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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30
    나른
  2. 2008/01/27
    잘 다녀와.(1)
    나른
  3. 2007/10/25
    배설과 상담
    나른
  4. 2007/10/18
    몸은 알고 있다
    나른
  5. 2007/10/12
    200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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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8/24
    저출산 대책?(2)
    나른
  7. 2006/07/21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나른

담 걸린지 3일째. 증세가 호전되고 있다.

 

사실 담이 있다고 해서 미치도록 아픈 것은 아니지만, 큰 숨을 들이쉴 때마다 담 걸린 곳과 폐가 동시에 아파 불편하고 찌르르 하는 느낌이 기분 나쁘다.

 

요 며칠 한 사람에 대해서 무진장 나쁘게 이야기하고 돌아다녔다.

그치만 곰곰 생각해보면 그 아이의 행동도 문제가 있지만, 결국 내 담의 원인은 그 아이가 아니라 그 아이에게 화를 내는 나 자신이다.

 

사람에게 기라는 것이 있는 걸까. 역시.

현대식 병원에서 척추를 수술받아 나은 나로서는 한의원이라는 곳을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감기에 걸리거나 장이 꼬이면 내과에 가고, 이가 아프면 치과에, 눈이 아프면 안과에 간다.

 

담이 걸리고 나서 당황했던 것은 '으. 이건 어디로 가야돼?였다. 딱히 갈 병원이 있는게 아니더라.

그리고 지인을 만났는데, 기에 대해서 들었다.

 

음, 사람의 몸에 기라는 것과 혈이라는 게 있다는 걸 생각해 본 적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기라는 것은 에너지처럼 먹는 것이나 운동으로 채워넣어지는 것이 아니라하니 수련하고 단련하고 심신을 좋게 하면 좋은 기도 함께 생기는 건가보다.

 

어쩌면 상황이 스트레스적이라기보다 내가 상황을 대하는 자세가 스트레스적일지도

그리고 역시 대상에게 제대로 확실히 이야기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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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와.

12월말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부재중 전화가 있어 통화를 했었다.

몇개월 만에 대뜸 한다는 소리가 "나 1월말에 프랑스로 유학가."였다.

 

7년이나 지낸 친구로 원래 성실한 타입인데다가 공부에서 그림으로 급전환하고서도 서울의 좋은 4년제를 포기하고 전문대 애니메이션과에 입학해서 3년이라는 시간을 꾸준히 실력을 늘려온 아이. 하루종일 12시간을 야근을 밥 먹듯 해가면서 돈도 거의 받지 않고 선배들 졸업작품에다, 교수님 디자인회사를 돕는데다 자기 작품을 만드는 터라 몇 달만에 한번씩 보면 삐쩍삐쩍 마르고 해골처럼 변하면서도 힘들다는 소리 한번 안 하는 친구.

 

캐릭터업계가 자리를 잡아가고 상품화되고 있는 반면에 애니메이션은 노가다에다 저임금이며 여성애니메이션 작업자가 되기는 힘들기에 진로를 놓고 고민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애니메이션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하니 반갑기도 하고 친구답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복잡하다. 그래도 담당 교수님의 캐릭터회사에 취직을 마다하고 다시 공부하러 떠난다니 기쁘다.

 

일때문에 1월이되서야 친구를 만났고, 9개월정도는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이후에는 대학에 들어가 애니메이션공부를 계속하겠다는 것과 4,5년 후에나 돌아올 수 있으며 일이 잘 풀리면 현지나 외국에서 작업을 하고 싶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집안이 그닥 좋은 형편은 아니기에 거기 가서도 또 지금처럼 고생할 친구를 생각하니 선물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보고싶다고 해서 빌려준 '페미니즘의 도전'을 선물로 가지라고 했고, 가방이나 여권케이스를 만들어주마하고 헤어졌다.

 

맘먹고 쉬는 날 눈맞으며 동대문가서 융천을 떼왔다.

대안생리대도 더 만들고 친구에게도 이것저것 만들어서 보내야지 했었는데 일한답시고 뜸들이는 사이 친구가 바빠서 서울로 오지 못하고 바로 프랑스로 떠난다는 연락을 받았다.

 

울컥.

보고싶었다. 한번이라도 더.

 

프랑스가 일본처럼 가까운 데라 맘 먹으면 갈수 있는 곳도 아니고 더군다나 요 몇년 내에 학생신분을 졸업할 생각이 아니니 돈을 모아 여행을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너도 돈이 많아 1년에 한번씩이라도 들어올 처지가 아닌 걸 생각하니 아쉽다.

아쉬워서 눈물난다.

너도나도 꿈을 버리고 공무원준비생 대열에 합류하는 친구들 속에서 꿈을 향해 나가는 너를 보내자니 기뻐서 또 눈물이 난다.  

 

가서도 서울에 혼자 올라와 고생했던 것처럼 고생하겠지

그리고 또 몇 년을 그랬던 것처럼 그걸 삭히고 삭혀서 작업하겠지.

 

잘 다녀와.

명박이 집권할 때 가서 좋겠다. 나도 니 가방에 데려가라 깔깔깔. 그러게나 말이야. 5년후에나 돌아오겠지. 우리 언제보냐 또. 우리 다시 만나면 몇살이냐. 나 그때도 백수면 조수로 써줘 히히. 그래 미술배우고 싶다며.공부하면 생각해보께.

너 프랑스어스터디 가야되고 내가 그 전에 친구 만나는 거랑 겹쳐서 우리 세시간도 얘기 못 했구나. 아쉽다. 이렇게 바로 가버릴 줄 몰랐어. 며칠 뒤면 출국이구나.  

 

잘 다녀와.

잘 다녀와.

잘 다녀와.

 

5년뒤에 꼭 여성 애니메이션 디렉터가 되어서 짠하고 나타나지 않아도

니가 돌아오면 난 분명히 기뻐하며 맨발로 배웅하러 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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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과 상담

상담을 해왔던 친구에게 나도 모르게 휩쓸려 버린 때가 있었는데, 울면서 전화 한 이후 내가 여성상담센터등을 권고하고나서 연락이 두절되었다. 실수한 게 아닌가 싶어 걱정했었는데 미니홈피를 보니 매우 건강하게 살고 있는 듯 해 기운 빠졌었다. 물론 당시에는 힘들었겠지만, 근본적으로 극복이나 치유가 목적이 아닌 해소를 위한 배설이었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하고 난 후, 그 친구의 얘기를 반복적으로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올 여름 도보여행을 다녀오면서 6년지기와 조금더 소소한 것들을 공유하게 되었는데, 어제 시험과 남자에 대한 눈물나는 것에 대해 듣게 되었을 때, '배설과 상담을 구분해다오'라는 문자를 보냈다. 친구는 알았다고 답했고, 너무 매몰차게 말했나 걱정하고 연락이 두절됐을 때 더더욱 걱정됐고 새벽에 연락이 닿았을 때 지금 괜찮다 니 말대로 아까 순간적 해소를 위해 널 찾은 거 같다, 미안하다 라고 전해들었다.

 

휴대폰이 있음으로해서 많은 부분을 일상에서 혼자 생각하거나 해소해내지 못하고 타인에게 배설하게 된다.

 

짜증나 힘들어 외로워 도와줘

 

순간적인 해소는 순간의 기분을 낫게 할 수 있지만 결국 그것이 안으로 풀어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게 된다. 말 그대로 배설이다. 배설을 당한 사람은 감정 이입하거나 생각하거나 고민하거나 감정을 전달받고, 배설하는 사람은 기분은 괜찮을 지 몰라도 공허하다. 뭐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 패턴은 반복되고 이 반복되는 패턴으로 인해 결국 관계는 깨지는 거 같다.

 

내가 지금까지 무수하게 반복해오던 많은 관계의 깨짐은 바로 순간적으로 해소하려는 나의 패턴때문이었고 이것이 다시금 관계를 파토내는 요소로 작용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결국 극복도 치유도 해소도 자신이 할 수 밖에 없으며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배설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배설을 차단해야겠다는 것이 2시간의 자전거 라이딩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누군가에게 나에게 배설한 친구에 대해 상담한 적이 있는데 배설은 당하고 나면 기분이 더럽다 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최근들어 그런 것에 대해 감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미리 말해두고 선을 그어야 관계가 유지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친구는 다른 친구에게 이야기했다지만 어쨌든.

 

그래도 배설하지 말아달라 말한 거 정말 잘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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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알고 있다

어제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려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끝날 때마저도 눕고 싶다거나 이곳을 빨리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차가운 공기를 마셔도 지하철 타고 오는 와중에도 증상이 완화되지 않아 한양대에서 내려 결국 화장실로 달려갔다. 계속되는 울렁거림에도 별로 토한 것이 없다.

 

프로그램에 가게 되면서부터 은연중에 이것저것 사소한 일들이 많이 떠오르게 되고 그것으로부터 연속되는 심리적 압박에 대해서는 감지했었다. 눈치도 없고 둔감한 성격이라 몸이 무언가에 반응하는 경우는 내가 기억하기로 별로 없다. 그래서 몸의 격렬한 반응이 신기하고 무서웠다.

 

몸의 세포가 활짝 열리는 순간 압박을 밀어내는 에너지가 생긴다고들 한다.

그래서 극복하는 거고 자기치유하려고 다들 열심히 하지 않나.

 

아직 준비가 안 됐지만, 내 세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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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2

나는 그 순간에 떠오른 엄마의 얼굴에 의아했다. 그리고 덩달아 떠오른 그 언니의 얼굴에 더 의아했다. 초등학교때부터 쭉 같은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서 얼굴을 봤던 그 언니.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예전보다는 분노가 많이 사그라든 것 같다. 사실 더 이상 그들을 붙들고 싸우며 매달리고 싶지 않은 게 맞는 것 같다.

 

그 언니는 목격자이면서도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이후에도 같은 초,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엘리베이터에서 수없이 마주치며 왠지 모를 죄책감과 부끄러움, 껄끄러움을 느꼈다. 발가벗고 그 사람 앞에 서 있는 기분을 김해를 떠날 때까지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나한테 엄마에 대한 원망이 남아있는가?

 

어렸을 때 엄마는 내가 기억하기로 한,두번 정도 폭발적으로 나에게 분노를 표출했던 적이 있어 미워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항상 집에 없고 한달에 한두번 볼까 말까 해서 사실 별로 기억에 없다. 일상적으로 나를 키워 잔소리를 하는 할머니보다, 무서운 아빠, 오빠 보다 자상하고 다정한 엄마가 좋았다.

나를 데리고 외갓집으로 가고 아빠가 빌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일년에 한 번쯤은 반복되어서 그러려니 한 기억이 한 자리 차지.

 

고등학교 때 입원했을 때는 이혼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빠는 또다시 약속을 했었다. 

그러다 19살 때는 사라진 엄마를 원망했었다. 할머니와 나는 약자축에 속했었으니까. 경주에서 비오는 밤 빛을 비추던 그 무덤들과 추위때문에 돋았던 소름, 사진, 가게 아주머니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세포에 꽂혔었다. 낮에는 밤이 오지 않기를 미치도록 기도했었다. 겁 났었다. 엄마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현실이. 그리고 사건 후에도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해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현실도 엄마가 있었으면 나았을 거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그래도 돌아와줬으니까 날 찾아줬으니까 괜찮다 괜찮아졌다

 

그리고 나도 비겁했으니까

말리는 척 하다가 결국 무서워서 내 방으로 돌아와 문을 잠궈버리는 것 밖에 못 했으니까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는데도 안 했으니까

더 적극적으로 이혼하라고 안 했으니까

나도 공범이다. 침묵하는 가족 속에 내가 있다.

 

그래서 싸이코 드라마를 하고 싶지 않다. 엄마가 나에게 빚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무섭다. 아직은 무서운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지금 억누르고 있는 그 무엇이 폭발하는 것이 견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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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대책?

그저께였던가?

대충 대교위를 정리하고 신문을 펴들었다.

신문에서 내 눈에 제일 먼저 띈 것은 저출산 대책으로 세금을 조절한 것이었다.

 

독신이거나 결혼했어도 아이가 없는 가정에는 세금이 더 부과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있는 수에 따라 세금을 감면해준단다.

 

이런 불쾌할 데가.

순간 미간이 확 찡그려지는 것을 느꼈다.

 

저출산대책?

흥이다.

예전에 저출산대책에 대해서 레포트를 제출한 적이 있었다.

그래, 저출산. 우리나라가 심하긴 심하다.

하지만 그 문제점의 첫 번째로 생각되어 지느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성의 사회진출이다.

거기다 결혼관의 변화도 한 몫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굳이 따져 말하자면 다수 여성의 결혼관 변화겠지?

꼭 저출산의 원인이 많은 여성들이 "집밖"으로 나와 쓸데없이 일을 하면서 아이를 낳지 않는 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나의 지나친 비약인 걸까?

 

그리고 결론은 뻔하다.

보육제도를 개선하고, 여성의 출산에 대한 보장을 하라.

공허한 메아리다.

아무리 외쳐도 돌아오는 대답은 결혼해서 애 낳아, 아니면 돈을 내든가, 라는 공허한 메아리다.

 

 

정부에서 내놓은 저출산 대책이라는 것이 참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 같다.

근본적인 개선을 하지 못하고 눈가리고 아웅식의 세금대책이라니 한심할 수밖에.

물론, 다자녀 가구에 세금지원을 하는 것은 맞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사회적 복지제도조차 미미한 현실에서 돈이 많이 드니까.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나, 독신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또 하나의 차별 아닌가?

만약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만 불임인 부부는 그럼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 거지?

그 모든 노력들을 무시하고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세금을 더 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이 대한민국이 말하는 그 합법적인 것일까?

 

 

얼마 전 친구가 말했다.

악법도 법이라고, 군대가 싫으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고ㅡ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ㅡ

나도 고민중이다.

이 악법을 뜯어고치라고 저항해야 할지, 그냥 떠나야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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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필름의 연대기