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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1.

 

소비에트가 붕괴되고 나서도

혁명 기념일이 되면 비록 정부의 공식 기념행사는 아니어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는 훈장을 주렁주렁 단 노병들이 혁명을 기념하며 행진을 하였다.

 

작은 텔리비전에 비친 그네들은 그러나 늙고 추레했으며,

주렁주렁 매달린 훈장은 '자랑스러움' 보다는 '안스러움'의 표식처럼 보였다.

 

그들의 행진을 보면서

'언젠가 내가 저 행렬에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상상을 했었다.

더 이상 다가올 희망은 없고, 단지 기념할 추억만 있는 슬픈 노년을...

 

 

2.

 

노동자대회 전야제에 다녀왔다.

정확히 말한다면 전야제 장소에 있는 주점에 다녀왔다.

 

노조를 떠나고 나서 나는

집회에 참석할 '용기'도 '인내'도 함께 잃어버렸다.

그런 나는 될 수 있으면 집회에 참석하지 않는다.

다만 주변을 맴돌 뿐이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주변인으로 규정하고,

조그마한 움직임이 주는 작은 반향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전야제에 가서도 집회보다는 주점에서 옛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안부를 나누는 것으로 만족했다.

 

 

3.

 

될 수 있음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도 무슨 미련이 있었는지,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과 함께 잤다.

 

아침을 먹고, 일행들은 청계천 전태일열사 동상에 가 참배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일행 중 몇몇과 독립문에서 경교장을 거쳐 광화문, 청계광장을 지나 열사가 계신 곳으로 갔다.

 

청계천은 전날 온 비를 핑계로 굳게 길이 닫혀 있었다.

난 꼭 천변으로 걷고자 한 건 아니었다.

다만 지방에서 온 이들은 말은 안 해도 천변으로 걷고 싶지 않을까 해서 조금 안타까웠다.

 

뚝 윗길도 나름 괜찮았다.

비는 전날 밤처럼 심하지는 않아도 꾸준하게 내렸다.

작은 빗방울에 키작은 이팝나무 노랑 단풍이 하나 둘 떨어졌다.

바닥에는 물에 불어 빛나는 노랑 단풍잎이 참 예뻤다.

 

뚝 담장 위로는 여러 식물들 사이로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심어놓은 것이리라.

어쩌면 흔할 수 있고, 그만큼 심었다고 치켜줄 이 없으련만,

이곳에 이런 꽃들을 심은 이가 있다니, 그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태일열사 동상/ 그는 여전히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4.

 

전태일열사 동상에도 처음 갔다.

동상에는 일본 사람들이 와 있었다.

그들은 전진(前進)이라는 제호가 붙은 그들의 기관지를 우리 일행에게 주었다.

오랬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그곳에 머무르니 그래도 사람들이 쉬임없이 왔다.

동상 앞에서 묵념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지금 세상을 보면서 옛날 가두투쟁 할 때가 생각났다.

집회를 하다 전경들에게 밀리면 뒤돌아 보지 말고 뛰어야 했다.

설령 우리의 숫자가 많아도 모두가 함께 멈춰 서서 반격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으니,

나 혼자는 설 수 없었다.

그러니 다음 집결지까지 뛰어야 했다.

 

지금 우리들은 아파트니 교육이니 취업이니 등등으로 앞만 보고 뛰어야 한다.

혼자서 '아니오'라고 말했다간 혼자만 낙오될 것 같다.

비록 이런 삶에, 이런 사회에 회의를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집회에서는 다음 집결지가 있었지만,

지금 우리들에게는 다음 집결지가 어디인가??

 

...

 

 

5.

 

만주벌판을 넘어 시베리아를 달리던 원대한 꿈을 꾸던 마지막 세대였던 우리,

어쩜 우리는 꿈을 잃은 첫 세대가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볼품 없이 훝날리는 꿈들이 되었나...

그래도 언젠가 단단히 뭉쳐 굳건한 대지가 될 날이 있겠지...

 

...

 

나는 집회에 참석할 자신이 없어 노동자대회로 향하는 일행을 뒤로 하고 홀로 집으로 왔다.

 

여의도에 모였던 이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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