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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0
    최인기의 빈민운동 표류론..(1)
    혁사무당파

최인기의 빈민운동 표류론..

[운동평론] ‘빈민운동 표류론’과 비공식부문 노동을 논한다

2010·08·10 09:28
 

                                                                                               

지난 7월 29일 참세상에는 최인기 빈민활동가(이하 최 활동가) 명의의 '이명박 정권과 빈민운동의 표류' 라는 문건이 올라왔다. 최 활동가는 현재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이 글은 필자(구 노점노동조합연대 지도위원, 현 노점노동연대(준) 전 운영위원)가, 노점노동운동의 산파역으로 함께 일한 바 있는 한 김인자 활동가(구 노점노동조합연대 사무처장, 현 노점노동연대(준) 전 운영위원)와의 소중한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하여, 최 사무처장이 기고문에서 지적한 부문운동을 논함으로써 향후 운동을 좀 더 과학적으로 펼쳤으면 하는 바램에서 쓰게 된 것이다.

 

최 활동가는 “우리 사회의 노점상 철거민 등 빈곤층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에 대한 입장”과 관련하여 “이러한 시각이 건전하게 내부에서 논쟁으로 승화되기보다는 어떠한 특정시기 가령 조직이 분화되는데 있어서 자신들의 우월감의 반영이거나 서로를 공격하거나 비난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이해가 가는 측면이 없지 않다. 동시에 최 활동가의 이러한 주장은 자신이 속했던 기존 노점상 조직 내에서 벌어진 그간의 아픈 경험을 근간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동대문운동장 풍물시장 사수위’ 활동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내부모순 및 그 후에도 악화일로를 걸은 노점현장 상황에서 최 활동가 스스로가 이미 조직적으로 자승자박된 측면이 많아 객관화된 논리로는 보기 어렵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직간접으로 관련한 필자는 기존의 빈민운동 구조가 이미 ‘건전하게 내부에서 논쟁으로 승화’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빈민운동은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고집하며 ‘내부’ 운운할 게 아니라 ‘운동의 대의’라는 광장으로 나와 검증받을 수준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활동가가 부문운동에 갇히면 여지없이 부패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간 운동에서 익히 보아온 사실이기에 더더욱 유념할 필요가 있다.

 

최 활동가는 “가령 철거민이 혹은 노점상이 빈민이냐, 아니냐 아니면 노동자냐 아니냐의 문제(철거민을 지역일반노조건설의 주체로 규정하는 문제와 철거민 구성원 가운데 일반상가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 노점상의 경우 비공식부문론에 입각해 노동자로 규정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를 거론했다.

그리고 “‘반 빈곤 빈민문제의 접근을 개량주의적 정책의 일환으로 자본의 분할 정책으로만 협소하게 치부하는 오류나 반면, 반 빈곤 빈민문제가 안고 있는 재생산공간으로서의 문제를 노동운동으로 환원하여 노동현장의 문제’로만 이해하려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고 문제 삼았다.

 

사실 빈민과 노동자의 관계를 두고 벌이는 관념적인 불편함은 비단 최 활동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른바 전통좌파들 중에는 노동자 개념을 빈민과 영세상인에 확대시키는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해하는 부류가 없지 않다. 그들은 내심 “변혁의 주체인 존엄한 노동자라는 이름을 어떻게 기회주의자들로 득실거리는 룸펜과 쁘띠들에게 부여할 수 있는가”라고 회의하는 것이다.

 

이는 일부 좌파의 관행적인 학습범주 내에서는 오갈 수 있는 얘기이긴 하지만, 비정규직과 비공식부문 등 불안정노동의 대거 확대에서 보듯 이미 20:80으로 이행하고 있는 오늘 지구촌 자본주의 사회의 열악한 구조를 염두에 둔다면 가히 시대착오적인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이미 각국에서는 ‘독립노동’이라는 개념이 등장할 정도로 ‘노동의 확대’가 진행 중이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단순히 개량주의로 정죄할 게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저지른 폐해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부득이한 반대급부로 보고 이에 따른 대책을 구체적으로 강구하는 게 순서라고 본다.

 

그냥 투쟁하면 되지 “왜 굳이 ‘노동’이라는 호칭을 사용해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으로는 세 가지 측면에서 중요성을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노동자’란 개념을 통해 비공식부문 종사자들이 ‘주체화’하는 과정이 중요하고, 두 번째는 ‘노동운동 연대활동’을 통해 이들이 ‘사회화’되는 과정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노동이 민중과 접목됨으로써, 아직도 일각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철지난 ‘노동자주의’를 역설적으로 타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 최근 운동진영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노동자민중’이란 용어는 시사하는 바 크다.

 

비공식부문에서 ‘노동/노동자’ 개념 도입을 통해 운동이 발전한 사례와 운동의 모순이 있어 소개한다. 이는 민주성노동자연대(민성노련)를 중심으로 한 성노동/성노동자운동 이야기다.

 

2004년 성매매 특별법 시행 후 운동 초기, 연대에 나선 사회단체 회원들 중에서는 “왜 굳이 ‘성노동자’란 호칭을 사용하는가”라고 딴지를 건 적이 있다. 사실 ‘성노동자’란 용어는 운동 모색차 한 집창촌을 방문했을 때 그곳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용어였음에도 이를 목격한 사회단체 한 여성회원은 그런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문제 삼았다. 내심 성노동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하는 또 다른 한 여성활동가는 “성매매건 성노동이건 그런 건 중요치 않다. 우리 여성들이 어려움에 처해 돕자는 것이다.”라며 시혜성으로 접근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여곡절을 거쳐 민성노련에서 ‘성노동/성노동자운동’은 태동했고 성노동자들은 주체가 되어 노동·사회·여성단체 및 해외연대로 대 사회적인 활동을 나름대로 열심히 전개했다. 민성노련은 직접행동 못지않게 논평·성명 등을 비롯해 1백여 개에 달하는 독자적인 운동성 문건을 발표하며 우리 사회와 진보진영에 논리적인 투쟁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연대단체들은 용어사용에서 ‘성매매->성매매/성노동->성노동’ 순으로 변증법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결과적으로 운동이 성노동자들을 따라간 형국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이들은 함께한 성노동/성노동자운동을 통해 파쇼악법인 성매매 특별법은 대내외에 성공적으로 폭로됐고, 합법화 및 비범죄화라는 대안이 선진 해외사례와 함께 널리 소개되기도 했다.

 

한편,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민성노련이 전국빈민연합(전빈련)에 연대를 제안했다가 무위로 돌아간 일이 그것이다. 성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원인이 사회적 '빈곤문제'였기에 당시 민성노련 임원진은 대중교통수단으로 올라와 서울역에서 당시 전빈련 집행부(최인기, 유의선)를 직접 만나 관련 자료를 건네고 당위성을 설명하며 연대사업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집행부는 서울역 만남에선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 것과는 달리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다가 결국 연대는 없는 일이 돼버리고 말았다.

 

노동·사회·여성단체는 연대에 나서고 빈민단체는 모르쇠한 운동판의 아이러니였다.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자료집에는 ‘성노동’이 ‘노점’과 함께 비공식부문 노동에 버젓이 자리 잡을 정도로 공식화가 됐는데도 노점단체가 주축인 전빈련은 결코 움직이지 않았다. 하기사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 운동단체 중에는 비공식부문을 우습게 여기는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긴 하지만, 여튼 당시 전빈련이 다름 아닌 비공식부문 단체였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 민성노련 임원진과 전빈련 집행부의 만남을 주선한 필자는 이 일과 관련하여, 그 후 민성노련 성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이 사회 운동수준의 저열함으로 인한 미안함에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던 게 지금도 씁쓸한 기억으로 남는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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