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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변혁운동, 기독교 제국주의 넘기 시동 걸다..




 

한국인권뉴스 [인권칼럼]
 
종교변혁운동, 기독교 제국주의 넘기 시동 걸다
2010·06·25 19:24
 
   

 

종교가 그 사회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특히 ‘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이미지화 된 개신교의 영향력은 우리 사회 통합에 있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의 걸림돌이 되고 있을까. 수많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십자가들 속의 사람들은 절대적인 이타정신을 온몸으로 보여준 예수의 본디 모습을 닮으려 하기는커녕 예수를 하늘에 올려놓고 재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        

국내 종교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53.1%인 2,497만 명 수준인데 그중 기독교(개신교 18.3% +가톨릭 10.9%) 인구는 1,374만 명으로 추산(불교는 22.8%, 통계청 2005). 만약 이 많은 기독교 인구가 자본에 중독돼 저 넓은 바다에서 좌표를 잃고 무작정 속도전을 벌인다면 우리 사회 또한 타이타닉호와 같은 참혹한 내일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오늘 한국 사회가 이룩한 절차적 민주화는 87년 6월민주항쟁에 힘입은 바 크다. 당시 국내 진보적인 기독교 세력들은, 민중들과 함께 하기 위해 고난을 자처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이 땅에서 실천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치권력을 민주적인 정권으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상당수가 체제 내에 들어가 안주함으로 인해 대안적 비판세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 87년 6월항쟁 당시 문익환 목사  


그리고 이제 우리는 지자체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매우 특별한 신앙심을 지닌 부유한 개신교 교회 장로 대통령을 갖게 됐다. 또 그 주변 역시 특별한 신앙심으로 가득한 사람들로 채워져 천안함, 세종시, 4대강과 같은 대형 이슈를 연일 쏟아내며 ‘전쟁불사론’까지 외치는 등 국민들을 온통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이 정도면 이들에게서 예수의 평화정신은 완전 실종된 것처럼 보인다.

지난 19일 일단의 개신교계 학자들과 활동가들이 ‘기독교 제국주의’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세계와기독교변혁연구소’(세기연) 주최「2천 년 기독교를 새롭게 디자인한다!」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예수에 대한 신앙’ 아닌 ‘예수의 신앙’을 행하는 기독교, 지적설계론 대신 진화론을 긍정하는 기독교, 그리고 타종교를 인정하고 소통하는 기독교를 천명했다. 적어도 우리네 개신교 풍토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종교변혁운동의 서막이었다.

이들이 아노미 상태에 놓인 오늘 한국 개신교계를 상대로 차별화를 선언하고 일정한 ‘전선’을 분명하게 긋고 나온 것을 이해하려면, 다방면에서 국내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 개신교계의 움직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특히 2005년경이 매우 중요한 시기이므로 이 때로 거슬러 올라가 상징적인 사건 몇 가지를 보도록 하자.

조지아주 콥카운티 교육위원회는 2005년 1월 연방법원으로부터 위헌 결정을 받아 고등학교 생물 교과서에서 자신들이 붙여놓은 경고 스티커를 떼게 되었다. 이 경고 스티커에는 “이 교과서는 진화론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진화론은 생명체의 기원에 관한 사실이 아닌 하나의 이론이므로, 이 내용은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고, 주의해서 연구되어야 하며, 비판적인 관점까지 고려되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 일은 기독교 우파들이 교육위원회를 장악, 생물교과서에 게재된 진화론을 폄하하려다 법적으로 일단 패퇴한 사건이다.


            


2005년 펜실베니아주 도버에서 열린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 재판에서는 진화론을 지지하는 7명의 과학자들과 지적설계론을 옹호하는 8명의 학자들 간에 치열한 공방이 이루어졌다. 미국 전역과 세계 과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 재판에서 12월 20일 미 연방법원은 고등학교 생물 수업시간에 진화론과 함께 지적설계론을 가르쳐야 한다는 펜실베이니아주 도버지역 교육위원회의 결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재판을 맡은 존 존스 3세 판사는 “지적설계론을 교과 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은 종교와 국가를 분리한 미국 수정헌법에 위배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한 것이다.

이 판결은 지적설계론과 관련 △창조론의 반복인 점 △종교적 의도로 만들어진 점 △수업시간에 가르치는 것은 위헌이라는 점 △진화론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과학적 가설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되는 점 △ 종교에 바탕을 둔 검증 불가능한 가설을 과학시간에 가르치거나 검증된 가설을 왜곡해서도 안 되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사건은 미 수정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을 잘 알고 있는 보수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단체)이 현실적으로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는 까닭에 겉으로는 하나님이나 종교와 무관해 보이는 지적설계론(진화론만으로는 복잡하고 다양한 생명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으며 따라서 우주는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도록 누군가 높은 수준의 지적 존재에 의해 설계된 것이라는 주장)을 급조해 과학인 것처럼 작업(?)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2005년 메릴랜드주 몽고메리카운티 교육청은 학부모와 교사,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개정 성교육' 프로그램을 카운티 산하 6개 학교에서 시험 강의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이들이 강의 중단을 위한 소송을 제기, 프로그램 이행을 10일간 연기하라는 연방지법 명령을 얻어 내기도 했다. 소송을 제기한 단체들은 공식 명의는 `책임있는 교과과정을 위한 시민들'과 `전(前) 현(現)동성애자의 부모와 친구들' 등이었지만 대부분 기독교 우파 쪽 사람들로 알려졌다.  

이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섹스 행위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더 많이 제공하자는 취지로 준비되었었다. 주요 내용은 교사가 8학년(한국의 중2) 학생들을 상대로 동성애에 대한 토론을 이끌 수 있도록 허용하고, 10학년 학생들에게는 콘돔을 끼는 방법에 대한 7분짜리 비디오를 보여주는 정도였지만, 문제 제기한 측은 이러한 성교육이 섹스를 부추긴다고 반대했다.  


      


미국 내 기독교 우파들의 행동이 이렇듯 부쩍 대담해진 배경에는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과 함께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등장을 빼놓을 수 없다. 복음주의 진영과 관련이 깊은 공화당의 부시와 "진화론이 가톨릭 교리와 맞지 않는다"며 창조론을 강조하고 나선 베네딕토 16세는 더할 나위 없이 궁합이 잘 맞았고, 해서 이들이 자신들의 특별한 신앙적 통치철학(?)을 정치·종교적 영향력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현상은 오바마 정권이 새로 집권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오바마에 대한 일부 지지자들의 진보적 요구와 달리 민주당 내에도 복음주의자들이 적잖게 포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민 중 78%에 달한다는 기독교인들의 표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베네딕토 16세가 수구·보수적 정책을 추진하고 각 국의 기독교 우파들이 이에 편승할 경우 근본주의에 기반한 선정적인 ‘모럴 테러리즘’이 진화론과 진보적 성담론에 대한 공격으로 한동안 연명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신자유주의 아래, 미국 사회에서 기독교의 오늘은 한국의 오늘이고 내일이기도 하다. 무슨 일만 있으면 그들 방식의 하나님과 예수님을 내걸고 호전적인 모습으로 시청 앞에 모이는 사람들, 초대형 교회에서 1년 365일 기복만 바겐세일하는 사람들, 이들이 정치에서 일상 부문에 이르기까지 잡다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앞서 언급한 미국 사례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수구·보수적인 베네딕토 16세와 달랐다. 그는 "진화론의 과학적 증거는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 진화론은 단순한 가설 이상이다"라고 과학적 관점에서 접근한 진보적인 인물이었다. 이번「2천 년 기독교를 새롭게 디자인한다!」토론회에서는 여러모로 요한 바오로 2세의 열린 면모와 비견될 만한 논제들이 다수 제출되었다. 새로운 기독교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재야신학자 겸 활동가인 세기연 정강길 연구실장의 견해도 그런 경우다.


      


정강길(사진 위)은 “과학은 결코 완결된 것일 수 없으며, 언제나 합리주의의 과정에 놓여 있을 따름”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과학은 철저히 지금 여기서부터의 실제적 증거들을 다루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리고 “종교가 소통 방식에 있어서만큼은 과학이 갖는 그 설득적 힘을 닮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동시에 “종교의 연구 대상은 과학의 연구 대상과 다르게 ‘과학의 한계 및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삶의 신념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과 상호 보완”하는 까닭에 “종교와 과학은 상호 견제와 수정을 돕는 지속적인 파트너”라며 긍정적인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기독교 운동은 “삶의 밑바닥에서의 활동을 통해 매우 다이나믹한 생명해방을 보여준” 예수의 삶을 추구할 것과 이천 년 역사상 이러한 활동을 단 한 번도 실현해보지 못했으므로 “적어도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해보고서나 아예 장사를 접든지 말든지 해야 할 것 아닌가”라고 열망한다. 또 “건강한 기독교인과 건강한 불교인 혹은 건강한 종교인과 건강한 비종교인이라면 상호 이해를 깊이 심화해야 할 문제가 있을 뿐이지 실은 서로를 응원하는 가운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든든한 상호 파트너인 것”이라고 공존을 강조하고 있다.

이날 세기연 토론회 말미에 ‘21세기 새로운 그리스도인 선언’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은 <폭력적 기독교>는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라고 선포했다.

① 이천 년 기독교가 저지른 오류와 비극에 전혀 반성하지 않는 기독교
② 이원론에 기반되어 비역사적인 아편적 행태로 드러나는 힘의 기독교
③ 이해되지 않아도 ‘교리’는 무조건 믿고 고백해야 한다고 말하는 기독교
④ 성경을 문자적으로 맹신하고 초자연주의를 사실로 가르치는 기독교
⑤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강요하며 이웃종교와 문화에 배타적인 기독교
⑥ 악에 대한 심판을 빌미삼아 공격적 폭력과 전쟁을 정당화하는 기독교
⑦ 여성안수를 반대하고 여성 비하를 정당화하는 가부장적 기독교
⑧ 반민주, 반생명, 반평화를 위해 예수와 성서를 팔아먹는 기독교
⑨ 약자를 억압하고 강자를 지지하는 법과 제도에 찬성하는 기독교
⑩ 생명과 평화를 말살하는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기독교
⑪ 잘못된 신비와 영성 및 초자연적인 기적 체험을 강조하는 기독교
⑫ 교회를 세습하고 교인수와 교권에만 탐닉하는 목사들의 기독교

어떤가. 위 12개항에 해당되지 않는 교회가 얼마나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이만하면 자본이 요구하는 '성장제일주의' 아래 무지와 야만이 판치는 오늘 기독교계와 이 사회에 가히 혁명적인 논리가 아닌가. 따라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은 기독교와 상관이 있건 없건 범사회적인 변혁운동 차원에서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 연대하는 것이 바로 시대정신이다.

우리는 이참에 “역사가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사람들이 역사가 주는 교훈으로부터 거의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한 올더스 헉슬리의 견해를, 보란듯이 당당하게 부정하며 다시금 역사를 제대로 써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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