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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쭉 펴고 편안히 누울 공간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2003년 6월 5일 노동자의 힘 기관지 32호에 실린 글이다.

 

 

"다리 쭉 펴고 편안히 누울 공간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상도 2동 철대위 김영재 위원장


기관지노힘  제32호
이강철 (한신대 민중연대위원회 연사국장)

상도동.jpg 상도동.jpg(52 KB)

 

4-5면// 사람사는 세상

"다리 쭉 펴고 편안히 누울 공간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 상도 2동 철대위 김영재 위원장

이강철

지난 5월22일 한신대에서 전국철거민연합 연대주점이 열렸다. 풍동, 상도2동에서 철거민들이 참가했다. 그런데 그날 오전 서울 남가좌동 철대위가 용역에 의해 처참히 무너져 버렸다. '다음은 상도2동이겠군….' 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으로 전국철거민연합 연대주점이 끝났다.
연대주점 뒤, 27일 동작구 상도2동 173~159번지 일대 꼭대기에 있는 상도2동 철대위를 찾았다. 동네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주위의 집들은 온통 폐허로 변해 있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라고 철거망루(골리앗)에서 소리가 들렸다.
"위원장님 만나러 왔는데요."
들어가는 입구에는 커다란 개가 쉴새없이 짖어댔다.

사실 오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왜냐면, 어제 부천 소사 철대위가 발대식을 하자마자 주공직원들과 경찰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여러 명이 연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내가 이렇게 상도2동 철대위 분들을 만나는 것이 민폐가 아닌가 걱정했다. 그러나 철거망루에 들어가자 상도2동 철대위 분들은 다정하게 맞아 주었다. 밖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너무나 다정함이 있는 분위기였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눈가에 잔잔한 주름에 정말 우리 아버지 같은 분이 다정하게 나를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나를 안내해 주신 분은 이 곳 상도2동 철대위 위원장 김영재(54세) 위원장이다. 잠시 후 따뜻한 커피가 나오고, 김영재 위원장님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위원장은 처음에는 학생들이 줄곧 하는 투쟁 같은 것에 찬성하지 않았다. 27년째 이곳에서 사신다는 김위원장님은 아현동에서 시계방을 운영하다가 도로확장 때문에 철거당하고,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지금의 철거투쟁에 나섰다고 한다.
이 곳 상도2동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파출부나 청소부 및 일용직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전형적인 달동네 마을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상도동 땅의 주인인 양녕대군 문중에서 땅을 경향건설에 팔아버렸고, 땅 주인이 된 경향건설은 어떠한 향후 대책도 제시하지 않은 채 강제철거의 위협을 가해왔다. 현재는 40여 세대가 이 철대위에 참가하여 싸우고 있는 중이다.
철대위는 작년 4월10일 결성되었다. 세입자의 권리가 무시되거나 합리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강제 철거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주적으로 단결하고 순환식 개발을 통한 가수용 시설 실현과 영구임대주택에 확실히 입주할 수 있도록 하는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거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속에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공짜로 집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서민들이 주거의 권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집이 없는 이가 60%인데, 영구임대 주택들을 지어서 조금씩 그 비율을 줄여나가야 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 아닙니까? 없는 것이 죄는 아닌데…. 이 세상에 제대로 돈 버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자신의 땀 한 번 안 흘리고 버는 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다리 쭉 펴고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공간만 마련되어도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김위원장은 정부의 정책이 '자본이 있는 자들의 정치'일 뿐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지금 노무현 정권은 이전의 김대중 정권보다도 더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이 있는 자들의 정치이지, 이게 어디 서민들을 위한 정치입니까? 가진자에 의한, 재개발·재건축 때문에 세입자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이득을 채울려는 것에 의해서 쫓겨나가게 되고, 쫓겨나가게 된 사람들은 또 다시 싼 곳을 찾다가 겨우 살 자리를 마련하면 개발한다는 목적으로 쫓겨나는 이런 무차별적인 개발에 의해 철거민들은 계속 양산된다고 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결코 꽁짜를 원하지 않습니다. 영구임대주택에 들어가도 본인부담이 20%입니다. 하지만 없는 사람은 영구임대주택에 들어가는 것조차 버겁다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위원장님은 1남 2녀의 자식을 둔 아버지이다. 자식들이 다 커서 회사를 다니고 돈도 적게 버는 편은 아니라 한다. 그래서 종종 자식들은 아버지가 이 싸움을 할 만큼 했으니 그만 두라고 한단다. 그러나 김위원장님은 "나 혼자만을 위해서가 아닌데, 여기까지 와서 그만 둘 수는 없죠."라며 웃음을 보인다.
이 철거싸움을 끝내고 하실 계획에 대해서 묻자, "내가 이 싸움을 이기고 빈민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말하면 그것은 가식적인 말 같고(웃음), 전에 하던 노동을 다시 하고 싶어요. 그리고 돈이 생기면 철거민투쟁 후원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철거투쟁에 뒷바라지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웃음)

집은 오늘의 고된 노동으로 지친 심신을 휴식하여 내일의 노동을 위해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아래서 주택은 고이윤을 발생시키는 상품으로 전락되었다. 각종 주택개발사업 지구 내에서 원거주민들에 대한 주거권은 폭력으로 강탈당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선대책·후철거, 순환식개발에 따른 가수용단지와 영구임대주택을 건립하는 것이다. 원거주민들의 실정에 맞는 영구임대주택이 건립되고, 영구임대주택 건립 전까지 임시 거주로 사용할 가수용단지가 건립되어야 한다. 이로써 기간의 주민들의 생활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안정된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동지들의 연대투쟁이 저희들을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배웅해주는 김위원장님. 돈벌이가 없어서 생활의 궁핍함과 아이들의 교육이 걱정된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 속에서 이들의 싸움이 결코 외롭거나 패배하지 않기를 바라며 상도동에서 발길을 옮겼다.

 

2003-06-05 23: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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