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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6
    예민하다,
    나른
  2. 2008/04/16
    J를 만나다
    나른

예민하다,

수업이 끝나고 시험과 레포트에 관한 것으로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갔다. 팀플을 함께 하는 팀원 하나가 보고서를 냈는데, 오류로 인해 교수님은 받지 못하셨고, 벌써 2주가 지난 상황에서 그도, 교수님도 당황해 하셨다. 보낸 메일함에 저장도 되어 있지 않고, 파일도 집에 있다는 그의 말에 교수님은 난감해하며 일단 보내라고 하신 뒤 돌려보내셨다.

 

나는 시험에서 왜 점수가 깎였는지에 대해 듣고, 납득했다. 3점이 깎였지만, 다른 보고서와 레포트들은 거의 만점인데다 시험도 결국 A등급에 들었고, 내가 틀린 부분이 있었기에 납득했다. 그리고 친구와 내려와서 팀원의 보고서 평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중요한 보고서이니만큼 그가 한번 보내고 말 것이 아니라 이후라도 교수님의 수신을 확인했어야 하며, 인터넷이 오류가 많은 것은 컴공인 그가 더 잘 알 것이다, 교수님이 여타 공지하지 않은 것은 문제지만 결국 학점이나 보고서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만큼 그의 레포트 점수에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 게다가 보고서의 특성 상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면 더 많은 정보와 내용조직화를 이룰 수 있으므로 '조작'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등의 입장이었고,

 

친구는 교수님이 인터넷의 오류로 인한 문제에 대해서는 말씀하신 적 없다, 그의 잘못도 분명이 있지만 온전히 그의 잘못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게다가 난 그 사람의 평소의 성격 상 조작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너 점수때문에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 라는 말을 했다.

 

졸업이 다가오고 1학년의 학고 때문에 학점은 나에게 '성실도'를 평가하는 항목으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 수업은 절대평가인데다 그 사람의 학점을 깎는다고 해서 나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며 사실 이 부분은 교수님이 내릴 결정이라는 것, 교수님의 성격 상 어느 정도의 불이익은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학생들과의 '공평성(또는 형평성)'의 문제와 연관되는 것이지, 그 사람의 '성격(인품)'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정말 안면 없는 누군가가 똑같은 상황이었다손 치더라도 난 똑같이 반응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친구는 어떨까? 생각해 보게 되는 문제다.

사람의 성품이나 품행이라는 것에 어떻게 '신뢰도'를 측정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

'평소 그 사람을 봐, 그렇게 바르게 사는 사람이 그럴리가 없어.'

'저 사람은 평소에도 저러는데, 어떻게 믿어?'

등등등

 

게다가 이 많은 토론을 단순히 내가 시험에 대해 "예민"해져서 보인 반응이라 치부하다니, 이거 너무 억울했다. 뒤늦게 다시 문자를 보내서 예민하다는 말을 듣는 건 좀 억울하다 했다. 이래저래 이야기가 오가고 자신은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귀찮았다는 답을 듣고보니 참 허무하다.

참, 이런 토론같지도 않은 토론을 하느라 힘 빼고 점수때문에 예민하다 말 들으니 참 치사스럽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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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를 만나다

2007년 중순, 나는 그때 약간은 강박적으로 연애를 시작했고, 학교의 일을 습관처럼 또 놓아버리고 있었고,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복잡하게 꼬이고 있었다.

 

J를 만난건 2006년. 우리가 친해지게 된 계기는 J의 짝사랑의 대상이 나의 주변인이었다는 것.

그리고 2007년 5월? 난 술을 잔뜩 마신 상태에서 J에게 독설을 퍼부었다-그러나 앞 부분만 기억날 뿐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도통 지금까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이후에도 J와 어느 정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기에 난 그저 아무일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당시의 여러 관계에서 도망치고 싶기만 했던 그 순간들 속에 J와의 일은 여전히 정지되어 해결되지 않은 찝찝한 그 무언가로 남아 있었다.

 

그저께, 학생회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화장실로 가는 J를 보았다. 순간 사무실로 뛰쳐들어갔다. 아, 왜 숨었지? 그치만 심장이 콩닥콩닥 거렸다. 지금 마주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도통 모르겠다. 망설이다 이어폰을 꼽고 있는 J를 뛰어가 잡았다. 어색한 인사, "오랜만이다."

 

10분 정도 이야기했다.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너가 나와 이야기하길 원하지 않는다 들었다, 그래서 연락할 수 없었다, 너의 소식이 궁금했다, 앞으로 만나든 만나지 않든 한번쯤 정식으로 사과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어쩌구 저쩌구.. 시간이 지나서 그런가, 내 예상보다도 J는 나에 대한 감정이 많이 없어진 듯 했다. 

 

나는 왜 J와의 연결고리를 다시 이으려고 하는 것일까, J가 마음에 두었던 상대의 연애관계를 보면서 어쩌면 J도 그 낚시질을 덥썩 문 아이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내가 J와 나누었던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를 찍고 하고 싶어하던 시절, 난 J를 대상으로 하려고 했고, 인터뷰(혹은 수다)를 통해 몰랐던 J의 여러 부분을 발견하고 공감했었다. 피겨를 하는 J의 몸-다이어트에 대한 강박, 체육계의 여러 문화나 관습, 여타 J의 개인적인 부분들.

 

그러나 여전히 한구석이 불편한 것은, 나만 온전히 가해자로 몰리고 있는 것같은 기분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J의 어투에는 비난뉘앙스가 섞여 있다. 일방적으로 쏟아낸 것, J와의 관계를 단순화시켜 상처입힌 것 등 나의 잘못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뭐랄까, 나 혼자 옴팡 뒤집어쓰는 기분이랄까. 정작 분노의 대상이나 함께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그 원망의 몫을 내가 여전히 학교에 남아 존재한다는 이유로 다 받아야 하는 건 어쩐지 좀 억울하다.

 

아아 머리가 복잡해.

그치만 역시 J와 만난 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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