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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0
    사람이 죽었는데 그저 경제밖에 생각 못하냐?
    강철새잎
  2. 2009/04/02
    비정규, 최저임금 개악을 막아야 한다
    강철새잎
  3. 2008/10/24
    콜텍 노동자에게 삶의 노래를 다시 부르게 하자(1)
    강철새잎

사람이 죽었는데 그저 경제밖에 생각 못하냐?

5월20일 미디어충청(www.cmedia.or.kr) 칼럼.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수많은 시위대가 죽창을 휘두르는 장면이 전 세계에 보도돼 한국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혔다”고 이야기를 했단다. 그리고는 폭력시위에 대해서 엄청대처 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문자로 일방적 해고통보는 이미지 실추 아니고?

16일 대전에서 진행된 전국노동자대회로 인하여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례로 가장 많은 457명이 연행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 1차적으로 32명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그리고 당일 시위대가 사용한 대나무로 인하여 전경차와 전,의경들이 다수 부상당하였다고 경찰과 보수언론은 연일 난리를 피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노동자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각되지 않고 있다. 5월16일 전국노동자대회 건과 관련해서는 지난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통운은 1월에 택배기사들과 건당 30원의 배달수수료를 인상하기로 합의를 했다. 그러나 3월15일 일방적으로 대한통운은 합의를 무효화하고는 오히려 40원 이하를 주장했다. 이에 바로 다음날 택배기사들은 항의를 했고, 3월16일 대한통운은 항의한 택배기사 78명에게 핸드폰 문자메세지를 통해 해고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에 대한통운은 어떠한 대화도 귀담아 듣거나 응하지 않았다. 그런 대한통운에 대해 분노를 가지고 고 박종태 열사는 목을 메고 만 것이다. 그의 죽음에 분노를 느낀 노동자들은 5월6일 첫 집회를 시작으로 9일과 16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한 것이다. 하지만 대한통운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경찰은 심지어 화물노동자들에게 ‘밥 줄을 끊어 놓겠다’라고 서슴없이 협박을 내뱉었다.

단지, 30원 때문에 문자로 해고통보를 한 사용자의 행태는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고, 이에 불만을 표출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의 행동은 국가 이미지를 실추하는 것이라고 하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노동자에 대한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와 하찮음을 느끼는 국가가 과연 국가 이미지를 논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정작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그저 또 물류대란 운운을 하는가

또다시 조선, 중앙, 동아를 비롯한 보수격 언론들은 18일자 신문부터 연일 민주노총, 화물연대 등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기사들로 도배하고 있다.

하지만 고 박종태 열사가 왜 목숨을 끊었는지, 노동자들이 왜 거리로 나왔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16일 화물연대는 찬반투표를 통해 총파업을 결의했다. 그러자 보수언론들은 한결같이 ‘물류대란’을 언급했고 화물연대에 대한 기사와 사설로 비난 보도를 도배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노동자로 인정해달라’는 거센 요구를 한다고 비난까지 하고 나섰다.

과연 이들은 노동자인가? 아니면 자영업자인가?

여전히 노동자에 대한 인식부족과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노동기본권 보장이 안된 상태에서 무슨 ‘노사상생’이니 ‘노사화합’을 외칠 수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몰이해적인 노동관을 가지고 국가 이미지 운운할 수 있는가.

단지 30원으로 촉발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 보다는 그저 노동자의 입을 봉쇄하기 위한 이명박 정부의 작태에 대해 분노만 발생될 뿐이다. 그리고 ‘죽봉’과 ‘죽창’의 의미를 모르는 채 떠벌리는 경찰의 이야기와 앞뒤 설명없이 죽창 1,000개를 휘두는 노동자의 폭력성을 운운하는 보수격 신문기자들의 모자람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참고로, 죽창이라는 것은 그 끝을 날카롭게 깎는다고 해서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뻘뻘 끓는 가마솥에 소금을 풀어놓은 다음, 그 끓어 오른 소금물에 죽창의 끝을 담궈 몇 시간 동안 지속 시킨 이후를 말하는 것으로 그건 비장의 무기다. 그리고 그건 과거 농민들이 탐관오리를 처벌할 때 최후로 쓰는 물건을 말한다... 16일 노동자가 든 것은 단순히 대나무일 뿐이며, 완장일 뿐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죽음이 어떤지는 운운하지 않고 그 슬픔을 함께할 수 밖에 없고 슬픔의 표현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이들을 그저 경제적 논리로 밖에 생각할 수는 없는가!

이명박 대통령 말대로 국가의 이미지를 높이는 행위는 이 땅의 만물을 일구어내는 노동자들이 위대한 존재임을 국가와 자본가들이 인정하고 존중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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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최저임금 개악을 막아야 한다

4월 2일 미디어충청(www.cmedia.or.kr) 칼럼.
3월 30일 오후 5시에 국무회의에서 비정규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의결되었다. 웃기는 것은 3월 31일자로 이명박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나서기 때문에 해외순방 전날 처리를 강행했단다. 더욱이 국무회의가 오후에 소집되어 안건처리를 한 것은 이번이 국회 역사상 처음이란다. MB의 발상은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어쨌든 비정규법 개정안이 의결되었다. 이젠 국회에서 ‘탕,탕,탕’ 의사봉을 두들기는 일만 남았다.

2년에서 4년으로 연장되면 뭐가 달라지는 걸까?

2006년 12월, 민주노총을 비롯한 많은 노동사회단체들은 당시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비정규법’ 통과를 반대했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비정규법은 보호가 아니라 오히려 해고를 초래하는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2007년 7월 1일, 이 법이 시행되자마자 이랜드 비정규 노동자들이 거리로 쫓겨나고 그래서 급기야 매점을 점거농성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저 한편에서 팔짱끼고 이 안에 적극 동의한 자들이 지금의 한나라당이다. 그리고 이제 2009년 3월에 이 법이 이야기하는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 때문에 올해 7월에 비정규 노동자들이 대량 정리해고를 당할 것이라고 이 법의 개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리고 현행 2년 고용을 4년으로 연장하여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2년에서 4년으로 고용기간을 연장한다고 해서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달라지는 게 있을까? 오히려 해고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시간만 연장했을 뿐이다. 그리고 4년 안에 해고를 한다고 해서 어떤 제재도 개정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결국은 ‘2년이 너무 짧으니까 4년으로 연장해 줄게’ 하는 것뿐이다.


최근에 상담을 참 많이 받았다. 내용인즉슨 올 7월이면 비정규법으로 정규직화 해줘야 하는 것이 싫어서 나가라고 한다는 내용들이다. 심지어는 6월 30일까지 근무를 하라고 근로계약서 작성을 강요한 사업장도 있었다. 결국은 2006년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뭐... 최저임금마저도 깍겠다구? 차라리 벼룩의 간을 내 먹어라!

한나라당의 이런저런 곳에서 발상은 참으로 뛰어나다. 최근 김성조 의원의 대표발의를 통해 최저임금 개정안을 제출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말이지 기가 막힌다.
최근 한국사회는 저출산에서 고령화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일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고령 노동자가 넘쳐나고 있는데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현재 너무나 오른(?) 최저임금을 삭감해서 다른 고령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나누어 주자는 것이 한나라당의 발상이다. 그래서 개정안은 60세 이상 고령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10~20% 삭감하자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4,000원이다. 만약 개정안대로 최저임금을 지급한다면 고령 노동자들은 약 10~15만 원 정도 삭감된 금액을 받아야한다. 날로 치솟고 있는 물가에 비교하면 더욱 더 세상 살아가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고령 노동자들에는 최악이다.
또한 개정안은 고령 노동자들의 임금삭감에 그치지 않고, 사회 초년생이라 할 수 있는 수습노동자의 임금삭감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수습노동자에게 3개월 동안 최저임금 감액적용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기간 연장할 것을 담고 있다. 최근 공기업 초임 임금을 30%로 삭감하는 내용으로 취업 공고를 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또한 최악이다. 그러나 수습노동자의 경우는 임금삭감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1년짜리 기간제 노동자에서 6개월짜리 단기간 노동자들로 전환, 소위 ‘사용하다 버리는’ 최악의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3월 31일 민주노총은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리고 당일 오후에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비정규법, 최저임금법 개악저지 민주노총 500인 선언을 진행하기도 했다. 기자들의 관심도 이전에 비해 컸다.
민주노총은 4월이나 혹은 6월 임시국회 때 강행처리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최저임금은 국가가 개입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로 하여금 그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깡그리 빼앗아 먹겠다는 저급한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맞서 싸워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지키는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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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텍 노동자에게 삶의 노래를 다시 부르게 하자

# 장면1.
행인女1 : 뭐야… 시끄럽게. 또, 민주노총이야.
나 : …….
행인女2 : 하여간 노조 인간들은… 저 미친놈들은 맨날 왜 저래?
나 : 뭐라고 그랬어? 이 XX년아! 이게 미친놈으로 보여? 당신들 교통질서나 잘 지켜?
동료들 : 참아... 싸워서 뭐해...

 

# 장면2.
여고생1 : 어… 무슨 공연 하나봐?
여고생2 : 뭔데… 기타 노동자에게... 삶의... 노래를?
(한참 공연 후에 투쟁 동영상이 나오자 몇 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떴다)
여고생1 : 가자… 무섭다
여고생2 : 좀만 더 보자. 왠지 안 됐잖아.
나 : 볼만해요?
여고생2 : 저 분들 왜 그런거예요?
(한참 콜텍에 대한 설명을 학생들에게 해 주었다)
여고생2 : 고생하시네요... 남의 일 같진 않네요... cort 악기 저도 있는데 비싸던데...
여고생1 : 학원가자
여고생2 : 그래. 아저씨, 아줌마들 힘내시라고 전해주세요.

콜텍을 아십니까?

1973년 자본금 200만원으로 시작해서 세계 3위의 기타제조업체로, 국내 재산소유 120위에 드는 소위 ‘알짜’ 부자다. 하지만 이들이 하루종일 사포로 문지르고 깎고 해도 최저임금에 조금 넘거나 미치는 임금을 받을 뿐이다. 그렇게 그들은 일을 했다. 자칫 불만을 이야기 했다가는 ‘나가’라고 할 뿐이었다.

그래도 2007년 봄에 이들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리고 처음 가진 단합대회 때 이들의 모습은 초등학생이 처음 소풍을 맞이했던 그 날처럼 해맑은 웃음이 입가에서 종일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측은 일방적인 직장폐쇄를 감행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중국에 공장을 짓는다며 기계를 빼겠다고 행정대집행을 감행해왔다. 그런 상황에서도 콜텍 노동자들은 한 번도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나 좌절은 생각지 않았다. 그들이 그동안 그 작은 공장에서 뼈가 으스러지고 손가락이며 몸 마디마디가 아픈 것을, 관리자들의 모욕적인 수모를 감수하면서 노동해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건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투쟁을 해왔다. 엄사4거리에서 계룡시청까지 수많은 행진을 했고, 계룡시청 앞에서 사태해결을 목놓아 외쳤다. 그리고 서울 박영호 사장 집 앞에서 1인 시위는 물론이거니와 집회도 수없이 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40미터 높이의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에 올랐다. 그렇게라도 목숨을 걸고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있으랴

40M 높이의 송전탑에는 오랫동안 투쟁을 해오던 하이텍 지회장과 같이 고공농성중이다. 하이텍 노동자들도 그동안 기나긴 싸움을 해오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오늘로 송전탑에 올라간 지 열흘째다. 막상 아래에서 올라간 동지들을 보자니 아찔하다.
‘저길 어떻게 올라갔을까?’ 하는 생각밖엔 안 든다.
새벽에는 비가 내렸다. 날이 예전 갔진 안다지만 저녁부터 새벽에는 꽤나 쌀쌀한데, 비까지 내렸으니 얼마나 추울까? 그리고 외로울까?
남녀가 올라가 있으니 볼 일을 볼라 하면 솔직히 민망하고 부끄러울텐데... 그러나 순간의 부끄러움 보다도 ‘살아야겠다’는, ‘이렇게 포기할 순 없다’는 절박함이 더 하지 않았을까 싶다.

송전탑 농성장 앞에서는 한강시민공원으로 이어지는 산책 코스다. 새벽이든 낮이든 밤이든 서울시민들은 한사코 그 앞으로 조깅을 하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고,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탄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간다. 그리고는 송전탑 위에 있는 두 노동자들을 힐끗 쳐다보고, 피켓을 들고 있는 콜텍-하이텍 노동자들을 한참동안 신기함과 놀라움으로 바라보다 간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왜 이들이 여기서 높은 곳에서 이러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오는 이가 없다.

유인물이 없어서 그런가 싶어 뿌려본다. 우리의 내용을 담은 피켓이 부족한가 싶어서 만들어 걸어본다. 그러나 외면하고 지나가기 일쑤다.

하지만 더욱 더 서글픈 건 이들의 눈물 나는 투쟁에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박영호 사장 일행들이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시위하는 것에 ‘내 인생은 조졌다’고 했다는 박영호 사장. 그러나 그 사장 때문에 거리로 내 앉은 사람들에게 대해 그는 아무생각이 없는가? 입버러지처럼 200만원 자본금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고 떠벌리면서 일한 만큼의 대가를 달라고 외치는 것이 시끄러운 소리로만 들리는지...

웃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읽는다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 왔어요?”
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송전탑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도 5일째(지난 17일)가 되어서야 농성장을 찾았다. 섭섭할 수도 있었을텐데 웃으면서 맞이해주니 오히려 내가 고맙다. 지난 17일은 농성장에서 투쟁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라고 하기에는 그저 연대한 노동자들의 춤과 노래가 전부였지만, 언제 우리 노동자들이 번쩍이는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봤겠는가. 잊지 않고 찾아와주는 동지가 좋은 것처럼 그렇게 많지 않지만 모이든 사람들이 있기에 위안과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일테다.
“오늘 내려가세요?”
“대빵이 올라가 있는데 어딜 가! 같이 있어야지”

17일에 이어서 21일 다시금 콜텍 노동자들을 찾았다.
청계광장에서 콜트/콜텍 위장폐업 철회 및 노동권 쟁취를 위한 문화제가 열였다. 전날 기륭전자분회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기륭으로 몰인 탓인지, 콜트/콜텍 투쟁 문화제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는 못했다.
“부장님, 저녁 먹었어요?”
연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저녁식사를 권했다. 콜텍 여성노동자들은 지역에서 손수 밥과 반찬을 해왔다며 부족하지만 많이 먹으라 한다. 흰밥에 멸치볶음 그리고 고추장아찌에 북어국. 투쟁의 현장에서 이 만큼의 진수성찬이 어디 있으랴. “우리가 해온 거야. 맛있지” 그러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결코 현장 밖으로 내몰린 노동자의 어두운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힘들어하는 나에게 반성과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기타 노동자에게 삶의 노래를 다시 부르게 하자

‘기타(Guitar) 노동자에게 삶의 노래를 돌려주고 싶습니다’라는 주제로 청계광장에서 투쟁문화제가 열렸다.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소위 ‘문화인’들의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였다. 필자에게는 조금은 낯설지만 두드림 공연이나 시낭송 그리고 통기타 노래 등은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을 함께 만드는 다리 역할은 충분했다.

초반에 소개한 장면들에 대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분명 이 땅에서 아직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더군다나 조직된 노동조합이라고 하더라도 이전과는 달리 집회 등에 잘 참석하지도 않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분명, 고강도 노동에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은 생존을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일으키고 있으며 ‘진정한 노동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을 자본에게 당당히 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노동조합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에서 차츰 노동자성을 느끼고 거리로 나와서 자신을 당당히 외치고 지치고 포기하기 보다는 100M 높이의 송전탑에 외로이 올라가더라도 자본에 굴복하지 않는 콜텍 노동자들의 모습 속에서 필자는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조금은 과장된 희망을 부르짖고자 한다. 그리고 이들의 지난 1년 반이 훨씬 넘는 투쟁 속에서 이들에게 다시 삶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고 싶다. 이들은 그 만큼의 자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스피커로 나오는 이들의 목소리와 구호 그리고 투쟁가요가 시끄럽다고 투덜되며 지나가는 행인에게 욕설을 퍼부은 것은 단지 그들이 이들의 모습에 비난하고 지나간 것에 대한 단순히 불만 혹은 반감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들이 자본의 노예이며 이 땅의 노동자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세상에 순응해가는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의 배설물이다.

나는 반드시 콜텍 노동자들이 승리하길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그동안 그들의 피눈물의 보상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오래 걸리지만 결국은 '노동자가 이긴다'는 상투적이긴 하지만, ‘정의’와 ‘단결투쟁’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9월 17일 서울로 발령나서 한 동안 작성하지 못했다가 오랜만에 글을 써서

10월 22일에 미디어충청(www.cmedia.or.kr)에 올린 [글쎄…8]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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