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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원칙과 초심을 다시 한번 부여잡으며
3년 전 권두언은 「맑스주의 복원과 코뮤니스트 세상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실천」 복간 2호를 ‘맑스주의 특집’으로 펴낸 바 있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2017년은 러시아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였고, 2018년은 맑스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2019년은 코민테른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공교롭게도 혁명, 혁명이론과 혁명조직 건설의 역사가 연속적으로 연결되는 의미가 있어 사회실천연구소 회원을 포함한 동지들은 「혁명운동 평가와 전망」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공부하고 토론하는 활동을 지속해 왔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얼마나 그 활동에 충실했는가를 스스로 묻고 겸허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지난 3년 자본주의가 스스로 빚어낸 팬데믹 위기로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로 인한 프롤레타리아트 삶의 피폐화와 절망, 부르주아지의 억압과 폭력의 심화, 국제 부르주아지 사이 패권 쟁투로 제국주의 전쟁의 실질화 가능성,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 등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자본주의 체제의 총체적 위기가 프롤레타리아트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혁명을 통해 코뮤니스트 세상을 만들려는 혁명 세력과 코뮤니스트들을 가두고, 깊은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실천」은 다시 한번 우리가 결심하고 실천해온 맑스주의 운동의 원칙과 초심을 부여잡고 나아가고자 한다. 첫째, 번역 글은 새로운 글들을 찾기 전에 우리가 이미 15년 전, 공들여 발굴한 좋은 글들을 찾아 새롭게 조명하자는 것이다. 이번에는 2007년 「실천」에 실었던 글 중에서 선정했다. 둘째, 맑스주의 학교 교과과정을 목표로 해온 「사실연 지상 강좌」는 지속해서 확대 보완하기로 한다. 셋째, 정세분석, 역사 이야기, 영화 이야기 등 놓치지 말아야 할 영역을 발굴하기로 한다.
2007년 2월호와 3월호에서 「역사 유물론」에 실린 글들로 파레쉬 차토파디야이(Paresh Chattopadhyay)의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맑스가 이야기한 진보의 변증법」과 스티브 샤비로(Steve Shaviro)의 「자본주의의 괴물들」을 선정했다. 첫 번째 글은 “낡은 사회의 혁명적 변혁을 통한 인간사회의 전사에서부터 인류의 역사를 향한 이행이다. 여기서 인류의 진보는 일종의 모순적 운동, 즉 부정성의 변증법이 전개된 것이며” 이 글은 자본이 자신의 내적 모순을 통하여 자기 붕괴 조건과 함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건설하는 조건들을 만들어 낸다는 맑스의 ‘핵심 명제’를 논의하고 있다. 두 번째 글은 이윤율 저하의 경향, 게으름뱅이 나방, 야수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 그리고 죽은 노동의 시작을 이야기하면서 “죽었을 때조차 그들은(좀비) 약탈과 맹목적인 소비의 의식을 꾸준히 거행한다. 좀비는 제1세계와 제3세계 사이를 배회하면서 아울러 노동과 게으름, 소외된 생산과 눈에 띄는 소비 사이를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비유한다.
「사실연 지상 강좌」가 다섯 번째 계속된다. 세 동지의 글은 다음과 같다. 다른 회원도 이 지상 강좌에 참여하여 맑스 학교의 강의안을 준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진업은 “돈 벌어 돈만 벌어(자본의 운동법칙)”을, 배성인은 “당이란 무엇인가”를, 그리고 한형성은 “자본가 기업 동영상 감상법, 손익계산서”로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최규진은 “이미지에 담긴 작은 역사, 일본 정신으로 반공·방첩을”, 홍수천은 “세계정세에 관한 노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제국주의 패권 경쟁의 격화’라는 번역 글을, 이형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국제주의자 행동: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를, 그리고 최철은 “영화 보고 상상하기”에서 ‘노킹 온 해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1997년 -익숙했던 삶의 끝에 서서-’를 전하고 있다.
다시 한번 사회실천연구소와 「실천」은 맑스주의 운동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모든 동지에게 전한다.
2022년 6월
사회실천연구소를 대신하여
오세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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