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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25
    배설과 상담
    나른
  2. 2007/10/18
    몸은 알고 있다
    나른
  3. 2007/10/12
    2007/10/12
    나른

배설과 상담

상담을 해왔던 친구에게 나도 모르게 휩쓸려 버린 때가 있었는데, 울면서 전화 한 이후 내가 여성상담센터등을 권고하고나서 연락이 두절되었다. 실수한 게 아닌가 싶어 걱정했었는데 미니홈피를 보니 매우 건강하게 살고 있는 듯 해 기운 빠졌었다. 물론 당시에는 힘들었겠지만, 근본적으로 극복이나 치유가 목적이 아닌 해소를 위한 배설이었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하고 난 후, 그 친구의 얘기를 반복적으로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올 여름 도보여행을 다녀오면서 6년지기와 조금더 소소한 것들을 공유하게 되었는데, 어제 시험과 남자에 대한 눈물나는 것에 대해 듣게 되었을 때, '배설과 상담을 구분해다오'라는 문자를 보냈다. 친구는 알았다고 답했고, 너무 매몰차게 말했나 걱정하고 연락이 두절됐을 때 더더욱 걱정됐고 새벽에 연락이 닿았을 때 지금 괜찮다 니 말대로 아까 순간적 해소를 위해 널 찾은 거 같다, 미안하다 라고 전해들었다.

 

휴대폰이 있음으로해서 많은 부분을 일상에서 혼자 생각하거나 해소해내지 못하고 타인에게 배설하게 된다.

 

짜증나 힘들어 외로워 도와줘

 

순간적인 해소는 순간의 기분을 낫게 할 수 있지만 결국 그것이 안으로 풀어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게 된다. 말 그대로 배설이다. 배설을 당한 사람은 감정 이입하거나 생각하거나 고민하거나 감정을 전달받고, 배설하는 사람은 기분은 괜찮을 지 몰라도 공허하다. 뭐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 패턴은 반복되고 이 반복되는 패턴으로 인해 결국 관계는 깨지는 거 같다.

 

내가 지금까지 무수하게 반복해오던 많은 관계의 깨짐은 바로 순간적으로 해소하려는 나의 패턴때문이었고 이것이 다시금 관계를 파토내는 요소로 작용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결국 극복도 치유도 해소도 자신이 할 수 밖에 없으며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배설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배설을 차단해야겠다는 것이 2시간의 자전거 라이딩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누군가에게 나에게 배설한 친구에 대해 상담한 적이 있는데 배설은 당하고 나면 기분이 더럽다 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최근들어 그런 것에 대해 감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미리 말해두고 선을 그어야 관계가 유지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친구는 다른 친구에게 이야기했다지만 어쨌든.

 

그래도 배설하지 말아달라 말한 거 정말 잘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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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알고 있다

어제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려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끝날 때마저도 눕고 싶다거나 이곳을 빨리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차가운 공기를 마셔도 지하철 타고 오는 와중에도 증상이 완화되지 않아 한양대에서 내려 결국 화장실로 달려갔다. 계속되는 울렁거림에도 별로 토한 것이 없다.

 

프로그램에 가게 되면서부터 은연중에 이것저것 사소한 일들이 많이 떠오르게 되고 그것으로부터 연속되는 심리적 압박에 대해서는 감지했었다. 눈치도 없고 둔감한 성격이라 몸이 무언가에 반응하는 경우는 내가 기억하기로 별로 없다. 그래서 몸의 격렬한 반응이 신기하고 무서웠다.

 

몸의 세포가 활짝 열리는 순간 압박을 밀어내는 에너지가 생긴다고들 한다.

그래서 극복하는 거고 자기치유하려고 다들 열심히 하지 않나.

 

아직 준비가 안 됐지만, 내 세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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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2

나는 그 순간에 떠오른 엄마의 얼굴에 의아했다. 그리고 덩달아 떠오른 그 언니의 얼굴에 더 의아했다. 초등학교때부터 쭉 같은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서 얼굴을 봤던 그 언니.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예전보다는 분노가 많이 사그라든 것 같다. 사실 더 이상 그들을 붙들고 싸우며 매달리고 싶지 않은 게 맞는 것 같다.

 

그 언니는 목격자이면서도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이후에도 같은 초,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엘리베이터에서 수없이 마주치며 왠지 모를 죄책감과 부끄러움, 껄끄러움을 느꼈다. 발가벗고 그 사람 앞에 서 있는 기분을 김해를 떠날 때까지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나한테 엄마에 대한 원망이 남아있는가?

 

어렸을 때 엄마는 내가 기억하기로 한,두번 정도 폭발적으로 나에게 분노를 표출했던 적이 있어 미워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항상 집에 없고 한달에 한두번 볼까 말까 해서 사실 별로 기억에 없다. 일상적으로 나를 키워 잔소리를 하는 할머니보다, 무서운 아빠, 오빠 보다 자상하고 다정한 엄마가 좋았다.

나를 데리고 외갓집으로 가고 아빠가 빌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일년에 한 번쯤은 반복되어서 그러려니 한 기억이 한 자리 차지.

 

고등학교 때 입원했을 때는 이혼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빠는 또다시 약속을 했었다. 

그러다 19살 때는 사라진 엄마를 원망했었다. 할머니와 나는 약자축에 속했었으니까. 경주에서 비오는 밤 빛을 비추던 그 무덤들과 추위때문에 돋았던 소름, 사진, 가게 아주머니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세포에 꽂혔었다. 낮에는 밤이 오지 않기를 미치도록 기도했었다. 겁 났었다. 엄마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현실이. 그리고 사건 후에도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해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현실도 엄마가 있었으면 나았을 거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그래도 돌아와줬으니까 날 찾아줬으니까 괜찮다 괜찮아졌다

 

그리고 나도 비겁했으니까

말리는 척 하다가 결국 무서워서 내 방으로 돌아와 문을 잠궈버리는 것 밖에 못 했으니까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는데도 안 했으니까

더 적극적으로 이혼하라고 안 했으니까

나도 공범이다. 침묵하는 가족 속에 내가 있다.

 

그래서 싸이코 드라마를 하고 싶지 않다. 엄마가 나에게 빚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무섭다. 아직은 무서운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지금 억누르고 있는 그 무엇이 폭발하는 것이 견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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