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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 메일이 지긋지긋합니까(4)
    간장 오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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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의 새벽’ 20주년 기념 콘서트에 부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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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분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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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rquez(마르쿠제)의 노벨상 수상 연설 전문(2)
    간장 오타맨...

스팸 메일이 지긋지긋합니까

  • 등록일
    2004/12/11 23:59
  • 수정일
    2004/12/11 23:59
모질라 재단, MS 위협할 이메일 프로그램 썬더버드 출시 모질라 재단에서 메일 프로그램 썬더버드(천둥새) 1.0판을 내놓았다. 썬더버드는 모질라에서 나온 웹 브라우저, 불여우처럼 100% 공개 프로그램이다. 썬더버드의 강점은 먼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스팸 메일 퇴치 기능이다. 한번 스팸메일로 지정해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자동으로 스팸 메일로 분류돼 스팸 폴더로 옮기거나 삭제하도록 할 수 있다. 학습 기능이 있다는 이야기다. 처음 설치하고 일주일 정도만 수동 분류 작업을 거치면 90% 이상의 스팸 메일을 걸러낼 수 있다.


스팸 메일로 분류되면 기본적으로 스팸 메일 표시가 뜨고 스팸 메일 관리를 실행시키면 스팸 메일을 한꺼번에 스팸 폴더로 옮길 수 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메일 내용을 검색해 스팸 메일을 분류하는 기능도 있다. 한글 단어를 중심으로 검색하는게 아니라 단어를 구성하는 바이트 단위로 검색하기 때문에 정확도가 매우 높다. 기자가 3개월 동안 1.0 이하 버전을 테스트한 결과 스팸이 아닌 메일이 스팸으로 분류되는 경우는 한건도 없었다. 클릭 두번으로 스팸 메일로 분류할 수 있고 한번 분류해 놓으면 그 주소로 들어오는 메일이 모두 스팸 메일로 분류되기 때문에 날마다 중복돼 들어오는 스팸 메일을 모두 처리할 수 있어 매우 편리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습능력이 높아져서 3개월이 지난 지금은 하루 300여개씩 들어오는 스팸 메일 가운데 290개 이상을 걸러낸다. 썬더버드가 주목받는 것은 썬더버드도 불여우처럼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을 막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스팸 메일 처리 방식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웃룩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용량도 5.8메가바이트밖에 안돼 매우 가볍고 빠르다. 불필요한 기능이 없어 간단한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엔진을 사용하지 않아 마이크로소프트 기반 프로그램을 노리는 메일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롭다는 점도 큰 강점이다. 보안을 위해 스크립트와 이미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기능도 돋보인다. 모든 이미지는 일단 차단되고 윗쪽의 버튼을 누르면 뜬다. 메일을 읽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불필요한 이미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방법도 된다. 다양한 확장과 테마 기능도 썬더버드만의 강점이다. 취향에 따라 자기만의 프로그램으로 바꿀 수 있다. 모질라 재단에 따르면 지금까지 썬더버드를 내려받은 사람은 모두 100만명을 넘어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웃룩을 비롯한 오피스 프로그램은 세계적으로 9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워드를 제외한 나머지 오피스 프로그램은 거의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이 독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무료 프로그램이면서 마이크로소프트 아웃룩에 걸맞는 성능을 자랑하는 프로그램은 썬더버드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썬더버드는 넷스케이프에서 만든 메신저 4.0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불여우와 썬더버드를 개발하고 있는 모질라 재단은 100%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재단이다. 세계적으로 60여명의 개발자와 2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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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새벽’ 20주년 기념 콘서트에 부쳐

  • 등록일
    2004/12/08 20:19
  • 수정일
    2004/12/08 20:19
오는 10일 ‘명사’들 초청 대형행사…민주노총 등 노동계 ‘무관심’ 속 치러져 ‘노동의 새벽 출간 20주년 기념 콘서트’가 오는 10일 열린다. 1984 년, 노동문학의 신기원을 개척하며 ‘박노해 현상’까지 일으킨 기폭제가 됐던 서적 ‘노동의 새벽’. 그리고 한때는 노동자 계급의 의한 체제 변혁을 꿈꾸었던 사회주의 혁명가였다가 이제는 ‘나눔과 사랑의 전도사’로 돌아온 노동의 새벽의 저자, 박노해. 그 자체로 상징이고, 역사인 ‘노동의 새벽’을 기념하는 ‘뜻 깊은’ 행사가 세밑을 앞둔 즈음에 열리는 것이다. 이번 행사에선 신해철이 기념음반 프로듀싱을 맡았고, 윤도현, 싸이, 장사익, 황병기 등 ‘국민적 스타’들이 대거 출연해 기념무대를 장식하게 된다. 강헌, 백태웅, 임종석, 조희연 등 정치·문화·학술 계통을 두루 관통하는 ‘명사’들이 추진위원으로 참여한 점도 눈길을 끈다.


하지만 기자는 지난 10월 29일, 레이버투데이에 이번 콘서트를 비판하는 기사를 쓴 바 있다. 꽃다지 전 대표 이은진씨와 노동가요 작곡가 김호철씨 등의 입을 빌어 이 콘서트를 바라보는 어떤 이들의 ‘유감’을 지적한 것이다. 비 판의 요지는 이랬다. 먼저 이 콘서트가 행사 주체나 참여뮤지션들의 면면으로 봤을 때 80년대 노동의 새벽의 정신을 올곧이 이어받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는 것.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와 정부의 탄압으로 노동계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7만 7천 원’ 씩이나 하는 티켓을 사서 공연을 관람할 노동자가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수익금 전액을 이주노동자를 위해 쓴다고 했으나 그 돈을 사망한 이주노동자의 ‘유해 송환 비용’이나, ‘자녀들 공부방 지원 비용’ 등으로 쓰겠다는 발상은 ‘맥락을 잘못 짚은 것’이라는 점이 기사의 주요내용이었다. 기사가 나간 뒤 반응은 뜨거웠다. 언론으로선 최초보도였다는 점에서도, 노동의 새벽과 박노해가 지닌 ‘현재적 민감함’ 때문에도 반응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 번 콘서트를 “‘노동계급의 눈물과 피’를 팔아먹는 수혜적 인도주의”라며 혹독한 비판을 가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의 시를 다양한 음악적 분석과 방식으로 표현하고 창작하여 우리가 함께 시대의 보석으로 간직하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느냐”고 반박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이는 “노동자 계급의 정서와 사상을 가장해 얼치기 혁명투사의 흉내만 냈을 뿐, 실제 노동자계급과는 거리가 멀었던 박노해와 노동의 새벽이 이제야 제 자리를 찾은 것이다”라고까지 평가했다. 주 최측 관계자의 ‘항의’도 있었다. 왜 아직 공식적인 언론브리핑을 거치지 않은 단계에서 미리 비판적 기사를 쓰느냐는 것이었다. 출연진도 아직 100%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악의적인 시각으로 이번 콘서트를 재단했다는 지적이었다. 기자는 그 관계자에게 반론을 제기하면 실어주겠다고 제안했고, 이와 함께 콘서트의 내용이 달라지게 되면 새롭게 반영된 기사를 쓰겠노라고도 약속했다. 그 로부터 보름 뒤인 11월 중순경 노동의 새벽 콘서트 기사가 일제히 모든 언론에 실렸다. 다행히도(?) 이들 언론엔 레이버투데이의 기사처럼 ‘비뚤어진’ 시각으로 이번 콘서트에 초를 친 기사는 없었다. 그러나 콘서트의 기조와 내용이 달라진 건 없었다. 그 리고 본 공연을 앞둔 지금, 실제로 ‘변화’된 것들이 있다. 우선 공연요금이 ‘3만 원 균일’로 바뀌었다. 공연을 불과 14일 앞둔 11월 26일, 주최측은 최고 7만 7천 원까지 하던 차등 요금제를 폐기하고 3만 원으로 통일했다고 밝혔다. 주최측은 “축제같은 공연을 함께 즐기고, 나아가 이 사업의 취지를 더 많은 분들에게 전하기 위함”이라고 요금 인하의 이유를 밝혔다. 뒤늦은 결정이지만, 박수를 보낼 만한 일이다. 콘 서트 제목을 ‘스무살 공순이의 노래’라 이름 붙인 것도 달라진 점이다. 공연포스터에선 영화배우 배두나가 ‘공순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영화배우 조재현이 공연 사회를 맡고, 전태일 열사의 누이 전순옥 참여여성복지센터 대표도 무대에 선다. 결 국 이제 우리는 ‘스무살 공순이의 노래’란 이름을 단 ‘3만 원짜리’ 노동의 새벽 20주년 기념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됐다. 기자 입장에서 낯뜨겁게 자위하자면, 레이버투데이의 기사가 여기에 눈꼽만큼의 ‘자극’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 럼에도 이번 콘서트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선 사실상 출연진이 달라진 것이 없다. 애초부터 추진위원으로 참여했던 전순옥씨 정도를 빼면 무대에 서는 이들 중 지금 ‘노동’과 직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 이들은 없다. 이주노동자들이 결성한 밴드가 마치 ‘양념처럼’ 출연진 라인업에 속해 있을 뿐, 오늘날 노동의 문제를 직시할 만한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도 이번 콘서트는 ‘노동의 어제’를 추억하는 행사일 뿐, 힘겨운 ‘노동의 오늘’을 나누는 행사는 아니다. ‘노동의 오늘’이 ‘소외’되고 있는 건 단순히 출연진의 문제만이 아니다. 주최측은 이번 행사를 홍보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각종 포털사이트에 이번 행사를 소개하는 배너광고를 게재하는 등 전방위적인 홍보작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노동의 새벽의 진짜 주체인 노동자들에게 이번 행사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다못해 민주노총 자유게시판에조차 이번 행사와 관련한 글은 올라오지 않았다. 민주노총, 전태일기념사업회 등 노동단체의 반응도 냉랭하다. 이준용 민주노총 문화미디어국장은 “이번 행사와 관련, 주최측으로부터 어떠한 협조요청이나 제안을 받은 것이 없다”며 “과거는 물론, 지금도 끊임없이 노동과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이들에겐 정작 이번 콘서트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저들만의 잔치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일까. 공교롭게도 오늘자(12월 7일) 조선일보에 실린 박노해의 ‘고백’은 의미심장하다. 이 고백을 듣고 기자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박 노해 시인은 주위에 “나는 변함없이 진보를 지향한다. 다만 진보의 내용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모스크바가 진보의 표상이었다면 지금은 뉴욕”이라고 말하고 있다. 박시인은 “내게 뉴욕은 강자와 약자의 구별이 없고 다수와 소수도 자유롭게 소통하는 용광로와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조선일보 12월 8일자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386’ 기사 중) 포 털 사이트에 걸린 노동의새벽 콘서트 ‘배너광고’의 문구는 ‘노동자에서 인간으로’이다. 대체 이들이 말하는 노동자는 누구이고, 인간은 또 누구일까. 이들은 이제 ‘모스크바를 사랑했던 노동자’가 아니라 ‘뉴욕을 사랑하는 인간’이 되고 싶은 것일까. 그렇다면 처음부터 기자의 비판은 번짓수를 잘못 찾은 셈이다. 기자는 최소한 그가 뉴욕을 사랑하는 ‘노동자’의 정서와 이념만은 지니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앞서 이야기한 어떤 이의 말처럼 이제야 그와 노동의 새벽이 ‘제 자리’를 찾은 것인가. 이오성 기자 dodash@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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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5만 가사노동자가 뭉쳤다"

  • 등록일
    2004/11/25 23:41
  • 수정일
    2004/11/25 23:41
가사노동의 사회화로 빈곤여성 문제 극복 “파출부, 집안일 도와주는 사람…. 그동안 우리 스스로 우리가 하는 일을 직업으로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런데 가정관리사라는 명칭을 쓰게 되면서 스스로 직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 고객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질 것으로 기대돼요.”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인천지부 조합원) “전국가정관리사협회라는 전국조직이 세워지는데 정말 기대가 큽니다. 사실 우리 관리사들은 다쳐도 산재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실직해도 고용보험 혜택도 받지 못합니다. 전국조직이 함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서 우리가 마음놓고 일할 수 있데 되면 좋겠어요.”(전국가정관리사협회 대구지부 조합원)


거듭되는 경제불황으로 저임금과 비정규직의 사각구조에 위치한 여성노동자가 빈곤문제의 핵심으로 떠오른 지금, "빈곤여성의 안정된 일자리와 수입을 보장하는 공익적 공동체 모델"을 표방하는 '전국가정관리사협회'가 11월 25일 출범을 앞두고 있다. 근로빈곤층의 핵심, 가사노동자 이를 준비한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이하 한여노협)는 "2003년 현재, 15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는 가사서비스업 종사자들은 가사서비스업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 불안정한 일자리, 4대보험 미적용 등 어떠한 사회적 보호도 받을 수 없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근로빈곤층에 해당되는 핵심집단"이라고 소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모인 주체들의 노력에 부응하는 사회적 지원을 호소했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는 출범을 통해 △가사도우미의 전문 직업화 △4·58대 빈곤여성의 자립을 위한 사회적 기업 모델 창출 △가사, 간병,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재평가 △고용보험 등 4대 보험 적용을 위한 제도 등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출범 선언문'에서 "현재 한국 사회가 비정규직 확산, 임금격차 확대 등 사회, 경제 전반에 걸친 심각한 양극화 현상으로 수많은 실업자와 불안정 고용층, 장기실직자를 양산하고 사회적 배제집단을 구조화시키고 있"는데 이로 인해 "사회적 약자인 실직, 빈곤여성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제하고, "가사서비스업에 대한 낮은 인식은 이들이 당당한 직업인으로 활동하기에 걸림돌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불안정적인 일자리, 낮은 소득, 4대보험 미적용 등 어떠한 사회적 보호도 받을 수 없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최근 저출산과 고령화로 불거진 사회문제에 대해 "가사, 간병, 양육 등 전통적으로 여성이 혼자 감당해내야 했던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때 해결될 수 있다"며, "전국가정관리사협회가 일하는 여성에게 가사노동과 돌봄노동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촉구함으로써 일하는 여성의 직장 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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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분들

  • 등록일
    2004/11/25 23:33
  • 수정일
    2004/11/25 23:33
12 여년 전의 일로 기억됩니다. 추운 겨울,난생 처음으로 항도 부산에서 수도 서울로 가 며칠을 머물다가 다시 부산행 통일호 열차를 타려고 서울역대합실에서 열차시간을 기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들으시면 아실 만한 종교단체에서 종교인 두 분이 전도를 하고 있다며, 저에게 열심히 설교를 하더군요. 출발시간이 많이 남은지라, 저는 이야기를 들어서 손해 볼 건 없다는 생각에 열심히 그들의 논리에 고개를 끄떡이며 듣고 있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원수를 사랑하라,등등..... 그런데, 마침 우리들 앞에 지팡이를 더듬으며 시각 장애우 한 분이 나타나, 가지고 계시던 시계를 내밀려 사달라고 하더군요.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 순간, 눈동자가 없어신 분이라 분명한 장애우님이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사정이 딱해 보여 저가 왜 팔려냐고 묻자, 부산 해운대가 집인 그분은 장애우님들만 모여 사는 시설에서 일하기 위해 서울에 왔는데, 갑자기 집에 어머님이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갈려고 했지만, 그분 돈을 관리하고 있던 시설원장에게 돈을 돌려 줄 것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해 할수없어 몰래 빠져 나왔다며,그 분이 유일하게 남에게 팔수있는 것은 이 시계뿐이라며 팔아 부산 가는 기차표를 살려고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시각 장애우님들의 시계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는 모르겠지만,저는 처음으로 그 시계를 봤습니다. 보호 유리가 없고, 초침이 없으며, 시침과 분침이 일반시계보다 상당히 두겁더군요. 아마, 볼 수가 없으니 손가락으로 만져서 시간을 확인한다는 것을 저도 만져보고야 알 수가 있었습니다. 분명 그 시계는 시중에서 손쉽게 구할수 없고 특수한 것이여서, 그분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상당히 소중할거라는 것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팔려고 할 정도면 정말 그 분의 사정이 절박할까라고 생각했지만,불행히도 저가 가지고 있던 현찰이라곤 2000원정도, 그래서, 그 두 종교인에게 부탁을 했지요. 사줄수 없는지... 그랬더니, 서울역 주위에는 원래 이런 식으로 돈을 뜯어내는 사람이 많다며 거절을 하더군요.할 수없어 지갑을 다시 뒤지니 전화카드가 있어,이것과 돈으로 바꾸면 안되겠냐며 하자, 그 중 한사람이 공중전화박스에 가서 남은 돈을 확인하고 저에게 돈을 주자, 그 분과 같이 매표소로 가 표를 사게 되었고, 우연히도 그 분도 저와 같은 시간의 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부산역의 개찰구를 빠져 나가는 도중에 또 우연히 그 장애우님이 마중 나온 듯한 가족과 만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저는, 이 사회가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가혹한 세상을 본 듯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더욱 슬프게 한것은....,그 분의 눈물을 못본 사실입니다. 사람이 슬프거나,기쁠 때면 눈물을 흘려, 자기의 감정을 표현합니다만, 아마,눈동자조차 없으신 그분은 어머님을 잃은 슬픔에 눈물조차 흘릴 수 없다는 신체적 결함, 그리고 설령, 그분이 슬픈 눈물을 흘리셨다 하더라도 그 아픈 눈물을 따뜻하게 닦아 줄 수 없는 이 사회....... "이웃을 사랑하라...." 우리가 자기 속 치장에 능숙한 탐식자가 바로 그 종교인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분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는데..... 말없이 역앞 버스 정류소를 향해 걸어가던 저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영어로 장애우님들을 The Handicappered라는 말에서 보다 인식을 전환하는 뜻에서 Physical Challenger 라고 부른다고 하죠. 그럼 비장애인 우리는 Mental Challenger 라고 불러 보는게 어떨까 싶네요. 우리사회의 장애우님에 대한 마음을 바꾸보자는 의미에서요.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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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quez(마르쿠제)의 노벨상 수상 연설 전문

  • 등록일
    2004/11/24 09:28
  • 수정일
    2004/11/24 09:28
마젤란과 함께 역사상 최초의 세계 일주 여행을 하였던 프로렌스 출신의 해양 탐험가 안토니오 피기페타는, 남아메리카 대륙을 지나가면서, 매우 정확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마치 환상의 나라로 모험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기록이었습니다. 그는 허리에 배꼽이 달린 돼지, 수컷의 등에다 알을 낳는 발톱 없는 새, 숟가락처럼 생긴 부리를 한 혀 없는 펠리컨 비슷한 새 등 여러 진기한 동물을 보았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머리와 귀가 노새처럼 생기고, 몸통은 낙타 같고, 사슴의 다리를 하고, 말처럼 울음 소리를 내는 이상한 동물을 보았다고 기록했습니다. 파타고니아에서 처음 마주친 원주민에게 거울을 보여주자, 그 다혈질의 거인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무서워 어찌할 줄을 모르던 광경도 기술하였습니다.


서인도 제도의 연대기 작가들은 우리에게 무수히 많은 기록들을 남겨 주었니다. 우리가 그토록 탐욕스럽게 찾아 온 환영 속에 존재하는 땅 <엘 도라도>는 오랜 세월을 두고 많은 지도에 표시되었으며, 지도 제작자들이 상상하는 대로 그 위치와 형태가 바뀌곤 했습니다. 영원한 청춘의 샘을 찾아서, 신화적인 인물이 된 알바르 누녜스 까베사 데 바까는 8년에 걸쳐 멕시코의 북부 지역을 탐험하였습니다. 환상에 사로잡혀 길을 떠났던 그의 탐험대는 서로가 서로의 인육을 먹는 참상 속에서, 처음 여행을 떠난 6백 명의 인원 가운데 단 다섯 명만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 시대의 수많은 미해결 된 미스테리 중의 한 가지는, 아따후알빠의 몸값을 치르기 위해 어느 날 꾸스꼬를 출발하였으나 결코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 황금의 행방이었습니다. 한 마리에 1백 파운드씩의 금을 실은 1만 1천 마리의 노새가 실종된 사건이었습니다. 그 뒤 식민지 시대의 카르떼헤나 데 인디아스 지역에서는, 사금 땅에서 키운 닭들의 모래 주머니 속에서 조그만 금덩어리들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한 개척자의 황금에 대한 탐욕이 최근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지난 세기에, 파나마 지협을 가로지르는 대양(大洋)간의 철도 부설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구성된 독일의 파견단은, 한 가지 조건 하에 계획이 실현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철도를 이 지역에 나지 않았던 철로 만들 것이 아니라 금으로 만들면 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스페인의 지배 하에서 독립한 이후에도 우리는 광기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세 번에 걸쳐 멕시코의 독재자로 군림하였던 안또니오 로뻬스 데산따나 장군은 소위 그가 <빵전쟁>에서 잃었던 오른쪽 다리를 위해 성대한 장례식을 거행하였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모레노 장군은 16년간 전제군 주로서 에쿠아도르를 통치하였습니다. 그가 죽자, 완전무결한 정장에 온통 훈장을 한 겹이 덮이도록 장식하여, 시체를 대통령 의자에 안치시켜 놓았습니다. 막시밀리아노 에르난데스 마르띠네스 장군은 엘살바도르의 견신론(見神論)적 전제군주로서 3만 명의 농민의 목숨을 앗아간 야만적인 학살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먹는 음식에 독이 들어 있는지 여부를 탐지하는 진자를 발명해 냈고, 전염병으로 번지는 성홍열을 퇴치하기 위해 가로등을 붉은 종이로 싸라고 명령했습니다. 떼구시갈빠의 중앙 광장에 서 있는 프란시스꼬 모라산 장군의 동상은 사실상 원래 네이 원수의 동상이던 것을 파리의 어느 중고품 조각 상점에서 사다 놓은 것입니다. 11년 전,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 중의 한 사람인 칠레의 빠블로 네루다는 이 자리의 청중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일깨우는 연설을 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선의를 가진 유럽 인들은―그리고 때로는 악의를 가진 사람들도―라틴 아메리카로부터 전해지는 섬뜩한 소식에 점점 더 큰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는 그 불굴의 완강함이 전설로 아련히 남아 있는, 역사를 사는 남녀의 광대한 활동 무대가 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쉴 여유가 없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대통령이, 불타는 그의 궁전에서, 전 군대에 맞서 홀로 싸우다가 외롭게 죽어 갔습니다. 아직도 설명되지 않은 두 차례의 의문의 비행기 사고가, 또 하나의 위대한 대통령과 그의 국민의 존엄성을 되찾아 준 한 민주적 군인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다섯 차례의 전쟁과 열 일곱 번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신의 이름 아래,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서 우리 시대 최초의 종족 살인을 자행한 악마적인 독재자가 등장하였습니다. 그 동안, 2천만의 라틴 아메리카 아이들이 한 살이 채 못 되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1970년이래 유럽에서 태어난 아기의 수보다도 많은 숫자였습니다. 압제로 인하여 실종된 숫자도 12만 명에 이르는데, 이것은 웁살라의 온 주민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나 같습니다. 임신 중에 체포된 많은 여인들이 아르헨티나의 감옥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기들은 비밀리에 입양되거나 군 당국의 명령에 의해 고아원으로 보내어져 아무도 자기 자식의 행방도 신원도 알아낼 길을 모르는 형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어 보려고 애썼다는 이유로, 전 대륙에 걸쳐 20만 명에 달하는 남자와 여자가 죽어야 했습니다. 중앙 아메리카의 불운한 세 나라―니카라구아, 엘살바도르, 과테말라―에서는 10만 명 이상이 죽어 갔습니다. 만일 이것이 미국에서 벌어진 상황이라면, 비율로 보아 4년간에 걸쳐 1백 60만의 인명이 폭력으로 쓰러졌다는 말과 같습니다. 손님을 환대하는 전통을 가진 나라인 칠레에서는 1백만 명이 그 나라를 등지고 떠났습니다. 인구의 10퍼센트가 망명길에 오른 것입니다. 대륙에서 가장 개화된 나라라고 자부하던, 인구 2백 5십만의 조그만 나라 우루과이는 국민 다섯 명 가운데 하나의 비율로 나라를 떠났습니다. 1979년이래 엘살바도르의 내란은 매20분마다 한 명씩의 비율로 피난민을 놓았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이 모든 망명자들과 강제 이민들을 모아 나라를 세운다면 노르웨이의 인구보다도 많은 인구를 갖게 될 것입니다. 본인은 스웨덴 문예 학술원의 관심을 이끈 것이, 단지 그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이 엄청난 현실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종이 위의 현실이 아니라, 우리들 속에서 살고, 매 순간마다 매일처럼 죽어 가는 우리의 무수한 죽음을 결정짓고, 만족할 줄 모르는 창조성의 원천이 되는 현실입니다. 그것은 비애미에 넘치는 현실이며, 이 향수에 젖어 유랑하는 컬럼비아는 운명의 여신에 의해 혜택받은 그 속의 하나의 하찮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시인과 거지들, 음악가와 예언자들, 전사와 악당들, 이 억제할 수 없는 현실의 모든 존재들에게, 우리는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중심적인 문제는, 우리 인생을 믿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줄 통례적인 수단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빚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친구들이여, 이것이 우리들의 고독의 본체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본질적으로 공유하는 이러한 어려움 들이 우리를 가로막는 것이라면, 스스로의 문명에 도취된 지구의 이편 유럽 인들의 합리적인 재능으로도 우리를 이해할 온당한 방도를 찾지 못하는 것이 수긍이 갑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측량하는 척도로서 우리를 측정하려 들고, 거친 인생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정도로 닥치는 것이 아님을 잊고, 우리 스스로의 주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그들만큼이나 열렬하고 피맺힌 것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닌 틀에 끼워 맞춰 우리의 현실을 해석하려 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더욱더 미몽에 몰아 놓고, 자유를 상실케 하고, 고독하게 만들고 말 것입니다. 만일 그 자신의 과거에 비추어 우리를 보려고 한다면, 훌륭한 유럽 인들은 좀더 통찰력 있는 시각을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런던이 최초의 성벽을 쌓는 데 3백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야 했고, 주교를 맞이해 들이는데 또다시 3백 년이 소요되었습니다. 에트루리아의 왕이 로마를 역사의 수레바퀴 위에 올려놓기까지 로마는 불확실성의 그늘 속에서 2천 년을 보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부드러운 치즈와 무감동한 시계를 제공해 주는 평화로운 스위스 인은, 16세기까지도 용병으로서 유럽을 피로 물들인 국민이었습니다. 르네상스의 절정기에도 신성 로마 제국 군대에서 돈을 받고 싸우는 용병들이 로마를 약탈하며 황폐화시키고, 8천 명의 주민을 칼로 베었습니다. 53년 전, 토마스 만은 이 자리에서 고결한 북부와 정열적인 남부를 통합하자고 한 토니오 크뢰거의 이상을 찬양했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여기서 그런 환상을 실현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본인은 보다 정의롭고 인간적인 조국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서도 투쟁하고 있는 명철한 유럽 인들이, 우리에 대한 시각을 다시 고쳐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훨씬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세계적인 분배의 문제에 있어서 그들 자신의 삶의 몫을 누리고자 하는 환상을 품은 모든 국민들에게 정당한 지원을 보내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한, 우리의 꿈에 공감만 해 준다고 해서 우리가 덜 고독해 질 수는 없습니다. 라틴 아메리카는 스스로의 의지에 상관없이 부당한 저당물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도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과 독창성을 절실히 열망해야 하리라는 덧없는 생각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간의 거리를 접혀 준 항해술의 발달과 더불어, 우리 사이의 문화적인 차이는 반대로 더욱더 멀게만 느껴지고 있습니다. 문학에서는 그처럼 환영받는 우리의 독창성이, 사회의 변화를 모색하는 또 다른 노력에서는 그처럼 불신을 받고 거부당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어째서 진보적인 유럽 인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모색하는 사회 정의가, 다른 상황에서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역사에 점철된 그 엄청난 폭력과 고통은, 오랜 세월 쌓여 온 불공평한 상황과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쓰라린 경험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단 한번의 음모로 우리의 조국에 3천 개의 단체가 뿌리를 내렸을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많은 지도자들과 사상가들은 구식 인간형의 어리석음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그러한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럽이 젊은 시절에 경험했던 유익한 방종을 이제 잊어버리고, 마치 세계가 두 거대한 주인의 뜻에 따르는 이외에 다른 운명을 개척할 도리가 없다고 체념한 듯합니다. 나의 친구들이여, 이것이 우리가 겪어야 하는 크나큰 고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억압받고, 약탈당하고, 버림받는 처지에서 삶으로써 대응하고자 합니다. 홍수도, 전염병도, 기근도, 사회의 대격변도, 수 세기를 두고 그침 없이 계속되는 영원한 전쟁조차도 언제나 삶이 죽음을 능가하고 있는 현실을 뒤바꾸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폭은 점점 더 커지고 빨라져 왔습니다. 매년 사망자 수보다도 7천 4백만이 많은 새 생명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매년 뉴욕 인구의 일곱 배의 인구 증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물론 라틴 아메리카 제국을 포함하는 가장 자원이 빈약한 나라들에서 태어납니다. 반대로 가장 번영을 누리는 나라들은, 오늘날 존재하는 전 인류뿐 아니라, 이 불운한 행성에 태어났던 모든 생물체를 백 번은 몰살시킬 수 있을 파괴력을 축적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오늘과 같은 날, 나의 스승 윌리엄 포크너는 <나는 인류의 종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바 있었습니다. 32년 전 그가 인정하기를 거부했던 엄청난 비극이, 이제 인류가 존재한 이래 처음으로, 확연한 과학적 가능성으로 닥쳐왔음을 본인이 인식하지 못한다면, 저는 지금 그가 섰던 이 자리에 설 자격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완전한 유토피아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했을 이 가공한 현실을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지어내고 어떤 일이라도 믿을 줄 아는 우리는, 아직 현재의 세계와 상반되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기에 시기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니라고 믿을 권한이 있습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하고, 사랑은 진실이며, 행복은 손에 넣을 수 있는 실체가 되고, 1백 년 동안의 고독을 저주받 은 종족이 마침내 영원히 지구상에서 제 2의 기회를 누리게 될, 새롭고 완전한 삶의 이상향을 말입니다. ― 1982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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