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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투쟁을 다녀와서...

1박 2일간의 외출이어서 그런지 오늘 하루 몸이 조금은 쑤셨다.

남들은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세계화 투쟁이라는 것에 부산을 향하는 마음은 설레였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신자유주의가 침투하는 상황속에서 말이다.

 

17일. 부산역에 내렸을때에는 사실 실망이었다. 전해들었던 것과는 달리 부산역은 조용했다. 전야제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전야제 장소로 가면서 그제서야 조금은 실감하기도 했다. 쭉 늘어선 닭장차와 전경들...

나를 실망하게 만든 것이 또 있었으니, 생각보다 적은 전야제 참석자들이었다.

전야제를 준비한 동지들의 노고와는 달리 적은 참가자들을 보니 조금은 아쉬움이 들었다.

 

18일.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망미삼거리에서 진행된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했다.

전날, 부산대 학생들이 노동자 민중들이 숙박을 하지 못하게 피켓시위며 대자보를 부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참... 대학도 이렇게 어용화가 되어가다니...)

전국노동자대회도 예상보다는 훨씬 못 미치는 것 같다. 대략 7~8천명 정도.

집회를 마치고 수영교로 이동하는 동안에, 농민대오와 민노당 그리고 학생, 노동단체 대오들이 노동자 대오와 결합하면서 그나마 거리를 꽉 메운듯 하다. 대략 3~4만명 정도...

 

▲ (나중에 알았지만) 수영 1교에 도착했을때에는 이미 경찰은 컨테이너 박스로 2단까지 쌓으며 벡스코로 가는 길을 막고 있었다. 

 

  여기는 반대편 수영 3교. 이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본집회 장소인 수영교에 도착했을때에는 정말이지 경악스러울 뿐이었다. 컨테이너 박스를 2단으로 쌓아서 수영교와 벡스트를 차단한 경찰의 발상은 그야말로 경이로울 정도였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경찰은 살수를 쏟아부었다. 이대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민중의 힘은 컸는지,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엄청난 물을 맞으며, 컨테이너에 밧줄을 묶었다. 그리고는 힘껏 잡아 당겼다. 한 동안의 노력은 결국 컨테이너를 떨어뜨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경찰을 지게차를 이용해서 또 2단을 쌓았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나중에 동영상을 통해서 뒷쪽에 대량의 컨테이너를 준비한 것을 알았다...)

그렇게 두어시간 투쟁은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두워지고, 헬기로 살수한다는 경찰의 협박(?)에 대오를 지도하던 방송차는 뒷쪽 무대로 이동할 것을 방송한다.

 

 

  경찰들은 끊임없이 노동자 민중대오에게 물을 쐈다. 그러나 민중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컨테이너를 무너뜨렸다.

 

 

 

그렇게 호 동지와 나는 뒤로 퇴각(?)했다. 그리고 한라공조 동지들을 만났다.

(역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있던 곳은 수영 1교이고, 뒷쪽 수영 3교에서는 컨테이너를 무너뜨리고 경찰과 심한 싸움을 벌었던 모양이다. 그것을 나중에 대전에 올라오면서 알았으니... 오늘의 투쟁은 정말이지  엉터리였다.)

경찰의 침탈이 있다는 소식에 지도부(?)는 퇴각할 것을 명령(?)했고, 참석한 동지들은 모두 올라간다고 한다. 이동하던 나와 호 동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서로 헤어지기로 하고, 나는 대전본부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반세계화 투쟁이라는 것이 아직 우리에게는 이렇게도 낯선 투쟁인가?

그렇게도 많은 병력을 배치하고서는 회의를 진행하는 자본가 앞잡이 들이 존경스러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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