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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노동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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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예술지에 실었던 글입니다.


[신자유주의와 노동자문화]

                                                                            이은진

“…조중동의 입이 곧 정권의 이데올로기가 되는 체제에서 민주주의를 갈망하셨습니까? 효리에게 알몸을 보여 달라는 스포츠신문들을 돈 내고 사보면서 세상이 바뀌길 바라셨습니까? 삼성해복투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도 라이온스를 응원하는 노동자가 있는 한, 울산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줄줄이 개죽음을 당해도 현대 호랑이 축구단이 이기는 날 축배를 드는 노동자가 있는 한 우리는 저들의 손바닥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조남호만 나쁜 놈입니까? 김문기만 죽일 놈입니까? 착한 자본가는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는 단 하루도 살아보지 않은 자만이, 남의 눈에서 쏟아지는 피눈물을 달게 마시는 자만이 자본가가 될 수 있고, 그게 자본주의입니다…”
2003년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낭독된 민주노총 부산본부의 김진숙 지도위원 추도사 중 일부이다. 당시 이 글을 필자가 만난 몇몇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읽어주고 동의하느냐고 물어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들은 뭐라 똑 부러지게 답변하지 않았고, 필자가 받은 인상으로 정리하자면 “그렇긴 하지만… 그런데 어쩌라고…”였다. 노동자에게 문화는 아직 먹고사는 일이 해결되고 나서야 찾는 여가 혹은 놀이정도거나 집회 혹은 투쟁시기에나 필요하고 또 써먹을 수 있는 매체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노동자의 현실은 그만큼 일하고 잠자고 밥 먹고 사는 것 말고는 도대체 다른 것을 돌아 볼 수도 없고 다른 욕구를 가져볼 수도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사회의 정치와 경제에 대해서는 어떤 지점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보다 민주적인 형식으로 운영되어 누구나 잘 사는 사회가 되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단지 예술행위로만 사고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우리의 일상 삶의 형태와 의식구조 전반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하여 생각한다면, 우리들에게 자본의 문화는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보다 중요한 의미로 노동자를 둘러싼 문화환경과 노조운동과 노동자문화운동 내부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노동자 문화운동 내부의 문제
과거 투쟁의 문화를 중심으로 이야기해왔던 노동자 문화는 이제 일상 삶에서 부딪히는 자본의 신자유주의 전선에 맞닿아 있다. 이미 우리의 의식과 일상 삶, 그리고 가치관과 무의식적인 행동 안에 자본의 이데올로기는 침투해 있고, 그래서 마치 주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선택한 것 같지만 그것은 대부분이 자본이 준 범주 안에서 그들의 시나리오에 맞춰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1987~88년을 기점으로 급속도로 확장된 노동자 문화는 투쟁이 고양되는 시기의 특성상 문선적인 부분이 강조되었고, 문화에 대한 도구주의적 인식이 다시 지지를 받으면서 노동자 문화 활동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왔다. 그러나 기업문화전략이 도입되고 가시화되면서 이러한 도구주의적 관점으로는 기업문화적 전략에 전혀 대응할 수 없음이 누차 강조되어 왔지만 장기적인 정책부재와 조건의 문제, 그리고 항상 시급한 사안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 노조운동의 현실 등을 이유로 일부 노조를 제외하고는 거의 고민을 담아내지 못하였다.
또한 문화운동 내부의 논의에서도 90년대 이후 투쟁이 상대적으로 침체되면서 일상 공간 속에서 노동자 대중과의 접점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들이 전개되는 가운데 노동자의 대중성 문제가 화두로 제기되고, 문화산업과 대중문화에 대한 연구들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용자 주체의 수용태도와 그들의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한 추측들이 장르정책에 제시되고 반영되어 왔다.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선언한 정부 문화정책은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문화산업의 육성을 강조하면서 스펙터클한 소비사회 이미지를 보다 부각시키고 전 삶에 걸쳐 상품 소비를 통한 삶의 질 향상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도는 대규모 자본들이 더 높은 수익을 노리면서 주식과 화폐시장으로, 문화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흐름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확장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을 기회로 초과 이윤을 향유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자본의 논리가 대중들의 문화향유를 통제하면서 이미 검증된 대중 취향에 부합되는 상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어 낸다. 우선, 제작비 외에도 홍보에 거대자본을 투자하여 이미 그 상품이 대중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고 하는 이미지를 각인시켜 이에 편승하고자 하는 대중의 심리를 자극한다.
그리고 안정된 이윤을 창출하는 시스템으로 스타를 만들고, 이미 익숙해진 이미지를 계속 팔아먹기 위한 모방작품들이 많아진다. 또 빠른 시간 안에 자본을 회수하기 위해 상품의 라이프 사이클을 점점 빠르게 바꾸어 새로운 투자와 가치증식의 기회를 확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산업은 그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항상 정치권력의 통제 아래 놓여 있어 특정 성향의 문화상품들은 배제하거나 자기 검열적인 방송기피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현실임에도 대중문화, 혹은 문화를 기분 전환이나 오락으로서 향유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이런 문제들이 보이지 않기도 하고 알게 되더라도 굳이 기피해야할 영역은 아니다. 일상의 힘든 노동과 책임 속에서 몸과 마음이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상생활의 부담과 고된 노동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욕구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대리만족과 체념을 거쳐 순종적인 인간이 되어가도록 하고 있다.
게다가 매스미디어로 보여지는 문화산업만이 아니라 광고, 거리의 배치, 작업장 공간, 일상공간 모두를 포함하여 자본은 노동자의 밥상과 잠자리까지의 시간에도 깊이 파고들어 노동자의 머리를 좀먹고 노동자의 주머니를 털어내고 노동자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 각종 광고와 상업 매체를 통해 카드사용과 소비를 부추기며 우리 노동자들을 자본의 먹이로 생각하고 열심히 노동해서 받은 임금과 여가시간을 자본을 살찌우는 일에 쏟아 붓게 만든다.
노동자문화 운동은 그동안 집단성, 투쟁성으로 대표되는 노동예술의 수용을 통한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 그리고 노동자라는 동질성으로 문화적 포섭을 해왔다. 그것은 다른 어떤 누구도 대변해  주지 않았던 노동자의 이야기와 정서를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입을 통해 표현하도록 해왔고, 독자적인 유통 체계를 통해 나름대로의 토대를 형성해 왔다. 과거에는 기피하던 작업복을 입고 자랑스럽게 거리에 나올 수 있게 했고, 신문이나 방송의 도움없이 집회나 파업을 통해 수백만 노동자들이 같은 노래를 부르며 동질감을 느끼게도 했다. 금기의 영역들을 치고 들어가 거리와, 광장, 작업장을 파업을 통해 재배치함으로써 노동자의 해방공간으로 만들어냈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삼호중공업의 경우 파업시기 배를 타고 작업공간에 들어가 평소에는 금지되어 있던 낚시를 한다든가, 사무직 노동자들이 정장이나 유니폼이 아닌 사복을 입고 출근을 한다거나 어떤 공간은 노래패 연습공간으로, 어떤 공간은 놀이의 공간으로 재배치한다든가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동안 그 문화 속에서 위계가 생기고 획일화되어 또 다른 권력과 차별을 양산시키기도 했다. 자랑스럽게 입은 대기업 노조의 조끼가 영세사업장 미조직 노동자들을 위축되게 하여 어떤 지역의 경우 정규직은 노조 혹은 회사에서 지급한 작업복을 입고 공장 밖으로 나가면 1급 대우를 받고 안주까지 공짜로 나오는 반면, 같은 공장 비정규직의 경우는 작업복은 비슷해도 마크가 달라 작업복을 입고는 공장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회의 높은 연단도 언제부터인가 권위를 과시하게 되었고, 집회에 참가하는 개개인을 대상화시킨다. 광화문 촛불집회에서도 작년 여중생 추모집회 때는 굳이 연단이나 대형 엠프 시스템 없이도 자율적으로 진행하면서 각자가 준비를 하고 돌아가며 발표와 제안을 하거나 하며 채웠는데, 탄핵정국에서의 광화문 촛불 집회는 잘 준비된 연단과 멀티 비전, 음향 시설을 통해 참가자들을 통제하고 주체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내용들을 차단시키고 있었다. 또한 획일적인 문선활동으로 대부분의 집회는 비슷하게 느껴지고 지루해지면서 대중문화의 요소들을 향유하는 것으로 새로운 문화에 대한 욕구를 채워내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몇 가지 사례이다.
“현장에서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반말을 한다. 이런 대우를 받는 건 임금을 적게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임금이 같다면 아마 정규직들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 역시 2차 하청, 3차 하청 노동자들을 대할 때는 무시하는 게 사실이다. 우리보다 임금도 적게 받고 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2~3차 하청의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에게 반말을 하거나 성질을 부린 적이 많이 있다.”
“차별철폐를 위한 100일 행진의 마지막 종착지였던 울산에서 행진에 결합하기 위해 3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왔다. 비정규직 노조를 결성한 그들은 조끼를 맞춰 입고 깃발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제일 앞부터 세줄로 줄을 맞춰 앉는다. 양 옆에서는 조직의 간부인 듯한 자가 일어나서 노래가 나올 때마다 손을 위로 올려 박수를 치는 시늉을 하거나 팔을 흔들었고, 그러면 앉아있는 조합원들은 그들을 따라 움직인다. 흥겨운 노래가 나올 때도 줄을 맞춰 앉아 손동작만 열심이던 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몇몇 사람들이 마구 뛰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제야 노동자들은 일어섰고 노래에 맞추어 신나게 뛰며 머리를 흔들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의 젊은 남성들이 자기의 존재를 찾은 듯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흔들며 자유롭게 휘청대면서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이주노동자들이 계속 공동 투쟁을 하면서 초기에는 각기 제 나라의 문화와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기를 1년여, 요즘 이주노동자들은 투쟁가에 같이 부르며 노래에 맞춰 손을 들어 흔들고 있다.”
“메이데이 문화행동에서 노동문화 활동가 및 문화단체 성원들이 모여 독자 집회를 하고 행진에 결합을 했다. 행진을 하며 이들은 준비된 작은 트럭 위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노래에 맞추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이런저런 구호를 외치다 영등포 로터리에서 정리 집회를 할 때 한쪽 옆에서 따로 정리 집회를 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앉거나 서있었는데, 민주노총 간부가 와서 빈정거리듯이 이야기를 했다. 줄 좀 맞춰서 대오를 정리하고 있지… 이게 뭐냐… 난잡하게…”
위의 사례를 보고 어떻게 느끼느냐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 문화운동이 투쟁을 통해 쟁취하고 확고히 한 것일지라도 이미 형성된 기득권이나 방식에 안주하여 다시 일상 속에서 권력으로 존재하고 관성이 된다면 이것은 극복 과제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현장에서는 늘 원칙을 생각하는 뛰어난 활동가이고 주위 동지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가정으로 돌아가면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경우가 많고, 또 입으로는 늘 연대를 외치고 자신의 이해와 같을 때는 연대하지만 정작 자신의 이해와 직접 맞닿지 않을 때는 연대하지 않는 현실은 최근에 노조운동의 조건이 어려워지면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난 현상이 아니다. 자신의 가치관이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면 그것으로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나는 내 욕심보다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지만 남자아이니까 발레나 이런 것은 쫌… 나중에 먹고살기도 어렵고…그런 것만 아니라면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해 주겠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우리들이 좋아서가 아니라 현장에 같이 있는 형님들을 모시고 아가씨가 나오는 단란주점을 갈 때가 종종 있다. 형님들은 그런 데를 가고 싶어 하는데 그런 그들의 욕구를 무시하면 만나서 사업을 이야기하거나 하기 어렵다.” - 문화활동가 교육 중에서
“…제 자식이 ‘진보적인 엘리트’가 되길 바랄지언정 고등학교나 마친 노동자가 되길 바라는 좌파 인텔리를 본적이 있는가? 제 자식이 이른바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걸 꺼리거나 적어도 진지하게 부끄러워하는 좌파 인텔리를 본 적이 있는가? ‘적의 가치관’, 즉 ‘혁명의 대상과 같은 가치관’을 가진 상태에서 진행하는 모든 혁명 운동은 그저 ‘혁명 게임’일 뿐이다. 개인적으로도 존경해 마땅한 좌파 인텔리들 가운데 제 자식 문제에까지 연결되는 ‘다른 가치관’을 갖는 이는 거의 보지 못했다. 오늘 우리가 얼마나 천박한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단 한명도 보지 못한 건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김규항의 『야간비행』 중 「가치관」의 일부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문화욕구 창출
신자유주의의 분리와 차별을 통한 분할지배 정책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강조하면서 비정규직의 양산, 숙련위계, 성, 이민노동자 등으로 노동자들을 분리하고 배제할 뿐만 아니라 연령, 태도 등 다양한 차별, 분리를 복합적으로 동원하여 노동자들이 서로 연대하고 단결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 문화는 노동자들의 문화적 동질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탐색하고 강화하는 한편,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문화욕구 창출을 통해 노동자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할 중요한 책임이 있다. 노동자의 삶의 방식, 의식과 행동양식, 노동예술, 생활양식, 조직문화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노동자문화를 확장하고 노동과 생활 속에서 문예적 사업을 뛰어넘어 일상적인 문화 작업과 사업을 통해 의식발전과 조직력 강화, 삶의 질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그 중에서 특히 이미 50%를 넘어서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을 중심에 놓고 기존 노동자 문화의 장점으로 동질성을 획득하게 하면서 그들의 주체적 문화욕구를 계발하고 창출하여 새로운 노동자문화의 풍토와 토양을 만들어 가는 것은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되는 시점에 와있다. 비정규 노동자, 이주 노동자들의 작업 공간, 지역, 일상 시공간 속에서 일상의 문화를 만들고 노동자들을 단련시켜나가는 형식과 내용개발이 시급하다.

파리예술가들이 점거해 살고 있는 건물 외관
마지막으로 작년 초 노동문화 탐방을 위한 유럽 기행에서 느낀 점을 이야기 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파리의 예술가들이 점거해 살고 있는 건물은 시청에서 10여미터도 안되는 도심 한 복판에 있었다. 6층짜리 빌딩에는 14명이 숙식을 하고, 총 32명의 예술가들이 같이 운영을 하고 있었다. 외국인들도 같이 활동을 하는 세계적인 곳이며 각종 미술 관련 자료와 정보가 풍부한 공간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공간이 파리에만도 몇 십 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운동이 만들어진 배경은 매우 중요했다.
1981년부터 시작된 스콰팅(점거) 운동의 배경에는 60년대부터 국가가 문화예술의 영역을 공공영역화 하면서 지원, 육성을 하다가, 그 지원이 감소되면서 예술가들이 자체적으로 작업을 하거나 먹고 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또 프랑스 북동쪽 금속 산업지역에 독특한 노동자문화가 있었는데, 그런 노동자 밀집 지역이 정리해고와 공장 이전으로 해체되면서 노동자의 문화활동이 사라졌다고 했다.
1936년 인민전선이 주도한 엄청난 파업과 시위로 거의 국가가 뒤집어질 뻔한 사태가 벌어졌는데 국가와 자본은 체제전복을 피하기 위해 주 35시간 노동 및 복지 정책을 파격적으로 제시하면서 막았다고 한다. 그 이후 대부분 문화의 영역을 공공화하여 국가가 가져갔고, 노동자들의 투지가 저하되었는데, 이는 프랑스 노조운동의 활동이 저조해진 결과로 온 것이라고 한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기에 아주 깊이 있게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런던에서도, 베를린에서도 마찬가지로 노동문화의 흔적을 찾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그 원인들을 찾아가면서 공통으로 느낀 점은, 노동자문화는 노동자가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고, 치열한 투쟁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 단련되는 것이지, 절대로 국가가 대신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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