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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7/10
    사람을 믿는다는 건(6)
    풀소리
  2. 2008/07/04
    기흥저수지(7)
    풀소리
  3. 2008/07/04
    좀 조용히 살자(4)
    풀소리

사람을 믿는다는 건

1.

사람을 믿는다는 건 어디까지 가능할까.

 

노장사상의 창시자인 장자는

정말 효자였다고 한다.

(설마 기준이 뭐냐고 따지시는 분은 없겠지.)

장자의 엄마도 참으로 자애로우신 분이였다고 하고...

 

어느날 장자가 반역을 하여 위기에 몰렸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 하나가 헐레벌떡 장자네 집으로 와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얼른 피하셔야 합니다. 장자가 반역을 했답니다.'

 

아들이 결코 반역을 저지를 사람이 아님을 확신한 엄마도

세번째 친구가 와 똑같은 말을 했을 때 짐을 싸서 몸을 피했다고 한다.

 

사람을 믿는다는 건 무엇일까.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2.

다시 주변으로 돌아오면

 

친한 친구, 또는 선후배, 또는 심지어 연인이라도

맘먹고 의절하려고 한다면,

난 5분의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

 

5분의 시간이 지나면

죽어도 다시는 보고싶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만들 수 있는 관계

우리의 보통 관계라는 게, 믿음이라는 게

그정도 아닐까.

 

마치 살얼음처럼 깨지기 쉬운 관계 말이다.

 

 

3.

그럼에도 나도, 그리고 또 많은 이들도

사람의 관계에 집착한다.

믿음에 집착하고...

 

살얼음 같은 믿음의 토대 위에

우정이든, 사랑이든 관계의 집을 짓고 또 짓는다.

 

그 집이 근사하면 할수록

욕심을 내고, 또 내고...

끝모를 곳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모든 게 무너지면

일순 상심하고, 절망한다.

상심과 절망의 정도가

가졌던 관계의 크기, 무게, 깊이에 비례하기도 하고...

물론 관계의 크기와 깊이는 주관일 수밖에 없겠지만...

 

 

4.

관계의 무너짐을 겪고 또 겪으며,

상처에 또 상처가 덧대어지면서

사람의 관계에 경계를 긋는 이들이 많지만,

 

그렇게 변하는 이들이

어른스럽다고 인정받을 지 모르지만,

 

그러나 설령 또 상처 받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모든 희망이 있기 때문일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말고는 희망을 걸 곳이 없기 때문일까?

 

아님 그냥 천성 때문일까?

 

이유야 무엇이든 어떠랴.

미숙하다고 또는 비현실적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아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희망을 거는 이가 난 좋다.

 

 

5.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됐다면 아무리 늦었다 해도,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그건 분명 사랑인 거다.

- 이병률 [끌림]

 

'이해'에 '진정'이 아닌 게 또 어디 있으랴...

남에게 보이기 위한 '이해'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이병률의 표현 중에 '진정으로'라는 구절을 빼고싶다.

'진정으로'라는 표현이 자칫 쌍방향 확인의 결과인 듯 한 오해를 낳기 때문이다.

 

이미 확인된 것을, 이미 사랑으로 확인된 것을

또 다시 사랑이라고 얘기한다는 것은

'호박은 호박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족을 붙이자면

'이해'한다는 것만 해도,

그것이 아무리 주관적일지라도,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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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흥저수지

- prologue

제목을 무심코 '강동냉장'이라고 쓰려다가

수없이 댓글이 달렸던 지난 포스팅이 생각나 바로 바꿨다.

뭐하는 짓인지...

 

닭장차로 사방 바리케이트를 친 강동냉장 창고

 

 

1.

다시 지난 6월 30일 얘기다.

9시 30분 쯤 우리가 도착했을 땐

경찰 숫자는 말할 것도 없고, 취재진들 숫자도 우리보다 많은 것 같았다.

 

이래저래 회의를 거치고 하면서

오후 2시 조합원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결론을 내리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2시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연행은 예상되었지만 마음은 한가로웠다.

 

난 몸 상태도 별로인지라 해바라기를 할 겸

좋아하는 산책을 할 겸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 안 되는 우리 일행과 건너편 취재를 준비중인 많은 기자들이 대조적이다.

 

냉동창고 바로 옆에는 커다란 개울이 있었고

다리에서 내려다보니 커다란 부들이 꽃이 이제 막 진채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생각같아선 내려가보고도 싶었지만,

투쟁하러 와서 다들 보는 앞에서 뭐하는 짓인가 싶어 그만두었다.

 

다리를 천천히 건너며 느릿한 눈길로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맑지 않은 물길이지만, 그 물을 먹고 자라는 풀들은

왜 그리도 싱그럽게 자라는지...

 

 

2.

문득 고개를 들어 반대편을 보니

조그만 동산 사이로 높다란 탑들이 보였다.

뭔가 하고 보니 그건 탑이 아니라 수문이었다.

 

오호라. 수문이라.

그럼 저 위는 뭐가 있을까?

저수지?

 

기흥저수지 오르는 길목의 비포장길

 

짬을 보아 수문 쪽으로 길을 잡았다.

입구는 전경들이 가득 있었는데,

굳이 가려면 갈 수 있었지만 부딪치는 것 자체가 싫어서

슬며시 돌아 올라갔다.

 

 

3.

조금 오르니 비포장길이 나왔다.

그래. 이 근처 길들이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모두 이런 모습이었겠지...

 

비포장길 옆 야산에는 외래종인 자리공 등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기도 하지만,

여러종류의 잔대들이 듬성듬성 길 바로 옆까지 자라고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간섭이 없나보다.

 

좀 더 오르니 커다란 집이 나오고,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은 끊겼다.

 

관리사무소 옆 샛길

 

커다란 집은 저수지 관리사무소였다.

사무소 간판 덕에 드디어 저수지 이름을 알아냈다.

'기흥저수지'

 

사무소 옆으로 작은 샛길이 하나 나 있다.

그 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커다란 저수지가 나왔다.

자세히 보니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늘 보던 저수지였다.

고속도로에서 보는 모습하고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물은 언제 보아도 매혹적이다.

다만 가까이 하지 못함이 안따까울 뿐이다.

 

둑에서 바라본 기흥저수지/ 배를 띄워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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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조용히 살자

아 젠장...

내가 뭐랬다고 내 블로그에서 이런 난리들이냐...

 

난 정말 말 섞고 살고 싶지 않은데,

왜들 이러냐고요...

 

못난 나는 좀 제발 그냥 냅두시길!!!

잘난 당신들! 당신들끼리 나가노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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