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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2
    음력 2월 25일
    나른
  2. 2008/04/12
    사용자에 대한 광위적 해석
    나른

음력 2월 25일

최근 미니홈피의 다이어리를 정리하다 저번에 '엄마의 집'을 읽고 쓴 글이 있다.

세미나에서 읽었던 책인데, 어떤 멤버는 재미없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난 감정이입하고 봤다.

 

설에 '엄마집'에 갔다.

- 전경린 '엄마의 집'을 보고 나서가 아니라 난 원래 부산에 갈때면 자연스레 '엄마집'에 간다고 말한다.

 

아르바이트로 거금을 좀 쥐고 있던 내가 선물을 하겠다고 하자

엄마는 또 거절이다. 화장품이라도 사주마라고 하니 그제서야

"그럼 내려와서 엄마 가방 사도. 엄마가 고르께." 한다.

지난 4년간 가족과 상황과 공간이 급변하면서부터 엄마는 더더욱 나에게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밥먹었나, 잘 먹고 다녀라, 뭐 해 줄까, 돈 안 필요하니, 아프지 마라, 안 춥나, 안 덥나.

 

카네이션 말고는 처음으로 선물을 했다. 처음 하는 선물인데도 4만원짜리 가방 앞에서 비싸다며 망설이는 당신을 보며 짜증나고 답답하고 미안하고 안쓰럽다.

 

엄마는 4년 전부터 차츰차츰 변해서 지금도 변하고 있다.

가방을 사달라는, 화장을 하는, 머리에 신경을 쓰는, 일요일마다 데이트하러 나가는 당신이 너무 좋다. 점점 더 변했으면 좋겠다. 난 어느 정도 서운할 것이다. 내가 없어도 괜찮은 엄마가. 엄마에서 이순옥여사로 계속계속 행복하게 변하길 바란다.

+)

 

"딸 오늘 생일이제. 5만원 보낸다. 맛있는거 사먹어라."

벚꽃나무와 함께 도착한 메시지.

 

음력 2월 25일은 내 생일이다. 올해는 4월 1일이 그 날이었고, 사실 생일을 잘 챙기지 않아서(게다가 요즘 누가 음력생일을 ;;) 이여사(엄마)의 문자를 받고, 아 오늘이구나 했었다. 생일이고 자시고를 떠나서 현금 5만원이 생긴거이 무척이나 기쁜 날이었다. +ㅁ+

 

"엄마는 그 때 갈 데가 없는거라. 돈도 없고. 지금 이만큼 자리잡고 니가 올 때도 있고 하니까 좋긴한데, 돈 벌 수 있을 만큼 벌어서 집 같은거 하고 싶다. 집 나온 엄마들, 갈 데 없는 중고등학생들 데리고 있고 싶다. 연립주택같은거 사면 엄마는 방 한칸만 있으면 되니까. 나머지는 그런 사람들 올 수 있는데 만들고 싶다."

 

엄마의 계획을 처음 들었을 때 생경했지만 너무 좋을 거 같다 이야기했다. 난 좁은 다락방이 좋으니 내 공간도 하나만 주면 안될까 하니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크크. 다이어리를 보니 엄마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고, 오늘에서야 엄마한테 낳아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여사님, 낳아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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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에 대한 광위적 해석

우리 과에서 유일한 여자 교수님의 '노사관계론'수업을 듣고 있다.

노동조합 설립 요건 중에서 소극적 요건(결격 요건)중 첫 번째가 '사용자가 참가해서는 안된다'이다. 그러나 이 사용자에 대한 광위적 해석을 요한다는데, 인적자원관리(HRM) 담당자들, 감독자들 등 사용자의 직간접적인 이해를 대변하는 자또한 사용자로 해석해야 한다는 거다. 노조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란다. 사실 잘 이해가 안됐다. 어디까지를 경영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어디까지를 노동자라 할 수 있을까, 어렵다.

학교에서 근로를 하는 나는 금토 저녁에만 호프집에서 5시간씩 일을 한다. 사실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우리를 관리하는 매니저님때문에 그냥 남아있게 되었다. 매니저님은 34살로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며, 이래저래 잘 챙겨주시는 분이다. 정도 많고 권위의식같은 것도 없는 분이라, 나도 한 달만에 정이 들어 결국 이 가게에 눌러 앉아 버렸고, 가끔씩 대타를 뛰어주거나 알바시간을 바꿔 주거나 한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언니중에 근처 K대에 다니는 중국인 직원언니가 있다. 언니와 매니저님은 사이가 매우 좋고, 암튼 그렇다. 방금 내가 퇴근하기 전, 가게 분위기가 쌀벌해졌다. 언니와 매니저님이 일 문제로 불꽃이 튄 것.

한국어 능력시험과 중간고사를 앞둔 언니가 알바로의 전환을 요구했고, 사장은 평소부터 언니를 못 마땅해 했기에 별로 반기지 않고, 매니저님이 중간에서 조율을 했다. 평일에는 알바로, 주말처럼 길게 일하는 시간은 직원의 급여로 받는 것이다. (참고로 직원의 급여가 시급 4000원인 알바보다 저임금이다) 언니는 불만을 토로했고, 주말에 알바로 전환해서 일찍 보내달라, 사정좀 봐 달라, 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매니저님의 반응. 그건 니 사정이다, 가게가 어떻게 니 사정까지 다 봐주냐, 주말까지 널 알바로 쓸 수는 없다, 이런 식이면 계속 일 못한다, 사장입장에서도 어떻겠냐, 가게 사정도 어려운데 너까지 왜 이러냐 어쩌구 저쩌구 저쩌구

 

아, 이거구나. 관리자라는 입장의 사람을 어째서 사용자로 해석해야 하는지.  평소에는 그리도 사람 좋은 당신이 어째서 그렇게까지 핏대를 세우고, 언니를 몰아부쳐댔는지. 내가 독감으로 편도가 부어 침을 삼키지 못하던 지경에서 연장알바를 했어도 미안하다는 말로 끝나고 결국 칼같이 분까지 계산해서 주시던 그 모습과 오늘의 그 모습에서 나는 사장을 보았습니다.

당신도 고용자이면서, 노동력의 수적 유연성을 추구하는 사장의 성향으로 미루어 당신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똑같은 고용자이면서, 어째서 임금이나 고용에 대해서는 그리도 사장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인지. 이건 단지 알바일 뿐이지만, 기업이나 사회로 더 나아가게 되면 결국 사용자에 대한 광위적 해석의 필요성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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