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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년>, <얼굴들>에 대한 리뷰 - 김현선

 


여성 앞에 놓여진 이름-어머니, ‘어머니’라는 가능성

-<흡년,2004>, <얼굴들,2006>-

1. 차이와 차별


인간을 이해하는 기초적인 범주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성차’이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성차적 인식을 흔히 접하게 되고, 이러한 성차가 차이를 넘어서 차별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성차는 객관성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있는 과학적 설명으로 인해 공고화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갖는 과학에 대한 견해와 달리 과학 이론은 그 시대의 사회적 요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학은 한시대의 과학 공동체의 사회적 합의와 패러다임에 부합할 때만 객관적인 것이 될 수 있다. 특히 자연을 다루는 어느 분과보다도 성차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사회의 요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즉 가부장제 내에서 과학적 가설로부터 평가에 이르는 전과정은 남성의 시각에서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성차적 인식은 생물학적 이론과 가부장적 가치관에 기반하여 성차별을 공고히 하고 남녀 불평등의 현실적 조건들을 재생산해내는 기제로 작용해왔다. 물론 남성과 여성은 기본적으로 신체와 생식 능력에 있어서 뚜렷한 차이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시 말해, 여성은 남성과 달리 임신과 출산의 가능성을 갖고, 이는 생식 기술의 발달이나 생물학적 조건의 변화로는 달라지지 않는 원천적인 차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외의 대부분의 성차적 구분은 뚜렷한 명분을 갖지 못하거나 생식에 있어서의 구별된 역할이 그것의 명분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물학적 차이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그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그 이상의 지위를 갖기도 하고, 불필요한 영역에까지 이용되는 경우가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현실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연적인 성차가 여성과 남성을 이해하는 본질적인 요소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성차인식 이후에 생겨난 ‘사회적 성차’ 또한 차이에 대한 인식만으로 끝나지 않고 차별에 대한 인식으로까지 이어지거나 그 내부에 이미 이전의 인식이 갖는 한계를 포함하게 되었다. 따라서 ‘여자라서 또는 남자니까’라는 이분법의 출처는 여성과 남성의 몸이 아닌 여성과 남성의 권력 관계를 나타내는 지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성차는 인간을 설명하는 기본적인 지표를 넘어서 사회적 억압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남녀간의 차이를 밝히는 것을 넘어 차별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기제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무엇보다 이처럼 견고한 성차 인식은 엄격한 역할 분담을 낳고 그것으로부터 개체의 자유를 빼앗는 데 작용하기도 한다.


2. 차이가 낳은 고정적인 역할, 그것의 차별적 이름-어머니


<흡년>은 여성들의 흡연과 그와 관련된 사회적인 시선에 대해서 ‘발언’하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흡연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면서 그들이 받아야 했던 수많은 비난과 질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 중에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담배를 피우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비난의 많은 부분이 ‘어머니’라는 가능성의 이름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난은 남성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같은 여성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아기를 낳아야 하는 여성으로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아이에 대한 무책임한 행동으로 평가된다. 누군가는 일반적인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찬성(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무관심)하지만 유독 자신의 아내가 될 여자 또는 자신의 아이의 어머니가 될 여성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비흡연을 주장한다. 또는 담배를 피우는 것은 곧 결혼을 포기하는 것이며, 이와 동시에 어머니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기도 하며, 이처럼 결혼과 관련된 사회적 관계를 포기하는 여자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아무렇게나 사는 여자로 평가된다. 그리고 ‘갈보년’, ‘쉬운 여자’와 같은 비난은 그 이면에 ‘어머니’라는 자리를 포기하고 자신의 욕구(성적인 욕구)를 실현하는 데에만 급급한 여성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각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조건으로써의 여성의 몸을 사회적인 관계 내에서만 규정하는 차별적인 시선에 불과하다. 이처럼 가부장적 가치관 하에서 여성으로서 흡연을 하는 것은 기호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어머니’라는 사회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여성에게 그러한 자리 이외에 어떠한 욕구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기혼 여성의 투쟁 기록인 <얼굴들>이다. <얼굴들>은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역할과 함께 노동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기혼 여성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노동자가 처해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여성에게 부여된 사회적인 역할과 이로 인해 강요되고 있는 의무들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자리는 결혼이라는 제도로 인해 부여된 여성의 사회적 자리이며, 이러한 여성들에게 노동을 통한 자기의 실현은 가정 내에서 부여된 자신의 역할을 다한 후에만 가능한 것이 된다. 그녀들은 자신의 복직을 위해 투쟁하는 동시에 가정에 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이중의 임무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이러한 역할 수행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이 뒤따른다. 이처럼 앞서 언급한 <흡년>과 같이 <얼굴들>이라는 영화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여성에게 부여된 ‘어머니’라는 이름은 절대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이와 동시에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또 다른 다양한 욕구들은 ‘어머니’라는 이름 앞에 부정당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어머니는 담배를 피워서도 안 되고, 성적 욕구를 추구해도 안 되며, 노동이나 사회적인 행동들을 통해 자신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것 또한 금지된다. 따라서 이로 인해 후자의 욕구를 선택하고자 하는 여성에게는 언제나 ‘어머니’라는 자리는 멀고 먼 이름이 되고 만다. 반면에 <얼굴들>에서 이야기된 것처럼 남성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투쟁할 때에 그들은 ‘아버지’라는 이름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들, 아버지의 가정에는 여전히 이를 지켜나갈 ‘어머니’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아버지’들의 투쟁에 힘을 실어주는 가족대책위원회에서의 여성들의 역할은 ‘아버지’를 위해서만 존재할 뿐 여성 자신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적인 참여나 발언이 아니다. 오직 남성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 그들을 보완하는 객체로서의 역할만이 주어질 뿐이다. 이와 달리 <얼굴들>에서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가운데 꾸려지는 가족대책위원회는 그녀들이 노동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어머니’ 혹은 나의 ‘아내’이기 때문에 허락하고 승인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머니’의 자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 앞에 놓을 수 있는 다양한 이름 중의 하나일 뿐이다. 여성은 ‘어머니’의 자리와 또 다른 자신의 자리 사이에서 언제나 선택을 강요당하지만 그들에게는 ‘어머니’인 동시에 노동자일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어머니’라는 가능성인 동시에 흡연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따라서 자연적인 성차는 차이에 대한 인식으로 기능하는 것 이외에 그것을 뛰어넘는 차별에까지 이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더욱이 그것이 강요와 억압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 철학의 눈으로 읽는 여성, 연효숙 외, 철학과 현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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