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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4/18
    노이로제
    나른
  2. 2008/04/16
    예민하다,
    나른
  3. 2008/04/16
    J를 만나다
    나른
  4. 2008/04/12
    음력 2월 25일
    나른
  5. 2008/04/12
    사용자에 대한 광위적 해석
    나른
  6. 2008/04/09
    김해 갑. 한 김정두당선, 그리고 동서터널(4)
    나른

노이로제

여학생휴게실 근로자는 2명이고, 일주일에 한번 빼놓고는 내가 모두 9시에 오픈을 한다.

저번에 한 번, 세미나 이후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에 잠들어 내가 오픈하지 못하고 10시반에 오픈이 된 적이 한 번 있다. 11시에 일어나 부랴부랴 학교로 왔고, 사과문을 쓰고, 징계를 달라 여위에 요청했다. 그리고 한시간 반은 자진해서 채우면서 일이 마무리 되었지만, 세미나의 여운?충격?을 혼자 해결하지 못한 것이 근로라는 것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용서가 안되서 위원장님을 만나니 감정이 폭발해 울어버렸다.

자책감 대략 200%

 

*

저번주 2개의 전공시험때문에 일요일 밤을 지새웠다. 월요일에 시험을 치고 수업이 끝나 7시쯤 집에 가서 바로 뻗었다. 알람을 맞춰놓았지만, 휴대폰이 진동으로 된 상태였다. 눈을 뜨니 1:46. 바로 위원장님에게 '오픈을 하지 못했다, 죄송하다, 어쩌면 좋냐'는 문자를 보내고 부리나케 일층으로(내 고시텔은 3층이고, 내 방에는 창문이 없다) 내려가니 깜깜하다. 시계를 다시 확인해보니 AM. 아 다행이다. 위원장님에게 시간을 착각했다, 미안하다, 나 요즘 미쳐가나 보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잤으나, 중간에 여러번 깨고 아침일찍 학교로 와 오픈.

 

**

어제 팀프로젝트가 11시에 끝나 이후 집으로 가 기절.

일어나니 시간이 꽤 많이 지나있고, 부재중 전화 수십통. 기절할 거 같다.

다시 일어났다. 아 꿈이구나. 현재시각 새벽 5:45

물 먹어 제 정신이 아닌 휴대폰에 다시 알람을 제대로 맞추고, 다시 누움. 6시쯤 다시 일어남

7시쯤 다시 일어남

8시 반 쯤 알람을 듣고 일어나 채비 하고 학교로 와 오픈.

 

 

아 심장이 두근거린다, 제길. 이러다 내 명에 못 죽겠다.

학생들 돈으로 운영되고 학우들과의 약속인데다 내가 오픈인 만큼, 그냥 알바와는 좀 다르다는 건 알지만, 오픈하지 못하는 꿈까지 꾸다니. 나른지못미.

노이로제 걸릴 거 같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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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하다,

수업이 끝나고 시험과 레포트에 관한 것으로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갔다. 팀플을 함께 하는 팀원 하나가 보고서를 냈는데, 오류로 인해 교수님은 받지 못하셨고, 벌써 2주가 지난 상황에서 그도, 교수님도 당황해 하셨다. 보낸 메일함에 저장도 되어 있지 않고, 파일도 집에 있다는 그의 말에 교수님은 난감해하며 일단 보내라고 하신 뒤 돌려보내셨다.

 

나는 시험에서 왜 점수가 깎였는지에 대해 듣고, 납득했다. 3점이 깎였지만, 다른 보고서와 레포트들은 거의 만점인데다 시험도 결국 A등급에 들었고, 내가 틀린 부분이 있었기에 납득했다. 그리고 친구와 내려와서 팀원의 보고서 평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중요한 보고서이니만큼 그가 한번 보내고 말 것이 아니라 이후라도 교수님의 수신을 확인했어야 하며, 인터넷이 오류가 많은 것은 컴공인 그가 더 잘 알 것이다, 교수님이 여타 공지하지 않은 것은 문제지만 결국 학점이나 보고서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만큼 그의 레포트 점수에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 게다가 보고서의 특성 상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면 더 많은 정보와 내용조직화를 이룰 수 있으므로 '조작'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등의 입장이었고,

 

친구는 교수님이 인터넷의 오류로 인한 문제에 대해서는 말씀하신 적 없다, 그의 잘못도 분명이 있지만 온전히 그의 잘못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게다가 난 그 사람의 평소의 성격 상 조작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너 점수때문에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 라는 말을 했다.

 

졸업이 다가오고 1학년의 학고 때문에 학점은 나에게 '성실도'를 평가하는 항목으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 수업은 절대평가인데다 그 사람의 학점을 깎는다고 해서 나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며 사실 이 부분은 교수님이 내릴 결정이라는 것, 교수님의 성격 상 어느 정도의 불이익은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학생들과의 '공평성(또는 형평성)'의 문제와 연관되는 것이지, 그 사람의 '성격(인품)'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정말 안면 없는 누군가가 똑같은 상황이었다손 치더라도 난 똑같이 반응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친구는 어떨까? 생각해 보게 되는 문제다.

사람의 성품이나 품행이라는 것에 어떻게 '신뢰도'를 측정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

'평소 그 사람을 봐, 그렇게 바르게 사는 사람이 그럴리가 없어.'

'저 사람은 평소에도 저러는데, 어떻게 믿어?'

등등등

 

게다가 이 많은 토론을 단순히 내가 시험에 대해 "예민"해져서 보인 반응이라 치부하다니, 이거 너무 억울했다. 뒤늦게 다시 문자를 보내서 예민하다는 말을 듣는 건 좀 억울하다 했다. 이래저래 이야기가 오가고 자신은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귀찮았다는 답을 듣고보니 참 허무하다.

참, 이런 토론같지도 않은 토론을 하느라 힘 빼고 점수때문에 예민하다 말 들으니 참 치사스럽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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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를 만나다

2007년 중순, 나는 그때 약간은 강박적으로 연애를 시작했고, 학교의 일을 습관처럼 또 놓아버리고 있었고,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복잡하게 꼬이고 있었다.

 

J를 만난건 2006년. 우리가 친해지게 된 계기는 J의 짝사랑의 대상이 나의 주변인이었다는 것.

그리고 2007년 5월? 난 술을 잔뜩 마신 상태에서 J에게 독설을 퍼부었다-그러나 앞 부분만 기억날 뿐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도통 지금까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이후에도 J와 어느 정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기에 난 그저 아무일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당시의 여러 관계에서 도망치고 싶기만 했던 그 순간들 속에 J와의 일은 여전히 정지되어 해결되지 않은 찝찝한 그 무언가로 남아 있었다.

 

그저께, 학생회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화장실로 가는 J를 보았다. 순간 사무실로 뛰쳐들어갔다. 아, 왜 숨었지? 그치만 심장이 콩닥콩닥 거렸다. 지금 마주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도통 모르겠다. 망설이다 이어폰을 꼽고 있는 J를 뛰어가 잡았다. 어색한 인사, "오랜만이다."

 

10분 정도 이야기했다.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너가 나와 이야기하길 원하지 않는다 들었다, 그래서 연락할 수 없었다, 너의 소식이 궁금했다, 앞으로 만나든 만나지 않든 한번쯤 정식으로 사과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어쩌구 저쩌구.. 시간이 지나서 그런가, 내 예상보다도 J는 나에 대한 감정이 많이 없어진 듯 했다. 

 

나는 왜 J와의 연결고리를 다시 이으려고 하는 것일까, J가 마음에 두었던 상대의 연애관계를 보면서 어쩌면 J도 그 낚시질을 덥썩 문 아이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내가 J와 나누었던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를 찍고 하고 싶어하던 시절, 난 J를 대상으로 하려고 했고, 인터뷰(혹은 수다)를 통해 몰랐던 J의 여러 부분을 발견하고 공감했었다. 피겨를 하는 J의 몸-다이어트에 대한 강박, 체육계의 여러 문화나 관습, 여타 J의 개인적인 부분들.

 

그러나 여전히 한구석이 불편한 것은, 나만 온전히 가해자로 몰리고 있는 것같은 기분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J의 어투에는 비난뉘앙스가 섞여 있다. 일방적으로 쏟아낸 것, J와의 관계를 단순화시켜 상처입힌 것 등 나의 잘못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뭐랄까, 나 혼자 옴팡 뒤집어쓰는 기분이랄까. 정작 분노의 대상이나 함께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그 원망의 몫을 내가 여전히 학교에 남아 존재한다는 이유로 다 받아야 하는 건 어쩐지 좀 억울하다.

 

아아 머리가 복잡해.

그치만 역시 J와 만난 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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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2월 25일

최근 미니홈피의 다이어리를 정리하다 저번에 '엄마의 집'을 읽고 쓴 글이 있다.

세미나에서 읽었던 책인데, 어떤 멤버는 재미없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난 감정이입하고 봤다.

 

설에 '엄마집'에 갔다.

- 전경린 '엄마의 집'을 보고 나서가 아니라 난 원래 부산에 갈때면 자연스레 '엄마집'에 간다고 말한다.

 

아르바이트로 거금을 좀 쥐고 있던 내가 선물을 하겠다고 하자

엄마는 또 거절이다. 화장품이라도 사주마라고 하니 그제서야

"그럼 내려와서 엄마 가방 사도. 엄마가 고르께." 한다.

지난 4년간 가족과 상황과 공간이 급변하면서부터 엄마는 더더욱 나에게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밥먹었나, 잘 먹고 다녀라, 뭐 해 줄까, 돈 안 필요하니, 아프지 마라, 안 춥나, 안 덥나.

 

카네이션 말고는 처음으로 선물을 했다. 처음 하는 선물인데도 4만원짜리 가방 앞에서 비싸다며 망설이는 당신을 보며 짜증나고 답답하고 미안하고 안쓰럽다.

 

엄마는 4년 전부터 차츰차츰 변해서 지금도 변하고 있다.

가방을 사달라는, 화장을 하는, 머리에 신경을 쓰는, 일요일마다 데이트하러 나가는 당신이 너무 좋다. 점점 더 변했으면 좋겠다. 난 어느 정도 서운할 것이다. 내가 없어도 괜찮은 엄마가. 엄마에서 이순옥여사로 계속계속 행복하게 변하길 바란다.

+)

 

"딸 오늘 생일이제. 5만원 보낸다. 맛있는거 사먹어라."

벚꽃나무와 함께 도착한 메시지.

 

음력 2월 25일은 내 생일이다. 올해는 4월 1일이 그 날이었고, 사실 생일을 잘 챙기지 않아서(게다가 요즘 누가 음력생일을 ;;) 이여사(엄마)의 문자를 받고, 아 오늘이구나 했었다. 생일이고 자시고를 떠나서 현금 5만원이 생긴거이 무척이나 기쁜 날이었다. +ㅁ+

 

"엄마는 그 때 갈 데가 없는거라. 돈도 없고. 지금 이만큼 자리잡고 니가 올 때도 있고 하니까 좋긴한데, 돈 벌 수 있을 만큼 벌어서 집 같은거 하고 싶다. 집 나온 엄마들, 갈 데 없는 중고등학생들 데리고 있고 싶다. 연립주택같은거 사면 엄마는 방 한칸만 있으면 되니까. 나머지는 그런 사람들 올 수 있는데 만들고 싶다."

 

엄마의 계획을 처음 들었을 때 생경했지만 너무 좋을 거 같다 이야기했다. 난 좁은 다락방이 좋으니 내 공간도 하나만 주면 안될까 하니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크크. 다이어리를 보니 엄마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고, 오늘에서야 엄마한테 낳아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여사님, 낳아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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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에 대한 광위적 해석

우리 과에서 유일한 여자 교수님의 '노사관계론'수업을 듣고 있다.

노동조합 설립 요건 중에서 소극적 요건(결격 요건)중 첫 번째가 '사용자가 참가해서는 안된다'이다. 그러나 이 사용자에 대한 광위적 해석을 요한다는데, 인적자원관리(HRM) 담당자들, 감독자들 등 사용자의 직간접적인 이해를 대변하는 자또한 사용자로 해석해야 한다는 거다. 노조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란다. 사실 잘 이해가 안됐다. 어디까지를 경영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어디까지를 노동자라 할 수 있을까, 어렵다.

학교에서 근로를 하는 나는 금토 저녁에만 호프집에서 5시간씩 일을 한다. 사실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우리를 관리하는 매니저님때문에 그냥 남아있게 되었다. 매니저님은 34살로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며, 이래저래 잘 챙겨주시는 분이다. 정도 많고 권위의식같은 것도 없는 분이라, 나도 한 달만에 정이 들어 결국 이 가게에 눌러 앉아 버렸고, 가끔씩 대타를 뛰어주거나 알바시간을 바꿔 주거나 한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언니중에 근처 K대에 다니는 중국인 직원언니가 있다. 언니와 매니저님은 사이가 매우 좋고, 암튼 그렇다. 방금 내가 퇴근하기 전, 가게 분위기가 쌀벌해졌다. 언니와 매니저님이 일 문제로 불꽃이 튄 것.

한국어 능력시험과 중간고사를 앞둔 언니가 알바로의 전환을 요구했고, 사장은 평소부터 언니를 못 마땅해 했기에 별로 반기지 않고, 매니저님이 중간에서 조율을 했다. 평일에는 알바로, 주말처럼 길게 일하는 시간은 직원의 급여로 받는 것이다. (참고로 직원의 급여가 시급 4000원인 알바보다 저임금이다) 언니는 불만을 토로했고, 주말에 알바로 전환해서 일찍 보내달라, 사정좀 봐 달라, 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매니저님의 반응. 그건 니 사정이다, 가게가 어떻게 니 사정까지 다 봐주냐, 주말까지 널 알바로 쓸 수는 없다, 이런 식이면 계속 일 못한다, 사장입장에서도 어떻겠냐, 가게 사정도 어려운데 너까지 왜 이러냐 어쩌구 저쩌구 저쩌구

 

아, 이거구나. 관리자라는 입장의 사람을 어째서 사용자로 해석해야 하는지.  평소에는 그리도 사람 좋은 당신이 어째서 그렇게까지 핏대를 세우고, 언니를 몰아부쳐댔는지. 내가 독감으로 편도가 부어 침을 삼키지 못하던 지경에서 연장알바를 했어도 미안하다는 말로 끝나고 결국 칼같이 분까지 계산해서 주시던 그 모습과 오늘의 그 모습에서 나는 사장을 보았습니다.

당신도 고용자이면서, 노동력의 수적 유연성을 추구하는 사장의 성향으로 미루어 당신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똑같은 고용자이면서, 어째서 임금이나 고용에 대해서는 그리도 사장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인지. 이건 단지 알바일 뿐이지만, 기업이나 사회로 더 나아가게 되면 결국 사용자에 대한 광위적 해석의 필요성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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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갑. 한 김정두당선, 그리고 동서터널

김해라는 작은 도시가 내 고향이라고 말하면 다들 "김해 평야"를 떠올린다. 뭐 노무현을 떠올리는 사람도 간혹 가다 있긴 하지만, Pass. 사실 난 김해에서도 중심지가 아닌 구역에 살았고, 김해 평야는 주거지역과는 좀 떨어진 외곽이기에 나도 김해평야에서 뛰어논 기억따윈 없다

 

내가 자란 동네를 빙 둘러싸는 '신어산'이라는 곳이 있다. 동김해에 속하는 우리 동네에서 초중학교를 나온 나에게 신어산은 1년에 한 번 극기훈련을 떠나는 곳, 식목일에 나무를 심는 곳(물론 한 번도 심은적은 없다;;), 신어산 가야랜드에 소풍을 가는 곳, 등산을 가는 곳, 신어산에 자리잡은 은하사라는 절로 산보를 가는 곳으로 기억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체력이 약해서 극기훈련으로 신어산 정상까지 올라야 할 때면 늘 꼴찌를 기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려가는 나에게 신어산은 웅장하고, 크고, 무성한 곳으로 산공기의 시원함과 자연에의 두려움을 공존하게 한 산이다.

 

그리고 김해는 동김해와 서김해로 나뉘어 있는데 산으로 막혀있어 버스를 타면 빙빙 돌아가기 때문에 인근 대도시인 부산으로 나가는 것만큼 시간이 많이 걸린다(40-60분정도). 그래 불편한 거 안다, 인정한다. 나도 고등학교 때 버스 타고 30분씩 돌아가는 그 길을 저주하기도 했었다. 그치만 그렇다고해서 신어산을 뚫어 터널(동서터널)을 만든다니, 고작 2,30분 단축시키자고 산을 뚫는다니 이게 웬말이냐.

주민등록 상 김해시민으로 되어 있는 나와 친구는 어떻게 하면 이 '동서터널'을 막을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청 홈페이지에 항의서한을 보내고, 이곳저곳 알리고, 여름 도보여행에 대운하건설 반대와 신어산을 뚫는 '동서터널'을 반대하는 것을 모토로 여행을 하고 이걸 블로그에 올리는거 어떠냐, 그렇다면 인원을 더 모집하거나 지역마다 만나서 무언가 세미나를 하거나 Acting을 해도 좋겠다, 경주라는 곳에는 핵폐기장으로 인한 오염이 심각하댄다 오염 지역을 직접 돌아보는 건 어떠냐, 등등.

일단 자전거보다는 도보여행으로 의견 수렴했다, 며칠 전.

 

그리고 총선.

"김해 갑 한나라당 당선이다.. 선거공보에도 터널 얘기 있다." 친구의 메시지.

 

김해 갑 2.한 김정권 3만273(당선)

김해 김해을 1.민 최철국 3만9405(당선)

 

아 끝장났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동서터널에 대한 언급이 있다.

"6월에 삽 뜬단다"

 

신어산 가운데를 6월부터 뚫기 시작해서 동서김해 연결하고, 동서터널이랑 연결해서 산복도로 개설해서 또 동김해 우회하는 도로 건설하고, 농경지인 대동 개발해서 아파트 미친듯이 짓겠다고 약속하는구나.

신어산 공사 현장에서 농성이라도 할까, 엉엉.

 

민원부터 넣어야겠다.

이번에 부재자 투표 못한 것이 못내 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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