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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결, 깔끔한 생활?

이상하게 나는 물을 보면 좀 맛이 가는 것 같다.

술취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을때도 나는 물을 찾아 간다고 했다. (본 사람들 이야기에 의하면)

목욕을 할때도 계속 물을 뿌려대고 있다보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고 샤워꼭지를 쥐고 있는 걸 발견한다. 또 설거지를 하다가도 그릇하나를 들고 계속 물을 흘려보내고 있을 때도 있다. 뭐 정신차리고 한다 해도 난 살림을 빨리 잘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예전에 MT를 가도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후배들이나 동기들이 그릇 껍질 벗겨지겠다고 할 정도로 뽀득뽀득 소리나게 닦곤 했다.

그런 내 모습에 대해서 나는 두가지로 진단을 했었다. 하나는 나의 결벽증 때문이고 또 하나는 엄마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내 결벽증에 대해서는 왜 그런게 생격는지는 원인을 알듯도 하지만 확신은 없으니...

내 결벽증은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부분부분 나타난다. 평소엔 청소 안하고 먼지가 데굴데굴(먼지는 왜 쌓이면서 지들끼리 동그랗게 뭉칠까? 그것도 한 번 연구해 볼일...) 굴러다녀도 후후 불어놓고 살다가 어떤 때는 갑자기 뽀득뽀득 소리나게 청소를 해대는데 거의 자폐라 할 정도로(김해자 선배는 가끔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자폐라고 했다) 심하게 집착을 하고, 보이는대로 머리카락을 주워댄다. 말하면서도 움직일때마다 떨어진 머리카락과 먼지를 손으로 휴지로 쓸어 계속 치운다. 중고등학교 때엔 화장실 갈 때 꼭 휴지를 넉넉히 가지고 가서 화장실 문을 열때 손잡이를 휴지로 감싸쥐고는 했다.

우리 엄마의 영향력에 대한 부분은 약간은 반발심에서 나온 건데...

엄마는 충청도 시골에서 자랐다. 꼭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설거지를 할 때 세제를 거의 쓰지 않고 대충 닦는다. (가끔은 못쓰게 된 밀가루를 모았다가 그걸로 닦는다.) 그러다 보니 그릇 아래쪽 바닥면엔 오래된 때가 찌들어있다. 나는 어릴 때 그게 참 싫었다.

화장실 갈 때는 불을 켜지 않는다. 그리곤 살짝 문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에 가끔씩 벌컥 문을 열고 엄마가 앉아 있는 걸 보면 벌컥 화를 냈다. 음식물이나 재료 사다 놓은 것이 좀 상해도 거의 버리지 않는다. 어떻게든 잘 손질해서 먹곤한다. 또 오래동안 먹지 않는 음식들은 어느날 잡탕찌게가 되어 상에 올라온다. 그럴 때 우리들의 반응은 짜증과 빈정이었다.

어린 시절 그런 게 왜 그리 궁상맞아 보이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는지... 나는 반대급부적으로 뽀득뽀득 닦는 습관이 생겼고, 나중에 결혼해서 살림을 해도 반짝반짝 광내면서 살거라고 결심했었다.


결혼하고 11년을 같이 산 우리 시어머니는 내가 원했던 ‘아주 깔끔한 살림살이’를 유지하려 애쓰시는 분이다. 그런데 같이 살다보니 어려운 살림에 조금만 시들거나 지저분하면 식재료나 물건을 가차없이 버리는 모습에 또 거부감을 갖게 되었다. 하루 종일 쓸고 닦고, 일주일에 서너번씩 빨래를 돌리고 지저분한 거는 딱 질색이신 우리 어머니를 보면서는 어쩌면 저렇게 어려운 살림에도 저렇게 사실까... 하는 당혹감이었다.

그러다 보니 뭐가 더 좋은 건지 헷갈리곤 했다. 어떤 때는 화가 나다가 또 우리 친정엄마를 생각하면 나도 그런 생활을 원하는 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요즘 나는 웬만하면 세제를 쓰지 않는다. 아주 기름기가 많은 그릇을 닦을 때도 친환경 세제를 조금만 쓰려고 노력한다. 또 집에서 낮에 화장실을 갈 때는 불을 켜지 않고 들어간다. 식재료도 아주 조금만 사서 절대 남기거나 버리지 않도록 한다. 절대로 아무리 싸도 집에 있는 물건은 사지 않는다. 즉, 쟁여놓지 않는다. 뭐 어찌보면 버는 게 별로 없으니 쓰는 것도 적게 쓰는 건 당연한 일인 것도 같고, 집도 좁으니 뭘 쌓아놓을 공간도 없는 게 당연한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청결은 이데올로기다. TV 상품광고에는 끊임없이 청결한 삶이 더 가치있고 좋은 생활이라고 강조한다. 비데, 세탁기, 냉장고, 아파트, 청소기... 온갖 가전제품과 생활용품,그리고 집까지도 청결 이데올로기로 강요한다. 지저분한 삶은 비인간적이고, 덜 문명적이고, 또 가난을 상징한다.

물론 어느 정도 청결하여 위생적인 생활은 인간의 건강을 지켜주기도 하니까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놈의 이데올로기는 상품 판매를 강요한다. 그런 상품을 갖지 못하고 또 청결하지 못한 삶은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것처럼 조장한다.

이왕이면 좋은 향기가 나고 깔끔하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거겠지만, 너무 깔끔한 거, 향기로운 거 좋아하지 마시라는 말씀. 누구에게나 자기와 다른 냄새가 나고, 외국인들도 다 냄새가 달라 우리가 생각할 땐 비위가 상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고, 지저분해 보이는 자기 문화도 문화이니. 자칫하면 타인을 배타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한 가지로 모든 것을 다 재단하거나 싸잡아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서 나는 되도록 나름대로 나 자신에게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고 나니 엄마의 그간의 모습이 이해도 되고 또 삶의 지혜라는 생각도 든다.  어쩔 수 없이 난 엄마의 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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