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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학보사 인터뷰 (99년)

99년 동국대 학보사 인터뷰

 

1. 민중가요의 음악적 흐름의 변화

 

70년대는 주로 포크였다고 하지만 실제로 민중가요를 생성시키고 수용한 층은 지식인과 학생들로서 포크풍과 고급음악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찬송가나 가곡풍이었죠. 느린 장조 행진곡 풍도 사실은 찬송가와 같은 화성구조를 취했었구요. 포크풍 역시 번역곡이나 미국식의 음악형식을 가져다 쓴 것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70년대 민중가요는 민중가요로 태어났다기 보다는 기존에 있었던 대중가요(김민기의 노래도 처음엔 대중가요로 음반화 되었던 것을 음반이 판매금지되면서 학생운동권에 수용되기 시작했습니다.)와 찬송가들을 수용자들 즉 학생운동권이 재해석하여 민중가요화 했지요. 그러다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단조의 행진곡(전형적인 행진곡의 시작)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84년 학내 자율화 조치 이후에 학내 대중공간이 열리면서 노래패들이 많이 생겨나고 전문적으로 노래운동을 하는 새벽(민중문화운동협의회 소속)이라는 단체가 결성되면서 의식적인 창작활동도 이루어집니다. 이 때의 노래들도 주로 70년대 전통을 이어받는 가곡풍(스탠다드)들이 많았으며, 민요운동도 시작되어 민요풍의 노래도 약간 불려지곤 했습니다. 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되면서 지식인 중심이 아닌 기층 민중들의 정서를 노래에 담게 됩니다. 즉, 발라드 풍, 뽕짝 풍, 군가 풍의 노래들이 그것입니다. 노래운동의 중심 역시 노동자로 옮겨가게 되고요.


이러한 흐름들이 90년대 중반을 넘어오면서 대중운동이 상대적으로 침체되고, 또 그러면서 노동자라는 범주도 제조업 중심에서 사무직 등으로 확장되고, 그들의 일상공간으로의 접근이 시작되면서 다양한 음악적 형식을 차용하게 되는데 그 중 두드러진 양식이 록풍입니다. 민중가요는 그 시대 운동을 주도하던 주요 수용자층의 정서에 따라 변화하면서 수용자들의 선택하고, 재해석하여 새로운 정서를 담아내 왔습니다. 그에 따라 노래의 내용과 형식이 변화한 것입니다.


민중가요는 어떤 장르여야 하는가 하는 논쟁은 이미 오래 전에 진행되어 정돈된 문제입니다.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과 어떻게 교감을 하고, 수용자들이 어떤 시,공간에서 어떤 질감으로 만들어내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현재의 음악적 경향과 그 과제를 보면 민중가요라는 독특한 어법을 발전시켜 자신들만의 색깔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대중과의 교감속에서 말입니다.

 

2. 민중가요라는 개념

 

그래서 민중가요는 수용자들의 자발적 선택과 재해석, 그리고 재창조해온 영역입니다. 민중가요라는 단어보다는 그러한 개념으로써 여전히 필요하고 아니 어쩌면 요즘같은 시기에는 주체적인 문화향유를 위해 확대 발전시켜야 하는 영역이라고 봅니다,
현시기의 민중가요나 민중문화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가고 있고, 이전의 개념에 더 근접하고 여전히 진보적인 영역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 노동가요, 노동문화일 거라고 보여지는 군요. 대중매체를 통한 대중문화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문화운동은 아닐테니까요.
오히려 독자적인 문화의 생산, 유통, 수용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3. 민중가요의 가사의 변화

 

민중가요는 그 시기 대중운동과 항상 함께 해 왔기 때문에 가사 역시 대중적 투쟁의 내용들을 주로 형상화 하고 있었습니다. 90년대 초반까지 예술작품에서 구현하고자 한 것이 투쟁하는 전형적인 인간상이었다면 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는 생활하는 노동자상을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재도 주제도 다양한 삶을 담기 위해 생활영역으로 넓혀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불려지는 공간도 집회공간으로부터 일상공간에서 향유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나 소재와 주제가 넓혀진 점 외에는 구체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가사들이 많았다고 봅니다. 그건 생각보다 집회나 투쟁의 현장에서 보여지는 인간상에 비해 일상의 영역은 쉽게 읽혀지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집회현장처럼 접하고, 수용하게 하는 구조가 없기 때문이지요. 창작단위들은 그런 고민으로부터 시작하여 콘서트라든지, 거리공연이라든지 음반이라든지하는 다양한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어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에 비해 대중가요는 문민정부를 거쳐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들을 일정하게 풀어주고, 심의 철폐 및 다양한 대중적 요구에 맞추어 소재도 대담해지고, 구체적인 가사들도 많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현상들을 보면서 마치 대중가요와 민중가요의 경계가 무너진 것처럼 생각하기도 했었을 겁니다. 그러나 문화는 어떤 구조에 놓여 있는가가 가사말이 어떠하고 어떤 장르를 선택하느냐 하는 것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규정합니다.
이러한 구조들이 제대로 만들어질 때만이 창작자들도 노동자와 민중들의 구체적인 삶을 접하고 그것을 창작으로 이끌어 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창작자들도 보다 인간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 보고 생활의 느낌이 살아있는 구체적인 가사말과 곡을 쓰기 위한 노력들을 더 기울여야 겠지요.

 

4. 공동체적 가치관의 복원

 

문화는 사실 사회를 통합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일정한 동질감을 갖는 것, 그리고 그것의 표현으로서의 문화가 형성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실제 신자유주의의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삶은 다 질이 높아진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고, 이전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유가 보장된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체보다는 개인의 자유가 더 보장되어야 풀뿌리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는 것이라고도 생각되고요. 이런 이야기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변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인간적인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 의해 더 탄압받고, 비인간화, 개별화 되어가는 겁니다.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전략중에 하나이지요. 그러나 예술창작은 개인적인 작업이 아닙니다. 그 사회를 살아가면서 자기 대중들의 삶의 모습들을 작품에 담아내는 것이지요. 그러니 예술은 사회적일 수 밖엔 없습니다.


그리고 문화 역시 사적 영역으로 개인들이 알아서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좋은 작품들을 누구나 접할 수 있고, 스스로 선택하여 재창조하고, 주체적으로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문화라는 영역은 공공의 영역이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공동체적 가치관을 복원시키고, 더불어 사는 인간다운 삶을 구현하는 것이 문화와 예술의 중요한 기능이기도 하고요.
노래가사에도 그것은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에는 추상적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오히려 현상이 그렇다고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바램과 지향이 함께 들어 있는 노래여야 겠지요?

 

5. 상업적 대중가요와의 관계

 

앞서 말한 것처럼 내용이라는 것의 본질적인 것은 이념과 지향일 겁니다. 그런 면에서는 분명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같은 음악형식에 비슷한 가사말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오히려 이런 면에서는 수용자들의 주체적 문화향유 훈련과 실천들이 더 중요할 겁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건강한 문화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토대를 형성시키는 것이 수용자들이 해야 할 역할 일 것입니다.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것은 운동이 아닙니다. 대응할 수 있는 힘으로서 토대를 구축하고 전선을 형성하는 운동이어야 할 것입니다.


민중가요이기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자본에 의해 지켜지는 구조속에 대중문화가 놓여 있다면 그와 다른 우리의 구조는 창작자와 수용자들이 함께 지켜가야 하는 것입니다. 음반을 파는 행위, 공연 티켓을 파는 행위가 상업적이라고 해서 민중가요가 무료로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영역이기위해 먼저 토대를 만들 방안을 우리가 마련해야 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6. 노래운동 단체들의 역할

 

창작단위들은, 아니 문화운동 진영 대부분이 예술 작품을 어떻게 만들것인가를 중심으로 한 문화운동을 해왔습니다. 노래에 어떻게 노동자의 삶을 반영할 것인가 하는 고민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문화운동을 해야합니다. 인간의 의식을 바꾸고, 삶을 바꾸고, 생활을 재구성할 수 있는 문화운동의 관점으로 노래운동을 바라보고, 실천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구조의 문제를 포함해서 대중들과의 접점을 제대로 형성하고 일정한 힘으로 작용하도록 하는 방안입니다.


요즘 창작물이 잘 안나와 고민이 많지만 단지 좋은 창작물을 만드는 것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창작이 되어질 수 있는 Feedback 구조를 어떻게 설정해 갈것인가를 고민해야 그 속에서 더욱 삶과 밀착된 좋은 창작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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