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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
1912년 9월 21일 「뉴욕 타임스」에 ‘경멸스러운 붉은 깃발’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깃발은 자유다. 하지만, 깃발은 몹시 혐오스럽다. 그것은 전 세계에서 무법과 무정부의 상징이며, 깃발은 그 자체로 올바른 시민들에게서 경멸받는다."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은… 무법의 상징을 들고 있기 때문에 존중받고 공감 받을 모든 권리를 박탈당할 것이다. 붉은 깃발은 이 나라를 세운 원칙들을 파렴치하게 무시한다.”
같은 해 11월 3일 「뉴욕 콜」이 반박 기사를 실었다.
“나는 어떤 색깔의 천 조각도 숭배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붉은 깃발과 그것이 나와 다른 사회주의자에게 상징하는 바를 사랑한다. 나는 붉은 깃발을 내 서재에 걸어두고 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붉은 깃발을 들고 타임스 사무실 앞을 즐겁게 행진하면서 모든 기자들과 사진기자들에게 최고의 광경을 선사할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라는 제목의 이 기사를 쓴 사람은 바로 헬렌 켈러(Helen Keller)다.
<사진> 헬렌 켈러에게 수화를 배우고 있는 찰리 채플린, 1919년
몇 달 동안 내 이름과 사회주의가 신문에 자주 함께 등장하곤 했다. 한 친구는 내가 야구, 루즈벨트 대통령, 그리고 뉴욕 경찰의 부패 사건과 함께 신문의 첫 면을 전부 차지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결합이 나를 전적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나와 메이시 부인(Mrs. Macy, Anne Sullivan)의 교육적 성취에 관심을 가져주어 기쁘게 생각한다. 나쁜 평판도 쓸모가 있을 때가 있다. 그리고 내 활동을 보도하려는 신문들이 기사에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더 자주 사용하게 된다면 기쁘겠다. 언젠가 나는 사회주의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또 나와 내 의견에 쏟아졌던 엄청난 양의 평판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해명하고 싶다. 나는 지금까지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조금밖에 쓰지 않았고, 거의 말하지 않았다. 아주 가끔 편지에 썼는데, 프레드 워런(Fred Warren)동지에게 쓴 편지는 「이성에 호소한다」에 실려 출판되었다. 몇몇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중 「뉴욕 월드(the New York World)」의 아일랜드(Ireland) 기자는 나를 몹시 추켜세우는 기사를 작성했고, 내가 말한 것을 충분하고, 공정하게 실어주었다. 나는 스키넥터디(Schenectady)시에 가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런(Lunn) 시장을 만난 적이 없다. 런 시장이 나에게 직접 편지를 보낸 적이 없지만, 메이시 씨(Mr. Macy)를 통해 친절한 메시지를 보내온 적은 있다. 메이시 부인의 병환 때문에 스키넥터디시의 노동자들과 함께 어울리려던 계획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 부정적이거나 상대적으로 사소한 사건들에 대해 자본주의 언론과 사회주의 언론은 많은 논평을 했다. 모아놓은 기사가 서랍에 가득하다. 난 그중에 4분의 1도 읽지 못했고, 그걸 다 읽을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그렇게 작은 일에 엄청나게 많은 논평이 따라왔는데, 만약 내가 사회주의를 위해 말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신문들은 어떻게 할까? 나는 지금 내 입장을 발표하고, 잘못된 기사들을 정정하고, 부당한 몇몇 비난에 대해 해명하고 싶다.
첫째,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을까? 독서로. 내가 처음 읽었던 책은 H.G.웰즈의 「구시대를 대신할 신세계」였다. 메이시 부인의 추천으로 그 책을 읽었다. 그녀는 그 책의 고급스러운 상상력에 매료되었고, 그 책의 강렬한 문체가 나를 자극하고 흥미를 끌어 주기기를 바랬다. 그 책을 나에게 가져다줄 당시, 그녀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고, 지금도 그녀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아마도 나와 메이시씨가 그녀와 논쟁을 끝내기 전에 그녀가 사회주의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내 독서는 한계가 있고, 느리다. 나는 두 달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로 인쇄된 독일의 사회주의자 정기간행물을 받아보고 있다. (우리의 독일 동지들은 많은 관점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다) 그리고 나는 독일어 점자로 된 에어푸르트(Erfurt) 강령에 대한 카우츠키(Kautsky)의 토론도 가지고 있다. 내가 읽었던 다른 사회주의자들의 문서들은, 내가 무엇을 고르던지 간에 일주일에 세 번씩 방문하는 친구가 내 손에 한 자 한 자 읽어준 것이다. 내가 그녀의 생기 넘치는 손가락에 열망 가득한 내 손가락으로 전달해달라고 가장 자주 요구하는 정기간행물은 「전국 사회주의자(the National Socialist)」이다. 그녀는 기사의 제목을 읽어주고, 나는 그녀에게 언제 읽을지, 생략할지 이야기한다. 나는 또한 그녀에게 「국제사회주의비평(the International Socialist Review)」에서 장래성 있는 제목의 기사를 읽어달라고 한다. 손으로 한 자 한 자 대화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50,000단어의 경제학책을 읽는 내내 손가락에 열중하기는 쉽지 않거니와 또한 빠르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나는 사회주의 저자들의 모든 고전에 정통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이것을 즐길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대로, 두 개의 반(反)사회주의 출판물인 「공공의 목적(the Common Cause)」에 실리고, 「당면한 이슈(the Live Issue)」에 다시 실렸던 나에 관한 기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 기사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25년간 켈러의 선생님이자 충실한 벗은, 전에 매사추세츠주(Mass)의 렌담(Wrentham)시에 살았던 메이시 부인이었다. 메이시 씨와 부인은 둘 다 열렬한 맑스주의 선전가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대부분 삶의 지식을 배우며 평생 친구로 의지했던 켈러가 그런 의견에 동화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메이시씨는 어쩌면 열렬한 맑스주의 선전가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아쉽게도 그가 나에게 손가락을 통해 맑스주의를 열정적으로 선전하는 열의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말이다. 메이시 부인은 맑스주의자도 아니고 사회주의자도 아니다. 그러므로 「공공의 목적」이 그녀에 대해 말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 편집자는 날조하고,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일처리 방식이라면, 그가 사회주의에 반대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사회주의자가 되거나, 다른 어떤 지적인 일에도 적합할 만큼의 사실 감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같은 기사의 다른 인용구를 한번 보자. 기사의 헤드라인은 이렇게 되어있었다.
"스키넥터디시의 빨갱이들은 여론의 관심을 받기 위해 눈먼 소녀 헬렌 켈러를 이용해서 선전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불쌍한 헬렌 켈러에 대한 스키넥터디 사회주의자들의 착취보다 더 애처로운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몇 주 동안 당 선전국은 그녀가 사회주의자이며, 스키넥터티시 공공복지위원회의 새로운 위원이 될 것이라고 보도해왔다."
그 말솜씨에 빈정대는 논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불쌍한 헬렌 켈러에 대한 착취" 그러나 나는 「공공의 목적」 같은 신문의 위선적인 연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만 간단히 하고 참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신문이 "착취"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된다면 나는 기쁘게 생각하겠다.
사실은 이렇다. 나를 위해 마련한 장소에서 열리는 공공복지위원회에 대한 런 시장의 제안에 내가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런 시장에게 했을 때, 런 시장이 운영하는 「시민(The Citizen)」에는 아무것도 실리지 않았었다. 사실, 내가 스키넥터디시로 이동한 후에도 위원회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언론의 기자들이 이 계획을 눈치를 챘다. 런 시장이 스키넥터디시에서 자리를 비운 어느 날, 올버니(Albany)시의 「니커보커(the Knickerbocker)」라는 신문에서 이 사실을 발표해버렸다. 그 기사는 전국에 전송되었고, 그때 신문들의 진짜 착취가 시작되었다. 사회주의 신문들? 아니, 그것은 자본주의 신문들에 의한 착취였다. 사회주의 신문들도 그 뉴스를 싣기는 했다. 몇몇 사회주의 신문은 환영하는 사설을 썼다. 그러나 기자들이 전화하고, 전신을 보내고, 인터뷰를 요청하는 그 모든 주들 내내 런 시장의 신문인 「시민」은 침묵을 유지하고 내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착취를 한 것은 자본주의 언론이었다. 왜? 일반 신문들이 사회주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어서? 전혀, 물론 아니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싫어한다. 그렇지만 아아 슬프게도, 내가 신문 가십란의 주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가 스키넥터디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느라 너무 지쳐서 처음 "뉴스"라고 보도했던 기자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신문들이 "내가 사회주의자라는 사실을 보도"하고 나서 사회주의 신문들과 좋은 관계가 되었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를 보기 위에 달려온 기자들은 전부 일반 상업신문 기자들이었다.
「외침(The Call)」이나 「전국 사회주의자(The National Socialist)」 같은 어떤 사회주의 신문도 나에게 기사를 요구하지 않았다. 「시민」의 편집자가 메이시씨에게 내가 쓴 기사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넌지시 일러줬지만, 메이시씨는 너무도 착하고 사려가 깊은 사람이라서 나에게 직접 기사를 요구하지 않았다 .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가 나에게 기사를 요구했었다. 타임지의 편집자는 나에게 그 신문이 대중들이 보는 가치 있는 미디어라고 장담하는 편지를 써 보내면서, 내 기사를 받고 싶어 했다. 또한 그는 나에게 전보를 보내서 내 계획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와 스키넥터디 공공복지 위원으로서의 내 역할에 대한 대략의 생각을 알려달라고 요청해왔다. 나는 그 요청을 수락하지 않았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며칠 후 타임즈는 나를 그 잘난 동정심 밖의 사회적 낙오자로 만들어 버렸다. 9월 21일 타임즈는 <경멸스러운 붉은 깃발(The Contemptible Red Flag)>이라는 사설을 실었다. 그 두 구절을 인용해보겠다.
"깃발은 자유다. 하지만, 깃발은 몹시 혐오스럽다. 그것은 전 세계에서 무법과 무정부의 상징이며, 깃발은 그 자체로 올바른 시민들에게서 경멸받는다."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은 붉은 깃발이 정당화하고 있는 어떤 행동을 저지르기 전까지는 경찰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무법의 상징을 들고 있기 때문에 존중받고 공감 받을 모든 권리를 박탈당할 것이다."
나는 어떤 색깔의 천 조각도 숭배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붉은 깃발과 그것이 나와 다른 사회주의자에게 상징하는 바를 사랑한다. 나는 붉은 깃발을 내 서재에 걸어두고 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붉은 깃발을 들고 타임스 사무실 앞을 즐겁게 행진하면서 모든 기자들과 사진기자들에게 최고의 광경을 선사할 것이다. 타임즈의 포괄적인 유죄선고로 나는 존중과 공감 받을 모든 권리를 박탈당했고, 의심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아직 타임즈의 편집자는 내가 기사를 써주기를 원하고 있다! 내가 의심받을 만한 사람이라면서, 어떻게 내가 그를 위해 기사를 써줄 거라고 믿고 있는 걸까? 자본주의자인 편집자가, 금권 정치적인 이익을 공격하는 운동을 비난하려 할 때마다, 빠져드는 나쁜 윤리, 나쁜 논리, 나쁜 예절에 대해 여러분들도 내가 즐기는 것처럼 즐길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우리는 그의 신문에 돈벌이가 되는 기사를 써주기 전에는 동정받을 자격이 없다. 아마도 우리의 의견은 그 편집자에게 유명한 살인자의 고백과 같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 아니지만, 흥미로운 사람들이다.
나는 신문 편집자들을 좋아한다. 많은 편집자를 알고 있고, 그중 두 세 명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었다. 게다가 신문들은 우리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최고의 지원자들이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일과 겉치레 자선 행위를 지원하는 일은 그들에게 전혀 손해날 것이 없다. 그러나 사회주의 - 아, 그건 다른 문제다! 사회주의는 모든 빈곤과 모든 자선 행위의 근원을 밝히고 있다. 신문 뒤에 있는 금권은 사회주의에 반대한다. 그리고 그들을 먹여 살리는 그 손에 순종적인 편집자들은, 사회주의를 끌어내리고 사회주의자들의 영향력을 훼손하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내가 프레드 워런 동지에게 보낸 편지가 「이성에 호소한다」에 실렸을 때, 「보스턴 트랜스크립트(the Boston Transcript)」의 특별부서에서 일하는 내 친구가 그에 대한 기사를 작성했는데, 편집국장이 잘라내 버렸다.
「브루클린의 독수리(The Brooklyn Eagle)」는 나와 사회주의에 대하여, 헬렌 켈러의 "실수들은 명백한 그녀의 발달 한계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몇 년 전, 나는 맥컬웨이 (McKelway)라고 소개된 한 사람을 만났었는데, 그는 「브루클린의 독수리」의 편집자였다. 맹인들을 위해 뉴욕에서 열린 한 회의가 끝나고 나서였다. 당시 그가 나에게 했던 찬사는 너무나 대단해서 기억하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이다. 그러나 내가 사회주의자로 공개적으로 선언한 지금, 그는 나와 대중들에게 내가 시각장애인이자 청각 장애인이고, 그래서 특별히 실수할 수밖에 없다고 일깨우고 있다. 그를 만난 후 몇 년 사이에 내 지적 능력이 줄어든 게 틀림없다. 이번엔 당연히 그가 얼굴을 붉힐 차례다. 실명과 청각 장애가 사람을 사회주의로 이끄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맑스는 완전히 청각 장애인이며,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시각장애인일 것이다. 모리스는 그의 촉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후각으로 벽지를 디자인했을 것이다.
오, 정말 웃기는 「브루클린의 독수리」다! 얼마나 비겁한 새인가!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브루클린의 독수리」는 이 참을 수 없는 체제, 우리가 막으려는 다수의 육체적 실명과 청각장애의 원인인 바로 그 체제를 옹호하고 있다. 만약, 항상 만일이지만, 우리가 「브루클린의 독수리」를 지원하고, 귀를 틀어막고, 시야를 뿌옇게 만드는 산업 폭군을 공격하지 않는다면, 「브루클린의 독수리」는 우리가 고통을 막으려고 하는 일을 기꺼이 도와줄 것이다. 독수리와 나는 전쟁 중이다. 나는 그것이 대표하고, 변호하고, 떠받치는 그 체제를 혐오한다. 다시 싸움을 걸 때에는 공정하게 싸워라. 내 생각을 공격하고, 내 목표에 반대하고, 사회주의에 논쟁을 걸어라. 나와 다른 이들에게 내가 보거나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은 공정한 싸움도 아니고 좋은 논쟁도 아니다. 나는 읽을 수 있다. 나는 시간을 투자해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된 모든 사회주의 책들을 읽을 수 있다. 만일 「브루클린의 독수리」의 편집자가 이 책 중 몇 권을 읽을 수 있다면, 그는 아마도 더욱 슬기로운 사람이 되어서 더 좋은 신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일 사회주의 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내가 가끔 꿈꾸는 그런 책을 쓰게 된다면 그 책의 이름은 「산업적 실명과 사회적 청각장애」라고 쓸 것이다.
1912년 11월 3일, 「뉴욕 콜」
헬렌 켈러(Helen Keller)
*「뉴욕 콜(The New York Call)」은 1908년부터 1923년까지 뉴욕시에서 발행된 사회주의 일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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