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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상 콘서트 소식

서기상... 내가 그를 안건 90년 봄 민예총 주최로 열린 "자, 우리 손을 잡자" 공연의 뒷풀이였다.

그 당시 나는 삶의 노래 예울림 가수로 공연무대에 서고, 지방 순회공연을 같이 다니곤 했다.

물론 단체 내에서 기획을 담당했기 때문에 종종 노래를 하면서도 공연기획단 활동도 했다.

출연진도 많고, 기획단도 많고, 관계자들도 많은 공연인지라 뒷풀이를 할라지면 5,60명정도가 모이고,

지방 순회를 하게 되면 여관을 거의 통채로 빌려 방방마다 흩어져 술자리가 벌어져

이방저방 넘나들며 이사람, 저사람과 격없이 술을 먹곤 했다.

고등학교 졸업한 지 2년 정도 된 22살의 앳되보이는 친구가 뒷풀이자리에서 같이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가 참으로 우렁차고 고음도 잘 올라가길래 뭐 하는 친구인지 궁금했다.

그냥 아는 형 부탁으로 공연기획을 도와준 거란다.

특별히 자신의 진로나 운동에 대해 입장이 서있지는 않았지만 

성격도 싹싹하고 누나, 형, 하며 잘도 좆아 다녔기에 귀여운 후배로 생각되었다.

그러던 그 해 가을 쯤인가... 기상이는 예울림 사무실에 찾아와 가수로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때 대표였던  안종호 선배가 그럼 다음날 부터 나오라고 했다.

(그 땐 뭐 오디션이니 하는 절차가 불분명했고, 별 의미가 없었다.)

다음날... 전날 공연이 늦게 끝나 다들 뒷풀이까지 하고는 점심 넘어 출근을 했더니

기상이가 혼자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리 일찍 나왔냐고 했더니 종호형이 앞으로 신입회원이니 10시에 출근하라 했단다.

헐~~~

이렇게 기상이는 매우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운동을 조직에서 체계적으로 하거나 학습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가 지닌 타고난 가창력으로 사람들에게 인식이 되기 시작했고,

또 그의 타고난과 성실함은 현장을 뛰며 많은 것을 몸으로 체득하게 하면서 

자신의 취약점을 스스로 극복하게 해주었다.

꽃다지로 통합을 하고 남자가수들이 모두 생계문제로 그만두었을 때

여자가수 5명과 같이 남성 혼자로 공연을 다니면서 웬만한 노래는 다 소화를 해냈다.

물론 변변한 솔로곡 하나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조직에서 시키면

무엇이든 일순위로 놓고 성실하게 하는 기상이는 어찌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대견하기도 한 친구였다.

그렇게 학교 때 노래운동을 한것도, 민중가요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들어와

산전수전 다겪은 그는 그 당시에 활동했던 많은 가수들이 떠나갔음에도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꽃다지 출신의 솔로로는 공식적으로 첫 발을 내딛은 탓에 우여곡절도 많았다.

솔로로 활동을 하면서 참 많은 어려움을 겪고, 또 많이 외로울테지만

그래도 알아서 자기 처신도 하고 주변인들을 스스로 조직해 밴드도 꾸려나가고 있다.

툭하면 전화해서 별것아닌 것들을 물어본다.

쉬운 문제라도 모르는 것은 모른다하고 물어볼 줄 아는 친구다.

이번 공연은 아마도 기상이가 하는 솔로 공연으로 세번째가 되는 것 같다.

늘 이 시대 아픔을 노래로 표현하며 노동현장과 일상의 곳곳에서 함께 하는 활동이 계속되길...

축하하며... 많은 이들이 함께 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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