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9/02

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2/07
    워낭소리(6)
    풀소리
  2. 2009/02/06
    우울함도 사치겠지...(4)
    풀소리
  3. 2009/02/04
    입춘 그리고 호수공원(2)
    풀소리

워낭소리

워낭소리

감독 이충렬

장르 다큐멘터리

 

노인과 그의 늙은 일소

 

 

1.

어제는 그동안 보고싶었던 워낭소리를 봤다.

마침내 CGV에서도 워낭소리를 배급하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내가 살고 있는 고양시에서도 상영하기 시작했다.

 

요즘 하고 있는 일도 그렇고,

민주노총 일도 그렇고,

날씨도 그렇고,

 

우울하던 참에 아내가 워낭소리를 본다고 하기에

내 표도 하나 더 끊으라고 했다.

 

늙은 소는 노인에겐 여전히 농사를 지어주는 충직한 일소이다.

 

 

2.

산골 동네 경북 봉화.

그곳에 늙은 부부가 살고 있다.

 

노인은 40살에 가까운 일소를 기르고 있고,

그 소에 의지해 30년 동안 농사를 지었고, 9남매를 키웠다.

노인도 늙었고, 소도 늙었다.

 

흔히 경상도 남자하면 연상되는 그 무엇이 있듯이

노인도 역시 여전히 말이 없고, 무뚝뚝하다.

 

노인은 어려서 다리 신경을 다쳐 걸음이 매우 불편하다.

다친 다리가 아니라도 그는 이미 걸음이 불편할 나이다.

소도 마찬가지다.

소의 평균수명이 15세라고 하는데, 40세에 가까우니 늙을 대로 늙어 걷기조차 힘겹다.

 

소를 위해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꼴을 베어 지고 오는 노인.

 

 

3.

늙은 소는 여전히 노인의 일소다.

소달구지는 노인의 이동수단이기도 하고, 짐을 옮기는 수단이기도 하고,

밭을 갈고, 논에 써래질 하는 늙은 소는 노인의 가장 소중한 농기구이기도 하다.

 

소는 인간과 동물이라는 관계를 떠나 노인의 삶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소와 노인을 저주하면서도 그들에게 의지하는 할머니에게서 소와 노인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노인은 논밭에 농약을 주지 않는다.

농약을 주면 소에게 풀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게 그런 노인은 그저 일감만 늘리는 인정없는 영감일 뿐이다.

 

다큐멘터리 도중에

다리가 불편한 노인이 소와 짐을 나눠지고 가는 정경이 나온다.

감독은 그 모습을 보고

순간 '성자'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소먹이를 생각해 농약을 치지 않는 것도,

늙은 소와 짐을 나눠지는 것도,

단순히 환경보호나 동물보호 차원이라고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생명에 대한 이해, 같은 호흡...

그것이 어쩜 '성자'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늙은 소와 짐을 나눠지고 오는 노인/ 감독은 이 모습에서 '성자'의 모습을 봤다고 한다.

 

 

4

워낭소리는 오염되지 않은 산속의 맑은 냇물을 보는 것처럼 순수하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쓸쓸하기도 하다.

 

소도 늙었고, 노인 부부도 늙었고, 심지어 달구지에 달고 다니던 라디오도 늙었다.

어쩜 봄날 산비탈에 아름답게 피어나는 진달래가 있는 풍경도 늙었는지 모르겠다.

보는 이 없이 잊혀져 간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밭 옆 산비탈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진달래/ 그러나 내겐 이제는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 그래서 '과거'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늙음으로 보였다.

 

 

늙는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미화될지라도, 또는 체념될지라도

쓸쓸한 것임에 틀림없다.

 

오늘 어떤 광고를 보니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라는 카피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빛은 결코 어둠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말이다...

 

다만, 우리는 빛을 좇고, 빛을 의지해 살 뿐이다...

 

유난히 늙음이 도드라지고, 쓸쓸하게 보인 건

이미 늙어버린 우리의 '운동'을 '현재' 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늙은 소는 평생 달고다니던 저 워낭을 남기고 떠났다./ 80평생의 노동으로 주름지고 상처난 저 손도 노인과 함께 머지않아 늙은 소가 간 그곳으로 떠날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우울함도 사치겠지...

1.

제도권 언론에서도 대서특필하니 이제 누구나 아는 일이다.

민주노총 간부의 성폭력 사건 말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 건 꽤 오래 전 일이고, 민주노총에 그 사실이 알려진 것 또한 꽤 오래 전 일이다.

나도 오랫동안 집행부의 일을 해왔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피해자를 생각하기 이전에 조직에 어떠한 파장이 올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습성 말이다.

어쨌든 일은 벌어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올바른 방법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첫째, 피해자 중심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

둘째, 민주노총이 보수정권, 정치권, 사용자 집단에게 요구했던 도덕적 기준을 자신에게 철저하게 적용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정면돌파다. 요즘은 '정면돌파'가 민주노총에서조차 무모한 아집을 관철하는 것으로 변질되었지만 말이다...

민주노총은 최근에 늘 그러하듯이 이번에도 그렇게 떳떳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민주노총의 위기는 사실 이러한 조직적 모습만으로도 그 심대한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어떻게 해야할까? 정말 민주노총을 허물고,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할까? 그래도 오랫동안 민주노총 언저리에서 간부랍시고 살아온 나로서는, 그리고 이제 현직을 사퇴한 나로서는 강력한 요구를 하기도 쉽지않고, 주제넘어 보이기도 하다...

 

2.

오늘 하루종일 우울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우울의 정체를 명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하루가 다 가는 시점에서 이제는 그 정체를 정확히 알 것 같다. 나는 내가 뭐라고 생각해도 민주노총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고, 아무리 내 스스로 민주노총을 비판해도, 민주노총을 나와 매우 동일시 한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 그렇게 하루 종일 힘들어하고 헤매였다는 것을...

지난 12월 말부터 나는 복수노조 시대에 조직확대방안을 연구해왔다. 연구의 핵심은 관련 활동가들과 면접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면접조사를 하면서 나는 너무나 힘들었다. 사람들의 냉정한 평가를 들으면서 세상에 비춰진 민주노총이 이런 모습인가 새삼스럽고 뼈저리게 느끼면서 말이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오랫동안 독방에 갇혀 있다고 나왔을 때 자신이 세월의 흐름만큼 당연히 늙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은 자신이 상상하던 것을 훨씬 뛰어넘어 더 늙고 추해져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도 일을 마치기 위해 꾸역꾸역 사람들을 만났었다. 희망을 걸 곳이 필요했고, 내가 아는 한 희망을 걸 곳이 그곳 뿐이었기 때문에...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회의를 하면서도 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입춘 그리고 호수공원

일이 있어 라페스타에 들렀다 날씨가 너무 좋아 봄냄새를 맡으러 호수공원으로 갔다. 날씨는 정말 반팔을 입어도 될 것만 같이 포근했다. 호수공원과 수로/ 멀리 있는 실버들엔 노르스름하게 물이 오르고 있다. 가까이서 본 실버들/ 물흐름이 없는 호수에는 아직도 얼음이 있지만 버들가지엔 물이 오르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호수공원은 넓다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물이 아주 많다는 것 빼고는 별로 볼품이 없는 공원이다. 그래도 따뜻해진 날씨 때문인지 그곳에 가면 봄을 먼저 만날 것만 같았다. 호수공원 산책길 나는 겨울을 아주 싫어한다. 아주 힘들고 어렵게 보낸 겨울을 겪고나서부터 생긴 습관이다. 겨울을 싫어하는 사람이 견디기 가장 힘든 계절은 겨울보다는 오히려 늦가을이다. 해가 짧아지고, 흐릿해지면서 마음도 함께 우울해진다. 겨울을 견딘 큰 잎 사이로 작은 잎들이 나오고 있다./ 이들의 힘겨운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에너지를 마중물 삼아 철쭉은 올 한해를 또 살아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다. 동지가 되면 이제 해가 길어지겠지 하고 기대를 하고, 하루하루 밝아지고, 길어지는 햇살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늙은 벗나무/ 가까이 가서 보면 꽃눈이 많이 커져있다. 따뜻한 호수공원은 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비록 아직 녹지 않은 호수의 얼음과 푸른색을 잃은 풍광과 지난 가을 맺은 열매가 검붉게 말라 시들어가는 산수유 등등은 여전히 겨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밝아진 햇살이 노란 잔디밭에 넓게 퍼져있고, 엷은 연두빛을 띤 노르스름하게 물이 오르고 있는 실버들을 보면 분명 봄은 거기에 오고 있었다. 봄의 밝은 햇살이 잔디밭에 넓게 퍼져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