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생각_펌 - 2007/05/18 08:31

1.

화창한 날씨.

보라매공원엔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바깥놀이를 즐길 마땅한 장소를 이미 찾았거나 찾기 위해 떼지어 다니고 있다.

 

그중 초등학교 1학년생들로 보이는 한 무리에 눈길을 빼앗겨 버렸다.

진분홍도 아닌 그냥 분홍, 핑크색의 티셔츠로 빼입은 아이들의 무리.

 

고왔다.

그런데 '선생님, 대단하다. 아이들에게 저 색을 어떻게 입혔을까?

분명 여자색이라며 거부의사 표시한 남자애들이 있었을텐데.

학년초 떼쟁이 저학년들을 제압한 건 결국 권위의 탈을 쓴 권력?^^;;'

 

'남녀를 구분하자던 부모들에겐 어떻게 설명했을까?

그래. 반별로 색이 달랐는데, 재수가 없었다(-_-;;;)고 설명하는 거야.

다음번엔 -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파란색 계열로 입기로 했다고 하는 거지.'

 

그 색 자체의 아름다움에 취한 건 정말 1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

다음 순간 대부분을 차지한 생각은 걱정과 타협의 길 모색.

 

이런 저런 생각의 파도가 끝날 무렵, 눈앞에 파란색 무리, 주황색 무리 등이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2.

-누군가는 군사문화라 놀릴 지 모르나-

어른들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자 어린이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보호'를 위한 쓸만한 방법 중 하나는 의복의 무언가를 통일시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선택의 자유라는 권리와 보호받을 권리 사이의 충돌은

- 집단 생활 속에서 완전 만족스럽진 않겠지만-

바깥놀이의 경중에 따라, 미세한 연령별 관찰을 통해,

'어느 정도의 연령대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바깥놀이 시 어느 정도의 개인 선택이나 보호가 필요한 지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

 

한편, 선택권을 부여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묻는 건 생각외로 정확하지 못한 방법일 수 있다.

 

일단 사람에겐 색이란 게 구분되지 않는 사자눈과 같은 시기도 있다.

원래 색이란 건 태양빛의 얄팍한 장난이지 않는가?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색은 중요하다. 색만큼 감성과 생활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도 드물다.

그러나 태어나 얼마 안된 사람들에게 색은 어떤 의미를 가질 지 어른들이 알 수 없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또 한가지, 일단 '말'이라는 건 어른들에게나 익숙한 방식이지, 아이들에겐 아직도 상당히 낯선 방식일 수 있다.

게다가 혹여 한 아이가 언어적으로 어떤 색을 선택했더라도

어른이 1초라도 뜸을 들이거나 목소리톤이 바뀌거나 얼굴의 미소가 슬며시 옅어지면

표정 읽기에 능한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과감히 철회할 지도 모른다.

 

 

순수해지길 원하는 어른일수록 아이의 氣運을 품길 간절히 소망하지만

기운이 좋다고 세상 살기 편한 건 아니지... 아니겠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5/18 08:31 2007/05/18 08:31
TAG ,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jineeya/trackback/484
  1. 요한 2007/05/18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는 언제 갈지 모르는 보라매공원, 4월에도 정말 아이들 많더군요.
    한해지나면 입을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단체복들, 분홍색 티셔츠는 그나마... 정장스타일로 맞춰입은 유치원생들...그 돈들을 뭐하러...
    (포스트주제와 동떨어진 덧글ㅡ.ㅡ;;)

  2. 쭌모 2007/05/18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쭌도 어느날 빨간반팔티를 하나 가져왔더군. 소풍용으로 제작한 브렌따노라는 결코 헐값이 아닌 티셔츠였는데..그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돈내라는 소리가 없더구먼. 임원엄마들이 오만원씩내서 만들었다는거시야. 물론 꽁짜로 받은 나야 좋았지만 참참 여러가지 생각이 나더구먼. 그나저나 소풍갈때 옷 맞춰 입는거는 유행이야? 아님 교육부지침인가?

  3. jineeya 2007/05/18 1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한/오, 진짜 정장스탈 교복은 최악이예여 (-.-)P
    쭌모/그렇게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교육부라면 그런 지침 내릴 수 있을지도.^^ 임원 엄마들의 오만원이라.. 이 고리는 당췌 어디서부터 어떻게 끊어야 하는 건지 몰겠어여.
    쭌은 더 컸겠는걸요. 궁금해라~~

  4. 젊은바다 2007/05/21 1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표정 읽기에 능한 아이...' 아, 그래서 ... 그래서 우리 아이가 내 얼굴을 그렇게 살피는 거군요... 10년 아빠가 이런걸 몰랐다니...

  5. jineeya 2007/05/23 1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젊은바다/10년밖에 안걸린 걸 수도..ㅋㅋ 다들 별 생각없이 지나치거나 알아도 의식하고나면 어찌해야 할 지 몰라 시선을 피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간혹 얼굴 똑바로 쳐다보는 아이들이 부러울 때도 있어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람들 얼굴 제대로 응시 못하면서 '왜?'라고 생각할 때가 많거든여.
    아이들은 눈 맞추고 얼굴 살피고, 얘기를 듣게 하려고 고사리같은 작은 손으로 어른의 고개를 자신 얼굴과 맞추잖아요?
    아~ 확실히 부러워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