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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라 춥다

처음 서울 왔을 때, 뼈속까지 들어오는 바람의 실체를 맛봤다.

게다가 눈이 그렇게 많이 매일 오는 경험도 처음이었다.

20여년 넘게 산 경주는 서울에 비하면 진짜 따뜻한 남쪽나라이다.

여름에는 훠~~월~~씬 시원하고..

찬바람 생생 불고 눈땜에 출근 길에 몇번씩 미끄러질때에는

'아니, 도대체 내가!! 왜!! 따뜻한 동네를 버리고 여서 이 고생질이란 말이고!!'가 절로..

이넘의 도시는 단풍을 즐기다 말고 찬바람을 맞으니 서럽기가 한이 없다.

 

노동자대회 끝나고 나니 할일이 갑자기 정리가 안되고 발이 허공을 맴돌고 있는 듯..

다시 일모드로 들어가줘야 하는데...흐..미...

 

사람때문에 골머리를 썩다가도 힘이 되는 것이 또 사람이라는 아이러니...

고마운 사람들...그 마음에 어찌 보답할꺼나..

살면 살수록 마음의 빚이 자꾸 들어가고, 그만큼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도...

그래도 도망은 치지 말자는 결심을 하게 만들게 하는 것도 사람이라..

아이고..사람아..사람아..

 

겨울이 오니 해고자 석범옹께 마음 채울 만한 뭔가를 바쳐야겠당..

아..그리고 4년여만에 복직한 창곤이형한테도...

마음 꼭꼭 다져서 이제 좀더 편하게 사시라고..두분 모두..

아!! 맞다..선봉이형한테도..흐흐..

 

이제까지 살아본 옥탑중에 이번 옥탑이 제일 춥다..

여름은 시원했는데..에구에구..살기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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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이 한달만 같다

언제 노동자대회 전야제가 있었고, 거기에서 노동문화활동가 결의 한마당이 있었는지..

어제가 진짜 노동자대회 본대회가 광화문에 있었는지..

머리 반쪽에 쥐가 내린 상태로 이틀을 보내는 중이다.

노동문화활동가 결의 한마당을 준비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진행하면서, 또 끝내고 나서 머리속에 드는 생각이 자글자글 많은데 섣불리 줄줄 뱉어내 놓고 싶지는 않다.

좀더 안으로 정리를 잘하고 말해야겠다.

심경이 복잡한 상태...

그날 정리하면서 아시바위에 올라앉아있던 모선배의 상처받아 웃던 모습과 김호철선배의 나팔소리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듯.

정작 나는 민주노총 무대 근처과 주점을 돌아다니며 티셔츠를 파느라 공연을 거의 보지 못했다는 약간의 억울한 심정도 있다고 보태고 싶다. 흑흑...

평가의 자리를 잘 만들어야 될텐데...

 

어제 본대회에 사람들이 결합을 안해서 우듬지형들과 술마셨다.

노대얘기, 민주노총 얘기, 문화활동가 얘기를 한참 하다가 우리의 우듬지 형들이 어디 갈까.

아는 술집 가서 북을 끼고 앉아서 민요 한자락씩 꺼내기 시작했다. 남도에 내리는 비, 장타령, 빈쇠전.....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지 못해서 아쉽다.

이렇게 마지막을 노래와 북으로 끝내지 않았으면 혼자 집에 들어와서 무지 우울해졌을 것이다.

아마 다들 같은 심정이었겠지..그렇겠지...뭐...


북채가 없어서 등긁개로 북을 두드리는 선봉이형..

13일간의 경찰서와 구치소 생활..나오자마자 민주노총 상근자 집단 사표를 내야했고..

그저께 선고재판에서 꼬박꼬박 졸던 검사놈이 일어나서 '네 3년입니다.'라고 선고를 때렸단다.

뭐...마지막 재판에서 집행유예가 되겠지만...바보같은 검사놈이다..

어쨌든 선봉이형이 부르는 빈쇠전~강추이다.

 

이궁...우리의 깜찍이 석범이형..

석범이형도 25년간의 공장생활은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막을 내렸다.

그즈음 힘들어 하더니 지금은 많이 안정을 찾았는지...

다시 온갖 입담으로 얘기를 풀어내는..그모습..반가웠다.

형의 1시간 짜리 장타령 언제 한번 들어보는 날..손꼽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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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길상사에서

올해 초파일 즈음이었던가, 지금은 몸이 아픈 미놀타 700-X를 매고 다시  길상사를 찾았다.

등이 온 절을 덮었고 행사 준비로 사람들이 분주해서 조용한 절간의 분위기를 만끽하는데 실패해서 약간 찌푸린 얼굴이 되었다. 길상사는 부자동네 한가운데 있어서 인간의 모습이 그득하니까 영 재수가 없어졌다.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곳곳에 아름다운 풍경은 남아있어서....남겨두었던 사진들..

 

길상사의 관세음보살상..생각해보니 이 조각상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길상사로 향했던 것 같다. 고운 선..살짝 내린 눈길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 눈길 끝까지 렌즈를 돌렸지만..보살님의 마음을 어찌 중생이 헤아리겠나..


초파일이 다 되어서인지 대웅전 앞에는 화려한 등으로 가득했다.
관세음보살상 있는 근처에 죽은 자를 위한 흰등들이 걸려 있었는데..어찌나 묘하게 만들던지..그리고 화려한 등보다..흰등에 새겨진 극락왕생이라는 단어에 괜히 눈물이 핑...
죽어서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면 가시고...다시 생으로 돌아오지는 마소서..

그곳에서 영원히 사시길..그래서 행복하시길..

이런 기원이 절로 나더라..

길상사의 매력은 숨은 길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면 한적하게 서울 도심에서 산사의 고요함과 아늑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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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전국노동문화활동가 결의 한마당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민주노조운동 원칙복원, 총파업투쟁 승리
전국 노동문화 활동가 결의 한마당 결의문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풍이 깨지고 무너졌습니다. 민주성, 자주성, 계급성, 연대성, 투쟁성, 그 어느 하나도 지켜지고 있지 않습니다. 민주라는 허울을 쓰고 어용노조들이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자기하고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공개석상에서 상대방을 폭행하는 짓도 서슴지 않습니다. 직권조인을 하고도 오히려 큰소리칩니다. 조합원들이 보는 앞에서 노자간 협상을 하고, 그 결과를 조합원 총투표에 붙여서, 부결이 되면 군말없이 현장으로 복귀하던 그 당당한 기풍은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지역에 파업 사업장이 생기면 온 공단의 활동가들이 제일인양 발벗고나서서 그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끝가지 연대를 했던 전통은 벌써 지나간 역사가 되고 만 것입니까?

모든 것을 협상으로 해결하자고 합니다. 투쟁도 잘 해야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협상이라고 합니다. 누가 협상할 줄 몰라서 안 합니까? 떡 줄 놈은 생각도 안하는데 받을 사람이 애원한다고 협상이 됩니까? 협상은 당당해야 합니다. 꼭 투쟁한 만큼만 얻을 수 있는 게 협상입니다. 저 악귀 같은 자본가들이, 저 승냥이 같은 정권이, 우리 노동자가 뭐가 그리 예쁘다고 달라고 하지도 않는데, 투쟁하지도 않는데 거저 줄 것 같습니까?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걸 니들만 모른다고 합니다. 과연 세상이 바뀌었습니까? 동지들은 그걸 느끼십니까? 세상이 바뀌어서 노동자가 일한만큼 대접받고, 농민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모든 서민들이 집값걱정, 물가걱정, 생계걱정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까? 절차적 민주주의가 약간 확대되었다고, 자본이 마음대로 돈 벌 수 있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고 노동자 민중이 달라진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모든 게 늘어납니다.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도 점점 늘어나고, 구속, 수배자들도 늘어나고, 가계의 부채도 늘어나고, 노동시간도 늘어나고, 비정규직의 숫자도 늘어나고, 어용노조도 늘어나고, 무사안일, 복지부동하는 활동가들도 늘어나고, 잘사는 놈과 못사는 사람의 차이도 늘어나고, 헐벗고 굶주린 자도 늘어나고, 세상살이 힘들고 지쳐 자살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모든 게 늘어납니다. 날마다 늘어납니다.

어쩌면 우리 문화일꾼들은 민주노조운동의 희생물인지도 모릅니다. 그토록 민주노조운동에 헌신해왔지만 저희들에게 돌아온 것은 끊임없는 희생뿐이었습니다. 급할 때는 동지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똥친 막대기 취급이었습니다. 그 모든 걸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풍이 사라지는 것은 차마 두 눈뜨고 보지 못하겠습니다. 그것이 저희들이 떨쳐 일어난 단 하나의 이유입니다.  

저희들은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에 잠깐 문제제기 하는 것으로 저희들의 주장을 접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장하는 것이 지켜질 때까지 투쟁을 계속할 것입니다. 실천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민주노조운동 원칙복원, 총파업투쟁 승리의 소망을 담아 다음과 같이 결의합니다.  


-, 눈앞에 닥친 비정규법안 관련 총파업을 조직하는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결의한다.
-, 이번 투쟁에 문화일꾼들이 선봉에 설 것을 결의한다.
-,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기풍이 복원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결의한다.
-, 전태일 열사가 진정으로 바랐던 그 아름다운 세상을 하루라도 빨리 앞당기기 위해서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한다.

2005년 11월 12일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민주노조운동 원칙복원, 총파업투쟁 승리
전국 노동문화 활동가 결의 한마당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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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신부..그녀에게 자유를

 

아침 잠이 없는 덕분에 이천원 짜리 조조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은 특권이당!!

몇일 전에는 사랑해 말숙씨!를, 오늘은 유령신부를 봤다. 내일은 이터널 선샤인을 보려고..

빅피쉬와 챨리의 초콜릿공장 때문에 내가 사랑했던 악동 팀버튼에게 완전히 실망하고 시무룩해 있었는데, 그나마 유령신부가 위로를 해줬다. 물론 낙관적인 되어버린 팀버튼의 모습을 지울 순 없지만..

그래도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후 유령이 된 에밀리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자신과 결혼 할 수 있는 남자를 놓아줌으로써 오히려 제도로부터 자유로워져 나비로 흩어진 그녀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달빛에 춤추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녀의 모습도..

대책없이 억압받고 순종할 수 밖에 없는 불쌍한 빅토리아보다 훨씬..

여하튼 그 지하세계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던 이른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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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노동영화제..

노동영화제 프로그램이 떴다. 그중에 아래의 것들 꼭 보고 싶다.
예전처럼 한국에서 상영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노동을 주제로 한 극영화 보는 재미가 짭짤했는데..아쉽다..
그래도 몇개 상영작을 골라놓고 기다리는 중...
 
 
   
 

< 문화 - 우리가 아는 몇가지, 우리가 모르는 수십가지 >
(2005, 한국, 46분, 현대자동차노동조합 / 노동자뉴스제작단)
이 작품은 노동자 문화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자들의 건강한 문화, 대안 문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제작된 것이다. 여기에서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공장 안과 밖, 가정에서의 일상을 통해 그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노동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장시간 노동, 주야 맞교대, 현장관리 시스템 등이 과연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만들고, 어떤 문화를 만들어 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작품내용
프롤로그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하루. 뮤직비디오
단락 1. 공장 안과 밖의 문화
1-1. 출근은 무겁다
1-2. 노동은 나를 기계처럼 만든다.
1-3. 휴식은 짧다
1-4. 회사는 나를 구속한다
1-5. 장시간 노동이 싫다
1-6. 퇴근길은 가끔 삼산동으로 향한다
단락 2. 노동자들은 집에서 뭘하지?
2-1. 집에서1
     -가족과 함께, 부인과 함께, 아이들과 함께, 집안일
2-2. 집에서2(휴일풍경)
     -자거나 뒹굴거나, 마트가기, 당신의 소원
단락 3. 문화는 움직인다
3-1.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법 1. 돈을 번다
3-2.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법 2. 돈을 쓴다
3-3.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법 3. 학교에 간다
3-4.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법 4. 경쟁은 필수다
에필로그

 

 

< 노동의 빈곤화 >
(2004, 미국, 86분, 로저 와이스버그)
< Waging a living >
(2004, US, 86min, Roger Weisberg)
“노동하는 빈민”(working poor)이라는 용어는 사실 그 자체로 모순된 개념이다. 노동하는 자라면 빈곤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자본주의의 심장부 미국에서는 3천만명의 노동자들이 (네명중 한명꼴) 4인 가족 기준의 최저임금 이하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노동의 빈곤화>는 생황임금을 쟁취하기 위해 힘겹게 살아가며 투쟁하는 네명의 노동자들을 추적한 작품이다. 캘리포니아를 무대로 3년에 걸쳐 제작된 이 관찰자적 형식의 다큐멘터리는 이 노동자들의 꿈과 좌절과 희망을 섬세하게 기록해나가며, 가족의 빈곤을 넘어서기 위해 이들이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이 하나씩 드러나는 과정에서 미국의 꿈이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유물일 뿐임이 드러난다. (관련 사이트 :
http://www.pppdocs.com , 2005년 뉴져지 국제영화제 그랑프리 수상)
로저 와이스버그 Roger Weisberg
주로 방송 분야를 주무대로 활동해온 로저 와이스버그가 제작한 25편의 다큐멘터리들은 에미, 피바디, 뒤퐁-콜럼비아 등 TV 다큐멘터리 부분의 주요 상을 100여개 이상 수상한 바 있다. 그의 최근작 는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바 있다.
 
< 엔론 :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 >
(2005, 미국, 109분, 알렉스 기브니)
< Enron : The smartest guys in the room >
(2005, US, 109min, Alex Gibney)
미국 역사상 최대의 스캔들로 기록된 엔론의 파산은 자본주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7대 기업에 속하던 엔론이 파산하던 순간, 엔론의 최고 경영진은 10억 달러 이상의 돈을 챙겨서 유유히 사라졌으며 투자자와 노동자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포츈지 기자의 베스트 셀러에 기초하여 제작된 다큐멘터리 <엔론 :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은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상황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탐욕스러운 공룡이 되어버린 거대 자본의 실상을 꼼꼼하게 그려낸다. 캘리포니아 전력난 당시 마치 주식처럼 전력을 사고팔면서 지역주민들의 희생을 댓가로 엄청난 이익을 챙기는 장면에서 인용되는 엔론 트레이더 들의 목소리는 세상의 종말을 알리듯 섬뜩하기까지 하다. “캘리포니아가 태평양으로 꺼져 버리면 전기값이 더 뛰어 오를텐대...” (2005년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상 후보작, 도빌 영화제 카날 플뤼상 수상)
알렉스 기브니 Alex Gibney
에미상 수상 경력을 지닌 알렉스 기브니는 2003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이크 피기스, 마틴 스콜시즈 등이 참여하여 화제가 되었던 TV 시리즈 <블루스>의 제작을 담당한 바 있으며 2004년 베를린 영화제 상영작인 <병속의 번개, Lightning in a Bottle>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 외에 그가 제작에 참여했던 최근작으로는 아카데미 수상작인 <헨리 키신저 재판, The Trials of Henry Kissinger> 등이 있으며 알렉 볼드윈, 시고니 위버, 존 말코비치, 케빈 클라인 등이 출연한 미국 공영방송 PBS의 시리즈 <권력에게 진실을 말하라, Speak Truth to Power> 등이 있다. 그는 작가협회 및 감독협회의 회원이며 UCLA 영화TV학과를 수학한 바 있다.


< 올드맨과 헤수스 : 반란의 예언자들 >
(2005, 베네주엘라, 80min, 마르셀로 안드라데)
< The Old Man and Jesus: Preludes of Rebellion >
(2005, 베네주엘라, 80분, 마르셀로 안드라데)
<올드맨과 헤수스 : 반란의 예언자들>은 현재진행형인 혁명적 과정을 파괴하려는 파시스트들의 폭력이 들끓고 있는 베네주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의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의 노숙인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노인(올드맨)의 현명한 주석과 예수(헤수스, 예수와 이름이 같다)의 폭발적인 랩은 지도자나 혹은 전위가 아닌 밑바닥 민중들이 함께 하는 베네주엘라 혁명의 과정을 관통한다. 제8회 국제노동영화제 개막작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의 작가 마르셀로 안드라데는 이들 거리의 민중들이 순간순간 내뱉는 직관적인 고백과 토론이 곧 다가올 정의를 위한 봉기를 예감하게 하는 전주곡임을 확신한다.

마르셀로 안드라데
Marcelo Andrade
1982년 5월 베네주엘라의 카라카스에서 태어난 마르셀로 안드라데는 미국 보스톤의 에머슨 대학, 체코 프라하의 FAMU 영화학교 등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국제 미디어 활동가의 네트워크인 ‘깔리 이 미디어’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2004), <아마조니아 리브르>(2003), <피라미다드>(2002) 등이 있으며,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프로젝트인 <마니트@미그란떼 프로젝트>의 총괄 기획운영자로도 활동한 바 있다. (깔리 이 미디어 홈페이지 http://www.calleymedia.org)
 
 
< 배신자들 >
(1973, 아르헨티나, 105분, 레이문도 글레이져)
< Traitors >
(1973, Argentina, 105min, Raymundo Gleyzer)
지난 제7회 서울 국제 노동영화제의 폐막작 <레이문도>를 통해서 소개된 바 있는 제3세계 영화운동의 대표적 영화운동가로서 군부독재에 의해 학살된 고(故) 레이문도 글레이져 감독의 대표작이다. 한 전투적 조합 활동가가 어떻게 관료적 페론주의 그룹에 가담해서 결국은 노조 선거 과정에서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이며 군부 독재와 타협하여 노동자를 배신하는 첨병이 되어버리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그린 이 극영화는 독재 체제하의 엄혹한 상황에서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며 제작된 것이다. 배신한 지도자를 처단하는 과정이 묘사되는 종결부에 대해 작품 제작후 수년후 레이문도는 그러한 테러주의적 관점을 극복해야 한다고 토로하기도 한 바 있다. 자료 보존 상태가 좋지 못해 화질도 열악하고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복잡한 구성 때문에 이해는 쉽지 않지만, 30여년전 아르헨티나 변혁운동의 현실과 활동가의 고뇌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작품이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어렵게 입수된, 열악한 기술적 조건에서 텔레시네 과정을 거친 DVD를 상영한다)

레이문도 글레이져
Raymundo Gleyzer
1941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레이문도 글레이져는 60, 70년대를 풍미한 라틴 아메리카의 급진적 영화운동의 대부와도 같은 존재이다. 1976년 군부 독재에 의해 학살당한 그의 일대기는 다큐멘터리 <레이문도>(2003, 제7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 폐막작)를 통해서 한국에도 소개된 바 있다. 그는 좌파 정치조직의 일원으로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넘나들며 다양한 정치적, 미학적 성과를 선보였으며, 라틴 아메리카 영화제의 개최를 주도하는 등 국경을 넘는 영화운동의 연대에도 헌신한 바 있다. 그의 정력적 활동은 21세기에 접어들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대안적 영상운동이 남미 전역에 걸쳐서 활성화되는 가운데 재조명되고 있으며 그의 일환으로 2004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개최된 제1회 라틴 아메리카 노동영화제에서는 그에 관한 특별전이 개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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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정에서

1년에 한번 있는 교지모임에서..

 

여기는 4년간 내가 공부했던 원효관 중정이다. 가을이면 단풍이 고왔던 곳..

 

 

교지사무실에서 저창턱에 걸쳐 앉아서 마신 커피잔이 도대체 몇잔이었을까.

명숙이형 딸 민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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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풍경들

요즘 같이 궁한 때에 필카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사치인 줄 알면서도..

욕심내어서 기회가 있으면 들고 나간다.

그래봐야 홍대의 어떤 술집이고, 용산의 박물관이었고, 노조행사 진행하러 무위도에 가는 선배를 쫓아간 것 뿐이지만...

 


홍대의 깜토...퍽 좋은 술집은 아닌데 자주 가는 곳..홀이 좁아서 그나마 덜 소란스럽다는 장점..

이날도 여기에서 한 언니와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우리 속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말이 있는지 다 알 수 있을까. 그리고 그말은 또 얼마나 거짓이 섞여있나 의심하지만, 그래도 그순간만은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돌아서서 그말을 부정한다 할지라도...

잠깐 눈을 들으니 머리위의 일본식 등이 예뻐서 찍어봤다.

 

 

무위도에 도착해서 선배가 행사 진행하기까지 시간이 남아서 갯벌을 한참 돌아다녔다.

천천히 걸으면서 발밑을 내려다보니  부서진 조개 껍질의 부스러기들이 바람과 파도의 흐름따라 흔적을 남긴 것을 발견했다.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다 자기 있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단지 우리가 보지 못하고 지나칠 뿐이지. 경외감!!!

이 사진을 찍으면서 제목을 정했다. '바람의 흔적'

사실 파도의 흔적이라고 해야하겠지만 그모습은 그냥 바람의 흔적 같았다.

 

 


무위도의 갯벌..

동해안에서 자라난 나는 여러번 갯벌과 서해안을 가봐도 늘 그풍경이 생경스럽다.

아침에 해뜨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며 일어나야 했던 내가 처음으로 서해안에 해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괴성을 질러댔던 경험도 있다.

"엄마야, 바다에 해가 진다야..우와 우와." 우히히히...

변산반도의 드넓고 끈적거리던 갯벌, 새만금의 장승과 솟대 사이로 지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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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

오랜만에 책 산다며 즐거워 하던 동무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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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와 약봉지

날씨가 좀 추워지던 날 고향에서 부모님이 감기예방 및 목에 좋은 즙을 다려서 한박스를 보냈다.

이 좁은 옥탑방에 애물단지만 같아서 전화로 엄마에게 이렇게 많이 보내면 내가 어떻게 감당하냐며 툴툴거렸다.

그리고 감기 걸린 사람들에게 몇봉지씩 건네면서 선심 쓰고 나서도 한박스 그대로인 그넘을 바라보면서 저걸 어쩐다냐하는 심정이었다.

내맘은 그러니까 엄마가 신경써서 보냈는데 다 못 먹고 버릴까봐 그게 더 안타깝고 괜히 좋은 일하고 자식들한테 잔소리 들을 걸 뻔히 알면서 이것저것 챙기는 모습이 짜증스러웠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나는 보기 좋게 심한 목감기에 걸렸다. 

마치 엄마가 5시간도 넘게 떨어져 있는 곳에서 여기 서울을 훤히 들여다 보는 듯 미리 약을 보낸 것 같이 되버린 것이다.

하루에 한두번씩 전화를 걸어보는 우리 엄마와 아버지는 거보란 듯이 의기양양해하셨고, 나는 아휴 너무너무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할 밖에..

덕분에 양약을 거의 안먹고 감기가 나아간다. 오늘은 몸살기운이 있어서 이런저런 일정을 뒤로 하고 집에서 쉬었다. 그리고 엄마가 보낸 그 달짝지근한 즙을 따뜻하게 덥혀서 먹고...

 

사랑해 말순씨를 봤다. 애잔한 휴머니즘, 지나간 시대에 대한 그리움을 그려내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시절, 효자동 이발사...이런 류들...약간 몸이 근질거리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는 보고나서도 의도가 미심쩍어서 보긴 봐도 삐딱해지기 쉽상이다.

그런데 나는 극장에 앉아서 바보처럼 잉잉 울었다. 엄마 생각이 나서...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서른살도 더 먹은 여자가 혼자 극장에 영화보러 와서는 질질 짜고는 결국 눈이 퉁퉁 부어서 극장문을 나섰으니..

 

어릴 때 엄마의 모습.

긴머리를 틀어올리고 립스틱을 살짝 밀어올리면 풍기던 그 야릇한 화장품 냄새와 바바리 코트를 묶고 나설때의 엄마는 얼마나 예뻤던지..

그러던 어느날 대구 외가에 다녀오던 날 짧게 짜르고 파마를 하고 나타나서 우리는 거의 패닉 상태가 되었다. 아버지는 사흘동안 엄마와 대화를 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집안 일이 많은 당신에게는 긴 생머리가 얼마나 거추장스러웠겠나. 그렇지만 그것은 나에게 판타지였고 로망이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아들을 감싸는 엄마의 작은 태도조차 용서하지 못한 채 세월은 흘러갔다.

그사이에 병을 얻은 엄마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여전히 화해하지 못하고 있는 내모습과 아픈 엄마의 모습이 영화에 겹쳐져서 자꾸만 울음이...

 

실패한 수험생이 혼자 울고 있던 어느밤 더큰 울음으로 안아주던 엄마의 품을 마지막으로 떠나버린 잘난 이 딸은 혼자 어른이 된 것으로 착각하곤 한다.

늘 대화가 잘 통했던 아버지가 자신을 다 키운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알고 있다. 애써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장면들이 있음을.

책을 사서 안겨준 사람은 아버지였지만 읽어 준 사람은 어머니였다는 것을...

아름다운 음악, 좋은 영화가 있음을 알려준 사람도 어머니였다는 것을..

(나의 아이디인 젤소미나도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영화 길에서 따온 것이다. 엄마는 항상 영화 길을 젤소미나라고 불렀다.)

그리고 딸로 커야하는 아픔을 안겨준 사람도 어머니였고...

혼자 많이 울게 만든 것도 어머니인데..

나는 어느 순간에 딸로 살아가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날까.

진정으로 어머니와 화해할 수 있을까..

내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남자아이들이 화장한 엄마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것과 다르게 곱게 화장하는 모습을 판타지로 간직하면서 자란 여자아이들의 다른 기억이 떠올라 이런저런 생각이 참 많았다. 판타지..여성에 대한 판타지..엄마에 대한 판타지..그렇지만 한편 내 기억속에도 남아있는 판타지란 말이지...거참...

그래도 적어도 사라져가는 아버지에 대한 가부장에 대한 추억을 붙들고 늘어지는 영화보다 백백천배 낫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을 위해 내 삶의 일분 일초도 희생하지 않을 딸이지만  엄마에게 전화 한통화 따뜻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앗! 영화가 의도한 것이 혹시 이것이었나.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것!

오..무서운 걸...

또 깜깜해진 창을 보면서 달짝지근한 다린 약봉지를 뎁히고 있는 중이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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