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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4/29
    받은 만큼 이젠 연대로 보답해야죠!
    강철새잎
  2. 2005/04/15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강철새잎
  3. 2005/04/15
    "다리 쭉 펴고 편안히 누울 공간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강철새잎

받은 만큼 이젠 연대로 보답해야죠!

 2005년 4월 15일 노동자의 힘 기관지 76호에 실린 글이다.

 

 

 

받은 만큼 이젠 연대로 보답해야죠! -투쟁에서 승리한 한라공조 사내하청지회
 현장 이야기

기관지노힘  제76호
 

"처음에는 노동조합에 관심조차 없었죠"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이에 축복하듯 벚꽃이 활짝 피어 벚꽃축제가 한참중인 4월. 그러나 부단히도 바쁜 하루를 보내는 동지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전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조를 설립한 한라공조 사내하청지회 동지들이다. 4월 6일과 7일 이틀 간 막바지 교섭이 있었다. 어제 교섭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오후 즈음에 한 동지와 함께 한라공조 사내하청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았다. 출입문을 들어설 때 문순호 사내하청지회 사무장 동지의 얼굴이 보였다. 늘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오늘은 더욱 환하게 보였다. 아마도 어제 진행된 교섭이 잘된 모양이다. 나랑 같이 동행한 한 동지가 "축하해요!" 라고 인사를 했다. 나만 몰랐던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예, 감사합니다" 라며 사무장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노조사무실에는 한상진 지회장이 혼자 있었다. 소감 한마디를 묻자, 첫 마디가 "일단 끝나서 속이 후련합니다" 란다.
"처음부터 노동조합에 대해서 관심조차 없었는데… 그런데 사는게 힘들다보니 어쩌다가 노동조합 만들어서… 잘 되었습니다"


"사측이 제멋대로 하는 것이 정말 마음에 안들었죠"

한상진 지회장은 작년 8월말부터 노조결성을 준비해 왔었다고 한다. 노조에 관심조차 없었다는 그가 노조를 구성하고자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한라공조 사내하청인 (주)유진에 들어온 지 2년이 되어 가는데, 근무하고 있는 동안 회사가 자기 멋대로 임금을 삭감하고, 월차도 없고, 잔여금도 한푼 주지 않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두 사람 만나 가면서 사측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니, 자연스레 노조결성의 의지를 다져왔다. 그런데 막상 노조를 만들고자 결심을 하고 나니, 그동안 회사측의 부당함에 억눌려 가슴속으로 혼자 '꿍'하고 있던 주변의 동료들이 얼마나 많은지,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쉽게 노동조합을 결성했단다. 물론 그 사이 고생도 많았다. 대표이사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물량은 빼겠다고 협박하고, 한마디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대표이사가 강하게 나온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단결은 큰 힘을 만들기 마련.
원·하청 동지들의 단결된 의지와 한번 해보겠다는 사내하청 동지들의 의지는 공장 내에서 원·하청 노동자 공동결의대회를 진행하였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중식집회를 계속 열어왔다. 결국 4월 6일과 7일까지 이틀 간 집중적인 교섭을 통해 단체협약 95개 전체조항 의견을 접근시켰다. 그 중에 가장 핵심조항은 '고용기간이 없는 정규직 채용'이다.
즉, 한라공조 사내하청 노동자 모두가 정규직이 된 것이다.


"이제는 연대로서 받은 만큼 돌려 드려야죠"

노동조합을 하면서 힘든 일이 무엇이냐고 지회장에게 넌지시 물었더니 "그런 것 없었습니다. 워낙 동지들이 집행부를 신뢰하고, 잘 따라줘서 솔직히 저희는 한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워낙 잘 뭉쳐서 그런지 쉽게 성과를 쟁취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게 노동자의 힘 아닌가 쉽구요"라고 답한다.
4월 1일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에 한라공조 사내하청 지회장, 부지회장, 사무장 등 동지들은 자신들의 노동조합 깃발을 들고 대전역에 나왔다. 지회장은 "그 날 무척 든든했습니다. 이 많은 동지들이 하나라는 것이 말이죠. 이 동지들이 모두 하이닉스 투쟁에 갔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제는 연대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지회장. "우리가 그동안 여러 동지들의 관심과 연대 속에서 교섭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만큼 우리도 이제는 다른 동지들에게 연대 해야죠. 아직 많은 곳에 찾아가 보지 못했지만, 호텔리베라 등의 사업장에 연대하고 있습니다." 주말에 간부회의를 통해서 연대투쟁에 대한 계획을 모색할 계획이다.

노동조합 활동은 그 어떤 특출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투쟁 또한 그 어떤 사람이 잘나서 하는 것이 아니다. 정당하게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했을 때, 부당한 노동행위를 받았을 때,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 옆의 동료와 단결을 이룰 때, 이것이 투쟁이 아닌가 싶다. 이것이 노동조합의 근간을 이루는 모습이 아닐런지. 이런 모습이 민주노조를 지키고 꽃피우는 것이 아닌지 사내하청 노동조합 사무실을 나오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05-04-26 18: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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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2004년 7월 20일 노동자의 힘 기관지 57호 실린 글이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기관지노힘  제57호
이강철 

p39_1.jpg p39_1.jpg(61 KB)

 

지난 6월 22일 오후 1시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교육주권 매각음모 저지! 외국교육기관 특별법 전면 폐기!'를 위한 긴급 규탄대회를 진행했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교육의 공공성 쟁취!' 구호로서 진행된 집회는 예상과는 달리 많은 대오가 참석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많은 교육주체들과 사회단체들이 교육개방 반대 주장을 제시하고,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이것이 전체 민중에게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이론적인 수준에서는 많은 의견들이 오고가고 있지만 이것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작년 노무현 정부는 교육은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개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었다. 그러나 같은 해 3월 31일, WTO교육개방 양허안 제출 마감을 앞두고, "개방은 세계적 대세이기에 불가피하다"며 양허안을 제출했다. 당시 교육주체인 학생·교사·학부모들과 사회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의해 초·중·고등학교는 개방하지 않고, 대학교육에 한해서만 개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교육개방 양허안을 제출한 국가가 4개국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부의 주장이 거짓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정부는 나아가 경제자유구역법 통과 이후, 단 두 차례의 공청회만을 진행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제주 국제 자유도시 및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교육기관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하 외국교육기관특별법)'을 작년 12월 26일 입법예고(교육인적자원부)한데 이어 지난 6월 15일 약간의 문구수정과 조항 위치가 바뀐 정도로 해서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켜 버렸다. 이제 국회 처리 과정만이 남았을 뿐이다.

노무현 정부는 현재 교육과 더불어 의료·문화·쌀 등의 삶에 있어서 기본적인 부분을 WTO 협상과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서 상품화시키려 하고 있다. 더군다나 정부가 6월 15일에 통과시킨 법안에 의하면 대학뿐만 아니라 유아·초등·중등교육까지 포함하여 개방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 자본의 의도대로 외국교육기관특별법이 처리된다면 한국 교육의 상품화·시장화의 가속화는 물론 교육 전반이 지옥의 불구덩이에 파묻히고 말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교육개방을 위해 현재 빠른 속도로 페달을 밟고 있다. 정부가 6월 15일에 확정한 이 특별법은 우리 교육주권을 해외에 매각하는 행위이며, 교육을 시장화하고 상품화하여 자본의 이윤추구에 힘을 얻게 하는 것이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아니 결코 상품이 될 수 없다. 교육은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여야 한다.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해 교육을 상품으로 전략시키는 음모에 맞서 싸워야 한다.



 

2004-07-20 15: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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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쭉 펴고 편안히 누울 공간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2003년 6월 5일 노동자의 힘 기관지 32호에 실린 글이다.

 

 

"다리 쭉 펴고 편안히 누울 공간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상도 2동 철대위 김영재 위원장


기관지노힘  제32호
이강철 (한신대 민중연대위원회 연사국장)

상도동.jpg 상도동.jpg(52 KB)

 

4-5면// 사람사는 세상

"다리 쭉 펴고 편안히 누울 공간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 상도 2동 철대위 김영재 위원장

이강철

지난 5월22일 한신대에서 전국철거민연합 연대주점이 열렸다. 풍동, 상도2동에서 철거민들이 참가했다. 그런데 그날 오전 서울 남가좌동 철대위가 용역에 의해 처참히 무너져 버렸다. '다음은 상도2동이겠군….' 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으로 전국철거민연합 연대주점이 끝났다.
연대주점 뒤, 27일 동작구 상도2동 173~159번지 일대 꼭대기에 있는 상도2동 철대위를 찾았다. 동네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주위의 집들은 온통 폐허로 변해 있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라고 철거망루(골리앗)에서 소리가 들렸다.
"위원장님 만나러 왔는데요."
들어가는 입구에는 커다란 개가 쉴새없이 짖어댔다.

사실 오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왜냐면, 어제 부천 소사 철대위가 발대식을 하자마자 주공직원들과 경찰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여러 명이 연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내가 이렇게 상도2동 철대위 분들을 만나는 것이 민폐가 아닌가 걱정했다. 그러나 철거망루에 들어가자 상도2동 철대위 분들은 다정하게 맞아 주었다. 밖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너무나 다정함이 있는 분위기였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눈가에 잔잔한 주름에 정말 우리 아버지 같은 분이 다정하게 나를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나를 안내해 주신 분은 이 곳 상도2동 철대위 위원장 김영재(54세) 위원장이다. 잠시 후 따뜻한 커피가 나오고, 김영재 위원장님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위원장은 처음에는 학생들이 줄곧 하는 투쟁 같은 것에 찬성하지 않았다. 27년째 이곳에서 사신다는 김위원장님은 아현동에서 시계방을 운영하다가 도로확장 때문에 철거당하고,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지금의 철거투쟁에 나섰다고 한다.
이 곳 상도2동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파출부나 청소부 및 일용직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전형적인 달동네 마을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상도동 땅의 주인인 양녕대군 문중에서 땅을 경향건설에 팔아버렸고, 땅 주인이 된 경향건설은 어떠한 향후 대책도 제시하지 않은 채 강제철거의 위협을 가해왔다. 현재는 40여 세대가 이 철대위에 참가하여 싸우고 있는 중이다.
철대위는 작년 4월10일 결성되었다. 세입자의 권리가 무시되거나 합리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강제 철거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주적으로 단결하고 순환식 개발을 통한 가수용 시설 실현과 영구임대주택에 확실히 입주할 수 있도록 하는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거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속에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공짜로 집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서민들이 주거의 권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집이 없는 이가 60%인데, 영구임대 주택들을 지어서 조금씩 그 비율을 줄여나가야 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 아닙니까? 없는 것이 죄는 아닌데…. 이 세상에 제대로 돈 버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자신의 땀 한 번 안 흘리고 버는 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다리 쭉 펴고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공간만 마련되어도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김위원장은 정부의 정책이 '자본이 있는 자들의 정치'일 뿐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지금 노무현 정권은 이전의 김대중 정권보다도 더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이 있는 자들의 정치이지, 이게 어디 서민들을 위한 정치입니까? 가진자에 의한, 재개발·재건축 때문에 세입자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이득을 채울려는 것에 의해서 쫓겨나가게 되고, 쫓겨나가게 된 사람들은 또 다시 싼 곳을 찾다가 겨우 살 자리를 마련하면 개발한다는 목적으로 쫓겨나는 이런 무차별적인 개발에 의해 철거민들은 계속 양산된다고 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결코 꽁짜를 원하지 않습니다. 영구임대주택에 들어가도 본인부담이 20%입니다. 하지만 없는 사람은 영구임대주택에 들어가는 것조차 버겁다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위원장님은 1남 2녀의 자식을 둔 아버지이다. 자식들이 다 커서 회사를 다니고 돈도 적게 버는 편은 아니라 한다. 그래서 종종 자식들은 아버지가 이 싸움을 할 만큼 했으니 그만 두라고 한단다. 그러나 김위원장님은 "나 혼자만을 위해서가 아닌데, 여기까지 와서 그만 둘 수는 없죠."라며 웃음을 보인다.
이 철거싸움을 끝내고 하실 계획에 대해서 묻자, "내가 이 싸움을 이기고 빈민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말하면 그것은 가식적인 말 같고(웃음), 전에 하던 노동을 다시 하고 싶어요. 그리고 돈이 생기면 철거민투쟁 후원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철거투쟁에 뒷바라지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웃음)

집은 오늘의 고된 노동으로 지친 심신을 휴식하여 내일의 노동을 위해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아래서 주택은 고이윤을 발생시키는 상품으로 전락되었다. 각종 주택개발사업 지구 내에서 원거주민들에 대한 주거권은 폭력으로 강탈당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선대책·후철거, 순환식개발에 따른 가수용단지와 영구임대주택을 건립하는 것이다. 원거주민들의 실정에 맞는 영구임대주택이 건립되고, 영구임대주택 건립 전까지 임시 거주로 사용할 가수용단지가 건립되어야 한다. 이로써 기간의 주민들의 생활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안정된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동지들의 연대투쟁이 저희들을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배웅해주는 김위원장님. 돈벌이가 없어서 생활의 궁핍함과 아이들의 교육이 걱정된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 속에서 이들의 싸움이 결코 외롭거나 패배하지 않기를 바라며 상도동에서 발길을 옮겼다.

 

2003-06-05 23: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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