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캄보디아_2006 - 2006/11/06 21:16

올해 내내 앙코르와트를 보겠다고 노래했었는데, 결국 뜻을 이루었다.

준비기간이 너무 짧아 적당한 패키지 상품에 만족했고,
휴가기간도 짧으면서 그 와중에 여러 나라 구경해보겠다고 베트남+캄보디아 4박 6일을 선택했다.

다녀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캄보디아 유적은 나중에 일주일정도 잡고 도보로 쭉 돌아다녀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복병인 베트남이 끼면서 뭔가 예상치 못한 줄거리가 있는 여행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여행에서 순서대로 감상하게 된 베트남의 하롱베이 -> 캄보디아의 사원들 ->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는,

고요하면서도 거대한 태초의 자연미 -> 인간 고도의 창조력과 삶이 진하게 묻어나는 화려한 인공미 -> 수많은 죽음 앞에 목도되는 경건함과 인간 잔혹성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고,

이는 인생의 탄생기 -> 절정기 -> 마감기를 한바퀴 돌아보고 온 것 같은 진한 감동을 주었다.

일단 이건 다음 기회에...

 

이 모든 곳을 돌기 전, 베트남에 도착하고나서 가장 먼저 관광가본 곳이 호치민 광장과 살던 곳이다.

 

처음 들어선 호치민 광장은 그저 탁 트인 공간만 전부인 것 같은 삭막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본인은 죽으면 재를 나무에 뿌려달라고 했던가?

하여간 그런 비스꾸므리한 말을 했다던데 후대에서 괜히 시체 가지고 썩지 않도록 하고 전시하는 모양새가 장난쳐놓은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저 석기둥 잔뜩 세워진 곳이 호치민의 묘인데, 지금은 시신이 러시아에 가있다고...





그러나 그 황막한 광장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딱하나 있었는데 바로 이 엄청난 크기로 나부끼는 베트남 깃발이다.

새빨간 바탕의 노란 별 모양은 뜨거운 열대 지역의 태양빛을 잔뜩 머금고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느낌으로 펄럭이고 있었다. 

빨강은 '혁명의 피와 조국의 정신', 별의 5개 모서리는 '노동자·농민·지식인·청년·군인의 단결'을 상징한다고 한다.

 

광장에 대한 실망감을 품고 있던 찰나, 광장의 뒷편, 호치민의 살았다던 곳을 구경하러 꺾어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왠걸~!

앞은 그렇게 아스팔트 빼곡히 발라놓아 삭막하더니만 뒷쪽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의 존재를 압도해왔을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무들이 쭉쭉 뻗어있다.

 

그 사이로 안어울릴 것 같은 샛노란 색의 궁전이 은근히 어울림을 뽐내며 서있다.

원래 호치민더러 저기 살라고 했는데, 너무 크고 화려하다며 '정원사의 집'을 주면 거기서 살겠다고 했단다. 그 다음부터는 외국의 국빈 숙소로 탈바꿈했다고.


 

중간중간 나무들이 꽤 장관인데, 이 나무는 2개의 나무가 서로 얼키고 설켜 함께 자라고 있는 모습이다.

 

노란 궁전의 더 뒷편으로 걸어가다보면 단층집이 몇개 나오는데, 호수 근처에 있는 저 집은 호치민의 집무실이었다고 한다.

베트남은 집 색깔이 원색적인 것 같으면서도 매우 자연과 조화롭고 아름답다.

아니다.

나무가 많아서 그런건가?

자연이 그 울창함으로 제대로 감싸안아주고 있는 것일까?


 

호치민 집무실의 책상과 그 위에 붙어있는 마르크스, 레닌의 초상.

 

호수를 끼고 집무실 맞은 편에는 바로 호치민이 살았다던 그 집이 보인다.


 

아까 그 노란 궁전 대신 살았다는 집. 이 집도 왠지 정원사 대신 살 사람에 대한 고려가 있었다할만큼 정취가 만만치 않은 걸.(편견인감? 그냥 이 동네 정원사는 이렇게? ) 계단을 올라가면 정확히 양분하여 침실과 서재가 있다. 정말 멋드러진 곳이다.


 

 

호수 주변에는 망고나무가 작은 밭에 심어놓듯 정갈하게 심어져있다.

호치민은 호수에서 고기 잡아먹고, 망고 가꾸고 따먹는 게 취미생활이었다고 한다.


 

베트남은 나무를 절대 함부로 베지 않는다고 한다. 그 덕에 도로 확장도 하지 않고 교통 체증이 심해지고 있다고. 이대로 개방정책이 가속화되면 과연 이 아름다운 정책이 잘 유지되려는 지 모르겠지만, 화장실 가운데 우뚝 솟은 나무가 멋지기만 하다.


 

 

기둥 하나 위에 세워진 절이라 하여 '일주사'. 둘러싸인 연못의 연꽃과 어우러져 운치가 장난이 아니다(O.O)b

 

일주사 올라가는 계단 난간에 붙어있는 이 녀석. 정체는 알수 없으나 정말 귀엽다.

 

 

이번 패키지에 함께 동행했던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처음엔 호치민처럼 한 평생 목적과 사명에 충실한 활동가는 과연 무슨 재미로, 무슨 행복으로 살았을까 궁금했다고.

특히 호치민은 사생활이 무지 깔끔했나보다.

남녀 통틀어 나도는 연인 얘기도 없고 결혼도 안했고, 크게 알려진 놀이문화도 없고, 도박을 즐겼을 리도 없고... (사실 별로 자료 찾은 게 없어서 내가 모르는 걸 수도 있다.)

이대로의 사실만 보자면 그야말로 일 중독에 빠진 전형적인 활동가의 모습 아니겠느냐고?

 

그런데 살던 곳을 보며 깨달았다고...

 

'즐길 거 다 즐기며 제대로 살았구만!

활동가들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데!'

 

나도 적극 동감!

 

그곳에 가면

망고 나무 가꾸고 호수에 잉어 키우면서,

생선찜 요리와 과일을 즐기면서,

나무와 호수와 열매와 생선이라는 자연들을 벗 삼을 줄 알았던 여유로운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일은 그저 일 뿐인 것 같은데, 희한하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면 그 일 속에 사람이 묻어난다.

사람 마음이 조급하면 조급한 모양새로,

사람 마음 품이 넓직하면 일도 크게 품은 모양새로 나온다.

 

특히 사람 별로 없는 운동 진영에서 활동가들이 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기왕이면 좀 더 넉넉하고 여유롭고, 거칠 것 없는 소통의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1/06 21:16 2006/11/06 21:16
TAG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jineeya/trackback/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