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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염색

어제 한 1년만에 머리 염색을 했다.

 

1년 전에도 열심히 염색을 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머리깎을 때마다 한 번씩 건너 띄어서 집에서 스스로 또는 아내가 대충(?) 검정물을 들였다.

 

대충 염색을 하면 금새 탈색하여 검정과 노랑이 섞이게 되고, 이걸 또 특별한 염색기법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민주노동당 총진군대회(04. 12. 05)에서/ 장미를 들고 있는 백발이 나다. - 산오리 찍음



염색을 하지 않기로 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알레르기성 피부라 염색을 하면 머리가 헐기 때문이다. 부작용이 없다는 염색약을 아무리 가볍게 사용해도 일주일 정도는 머리가 가렵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적극 권했다. 자연상태로 두자고. 11살 연하인 아내는 나에게 적극 백발을 권한다. 이유가 뭘까?

 

첩실을 둔 사내가 대머리가 되었다는 옛 이야기가 생각난다. 조강지처는 남편이 밖에 나가 바람피우지 못하도록 늙어보이게 검은머리를 뽑고, 첩실은 주변에 자기 남자가 젊게 보이게 검은머리를 뽑다보니 그리 되었다나...

 

사실 웃자고 하는 얘기다. 난 백발을 권하는 아내에게서 힘(?)을 얻어 아예 염색을 포기했다.

 

    지난 가을 방태산에서

 

염색을 하고 다닐 때 오해를 받기도 했다. 염색을 하면 나이를 많이 어리게 본다. 그러다보니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의외로 나이 들어 보이는 간부들에게 말을 놓으면 '저런 건방진 X가 있나'하고 조합원들은 내심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더러는 아니 이렇게 유능(?)한 사람을 왜 '차장'으로 두냐며 위원장 등에게 '부장'으로 승진(?)시켜 줄 것을 요구하는 헤프닝도 있었다. 우리 노동조합에서 사무차장이 국장, 실장 위의 직제인데도 말이다.

 

염색을 하고 다니니 적어도 이런 오해는 하지 않았다. 얼굴은 동안인데 머리는 희고... '년배가 어찌 돼세요?' 사람들은 묻는다. ㅎㅎ

 

사실 염색을 하지 않으니 편한 점이 많다. 귀찮은 염색을 하지 않아도 되고, 웃어야 될지 모르지만,  권위적인 우리 사회에서 우선은 무시당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도 자연스럽고 보기 좋다는 사람들과 염색 하라는 사람들이 약 8 : 2 정도로 갈려 흰머리를 지지했다.

 

그런데도 어제 염색을 한 까닭은

 

아이 때문이었다.

 

우리 아이(성연)는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요즘들어 머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앞 머리 양쪽으로 길게 길러 노란색으로 염색하고 싶다고 한다. 뭔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시는 할머니가 함께 가면 당연히 영구머리가 되고, 엄마와 함께 가면 조금 낫지만 그래도 지가 하고싶은대로 못하니까 나와 함께 머리를 깎겠다고 고집한다.

 

어제 함께 미장원 가서 내가 머리를 깎고 있을 때 옆으로 와서

'아빠 염색도 할 꺼야?'

'아니.'

'에이~ 염색 할 꺼면서.'

 

이상하다. 이 녀석이 왜 그러지.

 

집에 오는 길에 물었다.

'너 아빠 염색하는 게 좋겠어?'

'아니. 아빠 맘대로 해.'

'에이~ 아닌 것 같은 데. 아빠 염색하는 게 좋겠어서 그러는 거지?'

'염색하면 좋지. 노란색을 했으면 좋겠다.'

'왜? 누가 뭐라고 해?'

'아니. 그건 아닌데, 할아버지라는 소리 들으면 안 좋잖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일요일 몸이 아파 누워 있는데, 아이 친구녀석들이 문을 열고는 머리만 보고 '너희 할아버지니?'하고 물었던게 마음에 있었나보다.

 

'친구들이 뭐라고 그래?'

'응. 할아버지냐고 했거든. 그때 속으로는 화가 났지.'

 

그래. 염색하자. 뭐 대단한 거라고.

요즈음 들어 아이가 '내가 몇 살 되면 아빠가 할아버지가 돼?'하고 자주 묻곤 했던 게 기억났다. 이 녀석은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아빠 흰머리가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아내가 염색을 하고 있는 동안 아이는 빙글빙글 돌면서 '어, 아빠 머리 벌써 까매졌다~' 하며 좋아라 한다.

머리 염색이 끝나고 '어때?' 물으니 '좋아.' 하고 답한다. '다음에는 노란색으로 염색해~'

정말 노란색으로 염색할까? 뭐, 못할 건 없겠지만 오바는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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