!)함으로써 그들에게 문화를 전수

지각, 시각이든 청각이든 사실 객관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발견하는 신체와 이런 변화의 의미를 구성하는 뇌가 세계와 상호작용할 때 구성되는 경험

 

감정의 기능 - 1) 감정 개념이 다른 모든 개념과 마찬가지로  의미를 구성한다는 사실에서 비롯, 2) 개념이 행동을 명령한다는 사실에서 비롯, 3) 신체예산을 조절하는 개념의 능력과 관련

 

* 다양성에 기초한 개체군 사고

 

동일성에 기초하는 본질주의와 다양성에 기초하는 개체군 사고는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 하지만 본질주의는 반대 증거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음. 이건 종교도 마찬가지 아녀??? 본질주의가 감정이론에 적용될 때 이는 학설 이상의 것이 됨. 이는 인간존재의 의미에 대한 그럴듯한 이야기를, 즉 인간본성에 대한 고전적 이론을 제공하기 때문!!!

감성지능의 핵심은 우리의 뇌가 특정 상황에서 가장 유용한 감정개념의 가장 유용한 사례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감정을 구성하지 않을 때는 가장 유용한 다른 개념의 가장 유용한 사례를 구성하는 것!


바이러스는 신념, 성실, 가치관에 관심이 없고 인격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지만, 정동은 내수용 감각을 우리 자신에 관한 어떤 것으로, 나의 잠정과 단점이 결부된 어 떤 것으로 변모시킴. 그러면 감각은 인격적인 것이 되고 나의 정동적 적소 안에 머물게 됨. 불편은 순전히 신체적인 것이지만 괴로움은 인격적인 것이며, 이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함.

 

* 올바른 법률 제도를 위한 조언 "법률제도를 위한 정동 과학의 선언"

저자는 감정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혹은 과도하게 '근본적'인 것으로 해석되는 현실, 특히 법률체계에서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대안을 제시함

  • 감정표현: 감정은 표현되지도 표출되지도 않으며, 그밖에 어떤 식으로든 얼굴, 신체, 목소리 등을 통해 객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무죄/유죄 또는 처벌을 결정하는 사람은 이를 알아야 한다
  • 실재: 시각, 청각, 그밖의 감각은 언제나 느낌의 영향을 받는다. 가장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증거조차 정동 실재론의 영향을 받는다
  • 자기통제: 자동적이라고 느껴지는 사태는 반드시 완전히 당신의 통제밖에 있지는 않고 반드시 감정적이지도 않다. 예측성 뇌는 당신이 감정을 구성할 때 사고 또는 기억을 구성할 때와 똑같은 정도의 통제를 제공한다,
  • '내 뇌가 그렇게 하도록 시켰다"는 변명을 조심해야 한다. 특정한 뇌 부위가 나쁜 행동을 직접 야기했다는 주장을 의심해야 한다,
  • 본질주의를 유념해야 한다. 모든 문화는 성인, 인종, 민족적 배경, 종교 같은 사회적 범주로 가득 차 있으며, 이들을 자연 깊숙이 경계산을 가지고 있는 물리적, 생물학적 범주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감정의 고정관념은 법정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은 진화의 결과이지만 동물조상으로부터 물려밭은 본질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감정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이런 경험의 수동적인 수취인은 아니다. 당신은 따로 지시를 받지 않더라도 타인의 감정을 지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을 타고나거나 학습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타고난 것은 개념을 사용해 사회적 실재를 구축할 수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 사회적 실재를 통해 다시 뇌가 배선된다. 감정은 사회적 실재의 매우 실제적인 창조물이며, 이것이 가능한 까닭은 인간의 뇌가 다른 인간의 뇌와 협조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개념들을 가진 보편적인 마음이 있어야만 우리 모두가 같은 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환경과 물리적 환경에 따라 배선이 진행되어 결국에는 여러 종류의 마음을 산출하는 대단히 복잡한 뇌로 충분하다."

 

* 인간의 마음에 설정된 세 가지 모드 

  • 1) 정동 실재론 - 당신이 믿는 대로 경험하는 현상은 뇌의 배선 때문에 필연적.  내수용 신경망의 신체예산 관리부위는 뇌에서 가장 강력한 예측자이고 일차 감각부위는 열렬한 청취자. 논리와 이성이 아니라 정동이 실린 신체예산 예측이야말로 당신의 경험과 행동을 좌우하는 주요 운전자! 정동 실재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음 정동실재론을 점검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사람들은 절대적 확신과 고집불통에 빠질 것! 정동 실재론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당신이 이것에 대해 속수무책인 것은 아님!!! 정동 실재론에 대한 최선의 방어책은 호기심!!!!!  불확실성을 어색해하지 말고 수수께끼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의심의 함양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조언. 이런 습관은 마음속 깊이 뿌리내린 신념에 반하는 증거를 평온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지식 탐험의 기쁨을 경험하는데 도움을 줄 것임. 넵! 명심하겠슴다!
  • 2) 개념 - 인간의 뇌는 개념 체계를 구성하도록 배선. 하지만 필연적이지 않은 것은 당신이 '특정'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 개념은 단순히 '당신의 머릿 속에' 있지 않으며 감각 입력이 예측과 상호작용하면서 예측과 행동이 동기화되고 서로의 신체예산을 조절. 개인적 경험은 행동을 통해 능동적으로 구성됨. 우리는 우리 경험의 설계자일 뿐 아니라 예산을 직접 담당하는 전기 기사이고ㄷ 함. 개념은 인간 생존에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만 개념을 통해 본질주의로 가는 문이 열린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함!!!
  • 3) 사회적 실재 - 갓 태어난 아기는 신체예산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누군가 대신 해주지만, 이 과정에서 아기 뇌는 통계적으로 학습하면서 개념 창조하고 환경에 따라 배선 작업 진행. 이 환경에는 사회적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해놓은 다른 사람들이 가득. 그래서 이 사회적 세계가 아기에게도 실재가 됨. 사회적 실재야말로 인간의 막강한 능력. 인간은 순전히 정신적 개념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 그러나 어떤 '특정한' 사회적 실재로 필연적인 것은 아님. 이는 해당집단에 기여하는 하나의 실재일 뿐이며 물리적 실재의 제약도 받음

마음의 이런 세 가지 필연적 측면을 통해 구성적 견해가 주는 교훈은 바로 '회의적 태도'!!!! (반면 본질주의는 확실성을 깊이 신봉) 우리가 파악할 단 하나의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뇌는 주위에서 들어오는 감각 입력에 대해 하나 이상의 설명을 만들어낼 수 있음. 적당량의 회의주의는 고전적 견해의 요전적으로 공정한 세계와는 다른 세계관을 낳음. 사회에서 당신이 차지하는 위치는 무작위로 결정된 것도 아니지만 필연적인 것도 아님. 예컨대 인종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은 사회적 실재에서 뇌 배선의 물리적 신재로 변화할 수 있으며 그래서 빈곤이 유전자 탓이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음. 이 대목에서 필자가 스티븐 핑커 까대서 기분 급 좋아짐 ㅋㅋㅋ 흑인이 백인보다 복지 수당 받을 확률이 더 높다고 믿는 것이 비합리적인 것이 아닌게, 이게 현실에서 맞기 때문. 다만 핑커는 과학자들이 정치적 공정성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해석하는데 비해서, 바렛은 복지 통계가 맞는 것은 '우리가 사회를 통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함.


물리학, 화학, 생물학은 소박실재론과 확실성에 뿌리를 둔 직관적이고 본질주의적 이론으로 시작했으나, 이런 이론을 넘어서는 진보가 이루어진 것은 낡은 관찰이 특정 조건에서만 참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 이에 따라 개념의 대체 작업이 이루어짐. 정치 혁명을 통해 새 정부와 사회질서가 들어서는 것처럼 과학혁명은 특정한 사회적 실재를 또다른 사회적 실재로 대체. 과학의 개념들은 본질주의에서 다양성으로, 소박 실재론에서 구성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가고 있음

다 읽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시에, 무언가 실재론과 구성주의의 양날개가 크게 펼쳐지고 지금의 학문 세대가 거기에 함께 올라타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됨....  

 

# 마샤 누스바움. 타인에 대한 연민 (알에이치코리아 2020)

 

타인에 대한 연민 -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타인에 대한 연민 -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마사 C. 누스바움
알에이치코리아(RHK), 2020

 

왜 원서의 제목을 이따구로 바꾸었는가.. The monarchy of fear -  두려움이라는 군주...  책을 쓰게 된 동기이자 전반적인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좋은 제목이었는데 말이지

뜻밖에 누스바움의 생활세계를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밤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거나 좋은 아이디어도 컴 앞에 바로 앉아있을 때 차근차근 떠오른다든가 ㅋㅋㅋ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 대선 결과를 해외에서 맞이하면서 근심과 불안에 시달리다가 이 두려움이야말로 미국 사회의 현재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라는 것을, 이 감정에 대해 더 정리해보아야겠다는 "행복한 발견"으로 "희망을 품고 잠에 들었다"는 뭐랄까... 탈인간급의 경지를 엿보게 되었는디 ㅋㅋㅋㅋ 진짜 서론에서 육성으로 현웃 터졌음....


글쎄. 이런 차분함을 전선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활동가들은 누릴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팔자 좋다'고 치부해버릴 수 없는 것이 이렇게 한발 떨어져 문제를 숙고하고 장기적 전망과 근본적 질문을 던져주는 철학자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우리도 나아갈 수 있는 것...  향수를 불어일으키는 역사상 완벽한 민주주의 사회도 없었고, 지금의 상황이 '우리의 행진이 뒷걸음질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재앙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 을 말하면 지금의 현장에서 절박하게 싸우는 이들에게는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오랜 역사를 두고 본다면 그래도 진실....  

 

절대 군주제 국가라면 복종을 가능케 하는 두려움만 있으면 되지만 민주주의에서는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지적부터...

"선에 대한 믿음, 미래에 대한 희망, 민주주의를 좀먹는 증오와 혐에오 맞서려는 결심입니다. 저는 이 증오, 혐오, 분노가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민주주의 개 피곤하고 어려움.... ㅜ.ㅜ

 

감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과 규범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된다는 지적은 중요함. 이 대목에서 배럿의 연구를 인용했고, 그래서 오랫동안 보관함에 담아두기만 했던 책을 드뎌 읽게 되었음.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이 좋음

"인종 혐오, 여성 멸시, 이민자들에 대한 두려움, 장애인을 혐오하는 감정들 중 불가피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은 결코 없다. 지금까지는 그래왔을 수 있으나 앞으로는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당연히 그러지 않을 수 있다."

 

두려움의  나르시시즘을 극복하고 해방되는 과정을 인간발달을 비유로 설명. 하지만 개인들의 관계에서든 사회와의 관계에서든... 두려움의 군주에 사로잡힌 나르시시즘은 얼마나 만연해있는가 ㅜ.ㅜ

 

"사랑은 자기중심적인 요구 이상으로 타인을 독립된 개체로 인식하는 능력, 상대가 무엇을 느끼고 원할지 상상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노예가 아닌 분리된 삶을 허락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는 절대 왕정에서 민주주의적 관계로의 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기의 분노는 근본적인 모순에 입각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이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 나는 무력하고 우주는 내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생각과, 나는 독재자이며 모든 사람이 나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공존한다. 무력한 신체, 자기애, 유아기적 나르시시즘의 조합이 그 모순을 만들었다."

 

분노는 확실한 생각을 동반하는 명환한 감정으로, 강하고 남성다운 중요한 감정처럼 보이지만, 분노는 두려움의 산물. 그 이유는 1) 인간은 타고난 취약성 때문에 자신이 곤란해지지 않는다면 절대 분노하지 않을 것 (문제는 두려움을 잃으면 사랑도 잃게 된다는 점 2) 두려움은 상대적 지위에 대한 집착에도 불을 붙인다는 점.


마찬가지로 혐오 또한 비인지적 감각반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드러진 인지능력.
그리고 인간 사회에서 자신의 혐오스러운 모습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면 흔한 전략의 도움을 받을 수있는데, 특정 집단을 우리보다 더 동물적이라고, 더 많은 땀을 흘리고 냄새가 나고 성적이며 죽음의 악취가 풍기는 집단이라고 규정하면.. 그런 집단을 만들어 성공적으로 지배하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ㅋ . 이것이 바로 투사적 혐오 개념의 토대 (projective disgust).. 사람들이 혐오를 느낄 때  원하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회피...

 

진보적 운동에서 중요한 점은 행위와 행위자를 구분하는 것이라는 지적에 이성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음. 타인의 인간성을 포용하면서 그들이 저질렀을지 모르는 잘못된 행동만을 반대해야 함. 그래야 동료 시민의 말과 행동에 찬성하지 않더라도 그들을 친구로 여길 수 있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전래 속담이 바로 이런 철학적  숙고를 담은 내용이었다니.. ㅡ.ㅡ


성소수자를 향한 폭력에 대한 연구가 말해주는 타깃 선택의 이유는 뿌리 깊은 증오보다는 오히려 단지 경찰이 그들에게 관심이 없어 그들을 공격해도 처벌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 이런 면에서 법과 규제, 통합과 가시성이 중요.. 그래서 젊은이들이 보다 많이 커밍아웃해야 한다고 메시지..  그러면서 소셜미디어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코미디가 소중한 반혐오 장르라면서 그리스의 희극 시인을 데려왔는데 ("몸의 우스꽝스러운 움직임에 웃을 수 있다면 소수자들의 신체도 불안함 없이 바볼 수 있게 된다") 한국의 다수 코미디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앞장서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런 말씀 못하실텐데?

 

시기와 비판의 차이? 시기는 적대감과 함께 파괴적 소망을 담고 있어 소유한 자들의 기쁨을 망치고 싶어한다 ㅋ

최근 성평등을 둘러싼 백래쉬 중 여성들의 평등, 공적인 삶에서의 완전한 평등을 방해하는 것이 세 가지 있는데: 1) 의무를 다하지 않는 여성 (집안일 안 하는 여자들 ㅋ) 이데올로기, 2) 육체성을 가진 여성 존재의 강조 (그래서 여성을 단속해야 함 ㅋ) 3) 성공한 경쟁자로서의 여성 ㅋㅋ (그래서 더 이상 여성우대가 필요 없다!) - 이는 이민자들에 대해서도 옹일하게 적용 가능 하지만 1, 2가 결합하면서 여성 문제에서 더욱 두드러짐 하지만 누스바움의 반론은 간단.... "여성이 타고난 본성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하지 못하게 막을 필요가 없다" ㅋㅋ

성차별주의자와 여성 혐오자의 구분도 명쾌한데, 전자는 '불쌍한 여성들, 언제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지'라고 말하는 반면 후자는 '빌어먹을 여자들이 못 들어오게 해' 라고 표현함 ㅋㅋㅋ 이런거 보면 한국의 중장년세대는 성차별주의자, 떠오르는 이대남들은 여성혐오자로 분류하는게 맞을 것 같음


여성혐오와 성차별주의가 항상 같은 것은 아니며, 성차별주의자들의 믿음은 증거로 반박할 수 있고 실재로도 그래왔음. "진짜 문제는 조롱, 혐오 표현, 고용과 선출의 제한,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존중 거부 등의 방법을 써서라도 구시대의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남성들의  결심!" 하지만 '여성혐오는 순간의 위안일 뿐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다'고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는 혐오 자체가 여성들을 위축시키고 제약하는 칠링 효과가 엄청나잖아.. ㅡ.ㅡ 누스바움 전반적으로 낙관적이심....

 

희망은 두려움의 반대편에 있으며, 둘다 불확실성에 반응하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응. 희망은 전진하고 두려움은 물러선다, 희망은 취약하고 두려움은 자기방어적이다... 두려움은 타인의 독립성에 대한 믿음보다는 통제하고자 하는 군주의 욕망과 비슷.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지 않는 사람은 통제하려는 사람, 군주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음. 내욕망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무엇도 좋지 않으며  불확실성과 취약성의 여지도 없고, 희망도 없다! 뭐 이런 논리...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을 지탱하는데 도움이 되는 영역으로 추천해준 것이.... 시와 음악을 비롯한 예술, 교육기관이나 다양한 토론 집단의 비판적 사고, 타인에 대한 사람과 존중을 실천하는 종교단체 (????), 폭력을 지양하고 대화로 정의를 추구하는 연대단체, 그리고 (그런 단체들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정의에 대한 이론들..

 

허나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ㅋ '혐오와 수치심'에서도 그러했지만 '사회정의를 으뜸으로 삼는 유대교'를 향한 신실한 신앙... 이 양반 사상에서 제일로 이해 안가는 것이 종교.. 고상하고 진보적인 엘리트 유대교회 신도라서 그런가... 당최 이해불가.... 존재론적 유신론도 아니고...

"철학자들은 종교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무척 종교적인 나라인 미국에서 철학자들이 대중적 영향력을 거의 끼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리석거나 천해서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종교를 믿는 개개인이 그 안에서 분열과 보복보다느 포용과 애정이라는 희망의 요소를 찾길 바라야 한다.  철학은 적을 존중하는 법은 알려주지만 적을 사랑하는 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예술이, 또 많은 이들에게는 종교가 필요하다"

네? 뭐라구요???????

 

인종과 계급의 차이를 넘어, 자신이 속한 집단을 초월하는 공동의 목표를 생각해내는데 도움을 주는 방법으로 공공업무 의무복무 제도 제안....  계급분리가 고착화되는 상황에서 나도 동의함.. ㅜ.ㅜ  하지만 이게 체험학습으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하...

 

전반적으로 찬찬히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가끔은 과연 이 방법이 통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깊이 빠져들 수 있는 묵직하면서도 희망적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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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그리고 갑자기 조지오웰

블로그 포스팅이 거의 매년 일정하게 오른쪽 꼬리가 길게 늘어진, 전형적인 skewed 패턴의 분포를 따르고 있음. 

 

# 마이클 영. 능력주의 (이매진 2020)

 

능력주의 - 2034년,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엘리트 계급의 세습 이야기
능력주의 - 2034년,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엘리트 계급의 세습 이야기
마이클 영
이매진, 2020

 

 

IQ + effort = merit

인간 본성과 가치의 수많은 측면 중 단일 능력, 즉 지능으로 모든 것을 판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마이클 영은 일종의 대안역사소설을 썼지만,
어째 그 내용이 풍자로 읽히지 못하고 모름지기 능력주의란 이래야 하는구나... 로 오해받는 현실을 어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네 ㅡ.ㅡ  한국사회 가져올 것도 없이, 토니 블레어가 능력주의 사회로 나아가겠다고 했을 때 노인네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놀라운 것은 이런 막무가내 능력주의로 몰아붙였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보여준 내용들이 이미 한국 사회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는 것들.... 이러면 웃을 수가 없잖아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정교한 (점점 앞당겨지는) 지능 측정 시스템, 그에 다른 성과의 배분, 무엇보다 이제 모든 것이 공정하다는 (객관적 차이에 의해 응분의 몪이 돌아가고 있으니!) 정당화 이데올로기.... 어째 능력으로 평가했는데 선별적 결혼 전략과 조기투자  (심지어  입양, 납치, 유전자 조작) 능력 자체가 세습화되는 기현상.....

책이 쓰여진 시점을 생각한다면 정말 예리한 통찰... 어쩌다보니 예언서 ㅜ.ㅜ

 

어쨌든 마지막 '혁명'이 여성들로부터 시작된 것은 의미심장... 이 가상의 필자는 혁명이 부질없다고 생각하며 낙관했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았다는 점 또한....

 

"특정한 가족의 성원으로서 시민들은 자기 자식이 모든 특권을 누리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동시에 다른 누구의 자식이든 특권을 누리는 데는 반대한다. 시민들은 자기 자식만 빼고 다른 모든 아이들에게는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기를 원한다.... 우리는 가족이 하는 저항을 과소평가했다. 가정은 지금도 가장 비옥한 반동의 온상이다."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아동기가 계속 짧아지고 교육적 의미에서 말하는 아동기는 계속 길어지면서 딜레마가 생겨났다."


"불공정한 교육 때문에 사람들은  환상을 유지할 수 있었고, 불균등한 기회 때문에 인간의 평등이라는 신화가 자라났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신화라는 점을 알지만 우리 조상들은 알지 못했다"


" 오늘의 상층 집단이 내일의 상층 집단을 길러낼 가능성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높다. 엘리트 집단은 이제 세습화되는 중이며, 세습의 원리와 능력의 원리가 결합되고 있다."

 

# 리차드 리브스. 20 vs 80 의 사회 (민음사 2019)

 

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민음사, 2019

 

내용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으나 주어와 목적어가 분명하고, 능동태로 쓰여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음. 그동안 불평등에 대한 수많은 교양서적들이 마치 상위 1% 문제만 해결되면 (심지어 상위 20% 속하는 이들조차 마치 자신은 서민이고 1%만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 혹은 타자화된 모습으로 그려진 빈곤층 문제만 해결한다면 될 것처럼 그리고, 정책 또한 어디선가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할 그 무엇처럼 비인칭으로 쓰이곤 했음


허나 이 책에서 저자는 본인이 속한 계급, 중상류층 엘리트들이 이기적 의도는 아니었지만 개별적으로 합리적이었던 행동이 집합적으로 불평등, 특히 기회불평등, 인적자본의 불평등에 엄청나게 기여하고 있으며, 이를 자각하고 어느 정도 포기하지 않으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함.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공자님 소리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기득권이 있고 그걸 일부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음


상대적 지위를 갖는 계층 구조에서 누군가 상층에서 내려오지 않는 이상 어떻게 상향 이동성이 생겨나겠음.. ㅜ.ㅜ 당연한 소리이지만 마치 그동안은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샹향 이동만 이야기하고 아무도 누군가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대놓고 이야기하기 꺼려했던 걸 생각하면 속이 씨~원함

 


"중상류층은 자신의 막대한 권력을 공정성이나 형텅성에 대한 고려 없이 자신의 지위와 자리를 지키기 위해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지위가 전적으로 자신의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이기적이 되었다. 이웃이나 동료를 대한는 태도가 이기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더 큰 그림에서 이기적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이게 주어지는 조세혜택을 당연한 특권인 듯이 받아들이고 우리의 목적을 위해 다른 이들의 기회ㄴ를 차단하는 식으로 이기적이다...... 퍼트넘은 그의 저서 '우리아이들'에서 이책은 상류층을 왁마화하는 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중상류층은 비난받을 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약간은 말이다. "

 

자신의 자녀들이 더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깔아준 유리 바닥은 (대학은 부유하고 덜 똑똑한 아이들의 하향이동을 막는 효과) 그 아래 계층의 아이들이 올라오는 것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이 되어버림. 그리고 이렇게 되면 사회 전체의 효용, 노동의 질도 떨어짐. 덜 능력있지만 집안 좋은 아이들이 상층을 차지하게 될테니까... 물론 사회가 어찌 되든 개인은 알 바 아니겠지만 ㅡ.ㅡ 최소한 정책결정자들은 신경써야 하는 일 아닌감??


"우리는 누구도 가난하다고 해서 배제하지 않았다. 우리는 신체적 능력이 약한 사람을 배제했다. 가난한 사람이 신체도 약하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상위 20% 중상류층 엘리트들은 상위 1%에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계층이면서 (그렇지만 본인들은 상위 1% 아니라고 생각) 동시에 강력한 문화자본, 사회자본, 지식권력을 통해 미디어, 여론, 정책/제도를 주도하는 계층.
한국에서도 이원재 대표의 글이 보여주듯, 자본의 삼위일체화 (부동산 자산, 학력 지위자산, 현금소득) 경향이 뚜렷하고, 그동안 경제학자 (소득과 부), 사회학자(직업지위, 교육수준), 인류학자(문화와 규범)들이 계급 분화를 두고 다양한 분석을 해왔지만 지금은 모든 추세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은 매우 타당함

 

 

대부분의 중상류층은 착취를 통해서가 아니라 재능을 활용해서 지위를 획득하는 경향. 하지만 현 세대에서의 소득 격차가 다음 세대에서 기회의 격차가 된다면 경제적 불평등은 영속적 계급으로 고착될 수밖에 없음.
부모는 아이가 잘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할 권리가 있지만, 아이에게 '경쟁우위'를 부여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권리는 없음. 내 아니가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내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잘 사는 것을 도우면 안 된다는...  근데 이게 항상 뚜렷이 구분되는게 아니라는 문제... 그래서 개별 개인 선택의 총합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사회적 규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함.


영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지위가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획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능력본위 시장에서 높은 지위를 얻으려면 능력을 가져야 하고, 이렇게 능력만 갖춘다면 기회는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능력을 들고가는 시장의 공정성이 아니라, 그 능력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평등하지 않다는 것... 중상류층 아이들은 노동시장에 진입할 무렵이면 이미 다른 사람보다 상당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능력대로 경쟁하면 좋은 자리를 차지하게 됨... '세습적 능력 본위제'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은 대한민국 중상층 엘리트들의 자녀교육 군비전쟁의 의미를 잘 보여줌.


"대졸 엄마들의 노동공급에 대한 의사결정이 자신의 시간에 대한 금전적 가치보다 가정의 효융극대화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목표들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내가 현재 시장에 나가서 벌어오는 돈보다, 직장 때려치우고 헬리콥터 맘이 되어 아이 교육에 몰빵하는 것이 계급 지속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겠음. 그래서 어이없게도 교육에서의 젠더 평등화, 여성의 교육 성취가 희안하게 교육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아이러니를 목도하게 되는 기이한 현실...  한국에서는 고학력 여성들에게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는 애달픈 현실과, 그 고학력 여성의 배우자들이 전업주부를 유지할만큼의 경제력이 있다는 점, 그리고 교육투자를 통한 지위 경쟁에서의 우위 선점 삼박자가 만나서 대폭발.. ㅜ.ㅜ

모름지기 여자들 다 노동시장에서 일해야 한다... 여성 자신들의 사회적 성취도 이루고, 교육 불평등 악화도 막고,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것 아녀...  ㅡ.ㅡ

 

게다가 그토록 '공정' 좋아하는 수도권 명문대 청년들의 능력분위주의 이데올로기가 갖는 함의와 문제점도 이 책을 통해 한발짝 떨어져 돌아볼 수 있음

저자가 특히 문제라고 지적한 기회사재기 (Tilly 영감님의 opportunity hoarding)의 세 가지 유형 - 사실 이는 커다란 기계 작동의 결과가 아니라 개인들의 작은 선택과 미시적 선호가 누적되어 생기는 결과.... 하지만 이것이 사회전반의 문화에 큰 영향...
1) 배타적 토지용도 규제 - 고밀도 개발 반대 (한국인으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 ㅋㅋ 고층 럭셔리 아파트 들어오는 걸 왜 반대해 ㅋㅋㅋ) 2) 불공정한 대학입학 절차 - 특히 동문 우대, 3) 인턴 기회의 불공정한 분배 (이를테면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건 아니지만 자녀와 직장에 가는 날... 행사만큼 역진적인 게 없음 ㅜ.ㅜ)- 미국이라고 인턴 제도, 특히 무급 인턴 제도가 비판받지 않는게 아님. 한국은 희안하게 미국 나쁜 거 엄청 빨리 수입해옴. 미국 유학에 기초한 엘리트 지식인들의 자기성찰 부족과 관련있다고 생각함

 

그래서 저자가 제안하는 대안은, 노동시장 규제로 불평등을 사후 교정하려 하기보다 생애 첫 25년 동안 인적 자본 축적에서 격차를 좁히는 걸 목표로 삼자는 것!!! 한국과는 맥락이 몹시 다르지만 참조할 부분이 적지 않음.. 근데 이게 어떻게 가능하겠냐구 ㅜ.ㅜ 정치를 만들어내는 엘리트들이 모두 이 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들인데... ㅜ.ㅜ   그나마 법/돈/염치를 활용해보자는 제안, 특히 엘리트들의 '염치'를 활용하자는 제안이 눈물겹기까지 한데..  요즘 돌아가는 걸 보면 지식 엘리트 계층에 과연 염치라는게 있는지 매우 회의적.....
(1) 인적자본 육성 측면 - 경쟁 준비과정을 더 평등하게 만드는 것 1) 계획하지 않은 임신 줄이기, 2) 육아 격차 좁히기, 3) 열악한 한교에서 더 훌륭한 교사가 일할 수 있게 하기, 4) 대학 학자금 조달기회를 더욱 공정하게
(2) 기회 사재기 감소 측면 - 1) 배타적 토지 용도 규제 철폐, 2) 대학 입학자격 확대 - 대표적으로 동문자녀 우대제도 철폐 (여기에는 '법, 돈, 염치' 이 세가지 무기를 활용해야 함 ㅋㅋ), 3) 인턴제도 개혁

 

# 조지 오웰 전기 그리고 1984

 

조지 오웰
조지 오웰
피에르 크리스탱
마농지, 2020

 

왜 갑자기 이 책을 읽게 되었나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  급발진... 하지만 계기를 까먹음...

그런데 읽으면서 깨달은 것이... 여태껏 오웰의 본명을 알지 못하고 있었음. 에릭이라니... 어쩐지 X-men 의 매그니토가 저절로 연상되잖아 ㅋㅋ


몰락한 귀족/양반의 자제로서 지적 재능을 가진 그가 만일 식민지 조선에 태어났더라면. 항일무장독립투쟁을 했거나 자신의 계급적 기반을 자책하며 자기파괴적 기행을 일삼는 '도련님'이 되었겠지만
어쩌다보니 그는 제국 영국에서 태어났고, 그런 계급적 속성 때문에 오히려 전형적 선택지를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으니 인간의 조건이란 무엇인가.. 참....


한 사람의 파란만장한 삶을 이렇게 심플한 일러스트와 짧은 글들로 압축적으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정수를 전할 수  있다니 매우매우 놀라웠음!!!!.
자유로운 정신이 마냥,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겠으나... 그럼에도 그처럼 꾸준히 자유롭고 싶음.....

책을 읽자마자 1984를 당장 다시 읽고 싶다는 열정이 들끓어 순식간에 읽어버림.. .(무료 전차책!)

어릴 적 아마도 필독도서 쯤으로 읽었던 것 같은데... 이제와 다시 읽으면서 정말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음. 무려 1949년..... 디스토피아적 예언이 어느덧 현실의 일부가 되었고, 그 출구없는 우울한 전망을 너무나 절실하게  경험했던지라... ㅜ.ㅜ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좀
무지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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