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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24
    나는 왜 제주에 갔을까(3)
    풀소리
  2. 2010/08/20
    ambitious man(7)
    풀소리
  3. 2010/08/12
    아침가리 다녀온 이야기(4)
    풀소리

나는 왜 제주에 갔을까

[prologue]

 

제주에 다녀온 지 벌써 1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7월 1일 ~ 5일에 다녀왔으니 말이다.

 

다녀온 이야기를 연재 형식으로 쓰다가 멈췄다.

물론 사정이 었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무리 없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거 같다...

 

비록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말이다...

 

 

[나는 왜 제주에 갔을까?]

 

나는 왜 제주에 갔을까?

그리고 무엇을 봤을까?

 

물론 여행지로 제주는 언제 선택해도 탁월한 선택임에 틀림없다.

그런 것 말고 무엇이 날 제주로 불렀을까.

무엇이 내게 갈 수 없는 여러 악조건을 무릅쓰게 했을까...

 

그것을 한 마디 또는 한 가지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나'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던 것은 내게 커다랗기도 하고, 중요하기도 한 이유임에 틀림 없다..

 

그래서 결과는 어땠나???

 

 

바닷가 길가에 외롭게 매달린 낡은 '올레' 표식

 

 

때로 외로운 것은 그 자체로 다른 외로운 것을 위로해주기도 한다.

저기 매달린 낡은 표식처럼,

곶자왈 깊은 숲속으로 길게 이어진, 버려진 돌담처럼

아름다운 풍광 속에는 또 외로운 것들이 여기저기 버티고 서 있었다...

 

그것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의 크기만큼 '나'의 외로움을 위로해주었다...

 

 

정난주 마리아 묘

 

 

위로는 때로는 근원적인 물음이기도 하고,

그래서 삶의 엄숙함이기도 하다...

무엇인가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죽음을 무릅쓰고 선택한 이들 앞에서

나는 위로를 넘어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그들이 갔던 고난의 길 그 거리만큼

내 마음은 그만큼 더 정화되는 것 같았다...

 

 

제주목 관아

 

 

물론 일방적으로 위로만 받으러 간 것만은 아니다.

내가 위로를 해주기 위해 간 곳도 있었다.

 

고상한 인격이 무뢰배/정상배들에 위해 능욕되고

끝내 짓밟혀 죽은 이에 대하여 나는 위로를 하고 싶었다.

 

내가 찾은 것은 그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지만,

남을 위로한다는 것은 때로 '나'를 위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해녀의 집

 

 

생존을 위한 거친 숨결 또한 내 지침 삶에 싱싱한 자극이 되었다. 

 

거친바다와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겨냈을,

그래서 한없이 강해지고 넓어졌을 해녀들의 삶이 거기 있었다.

 

 

곳자왈 숲속에 숨어있는 샘물

 

 

여름 올레걷기에서 곶자왈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굵고 가는 자갈이 빼곡한 곳...

사람들이 개간할 수 없어 원시림처럼 나무들이 빼곡한 곳...

그곳이 곶자왈이다... 

 

물론 제주의 역사를 조금 알고 있는 이들에게 곶자왈은 그저 아름다운 밀림일 수만은 없다.

거친 곶자왈 속에도 곳곳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돌들을 쌓아서 만든 담들이 때로는 길고 넓은 구획으로, 때로는 조그만 구획으로 이어진다.

넓은 것은 밭이었을 것이고, 좁은 곳은 집자리였을 것이다.

 

이렇듯 열악한 곳으로 밀려나 산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끝없을 것 같은 곶자왈을 걸으면서 나는 쉼없이 샘물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물이 귀한 제주에서 샘물은 곧 생명수였을 것이고 샘물이 있는 곳은 사람들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저 위의 커다란 샘을 발견했다...

이곳에도 주변에도 돌담이 예외없이 이어지고 있으니 언젠가 이곳에도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나는 한편으로 이곳에 처음 살기 시작한 이들이 저 샘물을 발견했을 때의 환희를 생각하면서도,

이곳이 4.3으로 없어진 마을이 아니길 바래고 또 바랬다...

 

 

넓게 넓게 이어진 밭벼밭

 

 

사람의 삶을 뺀 제주의 자연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석양이라 엷은 어듬 속으로 잠겨가는 넓디넓은 밭벼밭을 보면서 나는 한없이 셔터를 눌렀다.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저 넓고 아름다운 곳에서 나온 곡식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곳 사람들의 뱃속과 마음속을 풍요롭게 채워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앞으로도 바로 이곳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이 넓은 들이 삶을 따뜻하게 채워주어

나처럼 한번 지나치는 이들이 아닌 바로 그들의 눈에도 한 없이 풍요롭고 아름답게만 보였으면 좋겠다...

 

 

[epilogue]

 

위로는

때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때로는 말없이 꼭 잡아주는 손길에서

 

느끼고 또 받을 수 있지만...

 

 

때로는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길을 보낼 때

때로는 안타깝게 바라보는 눈길을 보낼 때

그리고 그 아픔을 어루만지는 깊은 사랑을 보낼 때

 

돌이켜보면 스스로도 많은 위로를 받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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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bitious man

1.

고3 때 담임선생님은 여러 아이들 앞에서 나를 가리키면서 'ambitious man'이라고 곧잘 부르셨다.

나는 그 때 선생님이 왜 내게 그렇게 불렀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매우 소심했던, 그래서 남들 앞에 잘 나서지도 못했던 내가 무슨 'ambitious man'이란 말인가...

 

 

2.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면서 그후 나는 한달 보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마셨다...

일찍 들어와 뻘쯤하게 집에 있을 자신이 없었고,

밖으로 도는 저녁시간에는 늘 술과 함께 했다...

 

먼저 정신이 유통기한을 다하는 듯한 증세를 보였다...

급기야 몸도 유통기한이 다하는 듯한 증세를 보였다...

 

며칠 전에는 현기증이 1시간 이상 가라앉지 않았다...

어지러워 고개를 숙여 밥을 먹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나는 문득 고3 담임선생님이 내게 했던 'ambitious man'을 생각했다.

 

 

3.

나는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집에서 '나는 돈을 벌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얘기했었다.

물론 학교에서 그런 말을 한 기억은 없다.

할 필요도 없었겠지만, 소심한 내 성격상 딱히 나를 남들 앞에 드러내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속 가득한 그러한 성향은 알게 모르게 겉으로 드러났을 것이다.

그런 날 보고 담임선생님은 'ambitious man'라고 불렀을 것이다...

 

'ambitious man'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원대한 꿈'을 가진자...

그러나 지독히 가난한 나에게 '현실의 한계'는 너무나 '분/명'했고, 아주 가까이 있었다...

다만 나만 그것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나를 보면서 담임선생님은 한편으로는 '대견함'으로 또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으로 대한 게 아닐까...

 

 

4.

'ambitious man'

'원대한 꿈을 가진자'

멋지다...

 

내가 매미처럼 이슬만 먹고 살 수 있었다면...

멋진 나의 꿈은 뭔가 그럴듯한 결실을 맺었을 지 모르겠다...

 

평범하게 돌베개를 베는 1인이 되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뭔가 '두각'을 나타내고 싶었다면 오히려 세상사람들에게 폐를 덜 끼쳤을지도 모르겠다...

 

생업의 중요함을 좀 더 일찍, 좀 더 절실하게 알았더라면...

가족에게 민폐를 좀 더 적게 끼쳤을 것이다...

 

 

5.

'ambitious man'

그래도 말이다... 멋지지 않은가...

 

그래... 멋진 꿈을 꾸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할 거다...

꿈을 생각할 때마다 느끼는 '행복'보다 10배는 더 큰 진한 아픔이 내 가슴을 후벼파지만 말이다...

 

해는 지고, 갈길은 멀고...

무찔러야 할 적은 많은데, 군사는 없다...

 

그렇더라도 말이다...

한 때 꾸었던 꿈을 펼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내 삶이 세상에 끼친 민폐가 기여보다 많은 상태서 삶을 끝내고 싶진 않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타고난 자질의 1/10도 쓰지도 못했다...

적어도 지금보단 10배는 잘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얘기도 된다...

 

그래...

민폐로 끝내서는 안 되지...

 

추스리고 행장을 꾸려 길을 떠나도

대체 결말이 어떨지 딱히 자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래된 핸드폰 밧데리처럼...

내 머리도, 내 몸도...

방전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방전이 되기 전에, 새롭게 충전되기 전에...

 

다만 '무서리'라도 내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6.

암튼 어쩌랴...

남들도 다 갔던 길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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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가리 다녀온 이야기

아침가리...

그곳은 산 많고, 골짜기 깊은 두메산골 강원도에서도 사람들이 찾지 못하는 가장 깊숙한 곳...

3둔 4가리 중 하나다...

 

몇 년 전 곰배령을 다녀올 때 방동약수나 적가리골을 다녀오면서 언제가 한번 꼭 가야지 했던 곳, 그곳...

바로 아침가리다.

 

 

 이슬비가 내리는 맑고 고요한 아침가리 계곡 

 

 

해가 잠깐 들어 아침에나 밭을 갈 수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고 하는 곳...

또는 밭이 하도 작아 아침에 다 갈 수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고 하는 곳...

어찌됐든 그곳은 사람들이 사람들 틈에서 견디지 못해 쫒기고 쫒기다 찾아 안긴 자연의 품일 것이다.

 

 

 아침가리 넘어가는 곳의 배추밭

 

 

깊은 협곡이라 평지가 거의 없는  50리 긴긴 계곡...

이곳에 처음 삶의 터전을 붙이고 숨어둔 이 누굴까...

관비와 눈이 맞아 떳떳하게 사람 많은 곳에서 살 수 없어 백두산으로 숨어든 임꺽정의 장인/장모 같은 사람일까...

그렇다면 저 밭에 농약을 뿌리는 사내의 조상은 사랑을 일구기 위해 도피한 그런 불우한 연인이었을까...

 

암튼 그렇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서 말이다...

이 풍경 좋은 아침가리로 처음 숨어들어온 이가 사랑을 일구기 위해 도피한 이었다면 더 좋겠다...

 

--- 재미없고 김빠진 고단한 잠자리에서 자는지 깼는지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이 세상의 바보무리들 보다, 남의 눈을 속여 가며 자연의 욕망을 못 이겨서 생겨난 나 같은 사람이야 말로 더 많은 생명의 요소와 더 기운찬 기질을 타고 나지 않았는가? ---

 

세익스피어의 대사처럼 정말 사랑의 기운이 넘쳐나는 그/런 이들이 견딜 수 없는 현실을 넘어 이 깊은 산골로 처음 들어와 살았다면

좋/겠/다...

 

 

 아침가리 가는 길 입구

 

 

무수한 상상이 접히고 또 접히든 이곳, 아침가리...

나는 드디어 그곳에 갔다...

 

오래도록 수많은 겹으로 상상이 쌓였던 곳을 방문했을 때마다 나는

떠나기 전 내가 상상해왔던 것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하고픈 욕망이 든다...

그러나 많은 경우 전혀 다른(엉뚱하거나 또는 상상을 훨씬 뛰어넘거나) 현실에 막닥뜨려 기존의 상상을 모두 잊어버리기 일쑤다...

물론 간혹가다 강박관념처럼 간직했다 현실에서 막닥뜨린 실제의 '상상'에 환호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번 아침가리도 마찬가지다...

 

 

 산 입구/ 때로 혼자의 걸음이기도 하다.

 

 

 산으로 둘어가는 사람들

 

 

산에 들어간다는 건 무엇 때문일까...

때로 혼자이기도 하고, 혼자이고 싶기도 하고...

함께 이기도 하고, 함께이고 싶기도 하기 때문일까...

 

암튼 깊은 산일수록 산에 들면 나의 초라한 상상은 변화무쌍하고, 기상천외한 풍경에 의해 압도되기 일쑤다...

 

 

 아침가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만난 강원도의 수려한 산들...

 

 

아침가리에 대해 수많은 아름다운 상상을 했어도, 고곳 아침가리는 나의 상상을 비웃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는 길에서 본 수없는 야생화만 해도 그렇지만,

문득 나타난 탁 트인, 넓고 넓은 시야를 가득 채운 수려한 산들도 그러하다...

 

물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던 향기로운 칡꽃과

높은 곳만 보면 손끝이든 모자 위든 앉는 잠자리와

커다란 나무 위에 이파리와 열매를 모두 숨긴 긴 다래 줄기들도

나의 빈약한 상상 공간을 일거에 밀치고 들어오는 행복한 풍경이기도 하다.

 

 

 아침가리의 잔잔한 계곡물결

 

 

물...

특히 맑은 물은 찌든 세태를 씻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언제나 간절하다...

아침가리엔 50리를 흘러와 넓다랗게 흐르는 냇물이 온통 입을 대고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맑다...

참 좋다...

 

 

 아침가리골에서 만난 수려한 바위계곡과 맑은 물

 

 

맑은 계곡은 거꾸로 얘기하면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계곡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던 사연 많은 옛 사람들의 신산한 삶처럼

이 계곡 역시 아름다운 자태 뒤엔 감출 수 없는 슬픔을 함께 하고 있다...

 

그것은 이 계곡을 쉽게 걷게 할 수 있는 냇가의 평온한 숲길에서 발견된다...

 

 

 아침가리 계곡 옆 숲길

 

 

계곡 옆으로 사람들이 걷기 좋을 만한 길이 끊길만 하면 다시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자세히 보면 자연이 만든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돌로 축대를 쌓아 만든 길이다.

 

이 깊은 골짜기에 사는 10가구도 안 됐을 주민들이 만들 길일까?

아마도 그렇진 않을 거 같다...

그 적은 사람들이 이런 길고 많은 공력이 드는 길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담???

아마도 일제시대 때 산림공출(무보수로 농민들을 시켜 나무들을 베어 바치게 했던 일)을 하면서 닦은 우마차길일 것이다...

계곡과 나무들의 크기에서 이곳과 비슷한 이녀비의 고향에도 비슷한 흔적이 있는 거로 봤을 때 더욱 분명한 거 같다...

 

그렇담, 불과 60-70년 전에 이곳에서 나무를 베고 나르느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을까...

 

 

 거의 다 내려온 지점에서의 이녀비/ 무슨 생각을 할까...

 

 

매미소리가 커지고,

젖은 몸의 추위가 가시면서 점점 물속이 그리워질 정도가 되고,

사방이 밝아온다면.

 

계곡이 끝나는 증거이다...

 

절집에 들러 대웅전 옆 벽을 채운 심우도(尋牛圖)처럼,

소(도, 道)를 찾아 떠나는 곳은 산골이지만, 끝내 내가 살 곳은, 그리고 도(道)가 함께 있을 곳은 속세이기도 한다지...

 

암튼 계곡이 끝나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을 만나는 것은 지친 발걸음을 달랠 수 있기에 반가움이기도 하지만,

수려하고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 계곡을 떠나야 하기에 짙/은 아쉬움이기도 하다...

 

 

 언제나 편안한 미소가 아름다운 소도골님/ 이날 길잡이를 해주셨다...

 

 

암튼 꿈결같은 길이었다...

예전부터 꿈꾸워오든 길을 걸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걸음이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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