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들이 있었지만, 어쨋든 14일 새벽 산을 오르려 출발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렸고, 그 사람들을 보며 왠지 든든한(?)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리산이 만만한 산이 아니라는 건 곧 깨달았다.

일행 하나는 등산화 밑창이 뜯어져 털렁 거리면서 걸었고, 난 그냥 운동화를 신고 걸었다.

얼마 걷지도 않아서, 간식을 많이 싸온게 후회되기 시작했고, 생술을 쏟아버리기도 했다.

배고파서 간식을 먹는 게 아니라, 무게를 줄이겠다는 마음으로 우걱우걱 먹으면서 걸었다. ㅠ

 

날씨가 좋지 않아 구름 속을 계속 걸어야 했다. 걷기만 해도 옷과 가방이 축축히 젖었다.

능선길일텐데, 길 옆 경치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연하천 대피소까지는 그래도 갈만했다.

벽소령 대피소를 가면서는 이게 어떻게 길이냐는 절규를 하며 걸었다.

돌과 돌과 돌과 돌들을 밟고, 미끄러지고...

등산화를 준비 안한게 좀 후회됐고,(이건 조금)

간식이나 기타 짐을 많이 싸온 게 많이 후회됐다.

짐만 좀 덜었어도 훨씬 수월케 갔을텐데..

이런 저런 상황을 가정해봐도 우선 체력이 딸리는 게 가장 문제겠지.

 

이러저러 해서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는데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대피소에 자리가 없어서 비만 조금 막아지는 공간에 사람들이 자리를 펴고 눕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다가는 정말 완전 바깥에서 잠을 자게 생겼길래 후다닥 자리를 맡아놓고, 밥을 먹었다. 식수장 까지 가는데도 돌길을 가야하니, 물끓이기도 심난해 그냥 찬밥을 뜯어 먹었다. 밥 먹고 매트 깔고 침낭 뒤집어 쓰고 그 위에 비옷 덮고, 그냥 잤다.

 

다음날 일어나니 전날보다 심해진 비바람에 걷기도 힘들었다.

가차없이 짐싸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도 비에 쫄딱젖고..

 

다음 번에 다시 종주를 계획해보기로 했다.

그 땐, 간식이고 뭐고 다 필요없고 최대한 짐 줄여야지..ㅠ

등산화도 하나 사신고.

날 좋을 때로.

 

숨 헐떡이느라 걸으며 얘기하는 것도 힘들고, 그저 빨치산 정기 텔레파시로 나눠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