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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에 학교에서 본 영화.

 

 

 

 

틀 어주기 전에 선생님이 '로저 무어가 어쩌고 저쩌고...'해서, 아 그 사람도 저런 제목의 영화에 출연했나,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마이클 무어의 영화였다. 감독의 이름과 '로저와 나'라는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그만 섞여버린 걸까. GM 같은 대기업과도 맞장을 뜨시고, 힘자랑 돈자랑하다 폭삭 주저앉을 뻔 했던 미국 정부와 (특히) 부시를 마음껏 조롱한다는 점 때문에 여기 사람들도 꽤 좋아한다는 마이클씨, 그의 신작은 강의실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선생님이 시간계산을 잘못해서 중간에 끊고 수업을 마치려고 하자, 다른 때 같으면 좋아라하며 슬그머니 일어나 나가버렸을 학생들이 일제히 시계를 가리키며 무슨 소리냐고 아직 많이 남았다고 끝까지 봐야한다고 항의했다.

 

돈 과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이라기보다는, '자본과 권력' 혹은 '권력과 검은 돈'의 밀월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절에도 존재했고, 돈은 늘 '(아주, 대단히) 많이 가진 자들과 권력'을 위해 사용되며, 최소한의 인간적 대접을 요구하기 위해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다가 나가 떨어져 해고되고 집까지 빼앗겨 망연자실한 못가진 이들에게는   더 내놓으라고 느닷없이 덮쳐 목덜미를 무는 것이 자본의 속성이라는 것을 신랄하게 까버린다. 그의 빠른 호흡과 거침없는 독설은, 보는 동안에는 울분을 달래주기도 하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도 한데, 다 보고나서 며칠 동안 끈적끈적하게 남아 있는 이 앙금은 뭘까. 화면 밖에서 나는, 그리고 당신은 마이클씨처럼 한번 미친 척 들이대 보지도 못한 채 각종 금융상품광고와 높으신 분들의 감언이설에 이리 끌려가고 저리 휘둘리며 살아가기 때문인가. 아니면 나나 당신이 그런 인터뷰 그런 연출을 하기 위해선,  상상할 수 없었던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압력을 계속 감내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감옥에 갈 각오 혹은 목숨을 내놓을 생각까지 해야하는 현실  때문인가.

 

 

2010/11/19 13:28 2010/11/19 13:28

Free Documentaries

from 영화+독립영화 2010/09/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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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고, 진보넷에 관련 포스트도 있을 법 한데 미리 찾아볼 새가 없었음.

마이클 무어의 '식코'를 비롯해서 유명한 다큐멘터리들(여러 영화제에서 상영했고 극장에서 개봉도 했던 작품들)을 온라인으로 보거나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사이트. 6월에 페이스북에 매일 접속할 때 한00이란 분이 알려주신 곳. 한동안 잊고 지내다 오늘 문득 생각났는데 다시 잊어버릴까봐 자료실에 남겨둠.

 

홈페이지 : http://www.freedocumentaries.org

 

 


Who are you guys?
We are just a few people that want to make a difference and thought putting all these films in one place would make a cool website and a good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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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you plan on expanding?
We will be adding films periodically with the help of our hosting partners. In the future we may look at ways to individually license films. No matter what, we will always offer our films for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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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you a non profit company?
Right now, we aren't a non profit company. This means that your donations are not tax deductible. We are in the process of filing as a non profit. We definitely aren't doing this for the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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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isn't the video streaming smoothly?
This could be either a problem with your connection or our hosting partner. Even high speed modem speed does fluctuate so we encourage you to try again later or use a different connection. If the problem persists then please email us and we will see if we can find a better stream of the film. Or you can simply pause the film and let it load before restar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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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do documentary film makers allow their films to be streamed for free on the internet?
Many documentary film makers realize that having their films streamed on the internet for free will not only educate people on their perspective but will also encourage people to purchase the DVD. 

 

카테고리 중에서 일부 (클릭하면 작품 리스트로 이동)

 

- 액티비스트 관련

- 인권 관련 

- 환경 관련

- 전쟁 관련

GLOBALIZATION(지구화? 세계화?) 관련

- 여성 관련 (현재 세 작품 밖에 없는데 아마 다른 카테고리에서 관련 주제를 좀 더 찾을 수 있을 듯.)

 

2010/09/27 10:30 2010/09/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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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토론토국제영화제

2010년 9월 9일(목)부터 19일(일)까지

 

* 공식 홈페이지  http://tiff.net/

 

* 보고 싶은 영화들

 

1. 무료 상영 - 지난 상영작들 중 몇 편을 무료로 상영하는 서비스

 

2. 주말 상영

    기후변화 이슈를 비롯, 지구를 지키자는 환경 다큐멘터리가 여러 편 있는데 시간이 전혀 맞지 않다.

    지나간 토요일과 오늘 일요일, 그리고 다음주 주말에 상영하는 작품들 중에서 보고 싶은 영화들 몇 편.

    단 한 편도 못보고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이번 영화제, 아쉽다.

 

   (제목을 클릭하면 홈페이지의 영화소개 화면으로 이동함)

   

Pink Saris   

-  인도,  핑크 갱'이라는 이름의 한 여성 조직, '부끄러운가, 그렇다면 너도 죽으리라.' (예고편)

 

 Rabbit Hole

-  '헤드윅'의 존 카메론 미첼 감독.  니콜 키드먼보다 다이언 위스트가 더 궁금.

 

 매치 메이커

- 1968년 세계2차대전 이후 이스라엘.  한 마을 주민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 (예고편)

 

 노르웨이의 숲

- 트란안홍은 하루끼의 소설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이 소설은 뭘까.

 

 Beginners   

-  일흔 살 아버지의 커밍아웃은 아들의 인생에 무엇을 남기나.  미국.

 

 Out bound   

-  루마니아에서 법을 전공했던 감독은 왜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Look Stranger 

- 이것도 루마니아에 관한 영화, 한 여성의 고된 여정을 담은 것.

 

  Inside Job  

-  미국 경제위기에 관한 다큐.  2007년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노미네이트되었던 감독.

  

   그 외 올해 101세를 맞은 한 여성감독의 최신작도 있고, 여성 뮤지션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여러 편 있다. 한번이라도 극장에 갈, 못가더라도 관련정보를 훑어볼, 시간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랄 뿐. 일단 간단하게라도 메모하고.

  

 

 

*결국 한번도 못갔다. '노르웨이의 숲'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2010.11)

 

  

  

 

 

2010/09/12 17:07 2010/09/12 17:07

[알림] 어머니

from 영화+독립영화 2010/08/1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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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을 세 줄로 요약한다면

전태일의 어머니,

같은 하늘 아래 서로 다른 길을 간다 해도

당신과 나의 어머니

 라고 할 수 있으려나

 

태준식 감독 '어머니' 작업 블로그

sosun.tistory.com

 

아직 촬영중이라는데

벌써 포스터도 나왔고 트레일러도 공개한 지 오래.

 

근데 아래 포스터에 카피가 너무 많다

나중에 알아서 잘 가지치기 하시겠지

 

 

 

2010/08/17 13:40 2010/08/1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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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병님의 [독립영화와 저작권] 을 읽고

[만화방 앞에서 망서리기]와 관련

 

 

* 인디플러그

 

아직 회원가입 못했다.

가까운 분이 아이디와 비번을 알려줘서 샘터분식을 내려받아 봤는데 그 뒤로는 접속할 겨를이 없다. 몇 년 전, 독립영화 제작자(감독) 몇몇과 함께 제작자들이 직접 배급하는 온라인 공간을 고민한 적이 있었지만 그 틀은 지금 인디플러그와 같은 형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때 모인 이들은 저마다 배급방식이나 온라인 소통방식에 관해 각자의 의견을 분명하게 내놓기 어려운 입장이었으므로, 만약 뜻을 모아 공간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 모임은 결국 성과없이 끝났다.

모인 이들은 너무 바빠서 시간이 부족했고, 제작자들끼리 새 길을 내본 경험이 없어서 자신감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한독협이라는 공식 조직이 있는데 왜 샛길을 내려고 하는가'에 대해 의혹 혹은 부정적인/불안한 견해를 가진 다수의 눈총을 매끄럽게 받아들이지 못해 각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흩어졌다. 여러 모로 아쉽고 아픈 경험 중 하나였다. 그 때 다큐야 쩜 넷의 온라인 설계를 맡아 수고하셨던 분께 (개인적으로 급히 마련한) 최소한의 수고비만 지불한 채 작업을 중단했던 것이 지금까지 두고 두고 죄송하고, 시간과 정성을 내놓고 마음을 열었던 몇몇 동료들에게도 일일이 만나서 매듭을 짓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시간이 흐른 지금, 인디플러그가 등장했다.

회원가입 할까 말까, 고민이 됐다. 이렇게 운영하는 거 맞나, 판단하기 어려웠다. 가까운 분이 그랬듯이, 나도 가입해서 여러 사람들과 아이디를 공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하지만 한 발 더 나아가서, 인디플러그의 존재이유와 운영방침, 그리고 그 다음에 대해 토론하고 합의하기 위해 움직이는 게 더 급한 듯 하다.

 

 

*관련기사1

 미디어스 - 인디플러그의 활동과 독립영화계의 침묵 (2010. 8. 13)

 기사 내용 중 같이 읽고 싶은 부분 발췌

독립영화계에서 저작권 문제가 거론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전에 이미 <워낭소리>를 둘러싼 논란이 독립영화계를 한바탕 휩쓸었었다. <워낭소리>의 제작자였던 고영재는 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해외 시장 진출의 통로가 막혔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저작권법을 위반한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 강하게 성토했고, 이를 계기로 독립영화 진영에서 저작권과 관련된 논의가 일었었다.

그런데 그 때 MB의 <워낭소리> 관람과 독립 영화 진흥 정책에 관련된 것으로 주제가 확산되며, 저작권과 관련된 논의는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한
채 묻혀버렸다. 그러다 다시 고영재가 대표를 맡고 있는 인디플러그의 굿 다운로더 캠페인 동참과 불법 업로드 업체에 대한 법적 대응 선언으로 저작권 관련 문제가 독립영화계에 제기 되었다.

 

* 위 기사에서 언급한, '워낭소리' 고영재 피디의 발언을 담은 기사

한겨레 - 정보공유 한단계 성숙하는 계기 되길 (2009년 3월 5일 등록, 3월 13일 수정)

 

 

* 위 상황과 관련해서 [워낭소리 관련]에 보면

당시 고영재의 '디지털 악마' 발언을 비판하는 글이 여러 편 있었다

그리고 독립영화감독들이 연대서명을 받아 질의서를 전달하는 조직적 항의가 있었다

 

라울 -  [새],   [독 08]

슈아 -  [답답한데 졸려]

나루 - [연명을 부탁합니다]

 

이후 한독협 홈페이지 개편작업이 있었고, 공개질의서 및 관련논의가 올라왔던 게시판이 닫힘.

공개질의서 내용은,  '워낭소리' 불법다운로드 사태에 대한 한독협 사무총장 고영재의 대응방식(수사 요청? 경찰에 고발?)과 언론사 기자들이 여럿 찾아온 가운데 어느 대학 강의실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한 내용에 대한 비판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대통령의 '워낭소리' 관람요청(감독 및 한독협 관계자 참석 하에)과 이후 장관의 대화요청에 응한 것에 대한 비판이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관련기사1 중에서 발췌 조금 더.


당연하지만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인디플러그가 독립영화계를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갖가지 언론들에서는 인디플러그의 사업 정책을 독립영화계로 환원해 보도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문제적인 것은 언론의 보도형태가 아니라, 독립영화계의 반응이다. 그들은 마치 거대한 침묵을 통해 인디플러그의 입장에 암묵적으로 공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침묵은 때로 동의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완전히 상업화된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영화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생산, 유통, 소비 방식을 만들어 왔으며, 그 방식의 다양화를 이루어 왔다. 다시 말해, 독립영화는 획일화된 상업영화의 그것들과는 다른, 대안적인 방식들을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만들어지고, 도입된 것이 퍼블릭 액세스이고 공동체 상영 등이다. 그것들이 성공적이었든 아니든, 그러한 기본적 취지와 의도만은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은 상업영화가 가장 전형적으로 이익을 창출해 내는 통로이다. 게다가 그것은 직접적인 생산자나 창작자에게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보다는 그것의 투자자들이나 거대 유통 기업들에 이익을 돌려주기 위한 장치이다. 물론 몇몇 이름난 생산자들이 저작권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얻긴하지만, 대부분의 창작자들에게 그것은 신화적인 것일 뿐이다. 상업영화계에서도 그들은 대부분 영화사에서, 방송국에서 창작 노동을 하며 착취당하는 노동자일뿐이다. 게다가 그것은 문화의 향상발전을 도모하기 보다는 그 반대로 기능하고 있다. 저작권은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에서 문화적 생산물들을 확산시키고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막고 있으며, (때문에) 풍부한 2차 창작물(소위 패러디나 키치 등)들이 산출될 수 있는 통로를 차단시키고 있다. 파생 창작물의 생산을 활성화 시키는 것은 문화(심지어는 산업)를 향상발전 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저작권이 가로 막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디플러그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독립영화계가 침묵하고 있는 저작권 단속은 독립영화의 기반 정체성을 위협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 된다. 그것은 상업 영화의 틀에 독립영화 스스로를 구속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만약 이 상태가 더욱 진행되어 독립영화가 저작권 산업에 기대어 생명을 유지해 나가게 된다면, 독립영화는 발명되어야할 미래의 가능성들(퍼블릭 액세스를 포함한 대안적인 영상의 생산, 유통, 소비 방식들)을 미리 포기하는 것이 될 것이다.

 

* 관련기사 2

무비위크 - 온라인 다운로드의 가능성을 보다 (2010. 3)

인터뷰 내용 중 다시 읽고 싶은 부분 발췌

고영재 대표의 답변 중 밑줄 친 부분은 같이 생각해보고 싶은 점들

아래 두번째 답변, 세번째 답변 등은 동의하기 어렵다.


- 유료 사이트라서 시장이나 유저들의 가격에 대한 저항도 예상된다.

가격은 2,000원으로 결정했다. 고민의 산물이다. 유저들은 싼 게 좋다고 하는데, 지금 개봉 영화 가격이 일반 유저들이 바라볼 때 비싸다고 인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디플러그는 그동안의 기술적 이슈였던 DRM(Digital Right Management)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DRM을 건다는 건 ‘대여’ 개념인 거고, 인디플러그는 ‘소장’ 개념이다. 이러한 정책들을 네티즌이 이해하고 인정해 주면 부가판권 시장에서 다운로드 시장이 연착륙될 수 있다.

-독립 영화 유통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온라인 구축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면?

물론 수익성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철학적 배경으로 몇 가지 고민을 했다. 인디 음악이나 만화, 민중가요는 시장에서 다 실패했다. 적어도 유통의 영역에서는 말이다. 그들은 자기 작업은 열심히 하는데, 나머지 부분은 귀찮아한다. 개인적으로 그것이 불만이었다. 인디플러그는 자체 수익의 일정 부분을 포기했다. 수익의 50퍼센트를 제작사에 제공한다는 철학을 원칙적으로 시행하려고 한다. 그래야 온라인 배급을 통해서 제작자도 수익을 챙길 수 있고, 다양한 작품이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온라인 내 독립 영화 활성화를 위한 전략이 있다면?

각각의 독립 영화가 지닌 장점을 가지고 관객들과 만날 수 있도록 그 포인트를 잘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독립 영화 진영이 한 단계 질적 도약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제작 측면에서 장르를 개척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고, 마케팅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게 된다. 이번에 <경계도시 2>에 김C가 다큐프렌즈로 참여하는 게 좋은 예다.
 

나는 아직 한국독립영화협회에도 가입하지 못했다.

가입하려고 시도했다가 안됐던 그날부터, 가입하라고 권유받던 시간을 지나, 먼 곳에 혼자 떨어진 지금도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개인작업(이라고는 하나 다양한 형태로 수많은 분들이 참여했던) 하나, 여러 감독과 미디어 활동가들이  함께 제작했던 공동작업이 하나, 제작지원 한번 못받고(2007년부터는 응모하지 않기로 했다) 몇 년 동안 혼자 꼼지락거리다가 아프다는 이유로 중단한 작업이 하나 있을 뿐인 초라한 이력에 단 한 줄이라도  더 새기게 될까. 실패의 이력만 길고, 성과없는 시도만 계속하며, 고민만 많은 나같은 이가 과연 독립영화 계속할 수 있을까. 온라인 배급은 물론 독립영화에 관련해서 나같은 이는  더 이상 발언하지 않는 것이, 이 어려운 시절을 딛고 지금 열심히 작업하는 이들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르겠다.

2010/08/17 13:17 2010/08/1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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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등 강조는 옮겨오면서 제가 한 것임

말문이 막혀서 이 사태에 관해 따로 할 말은 없다. 

 

* * * * * 

 

출처 : 프레시안

 

 

독립·예술영화 제작 직접지원 폐지, 영진위 의도는?

[뉴스메이커] "특정단체 밀어주기 및 배제 노골적" 영화계 반발

기사입력 2010-07-02 오후 5:58:36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조희문, 이하 '영진위')의 내년도 영화발전기금 운용계획안에서 독립영화 제작지원, 예술영화제작지원, 그리고 기획개발역량강화 사업의 예산이 전액 폐지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영화계가 또 한 차례 들썩일 전망이다. 또한 영진위 내에서 예산안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위원들 간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더욱 논란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겨레가 오늘(2일) 오전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영진위가 최근 9인 위원회에서 통과시키고 문화부가 승인해 기획재정부로 넘어간 내년도 영화발전기금 운용계획안에서 올해 12억이 배정됐던 기획개발역량강화 사업과 독립영화제작지원(7억), 예술영화제작지원(32억 5천) 예산이 모두 폐지됐다. 영진위는 대신 이를 '영화유통 및 제작지원' 사업으로 통합해 현물지원으로 보완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영진위가 작성한 발전기금 운용계획안은 영진위 9인위원회의 의결과 문화부의 승인을 거쳐 기획재정부에 제출된 상태다.

 

이에 대한 문화부의 입장은 "문화예술의 다른 분야에도 그렇듯 영화계에도 직접지원보다 간접지원과 인프라 구축 지원이 늘어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유병한 문화관광체육부 문화콘텐츠산업실장은 이러한 변화가 "갑자기 결정한 것이 아니라 정권 초기부터 영화계에 주문했던 내용"이 라고 밝히면서, "독립, 예술영화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는 방식이 바뀌는 것일 뿐이다. 영화제작지원의 총예산은 오히려 올해 39억에서 내년 50억으로 늘어났다. 그간 나눠먹기, 편파시비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이를 개선하자는 취지도 있다"라고 밝혔다.

 

그 러나 영화계에서는 영진위의 이러한 예산계획이 "특정세력을 배제하거나 밀어주면서 '길들이기'를 하겠다는 의도"라고 의심하는 분위기다. 그간 영진위 조희문 위원장을 비판하며 사퇴요구를 해온 영화인들의 선봉에 독립영화계가 있었던 만큼, 실제로 영진위의 이번 기금예산안은 상당 부분 의혹을 살 만한 구석이 있다. 본지가 추가로 입수한 발전기금 운용계획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작지원' 항목이 통폐합된 것 외에도 영화단체사업지원 항목 중 공모사업선정지원 예산도 4억 6천 가량 줄었고, 시네마테크전용관 지원은 임대료에 해당하는 1억 7천을 삭제하고 2억 8천만 원만 책정됐다. 공교롭게도 영진위는 현재 인 디포럼과 인권영화제 측으로부터 '촛불단체라며 의도적으로 단체사업 지원에서 탈락시켰다'며 소송에 걸린 상태이며, 올해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자 공모를 시도했다가 서울아트시네마와 마찰을 겪고 공모마저 유찰되자, 서울아트시네마에 임대료를 제외한 사업지원 부문만 지원하기로 한 바 있다.

 

반면 다양성영화 사업 중 독립영화 관람료지원 항목이 신설돼 3억 5천 가량이 책정됐다. 독립영화전용관의 관람료를 할인하고 이를 영진위에서 지원한다는 이 사업은, 결국 독립영화전용관의 수익을 일정부분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 다. 사업의 취지 자체야 바람직하지만, 현재 "심사조작까지 해가며 영진위가 특별히 밀어준 단체가 독립영화전용관의 사업자가 되었다"는 세간의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는 만큼 뒷말이 안 나올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올해 초 영진위는 사업자 공모를 통해 새로이 독립영화전용관의 사업자로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한다협)를 선정했지만, 이 과정에서 논란과 잡음이 끊이지 않아 몇몇 단체가 영진위를 대상으로 '사업자 선정 취소' 소송을 행정법원에 제기한 상태이며, 국내 독립영화 감독 155인은 한다협이 운영하는 '제1독립영화전용관' 시네마루에 "나의 영화를 상영하지 않겠다"며 보이콧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글로벌 스튜디오 건립'을 위해 새로이 35억이 설계비로 책정됐으나 이 '글로벌 스튜디오'라는 것의 정체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유병한 실장은 "아시아 다른 국가에서도 한국에 로케이션을 하러 오는 상황이다. 남양주 종합촬영소의 규모를 뛰어넘는 대규모 스튜디오를 만들어 미래에 대비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중국에도 거대 스튜디오가 여럿 있는데 국내에는 없다. 오래 전부터 영화계가 요구해왔던 사항이며, 향후 아시아 시장 전체를 겨냥하자는 의도"라는 것. 그러나 영화계 일각에서는 조희문 위원장이 그토록 밀어부치고 있는 '3D 산업을 위한 스튜디오'일 것이라는 짐작이 떠돌고 있다. 유병한 실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지만, 영화계에서 그런 루머가 떠도는 것 자체가 영화계와의 소통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본지가 접촉한 영진위의 한 위원은 "나 역시 글로벌 스튜디오의 정체를 모른다. 글로벌 스튜디오는 물론이고, 예산안 전체가 위원들 사이에서 충분히 논의와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위원 3인이 예산안 편성을 위한 팀에 속해있기는 했지만 다른 위원들이 예산안을 리뷰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채 심의 의결 불과 3일 전에 안이 제출됐다는 것. 한 마디로 위원들은 그저 표결을 위한 '거수기'로만 동원됐다는 것이다.

 

한편 유병한 실장은 "이것은 그저 '안'일 뿐, 확정된 것은 아니며 일부 수정될 수도 있다. 9월 정기국회 전까지 계속 논의가 필요하며, 국회에서의 논의와 의결을 거쳐야 확정이 된다"고 밝혔다.

 

 

/김숙현 기자

* * * * * 

 

출처:미디어오늘

 

 

 문화부, 내년도 독립영화 지원금 전액 삭감  

영진위 역할 대폭 축소에 ‘해체’ 우려도…외압시비 위원장은 건재
 
2010년 07월 08일 (목) 17:00:28 김원정 기자 ( mingynu@mediatoday.co.kr)
 
 
문 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이하 문화부)가 ‘심사과정’에서 논란을 야기한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조희문·이하 영진위)의 독립영화지원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키로 했다. 문화부는 지난달 삭감계획이 담긴 ‘2011년 영화발전기금 운용계획안’을 마련했고, 영진위는 지난달 28일 ‘9인 위원회’를 열어 이를 통과시켰다. 계획안은 문화부를 거쳐 현재 기획재정부에 올라간 상태다. 
 
계 획안은 다음해 영화발전기금 전체 예산을 전년대비 5.2%(444억4400만→421억2900만원) 감액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부적으론 영화다양성사업 예산이 올해 보다 50% 이상 줄었지만, 영화인프라 구축사업은 70% 이상 증액됐다. 문화부는 영화산업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직접지원 방식을 간접지원 형태로 바꾼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영화계에서는 독립·예술영화의 근간이 흔들릴까 우려한다. 
 
무엇보다 독립영화 제작지원, 예술영화 제작지원 그리고 기획개발 역량강화 부문을 통합해 사업 자체를 없앤 점이 반발을 사고 있다. 해당사업엔 내년도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다. 투자조합 출자사업(150억→100억), 예술영화전용관사업(17억1400만 → 13억5500만), 시네마테크전용관사업(4억5천만→2억8천만), 한국영화 해외수출 지원사업(34억→ 14억)은 예산이 크게 깎였다. 
 
한 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관계자는 “독립·예술영화제작지원사업이 사라진 건 심각한 문제”라며 “영진위와 문화부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앞서 조희문 영진위원장은 독립영화제작 지원작 선정과정에서 심사위원들에게 외압을 가한 사실이 알려져 영화인들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아왔다. 결국 예산 삭감 조치로 이런 요구를 입막음하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문 화부는 이를 직접지원방식에 수반되는 ‘편파시비’로 규정했지만, 영화계는 문제의 본질을 잘못 짚었을 뿐더러 논란을 해소하는 방법도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한독협 관계자는 “사업을 변경하려면 그동안 효과와 문제 등을 면밀히 따지는 게 먼저지만 그런 과정 없이 언론에 ‘추문’이 퍼지니까 덮어놓고 없애려 한다”고 비판했다. 양쪽이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었다는 설명이다. 
 
일 각에선 ‘2011년 영화발전기금 운용계획안’에 따른 예산으로 영화 제작·유통산업을 진흥해야 하는 영진위가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예산이 전액 혹은 대폭 삭감된 영화 다양성 사업 부문은 영진위의 핵심 사업이란 이유에서다. 결국 독립성을 보장받도록 설립된 영진위를 문화부가 사실상 해체, 장악하려는 수순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희문 영진위원장의 처신도 도마에 올라 있다. 그 는 영화계 다양성을 구현한다는 명목으로 이른바 진보적 인사들을 영화계에서 축출·배제해 논란을 일으켰으며, 이 과정에서 기관장으로 부적절한 무리수를 동원해 사퇴 압박을 받고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2011년 영화발전기금 운용계획안’에 동의하면서 ‘자리를 지키려고 영화를 팔아 넘긴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인들은 기획재정부에서 국회로 넘어가는 동안 시간이 있는 만큼 대응 수위를 조만간 결정해 대중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토록하겠다는 방침이다.
 
 
* * * * *
 
출처 : 미디어스
 
 
 
영진위, 영화진흥기관 맞나?
[기고]2011년도 영화발전기금 예산안을 뜯어보니
2010년 07월 08일 (목) 18:04:00
 
최현용/한국영화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  mediaus@mediaus.co.kr
 
 
  지 난 6월 28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2011년도 영화발전기금(이하 영발기금) 예산안을 의결했다. 이어 문화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로 예산안을 송부했다. 이제 2011년도 영발기금 예산안의 향방은 기재부에 달려 있다.
 
문제는 예산안의 내용이다. 다시 말하면, 영화진흥정책의 방향성이다.
 
언 론에서 알려진 바대로 독립영화제작지원사업, 예술영화제작지원사업, 기획개발지원사업 등 주요 직접지원사업이 폐지되었다. 그리고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장비를 대여해주고, 후반작업을 현물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자랄 것으로 보이는 장비를 더 사겠다고 예산을 배정했다. 장비를 대여해주고, 후반작업을 공짜로 해주면 독립영화, 예술영화가 절로 진흥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새다.
 
특 정 정책이나 사업이 영속적일 수는 없다. 필요하다면 사업을 폐지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이라면, 이런 식은 아니다. 민간업체와 무료라는 비용을 무기로 경쟁하는 영진위, 도대체 이게 무슨 영화진흥정책인가. 이건 영화업계와 싸우자는 것이다.
 
지 원사업 폐지의 대안이라는 ‘제작지원 (인건비 지원)’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기업단위로 인건비를 보조하겠다는 사업이다. 현재 영화산업에서 투자자본은 전방위로 제작비를 줄이라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저예산영화가 범람하는 이유이다. 문제는 부당한 방법으로 제작비를 줄이고 있다는 점이다. 인건비를 투자비로 돌린다든지 등의 불법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인건비 직접 보조사업이 추진되는 건, 그만큼 투자자본에게 제대로 된 투자(혹은 제작예산책정)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콜싸인이나 마찬가지이다. 도덕적 해이를 요구하는 영화정책이라니, 이건 영화산업을 불구로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에 다름 아니다.
 
다른 사안을 보자. ‘독립영화 관람료 지원’이란 신규사업에 예산을 배정했다. 독립영화제작지원은 폐지하면서 이런 사업을 만든 것이다. 사업내용은 “독립영화전용관 상영 독립영화 대상 관람료 할인 지원”이다. 즉 논란과 의혹 속에 제 식구를 챙겨준 지금의 독립영화전용관 시네마루에 관람료를 별도 지원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독립영화전용관사업의 일부인 셈이다. 그럼에도 별도의 사업으로 분리시킨 이유는 명백하다. 관람료는 극장의 수입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인건비 전용이 가능하다. 일반 지원사업의 경우에는 인건비 전용이 불가능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명백히 시네마루의 경영난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에 불과하다.
 
문 제는 제식구챙기기보다 더욱 심각하다. 시네마루가 아닌 다른 극장에서 상영되는 독립영화는 독립영화가 아닌가. 온라인과 같은 가격 수준으로 극장에서 영화관람료를 할인해주는 것은 관객들에게 가격정책의 혼선만을 야기할 뿐이다. 정리하자면, 결국 영진위가 위원장 개인의 식구를 챙기기 위해 독립영화계와 싸우자는 것이다.
 
또 다른 사안을 보자. ‘국제공동제작센터 운영’이란 명목의 사업이 있다. 4년 전부터 각 지역의 영상위원회들이 공동으로 추진해온 ‘국제공동제작센터-전국영상위원회’ 사업에서 이름만 빌려온 셈이다. 영진위와 영상위원회들간의 관계 정립에 대해 토론회 한번 주최하지 않은 영진위가 넉살좋게 사업성과를 가로채려는 것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이런 식이다. 도대체 영화진흥을 위한 정책인지, 그나마 어렵게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화인들의 기를 꺾고 하는 일마다 훼방을 놓기 위한 정책인지 알 수가 없다.
 
그 나마도 각 사업의 세부적인 내용을 영진위 실무자조차 알 수 없다는 상황이다. 문화부가 작성한 예산안을 조희문 위원장이 그냥 통과시켰다고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영진위가 영화계와 싸우겠다는 예산안을, 영진위가 진흥기구가 아니라 후반작업업체가 되라는 예산안을 조희문 위원장이 통과시킨 것이다. 스스로가 “독립기구의 장”이라며 사퇴를 거부하고 있는 그토록 당당한 조희문 위원장이 허수아비 역할을 자임하며 이런 내용의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은 분명 자리보전 때문일 것이다. 체면과 염치가 있다면 그리고 생각이란 게 있다면, 제발 책임질 일 좀 하시라고 권고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조직도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정책연구개발이나 R&D사업이 늘 중요하게 인정되는 것이다. 2011년도 예산안을 보면, 영진위의 정책연구 및 통계조사사업 순 예산이 3억이 채 되지 않는다. 어떤 조사를 하고, 무슨 연구를 하고 어떤 정책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지 말고 ‘까’라는 문화부의 의중인가. 하긴 영화제작부문 종사자가 1900명이라는 통계(“2009 문화산업백서”)를 들이미는 문화부가 도대체 뭘 알기나 할까.
 

 

* * * * *
 
 
[성명]문화체육관광부는 진정 한국영화의 공적이 되려 하는가?!
 
한국독립영화협회 소식 / 2010.07.16
 
[성명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진정 한국영화의 공적이 되려 하는가?!
- 2011년 영화발전기금 운용계획에 드러난 일방적 영화정책을 철회하고,
즉각 재편성하라 -
 
새 정부 출범 이후 영화계의 잡음이 끝이 없다. 한국영화 발전에 이바지해야 할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일치감치 영화계의 외면을 받고 있는 모양새다. 강한섭 위원장이 불명예스럽게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으며, 후임 조희문 위원장을 둘러싼 구설은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독립영화전용관, 영상미디어센터,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불공정하고 무리한 공모 심사 과정. 칸영화제 수상작 <시>에 대한 ‘0점’처리. 독립영화제작지원 심사과정에 외압 등 다시 언급해도 낯 뜨거운 사건들의 연속이다.
 
현실은 부끄럽지만 한국영화는 희망적이다. 2009년 독립영화 <워낭소리>을 보기 위해 관객 300백만명이 극장을 찾았다. <낮술>, <똥파리> 등 독립영화의 잇단 성과에 대해서는 뜨거운 갈채로 화답하고 응원해 주었다. 2010년 <시>, <하녀>, <하하하>는 나란히 칸국제영화제에 진출하여 의미 있는 성과로 한국영화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영화발전기금에 대한 2011년도 기금운용계획안(이하 ‘예산안’) 공개 이후 영화계는 현 정부의 영화정책에 다시 한 번 심각한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아니 영진위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가 진정 한국영화 진흥을 바라는 지 허탈하게 의심하게 됐다.
 
2011년 예산안에 따르면 한국 영화의 다양성에 기여해 왔던 영진위의 핵심 사업의 예산이 대거 삭감 되었다. 특히 한국 독립․예술영화 제작의 근간이 되었던 ‘독립영화제작지원’과 ‘예술영화제작지원’ 등은 전액 삭감되었다. 뿐만 아니라 독립․예술영화 상영에 앞서왔던 예술영화전용관 사업,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 영상문화의 저변 확대에 앞장섰던 영화단체들의 사업지원 부분이 모두 크게 감소하였다. 다양성사업 부문은 총 63억 가량 감소하여 2010년 대비 55% 축소되어 있다. 예산안 작성 이전 문광부는 영진위 직접 사업을 간접 지원 사업으로 전환할 것을 수차례 예고한 바 있다.
 
영화인들은 간접 지원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 하지 않는다. 인프라 증진 사업 또한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그러나 제작 및 배급 지원 사업 등 직접 지원 사업 부분이 일방적으로 삭감 조치 된 것에 대해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이 사업들은 2000년 초부터 실시, 수년간 영화계와 조율하며 발전해 왔던 사업이며, 10년간의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등 다양성 영화의 산실이 되어 왔던 소중한 사업들이다. 특히 독립영화제작지원 사업은 한해 20여편의 독립영화를 생산케 하는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지금 영화계가 분노하는 것은 비단 중요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것만이 아니다. 이것이 결정되는 과정에 주체인 영화계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이다. 심지어 예산안의 작성주체인 영진위 조차도 2011년도 예산안에 들러리였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지속적으로 직접 지원을 간접 지원 방식으로 바꿀 것을 표명해 왔던 문광부는 이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만약 영화계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되고 있는 2011년도 예산계획의 중심에 문광부가 있다면, 문광부는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민간적 자율기구인 영진위의 위상을 보장하지 않는 상급기관에 대해 대한민국 영화인을 비롯한 국민들은 냉소적 조롱을 보낼 수밖에 없다. 문광부는 지금이라도 영진위 독립성을 존중하고, 영진위가 영화인의 의견을 수렴하여 세부적인 사업을 집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 조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를 기본으로 문광부 장관의 의무인 ‘영화진흥계획’을 조속히 마련하라! 2011년 예산계획의 파행적 충격은 여기에서 멈춰져야 한다. 이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기금의 주인인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의 10년의 미래에 대해 지금 영화인들은 중대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 그 영화인들이 문광부에 정중히 묻는다. 문광부는 진정 한국영화의 공적이 되려 하는가?! 한 나라에 문화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에게 던져지는 이 모순 가득한 질문이 당장 중단되길 독립영화계는 진심으로 바란다. 2011년 영화발전기금 운용계획에 드러난 일방적 영화정책을 철회하고, 즉각 재편성하라!
 
 
2010년 7월 16일
(사)한국독립영화협회
 
2010/07/30 08:22 2010/07/3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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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워낭소리'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려고 리뷰와 관련기사를 모으는 중.

 

1.

 

 

달군 - 불편하게 만들기

칸나일파 - 도쿄소나타, 워낭소리

잔물결 - 워낭소리

처절한기타맨- 모진소리, 워낭소리, 할매꽃

daybreak飛렴 - 워낭소리

 

라울 -  ,  독 05,  독 06

공돌 - 워낭소리

냐옹 - 워낭소리 낭팰세

나루 -  여름에서 겨울까지 본 영화들

            수익금 30% 기증보다 더 절실한 것아쉽지만 일단락,  연명을 부탁드립니다

몽상가 - 뒤늦게 워낭소리

 

하루 -  다녀와서,   큰 맘  먹고 워낭소리,   명랑한 밤길

449  -  비겁한 독립영화인, 비겁한 카메라

tnffo -  가족서사, 한국(여성)문학의 함정

홍지 - Beethoven Chronicle

울산까마귀 - 워낭소리

 

tinooo - 정리

염둥이 -  며칠 전 메모,  나에 관한 이야기2

처절한기타맨 - 워낭소리, 대통령의 영화되다

한판붙자 - 결국 일을 쳤구나

재원 -  그 영화

 

슈아 - 서울독립영화제에 초대과도한... (두 글의 입장이 많이 달라서 좀 당황스럽다.)

돌~ - 워낭소리에서 늙은 농촌, 농민을 보았다

달팽이 - 워낭소리

은수 - 워낭소리 한줄로 요약안됨

GreenMonkey - 소에 받힌 적 있는 아버지가 워낭소리를...

 

풀소리 - 워낭소리

유이 - 워낭소리

jineeya - 보물같은 삶의 이야기, 워낭소리

라디오레벨데 - 워낭소리 강추

크자 - 워낭소리

 

홍실 - 영화 세 편

뎡야핑 - 워낭소리

 

 

 

2. 언론 리뷰 및 관련기사

 

씨네21의 리뷰들 중에서는 허문영의 의견이 가장 공감이 간다. 

 

1) 씨네21 - [전영객잔] 환영으로 완성한 농촌 판타지 (정한석)

 

 

[전영객잔] 환영으로 완성한 농촌 판타지

글 : 정한석 | 2009.02.05

 

영상과 소리를 인위적으로 분리했음에도 끌어안고 싶은 <워낭소리>

 

 

새해 보신각의 타종식 현장을 중계한 KBS 방송이 왜곡보도 논란에 휩싸인 건 모두 아는 일이 되었다. 현장에 있지 않았으므로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데, 카메라의 앵글은 촛불을 들고 목소리를 높이던 군중을 교묘히 피해 찍었고 조작하지 않고서는 막는 것이 불가능한 현장음은 조작되었다고 한다. 그날의 현장에 있었던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진보신당 게시판에 이에 관한 글을 남겼다. 그의 글의 요지는 “그것은 중계방송이 아니라 하나의 판타지물”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이것이 <워낭소리>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우리의 현실 경험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워낭소리>를 이 왜곡보도와 동일시하여 비판하려는 뜻을 갖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영상과 소리의 합일성이 실은 얼마나 쉽게 분리되고 이용될 수 있는지 동시에 그것이 분리되어 재결합했을 때 어떤 왜곡이나 충만한 정감 그 어느 것이라도 불현듯 일으킬 수 있는지를 예시하고 싶다. 새해 벽두의 이 사건은 <워낭소리>를 생각할 때 무관하지 않으며 나의 관심은 진중권이 아니라 그가 말한 판타지에 있다.

 

워낭 울리지 않아도 워낭소리가 나네?

 

사운드의 영화학자 미셀 시옹은 그의 저서 <영화와 소리>(민음사 펴냄)의 첫장을 우연히도 소와 음매 사이에 관해 설명하는 것으로 연다. 자크 타티의 영화 <트래픽>에서 트럭을 몰고 가던 한 남자가 초원에서 저 멀리 있는 희미한 물체를 얼핏 보았을 때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은 그의 정확하지 않은 시야가 아니라 원근법을 깨고 귀에 가깝게 들려오는 음매라는 소리라는 것이다. 이때 소라는 기의는, 그러니까 저것이 소라는 것은 음매라는 소리의 기표로서 확실하게 지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영상과 소리의 조정에 관한 예이며 한편으로는 어떻게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는지에 관한 예이기도 하다. 이것 역시 <워낭소리>를 말하는 데 무관하지 않다. 아니 무관하기는커녕 미셀 시옹은 다른 저서 <오디오-비전>(한나래 펴냄)에서 “영화는 영상예술. 환영(幻影)이라고? 물론. 그것 말고 뭐가 있겠는가? 그리고 이 책에서 얘기하려고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시-청각 환영”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나의 관심은 미셀 시옹이 아니라 그가 말한 시-청각 환영에 있다.

 

경상북도 봉화에 사는 한 노부부와 그들과 함께 세월을 살아온 마흔살 먹은 늙은 소를 주인공으로 한 이충렬의 영화 <워낭소리>는 이들 촌부의 일상적 모습을 특히 그들이 소와 함께 얽혀 사는 모습을 일종의 운명적 공동체로 보여주는 영화다. 이때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소가 등장하지만 할머니는 다소 다른 자리에 있고 할아버지와 소가 주된 주인공이다. 할아버지의 느리고 무너질 것 같은 걸음과 마흔살 먹은 소의 비틀거리는 걸음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줄 때, 얇게 휘어서 성치 않은 왼쪽 다리를 이끌고 논밭을 매는 할아버지와 숨쉬기도 곤란한 소가 함께 농사일을 할 때 그들은 흡사 하나가 된다. 결국 이 영화는 소멸하기 직전에 놓인 두 육신 중 하나가 먼저 떠나고 머지않아 또 하나가 곧 따를 것이라는 비정한 삶의 퇴장 순서에 대한 아름다운 마지막 기록이다. 이 점을 성실하게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워낭소리>에 배인 정감을 설명하는 길이 되겠지만 여기에는 사실 좀더 말해야 할 다른 문제들이 있다.

 

보신각 타종식의 왜곡방송과 미셀 시옹의 소와 음매 사이의 지적을 떠올릴 때 <워낭소리>가 정감을 일으키는 진원지는 단순한 이 서정적 묘사를 넘어서 다른 영역에 있다고 나는 느낀다. 전적으로 공감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지와 사운드에 가해진 이 영화의 인위성을 주목해야만 한다. 진중권이 말한 판타지와 미셀 시옹이 말한 시-청각 환영의 문제가 여기 있다. <워낭소리>는 판타지이며 환영의 영역에 있다.

 

이 점이 <워낭소리>의 전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된다. 예컨대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올드 파트너’(Old Partner)이지만 한글 제목은 <워낭소리>다. 영어 제목은 영화의 내용적 면모를 따라 지어졌지만 한글 제목은 정감의 작동방식에 따라 지어졌다. 그 방울의 소리가 그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워낭은 소의 목에 걸려 있는 방울이고 할아버지의 소는 워낭을 차고 있으며 소리를 낸다. 그러니까 워낭이 울리면 워낭소리가 날 것이다. 혹은 워낭이 울려야 워낭소리가 날 것이다. 하지만 워낭이 울리지 않아도 워낭소리가 들린다는 것이 이 영화의 역전된 착상이다.

 

힘들어서 더는 농사일을 못하겠다며 이제 우리도 다른 이들처럼 농약을 치자고 할머니는 잔소리를 늘어놓고 할아버지는 소의 건강에 치명적이니 그럴 수 없다는 말로 둘러댄다. 밭에서 시작한 이 대화는 그들이 서로 갈라진 길로 나뉘어서 갈 때조차 이어진다. 그때 그들은 침묵하고 말하고 있지 않은데 대화는 외화면에서 이어진다. 그때 그 자리에서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자리에서 녹음된 소리가 지금 그들의 모습 위로 들어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노부부가 소를 타고 논밭과 집을 오갈 때, 허름한 대청마루에 앉아 있을 때, 그들의 입은 조용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늘 화면 위를 흐른다. 혹은 다른 대화를 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우리가 듣는 내용은 늘 소에 관한 것이다. 만약 한 두 장면에서 이 방식이 고수될 때 그건 기능적인 선택이며 특기할 만한 사항도 아니지만 이 영화는 시종일관 집요할 정도로 그러하다. 그러니까 소리는 그때 그 자리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라고 인식하는 것이 이 영화를 보는 첫 번째 방법일 정도다.

 

여기에 두 번째 종류의 출처없는 소리가 등장한다. 비판받을 만한 구석이 있지만 너무 노골적이어서 심지어 순박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 인공적 소리는 농촌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거의 매 장면에서 들려온다. 후시녹음으로 들어갔을 것이 분명한 지저귀는 산새 소리, 구슬픈 뻐꾸기 소리, 온갖 종류의 벌레소리, 개구리 소리, 우리가 농촌이라는 곳에 관해 상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소리가 들려오지만 그건 지금을 가리키고 있지 않으며 화면 안에 그 소리의 진원지는 없다. 그중에서도 워낭소리는 소가 움직이지 않아도 마치 환청처럼 지속적으로 들려온다.

 

영화 전체가 일종의 더빙판 같은 느낌

 

이렇게나 끈질기게 영상과 소리를 분리시켜 완성한 다큐멘터리가 또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영화 전체가 일종의 더빙판이라는 느낌까지 든다. 만약 이 영화를 볼 때 소리를 끄고 영상만 본다면 혹은 영상을 지우고 소리만 듣는다면 우리는 그때 서로 다른 두 버전을 경험할 것이다. 그러니 이때 영상이 행사하지 않는데도 이미 행사되는 소리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미셀 시옹은 SF영화 <스타워즈>에서 그 유명한 자동문의 문소리를 지적한다. 관객에게 열려 있는 문과 닫힌 문 두숏을 보여주고 그 사이에 문이 열릴 때 나는 푸쉿 소리만 들려주어도 관객은 스스로 문이 열렸다 닫히는 장면을 보았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추가된 환영”일 것이다. <워낭소리>는 이 노부부가 오로지 소에 관해서만 말하고, 소와 함께 살고 있으며, 소와 함께 인생을 마감할 것 같다는 환영을 추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두 가지 비판의 입장이 있을 수 있다. 만약 다이렉트 사운드(영상과 소리의 활용은 유물론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 주의자들이라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극이다. 혹은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이 현실의 내밀한 포착, 즉 구성이 아니라 포착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또한 <워낭소리>는 심각할 정도로 리얼리티가 어그러져 있어서 비판의 도마에 오를 것이다. 그것은 진실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맥락이다.

 

나는 <워낭소리>가 일반적인 다큐멘터리가 추구하는 진실을 포착하고자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실이 있다 해도 그건 우리가 생각하는 촌부의 세밀한 삶의 리얼리티- 이미 말한 대로 영상과 소리의 불일치로 리얼리티는 거의 소멸한다- 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의 구축만이 이 영화의 진실이다. 이 말의 절반은 비판이지만 절반은 옹호일 것이다. <워낭소리>의 목적은 자기 환영성의 완성에 있다.

 

환영성을 강력하게 만드는 몇 가지 것들이 있다. 말하자면 우선 관객이 이 영화를 기승전결로 이해하도록 유도하려는 내러티브의 고정점이 있다. 영화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누는 대화의 전부가 소에 관한 이야기로만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농사를 짓고 딸린 가족이 없는 노부부의 삶이 단조롭다고는 하나 그들의 삶의 대화가 전부 소에 관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건 현실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거의 늙은 소에 대해서만 말한다.

 

대화가 전부는 아니다. 카메라가 인물을 담는 방식에서도 주체와 대상을 나누어서 한곳으로 집중하게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소를 보여주는 카메라의 시선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감독은 할머니가 영화를 좀 알고 할아버지는 사진을 찍는 줄로 알 만큼 몰랐다고 표현했다. 이때 영화에서 할머니는 늘 보는 사람이며 할아버지와 소는 늘 보이는 대상이다.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본다면 그건 소를 보는 것이며 소에 대한 반응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 오가는 시선의 교환보다 할아버지와 소 사이의 시선의 교환이 훨씬 많으며 그리고 건너에는 그 둘을 보는 할머니의 시선이 있다.

 

또한 할머니는 카메라를 의식하며 말하지만 할아버지는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하고 잡힌다. 말하자면 할머니가 카메라에 대고 액션을 하는 것이라면 할아버지는 대부분 카메라가 잡아내는 리액션의 상태다. 할아버지와 소가 눈과 눈, 발과 발이라는 육체적 환유의 관계로 묶이고 있을 때, 또한 할아버지의 갈라 터지고 굳은살 박인 워낭을 쥔 손,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 그것은 소의 늙은 몸과 머리로 자연스럽게 연관된다. 심지어는 그렇게 교차편집된다. 그러나 할머니의 육신은 그 어디에서도 그만한 클로즈업을 부여받지 않는다. 할머니를 영화 안에 화자로 심어두고 나머지 대상인 할아버지와 소를 보도록 하는 카메라의 방식이다. 그게 이 영화에서 할머니가 객관적 화자가 되고 할아버지와 소가 주관적 오브제가 되는 이유다.

 

리얼리티 강조한 <송환>과는 대척점에

 

이미 말한 것처럼 <워낭소리>의 환영에의 유지는 강박적으로 이미지와 사운드를 분리시킨다. 그리고 인물들을 주체와 오브제의 층위로 갈라놓는다. 그것들을 따라 이야기 안에 이야기를 진전시킨다. 이때 문득 궁금해지는 것은 그렇다면 왜 이 영화는 이런 방식을 동원하여 환영을 이토록 추구하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그것이 한편으로는 재현적 실패에 기인하며 또 한편으로는 극화에의 욕구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충렬은 물리적으로 충분한 재현을 하는 데 실패했을 수도 있다. 즉 사운드를 쓸 만한 장면과 이미지를 쓸 만한 장면을 서로 나누어 인위적으로 재결합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야기를 진전시킬 수 없을 만큼, 유용한 촬영분을 충분히 찍어두는 데 실패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건 거기에 보완심리가 작용했다는 거다. 나는 이 기술적인 실패를 보완하려는 욕구가 우선 이 영화의 환영성을 끌어낸 한 가지 계기라고 추론한다. 나머지는 한번 그렇게 들어선 환영을 끝까지 고수하려는 태도다. 그건 거의 극영화의 환영을 유지하려는 태도에 가깝게 다가가며 감독 자신에게 몇 가지 철칙을 안겨주는 것 같다. 이 점에 관해 비판이나 비난이 아닌 구체적인 설명을 위해 김동원의 <송환>과 변영주의 <낮은 목소리2>의 한 장면을 말해도 좋을 것이다.

 

김동원의 <송환>에는 이 다큐를 유명하게 만든 대표적인 장면이 있다. 비전향 장기수 조창손 할아버지와 박영석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만났을 때 김동원은 그 둘의 대화에 마이크를 갖다 대는 것이 죄송스러워 끝내 그 둘이 대화하는 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그는 그 순간의 리얼리티를 놓친 것이다.

 

김동원은 찍을 수 있는 것과 찍지 못할 것이 있으며 찍지 못한 것은 메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더 정확히는 왜 메울 수 없는지 설명하는 것 자체를 영화의 형식으로 변환하여 넣은 다음 역설적으로 그 장면을 복원하였다. 어찌됐든 그는 여기에 어떤 환영을 도입하는 대신 찍지 못한 장면(즉 듣지 못한 장면)의 실패의 기록을 남기기로 한 것이다. 그게 위대한 과정으로서의 다큐멘터리, 태도로서의 윤리적 다큐멘터리를 완성한다. 거기에서 환영의 개입은 자연스럽게 제거된다.

 

김동원의 <송환>이 얼마나 환영을 경계하는지는 비전향 장기수들을 다룬 다른 다큐에 비해 <송환>에서 그들을 영웅시하는 면모가 단 한 장면도 없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충렬의 경우는 그 반대일 것이다. 그는 말 한대로 아마 꼭 찍고 싶었던 장면을 김동원처럼 놓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김동원과 또한 다르다. 그는 보완의 과정을 거치기로 하였을 것이며 그걸 복원하기 위해 들여온 방편 중 하나가 바로 소리와 영상을 적절하게 분리, 재결합하는 것이다. 이 점이 자연스럽게 환영의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김동원이 조정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충렬은 조정의 가능성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 “송아지가 날뛰어서 할아버지가 쓰러지는 장면을 느리게 잡은 이유는 뭔가”(<씨네21> 684호 ‘노인과 소가 있는 풍경 <워낭소리>’)라고 물었을 때 이충렬은 “그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 하고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한테 뛰어들었다. 그냥 쓰면 내가 드러나서 하는 수 없이 슬로와 스틸로 편집할 수밖에 없었다”고 답한다. 늙은 소 대신 들여온 젊은 소가 새끼를 낳고 그 송아지를 길들이다가 할아버지가 송아지에 채여 넘어지는 장면에 대한 물음과 답이다. 그런데 이 답은 당연한 말 같지만 경우에 따라 이상할 수도 있다. 나는 이충렬의 답을 듣고 변영주의 영화를 떠올린다. 만약 변영주라면 이 장면에 대한 이충렬의 대답에 공감할 것인가.

 

비전문 배우 동원한 극영화인 셈

 

변영주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2>에는 유명한 한 장면이 있다. 고랑에서 호박을 캐오던 할머니가 어쩌다 호박을 놓치자 갑자기 카메라 뒤에 있던 감독이 뛰어들어 그걸 주워 함께 걸어오는 장면이다. 감독이 이때 “할머니는 우리 영화에 어떻게 나왔으면 좋겠냐”고 물으면 “소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두고두고 이 다큐의 본질을 말할 때마다 말해져왔다.

 

이렇게 물어보자. 이충렬은 안된다고 생각하는 걸 변영주는 왜 된다고 생각한 것인가. 이충렬은 할아버지가 달려드는 송아지에게 넘어질 때 왜 자기가 그 안으로 뛰어들어간 것을 보여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반대로 변영주는 왜 프레임 안으로 갑자기 뛰어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인가. 여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두 장면은 연출에 대한 지론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변영주는 잘 알려진 것처럼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에 맺어진 관계를 중요시하는 다큐를 찍었다. 변영주는 그러므로 카메라가 돌아가더라도 시급한 일이 있으면 그 안에 자기가 등장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환영을 깨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반면 이충렬은 어쩔 수 없이 자기가 드러난 프레임을 잘라내는 한이 있어도 극화된 환영성을 깨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환영을 깨고 관계를 인정할 것인가, 환영을 유지하기 위해 그 관계가 드러나더라도 배제할 것인가. 이충렬의 선택은 후자다.

 

<씨네21>의 질문에 대한 이충렬의 앞선 대답은 이 영화에 할머니를 제외한 그 누구의 인터뷰도 없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한다. 집에 가족이 찾아왔을 때 나는 이충렬이 자식들을 인터뷰하지 않았다고 믿기 어렵다. 단지 인터뷰는 진행되었겠지만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넣는 건 다큐멘터리의 오래된 방식인데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자기 자신이 화면에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물론 인터뷰를 넣지 않고 완성된 수많은 다큐멘터리가 있음에도 <워낭소리>의 경우는 누구의 인터뷰라도 극의 흐름을 깬다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인상이 강하다. 극적인 구성을 깨기 싫은 것이다.

 

극적인 구성이라는 면에서 여기 한 가지를 추가할 수 있다. 이른바 극화된 시점숏이다. 영화에는 소가 음매하거나 푸르륵거릴 때 그걸 보는 할아버지의 시점숏이 있고, 그를 보는 듯한 할머니의 시점숏이 있다. 그러나 시선이 잘 맞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같은 자리에서 계획적으로 설계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말해준다. 전체 구성에 입각해서 편집상 시점숏을 만들어낸 것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점숏이란 시선의 연속성에 헌신하며, 시선의 연속성이란 극영화가 환영적 완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인데 이 영화는 그걸 따르려고 한다. 다큐멘터리에서도 할 수는 있겠지만 미리 계산된 카메라의 약속이 아니면 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그것이 등장할 때 거기에는 극화함으로써 환영을 강화하겠다는 욕구가 있는 셈이다. 일반의 다큐멘터리에서 창작자가 대상을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가 대두된다면 일반의 극영화는 대상이 대상과 어떻게 환영적으로 결합하는가에 축을 두는데, <워낭소리>는 후자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나는 이 영화를 비전문 배우들을 동원한 극영화라고까지 말하고 싶어진다.

 

사멸의 회한을 보았다면 제대로 본 것

 

“애초 떠올렸던 이미지들을 염두에 두고 집중적으로 재구성했다. 현실을 도려내서 보여주는 액티비즘의 관점에서는 비난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방식이 심성적으로 끌린다.”(이충렬, <씨네21> 앞의 인터뷰) 나는 이충렬이‘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진실한 삶의 현장을 낱낱이 포착하려 했다’라고 말하는 대신 위와 같이 말하는 태도가 솔직하고 현명해 보인다. 우리는 결코 <워낭소리>를 보고 노부부의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그리고 통일된 삶을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는 건 거짓이 될 것이다.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이라는 연장선에 놓고 혹은 그 위반을 놓고 페이크다큐라고 비판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며 더군다나 간편한 일이다. 하지만 내게 이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는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 하는 원론적인 질문이 아니라 우리는 당도한 환영을 매 순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인 것처럼 보인다. 이 문제는 좀더 심사숙고해야 하겠지만 나는 어색하지만 집요하게 도입된 환영의 선들을 따라 사멸 직전의 육신에 닿아본 이 영화를 일단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다. 여전히 몇 가지 방식에는 공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죽음의 그림자와 사멸에 대한 회한이 여기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그걸 보았다고 말해야 이 영화를 정말 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늙은 두 노인과 한 마리의 늙은 소라는 배우들을 출연시킨 농촌 판타지를 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2009년 벽두에 두개의 환영을 맞이하게 됐다. 하나는 새해 첫날 현실의 시간 속에서 공공연히 일어났으며 또 하나는 얼마 뒤 창작물로서 애매하게 찾아왔다. 이 두개의 환영 중 나는 전자에 분노하지만, 나머지 하나에는 잠시 망설인 다음 끌어안는다.


 

 

 

2) 씨네21 - [나의 친구 그의 영화]워낭소리여, 나의 신음소리여 (김연수)

 

 

[나의 친구 그의 영화] 워낭소리여, 나의 신음소리여

글 : 김연수 (작가) | 2009.02.12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쓴 농약이름 모자를 보며 가자와 용산을 떠올리다

 

 

결국 결론은 “신토불이,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일까? 샌드위치, 햄버거, 스테이크, 파스타…, 현지에서 먹는 양식이란 정말 기가 막힌 맛이리라. 하지만 그것도 한두번이지 두달하고도 몇주째 입에 넣다보면 그게 도무지 음식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걸 음식이라고 먹다니. 그런 독백이 절로 나온다. 그 지경이 되면 남의 나라에 있는 건 자신이면서 그 나라 전체가 글러먹었다는 듯이 투덜거리게 마련인데, 지난호에 실린 글을 보니 중혁군이 지금 딱 그 지경인 것 같다. 무슨 스포일러의 폭력이니, 고분고분 당하고 있지 않겠다느니. 역시 빨리 귀국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을 듯하지만….

 

순진무구한 초딩의 표정으로 울어버렸네

 

<워낭소리>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뭐, 그 정도, 그러니까 신토불이 의식을 고취시키는 다큐멘터리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럼에도 극장까지 가서 다큐멘터리를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안면이 있는 박봉남 독립 PD의 소개글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화면발이 받는 얼굴인지 그간 여러 다큐멘터리에 출연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 알게 된 분이다. 이분이 그 글에다 “아! 나는 75분 내내 숨을 죽이고 이 영화를 봤다. 아! 정말 훌륭한 작품이었다”라는 소감을 남긴 것이다. 이러니 어찌 극장에 가서 보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구나 내 다큐멘터리 인생 최고의 후회는 <푸지에>를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것이니.

 

그래서 파주까지 가서 다큐멘터리를 봤다. 무조건 이 다큐멘터리를 보시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뿐이다. 표현에 인색한 박봉남 PD가 “아! 아!”라고 신음소리를 적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박봉남 PD는 어떤 경우에 “아! 아!”라는 신음소리를 내는지 모르지만, 나의 경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특히 경제적 보상을 바라지 않고 뭔가를, 그것도 몇년에 걸쳐서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 이런 신음소리를 낸다. 다큐멘터리를 볼 때 문제가 있다면 내가 눈물을 너무 많이 흘린다는 점이다. 그건 내가 그런 다큐멘터리의 내러티브를 표면 그대로,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다. 나는 돈을 무시하는 예술가들의 진심을 의심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돈을 무시하는 한 그들은 진실을 말하게 돼 있으니까.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볼 때, 나는 참으로 순진무구한 초딩의 표정으로 곧이곧대로 내러티브를 따라가다가 끝에 가서는 울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자바라·키타진·골자비…

 

솔직히 말하겠다. 그간 나는 영화산업을 혐오하던 사람이었다. 지난 몇년간 영화에 대해 한국영화계가 말하는 것은 오직 돈에 대한 말들뿐인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극장에 갔다가 내 몸에서 나올 만한 체액이라곤 위장에서 솟구치기 시작해 구강을 거쳐 턱으로 흘러내리는 걸쭉한 액체뿐이라는 걸 여러 번 확인했다. 내가 아는 좋은 감독들은 몇년째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그 걸쭉한 액체에 대해 어떤 변명도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돈에 대해서만 말할 때,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은 순수한 불만족일 뿐이다. 순수한 불만족, 그러니까 업자들의 불만족.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에 나오는 노인처럼 이 세상에 ‘대운하 파던 업자’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그들은 항상 더 많은 돈을 원하기 때문에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없으니까.

 

나는 경제를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무시하는 건 경제만을 얘기하는 자들이다. 그 사람들은 왜 경제만을 얘기하는 걸까? 그건 아마도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경제란 자신들만 챙기는 돈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다 같이 돈을 버는 문제라면, 그렇게 쉬지도 않고 경제만을 얘기할 리는 없다. 난 그 정도로 인간이 이타적이라고는 믿지 않으니까. 그러므로 돈을 거부하고 우리 모두 독립제작에 나서자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건 <워낭소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가 먹을 풀을 길러야 하니까 할아버지가 농약을 치지 않자 할머니에게 지청구를 듣는다. 그럴 때조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머리에는 ‘자바라, 키타진, 골자비’ 같은 글자가 적힌 모자를 쓰고 있다. 그 모자를 그들에게 씌운 건 농약회사들이다.

 

무조건 극장에서 돈을 내고 보시라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세계다. 우리가 아무리 매매의 세계를 거부한다고 해도 우리는 이미 그 세계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할아버지는 ‘안 팔아, 안 팔아’라고 소리 질렀고, 40살이 먹은 소는 죽기 바로 직전까지 겨울 동안 할아버지 내외가 불을 땔 수 있도록 나무를 해놓은 뒤에야 죽었다. 할아버지가 아무리 안 판다고 해도 우리는 끝내 할아버지를 설득해서 사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대가도 없이 나무를 잔뜩 해놓고서야 죽는 소를 우리는 이제 더이상 볼 수 없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가 개발의 논리에 밀려 사라지는 농촌의 정경을 다룬 작품일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바라, 키타진, 골자비’는 무엇을 구매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세상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니 보시라. 무조건 보시라. 극장에 가서 돈을 내고 보시라.

 

그렇긴 해도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머리에 마을 이름이 적힌 모자를 씌워드리고 싶었다. 그 옛날 <전원일기>에서 유인촌이 쓰던, ‘양촌리’라는 글자가 인쇄된 모자 같은 걸. 종자처리중화제나 도열병방제제의 이름이 아니라, 아름다운 공동체의 이름이 적힌 모자를. 변하는 건 세상이 아니라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이 바뀌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렇지 않은가? 대통령 한명 바뀌었을 뿐인데, 지금 우리는 아주 딴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또 다른 독립 PD 한명이 시리아에 가자고 했다. 거긴 위험하지 않아요? 내가 대답했다. 입국하기 어려울 뿐이지, 위험하지는 않단다. 만약 그게 가자 지구였다면? 절대로 안 갈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용산에서 철거민들이 불에 타서 죽은 날이다. 포털에 들어가니 메인에 ‘돌아온 그들 앞엔 부서진 집과 가족 시신뿐’이라는 제목이 보였다. 허겁지겁 클릭했더니 일방적으로 휴전이 선언된 가자 지구에 대한, 연민에 가득 찬 보수신문의 기사였다. 평소 국내문제를 다루던 논조를 보면 이스라엘을 극렬 지지해야만 할 텐데 자기 이익과 관계없는 딴 나라의 일에는 이처럼 상식적이다. 나도 모르게 용산을 다룬 기사인 줄 알고 클릭할 정도로 거기나 여기나 매한가지다. 제정신이 박혔으면 누가 가자 지구에 입국하겠는가? 중혁군도 그냥 유럽에 있는 게 낫겠다.

 

 

 

 

 

3) 씨네21 - [전영객잔] 심금 울리지만 껴안지는 못하겠다 (허문영)

 

     

 

[전영객잔] 심금 울리지만, 껴안지는 못하겠다

글 : 허문영 (영화평론가) | 2009.03.05

 

편집의 마술과 기만술 사이에서 <워낭소리>를 다시 평가함

 

 

몇주째 이 지면이 두 다큐멘터리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최초의 영화들이 기록 필름이었으며 카메라와 피사체의 관계가 텍스트 내적인 문제로 새겨진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는, 이야기에의 집중을 요청하는 극영화보다, 영화라는 매체의 기원 혹은 본성과 관계된 쟁점을 종종 더 명료하게 드러낸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24시티>와 <워낭소리>로부터 배우고 생각할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24시티>는 두 차례 다뤄졌으므로 여기서는 <워낭소리>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려 한다.

 

좋은 가짜인가 나쁜 가짜인가의 문제

 

<워낭소리>의 극영화적인 장치들에 대해선 이미 정한석이 재론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정교하게 분석한 바 있다(688호). 그리고 나는 그 다음에 <24시티>의 페이크 다큐멘터리적 성격에 대해서 썼다(689호). 둘을 모두 유사 다큐멘터리 혹은 조작적 다큐멘터리라고 부른다고 해서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은 ‘조작’의 지위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24시티>의 조작은, 유명 배우가 현장 노동자로 분장해 구술함으로써, 관객이 인지하도록 기획되었다. 그러므로 관객으로서의 우리는 그 조작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조작 안에서 무엇을 보고 들을 것인가의 결정을 요청받는다. 반면 <워낭소리>의 조작은 관객이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잊도록 기획되었다. 우리는 프레임에 등장한 이미지와 사운드가 그곳에 정말로 있었던 것처럼 느끼도록 유도된다.

 

스스로를 드러내는 조작은 정당하고 스스로를 은폐하는 조작은 정당하지 않은 것일까.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을 것이다. 편집과 사운드와 현장 연출이 전혀 없는 다큐멘터리는 상상하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을 울렸던 다수의 방송 다큐멘터리들이 <워낭소리>보다 덜 조작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지아장커의 말대로 카메라의 등장으로 현실이 언제든지 왜곡될 수 있다면, 조작의 탈피란 근원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그 조작을 정당화하기 위해 오슨 웰스의 <거짓의 F>의 유명한 대사 “이 세상에 진실과 허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있는 것은 좋은 가짜(good fake)와 나쁜 가짜(bad fake)뿐이다”를 인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 ‘좋은’이 넓은 의미의 ‘감동적인’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 가짜는 ‘좋은 가짜’이다. <워낭소리>를 만든 이충렬 감독은 그렇게 믿는 것 같다. “연출이 얼마나 개입된 것인지를 문제 삼는 사람들이 많은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표현되었느냐와 관객이 무엇을 느끼도록 하느냐가 아닐까요.” 이 작품을 보러 온 많은 관객도 그 견해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양식의 인지’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의 작품 앞에 섰을 때 그것의 양식에 대한 일정한 인지 없이 그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895년 최초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그랑카페에 모여든 관객이 스크린에 도착하는 기차를 보고 혼비백산해서 뛰쳐나간 것은 그 인지가 전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관객이 많게는 수백명씩 죽어나가는 재난영화를 보고도 즐거울 수 있다면, 실제로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다큐가 실재의 기록이어야 한다는 ‘약속’

 

그런데 그 인지에는 일종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그 약속은 창작가가 감상자에게 공식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약속이 지켜지기를 기대하고 그 약속 안에서 작품을 감상하며 그 약속이 깨졌을 때 혼란에 빠지거나 때로 배신감을 느낀다. 재난영화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죽었다고 가정해보면 그 후유증을 짐작할 것이다. 좀더 간단한 사례가 있다. TV 오락프로그램인 <패밀리가 떴다>의 대본이 공개되었을 때 시청자 사이에 논란이 일었다. 그 프로그램은 ‘리얼 버라이어티’로 소개되었고 그것은 세밀한 각본 없이 출연자들의 즉흥적인 말과 행동으로 이루어진 양식이라고 인지되고 약속되었기 때문이다. “그게 다 연기였던 말인가”라고 배신감을 토로한 사람들은 인지된 양식의 약속 안에서 그 프로그램을 즐겼던 사람이었다. 물론 “재미있으면 되지. 대본이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인가”라는 견해도 있었다. 이 견해는 <워낭소리>를 두고 “감동적이면 되지. 연출이 얼마나 개입되었든 무슨 상관인가”라는 견해와 통할 것이다.

 

누구나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어느 쪽이든 선택할 권리가 있다. 더구나 많은 ‘감동적’ TV다큐멘터리들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엄격한 잣대가 애초에 방송용 다큐멘터리로 기획된 <워낭소리>가 극장에 걸렸다고 해서 갑자기 적용되어야 할 근거도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한쪽 편에 설 수밖에 없다. 반복하자면 이것은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약속의 문제이다. 다큐멘터리가 실재하는 삶의 기록이어야 한다는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물론 그 기록에는 작가의 주관적 반응도 포함된다. 사견으론 <송환> 이후 최고의 한국 다큐멘터리인 최하동하의 <택시블루스>는 택시기사인 작가 자신이 주인공이며 비루한 성매매에 자포자기의 태도로 이끌리는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나는 그 약속 안에서만 시네마로서의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약속이 극영화와는 다른 경로로 진리의 지평을 향해 열려 있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옳을 뿐만 아니라 뒤에 다시 말하겠지만 실질적으로도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24시티>는 약속이 근원적으로 지켜질 수 없다는 자각을 전경화하며 자기만의 독법을 제시한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다큐멘터리의 약속, 어쩌면 그에겐 영화 그 자체의 약속에 대한 지아장커의 필사적인 질문이다. 그를 통해 지아장커는 역설적으로 약속을 지킨다.

 

리얼리즘에 충실할수록 환영성은 강화

 

그렇다면 <워낭소리>는? 이 특별한 다큐멘터리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단정하기에 앞서 그것의 방식에 대해 먼저 말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워낭소리> 역시 다른 독법을 제시한다. 그런데 그 독법은 너무나 혼란스러워 차라리 일정한 규칙이 없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물론 가장 중심적인 건 극영화의 독법이다. 이것에 관해선 정한석이 이미 세밀하게 지적했으므로(그는 “이 작품을 차라리 비전문 배우들을 동원한 극영화라고까지 부르고 싶어진다”고 했다) 여기선 한 가지만 덧붙이려 한다. 영화가 시작하고 10분쯤 지났을 때, 할아버지는 젊은 소를 사기 위해 소시장에 나온다. 할아버지의 정면숏 다음에 어떤 소의 숏이 이어진다. 그런데 카메라는 갑자기 빠른 패닝으로 약간 떨어진 곳의 소를 잡는다. 이것은 명백히 카메라가 할아버지의 눈이 되어 움직이는 주관적 시점숏이다(단순히 두 소를 보여주려는 의도였으면 이런 스위시패닝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시점숏은 등장인물의 시점과 관객의 시점을 일치시켜 동일시하도록 만드는 극영화의 방식이다. 별다른 기능이 없어 보이는 이 시점숏이 초반부에 등장했을 때, 나는 감독이 관객에게 이 영화를 극영화의 방식으로 보기를 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태는 더 복잡하다. 다큐멘터리의 어떤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예컨대, 할머니의 인터뷰 장면들. 할머니는 카메라를 보고 할아버지와 소의 오래된 인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할머니의 진술은 장면이 바뀌어서 할아버지가 소와 밭을 갈고 있을 때도 계속된다. 그런데 그 말들은 묘하게도 할머니의 구시렁대는 혼잣말과 이어져 극영화의 방식으로 슬며시 이행한다. 게다가 할머니가 말하고 있지 않은 장면에서도 혼잣말이 나올 때는 방울이 흔들리지 않아도 방울소리를 내는 것처럼 어느 쪽도 아닌 일종의 환청이 된다. 할머니의 목소리와 워낭소리는 그 음원이 소리를 내지 않아도 우리 귀에는 들리는 것이다. 정한석은 이것을 환영성의 강화라고 표현했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망설여진다. 판타지는 말 그대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통칭하지만, 영화와 연관돼 말해질 때 환영은 현실을 재현한 이미지를 뜻하며 영화의 본질에 속한다. 현실적으로 보일수록 그러니까 방법으로서의 리얼리즘에 충실한 영화일수록 환영성은 더 강화된다.

 

따라서 할머니의 입과 목소리가 맞지 않을 때, 환영성은 오히려 훼손된다. 하지만 그치지 않는 워낭소리는 다르게 작용한다. 음성과는 달리 음향의 경우 음원과의 시청각적 동시성에 관객이 덜 주목하기도 하지만 방울이 눈에 띄게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를 내며 그것이 비교적 흔한 소리이기 때문에 새 소리나 바람 소리와 같이 일종의 주변음(앰비언스)처럼 들린다. 그러므로 워낭소리는 환영성을 해치지 않으며 때로 보완한다. 목소리와 소리에 관한 한 <워낭소리>의 방식은 엉성하고 뒤죽박죽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것이 혼란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개별적 캐릭터이자 내레이터인 할머니가 자신의 심경을 효과적이고 때로 유머러스하게 전하는데다 필요한 정보를 적절하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관객은 방식의 혼재 자체로는 감상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 혼성적 양식(주로 방송 예능프로를 통해)에 익숙해 있는 것 같다.

 

차라리 ‘환청의 영화’라는 편이…

 

이 영화의 수사학이 있다면 그것은 환청의 수사학이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그러나 매우 조작적인 순간의 하나는 죽은 소를 묻고 나서 방에 누워 있는 노인을 비추는 끝에서 두 번째 장면이다. 화면 밖에서 워낭소리가 들리고, 끙끙 앓으며 눈을 감고 있던 할아버지는 눈을 뜨고 고개를 (아마도 마당쪽으로) 돌리려 한다. 우리는 노인이 귀가 매우 어둡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워낭소리에 반응하고 있다. 워낭소리는 정말 그때 울렸을까. 울렸다 해도 노인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아마 그는 환청을 들었을 것이다. 주변음에 묻혀 있던 워낭소리는 이 장면에서 비로소 특별한 소리, 바로 소의 목소리의 환유로 관객에게 지각된다. 우리는 살아 있는 소가 울리던 워낭소리를 식별하지 못했지만, 소가 죽은 뒤 환청으로 비로소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대목에선 <워낭소리>를 차라리 환청의 영화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수긍하기 힘든 것은 소의 눈물이다. 정확히 말하면 소의 눈물이 놓인 자리, 즉 편집의 문제다. 소는 두번 눈물을 흘린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소를 팔기 위해 소시장에 끌고 나가려 할 때이며 다른 한번은 잠시 뒤 소시장에서 소 거래인이 할아버지에게 소를 도로 끌고 가라고 소리칠 때이다. 나는 소가 코를 뚫을 때 눈물을 흘린다고 들었지만, 슬픔 때문에 우는지는 알지 못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이상하다. 소의 눈물장면은 두번 모두 소의 얼굴이 프레임을 꽉 채운 클로즈업 숏으로 커트된다. 이 편집은 할아버지와 헤어지게 된다는 사실에 소가 슬퍼했고 소시장에서 이젠 소 취급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더욱 슬퍼한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정작 소가 우는 숏에서 공간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과연 소는 그때 그 장소에서 눈물을 흘렸을까.

 

나는 그것이 정말 궁금하지만 감독에게 묻기 두렵다. 대답을 모른 채 나는 이 편집에 반대한다. 고백건대 내가 <워낭소리>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면은 바로 이 소시장 장면이다. 왜소한 80살 노인이 삐쩍 마른 40살 소를 데리고 와서 팔려고 한다. 사람들은 빈정대고 한 상인은 “이런 소 있으면 다른 소도 안 팔리니 빨리 데리고 가라”고 차갑게 쏘아붙인다. 이젠 고기값도 받을 수 없는 노쇠한 소, 30년을 함께 산 그 소를 더 먹일 기력조차 남지 않아 마지못해 시장에 끌고 온 병들고 휘어진 노인, 무지막지한 노동으로만 채워진 생의 마지막 문턱에 선 두 비루한 육체를 향한 세상의 냉소와 멸시. 우리는 노인과 소에겐 어떤 연출도 개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두 늙은 육체를 그 자리에 이끈 건 고단하고 힘겨운 삶 혹은 가혹한 운명밖에 있을 리 없다. 이 한없이 쓰라리고 슬픈 장면에 마침내 이르렀다는 사실만으로도 <워낭소리>는 비할 바 없이 소중한 기록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무표정에 인과관계를 덧입히지 마라

 

그러나 편집된 소의 눈물이 거기 놓이지 말아야 했다. 소가 정말 눈물을 흘렸다 해도, 그 장면은 편집 없이 그때 그곳에서 보여졌어야 했다. 이 편집은 정서가 풍부한 많은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슬픔을 전하는 데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편집의 마술이 동시에 기만술이라는 것을 아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겐 이 영화가 이전까지 어긴 약속을 곧바로 상기시킨다. 정한석이 예리하게 관찰한 대로 이 영화에는 시선이 서로 맞지 않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상대 숏들, 그러니까 다른 시간대에 찍힌 것으로 추정되는 두 숏을 시간적으로 연속된 숏/역숏인 것처럼 이어붙인 장면들이 꽤 있다. 이것은 앞서 말한 시점숏과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의 방식이 아닌 극영화의 방식이다. 소의 눈물 숏이 과연 정말 그때 그곳에서 찍혔을까, 그 눈물은 정말 슬픔의 눈물일까, 하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떠오르는 의심은 약속을 어겨온 것에 대한 대가의 하나일 것이다.

 

또 다른 대가는 이 편집이 소시장 장면이 지닌 심원한 감정을, 상투적인 인과의 서사로 해소해버린다는 점이다. 노인과 소의 많은 공통점 중 하나는 그들의 무표정이다(노인은 한번은 사진 찍으면서 억지로, 다른 한번은 소 자랑하며 안쓰럽게 단 두번 웃고,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서 있기조차 힘겨운 몸으로 간헐적인 신음 외엔 어떤 불평도 없이 그들이 묵묵히 밭을 갈고 있을 때, 둘은 인간과 소의 경계를 넘어 운명적인 동반자처럼 보인다. 그토록 혹독한 노동의 세월을 다 보낸 그들을 맞이하는 시장에서의 비하와 멸시의 시선들 그리고 외로움. 좌절하고 슬퍼해야 마땅해야 할 그 상황에서조차 그들은 새겨진 듯한 무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다. 어떤 수사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릴 아득하고 뼈저린 무표정. 이때 곧바로 이어진 소의 눈물이 전시하는 즉각적 감정 노출은 이 비애의 심연를 돌연 패턴화된 감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마지막의 환청장면. 여기선 노인이 환청으로 짐작되는 워낭소리를 듣고 언덕에 홀로 앉아 상념에 잠긴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그 수사학적 재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편집을 마찬가지 이유로 신뢰하지 못하겠다. <워낭소리>는 종종 심금을 울리는 순간에 이르면서도 다큐멘터리의 약속을 깨고 극영화의 편집으로 패턴화된 감정의 인과관계를 만들어내려 한다. 정한석은 이 영화의 많은 단점을 지적한 뒤에 “잠시 망설인 다음 껴안는다”고 썼다. 나는 반대로 거부할 수 없이 마음을 적시는 장면들에 흔들리면서도, 결국 껴안지 못하겠다.

 

 

 

 

4) 네오이마주 - [워낭소리]비극이기에 아름다운 로맨스 (빈장원)

 

     

 

[워낭소리] 비극이기에 아름다운 로맨스

필진 리뷰 2009/01/09 19:27 Posted by 네오이마주

빈장원

 

사랑은 비극이어라

 

사랑은 비극이다. 비극이기에 아름다울 수 있으며 눈물 흘릴 수 있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으로 시작해 비극으로 결말 맺는 참으로도 몹쓸 사랑이야기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 자체가 비극이었듯, 그들의 사랑 또한 죽음으로마무리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둘의 사랑을 아름답지 않았노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송희일의 장편 데뷔작 <후회하지 않아>의 두 주인공은 서로를 만난 것에 대해 한 순간의 후회가 없다. 사회라는 거대한 통념아래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을 나누는 그들의 만남 또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렇게 사랑이란 고통받고 슬퍼해야하며 죽음마저 감당해야 한다. 사랑은 비극이기 때문이다.

 

유사 관계망을 지닌<워낭소리>와 <쌍화점>

 

비슷한 시기에 본 <워낭소리>와 <쌍화점>은 장르는 분명 다르지만 너무나도 유사한 관계망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두 영화에 나오는 삼각관계망은 기존 우리가 익히 보았던 것과 조금씩 틀려 오히려 매력있다.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의 애정의 집착은 그와 더 오랜 세월을 함께 했던 할머니가 아니라 그가 부리는 소이다. 할머니는 매일 소만 생각하는 남편을 원망하며 자신의 인생을 한탄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 고생하는 건 생각지도 않으시고 소의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 

 

캐릭터가 다를 뿐 <쌍화점>의 구조 또한 비슷하다. 왕의 집착의 대상은 그를 보위하는 무사 홍림이다. 본연히 어여쁜 왕후가 곁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남자를 사랑하는 운명을 안고 태어난 왕은 왕후보다 홍림을 먼저 생각한다. 그런 왕후는 왕과 홍림의 관계를 맹렬히 비판하고 집착해야 당연하건만 별로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홍림과 세자 만들기를 위한 합궁 후에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음과 양이라는 육체는 속임도 없이 솔직하게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고 둘을 사랑하게끔 만든다. 그로인해 오히려 질투하는 사람은 왕이다. 왕은 어쩌면 <워낭소리>의 할머니와 닮아 있다. 오래송안 사랑했건만 사랑한 대상은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다른 곳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누구나 질투할 수 밖에 없는, 소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망울

 

<워낭소리>와 <쌍화점>은 그래서 비극적인 로맨스다. 이런 관계망 자체뿐 아니라 그들의 사랑이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왕과 홍림의 처절한 최후는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처럼 처참하다. 하지만 난 그들의 죽음을 바라보다 왕후이 눈물보다 <워낭소리>에서 늙어 죽어가는 소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망울이 더 애잔하게 느껴졌다. 말도 못하는 소 앞에서 할아버지 또한 아무말 없이 바라볼 뿐이다. 그러니 불만 가득 넋두리를 늘어 놓는 할머니의 함숨이 왕이 왕후와 홍림의 관계를 향한 질투보다 더욱더 강하게 와 닿는다. 자신보다 더 낭만적인 로맨스를 즐기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 아플까?

 

지독히도 비극적인, 그래서 아름다운 로맨스

 

소는 당연히 죽고, 남는 것은 할아버지의 사랑이다. 이 세상 어느 남녀, 불행하겠지만 어느 동성간의 사랑이 이보다 더 간절할 수 있을까? 할아버지는 '소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어야지'라고 말한다. 물론 그 말이 현실화되진 않는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그래도 육은 살았지만 영은 죽어있으리라. 할아버지의 영혼은 소를 따라 저 세상으로 긴 여행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소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겠다니? 생각해 보면 이 말은 멜로 영화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이 죽을 때 하는 대사다. 그것도 할아버지는 서스럼없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말하듯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마치 로미오의 죽음을 보고 자신도 생을 마감하는 줄리엣처럼. 사랑은 이런 것이다. 그로 인해 아파하는 사람이 있고 설레여하는 사람이 있으며 종국엔 죽음도 있다. <워낭소리>는 감동을 주려는 다큐가 아니다. 인생을 보여주는 작품 또한 분명 아니다. 이것은 멜로 영화다. 지독히도 비극적인, 그래서 아름다운 로맨스다

 

 

 

5) 오마이뉴스 - 세상사 공존의 이유를 발견하다  (한상철)

 

 

 

<워낭소리> 세상사 공존의 이유를 발견하다

 

[오마이뉴스 한상철 기자]

 

 

경북 봉화의 팔순 촌로와 마흔살이 다된 늙은소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타리 영화 < 워낭소리 > 는 영화 평론가 정한석의 지적처럼 페이크 다큐멘터리에 가깝습니다. 다큐멘터리지만 사실은 의도적으로 특정사실 부문을 중심으로 영상과 스토리 자체를 편집한 영화란 뜻입니다.

 

< 인간극장 > 류의 프로그램이 출연자들의 삶의 연속선상에서 다양한 생활의 순간들을 기록한 것이라면 < 워낭소리 > 는 농부 최노인(최원균)과 그의 아내(이삼순), 마흔살 먹은 늙은소라는 삼자를 등장시켜 이들 중심의 이야기로 영화를 끌어가고 있습니다.

 

< 홍보도 전략이다 > 의 저자 장순욱은 PR기법 중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중에 하나가 '지그재그식 PR'이라고 말합니다. 신문에 다뤄진 내용이 이슈가 되면서 온라인이나 방송을 타고 다시 케이블에서 매거진으로 옮겨져 순식간에 이슈화되는 방법을 말하는데 < 워낭소리 > 는 1억원 남짓한 저예산의 독립영화에 불과하지만 '불통의 시대'란 시대적 기류를 타고 제작자들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지그재그PR에 성공한 운좋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워낭은 소의 목에 달린 방울을 말합니다. 영화 제목에서 말해주듯 워낭은 귀가 어두운 촌로와 늙은 소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입니다. 늙은소를 팔아버리자는 아내의 잔소리는 최노인의 귀에 들리지 않지만 워낭을 통해 늙은소가 전하는 진심을 최노인은 정확하게 알아듣고 있는듯 합니다.

 

40년 세월 주인과 함께한 영화속 '늙은소'는 사실상 노동력을 상실한 상태지만 자신을 믿어주고 위해 주는 주인을 위해 오늘도 논으로 밭으로 굼뜬 발걸음을 옮깁니다. 서로의 앙상한 몸이 힘겹지만 최노인에게도 늙은소에게도 함께하는 노동은 그들 존재의 이유입니다.

 

최노인이 장터에서 술에 취해 잠들면 수레에 몸을 실은 채 수킬로미터 떨어진 집으로 찾아오고 주인은 소를 위해 논이며 밭에 농약을 치지 않습니다. 늙은 몸을 이끌고 직접 소가 먹을 소꼴을 베지만 남들처럼 편하자고 사료로 소를 키우지 않습니다. 늙은소를 대체하기 위해 새로 들여온 젊은소가 늙은소에게 횡패를 부리면 기다란 막대기로 혼내며 애타하는 촌로의 사랑에 마음이 아립니다.

 

소의 평균 수명은 길어야 15년을 넘기기 어렵고 육우로 사용되는 소는 30개월 이내에 도축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주인공 '늙은소'는 기대수명을 넘겨 장수한 셈입니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주인의 속깊은 사랑과 보살핌이 주요했을거란 생각입니다.

 

영화는 참으로 담담합니다. 필름으로 촬영하지 않은 화면은 거칠고 영화속 촌노와 촌부의 삶은 투박하다 못해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영화흥행소식만을 듣고 세련된 영상미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거친화면에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담담한 화면전개와 연출되지 않은 촌노와 촌부의 대화는 후반부까지 변함없어 극적반전이나 대단한 클라이맥스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역시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친 화면, 연출되지 않은 모습 그대로면서도 영화는 충분히 감동적이고 울림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 워낭소리 > 속에는 최노인의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심하게 앓은탓에 앙상한 다리는 마흔살된 늙은소처럼 제대로 걷기도 힘들지만 최노인은 소를 의지삼아 기어서라도 농사를 짓습니다. 힘들게 농사짓는 주인 곁에서 눈을 껌뻑이며 주인을 지키는 소에서 오랜 친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아내와 9남매의 성화에다가 본인의 건강이 악화되어 더이상 늙은 소를 감당할 수 없어 맘에 없던 장터에 나간날 60만원에 사겠다거나 거저줘도 안사겠다는 흥정꾼들에게 500만원은 줘야 팔겠다고 큰소리 치는 주인의 마음에 영화의 주제가 담겨있습니다.

 

장터 술자리에서 한잔술을 앞에두고 술친구들에게 늙은소와의 추억을 말하는 최노인의 얼굴엔 아이처럼 행복한 미소가 가득합니다. 최노인은 늙은소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었던게 분명합니다.

 

잃어버린 10년이니, 강부자니, 경제살리기니 정치인들이 지난 대선에서 던져준 말의 성찬들이 특정계층을 옹호하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이란 사실을 확인하는데 1년이 걸리지 않은 요즘 < 워낭소리 > 는 그래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최노인은 농사를 위해서 그리고 불편한 다리를 대신할 단거리 이동을 위해서 그리고 재산증식을 위해서 '소'가 필요했습니다. 그의 목적은 이땅의 다른 농부들과 별반 다를바 없었지만 그의 마음가짐은 달랐습니다. < 워낭소리 > 의 영어 제목이 'Old Partner'란 사실에서 알수 있듯이 오랜세월 함께 공존할 친구로 소를 본것입니다.

 

바쁜 농사일 틈새로 새참을 먹는 시간 노인이 먹는밥, 한사발의 막걸리는 늙은소도 함께 먹습니다. 부족하지 않게 먹이를 주지만 너무 과하게 먹어 탈이 나지 않도록 새심하게 배려하는 최노인에게 늙은소는 죽마고우이자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동반자입니다.

 

노구에는 너무나 힘든 거친 밭일 , 쉴새없이 자라는 잡초를 다뽑기에도 늙은 몸은 힘들지만 소의 먹거리를 위해 최노인은 자신의 밭에는 전혀 농약을 치지 않습니다. 영화 후반부 한가득 땔감을 베어오던 촌로는 지치고 병든 소를 위해 짐을 나눠지고 소가 끄는 수레를 타지 않은채 함께 걸어 집으로 옵니다.

 

가난하고 병든몸이지만 9남매를 농사로 모두 출가시킨 촌로에겐 남들보다 뛰어난 학력도 재산도 없지만 소와의 공존을 통해서 함께 사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시끌벅적한 세상사 최노인이 몸으로 설파한 공존의 이유가 이 시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다른사람보다 좀더 가지고 좀 더 앞서기 위해 비난하고 계략을 일삼는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공존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 워낭소리 > 는 청량한 산사의 풍경소리와 같습니다.

 

 

 

 

*워낭소리 위키 - http://ko.wikipedia.org/wiki/워낭소리

* 공식 블로그 - http://blog.naver.com/warnangsori

* 2009년 9월 24일에 발간한 책 '워낭소리'

 

- 알라딘의 책소개

 

 

*미디어스 - 네티즌 선정 최고작품 '워낭소리'

 

*미디어 오늘 - MB, 워낭소리가 뭔지나 아세요?

 

* 씨네21 - 일본에서도 워낭소리 울리네

 

* 프레시안 - 워낭소리 이충렬 감독, '영진위, 저질 개그했다'

* 링크하고 나서 - 2010년 9월 2일 덧붙임

 

 

진보넷 블로그에 있던 '워낭소리' 감상(소감? 후기? 영화평? 등등) 들을 다시 읽어보니, 불편하거나 의아했던 분들이 대부분이고 드문드문  좋은 영화라고 같이 보자고 강추하는 분도 있다. 독립영화를 제작하고 있거나 미디어 관련 일을 하는 분들 중에서 관련글을 두 개 이상 작성하면서 처음부터 의문이 있었던 부분을 조금씩 발전시키는 분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 영화에 대해 칭찬했다가 나중에 여러 사람들이 불편한 점을 지적하자 그제서야  처음부터 불편했다는 듯이 슬그머니 부정적인 평가를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독립영화를 만드는 이였는데도 그랬다. 이 중에서 '하루'의 글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가장 솔직하게 다가왔다.

 

워낭소리 이후 독립영화 관련기사들을 살펴보면,  일반 상업영화와 마찬가지로 관객수와 수상(특히 해외 유명 영화제) 여부에 의해 기사화되느냐 마느냐가 판가름되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것은  '읽을만한 정보'를 철저하게 서열화해서 선택하는  언론의 생태에 의해 이미 예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는 더 노골적으로 그러하리라고 예정되어 있었던 길이지만, 워낭소리가 만든 좋지 않은 영향력 중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고, 와중에 한국독립영화협회에 여러 사람이 연명해서 정식으로 문제제기한 일도 있었는데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을까. 논란이 일던 게시판은 닫혔다. 이 협회의 회원이 아닌 이들은 , 협회에 직접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보내거나 만나거나 해야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볼 수 있다. 그래서 적어도 나는 그 결과를 모른다. 기자회견을 열어 대대적으로 밝혔던 '워낭소리 수익금 30%를 독립영화 발전에 기증' 한다던 호언장담은 어떤 방식으로 지켜졌나. 거기에 대해서도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

 

지금 독립영화계에서 '워낭소리'라는 어떤 영화(이 영화가 왜 독립영화인지 , 어떻게 그  많은 독립영화제에서 상영작으로 선정될 수 있었는지 정식으로 묻고 싶다.)가 왜 관객들을 불러모았는지 분석하거나  비판하려는 시도는 찾아볼 수 없다. 분명 정리하고 넘어가야할 내용들이 있으나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고영재의 프로듀싱을 받고자 하는 독립영화 감독들이 점점 늘어난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심사를 맡는 등 그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사무총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작사 느림보'라는 개인회사를 운영해서 한 영화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홍보하는 활동을 한 것은 아무도 문제삼을 수 없을만큼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당한 일이었던 걸까. 단지 내가 너무 멀리 있어서 자세한 소식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실제로 일어나야할 일들이 일어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는 중인가. 답답하고 궁금하다.

 

 

2010/07/14 09:01 2010/07/1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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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닌 제천에서, 음악영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부터

꼭 가고 싶었지만 결국 한번도 못갔던 곳, 가끔 생각날 때 마다 아릿하다.

해마다 꼬박꼬박 소식지가 오는데 며칠 뒤 서울에서 특별상영회를 한다니

친구들이라도 나 대신 한번 가보라고 굳이 여기다 올림.

꽤 유명한 프로그램이고, 미리 신청을 해야한다니 가보려면 서두르시길. 

 

2010/07/06 02:22 2010/07/06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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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 연애']에 관련된 글

 

할 말이 주르륵 넘쳐버린 어느날

망서리다가 편지를 보낸다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채 적지도 못하고

그냥,  잘 지내냐고 나도 잘 있다고 간단하게

보내고 나서 잊고 있다가 어느날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이를테면 엄마의 화장대 같은 곳에서

이미 오래 전에 왔던 답장을 발견한 느낌

망각의 삶 홈페이지에서 긁어온 글

작성한 날짜가 7월 5일

 

출처: 망각의 삶 -  '그 연애'에 대하여

 

 

조금 정신적으로 느슨한 것 같기도 하고…
무기력한 것인지, 여유있어진 것인지 조금 혼란스럽지만,
어쨌든 제 생애 처음으로 조금 편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 인 것 같아요.
뭘 하고 살지, 어떻게 살지 아직도 여전히 모르겠는 것이…

영화는 아주 많이 짧아 질 것 같고, 조금 다른 영화가 될 것 같아요.
이 영화가 그리 대단하지도 않고, 이 영화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그리
엄청나게 중요한 것도 아니에요…그저..소소하다고나 할까..
조금 자책을 섞어 얘기하자면 사소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연출자로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부심이 그렇게 없느냐 라는 지적을
누군가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주목하고 주장해야 하는….
세상의 많은 불합리와 부조리, 영화따위는 꿈도 못 꿀 힘든 현실에 직면해 있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먹다가 목에 걸리는 아주 작은 생선가시 정도의 문제의식만을 담고 있는
제 영화가 소소하다고 말하는 것이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작은 영화가 세상의 틈새를 조금 채워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주축을 이루는 큰 돌은 아니니까요.
이 영화는…
저에게 있어 오래된 친구처럼 친근하고 가까운 존재라는 이야기밖에는 못하겠네요.

그럼에도 이렇게 재편집을 하는 이유는…
뭐랄까… 제 자신의 노력으로만 만들어졌다면 서랍속의 개인소장용이 되든,
책갈피에 끼워넣었던 나뭇잎들만큼 한때의 감상적인 산물이 되든 상관없겠지만…
영화라는,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한 아주 이기적인 과정에,
자신들의 귀한 노력과 시간을 쏟아준 친구들의 그것만은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이라서요.
왜 그런지 모르지만, 전 그게 계속 마음이 쓰여요.
제가 지금 뭔가 할 수 있는데까지 더 해놓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서 말이죠.

사실, 상영기회를 얻지 못한 1년여의 시간동안은 제 영화를 전혀 다시 보지 않았어요.
이해받지 못하고, 동감받지 못한, 제 세계를 다시 들춰내게 될까봐 좀 무서웠던 것 같아요.
그 사이 제 앞에서 ‘니 영화는 안될 것 같다!’ 대놓고 말씀하신분은, 제 아버지뿐이긴 했지만.
사실 영화가 안 될 것 같은게 아니라, 제가 안될 것 같았어요.
그저 그렇게 주변만 맴돌다가, 아쉬움만 가진 채로 자신의 작업을 접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제 자신도, 제 영화의 제목처럼 그저 그런 감수성으로, 그저 그렇게 고군분투하다가,
고만고만한 작품들을 만들고, 그저그런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가,
그저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면서,흐지부지 이도 저도 아닌 인생을 살게 될까봐 두려웠어요.
뭔가 되지 않으니까 억지로 일상의 행복이나 찾으려고 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혼란스러웠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느끼는 감정들이 어떤 것의 산물인지 몰라
당황하던 시간의 연속이었죠.

마음속의 여러 산을 넘어서 다시 본 영화는…다시 편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점이 많았어요.
이야기가 여전히 재밌는 부분도 있었고, 캐릭터들도 정이 갔지만,
준비할 시간을 많이 가지지 못하고 찍었던 만큼 아쉬운 점도 많이 보이더군요.
아쉬운 점을 개선하고,내 이야기들을 어떻게 맥을 이어갈지가 재편집의 주요 고민이었습니다.

이제 편집은 거의 끝났고, 영화의 룩도 다시 만들고 있는 요즘에는
조금 마음이 편합니다.
나는 할만큼 했으니, 8월에는 소박한 휴가를 즐기리라 마음먹으며…
제가 사는 이 시간은, 그 누가 아닌 바로 제가 원해서 있는 것이니만큼
뭐든 즐겁게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복잡한 세상에…
우리가 타인을 모른다고, 그들의 삶이 없는 것도 아니고,
주목받지 못했다고,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며..
많은 사람이 느끼지 못했다고 의미없는 것은 아니죠.

이건 제 자신에게 하는 말 뿐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일구며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다른 작은 아티스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비슷하게 갈등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그리 큰 도움은 되지 못하더라도,
세상과 자신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 혼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서로 따뜻하게 손은 잡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모두들 행복하시길 바래요.
영화가 다시 완성되면 만나요!

 

 

 

2010/07/06 00:43 2010/07/06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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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홈페이지 : 망각의 삶

 

 

처음에는 이런 영화였는데

 

완성한 지 좀 됐다.

어느 영화제에서 상영하나, 그 소식만 기다렸다

디비디를 한번 봤으니 리뷰라도 올릴까, 그러던 참에 연락이 왔다

- 다시 편집하고 있어요.

으응?

 

두 사람, 무척 꼼꼼하시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를 첫 상영하기 직전에 이분들이 트레일러를 제작했는데

미디액트에서 다같이 처음 보던 날, 연출자들이 조금 당황했다.

본 영화보다 때깔이 더 좋으면 곤란... 그래픽 구현 기술이 너무 높.... 메시지가 너무 심오...

암튼 너무 너무 공을 들인 결과물이었고, 부탁한 사람 입장에서는 죄송할 따름이었다.

그랬는데, 어라,  얼핏 보기에 허술해보이는 극영화 한 편을 완성했다

아니, 다시 편집한다고 했지.

편집 잘하는 거 다 알고 있으니 이제 고만하고, 어서 상영하시라

그리고 빨리 새 디비디 보내주셈.

아래는 공식 트레일러,  그리고 본인들이 소개한 '망각의 삶'

The Cell of 'The Romance' part 1. from igi 이기 on Vimeo.

(좀 더 큰 사이즈로 보려면 여기로. ) 

 

 

망각의 삶은…
이기와 비정이 지구를 구하려고 만든 팀입니다만…
결성한지 10년째....
그동안 지구를 구하는데는 소홀하고....

작품 만들기와 여러가지 영상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저희의 접근품목은.. 영화, 사운드, 모션그래픽...등...듣고 보는 모두 입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 원하는 이유에 대한 고민과 실제적인 행동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여러 과정을 거쳐오면서 해가 거듭될수록,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소통하고, 그렇게 살아가기>는

한밤중에 옥상 장독대에 올라 고물라디오로 우주에 전파를 쏘아올리는 것 만큼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임을....
주변의 것들과 저희 안의 것들이 알게 해주었습니다.
슬슬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제까지 한 것들을 보듬고,
앞으로 할 것들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면서 <망각의 삶>은 살아갈 것입니다.


2008. 2월 망각의 삶

 

Screening

2009

그저 그런 여배우와 단신 대머리남의 연애  / In house project

(연출/극영화/125분/비디오)

 

2004

Over / In house project

(연출/실험/6분/비디오)

- 2004 뉴미디어아트페스티벌

- 2005 서울국제실험페스티벌

- 2005 서울넷페스티벌 국내경쟁부문

Humming / In house project

(연출/실험/8분/비디오)

 

2003

Undenied / In house project

(연출/실험/6분/비디오)

침묵의 외침 / In house project

(연출/실험+다큐멘터리/15분/비디오)

- 2003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비엔날레

- 2003 서울독립영화제

- 2003 인디포럼영화제

- 2003 인권영화제

- 2003 국제평화영화제

- 2003 EBS 열린다큐멘터리영화제

 

2002

Wake Up And Smell The Coffee / In house project

(연출/뮤직비디오/6분/비디오)

- 2002 레스페스트영화제 모션그래픽 뮤직비디오 부문

 

1998

In The Garden / In house project

(연출.촬영.편집/뮤직비디오/7분/비디오)

-제1회 m.net 뮤직비디오 공모전 우수상

707 / In house project

(연출/극영화/15분/16mm필름)

Collaboration / Commission

 

2009

프로젝트 아이 4.0 - DVD

/ Commission work

(DVD 제작 / 아트센타 나비)

프로젝트 아이 4.0 - 소리가 있는 아이들의 섬 Sound of [a:i] island

/ Commission work

(모션그래픽 - 전시 영상물, 메이킹 비디오 / 14분, 11분 / 아트센타 나비)

 

2008

/ Collaboration work

(모션그래픽/장편극영화/4분)

 

2006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 Collaboration works

(편집.모션그래픽/프로모션 비디오/4분/비디오)

소리 아이 프로모션 / Collaboration works

(편집.모션그래픽.색보정/프로모션 비디오/2분/비디오)

이준기 디지털 싱글 앨범 프로모션 메이킹 / Commission works

(편집.메인타이틀.색보정/프로모션 비디오/J&H 미디어)

 

2005

코리안 신드롬-중앙컬쳐밴드 ‘원’ / Commission works

(연출.촬영.편집.시각효과/뮤직비디오/Coree 뮤직)

 

2004

아물지 않은 상처들 / Collaboration works

(메인타이틀 디자인/다큐멘터리/여성부)

세계화의 수레바퀴를 멈추자 / Collaboration works

(메인타이틀 디자인/다큐멘터리/민중의 소리 제작)

돌속에 갇힌 말 / Collaboration works

(메인타이틀 디자인.색보정/다큐멘터리/나루 제작)

- 제4회 인디다큐페스티벌

- 제9회 수원인권영화제

-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 안양변방영화축제

- 제9회 인권영화제

- 제10회 인디포럼영화제

- 제7회 정동진독립영화제

- 2005 부산인권문화제

- 제10회 전주인권영화제

GameUFO 프로모션 비디오 / Commission works

(메인타이틀 디자인/(주) 웹패턴)

 

2003

Listening To The Voice Of A Wind / Commission works

(편집.색보정.메인타이틀 디자인/장편극영화)

-미국 San Jose Film Festival 초청

GameUFO 프로모션 에니메이션 / Commission works

(연출/에니메이션/(주) 웹패턴)

 

2002

억압의 사슬 / Collaboration works

(메인타이틀 디자인/다큐멘터리/여성의 전화)

 

2001

끝나지 않은 이야기 / Collaboration works

(메인타이틀 디자인/다큐멘터리/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1997

Repeater / Collaboration works

(촬영/극영화/15분/16mm필름)

-1998 인디포럼영화제

Talk ( Artist Talk / Lecture / Workshop )

 

2006~2009

한국영상자료원 KOFA영화학교

[촬영과 편집 실습 기초]과정 강사

 

2004~2005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험센터 [하자센터]

[뮤직비디오 프로젝트] 강사

 

2004

아카데미 정글

[디지털 영상 편집 제작]과정 - 애프터 이펙트와 영상디자인 강사

 

2001

한국미디어센타

[비디오 저널리스트] 과정 에프터 이펙트 강사

서강대학교 방송아카데미 [디지털 편집:프리미어 프로]과정 강사

 

2000

한겨레 교육문화센터

[뮤직 비디오 제작] 과정 디지털 편집:프리미어 프로 강사

 

Publication( CD / DVD / Book )

 

2005

창의적인 영상제작과 편집을 위한 ‘프리미어 프로 아트북’

(제우미디어 출판사)

Exhibition

 

2008

“이상한글" 전 (아트센터 나비)

- 거다란 잡식동물

(박영임(비주얼 디자인) + 김정민우(사운드 디자인)/실험비디오/12분)

 

2003

공공애니메이션 프로젝트 ImageAct 전 (일주아트하우스)

- 침묵의 외침

(연출/실험+다큐멘터리/15분/비디오)

 

 

2010/06/25 22:16 2010/06/25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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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천여성네트워크 여자만세

작품정보: 쇼킹 패밀리,  진옥언니 학교가다,  나는 엄마계의 이단아,   슈프로슬링

 

 

2010/06/25 20:34 2010/06/25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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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찾아서'를 보고 나서 다음 작품이 늘 궁금했는데 경순감독이 '쿠바의 연인'을 보내줬다.

디비디는 배급사에서 내줬고 소포는 경순이 보냈다고.  언제 한번 제대로 봐야하는데, 최근에 노트북이 디비디 재생 때마다 문제를 일으켜서 못보고 있다. 하는 수 없이 광고만 이렇게.

 

* * * * *

 

출처: 시네마테크 KOFA

보다 자세한 작품정보:시네마달

 

6월 26일 토요일 오후4시, 상암동 영상자료원, 무료 상영

 

<쿠바의 연인> 정호현, 2009|Documentary|Color|DV|93min
 
 
 

이 영화는 디자인과 대학생인 쿠바 청년과 다큐멘터리 감독인 한국 여성이 둘이 함께 살아갈 곳을 찾는 이야기다. 춤과 음악, 체 게바라, 유기농업, 도시농업 거기에 공짜 교육, 공짜 의료로 유명한 쿠바 속으로 들어가 살아보면서 쿠바 사회의 실제 모습을 차근차근 관찰한다. 지구상의 천국일지도 모르는 쿠바, 사람 살만한 곳인가? 또 쿠바 청년이 한국을 방문함으로써 한국이 폭탄머리 흑인에게 살만한 곳인지 직접 타진해 본다.

 

감독은 작열하는 태양아래 춤과 음악이 흘러넘치는 나라 쿠바에 도착한다. 교육도 공짜, 의료도 공짜인 이‘색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감독은 아바나 대학에서 젊고 귀여운 쿠바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2010/06/25 20:02 2010/06/2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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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제10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구애전 본선 진출작을 발표합니다.

 지난 2월 17일~5월 14일까지 진행된 공모기간에 접수된 작품 중

 영화제 부문 54작품, 전시제 부문 9작품 등, 총 63 편이 본선구애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구애되는 작품은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서 상영/전시되며,

 페스티벌 기간 동안 본심을 거쳐 최종 수상작이 선정됩니다.


 네마프2010의 구애작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

 <영화 부문>

 이형석 '디지털 인터미디에이티드 스위밍'
 도미노 '습기-한 조각'
 김지곤 '오후3시'
 변지민 'Graffiti'
 조승준 '캐틀트럭'
 이지은 '그대로 멈춰라'
 이한아 '제3의방'
 송영국/이종민 '재'
 임덕윤 '조금 불편한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 0.43'
 최미경 '놈에게 복수하는 법'
 늘샘 '미륵동 서커스'
 유지숙 '10년의 초상'
 정강 '말하다'
 서영주 'Left and Leave'
 정성윤 'On the planet'
 김민경 '오디션'
 박동현 '기이한 춤;기무'
 김은민 '내 청춘을 돌려다오'
 정호현 '쿠바의 연인'
 박용석 '테이크 플레이스'
 황선숙 '울음'
 안정윤 '공화국 찬가'
 김경묵 'SEX/LESS'
 김진영 '나를 믿어줘'
 옥민아 '끼니'
 박경미 '봄'
 민혜진 '기억은 왜곡된다'
 최진성 '저수지의 개들 take1. 남한강' 
 오롤로 'Love poem'
 타니가키 유리 'COLORS'
 조영직 '아마츄어증폭기 탄생설화'
 드보작 'Next day. Same time. Same place'
 이보라 '그럴 줄 몰랐어'
 Virginai Apicella 'Happy Birthday'
 Narelle Benjamin 'REALM'
 Marlene Millar/Philip Szpoper 'FORTIES'
 Nicolas Provost 'Gravity'
 Celilia Condit 'Annie Lloyd'
 Jem Cohen 'Long for the city'
 Federic Moffet/Katrina Chamberlin/James Kubie 'The Body Parlor'
 정지숙 '기다림, 설레임'
 장형윤 '내 친구 고라니'
 조수진 '보고 싶어요'
 전승일 '예산족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김형석 '아무도 모른다'
 김조광수 '친구사이?' 
 이란희 '파마'
 정소이 'Burning Paper'
 박형익/윤홍란 'Line'
 강지이 '소나무'
 Tijmen Hauer 'Talking Heads'
 Oliver Hockenhull 'Shot on Blood: Kozmikonic Electronica'
 Stuart Pound 'Not you again!'
 Sarah Shamash 'The Adventure of a Photographer'


 <전시 부문>

 김태희 'Touch and Touch Ⅱ'
 김웅현 '多運勞頭 다운로두'
 박병래 '고무줄놀이'
 최선영 '21세기 자원'
 차지량 '세대독립클럽'
 이창 'Recall for the missingpage'
 서진옥 '빨강 개복동에서 놀다'
 채훈정 'Dust'
 다이노 '심혼'
 
==================================

2010/06/15 09:21 2010/06/15 09:21

Inside Out 2010

from 영화+독립영화 2010/05/2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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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주년을 맞이한 토론토의 '인사이드 아웃 LGBT 영화제'

홈페이지 - http://www.insideout.ca/20/index.php

(스탭들, 사진 출처는 홈페이지)

 

한국영화도 상영된다고 해서 시간표를 찾아 봤는데

글쎄, 상영작이 쌍화점 이라고 해서 좌절 중...

20년 동안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영화는 몇 편이나 상영했을까.

한국 독립영화를 이런 영화제에서도 보고 싶은데 과연 상영한 적이 있을까

궁금한 것도 있고 보고 싶은 영화도 있어서 가볼 참이다.

 

*상영하는 한국영화, 하나 더 찾았다. 

'소년, 소년을 만나다'(2008, 김조광수)

 

*또 하나 더...

'목욕'(2007, 이미랑)

 

아래는 홈페이지에서 퍼온 영화제 소개글.

 

Celebrating 20 years of challenging attitudes and changing lives.

Inside Out is a not-for-profit registered charity that exists to challenge attitudes and change lives through the promotion, production and exhibition of film and video made by and about 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 (LGBT) people of all ages, races and abilities. 

 

Toronto LGBT Film and Video Festival

In 1991, Inside Out celebrated its first film and video festival with a small community of people who yearned to see film and video created by and about 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 (LGBT) people. Currently the largest event of its kind in Canada, the Festival entertains film buffs of all stripes. Taking place over 11 days, the Festival draws crowds of 35,000 to screenings, artist talks, panel discussions, installations and parties that highlight more than 250 films and videos from Canada and around the world.

 

Queer Youth Digital Video Project

In 1998, with the support of Charles Street Video, Inside Out initiated the Project to provide opportunities for youth to learn video production in a supportive atmosphere. Queer youth under the age of 25 are mentored through storyboarding and shooting, to post-production and editing. The works are screened at the Festival and many go on to play at festivals around the globe. Each year, the videos are compiled on DVD and distributed free to schools and community organizations. To date, more than 77 queer youth have created work through the Project.

For 2010, in celebration of the Festival's 20th Anniversary, Inside Out has created a special edition of the QYDVP, entitled the Legacy Video Project, turning the Project into a multi-generational video program consisting of four young artists and three adults over the age of 55.

 

 

 

2010/05/21 13:56 2010/05/2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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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사람들.

 '개청춘'은 계속 상영중인데,  벌써 각자 하나씩 두번째 작품을 기획해서 제작지원까지 받았다.

시작할 때는 서로 촬영도 해주고 모니터도 해줄테니 든든하겠지만, 나중에 뒷감당은 어찌 하시려고.

편집 시기도, 발표 시기도 비슷할텐데 괜찮으시겠스므니까?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 / There is something strange.

연출 / 손경화

작품소개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나쁜 놈이라고 믿고 있었던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다. 환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뜻밖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대구였다. 사람들은 어떤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순간을 통하여 그 생각이 흔들리게 되는 걸까? 나는 이 질문들을 안고 보수 정당 지지자인 아빠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2009년 서울영상위원회 독립영화제작지원작

작업블로그  http://thereissomethingstrange.tistory.com/


두 개의 선 / Two lines

연출 / 지민

 

작품소개
동거라는 삶의 형태가 갖는 의미를 발견해 가던 여자와 남자는 어느날 임신 사실을 확인한다.
삶을 성역할로서의 아내와 남편으로 고정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 시작한다. 아이가 타인을 만나게 되면 그 차이를 알게 될 것이고, 거기서 발생하는 일반성의 폭력을 경험할 것이 뻔히 예상됐기 때문이다.
아이 덕에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객관화시키고 결혼이라는 범주의 경계 안팎에서 고민하는 이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삶을 들고 세상과 만나기로 한 것이다.

 

제 1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옥랑문화상 수상작

작업블로그  http://2lines.tistory.com/



송여사님의 작업일지 / MS. Song's worklog 

연출 / 나비


작품소개 
엄마 로부터 '노조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당황했다. 평소에 노동운동이나 여성의 노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였지만. 엄마가 노조를 만든다는 것은 예상밖의 일이었다. 걱정이 되고, 얼떨떨했지만 엄마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가 일하는 회사의 부당한 대우를 들으면 화는 나지만 노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딸이 돈 안되는 일은 그만하고 어서 빨리 돈도 벌고 결혼도 해서 안정되길 바란다. 서로가 불안해 보이는 엄마와 딸. 우리는 결국 '안정된 삶'에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인디다큐페스티벌2010 봄 프로젝트 지원작

작업블로그  http://songsworklo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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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9 10:48 2010/05/1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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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영화인 모임에서 마련하던 '아름다운 영화인 캠페인'이 

준비하는 주체나 상영하는 영화의 범위를 확장하면서 이름을 바꾼 듯.

 

2008년 4월, 진보넷 블로거들과 함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같이 봤는데 그 상영회도 이 캠페인 중 하나였다.

입장료는 무료대신에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기부를 하면 된다.

정해진 금액은 없으니 마음 닿는 대로.

 

*문의처 : (사)여성영화인 모임 사무국 02-723-1087

 

 

 

 

5월 영화·희망·나눔 영화인캠페인 권영철 감독 <나쁜 놈이 더 잘 잔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씨네21, 아름다운재단, 여성영화인모임, 영화인회의, 영화제작가협회,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영화·희망·나눔 영화인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영화·희망·나눔 영화인캠페인’의 2010년 5월 상영회 상영작은 권영철 감독의 <나쁜 놈이 더 잘 잔다>입니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섹션에 소개되어 관객들에게 주목을 받았던 이 작품은 권영철 감독의 데뷔작으로 너절한 환경을 탈피, 반전을 꿈꾸는 청춘들의 인생 막장을 그리는 범죄물 입니다. ‘폭력과 사회가 만들어낸 청춘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5월 24일 ‘영화인 캠페인 상영회’에 관객 여러분의 많은 참여 기다립니다.


*영화인캠페인에서는 매달 한 번 상영회를 열어 사회·문화 소외계층과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으며, 영화인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매달 아름다운재단에 소정의 기부금을 납부하여 영화인캠페인 기금을 조성, ‘청소년들의 자발적 문화 활동’을 증진하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반인들의 관람 신청 이전에 아름다운재단의 ‘문화나눔’과 연계하여 소년, 소녀 가장, 사회복지시설, 공부방 이용 아동 및 청소년들을 초대하고 있으며,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도 좌석을 나누고 있습니다.

 

상영작 <나쁜 놈이 더 잘 잔다 A Good Night Sleep for the Bad>

l 연출: 권영철 l 출연: 김흥수, 오태경, 조안

 

연출의도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는 ‘ 생계형 범죄물 ’ 로 그리고 싶었다.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범죄물로 덧씌었지만 알맹이는 질척한 인생에 집중했다. 장르와 드라마 모두 놓치지 않고 표현하고 싶었다.

 

감독 권영철 영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2006 )의 조감독 출신, 디지털 단편영화 <룬트베르크302>(2004)로 2004 마이애미 국제단편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직접 집필한 시나리오 <나쁜 놈이 더 잘 잔다>(2008) 는 그간 다져온 그의 영화 공력이 잘 묻어나는 인상적인 데뷔작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소개 되었다.

 

 

 

*영화ㆍ희망ㆍ나눔 영화인 캠페인 상영회 역대 상영작

 

2010년 
1월 <황금시대>
2월 <파주>
3월 <반드시 크게 들을 것>
4월 <계몽영화>

 

2009년 
1월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2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3월 <똥파리>
4월 <길>
5월 <농민가>
6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7월 <시작하는 연인들>
8월 <날아라 펭귄>
9월 <하얀 나비>
10월 <여행자>
11월 <라라 선샤인>
12월 <페어 러브>

 

2008년 
1월 <계속된다-미등록 이주 노동자 기록되다>
2월 탈북청소년교육공동체 셋넷학교 제작 작품
3월 '젊은 영화제' 수상작들
4월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나다1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5월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나다 2 - 2007년 인디포럼 여성 감독
6월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나다 3 - 그 경계를 가로지르며 <3 × FTM>
7월 ‘영화, 이주민 인권을 말하다’ <멋진 그녀들>
8월 '영화, 우토로의 희망을 이야기하다'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
9월 2008년 잊어서는 안 될 기억들 1 - <바보>
10월 2008년 잊어서는 안 될 기억들 2 - <필승 Ver 2.0 연영석>
11월 2008년 잊어서는 안 될 기억들 3 - <고사: 피의 중간고사>
12월 <워낭소리>

 

2007년 
4월 <우리학교>
6월 <아들>
7월 <동백아가씨>
8월 <아이스케키>
9월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중심에서’ <우리들은 정의파다>
10월 ‘잊혀져가는 두 가지 공포-버마와 기담’ <기담>
11월 ‘차별. 올해를 끝으로, 안녕!’ 

2010/05/18 11:04 2010/05/1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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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3 01:31 2010/05/13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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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인디포럼

장소: 서울아트시네마,

2010년 5월 27일 부터 6월 2일까지

홈페이지: http://www.indieforum.co.kr/

 

신작 선정의 변

 

인디포럼 2010 국내 신작전에는 장편 22, 단편 477 편 등 총 499편의 작품이 출품되었고, 그 중 장편 5, 단편 45편 등 총 50편의 작품을 올해의 신작전 상영작들로 선정하였습니다. 달 리 말하자면, 출품된 극영화 354, 다큐멘터리 37 , 애니메이션 84, 실험영화 24편 등, 499편의 작품들 중에서, 극영화 29, 다큐멘터리 6, 애니메이션 11, 실험영화 4편 등, 50편의 작품을 상영작으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출품작 수는 예년과 다름없었지만, 영 화제를 둘러싼 상황의 악화 속에서 허용된 상영시간은 많이 줄어있었고, 그런 만큼선택의 과정은 지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상향평준화된 출품작들의 기술적 완성도 또한 그 선택의 어려움을 가중시킨 요인이었습니다.

 

올해의 출품작들이 보여준 두드러진 경향 중의 하나는, 주제 및 소재 측면에서의 놀라울 정도의 집중 현상이었습니다. ‘가족죽음’, 이 두 가지 문제가 올해 출품작들의 공통적인 화두였고, 그 문제를 다루는 영화적 화법 또한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작품들이가족안에서의관계문제를 고민하고 있었고, 또 적지 않은 작품들이 주변 누군가의죽음과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IMF 이후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사회의가 족해체현상과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진사 회적 죽음현상의 영화적 반영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놀라운 집중 현상 앞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가 너무 쉽게 가족문제로 환원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또 누군가의 죽음이 너무 쉽게 영화의 극적 장치로 소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또는, 모든 문제의가족화가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영화적 설정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쨌든정치적 소재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진 한국의 독립영화가다양화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획일화되고 있다는 이 이상한 역설 앞에서, 심사위원 모두는 심각한 우려를 표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올해의 상영작 선정에 있어서, 각각의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영화적 완성도뿐 아니라, 상영작들 사이의다 양성또한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특 히, 간결하지만 단호한 화법으로가 족 밖의 세상과 맞서고 있는 영화들에 상대적으로 마음이 많이 가게 되었다는 점을 솔직하게 밝힙니다. 아울러 이미 여러 영화제를 통해 많은 상영 기회를 가졌던 영화들보다는 새로운 영화들이 상영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였으며,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대한 많은 작품이 상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음을 밝힙니다. 끝으로 모든 출품작 감독들과 스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인디포럼 2010 신 작전 프로그래머 일동

 

 

 

 

 

2010/05/12 01:40 2010/05/12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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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영화제 온라인 소식지 '울림'에서 보내온 소식

 

* * *

 

 

14회 인권영화제 2010년 5월 27일(목) 개막

 

 

 

 

☞ 인권영화제 블로그 바로가기

 

14회 인권영화제 2010 14th Seoul Human Right Film Festival 
15주년 2010.5.27(목)~30(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당신이 다른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누구든 자유롭게 생각하고 느 끼고 상상할 자유, 
인쇄물·영상 등으로 표현할 자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행동으로 표현할 자유

 

인권영화제 15주년 비·상·하·라

 

1996년 1회 인권영화제 '영화속의 인권·인권속의 영화'라는 주제로 시작된 인권영화제. 올해로 15주년을 맞습니다. (5회와 6회 사이에 개최 시기를 가을에서 봄으로 옮기면서 5.5회 인권영화제를 개최한 바 있음)

인권영화제의 역할은 인권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당사자 들의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인권영화제는 또다시 거리로 나섭니다. 인권영화제 15주년. 거리상영 3년 째. '표현의 자유'를 찾는 당당한 외침의 공명이 되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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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작 리스트 추가 ( 2010. 5. 20)

 

상영일정표

(K)한글자막 (E)영어자막 (T)관객과의 대화 (S)특별재상영 (더빙)한글녹음작품

 

 

 

5.27 목요일(Thu) 자유/평화의 날

 

12:00 오체투지 다이어리 Ochetuji Diary (K)(T) 83분

14:10 오픈로드 The Open Road: The Failed Secret Mission to Tibet (K) 36분

14:50 녹아 내리는 티벳 Meltdown in Tibet (더빙) 40분

15:50 대추리의 전쟁 Daechuri War (S) 43분

16:50 대추리에 살다 Memories of Daechuri (K)(T) 82분

19:00 개막식 50분

19:50 <개막작> 눈을 크게 떠라-좌파가 집권한 남미를 가다 Eyes Wide Open-A Journey through Today's South America (K) 110분

 

 

 

5.28 금요일(Fri) 소수자의 날

 

12:00 못말리는 레즈비언 쌍둥이 Topp Twins: Untouchable Girls (K) 75분

13:40 그날 이후, The day after, (K)(T) 26분18초

14:50 조금 불편한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 0.43 A better tomorrow 0.43 (K)(T) 35분

16:00 침묵에 맞서다 Fighting the Silence (K)(T) 35분

17:10 끝없는 싸움-에바다 Endless Struggle-EPHPHATHA (K)(S) 47분

18:10 시설장애인의 역습 Counterattack (K)(T) 55분

19:40 지난 겨울, 갑자기 Suddenly, Last Winter (K)(E) 80분

 

 

 

5.29 토요일(Sat) 자본/저항의 날

 

12:00 인간의 시간 The Time of People (S) 116분

14:00 23×371일-용산 남일당 이야기

23×371days-The Story of Namildang in Yongsan (K) 75분

15:20 좋은 복제 나쁜 복제 Good Copy Bad Copy (K)(T) 58분30초

17:00 당신과 나의 전쟁 The War Waged you and I:The record on strike of ssangyong motors for 77 days in 2009 (K) 52분

19:00 생수 Tapped (K) 76분

20:30 카발라-백색지대 Kavalar-the white Zone (K) 26분

 

 

 

5.30 일요일(Sun) 빈곤/노동의 날

 

12:00 농가일기 Return to the Land (S) 96분

13:40 돌과 꿀 Piedra y Miel (K)(E) 15분

13:55 펜을 찾아서 Unearthing the Pen (K)(E) 12분

14:07 모나 Mona (K)(E) 30분

14:37 매일 또 내일 Every Other Day (K)(E) 9분

15:00 행동하는 라디오 Action Radio (K) 12분

15:13 낙지도서관 강제철거 Forced Eviction of Octopus Library (K) 10분29초

15:24 이편한세상 (K) 35분

16:00 노동의 심장 Heart of the Factory (K)(E) 129분

18:20 땅의 여자 Earth's Women (T) 95분

20:20 폐막식 30분

 

2010/04/30 09:23 2010/04/3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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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내용 중 색깔이 다른 문장과 밑줄은 내가 유심히 읽은 대목을 강조한 것.

 

* 링크 - 인권영화제 홈페이지

 

14회 인권영화제 국내작품 선정을 마치며

올해로 15주년을 맞는 인권영화제에 작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올해 인권영화제 출품작은 작년에 비해 그 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용산참사, 쌍용투쟁, 4대강 저지, 미디어법,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저작권 문제 등 수시로 터졌던 인권문제를 감안하면 출품작이 줄었다는 사실이 위태롭습니다. 인권침해의 현장이 새로운 인권의제를 밝혀내는 작품으로 환원되어 돌아오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표현의 자유'의 억압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텃없이 부족한 예산과 적은 인원으로 빠른 시간내에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고단한 작업을 개인의 능력이나 의지에 기대는 것도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인권영화제는 다시 한번 인권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인권영화제가 해야 몫을 고민합니다. 고민으로 그치지 않고 작은 실천이라도 해야 할 때라는 점을 깨닫습니다.   

작품수가 줄긴 하였지만 올해 인권영화제에 선정된 작품들은 두가지 점에 주목합니다. 첫째, 하나의 인권의제를 가지고 긴 호흡으로 작품을 만들어 온 감독들의 새로운 작품들입니다. 자칫 잊혀지기 쉬운 인권의 현안들, 그러나 여전히 살펴야 할 문제들을 뚝심있게 담아 ‘끝나지 않은 싸움’을 각성시키고 있습니다. 둘째, 스스로 인권의 주체자로써 카메라를 든 작품들입니다. 다양한 매체가 오히려 사람을 소외시키는 현실에서 직접 든 카메라로 인권문제를 이끌어내는 작품들은 사회 구석구석 인권의식이 확장되는데 기여할 것입니다. 

또한 이번 공모에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고민을 하게 만든 작품들도 있습니다. 새로운 인권의제들을 제시한 작품들은 앞으로 인권영화제에서 조우해야 할 소중한 작품들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인권의제에 대한 화두를 제시하고 그 주제 속으로 한발짝 들어가지 못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제 14회 인권영화제의 국내작 선정을 마칩니다. 자본과 권력에 맞서가며 인권영화제가 여기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지난 세월 스크린 밖 인권의 현장을 꾸준히 기록했던 감독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5년을 맞는 올해. 그 노력의 성과들을 다시 한 번 스크린안에서 볼 수 있게 될 14회 인권영화제를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또한 이번 인권영화제를 통해서는 상영되지 못하지만 소중한 작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다음 작품을 통해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10년 3월 17일 인권영화제

 

14회 인권영화제 국내작품 상영 확정작 (공모 접수 순)

(상영 확정 7편/ 공모접수 총 54편)

 

1. <대추리에 살다> 정일건/ 2009/ 다큐/ 83분

2. <땅의 여자> 권우정/ 2009/ 다큐/ 95분

3. <오체투지 다이어리> 지금종,최유진/ 2009/ 다큐/ 83분

4. <조금은 불편한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 0.39> 임덕윤/ 2009/ 다큐+드라마/ 33분

5. <당신과 나의 전쟁> 태준식/ 2010/ 다큐/ 85분

6. <시설장애인의 역습> 박종필/ 2009/ 다큐/ 60분 

7. <그날 이후,> 김주현/ 2009/ 다큐/ 26분 17초

 

국내 작품 선정에 참여한 사람들 (가나다 순)

김경만 (다큐멘터리 감독)

김일숙 (인권영화제 총기획)

김정아 (인권재단 사람 활동가)

유성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

호야 (인권영화제 상근활동가)

호연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

 

 

 

2010/03/26 06:57 2010/03/26 0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